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특강 1 - 시험에 대하여 (약 1:1-16)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 1:2)
오늘은 야고보서와 베드로전후서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수요 사경회 시간을 통해서 열두 가지 과목을 공부했고, 이제 오늘부터 열세 번째 성경공부 과목을 시작합니다. 사실 수요일에 이렇게 나와서 성경공부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도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 속에 점점 뿌리내리고 자라고 또 열매를 맺고, 또 말씀을 통해서 힘 얻고 위로받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야고보서는 이번에 6주간 함께 나누려고 하고, 베드로전후서를 8주간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총 14주간 함께 달려보려고 합니다.
왜 야고보서이고 왜 베드로전후서를 택했는가. 사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지나면서 겨우 신앙의 줄만 하나 붙잡고 지금까지 오고 있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상황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 이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런 문제가 이제 와서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와 베드로전후서는 행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행함으로 인해서 온전해진다는 것,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 이 강력한 말씀을 통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시대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나누고 배우려고 합니다.
야고보와 베드로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야고보와 베드로의 공통점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들이었습니다. 야고보도 예루살렘 교회에, 베드로도 예루살렘 교회의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굉장히 강한 말씀, 굉장히 강한 주장을 좀 하는 사람인데 베드로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베드로도 성격이 얼마나 급했으면,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살았고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 있으면서 이 사람들의 리더십과 지도력이 굉장했습니다. 이것은 이제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정말 그러했는지를 살펴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야고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도전이 되고, 또 이분들이 말씀하시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살아 숨쉬고 열매가 되고 실천으로 옮겨지기를 바랍니다.
1. 야고보서 저자 소개
먼저 오늘 야고보서 첫 번째 시간에 주제가 시험에 대해서입니다.
1-1. 야고보의 자기소개
야고보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야고보서 1장 1절을 보시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야고보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의 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야고보라고 하면 헷갈릴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또 다른 야고보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성경에 나오는 또 다른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세베대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베드로와 같은 야고보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사도들 중에 초대교회에서 제일 먼저 순교한 분이었습니다. 첫 번째 순교자였습니다. 사도행전 12장 1절 2절에 보면 이렇게 나오죠. "그때 헤롯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순교했습니다. 이분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이지 여기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가 아니었습니다.
1-2.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그러면 여기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도대체 누구냐. 이름이 똑같은데, 마태복음 13장 55절에서 56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요.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목수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입니다.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여기 야고보가 나오죠. 그래서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입니다. 예수님과 혈통을 나눈 친동생 야고보이고, 그래서 예수님의 친동생이니까 이분의 권위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상당했을 거예요. 그건 좀 이따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동생들 네 명을 지금 언급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보세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이 중에 보통 성경은 순서대로 이렇게 나열하거든요. 뭐 나이 순서대로나 아니면 또 영적인 순서대로나, 어쨌든 야고보가 제일 먼저 나오는 걸로 봐서 예수님의 동생 중에 바로 아래 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막내가 유다예요. 유다는 유다서를 썼고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썼습니다. 예수님의 남동생이 네 분 계셨는데 그중에 두 분이 성경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일단 이것도 우리가 기억을 하셔야 되고, 그런데 이분들이 예수님의 동생이고, 야고보가 처음부터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아요.
요한복음 7장을 제가 적어 두었는데 이렇게 나와요.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형제들이 예수님을 안 믿었다 그랬어요. 이 사건은 언제 일어난 사건이냐 하면,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오병이어 사건을 행하시잖아요. 오병이어 사건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사건입니까?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셨으니까 유명해지잖아요. 근데 이 일을 예수님이 시골에서 하셨거든요. 벳새다 들녘, 갈릴리 해변에 사람들이 막 몰려드는데 시골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하고 계세요. 동생들이 보니까 애가 타는 거예요. 형님 이런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시골 구석에 묻혀서 있지 말고 예루살렘에 가십시오. 중앙으로 가셔서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에서 거기서 형님의 능력을 나타내며 우리도 형님 덕 좀 보고 삽시다. 우리도 형님 덕을 좀 보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내용이거든요. 이런 걸로 보면 이 사람들은 굉장히 세속적이었고, 이때만 하더라도 예수님 덕 보고 살려고 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아주 잘 드러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거죠.
1-3. 야고보의 회심과 권위
그러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시간이 지나서 어느 한 시점에, 성경에는 그걸 정확하게 얘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요한복음 7장 이후에 회심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권위가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굉장했다는 걸 나타냈는데요. 이건 제가 설명을 좀 드려야 됩니다.
1차 선교여행을 안디옥 교회에서 두 사람을 파송합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죠.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멀리 돌아서 멋지게 선교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선교여행을 하고 왔을 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잖아요. 이방인들은 할례를 안 받은 사람들이에요. 할례 받지 않아도 구원 얻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쳤거든요. 그리고 나서 돌아왔다고요. 그랬더니 개종한 유대인, 유대인이었다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난리가 난 거예요. 할례 받지 않아도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아브라함의 후손은 다 할례 받아야 되는데, 할례 받아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가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소환한 거예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그래서 예루살렘에 종교 회의가 열린 겁니다. 말이 좋아서 회의지 이건 바울과 바나바를 재판하는 자리예요. 잘못했다고, 할례를 가르치지 않는 건 너희들이 잘못한 거라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열띤 토론이 일어났습니다.
