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 그리스도의 비밀 / 전체녹취

옥중서신 (3) 그리스도의 비밀 (엡 3장)

에베소서 말씀은 교회를 위한 말씀입니다. 옥중서신을 시작할 때 네 권의 서신에 대해 그 특징을 간단하게 설명드렸는데, 에베소서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냥 읽으면 이 말이 저 말 같고, 저 말이 이 말 같아서 똑같은 이야기가 이렇게 저렇게 계속 바뀌고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 그 의미를 찾아내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전한 복음이나 바울이 정교하게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을 상세하게 살펴보고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이 시간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귀한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 에베소서는 절정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에베소서에서는 4장이 절정입니다. 4장이 가장 핵심이고, 4장에서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이 다 나옵니다. 오늘은 그 절정으로 올라가기 전에 바울이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서, 자기가 맡은 사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을 살펴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내용은 우리가 바울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2000년이나 바울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상당히 열정에 심취해서 이 서신을 기록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습니다. 같은 마음이 되어야 이것을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가 되는데, 근본적인 마음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간극을 좀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내가 바울이 좀 되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1세기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간절함이 있어야 하고, 핍박받는 그리스도인의 자리로 좀 들어가 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로마에서 구류된 상태에,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편지를 에베소 교회에 쓰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읽으면 훨씬 더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1. 갇힌 자의 자유

1-1. 바울의 상황

바울은 지금 어떤 상황이며,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일을 주셨습니까? 바울은 지금 갇힌 상태에 있는데,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절에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갇힌 자 된 바울이라고 말하는데, 바울이 지금 자유를 잃어버린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다르게 생각해 보면, 굳이 바울이 아니더라도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든 사람들,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갇혀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자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저 목사가 무슨 말을 하느냐, 나는 자유인인데, 자유 대한민국에서 지금 살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 이럴 수 있는데,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돈 쫓아 사는 사람들, 자유롭습니까?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물질 쫓아서 사는 사람들은 그 돈이 원수라고 하잖아요. 그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해코지하기도 하고, 형제간에 가족간에 서로 등 돌리고 원수 되기도 합니다. 돈에 갇힌 자 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력이 뭐라고, 그 권력을 잡으려고 권력이 자기 인생의 완전한 족쇄가 되어서 권력에 갇힌 자 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 따라다니느라 인간관계에 갇힌 자 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자유가 없는 사람들, 그냥 멀쩡하게 사지 육신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이모저모로 여기저기에 매여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는 이 진리의 복음을 믿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사람인데, 명색이 교회를 수십 년 다녔고 세례도 받았고 직분도 받은 사람인데, 여전히 거기에서 매여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울을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갇혀 있으니까 자유가 없고 구류된 상태에 있고, 나중에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쓸 때 보면 그때는 진짜 순교하기 직전인데, 완전한 지하 감옥에 갇혀서 햇빛도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거기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우리더러 말할 것입니다. "진짜 불쌍한 건 너희들이 불쌍하다. 물질에 갇혀 있고, 인간관계에 갇혀 있고, 여러 가지 세속 권력에 갇혀 있는 너희가 불쌍하지, 나는 하나도 불쌍하지 않다. 내 몸은 여기에 갇혀 있으나 내 영은 자유롭고, 사람들이 내 몸은 여기에 억류해서 붙들어 놓을 수 있으나 내 영혼은 정말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진짜 누가 갇혀 있는지를, 어디에 갇혀 있는지를 명확하게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바울이 불쌍하네, 감옥에 있으면서 이런 편지를 쓰네"가 아니라, 진짜 나는 자유로운가, 정말 나는 갇혀 있는 게 아니고 자유한가, 이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1-2. 은혜의 경륜

