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특강-10 두 짐승과 144,000 (13-14장)
본문: 요한계시록 13:17-18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666이니라"
오늘은 요한계시록 특강 열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계시록 13장과 14장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666도 나오고, 두 짐승도 나오고, 14만 4천도 등장합니다. 계시록이 이제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만 잘 살펴봐도 계시록이 어떤 맥락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어떤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이미 그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13장과 14장을 마치면 계시록의 아주 중요한 상징 체계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핵심 내용은 거의 다 공부하게 됩니다. 15장과 16장으로 가면 일곱 대접 심판도 나오고 바벨론이 멸망당하는 장면도 나오며, 그 이후에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펼쳐지면서 계시록이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1. 두 짐승의 정체
1-1. 첫 번째 짐승: 바다에서 올라온 자
13장을 보겠습니다. 두 짐승 이야기가 나오는데, 먼저 13장 1절을 보십시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라고 했습니다.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지난 시간에 마지막으로 살펴본 12장 17절을 봐야 합니다. 12장 17절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고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용이 어디에 서 있었습니까? 바다 모래 위에 서 있었습니다. 용이 서 있던 곳이 바다 모래 위인데, 용은 유대 묵시문학 전통에서 사탄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으로 12장이 끝났고, 13장이 시작되면서 짐승이 등장하는데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다에서 나옵니다. 용은 사탄이고, 짐승은 국가권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국가권력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는 황제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국가권력의 최고 수장은 로마 황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황제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지난 시간에 살펴본 용이 가진 권세와 똑같습니다. 7이라는 수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용도 하나님과 비슷하게 자신의 권세를 위장한다고 했습니다. 용에게 권세를 받은 짐승인 국가권력에도 역시 7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국가권력인 짐승에게는 신성모독하는 이름이 그 위에 새겨져 있다고 했습니다.
로마 황제 중에 신성모독의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냐 하면 네로 황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두 짐승 가운데 첫 번째 짐승은 네로 황제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네로 황제를 말하고 있지만, 로마 황제 전체의 대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고 예수 믿는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파괴하려 했던 모든 로마 황제를 통칭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 중 하나가 네로 황제입니다. 네로의 재위 기간은 AD 54년부터 AD 68년까지 약 14년에서 15년 정도입니다. 그가 68년에 죽을 때 나이가 31세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악한 사람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AD 64년에 로마의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 그 화재를 네로가 직접 저질렀다는 설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네로가 로마의 신시가지를 건설하기 위해 구도심을 다 불태워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백성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누명을 씌우고, 그 명분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였습니다. 반란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네로가 그 정도로 포악했으니까 반란을 피해 도망가다가 68년에 반란군에게 쫓기던 끝에 칼로 자기 목을 찔러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네로의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시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가 파르티아로 망명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런데 네로가 죽고 나서 AD 81년부터 AD 96년까지, 네로가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끼게 하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입니다. 제가 여러 번 언급했듯이 요한계시록은 바로 이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악정 시절에 기록된 서신입니다. 사람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압제를 겪으면서 '네로가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닌가?' 하는 네로 환생설이 그 당시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네로가 얼마나 악했던지, 그리고 그가 직접 칼로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고는 하는데 네로의 시체를 본 사람은 일반 평민들 중에는 없었고, 네로의 죽음을 사람들은 모두 쉬쉬하고 있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네로가 파르티아로 망명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망명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지금 다스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죽었던 네로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온갖 추측들이 그 당시에 복잡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첫 번째 짐승은 네로 황제를 지칭한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2절을 보면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라고 했습니다. 표범도 나오고 곰도 나오고 사자도 나오는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다니엘서에도 보면 다니엘이 본 환상 중에 사자, 곰, 표범이 다 나오는데, 그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더 중요한 내용이 뒤에 나옵니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용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유대 묵시문학 전통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국가권력인 짐승에게, 그것도 황제에게, 그것도 네로 황제에게 자신의 권세를 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네로가 다스리던 그 시절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굉장히 큰 고난과 핍박을 겪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여기서 '그'가 누구냐 하면 짐승입니다. 첫 번째 짐승,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곧 네로 황제입니다. 이 네로 황제가 머리가 상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이것이 바로 네로 환생설을 표현하는 구절입니다. 네로가 칼로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고 했는데,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마치 네로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악행을 행하고 있으니까 그 당시 민간에서는 '죽었던 네로가 다시 살아났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네로의 환생이라고 여기며 겁을 내고 그의 말에 철저히 복종했다고 합니다.