그 토론의 종지부를 딱 찍은 사람이 누구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고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였습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해요. 13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뭔가 좀 권위가 딱 느껴지죠. 그다음 19절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은 할례를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라." 이것만 그렇게 하고 할례 받으라고 강요하지 마라, 이러고 딱 정리가 되어 버렸어요. 야고보 말 한마디에. 그럼 이 사람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했다는 겁니까? 그 시끄러웠던 회의가 딱 정리된 거예요. 그 정도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권위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 9절을 보면 또 이렇게 나오죠.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여기서 기둥이라고 하는 것, 교회의 기둥이에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가 일등으로 나오죠. 서열이 야고보와 게바, 게바가 누굽니까? 베드로. 그리고 요한도. 야고보, 베드로, 요한이 예루살렘 교회의 세 분의 지도자들이에요. 그중에 제일 처음에 언급되는 사람이 야고보였습니다.
1-4.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정체성
자 그런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소개하느냐. 다시 볼게요. 야고보서 1장 1절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자기를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거예요. 자기를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라고 내세우지 않는 거예요. 그냥 자기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이것으로 그냥 자신의 신분을 가름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자기소개를 하잖아요. 어떤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하잖아요. 그 소개할 때 가장 내가 남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게 있잖아요. 내 입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내 입으로 말하기도 민망한데 사람들이 날 좀 알아주기를, 아 저 사람이 요즘 돈을 많이 벌어, 저 사람이 어느 기업체 사장이고 회장이야, 저 사람 아이가 이번에 좋은 대학 들어갔고, 저 사람 아이가 이번에 좋은 데 취직했고, 뭐 이런 걸 알아주기를 바라는 게 우리의 아주 인간적인 마음이에요.
그런데 야고보는 예수님 동생이라는 말도 예루살렘 교회 최고의 지도자라는 말도 하나도 하지 않고 그냥 종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그것으로 처음이고 끝이에요. 사실 이것 이상 더 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 예수님의 종으로 평생 동안 교회를 섬기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이것으로 끝이에요. 왜냐하면 그가 한 수많은 일들은 이미 하나님의 생명책에 다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소개 하는 것부터가 나중에 야고보서 전체를 주장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 됩니다.
바울도 이렇게 얘기해요. 로마서 1장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이라 하죠. 바울이 자기 소개하려면 할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고, 나는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고 난 제팔일 만에 할례 받았고, 내가 디아스포라의 유대인으로 배운 학식이 굉장하고, 로마 시민권자고 등등 할 말이 얼마나 많아요. 근데 다 거두절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이게 그냥 자기 소개예요. 아주 담백하잖아요. 그래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훈장 많이 붙이고 살아서 뭐할 겁니까? 그냥 이렇게 자기 소개하고 다 끝내는 거죠.
자 종이, 그런데 별로 좋은 이미지는 아니죠. 누구의 종이라고 하면. 그런데 물질의 종이냐, 누구 어떤 사람의 종이냐, 이건 별로 좋지 않아요. 근데 종이라도 하나님의 종이어야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어야 되거든요. 이렇게 얘기하죠. 사도행전 3장 13절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누구의 종이었어요. 하나님의 종이었어요. 여기서 보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이었고 바울은 예수님의 종이었고 야고보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종이었어요. 그렇잖아요. 예수님도 하나님의 종이었는데 우리가 예수님의 종 되는 걸 거부한다니, 우리가 거부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종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냥 말씀대로 순종하는 거예요. 그냥 토 달지 말고 그 말씀대로 그냥 따라가는 거죠. 그게 종이죠. 그 말씀이 우리에게 말하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나에게 한번 적용시켜 보면 나는 예수님 말씀대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종은 거부할 권리가 없는데, 말씀이 나에게 이렇게 요구하는데 나는 그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잖아요. 그럼 우리가 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어요. 종은 자기의 의지가 없고 자기 생각이 없고 말씀대로 그냥 따라가는 존재거든요. 그래서 종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2. 시험의 의미와 태도
2-1. 편지의 수신자
자, 야고보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냐. 다시 1장 1절을 보니까 이렇게 말했어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이거 표시하세요. 중요하죠. 야고보는 이 편지를 누구에게 썼느냐.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이걸 우리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 하거든요.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나라를 다 잃었잖아요. 다 전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어요.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편지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들고 가서 곳곳에 있는 유대인들, 개종한 유대인들, 디아스포라 유대인 교회에 다가 편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 거죠. 가지고 가는 사람도 많고 편지 받는 교회도 많고.
근데 바울은 어디에 편지를 쓰느냐. 빌립보서 1장 1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제가 그냥 대표적으로 빌립보 교회만 써 두었는데요. 바울은 자기가 개척한 교회만 편지했어요. 빌립보 교회에, 에베소 교회에, 로마 교회는 본인이 개척하지 않았지만 로마 교회, 골로새 교회 뭐 등등 그런 교회들에만 편지 썼거든요.
