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특강 -11- 구원받은 성도들과 일곱 대접 심판 (15-16장)
요한계시록 16장 1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아멘.
오늘은 열한 번째 시간으로 요한계시록 15장과 16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이 17과까지 있는데 이제 절반을 훌쩍 넘어 열한 번째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다룰 내용은 일곱 대접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일곱 대접 심판의 의미
요한계시록에는 총 세 번의 거대한 심판이 나옵니다. 첫 번째가 일곱 인 심판이고, 두 번째가 일곱 나팔 심판이며, 오늘 살펴볼 세 번째가 실질적으로 마지막 심판인 일곱 대접 심판입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계속 공부하면서 살펴보았듯이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심판에는 하나님의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여섯 번째까지 일곱 인을 떼고, 6장에서 일곱 인이 나오는데 7장을 건너뛰고 8장에서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떼시는 심판이 나왔습니다. 일곱 나팔 심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은 유예했다가 한참 동안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며 하나님께서 돌아오기를 계속해서 시간을 두셨다가,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일곱 번째 나팔을 부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곱 대접 심판은 좀 다릅니다. 그냥 곧장 첫 번째 대접부터 일곱 번째 대접까지 15장과 16장에 완전히 한꺼번에 몰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이런 패턴을 보면, 심판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하나님도 기다리고 기다리시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심판을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1. 구원받은 자들의 노래
먼저 15장은 심판 전에 구원받은 성도들의 노래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는데, 심판 전에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을 안전지대로 피신시켜 놓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15장에 나옵니다.
15장 1절을 보시면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이라는 숫자는 계속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곱 명의 천사가 일곱 대접을 가졌다, 일곱 재앙을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천사도 완전하고 이 재앙도 이제는 완전한 재앙이라는 뜻입니다.
뒤에 이어서 나오지요. "곧 마지막 재앙이라." 명시적으로 마지막 재앙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친다는 말은 이제는 정말 무서운 불 같은 심판이 여기에 기다리고 있다,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각성하고 돌이키라 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의 말씀입니다.
1-2. 불이 섞인 유리바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새긴 자들이 이제는 구원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2절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자세히 보십시오. 짐승은 누구입니까? 국가권력, 로마 황제라고 하였습니다. 용은 사탄이고, 짐승은 용에게, 곧 사탄에게 권력과 권세를 받은 국가권력인 로마 황제입니다. 즉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은 승리한 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읽을 때 이것을 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가 이겼으니까요. 우리가 이긴 사람이니까요. 곧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어디에 서 있습니까? "유리바다 가에 서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유리바다는 이미 요한계시록 4장에 한 번 나온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의 유리바다와 지금 여기 15장에 나오는 유리바다가 좀 다릅니다. 자세히 보셔야 하는데, 지금 여기 2절에 나오는 유리바다는 불이 섞인 유리바다입니다.
불이 섞인 유리바다가 어떤 느낌일까요?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유리 위에, 공중에 뜬 유리 위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 전망대 같은 데 가면 강화유리로 이렇게 깔아 놓지 않습니까. 그것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거기를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데, 저 밑에는 바다입니다. 그런데 내 발밑에서 불이 타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나는 안전지대에 있고, 내 발 아래는 불이 붙어서 야단법석이 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이긴 자들, 짐승의 권세와 그 이름의 수를 이긴 구원받은 백성들은 안전한 곳에 있는데, 발밑에는 불이 타고 그곳에는 심판의 불꽃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4장 6절을 한번 보면 이전에 나왔던 유리바다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고…" 요한계시록 4장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도 요한이 올라가서 본 것입니다. 하늘에는 심판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늘에는 수정 같은 맑은 유리바다이고, 지금 여기 15장은 발밑에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는 곳에 성도가 안전한 곳에 거하고 있는 유리바다입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백성은, 짐승의 수를 이기고 세속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나는 구원받고 안전한 곳에 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3. 모세의 노래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절에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찬양하고 있는데,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입니다. 어린 양의 노래는 알 것 같습니다. 어린 양은 예수님이시니까 예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에는 이런 상징과 의미가 중요한데, 모세의 노래가 성경에 기록된 곳을 찾아서 읽어 봐야 합니다. 모세의 노래가 어디에 있습니까? 출애굽기 15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장면이 14장입니다. 14장에서 홍해를 건너고 15장에 가서 모세와 백성들과 미리암이 춤추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앞에는 홍해바다이고 뒤에는 이집트의 군대가 따라오는데, 이집트의 군대를 바다에 수장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지셨습니다. 여기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것이 모세의 노래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세의 노래는 승리한 자가 부르는 환희의 노래, 찬성의 노래입니다.
