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 다윗과 요나단, 그리고 사울 / 전체녹취

사무엘상하 특강 7 - 다윗과 요나단, 그리고 사울 (삼상 18-20장)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삼상 18:3-4)

오늘은 사무엘상 공부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제목은 '다윗과 요나단, 그리고 사울'입니다. 세 명의 인물을 함께 살펴보는데, 사실 오늘의 주제를 보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간 사람과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오늘 내용을 통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는 것은 독특해서,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때부터 왕인데 사실 진짜 왕으로 쓰임받으려면 그 가운데 훈련 과정이 굉장히 많이 필요했습니다. 사울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그 훈련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철저하게 훈련시켜 갑니다.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첫 번째 왕업(王業)으로 하신 일이 악한 왕 사울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수금을 타고 악기를 연주해서 악한 영을 내쫓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이 악한 왕을 내가 섬겨야 하나 고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군말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감당합니다. 두 번째 왕업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일이 골리앗과의 전투입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승리의 비결을 세 가지 정도로 공부했습니다. 첫째가 과거의 승리의 기억입니다. 들판에서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물어가면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양을 건져 주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그 놀라운 승리의 기억을 가지고, "저 사자나 곰이나 이 골리앗이나 뭐가 다른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못할 일이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가 허세를 부리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이 자기 투구도 주고 갑옷도 주고 칼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험 삼아 입어보고 차보고 걸어보더니, "못하겠습니다. 이건 저하고 맞지 않습니다" 하고 벗어두고 내려갑니다. 사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왕의 하사품을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셋째가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거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멋진 말이지 않습니까. 결국 그렇게 해서 승리했습니다.

1. 요나단과 다윗의 만남

오늘은 그 승리 그다음의 일입니다. 그 승리를 직접 목격한 이스라엘 군대는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하나님의 승리, 다윗의 승리를 보고 가장 감동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크게 감동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요나단입니다.

1-1. 마음이 하나 됨

요나단은 다윗을 어떻게 대우합니까? 1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우리가 17장을 읽지 않고 18장 1절의 이 말씀만 보면 요나단이 미친 사람 같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별로 면식이 없고 친하지 않은 사람인데,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여기 보면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골리앗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자기 몸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조롱하는데, 이스라엘 군대는 잠잠했습니다. 사울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병사들까지 침묵했습니다. 소년 다윗이 지나가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거룩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과 요나단도 하나님을 사랑한 그 마음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사귈 때, 특히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님, 제게 기도 동역자를 주세요. 저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주세요"라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사람을 찾아다니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잘 표현하면, 똑같이 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만나게 하십니다. 결혼 배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며 믿음 생활을 하면, 똑같이 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나도 영의 눈으로 보고, 그도 나를 영의 눈으로 보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만나서 두 사람이 똑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찾아다니다 보면 그 사람 속을 우리가 어찌 알겠습니까? 번번이 속고 판판이 넘어집니다.

지금 요나단이 다윗을 보고 한눈에 반한 것은 이 사람이 골리앗과 전투하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과 그의 마음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1-2. 언약의 증표

그런데 지금 요나단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왕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을 모릅니다. 백성들은 알 수 없습니다. 사무엘만 알고,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았으니 알고, 사울도 알죠. 자기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난 것을 백성들은 모릅니다. 사울은 그냥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냥 형식적으로 보면 사울이 죽고 나면 왕은 요나단에게로 그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왕위를 계승할 적장자, 왕자입니다.

그런데 이 왕자가 하는 일을 한번 보십시오. 3절에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더불어 언약을 맺었습니다. 겉보기에 백성들이 보기에 누가 이득입니까? 누가 수지맞았다고 생각할까요? 다윗이 좋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삼남 중 여덟 번째 아들, '하카톤'입니다. 가장 키도 작고 덩치도 작고 보잘것없고, 가장 보잘것없는 먼지같은, 티끌같은 존재로 아버지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그런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자님께서, 왕위를 계승할 왕자께서 그와 더불어 언약을 맺고 군복도 주고 칼과 활과 띠도 다 주었습니다. 그냥 언약의 증표로 말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누가 수지맞은 것입니까? 요나단이 수지맞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자기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윗의 진가를 한눈에 알아본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단이 이렇게 한 것은 다윗을 사랑했고 하나님에 대해서 회개한 결과가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무엇을 회개했을까요?