그런데 야고보는 전 유대인들 공동체에 다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우리는 좀 착시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13권이 바울의 서신이잖아요. 바울이 굉장한 사람이게 하죠. 그런데 그 당시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1세기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 자리로 돌아가 보면, 그냥 바울과 야고보 하면 누가 더 권위가 있었을까요. 당연히 야고보가 더 권위가 있어요. 왜냐하면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편지를 쓸 만큼 권위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이 사람은 예수님의 친동생이에요.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아요. 그냥 동방박사 이야기도 있고,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열두 살 이야기가 있고, 뭐 조금씩 나와 있긴 한데, 근데 야고보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다 경험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사람들이 야고보에게 예수님 어린 시절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겠어요. 야고보 사도님, 예수님 열 살 때는 어땠습니까?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 매도 맞았고 안 맞았습니까? 뭐 이렇게 물어보고 싶지 않았겠어요. 상상해보면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어쨌든 야고보는 초대교회에서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분이 편지를 썼어요. 그러면 이 야고보서는 그 당시에 편지를 읽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마음에 뜨거움을 주는 책이고,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 편지를 받고 이분들이 얼마나 감동도 받고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결단도 했을까요.
2-2. 시험의 정의
이제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이분은 거두절미하고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사람이에요. 길게 하지 않아요. 1장 2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 시험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거 굉장히 중요하죠.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라는 말인데, 이게 명사로 쓰일 때는 이런 의미가 되고요. 또 동사로 쓰일 때는 조금 다른 의미가 돼요. 동사는 좀 있다가 오늘 공부 말미에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라는 말이 어떤 의미냐 하면, 걸어 가고 있는데요, 걸어가고 있는데 위에서 막 뭔가 떨어져 내리는 걸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나는 길을 가고 있어요. 근데 위에서 막 뭐가 떨어져 내려요. 뭐가 떨어져 내린다고요. 그럼 내가 위협을 느끼잖아요. 위에서 물건이 막 떨어져 내려요. 안쪽으로 혹은 내 바깥쪽에 물건이 막 떨어져 내려요. 그걸 시험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의 의미입니다.
근데 여기 여러 가지라고 얘기했어요. 여러 가지라는 말은 다양한이라는 뜻이에요. 다양한, 아주 각가지 시험들. 정리해서 말하면 우리의 믿음의 여정 가운데 우리가 믿음을 시작하고 길을 쭉 달려 가잖아요. 근데 위에서 자꾸 뭔가 떨어져 내려요. 각가지 다양한 장애물들이, 문제들이. 한 대 얻어맞으면 정신이 없기도 하고요. 큰 게 내 앞에 딱 떨어져서 장애물이 되면 그거 건너가기가 어렵기도 하고. 그럼 사람이 어떻게 돼요. 가만히 있겠죠. 아 전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아니면 뒤로 가 버리든지. 앞으로 가면 갈수록 자꾸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 위에서 뭔가 자꾸 떨어져 내리니까 그거 안 얻어맞으려고 그냥 자꾸 뒤로 빠지든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런데 믿음생활에는 다양한 장애물과 위에서 떨어지는 시험들이 반드시 있다는 얘기입니다. 믿음생활, 내가 왜 그런가. 시험이 없는 믿음생활이 진짜 믿음생활일까? 시험과 고통과 고난과 어려움이 없는 믿음생활이 과연 진짜 믿음생활일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나 스스로 반듯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 나는 반듯하고 괜찮은 사람인가. 문제가 있죠. 근데 하나님은 이런저런 시험들을 위에서 던져 주고, 맞기도 하고 장애물이 생기기도 하면서 나를 바로 잡아 가는 거예요. 이 떨어져 있으면 교정도 하고, 좀 모가 나 있으면 그걸 때려 부숴 가지고 깎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사람을 사람 만들어 가고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격으로 빚어 가는 거죠. 그게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입니다.
2-3. 요셉과 욥의 시험
요셉을 보시면 요셉의 인생에 다가온 위에서 떨어지는 문제들, 형들이 갑자기 그를 구덩이에 던지잖아요. 팔리잖아요. 노예로.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시험이 오잖아요. 그거 버텼는데 억울한 일을 당해요. 억울한 일을. 나는 그거 견뎌 내는데 또 그런 일을 당해서 청천벽력같이 가시가 목에 들어가요. 갇혀 버리잖아요. 감옥에 들어가서 술 맡은 관원에게 꿈 해몽 해주고 이제야 저제야 나가나 그랬는데 2년 동안 소식도 없어요. 그거 다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요셉이 진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사람됨의 인격으로 바뀌어 가고 진짜 사람 되어 가는 거예요.
욥을 보세요. 욥에게 찾아온 시험의 종류들을 보면 먼저 재물의 시험이에요. 재물 없어지죠. 자녀, 가까운 사람이 떠나요. 건강도 해치죠.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욥이 진짜 신앙인이 되어 가는 거죠.
2-4.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에 기쁘게 여기다, 헬라어로 헤게오마이(ἡγέομαι).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헤게모니라고 들어보셨어요. 헤게모니, 패권, 앞에서부터 이끌어가는 힘, 이게 헤게몬이거든요. 헤게모니가 여기서 나온 말이에요. 기쁘게 여기라.