용과 짐승의 관계가 어떠하며, 짐승은 어떤 권세를 받았습니까? 용은 사탄이고 짐승은 국가권력, 특히 로마 황제이며 대표적으로 네로 황제입니다. 용이 사탄에게서, 아니 사탄인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권세를 받았는지 4절을 보면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며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오 하더라." 로마 황제에게 대적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최고의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5절에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은 쉽게 이해됩니다. 하나님을 저주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니까 이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여기서 '과장되다'라는 표현이 좀 어려운데, 이 표현을 쉽게 말씀드리면 '두려움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짐승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계속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위협하고 겁을 주며 '너 예수 믿으면 잡아서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하는 식으로 계속 과장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42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42달, 1260일, 한 때 두 때 반 때,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이 42달이 정확히 얼마의 기간이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 기간이 의미하는 것은 세속 권력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핍박의 기간입니다. 그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며 이 땅을 다스리고 지배할 권세를 가진 기간은 한정적이라는 뜻입니다.
42달이라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꼭 3년 6개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기간 동안만 이 땅을 지배하고 다스릴 권세를 가졌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로마가 아무리 강력한 권세를 가져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를 가져도 그 기간은 한정적이라는 뜻입니다.
6절에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로마 황제가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또 누구를 비방합니까?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산다'는 것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헬라어로 스케노오(σκηνόω)도 있고 카토이케오(κατοικέω)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하늘에 산다고 했으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이므로 스케노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적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 그들을 비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로마 황제는 하나님도 비방하고, 스케노오하고 있는 자 곧 교회 공동체에 적을 두고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 잘 믿는 사람도 비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두실까요?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7절에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는데, 얼마 동안만입니까? 한정된 기간 동안만, 42달 동안만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그것도 한정된 기간 동안만 권세를 받습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핍박을 받은 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8절을 보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버림받은 자들이 아닙니까? 예수 믿지 않은 자, 일곱 인의 심판이나 일곱 나팔의 심판에도 돌이키지 않은 자들, 이런 자들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이것은 지난 시간에도 살펴본 구절입니다. '이 땅에 살다'라고 했습니다. 아까 우리가 본 것은 '하늘에 살다'였습니다. 이 땅에 사는 자들은 카토이케오(κατοικέω)하는 자들입니다. 육으로 사는 자, 육체로 사는 자입니다. 예배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그냥 먹고 마시며 자연인으로 사는 자, 시집가고 장가가고 영적인 고민 없이 물질을 쫓아가고 육체적인 쾌락과 향락을 좇아 사는 자입니다. 그런 자들이 다 어떻게 됩니까? 짐승에게 경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로마 황제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자기 목이 달아나니까 당연히 경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카토이케오하고 있는 자들이 과연 없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몸만 교회 공동체에 있다고 해서 다 스케노오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교회에 그냥 가방 들고 왔다 갔다 하고, 교회에 적을 두고 있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 있어도 카토이케오하고 있고 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며, 어떤 결정적인 상황이 되면 짐승에게 가서 경배하고 무릎 꿇는 자들이 상당히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어찌 다 구원받겠습니까? 나중에 심판 날 하나님께서 양과 염소를 분별하실 때가 되면, 가라지와 알곡을 나누실 때가 되면 그때 가서야 드러나겠습니다. 스케노오하는 자와 카토이케오하는 자가 분명히 구별될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9절에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습니다. 귀 있는 자, 정말로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깨닫고 깨우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0절에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사로잡혀 갈 자는 사로잡혀 가고,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내를 지키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순교하는 자는 순교자의 반열에 들게 됩니다. 성도들은 42달 동안 세속 권력에게,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에게 허락된 그 기간 동안 믿음의 순결을 지키다가 순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가 해야 할 일이요, 성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1-2. 두 번째 짐승: 땅에서 올라온 자