요나단도 그 전장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골리앗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 때 거기서 쩍 소리 못하고 한마디도 못하고 사십 일 동안 그거 듣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 다윗이 일어나서 용감하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하고 무너뜨리고 목을 베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후회가 되고 회개했겠습니까. "내가 용기가 없었구나.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나는 왜 그런 용기를 낼 수 없었을까? 저 골리앗의 위세에 눌려서 나는 왜 이러고 앉아 있었을까?" 그러면서 용기 내어서 소년 다윗에게 다가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언약을 더불어 맺고 자기 증표를 주는 것입니다.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신분, 지위 고하 이런 것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굉장히 영적으로 탁월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정말 우리가 영적으로 뛰어나려면 다윗 같은 사람이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윗을 알아볼 수 있는 영안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다윗과 내가, 그 사람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언약이라도 맺어야 다윗이 가진 복이 나한테 올 것이고, 나도 함께 축복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 사울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겠지만 끊임없이 다윗을 미워하지 않습니까? 창을 던져서 죽이려 하고 쫓아내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나도 복받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그런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다윗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집안도 그렇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고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영웅이 나타났다고 했겠죠. 그런데 '어쩌다 보니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했고 영적인 눈으로 다윗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요나단처럼 이런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도 편안해집니다. 분별력입니다.

2. 다윗의 지혜로운 행함

2-1. 샤칼(שָׂכַל)의 의미

그다음 두 번째 질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어떻게 대우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함에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기더라." 여기 오늘 아주 중요한 말씀, 반복되는 말씀이 나옵니다. '지혜롭게 행하다'라는 말씀이 오늘 말씀 18장, 19장에서 계속 반복되어 나옵니다.

'지혜롭게 행하다'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입니까? 히브리어로 '샤칼(שָׂכַ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신중하게 행동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형통하다'라는 뜻입니다. 말이 연결되죠. 신중하게 행동하니까 형통할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는 지식이 아닙니다. 구전으로 들었던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행하는 게 아니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심정으로 아주 지혜롭고 신중하게 행동해서 그 사람의 삶이 형통해졌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으면 전 국민의 주목을 한눈에 받습니다. "깨어보니 스타가 되었다"는 말 들어보셨죠. 눈떠보니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것입니다. 온 백성이 "다윗, 다윗"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그를 이게 그냥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것인지 아니면 진짜 실력인지 알아보려고 계속 보내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도 보내고 저 전쟁에도 보내고 여기도 보내고 저기도 보내는 것이죠. 그런데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했습니다. 신중하게 했습니다.

사울에게는 이미 그의 군대 조직이 있습니다. 군대 조직만큼 위계질서가 강력한 조직이 있습니까? 장군이 있고 지휘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전쟁마다 다윗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거기에서 신중하게 행하고 교만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죠. 그랬더니 형통하게 되었고, 그 형통이 쌓이고 쌓이고, 그 신중함이 쌓이고 겸손함이 쌓여서, 사울이 "이 사람을 군대 장관으로 삼아도 되겠다" 하고 군대의 장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결과가 왔습니까?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기더라." 한 사람도 적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것을 신중하게 하고 형통하게 했더니 말입니다.

2-2. 성령 충만한 삶의 특징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영적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 다윗이 지금 기름부음을 받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의 특징은 지혜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샤칼'하는 것입니다. 신중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남들 보기에 교만하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아무리 뛰어나도, 내가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골리앗을 죽이고 이 나라를 골리앗의 손에서,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했다 할지라도 잘난 척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끔 영적으로 충만하다고 하는 사람 중에 아주 교만해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건 가짜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은 어딜 가든 지혜롭게, '샤칼'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나타내고 드러내고 자랑하고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습니다. 지금 당시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평화가 있습니다. 군대 장관으로 삼아도 신하들도 합당히 여기고 백성들도 합당히 여기고, 모든 사람들에게 화평과 평화를 주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함께하지 않고 떠난 사람은 천방지축입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떠들고 교만합니다. 다윗을 보면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자가 이렇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면 진짜인 것을 이렇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3. 사울의 질투와 타락

