사무엘상하 특강 6 - 다윗의 등장 (삼상 16-17장)
본문: 사무엘상 16장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오늘은 사무엘상하 특강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다섯 과를 살펴보는 동안 다윗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하라고 이름하고 있지만 사실 사무엘상하의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이제부터 사무엘상 16장부터 다윗이 등장하여 끝까지 그의 일생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을 살펴보게 됩니다.
다윗이 등장하기까지 사무엘도 등장했고 사울도 등장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참으로 사랑받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사울이 어떻게 선택받고 어떻게 멸망의 길로 나아갔는지도 함께 보았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능력을 주고 힘을 줍니다. 역사의 교훈을 잘 새기고 익혀서 그대로 행하면 우리에게 복이 되고, 잘못한 사람은 반면교사로 삼으면 새롭게 깨닫는 기회가 됩니다.
1. 버림받은 왕, 새로운 왕
1-1. 사울을 버리신 하나님
사무엘상 16장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언제 버린 것입니까? 지난 시간에 공부한 것에 의하면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울이 자기가 먼저 블레셋을 침공한 사건입니다. 전쟁을 일으켰는데, 하나님이 원래 하라고 해서 행한 침략전쟁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대규모 전면전을 시작하기 전에 사무엘이 와서 번제를 드리고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예배를 그냥 해치워 버렸습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에 있어서 예배가 우선이냐 전쟁이 우선이냐, 이 문제에 대해서 실패했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실패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셨습니다.
그 기회는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입니다. 그때 사무엘이 왕에게 찾아와서 "내가 일러줄 말씀이 있다" 하면서 헤렘(חֵרֶם) 명령을 내립니다. 헤렘 명령은 상당히 신앙고백적인 명령입니다. 다 처리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은 남겨두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제거하면 안 됩니다. 전리품은 하나도 가져오면 안 됩니다. 남녀노소 어린아이까지 다 정리하고 전리품은 절대로 가져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사울은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데리고 있었던 용병 때문에, 그리고 자기 욕심에 취해서 좋은 것 기름진 것은 남기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다 쳐냈습니다. 헤렘 명령을 어겼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결단하셨습니다. 버리겠다고, 이제 다른 사람을 세우겠다고. 지금 여기 1절에 나오는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렸다"의 버린 시점이 바로 그때입니다.
1-2. 껍데기만 남은 왕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버렸다면 그 자리에서 폐위시키면 될 일이 아닙니까? 그러면 사울도 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편합니다. 당장 그 자리에서 왕관을 벗겨 버리면 그만인데,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폐위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껍데기만 왕으로 그냥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뒤편으로 가면 껍데기만 왕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1-3. 새 왕을 찾아서
하나님이 계속 명령을 주십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사무엘이 슬퍼했습니다. 사실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왜 슬퍼했습니까? 본인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는 분입니다. 왕이 저렇게 되니 모든 고통은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가지 않습니까? 백성들 때문에 슬프고, 또 인간적으로 본인이 기름 부어서 세운 왕이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다른 왕을 세운다 하니 그 또한 슬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이새 아들에게로 가라, 내가 한 왕을 보았다"고 하십니다. 여기 '보다'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어로 보면 '보다'가 '라아'(רָאָה)라고 되어 있습니다. '라아'는 주의 깊게 살피다는 뜻입니다. 그냥 힐끗 보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별생각 없이 TV 시청하는 것처럼 보는 게 아니라 주의 깊게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위하시고 그다음 왕을 세우기 위해서 이스라엘 전역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속사람부터 겉사람까지 정말 이 사람을 왕으로 세워도 되는지 심사하셨다는 뜻입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셔서 하나님 마음에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하는 한 사람을 찾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이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 있으니 기름 부을 병의 기름을 채워다가 그 집에 가서 기름을 부어 왕을 세우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2. 사무엘의 두려움과 하나님의 지시
2-1. 적으로 취급받는 왕
그런데 사실 이 명령은 사무엘에게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2절을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라고 합니다. 사실 이제 사무엘은 사울에게 감시를 받고 있는 처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이 갈등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원래는 사무엘이 종교와 정치 권력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을 세웠고, 왕에게 정치 권력을 이양했으며, 본인은 평생토록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종교 권력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권위는 사무엘이 가지고 있는데, 그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명령했는데 통하지를 않습니다.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아 왔는데 죽이지 않았습니다. 아각 왕이 즐거이 웃으면서 나왔습니다. 사무엘이 어떻게 합니까? 아각을 찍어 죽였습니다.