출애굽기 15장 1절을 보겠습니다. "이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시며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완료형으로 되어 있지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미 바다에 바로와 바로의 군대가 다 수장되어서 우리는 승리한 자가 되었다, 이겼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 밑에서 불이 타고 있는데 그 위에 유리바다 위에 서 있는, 안전지대에 속한 승리한 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이제 우리는 고생과 수고가 다 끝나고 이미 승리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수고와 내 고생과 지금까지 우리가 흘렸던 눈물은 다 지나간 과거 이야기가 되었고, 나는 다 승리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본 김에 6절도 한번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나이다." 주의 오른손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5장 12절에도 나옵니다.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오른손이라는 말이 자꾸 표현되는데, 성경에 나오는 오른손이라는 의미는 힘과 권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5장의 "주의 오른손"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셨다는 찬양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불이 벌겋게 타오르는 그 위에 유리바다 위에서 이제는 구원받아서 모세의 노래를 부른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권능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저 불꽃 가운데서 건지셔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미리암도 출애굽기 15장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0절과 21절을 보시면 이렇게 나옵니다.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시며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똑같지요? 미리암의 노래도 모세의 노래와 똑같습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받았다,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제 승리하고 이긴 자들이 노래한다는 뜻입니다.
2. 일곱 대접 심판의 준비
그다음 이제 일곱 대접 심판을 준비하는 과정을 한번 보겠습니다.
2-1. 증거장막의 성전
5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어디서 많이 들어 보셨지요? "증거장막성전"은 신천지의 초창기 이름입니다. 신천지가 처음 시작할 때 초창기 첫 이름이 "증거장막성전"입니다.
우리나라 이단들이 참 못된 것이, 좋은 이름은 다 가져갔습니다. 베뢰아 가져갔지요. 다락방 가져갔지요. 증거장막성전 가져갔지요. 그러니까 이것을 쓰기가 참 불편합니다. 이것을 쓰기가, 이미 그것은 이단이라고 우리 사고 속에 딱 굳어져 있기 때문에, "증거장막성전"이 얼마나 좋은 이름이고, "다락방", 그리고 베뢰아 사람들이 얼마나 신사적인 사람인데, 그런데 그것을 쓰기가 굉장히 불편해졌습니다. 이단들이 하는 짓이 도둑질입니다.
어쨌든 여기 "증거장막의 성전"이라는 말은 이렇게 보셔야 합니다. 증거장막 곧 성전입니다. 증거장막이 곧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증거장막의 성전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25장 16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니라." 증거판이 무엇입니까? 십계명의 두 돌판이 증거판입니다. 십계명의 두 돌판을 어디에 넣어 두었습니까? 원래 언약궤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것은 지성소에 있었지요.
그래서 증거판이 있는 곳이 곧 증거장막의 성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 곧 성전이라는 뜻이 됩니다. 민수기 10장 11절에도 이렇게 나옵니다. "둘째 해 둘째 달 스무 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즉 증거판이 있는 성막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 곧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이 증거장막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2-2. 심판의 주체
6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어디로부터 나왔습니까? 성전으로부터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무엇이 있었습니까? 증거판이 있는 성전이지요. 즉 말씀이 있는 성전에서부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왔습니다. 빛나고 맑은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심판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어디에서부터 나왔습니까? 성전에서부터 나왔습니다. 성전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이제는 일곱 대접 심판을 가지고 부을 텐데, 일곱 천사가 성전에서부터 나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주체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 무엇이 있습니까? 증거판이 있습니다. 증거판은 곧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천국이 있지요. 지옥이 있지요. 심판이 있지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그건 그냥 지어낸 이야기야, 그건 그냥 성경에 있는 옛날이야기야"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성전에서부터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 성전은 하나님의 언약인 증거의 판이 기록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심판의 주체가 되시고, 그 심판은 말씀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당연히 하나님이 사랑이시지요. 그런데 그 사랑을 우리가 남용하고 오용하고 그 사랑을 이용해 먹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니까 이래도 용서해 주시겠지? 저래도 용서해 주시겠지? 내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살아도 하나님은 또 기다려 주시고, 또 기다려 주시겠지?" 기다려 주십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돌아오라 돌아오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그렇게 회개하라 하시다가 마지막 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때까지 안 돌아오고 있으면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는 일곱 인, 일곱 나팔을 지나 일곱 대접 심판의 그 시작을 성전에서부터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두려운 말씀입니다.