3-1. 여인들의 노래

이제 다윗이 사울의 위협에 처합니다. 첫 번째 질문, 승리하고 돌아오는 사울과 다윗을 향한 여인들의 노래 내용이 무엇입니까? 큰 전쟁이 있으면 왕이 함께 나갑니다. 군대 장관만 보내는 게 아니고 그 장관과 함께 왕이 같이 출정합니다. 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여인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18장 6절에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그렇죠? 다윗을 환영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누구를 환영하는 자리입니까? 왕을 환영하는 자리입니다. 왕이 지금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왕을 환영하는 자리면 왕을 찬양해야 됩니다. "왕이시여 대단하십니다" 하고 박수치고 해야 되는데, 실제로 보십시오.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어디 가나 여인들이 문제다" 이렇게 보시면 안 됩니다. "여인들의 입이 문제다" 이러시면 안 되고, 이게 그 당시 이스라엘의 여론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여러 백성들의 여론이 때로는 굉장히 정확합니다. 뭐 여론조사 백날 해본들 사람들이 여론 모여서 얘기하는 그 여론, 그 분위기, 그 분위기가 사실은 굉장히 정확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이런 여론들이 형성되고 있었고, 그 여론이 이제는 여인들이 노래로 부를 만큼 일반화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냥 몇몇 정신 나간 여인들이 때와 시기도, 분위기도, 장소도 분간 못하고 떠들어댄 노래가 아닙니다. 이게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밑바닥 정서, 여론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울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냥 정치적으로 보면 이건 민감하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3-2. 질투의 눈

여인들의 노래를 들은 사울의 감정을 말해보십시오. 8절에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여기까지 이해가 됩니다. 그렇죠. 불쾌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 그런 것 아닙니까. 불쾌하고 노하고 화가 납니다. 그러면 사울이 자기를 돌아봐야죠. "내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존재구나" 하고 조금 더 경성하고 겸허해야 되는데, 좀 더 내려가 봅니다.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이제 이 나라를 욕심내는 것 외에는 무엇을 더 얻을 것이 있겠느냐 하며 거기에 극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여 보더라." '주목하다'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데, 히브리어로 '아인(עַיִן)'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주목하여 보더라' 하는 '아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질투심으로 쳐다보다'라는 뜻입니다. 너무 예뻐서, 너무 잘생겨서 쳐다보는 것도 있습니다. 그냥 TV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인'은 질투심으로 쳐다보는 것입니다. 성경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여기 딱 한 번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딱 한 번만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성경에 한 번만 쓰였다는 말은 사울의 질투심이 아주 특별했다는 뜻입니다.

3-3. 자기 중심적 삶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은 극도로 자기 중심적이 됩니다. 무엇이 자기 중심적입니까? 자기 손해에 매우 민감하고, 자기 이득에 매우 민감합니다. 자기만 손해 보면 안 되고, 자기만 이득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든 절대로 손해 볼 수 없습니다. 지금 사울이 어떻습니까? 자기의 본분보다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대접받고 있다'는 데에 예민해지기 시작한 겁니다.

악령이 사울에게 접근하기 시작하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자에게는 악령이 틈을 만들지 못합니다. 지금 다윗 곁에 악한 영이 못 붙습니다. 그런데 사울 곁에 악한 영이 붙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떠났기 때문이죠. 그래서 번번이 창을 다윗에게 던집니다. 10절에 "사울이 창을 손에 들고 있었고 다윗은 평소와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창이 사울의 손에 있는지라 사울이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여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또 하나가 있습니다. 위기에서 건져주십니다. 극적으로 건져주십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이 분노와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창을 던졌을 때 정말 삼사 초의 찰나에 피했습니다. 두 번이나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건지시는 겁니다.

지금 사울이 번번이 실패하잖아요. 그래서 이성을 차리고 사울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창 던져서 죽이는 건 내가 대놓고 살인자가 되는 것이니, 방법을 바꿔야 되겠다." 그래서 합법적인 방법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결혼 조건을 이용하는 것이죠.