즉 사람들이 볼 때, 백성들이 볼 때,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이 강하게 충돌하고 있고, 거기에서 종교 권력이 정치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울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사무엘이 한 가지라도 허투로 잘못 행하면 그걸 빌미로 씌워서 체포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사무엘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놓고 왕을 세우러 간다, 기름 부으러 간다 그러면 사울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2-2. 하나님의 비밀 유지
이렇게 질문하자 하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라." 우리는 여기서 좀 의아한 느낌을 가집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라 하시는 것입니까? 어쨌든 하나님이 지금 정상적으로 정직하게 말하라고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왕을 세우러 왔다, 왕에게 기름 부으러 왔다, 이 말을 못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우리는 그런 측면에서 이것을 봐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지금 사울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가 중요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아군끼리는 암호를 다 공유합니다. 저녁에 불침번 서고 들어올 때 암호를 해야 문을 열어줍니다. 아군들끼리는 비밀번호나 암호를 다 공유합니다. 서로의 정보가 다 공유됩니다. 그런데 적에게는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알려준다면 거짓 정보를 흘리는 정도입니다.
지금 여기 보면 하나님이 사울에게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울을 마치 적을 다루듯이 취급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울을 울타리 밖에 내어 놓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조장했다, 거짓말을 하라 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울을 어떤 관점으로 보시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에게, 특별히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 비밀이 없었습니다. 다 얘기하셨습니다.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당신의 계시를 알려주시고 비밀을 알려주시고, 우리가 기도하면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가 갈 바를 알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마음을 닫아 놓은 자에게는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이상만 있으면 뭐 하겠습니까? 기도 응답이 되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낌이 없고, 캄캄합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막혀 있는 죄가 있는가. 지금 사울과 하나님은 소통 자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사울에게는 이런 일을 알리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비밀로 하라, 적이니까, 내 사람이 아니니까. 이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무서운 일입니까? 왕인데 내가 아닌 다른 왕을 세우는데 내가 몰라요. 껍데기만 왕인 채 정말 비참합니다. 어림받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냥 왕관 벗기면 되는데, 이게 더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2-3. 나를 위한 왕
3절을 보면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라고 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이 부분을 주목하십시오.
이제 왕을 세웁니다. 사울을 대신할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는데, 그 왕은 누구를 위한 왕이란 말입니까? '나를 위한', 즉 하나님을 위한 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왕은 누구를 위한 왕이어야 합니까? 우리 상식에는 백성을 위한 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왕은 가장 우선 하나님을 위한 왕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이 백성도 잘 섬깁니다. 믿음이 좋은 왕이 백성들에게도 잘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그럼 누구를 섬길까요?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기를 위합니다. 사울 보지 않으셨습니까? 사울이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부모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은, 합리적으로 믿음을 잘 세워 가는 가정은 자녀들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중직들이 믿음이 곧바로 올바로 잘 서 있으면 성도들을 잘 섬기고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왕을 세우라" 그런 것입니다.
3.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3-1. 사무엘의 착각
이새의 아들이 일곱 명이 있었는데, 하나하나 이제 들어옵니다. 6절에 "그들이 오매"라고 나옵니다. 아들들입니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장남입니다. 여기 '보다'라는 말도 똑같습니다. 아까 하나님이 '라아', "내가 한 왕을 보았느니라" 그랬습니다. '라아', 아주 열심히 찾은 것입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신 것입니다. 사무엘도 주의 깊게 살폈습니다. 엘리압을 봤습니다.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다, 라고 딱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울이 용모가 준수했고 골격이 좋았고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훨씬 더 컸습니다. 그런 사람을 대하면서 그렇게 속고도, 이번에도 외모를 보고 사무엘이 또다시 이 사람이 왕이 될 사람이다 생각해 버린 것입니다.