두 번째 짐승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짐승은 네로 황제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짐승은 누구입니까? 11절을 보면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아까 첫 번째 짐승은 어디에서 올라왔습니까? 바다에서 올라왔습니다. 지금 두 번째 짐승, 또 다른 짐승은 어디에서 올라왔습니까? 땅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러면 땅과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땅과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라 했으면, 짐승이 땅과 바다에 다 발을 딛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짐승이 온 세상을 다 통치하고 다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땅과 바다가 세상 아닙니까? 오대양 육대주가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땅과 바다가 온 세상, 만물을 다 통치하고 다스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짐승입니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왔는데 어린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용처럼 말을 합니다. 이 두 번째 짐승은 또 어떤 짐승일까요? 이것을 우리가 잘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로마 황제를 섬기도록 인도하는 사명을 받은 그런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짐승이 어떤 일을 하는지 보면 나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먼저 나온 짐승이 네로 황제라고 했습니다. 그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백성들에게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하는 자들이 두 번째 짐승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로마의 권력 체계를 알아야 이해됩니다. 로마의 권력 체계는 중앙집권에 로마 황제가 있고, 그 아래 도시국가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도시국가를 다스리는 자들은 누구에게 충성합니까? 황제에게 충성합니다. 식민지를 다스리는 자는 누구입니까? 총독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빌라도 총독, 빌라도 총독도 황제에게 충성합니다. 황제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빌라도가 만들어 놓은 도시가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가이사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황제를 위해서 황제의 동상과 황제의 신전을 만들어 두고, 백성들이 거기에 가서 섬기고 경배하고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 그곳을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중앙집권 체제에 있는 황제를 숭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도시국가에 있는 수많은 작은 권력자들이 네로 황제로 대표되는 로마 황제를 경배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로마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통치했습니다. 로마가 식민지를 차지하면 그 식민지를 그대로 통치하게 합니다. 그들의 법과 문화 그대로 그냥 살게 합니다. 다만 한 가지만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황제 숭배입니다. 황제에게만 숭배하면 너희들이 하던 대로 그냥 살아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황제 숭배를 하기 위한 신전을 곳곳에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짐승은 첫 번째 짐승인 네로 황제로 대표되는 로마 황제들을 숭배하도록 하는 일을 하는 자들, 이들이 두 번째 짐승입니다.
13절에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이것은 진짜 불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로마 황제가 행사할 수 있는 권능이 이 정도로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불이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게 할 정도로 로마 황제가 그런 큰 권세와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여기서 '거한다'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스케노오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여기 거하는 자들은 카토이케오하는 자들입니다. 육에 속한 자들, 영적 임재가 아닌 그냥 먹고 사느라 바쁘고 육체의 욕망을 좇아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 누구입니까? 네로 황제입니다. 네로 황제를, 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하는 것입니다.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우상을, 땅에서 그냥 육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만들어서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황제 숭배를 하지 않으면 다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로마가 차지한 식민지가 황제 숭배를 잘했을까요, 잘 못했을까요? 다 잘했습니다. 전부 다 살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한 민족만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누가 안 했을까요? 히브리 민족만 못한 것입니다. 유대인들만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과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것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해도 황제 숭배는 못했습니다.
옛날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하라고 했을 때, 다른 것은 다 해도 황제 숭배는 못하고 신사참배는 못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목이 달아나도 그것은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해도, 창씨개명도 할 수 있습니다. 창씨개명까지는 해도, 단발령이 내려서 머리를 다 잘라도, 그래도 신사참배만은 도저히 못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지 않는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16절에 "그가" - 그는 두 번째 짐승입니다 -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이 표가 무엇입니까? 짐승의 표입니다. 무엇을 한 자에게 주는 표입니까? 황제 숭배를 한 자에게 찍어주는 표, 짐승의 표입니다. 짐승이 국가권력이라고 했습니다. 황제에게 엎드려 숭배했으니까 도장을 찍어주는 것입니다. 이마에나 오른손목에 '당신은 이제 이 제국의 신민이 되었습니다' 하고 표시해 주는 것입니다. 신사참배를 하고 나면 표를 주듯이, 황제 숭배를 하고 나면 도장을 찍어주고 표를 주었습니다.