바울이 계속 이야기합니다. 무엇 때문에 갇혔습니까?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혔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을 위하여 갇혔다는 말은 이방 선교를 하다가 여기에 지금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2절에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경륜이라는 말을 썼는데요, 경륜을 헬라어로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라고 합니다. 이것은 직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경륜을 따라"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오이코노미아는 직무, 책임, 사명 같은 뜻입니다. 그러면 달리 읽어보면 "하나님의 그 은혜의 직무를 너희가 들었다", 곧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이라는 뜻입니다. 이방인을 위하여 섬겨라, 이방인을 위하여 섬기다가 감옥에 들어가서 갇혀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직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직무를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은혜의 경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직무를 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나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언제 우리는 은혜 받았다고 말합니까? 돈벼락 맞으면 은혜 중에 은혜입니까? 아닙니다. 돈벼락이 은혜 중에 은혜 같지는 않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다들 살지만, 그런 은혜는 우리에게 잘 오질 않습니다. 은혜 중에 은혜는 구원받은 은혜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 이후에 은혜를 은혜의 직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갚을 수 없는 은혜, 감사하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중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은혜라고 생각하고 고백하는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십자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것, 그런데 이것이 참 힘든 일이거든요. 사명을 감당하는 것, 나에게 주신 사명, 권사의 장로의 목사의 성도의 나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은혜라고 표현하는 것은, 진짜 이것이 은혜라고 고백되지 않는 순간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귀찮고 힘들고, 남들은 다 안 하는데 나 혼자 하는 것 같고, 쟤는 왜 안 하고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왜 자꾸 나만 핍니까, 목사님 눈에 띄는 사람만 자꾸 시킵니까, 뭐 이렇게 자꾸 이야기하고 그것을 은혜라고 고백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은혜의 직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을 내가 은혜로 받는 순간, 하나님은 그것이 진짜 은혜 되게 하시거든요. 그것이 진짜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울이 그 뒤에 말하는 그리스도의 비밀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2. 비밀을 깨닫는 방법

하나님이 바울에게 알게 하신 비밀이 무엇입니까? 비밀이 무엇입니까? 너하고 나만 아는 것이 비밀입니다. 그런데 둘만 아는 비밀이라고 하는데, 그 비밀이 지켜집니까? "야, 너만 알고 있어" 그랬는데, 그 순간 다 압니다. 나는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온 동네방네 사람들이 다 아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순간 이미 옆집에도 알고 뒷집에도 알고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비밀은 그런 유의 비밀이 아닙니다.

2-1. 계시로 주어짐

3절을 보십시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비밀, 하나님과 바울이 아는 비밀은 첫 번째, 계시로 주어집니다. 계시가 어떤 식으로 주어집니까? 계시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내가 발견하는 것이 계시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냥 막 주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말하면 일반 계시가 있고 특별계시가 있는데, 성경에서 구약을 통해서나 혹은 신약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이 계시를 어떤 식으로 주시던가요? 꿈을 통해서 주시기도 하고, 환상을 통해 주시기도 하고, 선지자의 말을 통해서 주시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계시를 던져 주시잖아요. 그런데 그 계시가 객관적으로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

2-2. 말씀으로 확인함

객관적으로 계시가 검증될 때 어떤 경로를 통해서 검증될까요? 내가 꿈을 꿨어요, 혹은 내가 말씀을 받았어요, 환상을 봤어요. 그런데 내가 계시를 받았어요,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비밀을 알려 주셨구나" 하고 성급하게 나가면 안 됩니다. 계시를 검증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4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읽으면 무엇입니까? 계시를 검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환상 보는 것 좋아하고, 꿈꾸는 것 좋아하고, 예언 받는 것 좋아하고, 등등의 초자연적인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확증해 주고 검증해 주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통해서 검증되지 않으면, 사탄도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하거든요. 이것이 분별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계시는,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다양한 방식의 계시는 말씀을 통해서 검증받아야 합니다. 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3. 성령으로 확증함

또 검증받은 계시가 확증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 진짜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잖아요. 그것은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5절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성령을 언급하는 것은 다른 단어로 치환할 수 있는데, 기도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성령께서 나에게 일하시지 않습니까?

이제 순서가 정리됩니다. 계시가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계속해서 두드려 가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비밀을 알게 하셨어요. 하나님이 나더러 이 일을 하라고 해요, 특별한 일을 하라고 해요. 그런데 "진짜 하나님, 제가 이 일을 하는 게 맞습니까? 하나님, 제가 이 일을 해야 됩니까?" 그런데 말씀을 읽으니까, 말씀을 통해서 보니까 그 일을 하는 게 맞아요. 그리고 또 기도를 하니까,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나에게 감동을 주셔서 그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러면 꼼짝마라 아닙니까? 그러면 하는 것입니다. 계시가 주어지고, 말씀이 확인해 주고,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나에게 확인해 주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밀을 깨닫는 방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사람의 아들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누굴까요? 계시도 없고, 말씀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 복음 말씀에 대해서 외인들,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의 비밀이 주어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계시를 받는다는 것은 이 세 단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먼저 주어지고,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고, 그 다음 기도를 통해 성령을 통해서 확증하고 깨달아가고, 이것을 기억해야 우리는 계시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고 혹은 오해하지 않습니다.