3-2. 하나님이 보시는 것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똑같이 '라아'입니다. 동사가 똑같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도 '라아' 사무엘도 '라아'. 그런데 하나님과 사무엘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속사람을 보시는 것이고 사람은 용모와 키밖에 못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아무리 믿음 좋은 사무엘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람들 데리고 와서 저한테 "우리 며느리 사보려고 하는데 사람 한번 봐주세요" 그런 거 하지 마십시오. 저도 사무엘도 못 보는데 제가 어떻게 봅니까? 그 사람이 어떤지, 속사람이 어떤지. "아니 이 사람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이 사람하고 같이 사업해도 될 사람인지, 어서 사람 한 번 봐주세요." 택도 없는 얘기입니다. 진짜 어떻게 그 사람 속을 알겠습니까?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지 사무엘도 똑같습니다.
지금 사무엘도 그렇게 믿음 좋은 사무엘도, 그렇게 영적인 권위와 능력이 있는 사무엘도, 엘리압 보고 '이 사람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니라' 그랬습니다. 사람이 보는 것이 이처럼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주의 깊게 살펴봐도 껍데기밖에 못 봅니다. 속사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여쭤 봐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준비하고, 특히 사람 세울 때 특별히 사람 세울 때는 내 눈이 가는 대로 속지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버림받을 짓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압을 하나님이 그를 버렸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3-3. 위로와 두려움
여러분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위로가 됩니까? 저는 진짜 위로가 됩니다.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그랬고, 사람은 외모를 보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하셨으니 위로가 됩니다. 그 내게 됩니다. 참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편 한 꺼풀만 딱 벗겨서 생각하면 굉장히 두려운 말씀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용모와 키를 보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런 척할 수 있고, 타고난 체격과 타고난 미모와 타고난 얼굴 모습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사기도 칠 수 있습니다. 아닌데 그런 척하고, 그런데 아닌 척하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다 속일 수 있습니다. 사무엘까지 속았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지하다 그렇습니다. 모든 걸 다 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모든 세상 만물을 다 알아도 사람 속을 아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 알기가 어렵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지하셔서 사람 생각과 속마음을 다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지금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자리에 나와 있는지 하나님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감출 수 있는 게 없고 속일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 앞에서는 딱 포기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냥 솔직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지금 제 마음이 이래요. 지금 제가 예배당에 나와 있긴 한데 마음이 마음이 아니에요. 힘들고 복잡하고 화도 나고 분노도 나고 그래요. 사람들한테는 이 얘기를 할 수 없는데 하나님 알고 계시니까 제가 함부로 말씀드리니까 예배 통해서 제 마음을 다스려 주세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건 기도를 하건 어떤 상황 가운데 있건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숨기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그대로 있는 그대로, 우리 제례 가운데 배웠습니다. 소제에 꿀 넣지 말라, 누룩 넣지 말라 그랬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예배에 가지고 나와라, 속일 수 없는 분, 숨길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4. 다윗의 선택
4-1. 아들들의 행진
하나님이 엘리압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 다음,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합니다. 둘째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합니다. 아니라 그랬습니다. 이새가 자랑하는 큰아들, 둘째아들 다 아니었습니다. 셋째 삼마,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합니다. 아니라, 셋째까지 아니었습니다.
10절을 보면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물어봅니다. "네 아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의 아들이 일곱이나 되니까, 일곱을 다 봤는데 다 아니라니까 "네 아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4-2. 아버지에게도 잊힌 막내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치나이다." 아버지가 막내를 부르지 않은 것입니다. 막내에게 양치는 일이나 시키고 아버지가 빼먹은 것입니다. 그 막내, 히브리어로 보면 '아카톤'이라 하는데 지금 현대어로 이야기하면 "찐막내"입니다. 완전히 막내입니다.
