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특강 15: 용의 심판과 멸망 (20장)
요한계시록 20장 6절 말씀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아멘.
오늘은 요한계시록 열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20장을 함께 공부할 텐데 계시록이 22장까지 있으니까, 이제 오늘과 다음 주 그리고 그다음 주까지 하면 시리즈 전부 끝나게 됩니다. 우리가 가끔씩 계시록을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지 한번 장 제목을 살펴보는데 오늘도 한번 짚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기억을 한번 더 더듬어서 장 제목을 보시면서 '아, 그때 우리가 이걸 배웠구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장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밧모 섬의 유배 가 있는 사도 요한에게 "내가 네게 계시를 보이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장과 3장을 보면 소아시아에 있는 핍박받고 있는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교회에 대한 칭찬이 있었고 책망이 있었고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라 하는 격려가 함께 공존하는 교회들에 대해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4장부터 본격적인 계시의 말씀이 나타나는데 요한이 하늘에 올라가서 그 광상을 보았습니다. 보좌 위에 계신 분을 보았고 주위에 계신 24 장로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계시록의 7 심판 시리즈, 그 첫 번째로 일곱 인 심판이 시작되고 7장에는 십사만 사천이 나옵니다. 그리고 8장과 9장을 보면 일곱 나팔 심판이 나오고, 동시에 일곱 인 심판의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떼시는 것도 8장에 나왔습니다. 기억하고 계시죠. 그리고 넘어가면 10장을 보면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가 있었습니다. 작은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11장에는 두 증인과 일곱 번째 나팔이 나옵니다. 원래 여섯 번째 나팔까지는 이미 9장에서 불었고 11장에서 일곱 번째 나팔을 붑니다. 그리고 12장에 가면 여자와 용이 나옵니다. 여자는 교회고 용은 사탄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13장과 14장에는 두 짐승이 나오고 또 십사만 사천이 나옵니다. 성경이 계속 반복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십사만 사천이 중요하니까 두 번이나 반복되는 것입니다. 15장과 16장에는 7 심판 시리즈의 마지막 일곱 대접 심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심판이 이어지는데 17장에는 바벨론이 심판을 받고 18장에는 바벨론이 드디어 멸망 당합니다. 바벨론은 로마 제국을 말하고, 그것은 세상에 사탄의 권세를 부여받은 세속 권력의 멸망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지난주에 보았던 19장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짐승의 멸망이 나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어린양이시고 우리는 신부가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신부가 되고 성도들이 또 신부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공부할 때 '그럼 우리가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야 되는데 어떤 자가 신부의 자격이 된 자인가' 우리를 제대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짐승이 멸망을 당합니다. 짐승은 국가 권력이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은 로마요 짐승은 국가 권력인 황제가 멸망을 당합니다.
이제 이렇게 바벨론과 짐승이 멸망당하고, 이제 하나 남은 바벨론과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던 용이 심판 당하고 멸망 당하는 내용이 오늘 20장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계시록을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면 잠자리에 누워서 잠자기 전에 1장에 뭐가 있었더라, 2장에는 뭐가 있었더라, 하루에 한 번씩 주무시기 전에 한 번씩 읊어 보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공부했다고 그 다음 날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계시록 어디쯤에 어떤 내용이 있다 하는 건 기억하고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1. 사탄을 결박하시다
이제 오늘 드디어 그 배후 세력인 사탄이 심판 받고 멸망 당합니다. 우리가 계시록을 볼 때 용이 있었고 그리고 국가 권력인 짐승이 있었고 바벨론이 있었습니다. 이 셋이 있는데 용은 그중에 가장 강력한 놈입니다. 사탄이기 때문에 결국 사탄을 멸망시키는 분은 누가 멸망시킬까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서 사탄의 권세를 파괴하고 멸망시킨다는 내용이 오늘 20장에 나오는데, 조금 복잡한 내용이 있긴 합니다.
보겠습니다. 67쪽입니다. 첫 번째 질문, 사도 요한이 본 천사는 어떤 모습입니까? 1절을 보시면 "또 내가 보매 천사가" 천사가 있어요. 천사가 어떻게 나오느냐.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그랬어요. 무저갱은 감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우리가 어떤 우주에 있는 블랙홀이니 어떤 공간으로 생각하면 안 되고, 사탄이 갇히는 곳 감옥 정도로 이해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곳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왜 내려왔을까요.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쇠사슬을 갖고 왔습니다. 쇠사슬로 사탄을 결박하려고, 그리고 열쇠를 가지고 무저갱에 집어넣어 가지고 이제 더 이상 사탄이 그곳에서 갇혀서 꼼짝도 못하게 하려고 천사가 온 것입니다. 이제 바벨론의 배후 세력이고 짐승의 배후 세력이었던, 로마와 로마 황제에게 배후 세력으로 권세를 주었던 악한 사탄 마귀를 드디어 심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2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용을 잡았습니다. 내려와서 그 용의 정체를 이렇게 말해요.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이라." 옛 뱀, 마귀, 사탄. 기억나시죠. 우리가 이전에 12장을 할 때 옛 뱀이라는 걸 공부를 했습니다. 계시록 12장 9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여기에 옛 뱀이 나왔습니다. 옛 뱀이라고 하면 12장을 공부할 때 우리가 공부를 했는데, 옛 뱀은 우리가 누구를 떠올려야 됩니까? 어디를요. 창세기 맨 첫 장인 3장을 떠올려야 됩니다. 창세기 3장에 뱀이 하와를 꾀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걸 옛 뱀이라고 기록을 했고, 우리가 이 계시록을 읽다 보면 '옛 뱀, 옛 뱀을 누구를 얘기하는 건가. 아, 그렇구나. 에덴을 파괴했던, 사탄의 앞잡이가 되었던 옛 뱀, 그 옛 뱀이 하와에게 와서 하와를 어떻게 미혹했습니까.'