3. 비밀의 내용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는데요, 바울에게 알게 하신 비밀이 무엇입니까? 이 비밀이 즉 복음이거든요.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비밀을 알게 하셨는데, 이 비밀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냐, 6절을 보니까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여러분, 이것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요? "뭐, 이게 비밀이야? 이게 뭐 비밀이야?" 그런데 이것은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비밀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 세 번이나 반복해서 쓰는 단어가 있는데, 무엇입니까? '함께'라는 말입니다. 누구와 함께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함께하는 A와 B입니다. A와 B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A는 누구고 B는 누구입니까? A는 유대인이고, B는 이방인입니다. 여기 나오잖아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가 매개가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A 유대인, B 이방인이 함께 상속자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주신 비밀입니다.

왜 이것이 비밀이냐?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는데, 옛날 구약 시대 때 그리고 바울 시대 때 성전은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경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죠? 이방인의 뜰입니다. 이방인의 뜰 이상으로 넘어가면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너희들은 여기까지, 들어오지 마. 너희들은 여기까지." 한계를 딱 정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방인의 뜰도 허물게 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게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함께 상속자가 되고, 지어져 가고, 함께 하나님의 처소가 되어 가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바울을 사용하시는데, 그 일을 하다가 바울이 지금 갇힌 자 된 것이거든요. 내가 그 일을 하다가 지금 로마에서 갇힌 자로서 이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처음 나타난 비밀이 아닙니다. 이것은 먼저 베드로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 14절과 15절 말씀을 보시면, 고넬료를 만나기 전에 베드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는데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것이 어떤 사건입니까? 베드로가 환상 중에 기도하던 중에 하늘에서 광주리가 자꾸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그것이 보니까 구약 레위기 율법에 속되다 한 것, 먹지 말라 한 것이 잔뜩 올라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것 안 먹습니다" 하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깨끗하다 했는데 왜 네가 속되다고 하느냐. 일어나 잡아먹어라." 그것을 계속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보내려고 보낸 사람이 베드로에게 왔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나는 첫 사건을 예비하실 때 이미 이방을 향한 복음의 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3년의 사역을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과 2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미 3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졸업시키실 때 그들에게 이방을 향하여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갔습니까? 안 갔습니다. 그들이 이방을 향하여 가라고 했는데 안 갑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어디로 가야 됩니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는데, 권능을 받았는데 나가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여 가지고 대형교회를 이루고 거기에 살고 있으니까 핍박이 불어닥치고 고난이 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인위적으로 다 흩어 버리셨습니다.

지금 바울은 이방을 향한,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 사역자로 그 비밀을 맡은 자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복음의 확장성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되는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오늘 비밀을 알려 주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그 비밀이 무엇이냐, 복음은 무한한 확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것이 무슨 말이냐, 복음은 금을 긋고 벽을 쌓고 선을 치고 "나 외에는 누구도 내 속에 들어올 수 없어, 너는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이것이 복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복음은 계속해서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계속해서 나를 넓혀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어디에 한계가 있고 갇혀 있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탄은 어떻게 합니까? 사탄은 자꾸 쪼갭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쪼개고 분열시키고 나누고 당을 짓고 파벌을 만들고, 몇 사람끼리 모여서 저 사람 욕하고 그러면서 마음이 떠나게 하고, 공동체를 자꾸만 폐쇄적으로 되게 하고, 그것이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평생 동안 수천 년 동안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지 못했는데, 그것을 하나 되게 하고 뻗어 가고 넓혀 가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좋은 교회라고 말씀하시려면, 좋은 교회는 서로 간의 파벌이 없고, 서로 간의 벽이 없고, 서로 간에 다툼이 없고 나눔이 없고, 서로 그냥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교회, 그리고 좋은 공동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한번 보십시오. 지금 이 맥락에서 이 나라를 보면, 사탄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계속해서 쪼개려 하잖아요. 정치적으로 이미 우리는 한국전쟁 이전부터 해방 이후부터 전 세계 열강에 의해서 삼팔선으로 남과 북이 나뉘어졌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휴전선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지역 감정으로 동과 서가 나뉘어졌고, 세대 간의 갈등으로 젊은이와 노년이 나뉘어졌고, 이제는 정치색으로 나뉘어지고, 계속해서 나눠지고 계속해서 쪼개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진실로 복음의 역사를 한다면, 이 땅에 수많은 교회가 있고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있는데, 교회가 교회답고 교회가 역사하고 하나님의 영이 교회를 통해서 확장성을 가진다면 이 분열과 나눔의 영이 끝나야 됩니다. 그래서 다 포용하고, 복음은 이렇게 확장성을 가지는 것, 그것이 비밀이거든요.

그런데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 알고 있는 비밀이라는 말입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못하는 것입니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왜 못할까요?