2-3. 네 생물의 역할
7절에 보니까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이제 네 생물이 심부름꾼입니다. 하나가 진노를 담은 금 대접을 천사들에게 준 것입니다. 이제는 심판이 곧 시작되기 직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지금까지 요한계시록에서 네 생물이 했던 역할이 무엇인지 살펴볼 차례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9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그런데 그 생물들, 네 생물들이 무엇을 했다는 이야기입니까? 한마디로 예배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찬양하고 예배드렸습니다. 그러면 네 생물들은 원래 예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또 요한계시록 7장 11절과 12절을 보니까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역시 예배였습니다. 네 생물은 예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원래 착한 사람이 화가 나면 무섭습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 곁에서 예배를 돕고 예배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가, 네 생물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영원토록 타오르는 진노를 담은 금 대접을 천사들에게 주었습니다. 이제 여기서부터 심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3. 일곱 대접 심판의 전개
그다음 이제 일곱 대접 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잘 보셔야 합니다. 일곱 대접 심판은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뉩니다. 네 개와 세 개로 나뉩니다. 일곱 개이니까 앞에 네 개의 심판과 뒤에 세 개의 심판으로 나뉘는데 한번 보겠습니다.
3-1. 전반전: 자연계 심판
먼저 2절 한번 보십시오.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어디에 쏟았습니까? 땅에 쏟았습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땅입니다. 3절 보십시오.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어디에 쏟았습니까? 바다입니다. 땅과 바다가 무엇입니까? 온 세상입니다. 우리가 지난번에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셋째 천사가 어디에 쏟았습니까? 4절 보십시오.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어디에 쏟습니까? 강과 물 근원입니다. 이제 바다에서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갑니다. 강과 물 근원이면 사람들이 마실 수 있겠습니까? 못 마십니다.
또 넷째 천사가 어디에 쏟았습니까? 8절 보십시오.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어디에 쏟습니까? 해에 쏟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땅, 바다, 강과 물 근원, 해. 자연계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 만물과 자연계를 심판하셨습니다. 강과 물 근원, 해에 부었습니다. 해가 빛을 잃을 것 아닙니까? 강과 물 근원, 사람이 물을 못 마시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땅과 바다, 온 세상. 이제 여기는 심판에서 피할 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일곱 인을 뗄 때는 몇 분의 몇이 죽었습니까? 4분의 1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나팔을 불 때는 3분의 1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는 퍼센트도 없습니다. 비율도 없습니다. 땅, 바다, 강과 물 근원, 해. 심판의 강도가 갈수록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하나 보겠습니다. 1절을 봅니다.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났습니다. 누가 하시는 소리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당신의 천군 천사들에게 명령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의 주체는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진노의 일곱 대접을 어디에 쏟습니까? 땅에 쏟습니다. 땅은 누가 통치하는 영역입니까? 사탄이 일시적으로 통치하는 영역입니다. 사탄이 권세를 부여받아서 일시적으로 42달 동안, 1260일 동안, 한때 두때 반때 동안 사탄이 다스리고 있는 그곳에 진노의 일곱 대접을 쏟는 것입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하셨지만 돌이키지 않는 자들에게 말입니다.
첫째 천사가 대접을 쏟은 장소와 결과가 어떠합니까? 2절을 보겠습니다. "첫째 천사가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첫 번째 타깃이 누구입니까?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 한때 좋았지요. 상인조합 길드에도 가입하고, 사회적인 대접도 받고, 잘 먹고 잘 살고, 로마의 시민으로서 어디를 가든 대우받고 대접받고 살았지요. 그런데 결국은 세상에서 권력 누리고 세상에서 인정받은 사람들, 짐승의 표 받고 로마 황제에게 굴복하고 황제 숭배한 자들이 결국은 마지막 진노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첫 번째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배교한 자들, 하나님을 떠난 자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무릎 꿇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이렇게 심판하십니다.