근데 이 말을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 말을 조금 우리가 알아듣기 쉽게 바꾸면요. 다시 읽어 볼게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것은 다가올 기쁨을 미리 예상하라." 이런 의미예요. 다가오는 기쁨을 미리 예상하라. 시험이 다가와요. 근데 이 시험을 잘 극복하고 통과하고 이겨내면 다가올 기쁨이 나에게 주어지는 걸 알고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욥은 그걸 이렇게 기대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을 보면 이렇게 나오죠.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 23장은요, 아직까지 어두운 밤 같은, 캄캄한 험한 상황에 있을 때요, 그때 욥의 고백이에요.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나오리라." 왜냐하면 시험을 만났는데 이제 미리 그 시험이 나중에 자기에게 주어질 결과를 예상하고 미리 기뻐하는 거예요. 이 시험을 내가 잘 통과하면, 잘 견디면, 하나님이 나에게 장애물을 위에서부터 던져 주시는데 이거 내가 잘 견디고 극복하고 건너가고 이겨내면 내 인생에 큰 기쁨이 있을 것이다.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이 예수 믿으면 다 잘 풀릴 줄 알았습니다. 잘 안 돼요. 사업도 그냥 그대로고, 일도 그냥 그대로고, 가정생활의 문제는 그대로고 잘 안 돼요. 그건 그렇다 치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마음의 감동도 받고 눈물도 받았습니다. 직분도 받고 봉사도 해요. 근데 교회에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나를 막 괴롭혀요. 가만히 듣고 보니까 뒷담화도 해요. 견딜 수 없어요. 너무너무 내가 괴로워요. 차라리 직분 안 하고 그냥 예배만 드리고, 그냥 신앙생활만 하고 말씀만 듣고 왔다 갔다 하면 좋은데 내가 왜 이 짓을 해 가지고, 돈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사람들에게 이렇게 못 들을 소리를 들어야 되고 왜 이렇게 힘든가. 너무너무 힘든 거예요.
근데 거기서 딱 멈추면 안 되게 돼요. 그래서 딱 뒤로 가면, 이 장애물 얻어맞지 않으려고,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시험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멈추든지 뒤로 가버리면 그냥 그 자리예요. 그런데 거기서 한 그냥 넘, 전진하고 그 안에서 내가 훈련받고 연단받고 사람을 통해서도 내가 갈고 닦아지고 아주 못난 내 인격이 둥글둥글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법도 배우고 그러면서 사람 되어 가는 거예요.
믿음생활이, 우리 예수 믿는다는 것이 시험을 면제받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시험은 항상 우리에게 있어요. 예수 믿어서 시험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시험은 항상 있는데 문제는 이 시험에 대처하는 능력과 시험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겁니다. 문제는. 그래서 그걸 야고보가 성도들에게 첫 장 첫 절부터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 가지 시험, 다양한 시험이 너희에게 있을 거다. 사람의 시험, 물질의 시험, 건강의 시험, 여러 가지 시험들이 있을 텐데 기쁘게 여기라. 왜냐하면 이거 극복하고 나면 너희에게 주어질 큰 영광이, 앞으로 생각지도 못할 영광이 있을 것이니 기쁘게 여기라.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을 한번 보실게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그 앞에 있는 기쁨", 이 논리대로 해보면요. 이 말을 바꾸면 다가올 기쁨이에요. 다가올 기쁨.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랬잖아요. 이 시험을 잘 극복하면 다가올 기쁨,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니까 다가올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어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참으신 이유는 다가올 부활의 기쁨 때문에 참으신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게 신앙생활 하다가, 맡은 자리에서 봉사하다가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오고, 예수 믿어도 건너가기 힘들 것 같은 문제들이 닥치면 기쁘게 여기세요. 왜냐하면 이건 잘 극복하고 나면 나중에 받을 상이 너무 위대하고 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 했다, 수고했다고 칭찬하고 상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주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극복하고 돌파하고 견디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3. 시험 극복의 비결
3-1. 믿음의 시련과 인내
그런데 야고보는 무작정 견디라고만 하지 않아요. 야고보서 1장 3절 4절을 보면요. 3절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여기 믿음의 시련, 표시하세요. 믿음의 시련은요, 아까 우리 이전에 살펴본 대로 하면 이게 곧 시험이에요.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 시험의 다른 말이 믿음의 시련이에요. 믿음생활 하다가 시련 겪는 거, 이걸 시험이라고 표현한 거거든요. 믿음생활 하다가 시련 겪는 것, 예수 믿다가 고난 당하는 거. 나는 교회 공동체에서 나는 정말 전심으로 봉사하고 수고하고 충성했는데 사람들이 몰라줘요. 자꾸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겨요. 그럼 그건 시험이고 믿음의 시련이죠. 그때 인내해야 되죠.
그걸 성도들이 다 알아요.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3절 다시 보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안다는 말이 뭐요. 아는 건 머리로 하는 거잖아요. 이런 믿음의 시련이 있을 때 견뎌라, 인내해야 된다, 이거 성도들이 다 알아요. 아는데 문제가 뭡니까? 못하는 게 문제죠. 머리로 알면 뭐합니까? 못하는데. 실천이 안 되는데.
