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강 - 어린 양의 혼인잔치와 짐승의 멸망 / 전체녹취

요한계시록 특강-14: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짐승의 멸망 (19장)

요한계시록 19장 7-8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아멘.

오늘은 요한계시록 열네 번째 시간으로 19장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오늘 주제가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짐승의 멸망'입니다. 어느 한쪽은 혼인잔치가 열리고 어느 한쪽은 멸망당합니다. 굉장히 상반된 일인데, 이것이 우리에게 곧 일어날 현실이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아름답고 행복한 종말의 날이, 믿지 않는 자들 그리고 하나님 공동체 안에 들어있지 않은 자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는 바벨론의 멸망, 로마의 멸망을 보았고, 오늘은 짐승의 멸망을 보고, 다음 시간에는 짐승과 바벨론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던 용의 멸망을 볼 것입니다. 이전에는 재앙 시리즈가 계속 이어졌고, 이제는 멸망 시리즈가 이어집니다. 계시록에서 재앙 시리즈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으로 이어졌고, 그 가운데는 재앙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기다림과 사랑의 뜨거운 마음이 잘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바벨론을 향해서, 짐승을 향해서, 용을 향해서 이어지는데, 이것은 대단히 무서운 심판입니다. 이 심판과 함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거룩한 신부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오늘 말씀이 잘 보여줍니다.

1. 할렐루야 찬양

1-1. 첫 번째 할렐루야

첫 번째 질문을 보시겠습니다. 교재 62쪽에 "첫 번째 할렐루야 고백 이후에 이어진 허다한 무리의 음성을 말해보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가 1절에도 나오고 3절에도 나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많이 하지 않습니까? 찬양하면서도 할렐루야를 외치는데, 할렐루야가 무슨 뜻입니까?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송하라는 뜻입니다. 명령문이지요. 하나님을 찬송하라, 여호와를 찬송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할렐루야라고 하면 그 뒤에 좋은 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의 높으심과 영광과 자비하심을 찬송하라. 시편에 보면 할렐루야 뒤에는 항상 가슴 벅차고 좋은 이야기만 나오는데, 오늘 보면 할렐루야 뒤에 무시무시한 심판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여기 '이 일'이라 하는 것은 18장에 나온 바벨론의 심판, 즉 로마의 멸망을 말합니다. 바벨론이 멸망당했습니다. 즉 로마가 멸망당한 후에 내가 들으니, 사도 요한이 들었습니다—"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여기까지는 할렐루야 뒤에 다 평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할렐루야 하면 뒤에 이런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갑자기 심판이 나옵니다. "그의 심판은"—하나님이 심판하셨습니다. 전장 18장에 보면 로마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심판하심에 대한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셨는데 그 심판이 어떠했습니까? "참되고 의로운지라." 할렐루야 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참되고 의롭다, 당연히 하나님이 심판할 자를 심판하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렐루야 뒤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참되고 의롭다'는 말이 여기 계시록 19장에 처음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계시록이 뒤로 진행되어 갈수록 앞에 나왔던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참되고 의로웠다'는 말이 뒤에 나옵니다. 계시록 15장 3절에도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의롭고 참되다는 말이 여기도 나왔습니다.

16장 7절에도 나옵니다.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하나님의 심판이 참되고 의롭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참되고 의로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심판은 무섭습니다. 우리가 보면 두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이 참되고 의로운 이유는 하나님이 감정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조금 뒤에 가면 나오는데,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게 말씀에 기록된 대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겠다 하면 반드시 그렇게 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감정대로 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복 주겠다고 기록되어 있으면 반드시 그 복을 주시는 분이고, 심판하겠다고 하셨으면 이렇게 행하지 않으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그 결과를 보니까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시니,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다, 그리고 의롭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절대적인 가난은 견딜 수 있습니다. 나도 가난하고 너도 가난하면, 다 가난하면 서로 가난한 중에 조금씩 나누고 조금씩 베풀고 그러면서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불평등한 것입니다. 불공평한 것입니다. 위정자가 자기 멋대로 공평하게 배분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 물질도 몰아주고 일감도 몰아주고, 그것은 굉장히 견디기 힘듭니다. 폭동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되고 의로우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철저하게 말씀에 기록된 대로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왜 바벨론이 심판당했는지 나옵니다.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음행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음행은 우상숭배입니다. 즉 바벨론, 로마 제국이 심판당한 이유는 우상숭배하는 자를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하신 것이 아니고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이 우상숭배 금지 계명 아닙니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우상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그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나는 소멸하는 불이다, 반드시 너희를 심판하겠다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습니다.