5. 일꾼의 정체성

5-1. 자기를 비움

7절을 한번 보십시오. "이 복음을 위하여", 그러면 이 복음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이 복음의 정체는 확장성을 가진 복음입니다. 벽을 허무는 복음,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을 깨는 복음, 내게 함부로 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역사하며 벽을 허물 수 있잖아요.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일꾼이 무엇입니까? 우리 순우리말로 말하면, 순 우리 옛말로 말하면 일꾼은 머슴입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확장되는 복음을 위하여 나는 머슴이 되었다. 머슴은 상전하고 머슴의 관계가 어떠합니까? 주종관계입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됩니다. 어디 묻습니까? 주인한테 말대꾸하고 그러면 매 맞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머슴이라고, 일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일꾼의 정체성을 바울이 설명을 했는데요, 복음이 확장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일꾼이 필요하거든요. 8절을 봅시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것이 일꾼의 정체성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 이것이 일꾼의 정체성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기를 또 다른 서신에서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고린도전서 4장 13절 말씀을 보시면 바울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만물의 찌꺼기, 자기를 만물의 찌꺼기라 그랬습니다. 설거지하고 나면, 설거지 다 하고 깨끗하게 싱크대 하고 나면 한번 이렇게 들어내서 거름망 비우잖아요. 거기에 있는 찌꺼기, 만물의 찌꺼기, 자기 자신을 바울이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세상 만물의 가장 미물의 더러운 것 중에 더럽고, 찌꺼기 중에 찌꺼기라고 자기를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자기 정체성입니다. 일꾼, 그렇게 하잘것없고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진짜 바울이 그렇습니까? 진짜 바울을 객관적으로 보면,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학문을 배웠고, 그는 외국어에 능통하고, 그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그는 또 로마 시민권자고, 탁월한 복음 전파자고 변론가고, 바울이 13권의 서신을 썼는데 읽어보면 그 깊이와 지식의 넓이가 말로 다 할 수 없고, 또 은혜는 얼마나 있는지 환상 중에 삼층천 체험도 했고, 바울이 손수건을 던지면 병자가 나았고, 설교 듣다가 졸다가 떨어진 유두고도 바울이 살리고 그랬던 바울입니다. 그런 사람, 그런데 이 사람이 일꾼으로서의 정체성, 머슴으로서의 정체성을 "나는 만물의 찌꺼기"라고 표현했습니다.

5-2. 은혜를 담는 그릇

그것이 왜 중요하냐면요, 그 뒤에 나오는 말을 봅시다. 8절에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은혜를 주셨다. 은혜는 위에서부터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막 떨어지는 것이 은혜 아닙니까? 그러면 은혜를 주시면 그것을 받아야 됩니다. 이것이 막 떨어지는데 은혜를 받아야 되는데, 은혜를 받을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릇을 준비해야 되는데, 그릇이 크면 은혜가 무한히 떨어지면 많이 받을 것 아닙니까? 그릇이 작으면 많이 못 받는 것입니다. 하물며 그릇을 뒤집어 놓으면 아무리 쏟아져도 못 받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뒤집어 놓으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뒤집어 놓으면 안 되고 일단 똑바로 놔야 되는데, 기왕이면 큰 그릇을 놔야 됩니다. 큰 그릇을 놓으려면 거기에 무엇이 들어 있으면 안 됩니다. 비워야 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과 21절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큰 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집입니다. 좋은 집에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 다 있습니다. 다 있는데, 깨끗하고 자기를 비워야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말입니다. "디모데야, 너 금 그릇 되려고 애쓰지 마. 일단 네가 어떤 그릇이라도 좋으니 깨끗한 그릇이어야 되고, 너를 비워야 된다. 그래야 은혜가 담기니까." 그 은혜가 담겨야 일을 하면, 일을 할 때 이 복음이 전파될 때 복음이 확장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복음의 확장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까요? 능력은 있는데 은혜가 없는 사람, 지금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 보십시오. 저 국회에 들어가 계신 분들, 그들 중에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며, 공무원 청문회 하는 것 보면 그들의 재산이, 재산 없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돈도 많고 학벌도 좋고 능력도 있고 다 탁월하신 분들인데, 이분들은 능력은 있는데 자기를 비워서 깨끗하게 해서 통합적인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은혜를 담을 만한 그릇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우리 가정에서 내가,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비워서 지극히 작은 자 중에 가장 작은 자가 되어서, 내가 만물의 찌꺼기 같은 자가 되어서, 나를 비워서 깨끗하게 되면 그 가정의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교회 공동체에서도 그런 사람 열 사람만 있으면 천 명 교회가 문제없이 돌아갑니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동체는 좋은 공동체가 됩니다. 그것이 비밀입니다.