17장 마지막에 이런 말이 나와 있습니다.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내 딸을 아내로 주겠다." 그런데 사울이 여기에 덧칠해서 조건을 다는 겁니다. "합당한 가격을 치러 오면 딸을 주겠다"고 합니다. 합당한 가격이 무엇입니까? 국경에 가서 전쟁에서 가장 앞줄에 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림고수라도 전쟁에서 가장 앞줄에 서면 화살 맞아 죽습니다. 창 맞아 죽습니다. 가장 치열한 곳에 보내면 지네가 손 안 대도 다윗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치열한 전쟁터에 보냅니다.

근데 다윗이 죽었습니까? 안 죽죠. 살아 돌아옵니다. 그러면 결혼시켜 줘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결혼을 안 시켜줍니다. 다윗이 검도 안 찼습니다. 갑옷 입었습니까? 투구 썼습니까? 맨몸으로 나갔는데 안 죽고 살아 돌아오니까 무서운 거예요. 지금 사울이 하나님의 영이 이미 떠났기 때문에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게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지금 다윗을 계속해서 약 올리고 있습니다. 갑옷도 안 주고 검도 안 주는 겁니다. 딸도 안 줬습니다. 첫째 딸 메랍을 다른 데 시집보냅니다. 19절에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몰라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약 올리는 겁니다. 굴욕을 주고 뭔가 결격사유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둘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미갈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그다음 20절에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함에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린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여기서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사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미워도, 지금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악한 블레셋의 손을 통해서 자기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가장 싸움을 잘하고, 전술에 능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는 사람, 아까 제가 특징이라 그랬죠. 자기 중심적입니다. 이건 나라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만약에 이 음모가 밖으로 알려지면, 이건 오늘 우리 헌법에 의하면 내란음모죄입니다. 자기 나라의 국방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이래서 다윗이 블레셋 사람 치러 혼자 들어갔다가 죽어버리면, 지금 그 나라의 안전 어떻게 됩니까? 누가 그 나라를 지킵니까? 내란음모죄입니다. 탄핵감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나니까 지극히 자기 중심적으로 선을 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가끔 하나님의 영이 떠난 악한 사람들 보면, 이 선을 넘는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목적, 복수라는 목적을 위해서 정말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뉴스에서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25절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것도 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에게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 백 개를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니라." 직접 들어가서 블레셋 사람 백 명을 죽이고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그러다 죽어버리면, 그러다 다윗이 죽어버리면 이건 정말 나라로서 큰 손해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가장 잘하는 게 블레셋 사람 잡는 것인데, 이백 명을 죽이고 돌아옵니다. 두 배로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해서 어떤 위협과 어떤 위기에서도 건져 주시죠.

4. 사울의 살해 시도들

4-1. 실패한 음모들

그다음 페이지 보시면, 이런 사울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27절에 "다윗이 일어나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들의 양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화가 나지만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다음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이게 중요합니다. 사울도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걸 봤습니다. 그걸 압니다.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함으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참 이상하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는 걸 알고,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그런데 두려워하고 미워합니다. 왜 그럴까요? 악한 영이 사울 옆에 있으니까요.

요나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함께하니까 다윗을 금방 알아봅니다. 그런데 이게 큰 차이입니다. 사탄이 예수님 앞에 와서 제발 이 자리를 떠나 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지금 악한 영이 성자 앞에 있는 겁니다. 왜 악한 영에 사로잡히게 됐을까요? 사울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뭡니까? 질투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사울의 이야기를 쭉 거슬러 올라가서 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이유는 회개를 안 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전쟁하기 전에 기다려야 하는데 먼저 번제를 드려 버리고 그냥 전투에 나간 것 말입니다. 그때 경고하셨습니다. 회개 안 했습니다. 사울이 회개했다는 것을 우리는 본 적이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회개는 우리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우리 집에 옵니다. 회개하면 악한 영이 우리 안에, 우리 영혼의 집에 자리 잡을 겨를이 없습니다. 회개하면 성령을 초대하는 자리니까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임하고 악한 영이 떠나고 우리가 항상 새롭게 되죠. 그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우리 예수님께서 그렇게 자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회개하라고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세례 요한도 말씀하셨고, 항상 성경은 우리에게 회개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회개하고, 생각날 때마다 회개하고, 기도할 때마다 우리를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니까요. 얼마나 무서운 겁니까.