할렐루야, 찬양할지어다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렐루야 하면 선하고 아름답고 이런 것만 이야기했는데, 하나님의 심판도 찬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악인을 심판하시는 것,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 당연히 찬양할 대상입니다. 여기 보면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 말이 원어에 보면 '망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우상숭배하는 것이 잘 될 줄 알았습니까? 황제 숭배에 머리 숙이고 고개 숙이고 거기에 무릎을 꿇으면 666 표를 주었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으면 상인조합 길드에도 가입하고 아이들 학교에도 보낼 수 있고 먹고사는 것 아무런 문제 없었습니다. 잘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돌아보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사는 길이 무엇이냐, 정말 잘 되는 길이 무엇이냐 하면, 절대로 우상숭배하면 안 됩니다. 우상숭배는 내가 보이는 우상에게 고개 숙이고 무릎 꿇는 것도 당연히 우상숭배이지만, 내 마음속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고 모시고 두고 사는 것, 이것을 다 포괄해서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우상으로 숭배하거나, 물질을 우상으로 숭배하거나, 내가 사랑하는 재물이나 이런 것들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이 모든 것들이 더럽히는 것입니다. 내가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2. 두 번째 할렐루야

두 번째 할렐루야 고백도 나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두 번째 또 할렐루야 하니까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갑니다. 이 연기는 왜 나는 것입니까? 유황불과 불비가 떨어져서 심판받은 바벨론 도성이, 로마 도성이 불타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불타는 것을 보고 왕들이 슬퍼했고, 임금들이 슬퍼했고, 상인들이 슬퍼했고, 바다의 선원들이 슬퍼했다고 하였습니다. 가까이는 가지 않고 멀리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창세기에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탔던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창세기 19장 28절을 보시면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탈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이것이 우상숭배하는 도성의 마지막 멸망의 모습입니다. 불타는 도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불타는 도시를 보고 할렐루야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 비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슬퍼해야 될 것이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 도성을 위해서 기회를 주신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일곱 인 심판하실 때도 여섯 번째 인 떼실 때, 일곱 번째 인 뗄 때 얼마나 많은 기간을 두셨습니까? 일곱 나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난 시간에도 보셨습니다. 바벨론을 심판하실 때도 하나님은 가슴 아파하시면서 계속 기다리고 기다리시고 "내 백성아!" 하고 외치고 또 외치셨습니다. 노아 홍수 기간에 120년 기다리시고, 마지막 문 닫기 전에 7일 동안 하나님은 또 기다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셨는데, 그 심판하시는 것을 보고, 연기가 옹기 가마같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천사들이 할렐루야 찬양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심판받아야 될 대상이 심판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 연기가 불타오르는 이 자리에 내가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절대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과연 하나님의 진노의 날, 심판의 날에 어디에 서 있어야 되는가? 내가 서 있어야 될, 발을 딛고 서 있어야 될 자리를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반드시 분명히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1-3. 세 번째 할렐루야

63페이지를 보시면 세 번째 질문입니다. "24장로들과 네 생물이 예배드릴 때 보좌에서 난 음성이 무엇입니까?" 4절에서 6절을 보면,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이제 이것이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시작되는 전조를 알리는 것입니다.