그런데 알고도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를 못 비우는 이유가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지는 것 같으니까, 내가 가장 낮아지고 내가 가장 손해 보고, 손해 보기 싫으니까, 이것은 내 권리인데,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그랬잖아요, 권리가 있다고. 그런데 권리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거든요. 그것이 자기를 비우는 것인데, 권리를 포기하는 순간 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손해 의식이 막 심하게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비워야, 손해를 봐야, 자기 속을 다 긁어내고 깎아내야, 그래야 그 자리에 은혜가 임하고 복음이 확장성을 가집니다. 그런 일꾼들이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 다음에 우리가 빌립보서 공부할 때 볼 텐데,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를 말씀하는 자리에서 한마디 하잖아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원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된 분인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서 사람과 같이 되셨다고 하거든요. 자기를 비워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니까 그 비운 자리에 누가 들어갑니까? 나도 그 안에 들어가고, 너도 들어가고, 베드로도 들어가고, 가롯 유다도 들어가고,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확장성을 가지지요.

그것이 별것 아닌 것 같은데요, 여러분 우리 교회 비전센터가 이름이 좀 이상하잖아요. 비전센터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그 안에 각 방 호실들의 이름이 다 나무 이름이잖아요. 제가 광고 시간에 한번 그때 말씀드렸는데, 그 취지를. 유치부실을 포도나무라고 그랬고요, 그리고 우리 유년부실을 감람나무라고 그랬고, 또 초등부실을 무화과나무, 중등부 청년부가 있는 데를 에셀나무, 고등부 백향목이라 그랬습니다. 이것 외우기도 힘들어요. 상당히 불편합니다. 저도 맨날 까먹고 맨날 까먹어요. 3층에 뭐 있지, 4층에 뭐 있지. 그래서 주보에 무화과나무 하면 괄호 열고 비전센터 3층이라고 항상 저희가 친절하게 표시하는데, 왜 초등부실, 유년부실, 유치부실, 고등부실 이렇게 하지 않느냐? 교회는 다 같이 쓰는 공간이니까 그런 것입니다. 단순한 원리입니다. 물론 교육부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거기에는 절대 "문 잠금 금지"라 그랬습니다. 문 잠그면 안 됩니다. 다 공유 공간이니까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우리 성도라면 누구나 다 거기 가서 함께할 수 있고, 거기서 "들어오지 마세요" 이것 하면 안 됩니다. 이러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역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저한테 이르세요. 혼을 내야 됩니다.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공간입니다.

벽을 허물어야 되거든요. 그런 것부터 다 벽을 허물어야 복음이 확장성을 가지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그것부터 속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거기 예쁘게 예쁘게 장식하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해 놨는데, 개념 없는 어른들이 들어와 가지고 엉망진창 만들어 놓고, 속상하거든요. 그것을 자기를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 원리와 원칙에 따라서 계속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깨끗하게 쓰고 가세요, 쓰고 가세요" 계속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것이 복음이니까, 그 복음의 원리에 합당하게 계속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훈련이니까요.

6. 교회로 말미암아

교회는 복음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이제 드디어 교회가 나옵니다. 10절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교회로 말미암아, 이 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말인지 모릅니다. 교회로 말미암아, 앞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 이 복음, 확장성을 가지는 이 복음이 사람을 통해서 역사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자기를 비우고, 비천하게 낮아지고,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은혜의 자리에 들어오는 바울 같은 사람을 통해서, 일꾼을 통해서 일어나는데, 결국은 이 복음의 확장성을 가지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들에게나, 또 여러 가지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영들에게나,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십니다. 교회가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의 확장성을 교회가 계속해서 가져가지 않으면 그것은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자꾸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해서 우리끼리 우리끼리 하게 되면, 그것은 교회가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교회라고 말합니까? 진짜 교회는, 교회를 통해서 계속해서 복음이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시련을 통해서 흩어졌는데, 흩어진 성도들이 안디옥에 가서 안디옥교회를 세웁니다. 안디옥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합니다. 안디옥교회로 말미암아 복음의 확장이 일어난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로 말미암아 바울의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해서 로마 교회에다 편지를 씁니다. "지금까지는 안디옥교회가 나를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에 보냈는데, 이제 로마 교회 너희여, 나를 스페인으로 보내도록 로마 교회가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동참하고 애써다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끊임없이 벽을 허물고 경계를 허물고 밖으로 밖으로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요즘 심각한 교회는 자기 안도 다스리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 안에 갈등이 있고, 그 안에 문제가 있고, 서로 싸우고 이러니까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얼마나 좋은 교회 공동체입니까? 계속 밖으로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에게 나눠 주고 베풀고, 오늘도 우리 전도부 부원들이 또 열심히 전도하고, 그렇게 전도하고 계속 확장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썩어빠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교회로 말미암아 복음이 계속 전파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7. 담대함과 확신