옛날에는 아들이 많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들이 많으면 장남이 사랑받습니다. 맏아들이고 상속자고 아버지의 꿈을 이어갈 사람이고, 그래서 일곱 명 있으면 "큰아들아", "우리 맏이", "맏아들아" 하면서 장남을 사랑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드셔서 뭐 되면 내 뒤를 돌아보니 이 막내가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내를 사랑하게 됩니다.
여기는 보시면 8명입니다. 7명은 아버지 앞에 있는데, 막내 8번째는 완전히 아버지 관심 밖입니다. 고스란히 버려진 것입니다.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관심 밖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 우리가 앉지 아니하겠노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직위 서기 까지는 안 갈 거다, 그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12절 보면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가 불그레하고 눈이 빛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막내도 잘생겼습니다. 그러면 막내를 왜 불러오지 않았습니까? 칠 형제에 비해서 나이가 훨씬 더 어립니다. 여기서 막내라고 표현된 하카톤은 그 진짜 마지막 막내, 한참 어립니다. 귀여운 막내이지 어른 막내가 아닙니다. 그냥 어린아이입니다. 아직 청소년기입니다. 이 아이가 뭘 하겠어? 그냥 양치는 일이나 해라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이새의 아들 중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이 아이입니다. 형제들도 다 아닙니다. 저 막내인데 저 막내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입니다.
4-3. 기름 부음과 성령의 역사
하나님이 기름을 부으라 하셨고, 13절에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름을 부으니까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다윗은 앞으로 말씀 뒤에 가서 우리가 살펴보는 것처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무서울 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니까요.
그런데 반대로 14절 보시면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임하니 사울에게서는 하나님의 영이 떠났습니다.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합니다.
악령이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이 부려서 사울을 번뇌하게 합니다. 괴롭힙니다. 하나님이 악령을 만들어서 자기 일을 시키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악령은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악령이 악을 행하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합니다. 욥기에서도 그것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울에게 악령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왜요? 버린 자니까. 하나님 사랑 안에 없는 자니까. 그래서 악령이 마음대로 그를 괴롭히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4-4. 수금 연주자 다윗
이제 악령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울의 신하들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음악을 연주하면 악령이 떠나니까, 음악 잘하는 사람 하나 수소문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 중에 한 신하가 대답합니다.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중 하나를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가 있고 전쟁을 잘하는 유능한 사람이요 말을 잘하며 준수한 자이고 또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어디서 본 것인지, 들판에서 양떼를 칠 때 어떤 신하가 우연히 본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하고 보고를 하니 데려오라 합니다.
19절 보시면 "사울이 사자들을 이새에게 보내며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 보내라 하매." 이새가 사울에게 다윗의 손에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부쳐 보냈습니다.
21절 보시면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신즉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사울이 다윗을 총애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랑했습니다. 처음에 사울이 사무엘 만났을 때 사무엘도 사울 사랑했고, 하나님도 사울 사랑했습니다. 지금 여기 사울도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22절 보시면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그랬습니다. 악령이 역사하면 다윗이 수금을 탔습니다. 사울이 상쾌해졌고 낫고 악령이 떠났습니다.
5. 골리앗과의 대결
5-1. 전장에 선 거인
이제 17장을 보시면 블레셋 전쟁이 일어납니다. 블레셋 전쟁에 또다시 사울 형제, 다윗의 형들이 참전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거기 찾아가게 됩니다. 4절을 보시면 "블레셋 사람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를 보면 여섯 규빗 한 뼘, 지금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2.9미터입니다. 3미터가 거의 되는 거인입니다.
놀이공원에 뭐 180센티, 키가 커야 탈 수 있는 기구가 있습니다. 150센티 안 되면 뭐 위험하다고 못 탄다고 합니다. 그 기구 탈 때 180센티 있는 사람 두 명이 위아래로 서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2.9미터, 3미터입니다. 당연히 체구도 산더미입니다. 손과 발도 당연히 그에 맞춰서 굉장히 큽니다. 놀라운 거인, 블레셋의 대표 선수, 대장입니다.