1-1. 옛 뱀의 정체
옛 뱀이 했던 일들, 우리가 12장에서 공부를 했는데 첫째는 옛 뱀은 말씀을 어지럽혔습니다. 말씀을 혼잡하게 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 적이 없잖아요. 선악과 열매 하나만 먹지 말라고 하셨지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옛 뱀 사탄은, 뱀은 사람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합니다. 그럼 우리가 이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사탄의 권세를 대적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억하고 알고 있어야 되는 건 상식입니다.
그리고 옛 뱀이 하는 것은 교만을 부추깁니다. 그렇죠. "이걸 먹으면 너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아질 거야" 그랬잖아요. 옛 뱀이 한 짓은 첫째는 말씀을 혼잡하게 했고 둘째는 교만을 부추기는 겁니다. 오늘도 사탄의 권세가 우리에게 활동하는 걸 보면 사람들의 교만을 자꾸 자극합니다. 정확한 팩트를 가지고 칭찬하는 건 당연히 해야 되는 건데 있지도 않은 걸 가지고 자꾸 교만을 부추기고,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깊은 죄악된 본성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에게 교만을 부추기면 나도 부화뇌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보구나. 그래서 사탄은 계속해서 옛 뱀을 통해 교만을 부추기는 세력으로 활동합니다.
그리고 사탄이 이걸 통해서 만들어 낸 결과를 한번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에 죄가 있었잖아요. 죄의 결과가 굉장히 무서운데, 제가 여러 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을 드렸는데요, 죄의 결과는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옛 뱀이 결국 마지막에 죄를 짓게 해서 분열을 조장합니다.
1-2. 죄가 만든 분열
어떻게 분열을 시켜 내냐. 첫째는 자아와 나 자신을 분열시킵니다. 내가 나를 용서를 못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아담과 하와가 죄 짓고 나서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벌거벗은 것을 보고 부끄러워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자기 몸을 가렸습니다. 죄를 짓고 나면 수치심을 느끼고 내가 나를 용서를 못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죄가 깊어지면 나는 왜 이런 인간인가, 내가 왜 자꾸 이런 문제 잡고 넘어지는가, 내가 나를 용납을 못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인간의 분열이 생기잖아요. 자아의 분열, 정신 분열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내가 나를 용서 못하니까.
둘째, 옛 뱀이 죄를 통해서 가져온 결과, 그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열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랬잖아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어떻게 말했습니까. "내가 벌거벗었으므로 부끄러워서 숨었습니다." 원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함께 동산을 거닐던 존재였는데 옛 뱀이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단절되었습니다. 숨었어요. 동생을 죽인 가인을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하나님께 퉁명스럽게 말하잖아요. 가인은 하나님 낯을 떠났습니다. 하나님 앞을 떠나서 에덴 동편 놋 땅으로 갔습니다. 결국 죄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단절시켰습니다.
셋째, 옛 뱀이 뭐 합니까. 인간과 인간 사이도 단절시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고백을 했잖아요. 어떻게 해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사랑의 고백을 했잖아요. 얼마나 달콤한 고백입니까. 그리고 둘이 정말 꿀 같은 신혼 생활을 에덴동산에서 했어요. 그곳에는 부족한 것이 없는 곳이잖아요.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런데 죄가 들어오고 나니까 아담이 당장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가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그 얘기를 들었던 하와의 비상함은 말로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죄는 인간과 인간 사이도 갈라 놓습니다. 옛 뱀의 역할이 그런 거예요. 분열시키는 거예요. 자꾸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는 인간과 자연도 분열시켰습니다. 원래는 에덴동산에서는 노동하는 대로 경작하는 대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먹고 아무런 제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 짓고 나니까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났잖아요.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는 거예요. 그게 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분별해 보셔야 돼요.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어떤 얘기를 하는데 그 말이 나와 다른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얘긴가 아니면 서로 화해시키는 얘긴가,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얘긴가 아니면 나와 하나님 사이를 자꾸 친밀하게 만드는 말인가. 그 사람이 옛 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니까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옛 뱀이 이렇게 분열을 조장하고 분열시키는 일을 계속해서 해왔다는 사실이에요. 이게 옛 뱀의 정체예요. 그냥 우리가 옛 뱀이라고 하면 '옛 뱀, 그렇지. 하와에게 와서 선악과를 따먹게 하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고 그랬지.'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게 아니란 얘기예요. 옛 뱀은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3. 다섯 동사의 선언
그래서 그 옛 뱀을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마귀요 사탄이라." 이걸 결국 어떻게 합니까. 천사가 잡는 거예요. 볼까요. 이 자리가 3절에 보면 동사가 다섯 개가 나오는데 아주 강력한 동사가 있어요. 하나하나 볼게요.