그렇다면 이제,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런 교회 안에, 교회로 말미암아 복음이 계속 확장성을 가지고 뻗어 나가야 되는데, 이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12절 "우리가 그 안에서", 그 안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안에서, 다 되는 말입니다.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가지라고요?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런데 담대함과 확신을 나도 갖고 싶습니다. 나도 담대하고 싶다고요. 확신을 갖고 싶습니다. 그러나 담대함과 확신을 무너뜨리는 것이 있습니다. 13절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환난이 오면 담대 가지기가 힘듭니다.

성도들이 바울을 딱 보니까 답답하거든요. 지금 바울이 에베소서를 쓰고 있잖아요. 에베소 교인들이 볼 때, "야, 내가 바울 선생님을 아는데, 저 바울 선생님이 우리 에베소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 아는데, 저분의 지금 그 말년의 끝이 감옥이야. 저 말년의 끝이 저 감옥에서 저렇게 고생을 하는 거야. 그렇다면 나는 예수 믿기 싫어. 예수 믿는 사람의 저 마지막이 저런 거라면 부자 되고 잘 먹고 잘 살아야지, 떵떵거리며 살아야지. 하나님께서 바울이 저렇게 고생한 거 아는데 하나님은 왜 바울을 저렇게 두시는 거예요?" 사람들 그렇게 말한다고요. 그러니까 담대함과 확신이 사라지는 것이거든요. "나도 바울처럼 예수 잘 믿다가 저렇게 될까 봐."

여러분, 그것이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 신앙의 문제가, 그 신앙의 끝은 결국은 성공 지상주의적인 신앙입니다. 예수 믿어서 성공하고, 예수 믿어서 세상이 말하는 성공하고, 예수 믿어서 돈 벌고, 예수 믿어서 출세하고, 예수 믿어서 사람들 떵떵거리는 영광 누리고 살고 싶은 욕망이 거기에 다 묻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이 말합니다. "이는 너희의 영광이라." 왜 영광입니까? 나는 돈에 갇히지 않았다, 나는 권세에 갇히지 않았다, 나는 지금 여기에 감옥에서나 누구보다도 자유롭다, 복음을 위하여 여기에 갇힌 바 되었으니까 이것을 너희의 영광으로 알아 다오. 결국은 우리의 눈은 이 땅이 끝이 아니라, 저 천국에서 내가 영광의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서 영광의 면류관을 내 머리 위에 쓸 때까지, 그때를 바라보라, 그 말입니다.

여러분, 그때까지 우리가 담대함과 확신을 버리면 안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냥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 소망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거든요. 사람들은 자꾸 현세적인 것만 봅니다. 현세적인 것만. 사람들은 그래요. "저 신앙생활 잘하는 자녀가 뭐도 안 돼, 뭐도 안 돼, 뭐도 안 돼. 사업도 안 돼, 애도 안 돼, 건강도 안 돼." 그것이 뭐가 중요합니까?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예수 잘 믿다가, 그래요, 예수 잘 믿다가 사업 망할 수 있어요. 예수 잘 믿다가 시험에 실패할 수 있어요. 예수 잘 믿다가 내 인생 꼬일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영광 아닙니까? 하나님 편에서 보면 궁극적으로. 바울이 이 수준 높은 믿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4절에서 36절입니다. 천천히 읽어 볼게요. 잘 생각하며 한번 보세요.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한마디로 말하면, 환난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압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천국 소망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어떤 일이 있어도 담대하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그 약속하신 것은 현세에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세에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가오는 내세에, 천국에서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으로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8. 바울의 기도

이제 바울이 이렇게 해 놓고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비밀 이야기를 실컷 했습니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바울이 그리스도의 비밀은, 바울이 맡은 비밀은, 이방을 향한 복음 전하는 전파자로 내가 쓰임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이 계시로 알았고,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고, 성령을 통해 기도함으로 확신했다고 했습니다. 이방을 향한 복음은 복음의 확장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내가 일꾼 되었는데, 내가 은혜를 따라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되었고, 교회도 그런 교회가 되어야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담대함과 확신을 버리지 마라, 어떤 환난이 오더라도.

