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특강 13 - 바벨론의 멸망 (18장)
요한계시록 18장 6절 말씀입니다.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아멘.
오늘은 요한계시록 열세 번째 시간입니다. 계시록이 22장까지 있는데, 오늘 18장을 공부합니다. 이제 거의 끝이 보이는 시점까지 왔는데, 지난주에 처음 시작할 때 지금까지 달려왔던 것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들어갔습니다. 오늘도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기억이 나실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반복해서 보다 보면 계시록 전체 얼개와 흐름, 그리고 장별로 어떤 주제를 다루었는지를 마음속에 넣어두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1장을 공부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읽는 것과 듣는 것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를 1장에서 받고, 2장과 3장에서는 요한계시록을 받는 수신자 되는 교회, 일곱 교회가 무엇 때문에 책망받고 어떤 이유로 칭찬받았는지 그 교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제 4장부터 본격적인 계시가 나오는데, 이 편지를 쓴 사도 요한이 올라간 하늘이 어떠했는지, 그 하늘에 올라가 보니까 이십사 장로가 있고 보좌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 보좌에 좌정해 계셨던 모습을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크게 세 가지 심판이 나오는데, 5장과 6장에는 일곱 인 심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일곱 인 심판에 처음부터 일곱 번째 인까지 한꺼번에 나오지 않고, 일곱 번째 인은 7장을 건너가서 8장에 숨겨두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유예되는 기간이었고, 이 기간 동안 전도하고 회개하고 돌이킨 자를 용서해 주시겠다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7장에는 십사만 사천이 나왔는데, 우리는 이제 십사만 사천이라고 하면 숫자가 아니고 상징 체계이며 12 곱하기 12와 천의 숫자의 조합이라는 것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과 9장에는 일곱 나팔 심판이 나왔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곱 나팔이 1번부터 일곱 번째까지 순식간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을 불 때 심판은 11장에다가 숨겨뒀습니다. 10장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펼쳐진 작은 두루마리입니다. 그래서 종말이 오기까지, 일곱 번째 나팔을 불기까지 두루마리 즉 성경 말씀을 읽고 말씀에 적힌 대로 행해서 돌이키고 회개하라, 그러면 용서해주겠다 하신 하나님의 뜻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1장에 가면 두 증인이 나옵니다.
두 증인이 결국 순교하게 되는데, 두 증인과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이 나오며, 여기서 여자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용은 사탄입니다. 13장과 14장에 가면 두 짐승이 나옵니다. 두 짐승 하면 짐승은 국가 권력이고, 십사만 사천이 또 나왔습니다. 계시록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유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계속 반복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중요한 십사만 사천을 계속 익히고 마음에 새겨야 됩니다. 그리고 15장과 16장에 가면 세 번째 큰 심판이 나옵니다. 일곱 대접 심판입니다. 이제는 여지가 없습니다.
이전에 일곱 인, 일곱 나팔 심판은 마지막 일곱 번째는 뚝 떨어뜨려 놓아서 회개할 기회를 줬는데, 일곱 대접 심판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냥 무차별로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난주에 봤던 바벨론과 심판, 이 바벨론은 로마 제국을 말한다고 했고, 이 로마 제국이 결국 심판당하는 것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18장을 공부하는데, 18장 오늘의 주제가 바벨론의 멸망입니다. 이제 로마가 결국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을 가지고 계시록을 보면 계시록이 전혀 복잡하지 않습니다. 큰 숲을 보고 그 숲 사이에 들어가 있는 작은 나무들을 살펴보면, 그 나무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중요한 용어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살다'라는 표현, 기억나시죠?
스케노오(σκηνόω)도 있었고, 스토이케오(στοιχέω)도 있었고, 카토이케오(κατοικέω)도 있었고, 카테마이(κάθημαι)도 있었습니다. '살다'라는 세 가지 단어에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 세 가지 단어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디테일도 놓치지 말고 계속 반복하면 계시록을 공부하는 충분한 유익이 있습니다.
1. 천사의 선포
첫 번째 질문을 보겠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무엇을 외쳤습니까? 1절에서 3절까지인데, 1절 보시면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습니다." 천사가 큰 권세를 가졌는데, 이제 계시록 후반부 쪽으로 오니까 천사가 큰 권세를 가졌다 하는 것은 심판의 권세입니다.