"잡아서" 일단 잡았어요. 자, 보면 가만히 있을까요. 옛 뱀이, 사탄이, 용이 발버둥치겠죠. 발버둥 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요. "천 년 동안 결박하여" 천 년에 대해서 좀 이따가 제가 말씀드리고요. 잡아서 결박해서 동사 두 개가 쓰였어요. 잡고 결박하고. 3절 보시니까요, "무저갱에 던져" 던졌어요. 잡아서 쇠사슬로 결박했어요. 그리고 무저갱에 던졌습니다. 네 번째 동사, 잠갔어요. 열쇠를 갖고 왔다 그랬잖아요. 잠가 버렸어요. 다섯 번째 동사, 인봉했어요. 더 이상 아무도 열지 못하도록 인봉해 버렸습니다.
이 다섯 가지 동사, 잡고 결박하고 던지고 잠그고 인봉하고. 확실하게 했잖아요. 확실하게. 그런데 지금 이건 계시록에서 지금 요한이 본 환상이에요. 천사가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린 여기서 이 두 가지 궁금한 걸 해결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사실 사탄을 잡아서 결박하고 던지고 인봉하고 잠그고 이건 천사가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일은 누가 하셨으니까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신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권세를 파괴하고 박살 내신 겁니다. 어디에서요. 십자가상에서.
2. 그리스도의 승리
그 이전까지 사탄은 우리 인생을 계속 가지고 놀았습니다. 좌지우지 했습니다. 사탄이 밑천 삼고 살았던 게 뭐예요. 인간에게 겁을 줘요. 어떤 것으로요. 죄와 죽음의 권세 아닙니까. 한번 죄 짓고 나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요. 그 죄가 또 다른 죄를 낳고 그 죄가 또 다른 죄를 낳고. 그래서 우리는 죄의 권세 가운데 사로잡혀 가지고 그 죄가 계속 분열시키잖아요. 그 권세에 사로잡혀 사는 거예요.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나 대신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죄 용서를 받고 해도 1년이면 그 효력은 또 다 사라지고 계속해서 이 수레바퀴 속에서 반복되는 수레바퀴 속에서 사는 거예요. 그게 우리 불쌍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거예요. 우리를 해방시키는 동시에 옛 뱀, 용, 사탄, 마귀를 결박해서 가둬 놓으신 겁니다. 그걸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어요. 에베소서 2장 14절 말씀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 말씀 자세히 보세요. "둘로 하나를 만드사" 그랬어요. 그가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죠. 예수님이 둘로 하나를 만드셨다니까요. 원래 둘이 있었던 걸 하나가 되게 하셨어요. 이 말씀을 근거로 제가 조금 전에 얘기했던 옛 뱀이 죄의 결과로 만들었던 분열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2-1. 회복의 네 차원
자, 원래 둘이었던 것을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로 만들었다 그랬잖아요.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으니까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예수님이 나를 용서했으니까 이제 내가 더 이상 분열을 겪지 않아도 돼요. 맨날 죄짓는 내가 너무 미워 가지고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죄책감 가운데 사로잡혀 살았는데, 예수 믿고 구원받고 나니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존재로 회복이 되는 거예요. 맨날 인상 쓰고 살았던 내가 나를 긍정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내 속에 있었던 자기 벽이 무너지고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둘째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갈라섰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으로 나와 하나님 사이가 회복됐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 순간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장막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잖아요. 그래서 누구나 지성소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난 나는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된 거예요. 하나님을 어떻게 부릅니까. 이제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잖아요. 감히 아버지라고요. 용서받은 죄인이니까요, 우리는.
그리고 또 나와 인간 사이가 회복이 된 거예요. 성도들끼리도요, 참 저 사람 인간성 나쁜 거 알잖아요. 우리가 원래 저 사람의 참 나쁜 모습 가지를 알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용납할 수 없는 사람도 용납할 수 있게 된 거고.
넷째로 인간과 자연이 회복되는 거예요. 은혜받은 우리가 농사짓고 은혜받고. 예전에 임현수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간증하셨잖아요. 북한에 가셔 가지고 전도와 그 북한의 좋은 일하러 가셨다가, 캐나다 국적 갖고 계신 분이신데 목사님이 북한에 가서 노동 교화형에 처해져서 감옥에서 활동하며 고생하신 말씀을 간증하셨잖아요. 임현수 목사님 간증을 들어보면 그래요. 그 땅이 완전히 황폐하게 되어서 보지도 못하게 됐다 그랬잖아요. 농사 짓는데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농사짓는데 농사가 잘 안 돼요. 그래서 백날 일하잖아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땅을 황폐하게 하시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은혜받은 자가 농사짓고 은혜받은 자가 일하면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세요.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하나님이 제거해 주십니다.