6절을 보니까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라고 하였습니다. 허다한 무리의 음성이라 하였습니다. 즉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무리가 허다한 무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보면 신천지들이 말하는 14만 4천의 명시적인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번 여기서 입증되지 않습니까? 14만 4천은 숫자적으로 14만 4천이 아니라, 오고 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허다한 무리라는 말씀입니다. 12 곱하기 12 곱하기 천, 앞의 12는 구약의 교회 성도들, 뒤의 12는 신약의 교회 성도들, 곱하기 천은 성도들의 정체성이 군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신천지나 종말론 이단들이 말하는 14만 4천은 그냥 숫자다 하는 것은 허황된 거짓말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작은 자나 큰 자나 허다한 무리가 다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나와 우리 자손들, 우리 가족들, 내가 전도한 모든 사람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만 하면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레 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여기 '통치하시다'는 말씀이 나오는데요, 이 '통치하다'는 말의 헬라어를 보니까 '바실류오(βασιλεύω)'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권을 가지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왕 하면 누가 딱 떠오르십니까? 다윗도 떠오르고, 우리나라 조선시대 보면 세종대왕도 떠오릅니다. 그런데 보통 일반적인 왕은 자기 마음대로 다스립니다. 왕이 곧 법이고 왕의 말이 곧 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왕을 세우실 때 다윗에게는 "너는 목자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목자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목자는 목자장을 섬기는 자가 목자입니다. 목자가 자기 마음대로 양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목자장에게 여쭤봐야 됩니다. "오늘은 이 양 떼를 데리고 어디로 갈까요?" 목자장이 말해줍니다. 목자장이 들판의 지형과 상황을 다 알고 있으니까 "오늘은 저 북쪽에 가서 양 떼들을 먹여라. 그리고 그쪽에 갈 때는 위험하니까 목자 몇 명을 더 데리고 가거라" 이렇게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래서 다윗이 목자라는 것은 목자장 되신 하나님께 항상 여쭤보았다는 뜻입니다. 딱 한 번 안 여쭤보았습니다. 언제입니까? 밧세바 사건 때 여쭤보지 않았습니다. 은폐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엄하게 책망하신 것 아닙니까? 엄청나게 나무라시고 그 죄값을 물으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왕 중의 왕 다윗을 택하실 때 그를 목자로 택하셨다는 사실, 그 다윗의 계보가 누구입니까? 육체의 계보를 입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목자가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항상 여쭈어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항상 기도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양들을 어떻게 먹일까요? 어떻게 말씀을 가르칠까요? 어떻게 인도해야 될까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신데 항상 하나님께 여쭈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왕권을 가지다' 이 말은 하나님이 자기 마음대로 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의 왕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세상의 왕입니다. 그런데 다윗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고, 왕권을 가질 때는 기준을 가지고 다스리셨습니다. 그 기준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입니다. 그 말씀이 기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곧 법전입니다. 하나님도 심지어 하나님도 그러셨습니다. 하나님 당신도 우리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2. 언약의 하나님

성경에 '언약'이라는 단어가 가장 첫 번째 나오는 때가 창세기 6장입니다. 창세기 6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언약이라는 것은 계약입니다. 계약 당사자는 서로 동등한 관계입니다. 임대차 계약할 때, 전세 들어갈 때, 그때 전세 들어가는 사람이나 주인이나 법적 지위가 동일한 상태에서 계약서 주고받고 씁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하나님 사이를 영적으로, 법적으로 동등한 자의 지위로 만들어 놓고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언약'이라는 말이 '쪼개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 하나님이 창세기 15장에 보면 "짐승을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쪼개라" 하셨습니다. "쪼개어 가지고 길 양옆에 벌려 놓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하나님이 지나가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만약 내가 너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여기 이 쪼개어진 짐승처럼 나는 쪼개어져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왕들의 언약 때 그랬습니다. 두 왕이 언약을 맺을 때는 짐승을 잡아놓고 쪼개어 놓고 두 왕이 쪼개어 놓은 짐승 사이를 지나갑니다. 만약에 어느 한쪽이 약속을 어기면 이 짐승처럼 우리는 쪼개어져도 좋다, 그것이 왕들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무엇입니까? 자손의 언약, 땅의 언약입니다. 만약 내가 너와 자손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땅의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이지만 쪼개어져도 좋다, 그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이 답답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왜 버러지 같은 우리 인간과 언약을 맺으십니까? 하나님이 노아와 노아의 가족과 언약을 맺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인간을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을 지극히 존중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맺으신 언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통치하실 때 자기 멋대로 통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십니다. 조약을 맺고 언약을 맺고 다스리시고, 그러면 언약을 맺으면 나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으니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한테 약속 지키라고 떼쓰면서 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까? 말씀대로 왜 살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맨날 떼씁니다. 물질 달라고 하고, 자식 잘 되게 해달라고 하고, 나 건강하게 해달라고 하고, 하나님께 맨날 떼씁니다. 성경에 이것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이 기록된 대로 달라고 맨날 합니다. 약속되어 있는데 왜 안 지키시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마다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는 너는, 너는 왜 안 지키느냐? 너와 내가 언약 맺었는데 왜 너는 안 지키느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불성실한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우리가 미련한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셔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지키고 살아가면서 요구할 것을 요구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과 나는 언약 관계에 있기 때문에, 창세기 6장부터 시작해서 계속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성실하게 지키십니다. 철저하게. 우리는 안 지킵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생깁니다. 언약의 불균형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느 한쪽이 언약을 안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언약은 파기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진작에 파기하셨어도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약을 파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붙들고 끌고 오고 계십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깨달았다면 은혜를 남용하거나 악용하면 안 됩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키려고 애쓰고 노력하셔야 됩니다.