8-1. 이름을 주신 하나님

그리고 나서 바울이 기도해 줍니다. 이것이 중요하니까, 바울은 기도의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 14절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바울의 기도가 멋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잖아요. "하나님, 우리 자녀들, 우리 가정…"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 세계 열방. 이렇게 이야기하면 온 세계 온 땅,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이면 저 아프리카까지 지금 다 포함하는 기도 아닙니까?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특이한 표현이 나오거든요. 이 표현은 여기밖에 안 나옵니다.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주셨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름을 불러 주셨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는데요, 에덴동산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의미는 그 존재에 대한 소유권을 내가 가진다는 뜻입니다. 이름을 준다는 의미는, 과거에 왕이 신하들에게 성을 하사하게 되었거든요. 그러면 그 신하에 대한 소유권을 왕이 가진다는 뜻이고, 아담과 하와가 동식물에 대한 이름을 짓게 했습니다. 그러면 다스리라는 의미, 관리하라는 의미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는,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름을 특별히 기록해 둔 사람들도 있고,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름을 부를 만한데 이름을 안 불러 준 사람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출애굽기 1장 15절에서 17절까지 나오는 말씀입니다. 잘 보세요.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히브리 산파 이름이 나오지요, 십브라, 부아.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애굽 왕이.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여기 대비해 보세요. 애굽 왕은 이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히브리 산파는 이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지요. 그런데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누가 더 고귀하고 높은 사람입니까? 그런데 성경입니다. 성경 전체를 보셔도 애굽 왕의 이름을 기록해 놓은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애굽 왕의 대표 명사가 무엇입니까? 바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집트 왕 이름 압니다. 람세스, 멋진 이름 있잖아요. 람세스도 알고 하셉수트도 알고, 이집트 왕의 이름 그 멋진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이름을 다 무시합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안 불러요. 이름을 주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히브리 산파들은 천하고 천하고 약하고 미련하고, 진짜 애굽 왕이 명령 한마디만 하면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의 이름을 하나님이 적어 놓으셨다니까요. 왜? 생명책, 천국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니까. 우리가 지금 새벽기도 시간에 에스라서를 읽고 있는데, 에스라서에 보면 2차 포로 귀환에서 온 사람들의 이름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들이 다 기록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중요한 사람들이거든요. 그 명단이 다 기록되어 있다고요. 그런데 아무리 고관대작이고, 아무리 이집트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쓸데없는 사람이니까 그냥 애굽 왕이라고 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름을 주신 하나님.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이름을 불러 주시고, 그 이름 불러 주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어야 됩니다. 생명책에. 그러려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직무 오이코노미아를 우리는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귀찮게 받으면 안 되고, 기쁨으로 받아야 합니다.

8-2. 속사람의 강건

이제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 보세요. 16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제가 그랬지요.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성령은 기도로 치환할 수 있다, 대체할 수 있다. 그러면 그렇게 읽어 볼게요. "그의 기도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기도하면 성령께서 일하시고 역사하셔서 우리 속사람이 강건하게 다져집니다. 그런 경험해 보셨습니까? 기도하면 우리는, 그런데 겉사람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내 겉사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내가 남들에게 좀 괜찮아 보일까? 초췌해 보일까? 남들에게 좀 오늘 예뻐 보일까? 멋져 보일까? 거기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겉사람에는. 그런데 속사람의 강건을 위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바울이 기도하잖아요. 성도들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필요한데,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면 내 영이, 내 속사람 안이 강건해집니다. 단단해집니다. 옛날에 어머니들 한번 보세요. 옛날 전쟁을 겪었던 할머니들, 우리들의 어머니들, 일제시대 겪었지요, 전쟁 겪었지요. 그런데 그분들은 배우지 못해서 성경도 잘 못 읽어요. 그러면 뭐밖에 못 합니까? 귀로 들었던 찬송가 계속 따라 하는 것, 그 다음에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간절하게, 철야 기도해서 뜨겁게 기도하신 분들이 얼마나 단단한가. 그 속사람이 얼마나 단단한지 감당이 안 됩니다. 그 담대함이, 심지가 깊고 단단하고, 세상의 악과 타협하지 않고, 자식들 칼같이 가르치고, 교회 충성하고 봉사하고, 속사람이 강건해서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속사람이 왜 이렇게 흔들립니까? 마음이 왜 이렇게 흔들려요? 왜 그렇게 담대하지 못하고, 왜 그렇게 확신이 없느냐?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답은 한 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속사람이 허한 것입니다. 성경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기도하지 않으니까, 부르짖지 않으니까, 엎드려서 기도하고 단단해지고 강건해져야 되는데,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것이 다져집니까? 그래서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강건해져야 된다, 기도 좀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기도 좀, 제발 기도 좀 해라.