그 표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17절에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여기서 매매가 나옵니다. 그 당시에 길드라고 하는 상인조합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옷감을 염색해서 파는 상인조합이 있었는데, 황제 숭배를 해야 거기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길드에 못 들면 어떻게 됩니까? 상인조합에 못 들면 그 물건을 그 지역 안에서는 못 파는 것입니다. 팔다가는 큰일 났습니다. 도자기를 구워도 도자기 상인 길드에 못 들면 그것을 못 파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황제 숭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마나 오른손에 표를 못 받았습니다. 매매를 못합니다. 아이들 학교도 못 보냅니다. 먹고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땅굴을 파고 카타콤으로 들어가서 자기들끼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낮에 올라와서 잠깐 먹을 것을 가져가고 그렇게 해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시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1-3. 666의 의미: 게마트리아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짐승의 표입니다. 짐승이 누구입니까? 18절이 중요합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우리가 혼동하면 안 됩니다. 짐승이라고 하니까 개가 열 마리쯤 있는가 보다, 표범이 백 마리쯤 있는가 보다 하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수'가 나옵니다.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666이니라." 이것은 유대 묵시문학 전통으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아까 첫 번째 짐승이 네로라고 했습니다. 여기 666을 게마트리아(גימטריא)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게마트리아가 무엇이냐 하면, 히브리어 알파벳이 22자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1번부터 22번까지 22자가 있는데, 히브리어 알파벳마다 고유한 숫자 값을 가집니다. 첫 번째 알파벳부터 열 번째 알파벳까지는 각자 1부터 10까지입니다. 11번째 알파벳부터 18번째 알파벳까지는 20, 30, 40, 50에서 90까지 갑니다. 19번째부터 22번째까지는 100, 200, 300, 400까지 갑니다. 그것까지 우리가 다 외울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히브리어 알파벳이 각자의 고유한 수치를 가진다는 뜻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기역은 1, 니은은 2, 디귿은 3 이런 식으로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네로'라는 이름을 히브리어로 써 보았습니다. 네로라는 이름을 히브리어로 쓰고 그 수치를 다 더하면 숫자가 666이 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그것을 이해하고 다시 18절을 보시면 "지혜가 여기 있으니," 즉 지혜로운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짐승이 누구입니까? 네로 황제입니다. 네로 황제 이름의 수를 더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666이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화산으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된 폼페이를 발굴했는데, 벽에 낙서가 하나 있었습니다. "나는 이름이 545인 여자를 사랑한다." 이런 낙서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바꿔서 게마트리아 방식으로 풀어서 545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게마트리아식 해석이 유대 묵시문학 전통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이렇게 이해해야 하는데, 전화번호에 666이 들어간다고 '이건 불길한 숫자이고 사탄의 숫자이니까 바꿔야 한다'고 하거나, 우리 집 주소에 6이 두 번이나 겹친다고 걱정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큰일 납니다. 계시록은 그 당시 유대 묵시문학 전통에서 666도 그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13장입니다. 13장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두 짐승이 나왔습니다. 짐승은 한 짐승은 바다에서, 한 짐승은 땅에서 나왔습니다. 즉 짐승은 땅과 바다를 다 다스리는데, 그 권한의 시기는 얼마 동안입니까? 한정된 기간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짐승은 네로 황제, 두 번째 짐승은 로마 황제를 숭배하게끔 하는 도시국가의 작은 지도자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666은 게마트리아 방식으로 해석하면 그것이 곧 네로 황제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14만 4천의 정체
2-1. 하나님 백성의 수
이제 14장으로 가면 또 14만 4천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7장에서 한번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에 똑같은 이야기가 두 번 나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했던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는 것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번 짚고 넘어갑니다.