둘째 천사가 대접을 쏟은 장소는 어디입니까? 3절입니다.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바다의 생물이 죽으면 그 바다에서 나는 어떤 음식도 고기도 먹을 수가 없게 되겠지요.
셋째 천사가 대접을 쏟은 장소는 어디입니까?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이집트에서 행하신 열 가지 재앙이 막 생각나지요? 거기도 독종이 있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 중에 말입니다. 그리고 나일강이 피같이 변한 재앙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흑암 재앙도 나옵니다.
결국 이집트에서 행한,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주신 열 가지 재앙은 심판날, 종말의 때에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편입니다.
3-2. 예배의 의미
우리가 출애굽기를 보면 출애굽의 명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 할 때 명분이 무엇이었습니까? 예배였습니다. 내 백성이 사흘 길을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하오니, 절기를 지키려 하오니, 이 백성을 보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그것을 막았습니다. 끝까지 막습니다.
예배를 막으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심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란 그냥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그냥 찬양하고 말씀 듣는 것 같지만, 예배란 하나님께만 무릎 꿇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게 무릎을 꿇는 것 아닙니까?
종말의 때가 되면 몸만 여기 와서 예배드린다고 있을 뿐, 내 마음과 영혼과 내 모든 것들은 다른 데 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예배가 하나님께만 무릎 꿇는 행위라는 사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3-3. 하나님의 심판을 찬양함
셋째 천사가 특별한 말을 합니다. 5절에서 7절을 보시면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물을 차지했다는 말은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은 천사라는 뜻입니다. 셋째 천사이지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찬양하지요.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고 하였습니다.
계속 보겠습니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셨사오니 이는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하나님의 심판이 찬양받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보면 십자가에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 이 두 가지가 십자가에 동시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죄는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하시는데 죄 지은 인간은 벌 줘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까요. 그 인간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대신에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가 동시에 나타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도 찬양받으셔야 합니다. 사랑도 찬양받으셔야 하고, 우리는 사랑 많으신 하나님만 자꾸 이야기하는데, 하나님의 심판도 찬양받으실 이름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합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오냐오냐 하며 기르기만 하면 그 자식이 사람이 됩니까? 당연히 초달도 하고 혼도 내야 합니다. 양면성이 있습니다. 두 가지가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 셋째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찬양하는 자가 되려면 내가 심판에서 자유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발밑에는 불이 타고 있어도 나는 그 유리바다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마음껏 찬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심판당하고 있는데 내가 그 심판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나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임당하셨는데 얼마나 귀하고 고맙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자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표현입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3-4. 제단의 고백
7절에 보면 특별한 표현이 나옵니다.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제단이 무엇입니까? 번제단입니다. 구약의 번제단은 제물을 올려놓는 제단입니다. 제단이 말을 합니다. "그러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셨다는 뜻입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제단이 말을 했네요. 그런데 이것은 성경에 짝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9절에서 11절과 함께 닿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9절에서 11절은 일곱 인 심판 중에 다섯 번째 인을 뗄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보겠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누구입니까?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자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10절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하나님, 억울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순교당하고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 와 있는 자이지만, 그러나 저 땅에 있는 저 악한 자들을 하나님 언제 심판하시렵니까? 이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순교자들에게 그때 어떻게 이야기하셨습니까?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때가 아직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언제 있었던 이야기입니까? 일곱 인 심판 가운데 다섯 번째 인을 떼실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 성취됩니까? 이제 일곱 나팔을 지나서 일곱 대접 심판의 세 번째 천사가 강과 물 근원에 대접을 쏟고 나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억울함, 내가 나 애매한 고난을 당하고,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고난당하며 사는 이 모든 억울함을 하나님이 언젠가는 반드시 풀어 주십니다.
지금 여기 순교자들이 "하나님 어느 때까지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다리라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응답됩니다. 기다리라 하시니까 일곱 번째 인을 뗄 때까지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고, 일곱 나팔 불 때까지 기다려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일곱 대접 심판의 세 번째 대접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응답되고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뜻입니다.