이제 천사는 큰 심판의 권세를 가졌는데,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심판인데 땅이 환하여진다고 했습니다.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원래 우리는 심판의 이미지를 그리면, 영화를 보건 책을 보건 어둡습니다. 두렵고 무섭고 캄캄하고 피가 흐르고, 그런데 여기 이미지는 땅이 환해진다고 했습니다. 심판에서 땅이 환해진다니, 누구의 시점입니까? 심판당하는 사람의 입장, 죄 지은 사람의 입장입니까? 아니면 심판하는데 빨리 이 심판으로 땅을 심판해 버리고 나도 하나님 나라에 이제는 좀 편안히 들어가서 쉬고 싶다 하는 성도의 입장이겠습니까? 성도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큰 권세를 가지고 심판하시는데 땅이 환해진다, 이 시점은 성도의 시점입니다.
심판은 항상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데, 악인에게는 두려운 날이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아주 행복하고 환한 날입니다. 우리는 심판이 기대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심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고 두렵고 떨리면 이건 좀 곤란합니다. 신앙생활 이제 이만큼 하셨으면, 심판이라 하면 "아, 나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예수님을 보내시고 주님께서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 소리로 공중에 구름 타고 나타나셔도 나는 지금 예수님 만나도 천국 갈 수 있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셔야 됩니다. 종말의식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 천사가 나타났는데 땅이 환하여지더라, 믿는 사람 입장에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천사가 어떤 말을 했을까요? 2절 보시면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무엇이 무너졌습니까? 큰 성 바벨론입니다. 여기서 바벨론은 로마 제국이라고 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무너졌다고, 이미 무너졌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 입장에서는 아직 안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무너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일까요? "그렇구나.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구나. 악의 세력은 무너지고 악의 권세는 무너지고, 이제 이 땅이 환하게 밝아질 그날이 곧 도래하겠구나." 이런 기쁜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바벨론을 설명합니다.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우리가 이런 구절을 읽으면 몇 주 전에 한 것이 생각이 딱 떠오르면 좋습니다. 어떤 말씀이 기억이 납니까?
지난번에 한 것, 16장 13절과 14절 말씀이 기억이 나야 됩니다.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우리 공부했습니다. 세 더러운 영이라 했는데, 어떤 영이 세 더러운 영입니까? 용의 입, 용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입, 용에게 권세를 받은 국가 권력이 짐승의 입입니다. 또 거짓 선지자의 입, 용과 짐승에게 붙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악한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 옛날 예수님 시절에 악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 남유다가 망할 때 성전에서 자기의 야욕을 채우고 있었던 악한 거짓 선지자들,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어떤 일을 합니까? 이적을 행합니다. 귀신도 이적을 행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별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이것이 바벨론입니다. 이것을 다시 반복해서 지금 여기 2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로마 즉 바벨론은 어떤 곳입니까? 귀신의 처소라 했습니다. 각종 더러운 영, 이제 우리는 더러운 영이라 하면 세 영을 떠올려야 됩니다. 용의 입,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입니다. 용이나 짐승은 사탄이고 국가 권력이니까 당장 분별이 됩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의 입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입, 이 더러운 영을 우리가 분별해 내기가 아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분별의 영을 달라고 기도해야 함은 물론이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단독자로 살아갈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됩니다. 성도는 자립 신앙을 길러야 되고,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말씀으로 마주할 수 있는 개인 실력을 길러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선지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일 때 나도 모르게 악한 사람이 돼버립니다. 나중에 보니까 그 사람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내 영은 이미 오염됐습니다. 어떡할 것입니까? 그때 가서 분별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종말이 가까이 올수록 3절을 봅니다. 또 바벨론이 어떤 곳이냐,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음행이라고 하는 것을 계속 반복해서 얘기했습니다. 계시록에서 음행은 성적인 음행도 물론 포함되지만, 우상숭배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왕국이 무너졌고,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왕들이 누굽니까? 로마는 중앙집권체제이면서 동시에 지방분권이라고 했습니다. 식민지를 왕이 직접 가서 다스리지 못하니까 총독을 파송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땅의 왕들은 보낸 총독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더불어 음행했습니다. 총독들이 황제 숭배를 부추겼습니다. 황제의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숭배하면 짐승의 표를 주고 매매하고 상인조합 길드에도 가입시킨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지금 바벨론이 행한 악행을 총정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다 공부한 것입니다.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땅의 상인들입니다.