계시록 7장 4절입니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14만 4천이니." 인침을 받다, 곧 구원받다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수가 얼마입니까? 14만 4천입니다. 이것은 그냥 숫자적으로 14만 4천이 아니고, 12 곱하기 12 곱하기 천이라고 했습니다. 앞의 12는 구약 교회 성도들, 뒤의 12는 신약 교회 성도들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수입니다. 12는 3과 4의 곱이니까, 하늘의 수와 땅의 수가 곱해진 12가 두 번 곱해졌으니까 신약 교회 성도들과 구약 교회 성도들, 이 수많은 성도들이 엄청나게 많은 수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뒤에 붙어 있는 천은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하면 군대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군대 조직의 최대 단위가 천 명 단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군대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14만 4천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그리고 14만 4천이 엄청나게 많은 수이고 군대라는 교회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을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7장 9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14만 4천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천지나 여러 사이비 종말론 이단들은 14만 4천을 그냥 숫자 그대로 해석합니다. 이 14만 4천에 들기 위해서 열심을 내라, 집 팔고 땅 팔고 다 그만두고 우리에게 가지고 오고, 여기에 다 모여라, 재산 팔아서 다 헌납해라 하고 가르칩니다. 그런 사이비 종말론 이단들을 따라가면 큰일 납니다.
2-2.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자
14만 4천은 어디에 있으며 누구와 함께 있으며 이마에 무엇이 쓰여 있습니까? 1절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시온 산에 줄을 치십시오.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서 있는데." 시온 산에 14만 4천이 있습니다. 어린 양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시온 산에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14만 4천과 함께 계십니다. 시온 산이 어디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14만 4천은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항상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이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교회주의를 주장합니다. 나는 예수만 믿으면 되지, 공동체는 의미 없다고 합니다. 큰일 날 이야기입니다. 시온 산에 어린 양과 함께 14만 4천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와 함께 있으며 어린 양과 함께 있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우리가 볼 때는 엉망인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지금도 역사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14만 4천의 이마에 무엇이 써 있다고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이 써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까 우리가 13장에서 보았습니다. 짐승의 표를 어디에 받습니까? 이마나 오른손에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그냥 사는 자, 카토이케오하고 사는 자, 자신의 욕망을 좇아 살고 먹고 사느라 바빠서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가는 자는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습니다. 황제 숭배하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종 노릇 하다가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14만 4천으로 사는 자는 그 이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집니다.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명분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새겨져야 우리는 구원받는 것입니다. 옛날에 다윗이 전쟁하러 나갈 때 사무엘상 17장 4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거니와." 칼과 창과 단창이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카토이케오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좇아 사는 것입니다. 돈, 먹을 것, 육체적인 욕망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스케노오하는 사람들, 14만 4천에 속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하나님의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악을 이기고 죄를 이길 수 있는 놀라운 권세가 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이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이름, 그 명분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 이름이 밥 먹여 주느냐고." 그런데 그 이름이 밥은 먹여 주지 않아도 구원을 해 줍니다. 우리를 구원하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과 14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14절도 그렇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즉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붙들고 행하면 내가 그 모든 것을 행하여 주겠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대로 한번 해 보십시오.
2-3. 14만 4천의 특권과 특징
14만 4천 성도들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시면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14만 4천 성도의 특권은 영적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스케노오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욕망을 좇아 사는 가인 같은 사람, 라멕 같은 사람, 가인의 후손 같은 사람은 안 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안 들립니다.
3절에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여기서 '땅에서'는 '땅으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즉 땅으로부터 속량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땅이 무엇입니까? 땅은 한시적이지만 사탄 곧 용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용의 정체를 보았습니다. 복습해 볼까요? 용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첫째, 옛 뱀입니다. 옛 뱀이 두 가지 짓을 했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가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용의 정체 둘째는 온 천하를 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상적인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자꾸 인도하는 것입니다. 좁은 길로 가야 하는데 넓은 길로 가라 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라 하는데 영광의 길을 가라고 합니다. 또 용은 참소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땅입니다. 그런 용이 다스리고 사탄이 다스리는 땅으로부터 속량함을 받는 것입니다. 14만 4천이 말입니다.
우리가 어린 양의 피의 권세 아래 있으면,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어려워도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물질에 무릎 꿇지 않으면, 세속 권력에 무릎 꿇지 않으면 우리가 이런 용의 권세,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받습니다.