5절 이후에 그의 무장을 보면 골리앗에게는 놋 투구가 있고 비늘 갑옷을 입었습니다.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니 57킬로그램입니다. 그리고 무게가 그렇게 되는 창날이 철 육백 세겔, 6.8킬로그램입니다. 칼과 창, 그리고 표창이 있습니다. 표창은 일단 던지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무기로 완전무장한 것입니다.
8절 보시면 이 사람이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쟁을 돋우려고 하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냐 너희는 사울의 종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절에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노니 사람 하나를 보내어 나와 싸우게 하라." 쌍방이 다 자기 군대 다 동원해서 싸우면 피해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그러니 단대단으로 대표 선수 하나씩 뽑아서 싸우자, 그래서 진 측에서 노예가 되고 이긴 측이 지배자가 되고, 그렇게 하자고 합니다.
5-2.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11절 보시면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두려워서 크게 떨었습니다. 16절 보시면 이 골리앗이 하루 이틀 아침저녁 40일 동안 이렇게 나와서 싸움을 걸었습니다. 모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두렵습니다. 그게 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영이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영이 임하면서 사울에게서 영이 떠나시니까, 사울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영이 안 계시니까, 사울 중심으로 편재된 이스라엘 군대에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전부 다 두려워서 떨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다윗에게는 임하고 사울에게는 떠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상황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5-3. 다윗의 등장
이제 여기서 아버지가 다윗을 보냅니다. 이것을 보면 아직까지 이새는 아들을 아카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둘째 셋째 안부는 걱정이 되는데, 그 전쟁터에 막내를 보낸다니 이게 너무 무모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기름까지 부어 줬는데 그것도 그냥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데 저어 잘못 보신 거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손길이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거기서 다윗이 우리말로 사고를 치는 것입니다. 당시 그의 귀에 그런 소리가 들립니다. 22절 이후를 보면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을 돋우는 자 곧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은지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합니다.
이것을 보고 다윗이 기가 막힌 것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면서 26절에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다윗이 무슨 상을 바래서 이런 말을 한 게 아닙니다. 다윗은 상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거룩한 분노가 막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이 임했으니까요.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은 용기가 생깁니다. 그 차이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면 우리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함께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전하고 또 달려갈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있는 것을 다윗은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 군대가 수만 명 수십만 명 있으면 뭐 합니까? 하나같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데, 아무도 골리앗 앞에 감당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5-4. 형의 질투
28절을 보면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말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엘리압이 왜 이런 말을 할까요? 열등감 때문입니다. 기름도 못 받았습니다. 그 마음이 응어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게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 받더니 이제 너도 네 배짱이 없구나' 그러면서 막 혼을 내는 것입니다. 막내를 아끼고 막내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6. 승리의 비결
6-1. 사울 앞에 선 소년
이제 나서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소문이 사울 왕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40일 동안 이런 일이 있어도 한 명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는데 다윗이 나서니까 사울이 크게 들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불렀습니다. 32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이게 어떤 느낌입니까? 소년 다윗이 왕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뭔가 뒤집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은 위로자가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기운 잃지 마세요, 임금님 용기를 내세요.
사실 이게 거꾸로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면 자신의 신분과 위치가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그를 세워주고 그를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라." 그런데 여기서 이제 중요한 얘기가 나옵니다.
6-2. 첫 번째 비결: 기억
승리의 비결 첫 번째,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기억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첫 번째가 기억입니다. 잘 보십시오.