그래서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실천하라. 인내를 실천하라. 잘 견뎌야 된다, 이거 누가 모르겠어요. 인내, 견뎌야 되는 거, 봐도 견디고 있죠. 그런데 너무도 힘든 거예요. 이게. 이 인내를 참고 견디고 이겨내기가, 미래에 주어질 상 하나만 기대하고 견디기에는 너무 힘든 거예요.
3-2. 인내의 의미
그런데 야고보가 방법을 알려줍니다. 인내가 헬라어로는 휘포모네(ὑπομονή)인데요. 이게 그냥 꾸준한 거예요. 꾸준한 거. 근데 우리는 인내를요, 빡 쥐어짜고 빡 이런 걸로 생각하죠. 근데 인내는 휘포모네(ὑπομονή)는 꾸준하게 하는 거예요. 꾸준한 건 다른 말로 옮기면 뭐예요. 성실이죠. 오늘 한 거 내일도 또 하고 내일 한 거 그다음 날도 또 하고. 그냥 그 맡은 자리에서 그냥 신앙생활 우직하게 하는 거예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배 자리 지키고. 가끔 우리 성도들이 목사로서 정말 고마울 때, 정말 고마울 때가 언제냐 하면, 항상 그 자리에 그냥 계셔 주시는 분들. 예배 자리 그냥 그 자리에 계속 예배 드시는 분들이 제일 고맙죠. 근데 그렇다고 그 집에 평지풍파가 없느냐. 문제가 있죠. 어려움도 있고, 근심도 있고, 몸도 아프고, 자식에 문제가 생기고, 인생에 어려움이 닥치죠. 근데 그걸 목사가 알아요. 다 아나요. 아, 저 집에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구나 알죠. 그런데도 그냥 주일이나 수요일이나 새벽이나 그냥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앉아 계세요. 미래 내서 그래요. 그분이 뭐 대단해서 그렇습니까? 그냥 꾸준한 거예요. 그냥. 그게 인내입니다. 인내는 막 내지르는 데 그냥 이대로 맞고 이런 게 아니고, 그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믿고 나는 내 갈 길을 쭉 가는 거예요. 크게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실히, 우리는 사실 냄비 끓듯이, 냄비에 물 끓듯이. 하나님이 나에게 뭔가 좀 기쁘게 해 주시면 확 달아올랐다가, 누군가 나에게 불편한 얘기하면 식어 버렸다가.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잖아요. 근데 그렇게 하지 말고 꾸준하게 계속해서 인내를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3. 지혜를 구하라
근데 그 과정에서요, 진짜 필요한 게 뭐냐. 5절 보세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인내를 이루는 데 진짜 필요한 게 지혜예요. 지혜. 지혜를 얻기 위해서 뭘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구하라 그랬죠. 구하는 게 뭐예요. 기도죠. 그래요.
그래서 이제 정리 한번 해볼게요. 믿음생활 하는 사람에게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 시험은 필수다. 그렇죠. 근데 그 시험을 견디려고 하면 인내가 필요한데, 인내는 꾸준한 거다. 근데 그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신다. 그 얘기를 야고보가 요렇게 순서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3-4. 한나의 예
사실 우리가 지혜가 있으면 우리 앞에 닥친 어려움과 문제는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한나 한번 보세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한나의 인생에 시험이 있었죠. 한나 인생의 시험 거리는 뭐죠. 두 가지잖아요. 일단 자녀 없는 거. 두 번째는 브닌나 이 문제. 자녀, 이거 어떻게 해요. 이 문제. 이 문제를 위해서 한나는 기도했어요. 기도했다고요.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어요. 브닌나와 대적하지 않도록. 브닌나와 대적하고 머리끄댕이 붙잡고 싸우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그때부터는 마귀가 틈타고 가정은 박살나는 겁니다.
그런데 기도하니 지혜를 주셨고, 지혜는 브닌나와 대적하지 않는 거예요. 그저 그냥 엎드리고 기도하는 거예요. 꾸준하게, 꾸준하게 예배 자리 지키고 기도하는 거죠. 그러니 하나님이 문제도 다 풀어 주시잖아요. 문제도 다 풀어 주시고, 사무엘도 낳게 하시고, 그다음 자녀들도 순서대로 다 주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인생에 시험이 닥치면 그 시험 때문에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되, 인내하고 기도하라. 그러면 지혜를 주신다. 지혜는 사람이 주는 지혜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가정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께 목숨 걸고 엎드렸습니까? 남 탓은 했는데, 내 인생 저주하고 원망은 했는데, 이거 풀어가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고 얼마나 엎드렸습니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그 받은 지혜 가지고 풀어갈 수 있도록 방향을 주시면 그 방향 가지고 살면 되는데, 기도하지 않으니까, 구하지 않으니까 못 받는 것 아니에요.
그다음 이렇게 말씀하세요. 시편 119편 71절을 한번 봅시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기자가 고난당한 걸 왜 유익이라고 말했을까요. 왜. 고난은 시험이죠. 이 시험 당했는데, 이 시험을 잘 극복하다 보니 인내하게 되고, 인내를 이루기 위해서 기도했고, 기도하다 보니 지혜가 생긴 거예요. 지혜가. 그 지혜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서 바꿀 수 없는 거거든요. 영원히 잊지 못하는 지혜고, 내가 받은 지혜는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어려움에 이렇게 기도했고, 하나님은 이렇게 지혜를 주셨고, 이 지혜 가지고 이 어려움을 이렇게 이겨냈다고. 이게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 아닙니까?