14만 4천 성도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우리는 참 속된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여자와 더불어' 하면 당장 무엇이 상상되느냐 하면, 기생집에서 술 먹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그런 것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상상하면 이 본문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맥락에서 여자는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그러면 교회와 함께라는 뜻입니다. 즉 14만 4천 성도들은 교회와 함께 있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14만 4천은 시온 산에 어린 양과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14만 4천은 교회와 함께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무엇에 더럽히지 않는 것입니까? 죄에 더럽히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 양이," 즉 예수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이것을 '아멘' 할 수 있습니까? 어린 양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갈 수 있습니까? 어린 양이 우리를 좋은 데로만 인도하면 '아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이 우리를 좋은 길로만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성도의 필수 과목이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이 우리를 고난의 용광로에 그냥 집어넣어 버리시는데, 그것을 따라갈 수 있습니까? 14만 4천이, 지금 이 편지를 받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성도들이 어린 양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든지 '아멘'하고 따라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이고, 저는 도저히 못 가겠습니다" 하면 곤란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편 23편 4절에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우리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넣고 "한번 가 봐, 너희가 괜찮으면 내가 갈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이 먼저 가십니다. 주님이 먼저 가시고 그러고 나서 "따라오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먼저 가서 이겨 놓으신 싸움이고, 주님이 먼저 가서 십자가 지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 따라와.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성령을 선물로 줄 테니까 따라오라." 그래서 우리는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뒤따라가면 됩니다.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우리의 소속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에게 속했고, 어린 양에게 속했습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이 중에 여러분은 몇 가지나 속해 있습니까? 지금 4절과 5절에 나오는 것들을 대입해 보십시오. 교회와 더불어 있는지,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지, 어린 양이 어디를 가자 하든지 '아멘'하고 따라가는지,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인지, 거짓말도 하지 않고 흠이 없고 순결한 자인지 한번 자신에게 대입해 보십시오.
3. 세 천사의 메시지
이제 세 분의 천사가 등장합니다. 천사는 계시록에서 길한 일을 하는 분도 있고 불길한 일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14만 4천 곧 스케노오하는 사람에게는 천사가 항상 반가운 존재입니다. 카토이케오하고 있거나 이 땅에 속해 있거나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 천사는 항상 불길한 존재입니다.
3-1. 첫째 천사: 복음 전파
세 분의 천사가 나오는데, 첫 번째 천사가 무엇을 가졌으며 어떤 말을 했을까요? 6절을 보겠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 이 다른 천사가 첫 번째 천사입니다 -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여기 또 '거주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제 우리가 이것을 하도 많이 해서, '산다' '거주한다' 하면 우리는 헬라어를 전혀 못 배워도 이것이 딱 떠올라야 합니다. 스케노오(σκηνόω)인지, 카토이케오(κατοικέω)인지 말입니다. 이것은 떠올라야 합니다. 스케노오가 무엇입니까? 영적 임재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카토이케오는 무엇입니까? 육으로 사는 것, 막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는 무엇일까요? '땅에 거주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땅에 거주한다면 카토이케오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또 다른 제3의 단어를 씁니다. '거주한다'는 제3의 단어가 무엇이냐 하면, 여기 나옵니다. 카데마이(κάθημαι)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입니다. 카데마이는 어중간한 상태를 말합니다. 거주하는데 확실히 세상도 아니고 확실히 하나님 나라도 아닌 회색 분자들이 있습니다.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니고,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고, 이쪽에 한 발 저쪽에 한 발 두고 사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첫 번째 천사가 날아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쯤 오면, 이미 카토이케오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짐승의 표를 받아 버렸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이제 기회가 없습니다. 지금 기회가 있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카데마이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받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자들입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 첫 번째 천사입니다 -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망설이지 말라, 빨리 너도 카데마이하지 말고 스케노오하는 자리로 건너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천사를 보내서 아직까지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받을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고 중간 자리에 있는 자들을 계속해서 설득하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계시록을 왜 무서운 책이라고 합니까?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복음적입니까?