34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합니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과거에 내가 들판에서 양을 칠 때 맹수가 와서 양을 물어 가면 내가 쫓아가서 그 발톱과 그 입술, 그 이빨에서 양들을 건졌습니다. 하나님이 그 맹수의 손에서도 양 떼를 건져 주셨는데,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손에서도 이스라엘을 건져 주십니다. 과거의 기억을 그는 승리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가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승리의 기억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용기가 되고 자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킬 때 둘씩 둘씩 짝지어서 파송한 적이 있습니다. 연습 삼아 전도 여행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명하니까 하늘에서 사탄 마귀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봤습니다. 병든 자가 일어나는 것도 봤습니다. 제자들이 돌아와서 간증을 막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경험 처음 했으니까, 승리의 경험이고 놀라운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을 가지고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목회해 나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 승리의 경험, 그때 내가 이렇게 기도했더니 되더라는 경험, 그 경험은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 이 당시 아버지가 다윗을 무시했습니다. 제발 그냥 내팽개쳐도 좋으니 들판에서 양 떼를 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맹수가 와서 양 잡아 가면 두려워서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양을 구하러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래서 승리의 경험을 한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하니까 작은 일에서 승리하니까 하나님이 큰 일을 맡기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형들이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아버지의 사랑 받고 그냥 거기서 먹고 살고 했습니다. 그에게 나타났던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세대가 과거에 마룻바닥에서, 지금 의자에 앉아서 예배 드리지만 마룻바닥에서 눈물 흘리고 콧물 흘리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응답받았던 세대 아닙니까? 병도 낫고 연고 층도 받았고 가정의 산적한 문제들이 기도로 다 해결됐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인생 살면서 유사한 문제가 나타나면 별로 겁이 안 납니다. 기도하면 되니까, 옛날에 그런 경험들이 다 있으니까요. 과거에 힘들어 봤고 아파 봤고 그때 하나님과 함께해서 그런 어려운 시련 대도 다 넘어가 봤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밤새도록 부르짖어 금식 기도해 본 적도, 우리 아이들이 금요 철야 기도 밤새도록 기도해 본 적도 없고, 죽을 만큼 기도해서 눈물 흘려 본 적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경험한 적이 없는데, 나중에 정말 심각한 인생의 문제를 만나면 그들 어떻게 할 것입니까?
처음부터 오냐오냐 하고 쌓고 키워 가지고, 인생이 힘들 때 그 광야에서 하나님도 만나보고, 교회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울어보고, 수련회 가서 3박 4일, 4박 5일 동안 거기서 밤새도록 부르짖고 기도해 보고, 금식 기도해 보고, 그게 승리의 경험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골리앗 같은 인생의 난제를 만나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골리앗 같은 인생의 어려운 점을 만나도 옛날에 우리가 그렇게 해서 이겼잖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게 기억입니다.
그런데 기억이라고 해 봐야 전부 다 아버지 어머니한테 돈 받아 가지고 어디 좋은 호텔에 가서 먹고 자고 좋은 펜션에 가서 좋은 구경하고 해외여행 갔던 기억밖에 없고, 그래 가지고 골리앗 같은 인생의 난제를 만나면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어떻게 승리할 것입니까?
사실 지금 여기 합치면 수십 만 명의 군대가 있어도 골리앗 앞에 쓰지 못하는데, 승리의 작은 기억을 가졌던 다윗이 거기서 그 용기를 가지고 가서 싸워 보겠다고 얘기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부모가 해야 될 일은 자녀들에게 승리의 기억을 자꾸 주셔야 합니다.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이것도 해 보라, 그리고 저것도 해 보라, 그러고 힘들어도 자꾸 해 보게 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게 하고 금식도 시켜 보고 새벽기도 나오게 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자꾸 넓혀 줘야 합니다. 그래야 골리앗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체질이 허약한 아이들이 되면 안 됩니다.
6-3. 두 번째 비결: 허세를 부리지 않음
승리의 기억, 이렇게 되니까 사울이 대견한 것입니다. 불러다가 이렇게 합니다. 38절을 보면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혔더라." 성은을 입은 것입니다. 왕의 갑옷, 왕의 투구, 그리고 왕의 무기를 받았습니다. 엄청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39절에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오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허세가 없었습니다. 승리의 비결 두 번째입니다. 사람들은 허세를 좋아합니다. 세상의 방식이나 허세입니다. 돈으로 골리앗을 이길 수 있습니까? 절대 못 이깁니다. 자기가 과거에 승리했던 방식, 하나님의 백성들은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서는 날것으로 나가야 합니다. 기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것, 왕의 갑옷 입고 왕의 칼 차고 나간다고 이길 수 있습니까? 그게 내 게 아닌데 허세 부리면 망합니다. 원래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인 양하고 그런 척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래서 있는 모습 그대로 다윗이 나간 것입니다. 자기가 원래 양을 칠 때 맹수를 잡았던 그 방식대로 물맷돌 구해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막대기 하나 들고.