3. 어린양의 신부

3-1. 교회와 성도

네 번째 질문, "어린양과 그의 아내는 누구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어린양의 혼인잔치인데요, 혼인잔치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신랑 신부 아닙니까? 어린양은 우리가 압니다.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누구입니까? 아내는 당연히 우리입니다. 그런데 여기 아주 특별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7절을 보시면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여기 '그의 아내가'에 줄 한번 쳐보십시오. 그의 아내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 보면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성도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도 줄 쳐보십시오. 여기 성도들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9절도 보실까요? 9절도 보면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청함을 받은 자들'에 줄 치십시오. 여기도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 나오는 '아내', '성도들', '청함을 받은 자들' 다 똑같은 신부들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단수로 되어 있고, '성도들',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즉 어린양의 혼인잔치, 즉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하는 자는 단수로서의 교회입니다. '아내'라고 말할 때는. 그런데 '성도들' 혹은 '청함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할 때는 개인으로서의 우리 개인, 개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그러면 어린양의 신부가 될 자격은 교회도 신부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우리 각각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우리도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론을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모여서도 교회입니다. 지금 이렇게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리고 있으니까 양산중앙교회라는 교회로서도 교회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집합적으로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양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여자라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 하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될 수 있습니다. 되어야 하고, 나는 흩어진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모여서도 교회가 되고, 나는 흩어져도 교회가 됩니다. 여기서 가톨릭의 교회론과 우리 개혁교회의 교회론이 갈라집니다. 가톨릭의 교회론은 흩어진 교회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이는 교회, 건물로서의 교회를 인정합니다. 베드로가 이랬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이것을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하셨습니다.

그때 가톨릭은 이 반석을 베드로라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것이 바티칸이고 베드로 대성당입니다. 그런데 개혁교회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자는 누구나 다 교회입니다. 나는 다 교회입니다. 우리 한 사람은 모여서도 교회고 흩어져도 교회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모여서만 교회라고 생각하면 교회 안에서만 교인답게 행동합니다. 그런데 나가서도 교회라고 생각하면, 나는 나가면서 내 머리 꼭대기에 십자가를 달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내 머리 꼭대기에 십자가가 달려있는데 예배당 밖에서 마음대로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함부로 욕하고 함부로 행동하고 사기치고 다니고 그래도 됩니까? 흩어져도 내가 교회인데, 나라는 인간 자체가 교회인데 함부로 못합니다. 그래서 흩어지는 교회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여서는 당연히 잘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면 정신 나간 사람 말고는 교회 안에서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가끔씩 성질이 나서 그렇지. 흩어져서 잘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기 '여자'라고도 표현했고, '아내'라고 표현했고, '성도들'이라고 표현했고, '청함을 받은 자들', 단수로도 표현하고 복수로도 표현하는 것이 교회에 모여서도 교회, 흩어져도 교회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바울이 이야기한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였습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 고린도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였습니다. 내가 교회이고,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 속에 우상을 숭배할 수 있습니까? 내 마음속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버젓이 모시고 살 수 있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내가 교회인데 교회 안에 다른 우상을 갖다 놓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닙니까?