그래서 둘로 하나를 만드신 것,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권세를 결박하시고 그를 무저갱에 던져 넣으심으로부터 일어난 역사예요. 그래서 여기 천사가 한 거라고 기록돼 있으나 이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초림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이미 이루신 겁니다. 그걸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2. 천 년의 의미
또한 2절에 보니까 "천 년 동안 결박했다" 이런 말이 나오고요. 3절을 보세요.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천 년이란 말이 계속 나오죠. 이 천 년이 뭔가, 천 년이 뭔가. 천 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요. 이것 때문에 들어보셨습니까. 전천년설도 나오고 후천년설도 나오고, 또 전천년설 가운데는 역사적 전천년설도 있고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도 있는데 뭐 이런 걸 지금 우리가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는 게 아니에요. 계시록에서 신학을 얘기하지 않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결론적으로 얘기하는 이 천 년이라는 것은 999 다음에 오는 천 년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즉 숫자로 995 다음에 나오는 천 년이 아니에요. 아주 오랜 시간을 천 년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그럼 천 년은 무엇이냐. 예수님께서 처음에 이 땅에 초림하셔서 사탄의 권세를 결박해서 무저갱에 집어넣어 던지시고 자물쇠로 잠그고 열쇠로 잠그고 인봉하셨잖아요. 그게 예수님의 초림이거든요.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재림 아직 안 하셨잖아요.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의 기간을 천 년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즉 천 년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은 오늘 우리가 무슨 시대라고 합니까. 교회 시대라고 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초림하시고 승천하시고 난 뒤에 생긴 게 교회 아닙니까. 그 전에 교회가 없었잖아요. 교회라는 공동체가 없었잖아요. 구약 공동체가 있었고 신약 제자들이 있었지 교회라는 공동체는 없었잖아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나서 첫 번째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생기고, 그 교회가 안디옥 교회를 개척하고, 안디옥 교회가 바울을 통해서 수많은 교회들을 개척하고, 오늘 우리 교회까지. 그래서 이 시대는 교회 시대예요.
2-3. 교회 시대의 정체성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그럼 이 교회 시대가 우린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느냐, 교회 시대의 정체성이 뭐냐 이걸 꼭 기억해야 되는데요. 예수님께서 초림 때 오셔 가지고 사탄을 결박해서 가뒀다 그랬잖아요. 무저갱에 가뒀다 그랬잖아요. 그러면 사탄이 없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없어야 되잖아요. 잡아서 가뒀는데 사탄이 왜 자꾸 활동해요. 여기서 우리가 고민이 생겨요. 난제가 생겨요.
베드로전서 5장 8절을 한번 보십시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가 얘기한 거거든요. 베드로가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그랬어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기록했거든요. 그럼 베드로가 말하는 걸 보면 여전히 마귀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큰 마귀인 용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아서 무저갱에 가둬 놓았는데 잔당들이 남아 있다는 뜻이에요. 잔당들, 악의 세력들. 옛날에 우리나라가 한국전쟁 6.25 전쟁이 끝났잖아요. 끝나고 38선이 이렇게 있었는데 이게 휴전선으로 바뀌고, 그리고 남북한이 갈라져 있잖아요. 근데 잔당들이 남아서 빨치산이 되지 않습니까. 빨치산. 그래서 그 빨치산 대를 토벌한다고 지리산 주변이 야단법석이었잖아요. 오랫동안 잔당들이 남아 있는 거예요.
이건 성경적이에요. 왜 그러냐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했지 않습니까. 요단강 건너가서 가나안 땅 정복했어요. 주류 세력들을 가나안 땅 정복할 때 중심, 북쪽, 남쪽 다 쳐버리고 그리고 12지파 제비뽑기 땅 분배 갖고 딱 갈랐어요. 그렇다고 해서 가나안 일곱 족속이 다 없어졌느냐 그렇지 않아요. 잔당들이 가나안 땅에 남아 있었어요. 그 잔당 세력들을 쫓아내는 사명은 땅을 분배받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었어요. 그걸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닙니까. 농사짓고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의 잔당들을 뭐 쫓아내고 그들을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로 삼았잖아요. 거기서부터 가나안 땅이 우상의 소굴이 된 것 아닙니까.
2-4. 이긴 싸움을 싸우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큰 마귀를 잡아서 가둬 놓고요, 조무래기 들만 남겨 주셨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하신 이유가, 예수님의 능력이 없어서, 조무래기 막 이새끼들까지 예수님이 잡을 능력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급해서요, 40일 동안 그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하늘에 승천하신다고.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다 알아보시기 위한 거예요. 우리가 지금 남아 있는 적의 잔당들과 계속해서 영적 전투와 싸움을 하고 적의 잔당들을 쫓아내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지, 그렇게 살지 않는지 달아보시기 위한 것이 주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이에요.