이 상인들은 로마를 배경으로 잘 먹고 잘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로마가 얼마나 사치했습니까? 그러니까 상인들이 거기서 부를 누렸겠지요. 그런데 바벨론이 망했습니다. 상인은 어떻게 됩니까? 바벨론이 망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주변에 보냄받은 총독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도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과 죄인과 같이 가다가 벼락 떨어지면 나도 맞을 확률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누구누구와 함께 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시편 1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악인, 죄인, 오만한 자,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와 결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상종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내가 아무리 먹고사는 게 급해도, 내가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해도 이런 인간들과는 함께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금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 1절을 보면 따르다, 그리고 서다, 앉다, 따르는 것은 적극적으로 가는 것입니다. 서는 것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앉는 것은 아예 자리 잡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도 도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심판받을 때 나도 도매금으로 넘어가서 나도 함께 심판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말세가 가까이 올수록 성도의 영적인 순결이 몹시 중요합니다. 영적 순결, 이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돈 많이 벌고 건강하고 자녀 잘 되고 번성하고 이런 것이 아니고, 악인, 죄인, 오만한 자 따르지도 말고 서지도 말고 앉지도 말라, 상종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2. 마지막 회개의 촉구
두 번째 질문입니다. 멸망 가운데 회개를 촉구하는 소리를 기록해 보십시오. 참 하나님께서 놀라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계시록을 보면서 우리는 계속 살펴봤습니다. 계시록이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무서운 책인 줄 알았는데 심판을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유예하셨습니다. 일곱 인 심판 때도 그랬고, 일곱 나팔 때도 그랬고, 지금 여기 멸망의 도성 로마 제국이 망하는데도 그 망하는 중에도 하나님이 한 번 더 마지막 목소리를 내시는 것입니다. 이것 진짜 마지막입니다.
4절 보십시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이것은 천사의 소리가 아닙니다. 지금 앞에 1절, 2절, 3절은 천사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소리가 아닙니다. "내 백성아" 하나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거기서 납니다.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눈물 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마지막 멸망하는 도성, 바벨론 로마 제국에서도 마지막 심판을 손에 쥐면서까지 말씀하시는 것이 "내 백성아" 하시는 소리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멸망당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하나님이 이렇게 간절한데 우리는 전도에 대해서 별로 간절하지 않습니다. "아, 뭐 어차피 죽을 놈 죽고 살 놈 살겠지"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굉장히 간절하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 있지 말고 빨리 빠져나오라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천사를 보내서 롯과 그의 가족을 구출해내십니다. 급하니까 유황불과 불비가 막 떨어지는데 건져내십니다. 누구 때문에 그랬습니까? 아브라함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롯과 그 가족은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인간들인데, 기도하고 기도하고 계속 중보하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 낯을 봐서 그 조카 롯을 거기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노아 홍수 심판 때도 120년을 기다렸습니다. 120년, 자그마치 120년입니다. 그런데 방주의 문을 닫기 전 하나님은 또 7일을 더 기다립니다.
창세기 7장 9절과 10절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이 7일이라는 시간입니다. 120 더하기 7입니다. 그런데 앞에 120은 년입니다. 120년, 그리고 뒤에 7은 날입니다.
120년 동안 기다렸는데 노아의 가족 다 타고, 짐승들 암수 다 탔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은 한 번 더 기다리는 것입니다. 7일을. 이 7일이라는 수가 성경에 나오는 7이라는 수는 완전수입니다. 그래서 여기 창세기에 딱 7일만 기다렸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차고 차고 또 찰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계시록은 무서운 책, 두려운 책이 아니고 하나님 눈물로 쓰신 편지입니다. 또 기다리고 기다리고 "내 백성아" 하시는 것 보십시오.
2-1. 코이노니아의 경고
여기 또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여기 참여하라는 단어가 우리 잘 아는 헬라 단어인데,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라는 단어가 원형입니다. 코이노니아, 무슨 뜻입니까? 성도의 교제 아닙니까? "우리 코이노니아 합시다" 이런 얘기 많이 들어보셨습니다. 교제하다, 떡을 떼다, 함께 먹고 마시다, 즐기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는 코이노니아가 성도들 안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교회에서 하도 코이노니아 얘기를 하니까요. 그런데 여기 악에 참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악과도 교제하고, 악과 떡을 떼고, 악한 인간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땅의 상인들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바벨론 로마 제국과 그들과 거래하며 그들과 함께 죄의 은밀한 낙을 누리고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말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우리가 정말 깨어서, 내가 받아도 될 돈인지 받으면 안 될 돈인지, 사귀어야 될 사람인지 깊게 사귀면 안 될 사람인지, 내가 가야 될 곳인지 가서는 안 될 곳인지 분별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참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거기 그냥 앉아서 밥 한 그릇 먹고 떡 하나 집어먹고, 남들이 그냥 술 한잔 먹는데 내가 거기서 분위기 맞춰주고 한두 잔 마시는 것이 그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 심각한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울리는 사람들이 어떤 인간이냐에 따라서입니다.