3-5. 해의 재앙과 회개
그다음 넷째 천사가 대접을 쏟은 장소가 어디입니까? 8절에 보니까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해가 사람들을 태웁니다. 사람들이 해에 타 죽습니다.
9절 보십시오.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타 죽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그런데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여기 "재앙들"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재앙들"이라는 것은 네 번째 대접 재앙만 말하는 것입니까, 앞에 나왔던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대접까지를 다 포함하는 말입니까?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제 전반전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독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땅에 대접이 부어지고, 바다에 대접이 부어지고, 강과 물 근원에 대접이 부어지고, 해에 대접이 부어져서 해가 사람을 태웠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습니다.
마치 바로가 자기 아들이 죽을 때까지, 장자의 죽음으로 온 이집트가 곡소리가 날 때까지 회개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런 일이 일어나고 벌어집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항상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조금 거꾸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어 있지요.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이 말은 하나님의 본심은 지금이라도 돌이키고 지금이라도 뉘우치면 내가 너희를 건져 주겠다는 말이 함의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역설적으로 말입니다.
부모가 그렇지요. 부모가 자녀가 막 나쁜 짓을 해 가지고 혼냅니다. 회초리도 때리고 혼내고 그럽니다. 그런데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너는 끝까지 어떻게 잘못했단 말 한마디도 안 하니?" 그 말은 무엇입니까? 거꾸로 말하면 "엄마 잘못했어요", "아버지 잘못했어요" 한마디만 하면 그러면 없던 것으로 하고 안아 주고 다 용서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거기 포함되어 있는 말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마지막 일곱 대접 심판이라고 말씀하시고 전반전 네 번째 대접 심판까지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것 때문에 절망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해도 회개하지 않는 너희들, 그 너희들의 영혼을 내가 어떡하면 좋으냐. 하나님의 그 낙심과 절망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생각해 보십시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총 21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총 21번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 아닙니까? 큰 재앙이 계속 일어나면서, 우리 인생에도 7이라는 수가 완전한 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회는 우리에게 어쩌면 무한정하게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깨달으셔야 합니다.
4. 후반전: 사탄의 본거지 심판
이제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으로 들어갑니다.
4-1. 다섯째 천사의 심판
다섯째 천사가 대접을 쏟은 장소는 어디입니까? 한번 훑어보겠습니다. 먼저 10절 보십시오.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어디에 쏟습니까? 짐승의 왕좌입니다." 짐승이 누구입니까? 국가권력 로마 아닙니까? 이제 로마에 직접 타격을 하시는 것입니다.
12절 볼까요? 여섯째 천사가 어디에 쏟습니까? 큰 강 유브라데입니다. 이것은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그리고 17절 보십시오.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어디에 쏟습니까? 공중에 쏟습니다. 공중이 어디입니까? 우리가 사탄이 어디에 권세를 잡았다고 합니까? 공중에 권세 잡았습니다. 사탄의 통치 영역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천사는 사탄의 본거지를 집중 타격하는 것입니다. 전쟁할 때 주변을 치는 타격이 있고, 저 핵심 본거지를 집중 타격하는 것이 있습니다. 미사일을 쏘든 로켓을 쏘든 무엇을 어떻게 하든, 지금 이제는 마지막 심판으로 가니까 사탄의 본거지를 직접적으로 들어가서 타격하고 파멸하고 끝장내는 것입니다.
하나하나 보겠습니다. 10절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짐승의 왕좌, 로마가 곧 이렇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어두워진다, 흑암 재앙이 생각나십니까? 나라가 어두워진다는 말은 국운이 기운다는 뜻입니다. 이 나라가 이제는 끝났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문다, 괴롭다는 뜻입니다. 국가의 국운이 기울면 어떻게 됩니까? 경제적으로 힘들고 몸이 힘들고 팔려가고 끌려가고 포로될 것 아닙니까?