8-3. 마음에 계신 그리스도

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참 이 표현이 재미있는데요,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 다 아시지요. 그 내용과 연결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계시지 않습니까? 거듭난 사람은 계셔요.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거든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계심을 확신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 말은 너희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믿어라는 이야기입니다.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붙잡고 있어라, 그것이 역사를 이룬다.

8-4. 사랑의 수고

그 다음,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뒤에 "알고"라는 말을 동그라미 한번 쳐 보시면요, 사랑이 우리에게 알게끔 되려면 그 사랑이 어떻게 되어야 알게 됩니까?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남편이 행동을 해야 알지, 그렇지 않아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자식이 어떻게 압니까? 부모의 행동을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 보시면, 이것 잘 보셔야 됩니다.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잘 보세요. 바울의 언어가 믿음, 소망, 사랑, 이것이 바울의 시그니처입니다. 바울의 아주 대표적인 언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것을 풀어 놨습니다. 믿음은 무엇이라고요? 역사를 이루고, 사랑은 수고로 와야 되고, 소망은 인내다. 이것 동의하십니까?

이것을 좀 외워야 합니다. 믿음은 역사를 이룬다. 아브라함 보세요. 그 믿음이 역사를 이루었지요.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쭉 우직하게 밀고 나가면 나중에 거대한 역사를 누립니다. 그런데 사랑은 수고로 와야 됩니다. 그래야 알게 됩니다.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은 감미롭습니다. 달콤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에 왜 실망합니까? 허탕이니까. 입으로는 막, 요즘 애들 말로 하트 날리는데, 그런데 행동이 하나도 따라 주지 않으니까, 수고롭지 않으니까. 여기 나한테도 막 하트 날리고, 저기 다른 여자애한테 가서도 막 그것이 뭐, 사랑해요, 그것이 사랑입니까? 진짜 사람한테 사랑한다 했으면 그 사랑은 수고로 와야 되거든요. 그래야 "아, 알지, 날 사랑하는구나" 그것을 알지요. 소망은, "아, 나 이렇게 되고 싶어요. 하나님 해 주세요." 소망을 가졌어요. 그런데 당장 내일 됩니까? 그것이 인내로 이루는 것입니다. 인내로 견디고 참고 기다리고.

바울이 믿음, 소망, 사랑을 고린도전서에서 이야기했던 것을 이렇게 스스로 풀어 뒀거든요. 바울은 곳곳에서 그것을 여기다가 계속 집어넣습니다. 여기 나오지요. 여기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고", 사랑 가운데서, 18절 끝에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삶이 받쳐 주고 수고로 와야 되거든요. 그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그렇게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말만 하지 말고 행동 좀 해라.

우리가 "예수 사랑해요" 찬양만 하면 뭐 합니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표현할까요? 어떻게 표현합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랑받았잖아요. 어떻게 표현합니까? 수고롭게 표현 좀 해야지. 적어도 설거지라도 좀 해야지. 주방에서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사랑하면 전도지라도 나눠 주고 뭐라도 해야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사랑한다고, 그것이 뭐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까? 공허한 것입니다. 진짜 공허한 것입니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데, 하나님이 제일 잘 아시지요.

8-5. 기도의 마무리

바울은 기도를 어떻게 마무리합니까? 20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그 다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이 말하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되도록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기도를 마무리했습니다.

나가는 말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서 오늘 에베소서 3장을 통해서 상세하게 살펴봤습니다. 이제 다음 시간은 에베소서의 절정입니다. 교회론의 절정인데, 4장은 조금 어렵기도 하고 길기도 한데, 한번 잘 읽어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직무를 맡겨 주시고 그 직무를 귀찮음이 아니라 은혜로 받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계시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 기도하는 것을 통해서 깨달았다고 하셨사오니, 주여, 우리도 열심히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그 계시가 이방을 향한 복음 전파자로 또 드러나며, 복음은 확장성을 가지며, 바울이 복음의 일꾼 되고 가장 비참하고 낮은 자리까지 갔다고 하셨는데, 주여, 우리도 그 일에 부름받은 일꾼 되기 위해서 낮아지고 또 낮아지고, 우리를 비워서 은혜를 받아들이기에 부족함 없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잘남과 자랑과 자신의 교만으로 얼룩져 있지 않도록 도우시고, 끊임없이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로 말미암아 이렇게 일한다고 하셨사오니, 담대하게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전진하고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고, 사랑은 수고로 표현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