30절에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싸우러 나오면 그들이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함에." '샤칼'이 또 나오죠. 지혜롭게 행함에, 이런 상황에서도 겸손하게, 신중하게, 그래서 형통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보십시오. 성경의 원리입니다. 겸손하니까 그의 이름이 귀하게 되는 것이죠. "내가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나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내가 왕의 사위인데" 이렇게 나가면 그의 이름이 땅바닥에 떨어집니다. 이건 정말 원리입니다. 이 단순하고 이 쉬운 원리를 지키기가 힘듭니다.

왜냐하면요, 누가 이렇게 좀 잘되잖아요. 옆에서 가만히 안 둡니다. 가만히 안 둬요. 자꾸 부추기고 "잘났다" 그러고, "네 덕분에 이렇게 잘됐다" 그러고, "영광받아 마땅하다" 그러고 박수쳐주고 그러거든요. 그러다 보면 순간 마음이 한순간에 풀려집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노래를 부른 것처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계속 '샤칼'하고 있습니다. 지혜롭게 행합니다. 이게 다윗의 성공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의 성공 비결은 절대로 들뜨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4-2. 요나단의 변호

사울은 신하들에게 어떤 명령을 내립니까? 요나단은 이 명령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합니까? 보세요. 사울이 지금 하는 단계가 이제 세 단계까지 갔습니다. 첫째는 우발적이었지만 자기가 직접 창을 던져버렸습니다. 실패했습니다. 둘째, 이제 합법적인 방법으로 블레셋을 통해서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물 쳤습니다. 덫을 이렇게 놓은 겁니다. 그런데 그 덫을 다윗이 빠져나갔습니다. 피해갔습니다. 이제 셋째, 대놓고 요나단과 신하들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죽이라고요. 이제 대놓고 공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19장 1절에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너무 좋아하니까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치 않은 걸 아는 겁니다.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알고 다윗에게 가서 말합니다. 2절에 "그가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건대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내가 네게 알려주겠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살펴보니 아버지가 죽이지 않겠다고 얘기합니다. 6절 보세요.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이 진실일까요? 진짜 말일까요? 거짓말이죠. 왜냐하면 이렇게 해서 요나단을 안심시켜서 다윗을 꾀어내려고 거짓말한 것이죠.

19장 9절에 "사울의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니라." 이제 속였는데 또 다윗이 피해갔습니다.

4-3. 거짓말하는 자의 특징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말을 지키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짓말도 있는데, 악한 영에 사로잡히면 사탄의 특징이 원래 거짓말쟁이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한번 보십시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됨이라."

마귀, 사탄이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래서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사람들, 입만 열면 앞뒤가 다르고 자꾸 거짓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떠난 사람의 특징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을 우리가 보면 저 사람의 인격 자체가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어떻게 저렇게 앞뒤가 다른데 뻔뻔하게 얼굴 들고 다닐 수 있을까?" 다닙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지배를 받고 사니까요. 회개하지 않고 자기를 돌아보지 않으면, 자기가 거짓말하고도 그 거짓말이 진짜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TV에 나오는 그런 악한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사람 말입니다. 지금 여기 사울이 이렇게까지 망가져 버렸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니까요.

5.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

그래서 다윗이 결국 그 밤에도 피해서 자기 집으로 갑니다. 미갈이 이러다 보니까 아버지가 가만히 있을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밤에 다윗을 끈으로 창밖으로 탈피시켜서 내보냅니다. 12절에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림에 그가 피하여 도망하니라."

5-1. 사무엘에게로 도피

이제 도망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 다윗이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요나단도 속고 얻고 아버지가 아들을 속여서 다윗을 꾀어내는 걸 알았으니까, 이제 어디로 가야 됩니까? 위기에 처한 다윗은 어디로 도피했습니까?

18절에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거기에 머물더라." 사무엘을 다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입니다. 지금 여기 당시 굉장히 현명한 것은 지금도 '샤칼'하고 지혜롭게 행한 것이 반란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다윗의 위치라면 군대를 모을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그를 사랑합니다. 그러면 그런 마음이 순간적으로라도 들지 않았을까요?