우린 어떻게 해야 돼요. 저기 조무래기 잔당들을 왜 겁을 냅니까. 대장 마귀가 사로잡혀 가지고 지금 무저갱에 들어가 있는데, 우리 지금 교회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이미 이겨 두신 싸움이에요. 이미 빼앗은 싸움이에요. 그러면 적의 전무력인 잔당들은 겁이나 좀 주는 것밖에 할 게 없어요. 우리에게 겁을 준다는 뜻이에요. 겁만 주는 거예요. 와 가지고 겁을 주는 게 어떤 걸로 겁을 주니까, 기껏해야 물질 문제, 건강 문제, 인간관계 문제, 가족 문제, 자녀 문제 뭐 등등 이런 지엽적 문제 아닙니까. 그게 내 구원을 흔들 수 있습니까. 돈 문제가 우리 구원을 흔들 수 있습니까. 근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미련하게도 적의 잔당들이 겁주는 데 금방 넘어가 버려요. 하나님 보실 때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걸 기억하셔야 돼요. 교회 시대는 이중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 큰 마귀는 이미 사로잡혀서 끝났어요. 대장은요. 잔당들만 남아 있는데 그건 이미 우리가 이겨 놓으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면서 충분히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충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대장 마귀가 잡혀 있는데 감히 조무래기 작은 것들이 감히 뭘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을 겁을 주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나가면 돼요. 반드시 이길 수 있고 분명히 이겨 놓으신 싸움입니다. 그걸 두 번 다시 지면 안 됩니다.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정복하고 거기에 있는 조무래기 잔당들을 못 쫓아내 가지고 나중에 거기에 지배당하고 말았는데 우린 결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 전투
그리고 여기에 3절 끝에 보면 이렇게 나와요.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이상하지 않으세요. 누가 풀려요. 천사가 열쇠 가지고 와서 무저갱에 쳐넣고 잠그고 봉인했는데 자기 힘으로 그걸 부수고 나온다고요. 불가능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으로 큰 마귀를 가두었는데 "잠깐 놓이리라" 그랬어요. "잠깐 놓이리라"가 수동태예요. 그러면 누군가가 풀어 준다는 뜻 아닙니까.
누가 풀어 주는 거예요. 논리상 20장은 3절까지를 보고 4, 5, 6절을 일단 건너가야 돼요. 바로 7절로 가셔야 돼요. 천 년이 지난 후 옥에서 놓인 사탄이 어떤 일을 하느냐. 7절 보시면요.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그랬어요. "놓인다." 나와 가 아니에요. 부수고 나와 가 아니고 놓여요. 누가 풀어준다는 뜻이 있다는데 아니에요. 누군가가 풀어주는 거예요. 그 누군가가 누구예요. 도대체 사탄을 풀어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천사가 풀어 주든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천 년이 지나서 풀어주는 거예요. 그럼 이 천 년이란 기간은 어떤 기간이라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오면 대장 마귀가 풀려나는 거예요. 무섭지 않으세요. 이제 정신이 번쩍 들어야 돼요. 이제 대장 마귀가 풀려나요. 자, 조폭 영화 보셨죠. 우리 영화 보면 조폭 영화 보면, 대장 조폭이 온몸에 문신을 드러내고 있는 조폭 님께서 대장이 감빵에 계시다가 출소해요. 그러면 그 밖에 누가 와 있으니까요. 조무래기 작은 것들이 차 3단 반차 줄 세워놓고 한가득 모여 있잖아요. 그렇잖아요. 대장 마귀가 놓이면 조무래기들이 거기에다 집결합니다. 이제 한판 싸움을 벌이려고.
3-1. 곡과 마곡의 교훈
근데 우리는 이걸 큰 그림으로 보셔야 돼요. 그럼 하나님이 왜 대장 마귀를 풀어주시느냐. 이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그때가, 대장 마귀부터 시작해서 대장이 나와야 조무래기 작은 것들이 그 휘하에 다 모이니까요. 세상의 모든 악의 권세와 세상에 성도들을 괴롭히던 조무래기 새끼 마귀, 모든 새끼 마귀까지 다 쓸어서 한 번에 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한 번에 다 멸하고 완전한 최후 승리를 선언하시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이제 큰 날이 가까이 온 거예요.
볼까요. 8절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곡과 마곡은 좀 있다가 설명을 할게요.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니." 대장 마귀가 나와서 하는 짓이 뭐예요. 보세요. "땅의 사방 백성을 모와"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인다 그랬죠. 가만 두지 못해요. 항상 세력을 규합하거든요. 대장 악인은, 악한 용은 미혹을 한다고 했죠. 미혹을 해야 꼬임을 해야 모일 것 아닙니까. 미혹하고 모으고 결국은 뭐예요. 싸움을 붙이는 거예요.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셀 수 있습니까. 바다의 모래. 엄청나게 많은 수가 모일 거라는 뜻이에요.
자, 미혹하다 모으다 싸우다 이걸 줄을 쳐 넣으세요. 그럼 우리가 이 종말의 때가 되면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날 텐데,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그럼 대장 마귀가 누구야' 이런 질문을 가지거든요. '대장 마귀가 누구야 도대체 지금 이 세상에서는 누구야' 이렇게 들어가면 요한계시록을 굉장히 단편적으로 보는 거예요. 그렇게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히틀러가 대장 마귀였다, 사담 후세인이 대장 마귀였다, 혹은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정권이 대장 마귀다, 뭐 이런 식의 해석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건 다 틀린 것으로 다 결정 났잖아요. 그분들은 지금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그런데 결국 이 대장 마귀가 하는 짓에 관심을 가지셔야 해요. 미혹하고 모으고 싸움을 붙이잖아요. 그럼 성도는 어떻게 해야 돼요. 미혹하는 데 미혹되면 되니까 안 됩니까. 나도 그 군사 중에 바다의 모래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니까요. 그들이 미혹하는 데 미혹당하면 나도 거기 가서 서 있다니까요. 이게 서 있어야 될 자리인지 아닌지도 모르고요.