2-2. 하나님의 기억
5절입니다.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억이라는 말은 굉장히 무서운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손바닥에 새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손바닥에 새기다, 손바닥에 왜 새겨 놓습니까? 우리가 누구와 얘기하다가 종이도 없고 그러면 볼펜 꺼내서 손바닥에 이름 적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중에 물이 묻으면 지워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손바닥에 이런 불의한 일들을 기억하고 새겨 놓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누구와 함께 참여하는지, 어떤 인간들과 함께 떡을 떼고 마시고 교제하고 누리고 살아가는지 하나님 다 기억해 놓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억에 좋은 기억을 남기는 성도가 되어야지, 하나님의 기억에 이런 기억을 남겨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억은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나중에 심판 날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이 그 기억을 다 끄집어내 가지고 말씀하실 텐데, 어떻게 변명하시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좋은 기억을 남긴 사람들도 많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 2절에서 4절을 보시면 고넬료 얘기가 나옵니다. 고넬료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고 경외는 같은 어원입니다. 예배드렸다는 뜻입니다. 혼자 예배드린 것이 아니고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성실하게 감당한 사람입니다. 또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백부장입니다. 로마의 백부장, 100명의 군인을 거느리고 있는 하급 장교입니다. 월급을 받으면 얼마나 받겠습니까. 그런데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이 사람의 특징이 예배, 구제, 기도입니다. 예배와 구제와 기도입니다.
그랬더니 4절에 보니까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하여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고 했습니다. 예배와 그의 구제와 그의 기도를 손바닥에 새겼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이런 성도가 되어야지, 하나님 앞에 예배와 기도와 구제가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야지, 악인과 코이노니아하고 악한 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안 그런 척하면 하나님 그것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손바닥에 꼭 좋은 기억으로 남으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최후 심판 때에 내가 하나님 앞에 서야 되니까, 그런 것입니다. 최후의 나를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이 나를 좋은 기억으로 가지고 계시면 환하게 웃으실 것 아닙니까? 환하게 웃고 맞이하실 것 아닙니까? 그래야지, 악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야 되겠습니까?
다윗의 시편입니다. 시편 20편 3절을 보면 다윗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주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은 이때까지 예배를 한 몇 번 드렸습니까. 한번 집에서 대충 생각해보십시오. 주일 예배, 수요사경회, 새벽기도, 가정예배, 구역 예배 이런 것 다 해서 신앙생활 몇십 년 하면서 몇 번 예배드렸느냐. 그런데 나는 내가 드린 예배를 잘 기억 못 합니다. 당장 지난주에 드린 예배 기억나십니까? 지난주에 성경 본문, 설교 제목 기억나십니까? 설교 핵심 내용 기억나십니까? 모르는 분들이 태반 이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드린 예배를, 그럼 내가 예배드릴 때 내 마음가짐이 어땠는지, 그때 내 마음 상태가 어땠는지, 내가 하나님께 어떤 마음으로 나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예물을 드렸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는지, 하나님은 예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예배를 대충 드려서 되겠습니까? 고넬료가 경외하고 경건했다, 구제했다, 기도했다, 하나님 다 기억하신다는 것, 다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를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좋은 기억으로, 하나님께 성실한 예배자로 기억에 남으면 좋겠습니다.
3. 바벨론 심판의 판결문
세 번째 질문입니다. 바벨론 멸망에 대한 판결문을 읽어보십시오. 법정에서 1심, 2심, 3심 대법원에 가면 마지막 대법원 판결문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 로마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요절 말씀으로 읽었던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6절입니다.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이것이 판결문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한 행위 그대로 갚아줄 것이고, 두 배 갑절로 갚아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한 그대로 내가 갚아주겠다. 거기에다 이자까지 쳐서 갑절로 내가 갚아주겠다. 하나님의 판결이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로마가 어떤 나라입니까? 로마에 대해서 전 세계 역사가들이 기록한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로마 제국사만 해도, 로마는 굉장히 흥미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법률, 건축, 문화, 그리고 그 나라의 전쟁사 하면 엄청난 분량입니다. 세속의 역사가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로마를 한 줄로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한 줄로, "준 그대로 내가 갚아줄 것이고 갑절로 갚아주겠다." 모든 행위가 다 악했기 때문에 그 행위에 대해서 내가 왈가왈부할 것도 없고 좋은 평가, 선한 평가할 것도 없으니 그냥 이것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허무합니까? 로마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데, 그런데 하나님 보실 때는 하나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는 딱 한 줄로 끝났는데 무엇이 대단합니까?