11절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출애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 10장 21절에서 23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이집트의 흑암은 특별한 의미입니다. 이집트라는 나라가 태양신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바로는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흑암이 있습니다. 그러면 신이 왕을 불신임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세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한 이후에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하나님의 권능이 바로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22절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이것은 그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일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신으로 섬기던 바로가 하나님의 권능을 대적하지 못하는가?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 아닙니까.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 빛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빛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닌 곳에는 저주와 흑암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장소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내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구원받았다, 내가 있는 곳에는 무조건 빛이 있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태복음 8장 12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본 자손들이 누구입니까? 유대인들입니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유대인들이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다고 하였네요.
이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이야기냐 하면, 마태복음 8장 12절 앞에는 백부장의 믿음이 나옵니다. 백부장이 자기 하인이 병들었습니다. 예수님께 왔습니다. "주님 우리 집에 하인이 병들었습니다. 고쳐 주십시오." 예수님이 "가자, 앞장서라, 내가 가서 고쳐 주마." 그때 백부장이 뭐라고 합니까?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그때 예수님이 깜짝 놀라셨습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인의 병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오직 믿음이 있는 자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게 될 것이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곳에만 빛이 들어왔다는 이 이야기는, 종말의 때에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빛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예수 3대 4대 믿어서 우리 부모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내 아내가 예수 잘 믿어서 내가 그 치맛자락 붙들고 천국 간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 잘 믿고 믿음생활 잘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짐승의 표 받지 않고 예배드리는 백성이 되면, 그러면 그에게는 빛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도 예수님이 빛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혈통 이야기하신 적 있습니까? 예수님이? 몇 대 예수 믿어야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적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하셨으니까, 그 사람이 이방인이든 그 사람이 죄인이든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든 그런 것 상관없습니다. 예수님 따르면 그것이 곧 빛입니다.
다섯째 천사가 짐승의 왕좌를 박살냈습니다.
4-2. 여섯째 천사의 심판
여섯째 천사에 다룰 것이 좀 있습니다. 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쏟은 장소가 어디입니까? 12절 보니까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유브라데는 앞에도 나왔습니다. 유브라데가 로마와 파르티아를 가르는 국경입니다. 파르티아는 페르시아의 후손들입니다. 기마 족속입니다. 로마가 유일하게 겁냈던 족속이 파르티아 족속입니다.
그런데 큰 강 유브라데에다가 여섯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아 버렸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강물이 말라 버렸네요. 원래는 그 강 때문에 파르티아 군대가 국경을 넘어서, 유브라데강을, 유프라테스강을 넘어서 로마로 진군해 들어오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여섯 번째 천사가 대접을 쏟음으로 강물이 말라서 파르티아 군대가 자기 멋대로 넘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로마가 박살나기 일보 직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브라데가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4-3. 세 더러운 영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13절에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더러운 영이라 하였습니다. "개구리 같은 것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용의 입은 무엇입니까? 용은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 알지요. 더러운 영, 사탄의 입은 당연히 더러운 영 아닙니까? 사탄에게 권세를 받은 누구입니까? 짐승, 국가권력입니다. 더러운 영이 용의 입에서도 나오고 국가권력의 입에서도 나오는 것까지는 우리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 세 더러운 영 중에 누가 있습니까?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 요즘으로 말하면 양의 탈을 쓴 나쁜 목회자 아닙니까?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용의 입,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영이.
그런데 이 더러운 영을 가지고 있는 나쁜 거짓 선지자를 우리가 어떻게 분별합니까? 도대체 어떻게 말입니다. 히틀러 시대를 보면 히틀러가 국가권력을 찬탈했습니다. 히틀러가 악한 자 아닙니까? 그런데 그 당시 독일의 국가교회가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독일교회 목회자의 95퍼센트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히틀러가 장차 올 메시아라고 버젓이 이름 적어 놓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독일이 어떤 나라입니까? 철학의 나라 아닙니까? 사유가 깊고 풍성한 나라 아닙니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아주 탁월한 학자들, 철학자들, 신학자들이 거의 다 히틀러에 동조했습니다.
그런데 고백교회 운동을 벌였던 목회자들 몇 분이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본회퍼 목사님입니다. 본회퍼 목사님이 1941년도에 히틀러 암살 모임에 가담합니다. "미친 운전사론" 들어 보셨지요? 거기에 가담해서 암살하겠다고 본인이 거기에 서명을 하고 가담합니다. 그러다가 1943년에 체포되지요. 그리고 1945년에 서른아홉의 나이로 처형됩니다. 순교하신 것이지요.