미혹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옛 뱀이 미혹하는 짓과 똑같은 짓을 하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돼요. 백날 얘기해도 다시 원점이잖아요. 말씀 위에 굳게 서라, 이것밖에 없는 거예요. 기독교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고요, 읽고 묵상하고 붙들고 살아내고, 그래야 미혹당하지 않거든요. 미혹당한 사람 미혹은 사탕발림으로 꾀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되니까요. 그다음에 어떻게 해요. 미혹하고 모으잖아요. 우리는 미혹당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 공동체는 모이기에 힘써야 해요. 교회 공동체나 가정에서도 예배로 모이기에 힘쓰고, 우리가 예배드리는 자리에 모이기에 힘쓰고, 감염병 등으로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힘들다면 내가 개인적으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우리 가정 식구들이라도 항상 말씀으로 모이고 함께 격려하고 위로하고 함께 살아 내려고 애를 쓰고.
그리고 여기 싸우잖아요, 그들이. 그럼 우리도 이들과 영적 싸움을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영적 싸움에 마지막 유일한 공격 무기가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을 가지라"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 이걸 가져야 되는 거예요. 이게 너무나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이, 이제 일촉즉발의 전투가 곧 벌어질 것 같아요. 그런데 결과는 싱거워요. 결과는 좀 있다 보고요.
제가 곡과 마곡을 설명한다 그랬잖아요.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한다." 곡과 마곡이 어디에 나오느냐. 68쪽에 보시면 에스겔 38장과 39장에 곡과 마곡이 나와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곡은 임금이에요. 임금의 이름이 곡이에요. 에스겔 38장 39장에 보면 마곡은 나라 이름이에요. 곡과 마곡이라 해서 형제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니고, 곡은 임금의 이름이고 마곡은 나라 이름이에요.
자 볼까요. 38장 3절 보면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그랬죠. "두발 왕 곡아" 임금 이름이죠. 그죠. 자 이 곡이 미혹당했거든요. 곡이 미혹당해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싸우기 위해 싸움을 벌렸거든요. 어리석게도. 38장 16절을 보십시오. "구름이 땅을 덮음 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 곡이라는 임금이 미혹을 당해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치러 오는 거예요. 어리석게도. 그걸 곡과 마곡이라고 표현한 거죠.
결론이 어떻게 됩니까. 39장 6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하나님이 불을 내려 버린다 그랬어요. 미혹당한 자에게 불을 내려서 그대로 다 심판하게 됐다. 그 심판의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39장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성읍들에 거주하는 자가 나가서 그들의 무기를 불태워 사르되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활과 화살과 몽둥이와 창을 가지고 일곱 해 동안 불태우리라." 곡과 마곡이 하나님의 백성과 싸우려고 무기 들고 왔거든요. 근데 하나님이 그들을 다 심판했어요. 그래서 그들이 들고 온 무기를 불태웠는데 그 태우는 기간이 7년 동안이나 태요. 그러면 얼마나 많은 무기를 갖고 왔다는 겁니까. 철저하게 멸절당하고 심판당했다는 뜻입니다.
10절 같이 "그 무기로 불을 피울 것이므로 그들이 들에서 나무를 주워오지 아니하며 숲에서 벌목하지 아니하겠고 전에 자기에게서 약탈하던 자의 것을 약탈하며 전에 자기에게서 노략하던 자의 것을 노략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즉 이 말씀은 곡과 마곡처럼 어리석게 미혹되지 말라는 뜻이에요. 곡과 마곡이 어리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우는 자리에 그들이 괜히 섰다가 심판당했잖아요. 그것처럼 종말의 때에 대장 마귀가 놓임 받아서 나왔을 때, 대장 마귀가 미혹하는 데 곡과 마곡처럼 너는 미혹되지 마라, 그렇게 미혹되면 남는 건 멸망뿐이다, 그러니 절대로 미혹되지 마라, 그들의 자리에 모이지도 말고 함께 하지도 마라,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라. 이 말씀이에요.
3-2. 최후의 승리
이제 대장 마귀가 세력을 규합했어요. 바다의 모래 같은 엄청난 수가 모였어요. 이제 그들이 싸움을 겁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9절과 10절 볼까요. 9절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여기서 그들은 대장 마귀가 모았던 곡과 마곡 같은 어리석은 존재들이요.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둘러쌌어요." 성도들,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신부, 예수 믿고 신앙생활 잘하고 짐승의 표 받지 않고 우상 숭배하지 않고 믿음 생활 잘하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진을 둘러쌌어요. 그런데 어떻게 돼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고."