17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교회, 모이는 교회이기도 하고, 내가 곧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래서 건강관리 잘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니까, 내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음식 드셔야 되고, 비싼 것 드시라는 말이 아니고, 운동하셔야 되고, 그리고 좋은 생각 하셔야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니까 관리 잘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답게. 잘 관리하라는 말이 뜯어고치라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 받은 이 육체를 가지고 잘 관리하시고 오랫동안 병들지 않게 쓰시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몸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거룩한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2. 신부의 자격

다시 볼게요. 7절로 다시 갑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중요하니까요. 혼인잔치는 즐겁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준비했다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성도가, 청함을 받은 자들이 준비했습니다. 무엇을 준비하는 것입니까?

어린양은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입니다. 신부가 무엇을 준비해야 됩니까? 결혼하면 혼수 준비합니까? 열쇠꾸러미 몇 개 준비해야 됩니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열쇠꾸러미 100개 갖다 드리면 "그래 너는 나의 신부다" 하고 옳다구나 하고 받아주십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린양의 신부로서 무엇을 준비해야 되느냐, 이것을 지금 여기서 깨달아야 됩니다.

계시록 14장 4-5절 보면 준비해야 될 것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신부는 무조건 순결해야 됩니다. 신부가 순결하지 않으면 신부 자격이 있습니까? 신부가 순결하지 않은데 어떻게 신부라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신부는 순결해야 됩니다. 음행하면 안 됩니다. 계시록의 음행은 우상에게 숭배하고 우상에게 무릎 꿇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 내 신랑 예수 그리스도 아닌 다른 것을 더 모시고 더 사랑하고 살면 신부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계속해서 묵상하고 끄집어내고 정리하고 잘라내는 작업을 매일같이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두면 계속해서 잡초가 올라옵니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이것을 우리 한번 다루었습니다. 14장 할 때. 신부는 신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갈 수 있어야 됩니다. "난 못 가니까 당신 혼자 가세요." 요즘 신부는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러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신랑이 돈 못 벌어오면 그것도 내가 받아들여야 될 내 삶이려니 생각하고, 같이 고생하고 같이 어려움을 겪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더군요.

그런데 영적으로는 그러면 안 됩니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야 됩니다. 어린양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훈련시킨다고 따라가면 나도 따라가고, 어린양이 "너 훈련 좀 받고 십자가 지고 내 뒤를 따라오라" 하면 그리고 따라가야 됩니다. 그것이 신부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신부가 되려면 순결해야 되고, 어린양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물불 안 가리고 따라갈 수 있어야 됩니다.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속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소속이 중요합니다. 어디에 속했느냐,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5절에 보니까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흠이 없다'는 말은 다른 말로 바꾸면 '우상숭배하지 않는 자들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재 한 페이지 더 넘기시면 계시록 17장 14절이 또 나오는데요, 여기도 어린양의 신부가 될 자격이 또 나옵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어린양과 신부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함께 있어야 됩니다. 함께. 그래서 내가 신부가 될 자격이 있다, 내가 어린양의 택한 자가 될 자격이 있다 할 때는 말씀드렸듯이 함께 있어야 됩니다. 순결해야 되고,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야 되고, 우상숭배하지 않아야 되고, 함께 해야 됩니다. 같은 맥락입니다.

이 '함께 한다'는 것이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실 때도 '함께 한다' 하셨습니다. 함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주님과 함께하면, 주님과 함께 있으면 당연히 주의 말씀을 듣겠지요. 말씀을 받아먹겠지요. 그 말씀이 나를 성장시키겠지요. 성장시켜서 내가 어디까지 자라게 됩니까? 부부가 40년, 50년 함께 살다 보면 비슷해집니다. 수준이 비슷해집니다.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지고, 보는 시각도 비슷해집니다. 두 사람은 부인할지라도 볼 때는 비슷해집니다. 비슷해지는 것이 서로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것을 공유하고 같은 것을 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다 보면 성장해서 예수님에게까지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예수님에게까지 자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바울은 신앙 성장의 목표가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 말씀을 보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성도의 신앙 성장의 목표가 누가 되어야 된다고요? 그리스도가 되어야 됩니다.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지레 포기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 결혼할 때, 자녀들 결혼시킬 때 부모님이 제일 많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 집안과 비슷한 사람이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 많이 하십니다. 너무 차이 나도 곤란하니까 삶의 수준도 비슷하고 경험도 비슷하고 그리고 신앙도 비슷하고 그러면 서로 다투지 않고 행복하게 두 사람이 오래 잘 살 수 있으니까 그것을 우리가 놓고 기도합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자녀들은 그것을 귓등으로도 안 듣지만.