서른아홉의 나이에 히틀러를 반대하는 독일 고백교회의 본회퍼 목사님 같은 분들이 몇 분 안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참된 선지자인데, 숫자로 보면 거짓 선지자가 95퍼센트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할 때 교단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했습니다. 98퍼센트가 넘습니다. 일제 신사에 가서 집단으로 가서 거기에 무릎 꿇고 엎드린 사람들이 숫자적으로 보면 누가 거짓 선지자인지 누가 참 선지자인지 분별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성도들은 내가 영을 분별하고 내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자기 자립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냥 목사님 말이니까 다 옳겠지, 목회자 말이니까 다 옳겠지,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가다 보면 나도 거짓 선지자에 미혹되어서 그것이 악한 길인지도 모르고 죽음의 길인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것 기억하셔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거짓 선지자, 예레미야 시절의 선지자들이 많았습니다. 남유다가 망할 때 예레미야 선지자 딱 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 그 사람 혼자 제대로 된 선지자이고 나머지 거의 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기 나옵니다. 예레미야 20장 1절과 2절입니다.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성전 총감독이라 하였습니다. 지위가 얼마나 높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의 총감독, 대장입니다. "그가 예레미야가 이 일을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 일"이 무엇이냐 하면 남유다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남유다가 망하지 않게 하려면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라.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이 그렇게 싫으면 시대의 흐름이라도 읽어라. 이집트가 아니라 바벨론이 대세다. 이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왕실은 친이집트파가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절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윗문에 목에 씌우는 나무 칼을 채워 두었더니…" 굴욕을 준 것입니다. 그가 무엇이라 하였을까요? 예레미야처럼 이런 거짓 예언을 하면 이렇게 된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 민족을 망하게 하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그것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예레미야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레미야 20장 7절에서 9절입니다. 너무 치욕스러웠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시므로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매일 조롱하니까, 혼자 남아 있으니까요.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포악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조롱거리가 되오니…" 사람들이 다 비웃으니까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런 선지자가 참 선지자임을 분별하려면 우리가 말씀에 굳게 서야 합니다. 성경 열심히 읽고 분별하고 그래야 종말의 때를 우리가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4-4. 귀신의 영과 이적
이 더러운 세 영이 어떤 짓을 하는지 보십시오. 다시 돌아와서 14절 보면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하였습니다. 용의 입,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 귀신의 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어떤 짓을 합니까? "이적을 행한다" 하였네요. 이적을 행합니다. 놀랍지요? 이래서 사람들이 미혹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도 병 고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도 방언합니다. 거짓 선지자도 치유합니다. 손대고 안수하면 병이 낫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말입니다. 히틀러가 얼마나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까? 히틀러가 독일 백성들의 마음을 한꺼번에 다 사로잡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보이는 것이 진짜 위험한 것입니다. 내 병 낫는다고 내가 거기 가서 머리 들이대고 안수받아서 방언 터진다고 저분이 참 선지자라고 쫓아가고 따라가면 망하기 십상입니다. 이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권능도 주고 이적도 행하고 병 고치고 각종 기사와 이적 다 행합니다.
무당들 작두 타는 것 보십시오.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에서 발에 피 하나 안 나고 작두 탑니다. 멀쩡하게 이적을 행합니다. 더러운 영이. 사탄도 권세를 부립니다. 이집트의 술사들이 지팡이 집어던져서 뱀으로 만들고 그것 잡아서 다시 지팡이 만듭니다. 모세도 그것 했지만 똑같이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별하는 것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분별의 근거가 되는 것이지, 이 사람이 이적을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 이 사람이 권능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사탄도 그런 이적을 행합니다.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귀신이 하는 짓입니다.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하나님과 대적하려고요, 전쟁하게 합니다. 이 더러운 입들이, 용의 입,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온 천하 왕들을 모아서 그들이 한꺼번에 다 멸망당하도록 모읍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서면 됩니까, 안 됩니까? 큰일 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는 것인데 말입니다.
4-5. 깨어 있으라
그래서 어떻게 하라 하였습니까? 15절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깨어 있으라 하였습니다. 말씀 위에 서 있으라고요.