세상에 엄청난 권세를 가진 왕들,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던 사람들, 그분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신문 전면을 도배합니다. 유력한 정치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뉴스는 맨날 며칠을 그것을 보도합니다. 하나님 보실 때 그분이 악한 사람이었으면 한 줄 쓰기도 아까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로마에 대해서 이 한 줄을 왜 썼느냐, 그리스도인들을 하도 많이 핍박했기 때문에 이 한 줄이라도 판결문으로 남겨서 후대에 본이 되게끔 하시려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나중에 내가 인생을 살고 하나님 앞에 갑니다. 그럼 하나님이 나의 묘비명을 어떻게 써줄 것 같습니까? 나는 내가 죽으면 내 사랑하는 가족이 내 묘비명을 써줄 것 아닙니까?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 인자가 넘치는 우리 어머니, 이 땅에 오셔서 사랑의 본을 보이고 하나님 품에 안기시다" 이렇게 쓰시겠습니다.
3-1. 사울의 묘비명
그런데 그것은 자녀가 그냥 좋게 써주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묘비명을 써준다 한다면 어떻게 쓰실 것 같습니까? 역대상 10장 13절, 14절을 보면 사울의 묘비명이라고 제가 이름 붙이고 싶은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울이 죽은 이유를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크게는 범죄라 했고, 범죄를 세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둘째 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기억나시지요? 사울이 어떤 짓을 했는지,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 이것 기억나시지요? 이것을 하나님이 다 기억하고 손바닥에 새기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고 나서 역대기 기자를 통해서 그의 묘비명을 이렇게 단 두 절로 기록하고 끝낸 것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입니다.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조 시대로 넘어가면서 첫 번째 왕입니다. 백성들이 볼 때는 탁월하고 유능한 왕이었습니다. 잘생겼고,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고, 전쟁에 능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실 때는 단 두 절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에 대해서는 성경이 얼마나 많이 기록합니까? 엄청나게 많이 기록합니다. 할 말이 많으니까, 하나님과 얽히고설킨 관계가 많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게 될 때 하나님이 내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실까, 그것 항상 돌아보셔야 됩니다. 매일같이, 그러면 대충 살 수 없고 죄짓고 살 수 없습니다.
3-2. 교만, 죄의 뿌리
지금 로마를 평가하시는 하나님의 판결문입니다. 로마가 심판받은 이유, 바벨론이 심판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제 이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유 없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7절입니다.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던지" 여기 사치하였다는 말이 스트레노스(στρῆνος)라는 그리스어를 쓰고 있는데, 육체의 빠짐, 유쾌함, 즉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한마디로 로마가 심판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에 비추어 보면 교만입니다. 교만해서 하늘 꼭대기에 올라앉았고, 교만해서 황제 숭배를 강요한 것 아닙니까? 자기 위에 신이 없다고 생각했고, 자기 아래에 천하만민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죄 중에도 경중이 있고, 죄 중에도 족보가 있습니다. 저는 죄의 족보 가운데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죄, 가장 뿌리 깊은 죄를 교만의 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 죄가 인간에게 들어왔을 때 뱀을 통해서 사탄이 그 죄를 집어넣어 주었을 때, 그 죄가 교만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 줄 알고 먹었으니까, 그것이 교만 아닙니까? 그래서 교만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혹은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아주 족보 있는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죄 중에서. 그래서 로마가 심판당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에덴에서부터 시작된 죄가 지금도 우리 가슴 속에, 이 교만이 항상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만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감히 네가 어디서, 나한테 감히 네가 어디서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냐고" 이런 교만이 교회 안에 계속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3-3. 성경적 겸손
교만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교만의 반대를 겸손이라고 압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겸손을 정의해보라고 하면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자기를 낮추는 것이 겸손입니까?