그런데 우리가 감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려면 자격이 있어야 됩니다. 성장하고 자라서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해야 신부가 될 자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자격도 갖추지 않고, 나는 그냥 대충 사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겠다고 그냥 나서기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까?

순결하지도 않은데, 내 마음속에 예수님 아닌 다른 것 모시고 사는데, 한쪽 발은 이쪽에 두고 한쪽 발은 저쪽에 두고 사는데, 하나님 말씀 공부도 하지 않고,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려고 분투하고 애쓰지도 않는데, 그런데 어떻게 감히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겠다고 그렇게 나설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고 "내 아들 너 같은 신부에게 못 준다" 하실 것 아닙니까? 하나님 입장이 한번 되어 보십시오. 결혼을 인정하는 하나님 입장이 한번 되어 보시라고요.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 결혼 반대해 본 분들 많이 계십니다. "내 아들 나는 절대 너한테 못 춘다." 그럴 때 어떤 마음이셨습니까? 하나님이 과연 나를 신부로 받아들이실까? 나는 자격이 있을까? 나는 성장하고 자라나는 사람인가?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이 자격을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다시 돌아오면 8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준비된 자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혀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뒤에 말씀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행위 구원이 아니냐'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양의 신부가 될 자격이 있는 자에게 입혀주는 옷이 세마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는 세마포 옷을 입을 자격이 있느냐' 하얀 옷 입고 다닌다고, 내 속이 검은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은 척한다고 하나님을 속일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린양의 신부가 될 자격을 갖추어서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깨끗하고 정결한 세마포 옷을 입을 자격을 가지고 계셔야 됩니다.

3-3. 천사 숭배 금지

이제 10절을 설명해 보라고 하였는데요, 10절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여기서 '나'는 누구입니까?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이 '그 발 앞에'라고 하였는데요, '그 발'은 누구의 발이냐 하면 이 말을 전해주는 천사의 발입니다. 사도 요한이 천사가 너무 위엄 있게 이런 말을 전해주니까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했는데요,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천사가 요한에게 말했습니다—"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이 말은 경배 받으실 분은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천사 숭배 사상이 초대교회에 있었습니다. 무조건 잘못된 것입니다. 마리아 숭배도 이단 사상입니다. 마리아는 절대로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천사도 숭배의 대상이 아니고, 여러 성인들 이야기하는데 그분들도 숭배의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경배하고 섬겨야 될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백마 탄 왕

이제 백마 탄 분이 나옵니다. 어린양이 백마 탄 왕자로 오십니다. 순정만화 영화를 보면 백마 탄 왕자가 나옵니다. 옛날에 캔디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복음적인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백마 탄 분으로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백마 탄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연히.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충신, 진실, 공의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어를 다 적어두었는데요, 피스토스(πιστός), 알레티노스(ἀληθινός),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라고 적어두었는데, 충신은 '충성'이라는 말입니다. 피스토스니까 충성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 가지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굉장히 잘한 설명입니다.

첫 번째, '충성'은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충성하셨습니다. 얼마나 충성하셨습니까? 어떻게 충성하셨습니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만큼 충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고난받고 돌아가시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다 실천하실 정도로 충성하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다 내어드릴 정도로까지 충성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을 '충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진실', 여기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 믿는 성도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우리에 대한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여기 '진실'이라는 말이 알레티노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처음과 끝이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처음과 끝이 동일하셨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에게 예수님이 요한복음 13장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지 않습니까? 누구의 발까지 씻어주셨습니까? 유다의 발까지 씻어주셨습니다. 가룟 유다. 이미 유다가 예수님을 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다 아시면서까지 그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끝까지 동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고 그 바쁜 중에도 나병 환자 시몬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항상 주님은 예루살렘에 오르내리실 때 베다니를 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동일하셨습니다. 별다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도 전도하셨습니다. 한 강도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땅에서도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도 전도하셨고 십자가에 달려서도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동일하셨습니다. 진실하셨습니다.