우리가 로마서를 공부했는데, 옷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로마서 13장을 보셔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서 14절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품위를 지키자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빛의 갑옷을 입고 살라는 뜻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래야 저 적그리스도, 더러운 세 영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미혹되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쟁터에 서게 됩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4-6. 아마겟돈(Ἁρμαγεδών)
16절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Ἁρμαγεδών)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아마겟돈 많이 들어 보셨지요? 아마겟돈이라는 말 때문에 여러 해석들이 있는데,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르(הר) 더하기 므깃도(מגדון), 혹은 이르(עיר) 더하기 므깃도입니다. 하르는 산,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이르는 도시라는 뜻입니다. 즉 므깃도라는 산, 므깃도라는 언덕, 므깃도라는 도시라는 뜻입니다. 므깃도 앞에 하르 혹은 이르가 붙은 단어입니다.
므깃도가 어디입니까? 므깃도가 전쟁이 많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역사적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마겟돈을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어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전혀 성경적인 해석이 아닙니다.
이것이 스가랴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가랴 12장 9절에서 11절에 있는데, 잘 보십시오. 9절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하나님이 멸한다고 하였습니다. 11절 보십시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닷 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이것 때문에 이 말씀이 그대로 요한계시록에 와서 아마겟돈이 된 것입니다. 므깃도라는 언덕, 므깃도라는 산, 므깃도라는 도시 다 말이 됩니다. 므깃도가 도시이기도 하고 높은 언덕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르므깃도, 이르므깃도라고 아마겟돈을 부릅니다.
여기서 여섯 번째 천사가 대접을 붓는 것은 우리가 굉장히 유의 깊게 보셔야 되고 마음에 깊이 새겨 놓으셔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숫자 많은 대로 따라가서 그것이 참인 줄 알고 옳은 줄 알고 따라가면, 독일 국가교회가 히틀러에게 경배한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목사들이 신사참배 다 동의한 것처럼, 95퍼센트의 성도들이 거기 가서 엎드린 것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설 수도 있습니다. 정신 차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집 짓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4-7. 일곱째 천사의 심판
마지막 일곱 번째 천사입니다. 17절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공중은 사탄이 다스리는 영역이라 하였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 말입니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누가 하신 말씀입니까? 성전에서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무엇이라고요?
"되었다."
되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끝났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단어가 있지요. 기노마이(γίνομαι), 다른 뜻으로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하신 마지막 말씀 "다 이루었다"입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그 말씀을 마지막 일곱 번째 대접을 붓고 하나님이 보좌에서 하셨습니다. "되었다. 끝났다."
이제는 모든 공중의 권세자인 사탄까지 심판했습니다. 그러면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이제 다 악을 심판했으니 우리는 이제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다, 너희는 걱정 없다, 승리했다라는 뜻 아닙니까?
18절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은 로마입니다.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진노의 포도주, 지난주에 살펴보았지요. 피가 튀기는 것, 진노의 심판의 포도주 말입니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한 달란트가 성경 밑에 보면 몇 킬로그램으로 되어 있습니까? 60킬로그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60킬로그램 되는 우박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이것은 뭐 상상도 하기 싫지요.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끝까지 회개하지 않지요. 끝까지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마치 열 가지 재앙을 받았던 바로처럼 말입니다.
결론
오늘 이 일곱 가지 일곱 대접 심판을 통해서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이 심판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자비가 끝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사실도 은혜가 되는 줄로 압니다. 여섯 번째 천사가 행한 여섯 번째 대접 심판을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습니다.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에 세워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 것인지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아서 불이 비치는 유리바다 위에 서서 모세의 노래를 부르며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심판이 성전에서부터, 보좌로부터 나온다 하셨사오니 심판하시는 주님을 우리도 천사들처럼 찬양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의 탄원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말씀 약속하신 바를 이루심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억울함과 우리의 신원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마음의 고통들을 응답해 주실 줄로 믿고 의지합니다.
주님, 또한 우리가 더러운 세 영에 미혹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언제나 깨어서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뿌리내리고 집 짓고 살아가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지 않도록 도우시고, 아마겟돈의 그 무시무시한 전쟁에 속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서 진리의 말씀을 수호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