3-2. 둘째 천사: 바벨론 심판 예고
두 번째 천사입니다. 8절에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첫 번째 천사를 따라 말했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무엇이 무너졌습니까? "큰 성 바벨론이여." 큰 성 바벨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로마입니다. 이것은 무너져서 무너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너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심판이 예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카데마이 상태에 있는 너희들이여, 그 로마 붙들고 살지 말고 속히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속하라, 스케노오의 자리로 올라오라, 14만 4천의 자리로 속히 들어오라, 이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음행이 무엇입니까? 바벨론이 행한 음행, 로마가 행한 음행, 우상 숭배하게 한 것입니다. 황제 숭배 말입니다. 황제의 우상 동상을 곳곳에 다 만들어 놓고 백성들에게 거기서 섬기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음행입니다.
'진노의 포도주'라고 했습니다. 원래 성경에서 요한복음 2장의 포도주는 기쁨입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 기쁨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때 포도주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계시록의 포도주는 피를 상징합니다. 포도주가 붉기 때문입니다. '진노의 포도주'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17장 2절도 역시 그렇습니다.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음행이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3-3. 셋째 천사: 심판 경고
이제 세 번째 천사가 한 말을 보겠습니다. 9절에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셋째 천사가 왜 이런 말을 할까요? 가정법으로 말할까요? 아직까지 카데마이 상태에서 '받을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으니까 "만일 누구든지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10절에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지옥에 가면 쉼이 있습니까? 지옥도 영생합니다. 지옥도 영생한다는 말입니다. 죽지 않습니다. 죽고 싶어도 타는 불에서 계속 괴로워하며 죽지 않습니다.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나오는 세 분의 천사가 무엇을 하러 온 것입니까? 카데마이 상태에 있는 자들, '할까 말까, 짐승의 표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자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천사가 전도하기 위해서 왔으니까, 누가 보낸 천사입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순간까지 세 분의 천사들을 통해서 이 땅에 망설이는 자들을 전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당연히 전도해야 합니다. 끝까지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 백성들의 사명입니다. 그것 말고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3-4. 주 안에서 죽는 자의 복
이제 12절과 13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장례식 때 많이 쓰는 본문입니다. 12절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인내를 지키다가 순교한 자들입니다.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아까는 짐승의 표를 받으면 밤낮 못 쉰다고 했습니다. 밤낮 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 죽으면 쉼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여기서는 순교를 의미합니다. 인내하다가 순교하는 자,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를 견디다가 결국 생명을 잃은 자, 이제는 하나님 품 안에서 영원한 쉼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쉼이 주 안에서 죽는 것, 진짜 순교하는 것만 주 안에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6장 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잘 보십시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내 자아의 죽음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내 옛 자아를 죽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내 자아가 죽으면 그다음 우리가 사는 것은 새 생명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죽는 것은 순교해서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순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자유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죽여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내 옛 자아입니다. 내 정욕, 탐심, 욕심, 이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계속해서 죽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죽으면 새 생명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한 부활을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4. 추수의 심판
4-1. 인자의 추수: 알곡을 거둠
14절입니다. 인자와 같은 이가 무엇을 가졌습니까?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인자면 인자지, '인자와 같은 이'는 누구일까요? 이분도 예수님입니다. 인자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니까 예수님처럼 보이는데, 이분이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면류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통치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통치하고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길합니까? 불길합니까? 예수님 손에 낫이 들려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농부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농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농부'라는 표현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자만 농부가 아닙니다. 농부는 마지막에 씨 뿌리고 추수까지 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농부를 씨 뿌리고, 김매고, 키워 주는 것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농부는 추수까지 합니다. 추수 때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가라지는 딱 뽑아내고, 알곡은 모아다가 창고에 들인다고 했습니다. 알곡은 천국 창고에, 가라지는 모아서 불태워 버린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농부이시니까 낫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제 봅시다. 세 천사가 또 등장합니다. 아까 앞에 나왔던 세 천사는 무엇을 했습니까? 카데마이 상태에 있는 자들을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 천사는 또 다른 일을 합니다.