위로 하나님에 대해서는 충성하셨고, 아래로 성도들에 대해서는 처음과 끝이 동일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 번째 이름 '공의'라 하였습니다. 디카이오쉬네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공의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 끝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내보이고 끝까지 그 사랑을 증거하셨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공의로 심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낸 말씀이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는 충성하셨고, 성도들에 대해서는 진실하셨고, 세상에 대해서는 공의로 심판하셨습니다. 누가 앞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물으면 "충성하셨고, 진실하셨고, 공의하신 분이시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주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백마 탄 왕자님 우리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이 백마는 계시록 19장에서 처음 나온 말이 아닙니다. 6장 2절에도 나왔는데요,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즉 백마의 이미지는 승리입니다. 승리의 이미지입니다.

이제 백마 탄 분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12절을 보실까요? "그 눈은 불꽃 같고" 예수님의 눈이 불꽃 같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계시록에 처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 1장 14절을 한번 볼까요?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예수님의 눈을 계속 불꽃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계시록 2장 18절에도 나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예수님의 눈이 불꽃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래서 백마 탄 분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눈이 불꽃 같기 때문입니다.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관은 무엇입니까? 영광입니다. 옛날에 로마의 장군들이 승리하고 돌아올 때 개선문을 통과합니다. 그러면 그때 그가 전쟁에서 이긴 횟수만큼 관을 씌워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많은 관들이 있다고 한 것은 셀 수로 표현할 수 있는 관이 아닙니다. 엄청나게 많은 관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결국은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사탄의 악함을 다 무찌르시고 승리하시고 관 쓰고 입성하셨다는 뜻입니다.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여기 피 뿌린 옷은 예수님의 보혈이 아니라 전쟁하면서 튀긴 피입니다. 사탄을 처단하면서 튀긴 피입니다. 장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피비린내 나는 갑옷 아닙니까? 피가 묻은 칼 아닙니까? 전쟁하고 돌아왔는데 옷이 말끔하면 그것은 전쟁한 장수가 아닙니다. 전쟁한 장수는 옷이 더러워져 있어야 되고 적들의 피로 얼룩져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백마를 타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셨는데, 머리에는 관을 쓰고 온몸에는 사탄을 이기시고 그 피로 온몸이 다 더럽혀져 있는 것, 그것이 승리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로고스(λόγος)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를 따르는 이가 누구냐? 이제 14절을 보면요.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가 누구입니까? 성도들입니다. 신부들입니다. 14만 4천입니다. 14만 4천, 12 곱하기 12 곱하기 천, 이 천이라는 숫자의 정체성은 군대라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의 정체성도 군대입니다. 신부가 그냥 다소곳하게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예쁘게 화장하고 있는 것이 성도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군인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4-1. 성령의 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이 있는데요, 15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백마 탄 왕자님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검이 나온다,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말씀이 생각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라" 하셨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서 6장에서, 에베소서 6장 17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성령의 검이 곧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이전에 이야기한 모든 것은 다 방어하는 무기입니다.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이것은 전부 다 방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일한 공격 무기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성령의 검입니다. 검을 빼서 휘두르는데 그 검이 곧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성령의 검입니다.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말씀드린 바가 있는데, '가지라'는 말이 헬라어에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람바노(λαμβάνω)'라는 단어인데, 그것은 내가 취하는 것입니다. 취사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코마이(δέχομαι)'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영접하는 것입니다. 따지지 말고 그대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취사 선택하고, 이것은 나한테 좀 불리하니까 버리고, 이것은 내가 좀 좋아하는 말씀이니까 받고, 이것이 람바노이고, 여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여기는 데코마이입니다. 영접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다 영접해야 됩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누어 주라는 말씀도 영접해야 됩니다. 복 준다는 말씀도 영접해야 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말씀도 데코마이 해야 됩니다. 그것이 곧 성령의 검이 되니까.