3-5. 믿음으로 구하라
그래서 야고보서 1장 6절 보세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 성경은 맥락이 중요하거든요. 근데 야고보서 1장 6절 말씀을 따로 떼서, 따로 떼서 여러분이 읽는다면 하나님 저도 돈이 필요해요, 좀 믿음으로 구하니까 돈 주세요, 이제 이렇게 적용하면 곤란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맥락은 어떤 말씀이에요. 어떤 맥락에서. 지혜가 필요할 때, 인내를 이루기 위해서 지혜가 필요할 때, 그 지혜를 얻기 위해서 믿음으로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주신다. 의심하지 마라. 그 말씀이에요.
내 인생에 고난이 닥쳐요. 시험이 와요. 그 시험을 인내로 이겨 내야 되는데 지혜가 부족해요. 기도하는 거예요.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지혜를 주십니다. 거기서 이겨 나게 하세요. 그래서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비밀이에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지혜가 나옵니다. 엎드리고 기도하는 자에게 하늘의 지혜가 부어지고, 거기서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해결책도 주십니다. 이건 믿음의 위인들이나 경험한 것,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도 다 경험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시험은 딱 멈추고 뒤로 물러섬입니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믿음의 성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원망하죠. 하나님 나 예수 잘 믿는데, 하나님 저 신앙생활 잘하는데, 왜 저에게 이런 시험 주세요. 왜 저에게 이런 일 주세요. 왜 내 주변에 저런 사람 붙여 주세요. 저 그냥 혼자 조용히 예수 믿을게요.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사람들 안 만나고 얼마나 편한지, 그냥 교회 갔다 왔다 성경책 만들고 왔다 갔다 하니 얼마나 편한지. 사람들 그렇게 된다고요. 그렇게.
4. 두 가지 시험
그다음, 두 가지 시험이라는 파트가 나오는데 야고보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예를. 이제 믿음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시험이 다가오는 예를 들고 있어요.
4-1. 가난한 자의 시험
9절 보세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여기 낮은 자, 부한 자, 어떤 자를 말하는 거예요. 부한 자의 힌트가 있죠. 부한 자, 돈 많은 사람이에요. 부자들이에요. 그리고 낮은 자는 가난한 자들이에요. 가난한 자도. 교회 공동체 안에 가난한 자들도 있고 부자도 있습니다. 야고보가 신앙생활 하고 교회 지도자로 있을 때도 부자도 있었고 가난한 자도 있었어요. 바나바처럼 자기 전 재산을 팔아서 교인들에게 나누어 줄 정도로 부자도 있었고요. 그거 받아서 생활해야 될 만큼 가난한 자들도 있었어요.
자 그런데 여기 신앙생활 하는 데, 믿음생활 하는 데 가난한 게 시험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부자도 시험거리가 돼요. 돈이 많은 것도. 왜 그럴까요. 그 시험을 이겨 내는 방법을 야고보가 알려주잖아요.
가난한 게 시험거리가 되는데요. 왜 그러냐. 나는 사실은 가난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교회 공동체에서 신앙생활 하고 믿음생활을 막 해보니까, 하나님 구하면 다 주신다 했는데, 돈 아무리 구해도 안 주시거든요. 일 잘되게 해달라고 구해도 안 되거든요. 근데 사람들은 교회에 오면 돈 얘기 많이 하거든요. 뭐 땄다고 얘기하고, 주식 얘기하고, 자기 성공했다고 얘기하고. 저런 얘기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모이면 그런 얘기하면, 거든요. 미치겠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안 된다고 목사님에게 얘기해서 주의를 주라 해도 그래도 그때 뿐이고 안 되거든요. 이게 시험에 드는 거죠. 예.
그래서 거기서 물러나지 말고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잖아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알았어요. "낮은 자," 즉 가난한 자들은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가난한데 높을 게 있어요. 돈이 없는데. 이건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보는가를 생각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널 어떻게 보는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잖아요. 인간 그 자체로 하나님은 존귀하게 보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언제 우리에게 돈 갖고 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얘기했으면 했지, 정신나간 목사들이 얘기했으면 했지, 하나님은 그렇게 말한 적 단 한 번도 없거든요. 예수님은 가난한 자, 부자, 늘 귀하게 보신 분인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잖아요. 그러니 너는 존귀한 존재다. 가난하다고 낙심하지 말고 거기서 믿음생활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전진하고 나아가라. 그리고 이걸 돌파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인내하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4-2. 부한 자의 시험
그다음 부자들.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 뻐기지 마라. 이게 시험거리다. 돈 많은 것이 너의 시험거리예요. 왜냐하면 부자면, 물질이 많으면 주위의 사람들이 붙잖아요. 근데 그 사람들의 진심을 알 수 있습니까? 돈을 노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건지, 뽑아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 많고, 사기 치려고 하는 사람도 많고 얼마나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도 있고 교회에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부자들은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 겸손하라는 말이에요. 있는 척하지 말고 폼 내지 말고. 자 여러분 없을 때가 더 시험이 많이 올까요, 있을 때가 더 시험이 많이 올까요. 아 이거 써본 적이 없어서. 뭐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근데 없을 때가 믿음생활에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요, 있을 때가 믿음생활에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요. 그렇죠. 그건 잘 아시네요.