그러니까 그게 승리의 비결 두 번째입니다. 첫째는 기억, 두 번째는 허세를 부리지 않는 것. 그러니까 골리앗이 다윗을 보고 기가 막힌 것입니다. 43절에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6-4. 세 번째 비결: 여호와의 이름
이제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승리의 비결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다윗이 무엇을 가지고 골리앗에게 나갔느냐? 물맷돌 다섯 개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러면 틀린 답입니다. 여호와의 이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45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성경에 나오는 말 중에 가장 멋진 말 아닙니까? 이 말이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 들으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들으시고 바짝 긴장하시지 않겠습니까? 내 이름을 가지고 나갔는데 내가 이 아이를 보호하지 않으면 누가 보호해 주겠는가.
그래서 신앙고백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나가서 물맷돌을 돌려서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 숨어 있는 신앙심을 깨우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 전쟁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전쟁에 이기고 지는 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지 그걸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고 지레 겁먹고 저러고 앉아 있느냐.
6-5. 승리의 결과
세 가지 승리의 비결: 기억, 허세를 부리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의 이름 가지고 나간 것.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49절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그런데 칼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칼을 안 갖고 나왔습니다. 51절에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집에서 빼내어", 골리앗의 칼을 빼낸 것입니다.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이 승리가 앞으로 다윗이 살아가는 평생의 승리의 방향이 됐습니다. 승리의 기억이 하나 더 쌓였습니다. 과거에는 양 떼를 건진 승리의 기억이었는데, 이제는 골리앗을 이긴 승리의 기억입니다. 이게 큰 훈장이 됐습니다. 그 기억을 가지고 앞으로 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승리가 또 다른 승리를 낳습니다. 작은 승리가 더 큰 승리를, 거기서 또 더 위대한 승리를, 그래서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에 승리를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성공을 우리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 기도해 보라 하고 그 기도가 응답받도록 해야 되고, 그 기도의 응답을 가치 있게 여기게 해야 되고, 그래서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기도하게끔 가르쳐 줘야 되고, 인생의 골리앗을 만나면 이렇게 허세 부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러면 무조건 승리합니다.
6-6. 깨어난 이스라엘
이 승리가 잠들어 있는 이스라엘 군대의 영혼을 깨웁니다. 52절에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이렇게 위대한 승리를 했습니다.
7. 껍데기만 남은 왕
그런데 참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나옵니다. 55절 이후를 보면, 사울 왕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습니다. 자기 부하에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누군지 모르는 것입니다.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아니, 귀신이 들었을 때, 악령이 임했을 때, 음악으로 하프를 연주해서 악령을 내쫓아 줬습니다. 사랑했다 그랬습니다. 자기의 무기 드는 자로 삼았다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누군지 밖에 기억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나니까, 두려움이 사로잡히니까, 이 사람이 왕으로서의 총기까지 다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승리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 승리가 누구의 승리입니까? 사울 왕의 승리입니까, 다윗의 승리입니까?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왕이지만 왕으로서 존재감이 없고, 승리한 다윗도 자기 기억에 없는,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은 비참한 사울의 말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다윗처럼 이렇게 살 수 있는지 기억하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하셨는데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과 외모를 보았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카톤 같은 다윗이, 부모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막내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여 이제는 기름 부음 받고 왕 업을 행하고 있습니다. 악한 왕 사울을 통해서, 그 악한 왕이 하나님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배우게 하시고, 골리앗을 이기며 승리의 비결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과거의 승리의 기억과 허세를 부리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서 승리한 것처럼, 주여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 앞에 닥친 골리앗을 다윗처럼 임해서 승리하고 이길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에 자라나는 자녀들 다윗처럼 믿음으로 키워 가도록 도우시고, 우리 교회 교회학교 아이들을 이렇게 훌륭한 일꾼으로 키워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