동양적인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동양적인 의미에서는 자기를 낮추는 것을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아유, 저는 잘 못합니다. 저는 잘 모릅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자기를 그냥 낮추는 것을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동양적인 의미에서는. 그런데 성경적인 의미에서는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겸손은 남을 높여주는 것이 겸손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자기를 낮추는 것이 더 어려운가요, 남을 높여주는 것이 더 어려운가요? 남을 높여주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우리가 속이 꼬여 가지고, 다 우리 마음속에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을 치켜세워주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 것은 힘듭니다. 특히 같은 계열,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 권사님들끼리 서로 높여주는 것 참 힘든 일입니다.
목사들끼리 서로 높여주는 것 힘든 일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 한번 보십시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라가 아니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높여줘야 됩니다. 칭찬해줘야 됩니다. 적극적으로 칭찬해줘야 됩니다. 세워줘야 되고, 그것이 겸손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겸손하면 사탄은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교만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교만하게 만들어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과 척지게 만들고,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마음을 품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화나게 만드려고 하는 것이 사탄의 속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남을 칭찬하고 남을 높여줘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선으로써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3-4. 이방인의 교만도 심판하심
그런데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교만한 것도 눈 뜨고 보지 못하십니다. 사도행전 12장 20절에서 23절을 보시면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이 헤롯은 누구냐 하면, 성경에 헤롯이 많이 나오는데 이 헤롯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인 헤롯입니다. 베드로를 감옥에 가둔 헤롯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노여워했습니다.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찍힌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그래서 신하를 다리 삼아서 왕에게 나와서 무언가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잘 보이려고. 21절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아양을 떠는 것입니다. 딸랑딸랑하는 것입니다. 막 이렇게 치켜세워주는 것입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헤롯은 이방인입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자기가 그 순간 신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떻게 됐습니까?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옛날 개역성경에 보면 "충이 먹어 죽은지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벌레 충 자를 써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이방인이건 하나님의 백성이건 가리지 않고 무조건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절대로 교만하지 말아야 됩니다. 교만하지 않으려면 상대를 적극적으로 높여줘야 됩니다. 나를 낮추는 것,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 잘하는 것이니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타인을 칭찬하고 높여주고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4. 하루 동안의 심판
다음 질문을 보시면 "하루 동안의 그 재앙들이 이른다"는 말씀을 설명해보라 했습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하루 동안에 재앙이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좀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계시록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은 재앙을 미루고 미루셨기 때문입니다. 일곱 인도 여섯 번째 인 떼고 건너다가 일곱 인, 일곱 나팔도 여섯 번째 나팔 불고 건너다가 쉬었다가 일곱 번째 나팔, 그리고 지금 앞에까지 마지막에도 7일 동안 기다렸던 하나님처럼, 이 하나님이 "내 백성들아" 하고 부르시면서까지 로마 제국의 그 자리에 참여하지 말고 이리 건너오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마지막 기회를 주시고 말을 듣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하나님은 마음먹으면 하루 동안이 아니라 단 1분 1초 찰나의 순간에 이 지구를 한 번에 멸망시킬 수도 있는 분 아닙니까? 왜냐하면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으니까, 하나님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마음먹는 순간 그 순간이 곧 심판의 시간입니다.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이것을 우리가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맨날 괴심하시고 가슴 아파하시고 울고 계시고 통곡하시고 기다리시고 이러니까 하나님 만만하게 봤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강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심판하시기로 작정하면 한순간에 다 쓸어버릴 수 있는 하나님, 하나님이 강하고 능력이 있고 힘이 있으니까 그 힘을 감추고 감추고 쓰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만하면 큰일 납니다. 이렇게 해서 즉시 심판이 이루어져 버렸습니다.
5. 애가를 부르는 세 집단
그런데 로마가 멸망당하니까 슬퍼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보고 애가를 부르는 세 집단이 있습니다. 땅의 왕들, 땅의 상인들,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입니다. 하나하나 볼 텐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5-1. 땅의 왕들
땅의 왕들이 부른 애가를 기록해 보십시오 했는데, 땅의 왕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총독들이라 했습니다. 식민지에 파견받아서 정치하고 있던 총독들입니다. 그들의 희망과 그들의 소망은 황제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빌라도의 꿈이 로마에 가서 출세하는 것, 그것이었던 것처럼 땅의 왕들은 로마 황제가 되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멸망당했으니까 그들의 꿈이 사라진 것 아닙니까?