바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에서 13절을 보면 제가 읽을게요.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자족이라는 말이 중요하죠.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비천, 풍부, 반대말이죠. 그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가난해도 괜찮고 부자라도 괜찮아. 딴 얘기. 바울이 얼마나 부자였어요. 가말리엘 문하에서 사립 아카데미, 최고 학부에서 공부할 만큼 아버지가 부자였거든요. 근데 예수 믿고 나서 인생이 확 바뀌었어요. 가난했어요. 돈이 없어요. 천막 꿰매 가지고 그거 만들어 가지고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사는 인생이에요. 누군가가 밥 주면 먹고 안 주면 굶는 거예요. 그냥. 그리고 전도하고 다녔다고요.
그런데 이 사람은 부자일 때도 가난할 때도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그랬어요. 그런데 가난할 때는 없으면 굶으면 되요. 그런데 부자일 때 어떻게 해야 돼요. 부자일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는 정확한 물질에 대한 개념이 딱 확립되어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로 살 때가 시험에 들기가 훨씬 더 쉽습니다. 물질이 많을 때, 많은 걸 가지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 보세요. 광야 시절 어쨌든 광야 시절을 거쳐서 성공하고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출애굽 1세대들 광야에서 다 죽었지만 어쨌든 2세대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왔어요. 광야, 없었던 시절에는 원망도 하고 불평도 있지만 견디고 이겨냈다고요. 근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됐습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이 물질의 복도 주시고 하늘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 주셔서 먹여 주시고 부자 되게 하시고 잘 먹고 잘 살게 했더니 이놈들이 우상숭배 하잖아요. 부자로 사니까 망하는 거예요. 돈이 있으니까 이놈들이. 그게 시험이라고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우리가 먹고 살 만한 이때가 진짜 심각한 시험에 들어 있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 믿어도, 왜냐하면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왜냐하면 하나님 부르지 않아도 먹고 살 만하거든요. 옛날에는 마룻바닥에서 금요일 밤에 철야 예배 드리면서 눈물 바다가 되어도 하루 세끼 밥 먹고 살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아도 다 잘 먹고 잘 살거든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진짜 심각한 시험이라고요. 이제 사람들은 이런 데 우리는 시험에 들어 있는 줄 모르고 사는 게 문제입니다.
4-3. 겸손의 지혜
이때일수록 어떻게 하라고요. 이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혜도 주시고, 그 지혜는 낮아짐의 겸손이에요. 그게 겸손이에요. 옛날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내가 하루 세끼 먹고 살게 됐으면 나누고 베풀고, 가난한 자들 찾아보고. 우리 교회가 그래도 교회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 더 어려운 교회들 찾아보고, 선교하고, 나누고 베풀고. 자꾸 없다고 하지 말고, 우리 교회 건물 짓고 있어도 그래도 살 만하잖아요. 그러면 좀 나누고 베풀고, 그런 마음이 좀 있고 넉넉해야 그래야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겁니다. 돈이 없어서 어려운 시기가 아니에요. 너무 배불러서 어려운 시기라니까요. 지금이.
4-4. 부의 허무함
이게 또 심각하지요. 왜냐하면 야고보가 이걸 더 심각하게 본 이유는 그다음 부가되는 설명이 많아요. 10절 보세요.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한때라는 얘기죠. 한때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낮은 자, 가난한 자 얘기할 때는 짧게 한 줄로 끝내더니 부자 얘기할 때는 말이 길잖아요. 이 시험이 더 힘들다는 얘기. 우리가 재벌이라서 부자가 아니고요. 먹고 살 만하면 부한 사람이에요. 먹고 살 만하면, 비 피할 집이 있고, 자녀들도 그냥 사람 구실을 하고, 우리가 하루 세끼 먹고 살면 부하잖아요. 과거 30년 40년 전보다 우리는 부자로 살고 있잖아요. 그러면 그게 시험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예수 믿는 걸 방해하는 건 다 시험거리예요.
4-5. 시험을 참는 자의 복
아 그다음 12절 보십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를 인내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렇죠.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즉 인내한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이때까지 한 말씀을 딱 요약하고 있죠. 그죠.
5. 시험과 유혹의 구분
5-1.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으신다
자 그다음 페이지 넘기시면 이제 조금 다른 분위기의 말씀이 나와요. 13절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기 이 시험이라는 말은요, 헬라어로 페이라조(πειράζω)라는 말을 쓰거든요. 동사예요. 이건 동사. 아까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는 명사예요. 그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당연한 믿음의 성장을 위한 시험이에요. 테스트예요. 테스트.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쳐라 한 것처럼.