15절에 "또 다른 천사가" - 첫 번째 천사입니다 -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 예수님입니다 -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 예수님이 -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예수님이 손에 낫을 들고 알곡을 거두신 것입니다. 첫 번째 천사가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거두십시오" 하니까 이제 완전한 심판이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가 이전부터 보았습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계속해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 분의 천사를 보내서까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카데마이 상태에 있다가 스케노오로 가지 않고 카토이케오로 가 버린 자들, 이제는 이들만 남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알곡을 다 거두셨기 때문입니다.
4-2. 천사의 추수: 진노의 심판
두 번째 천사입니다. 17절에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예수님이 알곡을 거두셨습니다. 천국 창고에 들이셨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천사가 예리한 낫을 가졌으니, 이 낫으로는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심판을 하시겠습니다.
18절에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 - 세 번째 천사입니다 -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포도는 좋은 개념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에서 포도, 포도주는 좋은 개념이 아닙니다. 피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포도가 겉보기에는 얼마나 탐스럽습니까? 익었습니다. 사람 보기에는 아주 멋지고 아주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알곡이 아니면, 사람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거두시는 알곡이 아니면 나머지는 다 모아서 짓밟아 터뜨린다고 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진노의 포도주 틀에 포도를 다 던졌습니다. 카데마이 상태에서 스케노오로 넘어오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아 버린 인간들, 이런 사람들 이제 어떻게 되었습니까?
심판의 결과를 보겠습니다. 20절에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 밟아 버린다고 했습니다 - "말굴레까지 닿았고." 굴레가 무엇입니까? 고삐를 당기는 입에 거는 줄을 굴레라고 합니다. 피가 튀겨서 말 입 근처까지 피가 튀겼다고 했습니다. 옆으로는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1600스다디온에 퍼졌더라." 1600스다디온, 스다디온을 보면 성경에 밑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로 되어 있습니까? 192미터 정도 됩니다. 이것을 계산해 보면 약 307킬로미터 정도 나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계시록의 숫자는 상징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1600은 4 곱하기 4 곱하기 100입니다. 4 곱하기 4 곱하기 10 곱하기 10입니다. 그런데 이 4라는 숫자가 땅의 수라고 했습니다. 사방, 동서남북이라고 했습니다. 피가 땅 전체로 다 퍼졌다는 뜻입니다. 사방 전체로, 4가 두 번 곱해질 만큼 온 땅을 다 적실 만큼 퍼졌습니다. 그러면 그만큼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은 자가 많았다는 뜻입니다. 진노의 포도주 틀에 놓고 밟았더니 사방으로 땅을 다 채울 만큼 널리널리 퍼져 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무시무시한 심판입니다.
이 심판이 구약에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63장 6절과 요엘 3장 13절을 한번 보십시오.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지금 '밟는다'는 표현이 여기서 온 것입니다.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요엘서를 보면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예수님이 낫을 가지시고 천사도 낫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구약이 그대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계시된 말씀이 요한계시록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13장과 14장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는데, 이것을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기대와 기다림이 그대로 녹아 있고, 그 기다림을 저버리고 걷어차 버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제 15장과 16장은 구원받은 성도들도 나오고 마지막 일곱 대접 심판도 나옵니다. 계시록에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이 나오는데, 다음 시간에는 15장과 16장을 보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기대하며, 오늘도 이 자리에 나와서 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짐승과 두 번째 짐승이 황제 숭배를 권하고 우리에게 예수님 아닌 다른 것들에 무릎 꿇게 하기를 원하나, 우리는 그 앞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순결을 굳게 지킨 14만 4천이 된 것처럼, 우리도 믿음의 순교자들의 뒤를 따라 믿음의 순결을 지키며 14만 4천 스케노오의 자리에 거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 길을 지켜 가서 한정된 고난의 시간을 견디고 이겨 내어, 장차 하나님 품에서 영원한 쉼과 안식을 누리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백 년도 되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가며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들, 밤낮 쉬지 못하는 지옥의 형벌을 당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하고 참된 길인지를 깨닫고, 우리에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 부르시는 그 말씀 앞에서 속히 돌이키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도 복음 전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