9절입니다.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울었습니다. 가슴을 쳤습니다.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멀리 서서입니다. 보시면 우는데 가까이 가지는 않습니다. 가슴은 아파하는데 멀리 서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가족이 누군가가 다쳤습니다. 그럼 멀리 서서 울고 있겠습니까? 내 집이 불이 나서 활활 타고 있습니다. 멀리 서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가재도구 하나라도 건지려고 남들은 들어가지 말려고 하는데 나는 막 들어가려고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멀리 서서 울고 있습니다. 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가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동료가 아닌 것입니다. 악인들이 이렇습니다. 고난의 때, 환란의 때 와서 도와주지도 않습니다. 내가 망하고 사업 망하고 내가 다 힘들어지게 되면 내 곁을 다 떠나는 것이 사람 아닙니까? 지금 여기 땅의 왕들이 그런 인간들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도다 하리로다." 한 번에 이렇게 망해버리다니, 그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의 왕들이 이랬습니다.
5-2. 땅의 상인들
이제 땅의 상인들 보겠습니다. 상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로마를 통해서 부를 축적했던 사람들입니다. 로마를 통해서 잘 먹고 잘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11절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즉 바벨론 로마를 위하여 "울고" 울었습니다. 아까 땅의 왕들도 울었다 했습니다. 지금 여기 땅의 상인들도 웁니다.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이들이 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웁니까? 이제 장사 못해 먹게 생겼으니까 우는 것입니다. 아까 왕들은 왜 울었습니까? 이젠 내가 로망이 없어졌으니까, 내 희망이 사라졌으니까, 내 욕망의 근원이 사라졌으니까 우는 것입니다. 목표가 사라졌으니까, 사랑해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12절입니다.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그들이 팔아먹었던 상품들을 쭉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절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여기까지는 그냥 일상적인 품목들입니다. 지금 이것만 봐도 입이 쫙 벌어집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무엇을 팔아먹었습니까? "사람의 영혼들이라."
이것이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여기 상인들이 인신매매를 했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사고팔았다는 얘기입니다. 노예를 사고팔고 그랬습니다. 로마의 용병들을 로마의 식민지에서 끌고 와서 사고팔았습니다. 그리고 몰락한 전쟁에서 지고 끌려온 사람들을 원형경기장에 집어넣어 가지고 맹수와 싸우게 했습니다. 인신매매를 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황제 숭배를 통해서 우상숭배를 하게 해서 그들의 영혼을 지옥불에 들어가게 했다는 뜻입니다.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나쁜 놈들입니다. 여기 상인들이 그들이 돈 벌기 위해서, 그들이 치부하기 위해서, 부자로 살기 위해서 로마와 거래하면서 사람을 사고팔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우상숭배하게끔 해서 그들의 영혼이 지옥불에 들어가게끔 만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울고 있습니다. 다시는 장사 못하니까.
15절입니다.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이들도 멀리 서 있습니다. 내가 이제 장사 못하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나도 가까이 가서 같이 멸망당하기 싫은 것입니다. 멀리 서 있는 것입니다. 돕지 않는 것입니다. 또 얘기합니다. 17절입니다.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5-3.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
세 번째 부류, 애통하는 사람들,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입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첫째는 땅의 왕들이 울었고, 둘째는 상인들이 울었고, 셋째는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은 상인들을 싣고 다니는 선주들과 선원들입니다. 상인들이 부자들입니다. 상인들이 이 배를 소유하고 있을 것 아닙니까? 배를 부릴 것 아닙니까?
그래서 로마에서 나는 물건 가져가고 각 나라 식민지에서 나는 물건을 그 배에 실어서 오는데 그것을 날라다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배의 선원들과 선주들,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17절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어떻게 합니까? "멀리 서서" 이 사람들도 멀리 서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진짜 상관없는 자들 아닙니까? 가까이 가서 가슴 아파하고 애통하고 들어가서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고 그럴 이유가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19절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며" 여기 울며가 또 나옵니다. "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5-4. 울음의 의미
제가 땅의 왕들, 그리고 상인들, 선원들 다 살펴보라고 한 것 중에 '울며'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다 울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운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눈물은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흘리는 눈물이 어떤 의미입니까? 회개입니다. 회개는 무엇입니까? 돌이킴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닙니까? 예배당 안에서 실컷 찬양하고 실컷 울고 실컷 통곡하고 이것을 감정 해소로, 감정의 카타르시스로 끝내버리고 나가서 똑같이 행동하면 왜 웁니까? 그것 울 이유가 있습니까? 가증한 눈물이라고 합니다. 그런 눈물을 가지고 울었다면 행동이 바뀌어야 됩니다. 울지 말고 행동 바뀌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니면 울고 사람들 볼 때는 "야, 진짜 은혜 있어 보이네? 회개하는 것처럼 보이네" 그리고 행동이 똑같은 것,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것 아닙니까? 지금 이 사람들 울었습니다.