그런데 여기 이 페이라조(πειράζω)는요, 우리를 유혹하는 거예요. 같은 단어가 명사로 쓰이느냐 동사로 쓰이느냐에 따라서 하나는 테스트가 되고, 하나는 유혹이 되는 거예요. 하나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게 되고, 하나는 우리를 파멸시키려 하는 게 되는 거죠.
자 그런데 페이라조(πειράζω)로 쓴 구절을 제가 적어 두었는데요. "시험하는 자," 사탄이죠. "사탄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 사탄이 예수님도 이렇게 페이라조(πειράζω)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5-2. 분별의 필요성
근데 어떤 게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 즉 어떤 게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한 건지. 그런 건 우리가 견뎌야 되잖아요. 버티고 견디라고 했잖아요. 근데 어떤 게 사탄의 유혹이야. 사탄이. 이건 어떻게 해야 돼요. 예수님은 사탄이 왔을 때 말씀으로 얘기했는데 우리는 그럴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뭐가 상책이에요. 도망가야 되죠. 피하는 게 상책이죠.
요셉처럼.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간 것은, 팔려 간 건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한 시험이에요.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한 것, 페이라조(πειράζω)예요. 그를 무너뜨리기 위한 유혹입니다. 그때는 거기서 버티기 시작하면 넘어갈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피하는 게 좋아요. 피하는 게.
다윗 보세요. 다윗에게 골리앗의 유혹이나 시험입니까? 시험이죠. 견뎌야 될 거잖아요. 당연히. 다윗에게 사울, 피해야 될 사람입니까? 맞서 싸우고 극복해야 될 대상입니까? 극복해야 되죠. 근데 다윗에게 밧세바, 다윗에게 밧세바. 이웃집 여자 이제 알아봐라. 알아봐야 될 사람입니까? 아니면 피해야 될 사람입니까? 피해야 되는 거죠.
이걸 분별 잘 해야 된다고요. 이게 뒤집어지기 시작하면요, 골리앗을 피하고, 사울 피하고, 밧세바는 가까이해 버리고. 이런 인생이 어떻게 되겠어요. 이집트에서 노예로 사는데 그 노예는 싫어서 도망가 버리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은 기꺼이 수용해 버리고. 그럼 인생이 어떻게 되겠어요. 엉망진창이 되는 거죠.
5-3. 기도를 통한 분별
이게 분별이거든요. 이 분별은 자기밖에 알 사람이 없습니다. 목사가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나, 내가 하는 거예요. 내가. 그래서 이 분별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겁니다. 이걸 위해서 지혜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고, 그래서 기도해서 하나님 이게 피해야 될 겁니까? 제가 맞서 싸워야 될 겁니까? 하나님 제가 이걸 담대하게 돌파해야 될 겁니까? 아니면 잠깐 도망가야 될 겁니까? 이게 유혹입니까? 나를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한 테스트입니까? 이거 기도하고 물어봐야 돼요. 기도하면, 믿음으로 기도하면 다 준다 그랬잖아요. 지혜를 주신다 그랬잖아요.
그래서 야고보는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와 페이라조(πειράζω)를 이렇게 섞어서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우리가 분별 잘하라고.
5-4. 욕심에 끌리는 유혹
그다음 14절 보시면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이건 페이라조(πειράζω)입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여기 미혹하다, 이건 헬라어로 델레아조(δελεάζω)예요. 델레아조(δελεάζω)라는 뜻은 미끼를 던져서 잡다라는 뜻이에요. 사탄이 우리에게 미끼를 던져요. 그걸 내가 물어버리는 거죠.
낚시할 때 낚시바늘에 물고기 아가미가 걸리면 빠지지 않잖아요. 아가미가 찢어질지언정 빠지지 않잖아요. 사탄이 우리에게 미끼를 던져요. 그걸 우리가 무는 순간 끝이야. 물기 전에 분별하셔야 된다니까요. 그래서 기도해야 되고, 기도하면 지혜를 주셔서 분별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걸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6. 결론
정리하면 시험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주시는, 위에서부터 막 떨어뜨려 주시는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 즉 테스트의 시험이고, 또 사탄이 우리에게 미끼를 던지는 페이라조(πειράζω)의 시험이 있습니다. 페이라조(πειράζω)의 시험은 내가 예수님 수준이 아니면 피하는 게 좋은데, 이걸 피해야 될지 잡아야 될지 견뎌야 될지는 기도하고 지혜를 통해서 분별해야 된다 그랬어요.
그래서 인내하고 기도하는 것,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기도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 이걸 꼭 기억하시고, 야고보서가 쉬운 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 번 더 복습하시고 다시 한번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인생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시험들이 있습니다. 믿음생활 하면 할수록 문제도 생기고 어려움도 생깁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피하려고 하고 뒤로 물러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피해야 될 것인지, 붙잡아야 될 것인지, 견디고 이겨내야 될 것인지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아버지 우리 기도하고 구할 때 주여 우리에게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붙잡고 나아가고 견디고 인내하도록 도우시고, 그렇지 않고 페이라조(πειράζω), 피해야 될 것이라면 지혜 주셔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도 피하게 된 요셉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분별력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믿음생활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한 시험은 온전히 당당하게 인내하고 맞이하고 성장하고 성숙하여 하나님 앞에 거룩한 열매로 영광 돌리는 믿음의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