지금 백마 탄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는 검이 있었는데, 그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5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백마 타고 나타나시는 예수 그리스도 멋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분의 신부가 된다는 사실이 흥분되지 않습니까?

5. 짐승의 멸망

5-1. 새들의 잔치

한편 이제 짐승이 멸망하는데요, 거기에 또 잔치가 열립니다. 지금 우리가 앞에 살펴본 것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입니다. 어린양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가 신부가 될 자격은 어떤 자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한편 짐승이 멸망당하는데 거기에도 잔치가 열립니다. 짐승은 누구입니까? 국가권력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제국이 망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고 나면 악의 잔당들이 있습니다. 즉 황제, 황제에게 부역한 자들, 그런 자들을 다 잡아다가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입니다. 그때 잔치가 열립니다. 어떤 잔치가 열리느냐?

17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이 말을 바꾸어 읽으면 빛 가운데 서서, 찬란한 빛 가운데 천사가 서 있습니다—"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새들에게 말합니다.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새들을 잔치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왜 새들을 잔치에 초대할까요? 보십시오.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새들의 잔치입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한쪽에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리고 한쪽에는 새들의 잔치가 열리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했습니다. 이제 그 나라의 황제로 군림하고 황제 숭배를 일삼았던, 짐승의 우상을 일삼았던 황제와 거기에 부역했던 자들, 짐승의 표를 받았던 자들, 그들이 다 새들에게 뜯어먹히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계시록에 처음 나오는 말씀이 아니고, 에스겔 39장에 나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 인자야 너는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한 잔치 곧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큰 잔치로 너희는 사방에서 모여 살을 먹으며 피를 마실지어다." 끔찍합니다. 구약에 이미 예언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용사의 살을 먹으며 세상 왕들의 피를 마시기를 바산에 살진 짐승 곧 숫양이나 어린 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지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잔치의 기름을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그 피를 취하도록 마시되 내 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부르게 먹을지니라 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이 그대로 종말의 날에 이루어졌습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신부로 참여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뜯어먹히고 있으면 이것은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종말 아닙니까?

5-2. 전쟁의 결과

말 탄 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가 행하는 전쟁, 그 결과를 한번 볼까요? 19절,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짐승은 국가권력입니다. 땅의 임금들과 총독들입니다—"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말 탄 자는 백마 탄 예수님입니다. 그 군대는 신부들입니다—"짐승이 잡히고" 황제가 잡혔습니다.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삼종 세트 보셨습니까? 우리가 더러운 영 삼종 세트가 무엇입니까? 용의 입, 짐승의 입, 거짓 선지자의 입입니다. 그런데 여기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잡혔는데 용이 없습니다. 용은 언제 잡힙니까? 다음 시간에 잡힙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더럽다 하셨으면 정확하게 처리됩니다. 짐승이 잡히고 거짓 선지자도 잡히고, 그 배후에서 그들에게 권력을 주었던 용이, 사탄이 잡히는 날이 옵니다. 우리는 다음 시간에 그것을 볼 것입니다.

보겠습니다.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설명한 것입니다. "이 둘이 산 채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예수 그리스도입니다—"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임을" 말씀이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죽이기도 합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들을 죽이지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을 가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가 되셔야 됩니다.

오늘 뒤로 갈수록 아주 통쾌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제 다음 시간에는 용이 멸망당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20장 말씀을 여러 번 읽어보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거룩한 순결의 영을 허락하여 주시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 뒤를 따라가게 하옵시며, 우리가 그와 함께 더불어 우상숭배하지 않는 자들 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성장하고 자라 그리스도에게까지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이 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되기에 부족함 없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악된 세상에 한쪽 발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 아닌, 순결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아닌 다른 것들이 우리 마음 한쪽에 있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매일 우리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고, 악의 쓴 뿌리, 죄의 쓴 뿌리를 제거하게 하옵시며,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부족함 없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주시는 흰 세마포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주께서 우리의 믿음을 굽어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그리하여 심판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와 아름다운 군대가 되게 하여 주시며, 그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