성도들은 싸울 필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돼요. 마지막 날이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순식간에 태워 버린다 그랬어요. 영어 성경 NIV를 보면 여기 이 '태우다'라는 단어를 '삼키다'라는 단어로 쓰고 있어요. 원어에 가장 적합한 번역인데, 우리 태우는 건 우리 상식으로 생각하면 흔적이 남잖아요. 재라도 가루라도 남잖아요. 삼키면 아무것도 남나요. 그래서 불이 내려서 그대로 완전히 다 삼켜 버렸다는 뜻이에요. 하나도 흔적이 남지 않아요. 뜨거운 불이 탈 때 아무것도 남지 않으려면 완전히 녹여 버리려면 그 온도가 얼마나 될까요. 엄청나게 뜨거운 불이 하늘에서 내려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와 우상 숭배하지 아니한 자,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아가는 자들을 둘러서 그들의 진을 치려고 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그들을 다 태워 버리고 삼켜 버렸어요.
무섭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이거 싱거운 싸움이에요. 근데 하나님이 이렇게 한 이유는, 이렇게 하면서 저 잔당들까지 한 번에 다 쓸어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던 무리 전체까지 모든 것이 이제 완전한 승리로 끝난 거예요. 완전한 승리로.
10절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대장 마귀가 어디에 던져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요.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3종 세트 보셨죠. 세 더러운 영이 있었잖아요. 용, 짐승, 또 거짓 선지자가 있었잖아요. 거짓을 말하는 더러운 입이 있었잖아요. 그들도 거기에 있었어요.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차라리 존재가 소멸되면 좋겠어요. 없어지면 생각도 못하고 아예 사라지면 무로 돌아가면요. 그렇지 않아요. 세세토록 괴로움을 받는 거예요.
뒤에 가면 또 나오는데요, 좀 있다가 살펴볼 텐데 이게 죽음이라는 것이 무로 돌아가는 것, 의식이 그냥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둘째 사망의 심판이라는 것은요, 유황불 못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고통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도 생명의 부활이 있고 사망의 부활이 있잖아요. 부활에 2종류가 있다니까요. 우리는 누구나 다 죽지만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요. 어디서 사는가가 중요하지.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인가, 생명의 부활로 살아나서 영원히 살 것인가요, 유황불 못에 던져져서 이렇게 영혼이 세세토록 고통받으며 살 것인가, 이 문제가 우리 앞에 남아 있는 문제 아닙니까.
사탄의, 대장 마귀의 마지막 모습이에요. 하나님께서 큰 그림을 그려 놓으신 거 이제 이해하시겠죠.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는 악의 잔당들, 조무래기 새끼 마귀들이 우리 이렇게 계속해서 찔러 대고 괴롭히는 거잖아요. 신경 안 써도 돼요. 그럼 그런 것 따위에 전혀 마음 빼앗기지 않아도 돼요. 그러지 말고 큰 그림을 보고 하나님 한번 바라보고 내 영혼의 구원은 흔들림 없다, 이것만 바르게 가시면 돼요. 이 땅에서의 인생은 길어봐야 100년이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하나님 나라 가기 전에 예수님의 재림이 오시면 그러면 그때는 뭐 얻은 것이 끝나요. 하나님께서 한 번에 그대로 다 심판하십니까. 그 영광을 우리가 보게 될 것입니다. 기대되지 않으십니까. 설레지 않으십니까.
4. 보좌에 앉은 자들
이제 4절로 갑니다. 우리가 건너갔던 4절로. 하늘 보좌에 앉은 자들은 누구입니까.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보좌가 아니고요, 보좌들이라고 나와요. 나중에 11절에 가면 또 보좌가 나오는데요, 여기는 보좌들이라고 나왔어요. 보좌라고 나오면 그 보좌는 단수잖아요. 1분만 앉아 계셔야 되는데, 하나님만 계시는 것이 보좌잖아요. 그죠. 근데 보좌들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계신 보좌 주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게끔 조금씩 자리도 있는 거예요.
그 보좌에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어요.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순교자들이죠. "짐승의 표 받지 않고 우상 숭배하지 않고 믿음의 순결을 지키며 살아갔던 자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 순결한 자, 그리스도의 신부들이요.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들, "이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리라."
천 년이 뭐라 그랬어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천 년. 그러면 지금 이 땅에서 믿음 생활 잘하다가, 우리나라 민족의 역사로 보면 일제 강점기에 믿음 생활 지키다가 신사참배 하지 않고 옥고를 치르다가 돌아가신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들, 공산당에게 끌려서 돌아가신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들, 그런 분들도 지금 여기에 보좌들 사이에 앉아 계신 거예요. 우리 믿음의 순결을 잘 지키다가 하나님 나라 가신 분들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곳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고 계시는 거예요. 심판하는 영광을 가지고.
믿음 생활 잘 하고 소천하셨던 분들, 우리도, 우리도 예수님 재림하시기 전에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하늘나라 가면 우리 자리도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들과 함께 영원토록 왕으로 살며. 영광스럽지 않습니까.
4-1.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
5절과 6절을 볼게요. 여기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이 나오는데 이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5절 볼게요.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괄호 안에 있는 말씀이에요.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어떤 자들이냐 면 해석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죽은 자들이에요. 즉 그냥 자연인으로 살다가, 계시록 예언으로 말하면요, 조에(ζωή)의 삶이 아닌 비오스(βίος)와 프쉬케(ψυχή)의 삶을 살다가, 먹고 사는 대로 살다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영원토록 천국에서 왕 노릇 하지 못하더라 이것도 기록해 놓은 거예요.