땅의 왕들도 울고, 상인들도 울고, 선원들도 울었는데, 이 사람들이 회개해서 우는 눈물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내 목표가 사라져서 울고, 장사 못 해 먹어서 울고, 이제 선원들은 상인들을 태워 다니지 못해서 돈 못 벌어서 우는 것입니다. 억울해서 우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회개해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6. 복임의 교훈
이런 눈물이 사사기에도 나옵니다. 사사기 2장 1절에서 5절인데, 자세히 보십시오. 제가 천천히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이것이 원래 약속이었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하면 가나안 일곱 족속과 언약도 맺지 말고 그들의 발과 제사상을 헐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왜 목소리를 안 들었을까요? 먹고사는 것 때문에, 농사짓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번도 광야 40년 동안 농사 지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거기 있는 사람들 노비로 삼아서 농사짓고 잘 먹고 잘 살려고 한 것입니다.
3절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의 사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름에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지라" 울었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회개하고 돌이킨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보김의 뜻은 우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는 자들,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완벽합니다. 여기까지 보십시오. 울었습니다. 예배도 드렸습니다. 울고 예배드렸습니다. 그러면 행동이 달라져야 될 것 아닙니까? 나가서 이제 우리가 회개하고 잘못했다, 그러면 우리가 이들을 쫓아내자, 우리가 생각을 잘못했다, 모여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열두 지파가 회개하고 돌이켜서 그 땅에 있는 가나안 일곱 족속과 언약 맺은 것 파기하고 다 쫓아내야 될 것 아닙니까? 농사는 어떻게 되건 말건 그것은 못 먹고 못 사는 것, 그것은 그다음 문제고, 하나님과 약속을 안 지킨 것, 이것 회개하고 돌이키고 울었으면 해결해야 될 것 아닙니까? 안 했습니다. 울고 제사 지내는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곳 이름을 보김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는 자들,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비아냥거리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이 사람들 우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에게 회개의 눈물이 있습니까? 맨날 울면 무엇합니까? 교회 와서 기도하며 울고 찬양하고 그렇게 울고 돌이키지 않는데, 반성하고 행동이 안 달라지는데, 진짜 하나님의 백성은 돌이키고 울었으면 해결하고, 그리고 완전히 달라지셔야 됩니다.
7. 심판 앞에서 즐거워하는 자들
종말인데, 특별히 바벨론이 심판받는 가운데 즐거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20절 보시면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심판의 이중성입니다. 심판은 항상 이중적입니다. 아까 1절에 봤습니다. 땅이 환해지고 밝아졌다고 했습니다. 심판의 때가 우리에게는 즐거운 날이 되어야 됩니다. 이제는 고통이 끝나는 날이니까, 이제는 이 땅의 수고가 다 끝나는 날이니까, 행복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21절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마지막 로마의 최후 심판입니다. 22절에서 24절 멸망 이후에 로마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피리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어떠한 기예라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망해버렸으니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황폐한 로마 제국의 잔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에 마지막 여운이 남습니다. 24절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이들의 피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이 피값으로 로마를 심판하셨습니다.
나가며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바벨론의 멸망을 보면서,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 종말의 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살아야 되는가 한 번 더 깊이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요한계시록 열세 번째 시간을 통해서 바벨론의 멸망을 보게 하시고,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여 하나님의 기억이 되기를 원합니다. 악한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의 좋은 기억으로 남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바벨론 멸망의 판결문을 보며, 사울의 마지막 묘비명을 보며, 우리 인생의 마지막 묘비명을 생각합니다. 우리가 평생을 살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실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시옵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우리 인생을 새롭게 결단하고 다짐하고 살아가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교만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겸손하여 타인을 높여드리는 믿음의 백성으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우는 자로 그치지 않도록 도우시고, 울고 돌이키지 않는 자가 되어 우는 자, 그러나 돌이키지 않는 자로 하나님께 책망받는 자 되지 않도록 주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울었다면 행동으로 옮기게 하여 주시고, 돌이켜서 회개하고 다시는 그 길을 걸어가지 않는 하나님의 회개한 백성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신 말씀 마음에 새기고 승리하고, 하나님 자녀답게 이 땅에서 심판을 기대하고 종말을 소망하는 참된 종말 신앙인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