그런 마음이 신하들에게도 합당히 여김을 받고 백성들에게도 사랑받았는데, 군대를 모아서 일시에 쿠데타를 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인간적으로라면 충분히 들 수 있는데,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순리대로 살아갑니다. 절대로 그 순리를 거스르지 않습니다. 시기를 자기 인위적으로 앞당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그 할 일을 도모하고 그리고 그 시간에 때를 기다리는 것이죠. 다윗이 이걸 참 잘했습니다. 십수 년 동안 광야를 쫓겨다니면서도 직접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5-2. 화살의 신호

이제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언약이 나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제 얘기합니다. "내가 진짜 아버지 뜻을 알아보고 아버지가 너를 죽일 것 같으면 화살을 멀리 쏠 테니, 그리고 나서 화살 줍는 아이한테 '화살이 네 앞에 있다' 하면 떠나가라고, '네 옆에 있다' 하면 다시 돌아오라고." 결국 어떻게 합니까? "화살이 네 앞에 있다" 하죠.

22절을 보십시오. 20장 22절에 "만일 내가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결국 "화살이 네 앞에 있다" 하고 헤어집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더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생각하니까요. 아버지 앞에서 다윗을 변호합니다. 44쪽에 사울 앞에서 다윗을 변호한 요나단이 어떤 일을 당합니까? 30절에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 무도한 계집애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참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아들에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너는 왕이 될 사람인데 가만히 있으면 왕이 되고, 저 사람 다윗을 죽이면 네가 왕이 될 터인데 너는 왜 이렇게 답답하게 행동하느냐. 제발 다윗을 네가 좀 죽였으면 좋겠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결정적인, 치명적인 오류를 사울이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30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옵니다.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이 나라 이스라엘을 누구의 나라라고 봅니까? "너와 네 나라", 자기 나라라고 보는 것입니다. 누구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자기는 스스로 왕이 됐습니까? 자기가 잘나서 왕이 됐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셔서 왕이 된 것입니다. 자기 나라가 아닙니다. 위임받고 위탁받은 것입니다. 위임받고 위탁받았는데 지금 이 사람이 타락해서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나라가 내 나라니까 내 아들에게 물려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어리석은 게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시는데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국인데 말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는 것, 목회자가 타락하는 것은 "교회가 내 교회"라고 생각하는 순간 타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인데 "내가 이만큼 일궜으니 이건 내 교회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 하는 그 순간 교회가 타락하는 것이죠. 그 순간 무너지는 것이죠. 하나님의 법은 없어지고 자기 법으로 교회를 통제하고 다스립니다. 지금 사울이 그런 식입니다. 그래서 여기 심각한 사울의 오류를 봅니다.

이제 33절 보세요. "사울이 요나단에게 창을 던져 죽이고자 하니라." 여기까지 망했습니다. 아들까지요.

5-3. 영원한 언약

이제 다윗과 요나단이 헤어집니다. 20장 41절에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맞추고 같이 울 때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다윗이 더 심하게 우는 것입니다. 요나단의 진심을 아니까요. 고마우니까요. 너무너무 감사하니까요.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참 아름답습니다.

왕권에 대한 관심, 욕심 없고, 다윗, 하나님과 함께하는 다윗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요나단,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을 알아본 요나단, 그의 자손이 결국은 다윗 때문에, 요나단의 언약 때문에 그의 자손이 죽임당하지 않고 번성합니다. 이제 뒤에 가면 살펴보게 되죠.

오늘 우리가 함께 본 말씀 잘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은 어떤지 보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과 함께하고 회개하는 생활을 항상 일상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다윗과 요나단,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분들이었고, 사울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자의 비참함을 보았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질투를 보았고 욕망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떠나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가 매 순간 기회 있을 때마다 회개하는 생활을 하도록 도우시고, 말씀 앞에 나를 비추어 돌아보고 회개하고 살펴서 하나님의 영과 영원히 함께하게 하여 주옵소서. 다윗처럼, 요나단처럼 하나님의 영과 함께하여 어디를 가든지 신중하게, 지혜롭게 행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