"이는 첫째 부활이라." 4절에서 말한 것이 첫째 부활이라는 뜻이에요. 이 첫째 부활이라는 말은요, 한 사람이 첫 번째 부활이 있고 내가 또 두 번째 부활이 있고 이런 말씀이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첫째 부활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믿음의 순결을 지키다가 세상 떠나신 분들이 이미 천국에서 보좌들에 앉아서 거기에서 왕 노릇 하고 있는 걸 첫째 부활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이해가 되시죠. 그게 첫째 부활이요.
그러면 성경에는, 계시록에는 기록하지 않았어요, 둘째 부활이 있다면 그 둘째 부활은 무엇일까요. 그 둘째 부활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때까지 세상 떠나지 않고 살아 있던 자들이 천사장의 호령 소리와 공중에 나팔 소리에 함께 반응해서 부활한 자들, 그들이 둘째 부활이 거죠. 이해가 되시죠. 예수님 재림하시기 전까지 예수 잘 믿다가 돌아가신 분들은 첫째 부활의 영광에 들어간 자들이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때까지 이 땅에 살아 있는 자들은 둘째 부활의 영광을 차지하는 자가 되는 거예요. 그걸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자 그다음 6절 보시면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즉 지금 교회 시대에 믿음을 지키다가 부활하신 분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그렇죠. 복이 있고 거룩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볼 때 사도 바울의 죽음은 비참한 죽음이에요. 베드로의 죽음도 비참한 죽음이에요. 사도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죽음도 순교했으니까 비참한 죽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복이 있는 죽음이에요. 왜요. 보좌에 한 자리를 차지하셨으니까요. 믿음 생활 잘하다가 하나님 보좌 옆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 하고 통치하는 자리에 있으니까 영광스러운 죽음 아닙니까.
6절 중반 저를 보시면 둘째 사망이 나와요.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 년 동안 뭐라 그랬어요. 재림하실 때까지. 그래서 지금도 왕 노릇 하고 있는 거예요.
자 둘째 사망이 나오는데 둘째 사망의 말이야, 이건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망을 말하는 거예요. 첫째 사망한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은 두 번 죽어요. 첫 번째 사망은 누구나 다 겪는 육체의 죽음을 첫째 사망이라고 하구요, 둘째 사망은 영혼이 예수 안 믿고 죽으면 어떻게 돼요. 불못과 지옥불에 던져질 것 아닙니까. 그걸 둘째 사망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끔 말씀드리는데 예수 잘 믿는 사람은 2+1의 인생을 살고, 예수 제대로 못 믿는 사람은 1+2의 삶을 살아요. 숫자가 바뀌면 곤란한데요. 무슨 말이냐, 누구나 다 어머니 뱃속에서 한 번 태어나잖아요. 한 번 태어나죠. 그런데 예수 잘 믿으면 또 태어나잖아요. 그걸 뭐라고 그럽니까. 거듭난다 그러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으면 2번 태어나요. 2번 태어나 죽는 건 한 번만 죽어요. 육체만, 둘째 사망의 해가 없어요. 왜요, 천국 가니까요.
그런데 예수 믿지 아니한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만 태어나요. 한 번만요. 근데 죽는 건 2번 죽어요. 육체가 죽고 그리고 그 영이 지옥불에 던져지니까요. 얼마나 비참한 인생입니까. 우리 인생은 2+1의 인생을 사셔야 돼요. 1+2의 인생을 살면 안 돼요.
4-2. 흰 보좌 심판
자 11절 보십시오. 옛날 목사님들은요, 이걸 백보좌 심판이라고 했어요. 들어보셨습니까. 흰 보좌라고 나오니까 백보좌 심판이라고 그랬어요. 11절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여기는 이제 보좌들이 아니에요. 그죠. 보좌야. 그러면 보좌가 단수로 나왔네. 그럼 여기 누가 앉아 계신 거예요. 하나님이 앉아 계신 거죠. 맞아요.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사실 이 편지를 받는 이 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보좌라고 하면 그들은 누가 생각났을까요. 이 땅의 권세 중에 최고의 보좌에 앉은 사람 누굽니까. 로마 황제 아닙니까. 도미티아누스 황제 아니에요. 그보다 조금 더 일찍 올라가면, 더 멀리 올라가면 네로 황제, 도미티아누스 황제 아니에요.
그런데 그 황제까지 다 이미 심판받았어요. 이제는 진짜 왕 중에 왕, 이 모든 세상과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 크고 흰 보좌에 앉아 계신 분 하나님을 바라보며 가는 거예요. 영광스러운 것 아닙니까.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절 중요합니다. 잘 보세요.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왜 서 있을까요. 심판 때문에 서 있는 거예요. "책들이 펴 있고" 책들 줄 치세요. 책들 복수로 되죠. 책들. 영어 성경에도 보면 books라고 되어 있어요. 책들이라고 되어 있어요.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이건 단수예요. 자 책들과 책을 구별하셔야 됩니다. 자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또 다른 책이 곧 생명책이에요. 단수로 된 이 책이 생명책이에요. 생명책에 내 이름이 있어야 됩니다. 있어야 돼요. 없으면 큰일 나요.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돼 있어야 돼요.
그런데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 책들에는 그러면 뭐가 기록되어 있을까요. 심판할 사람들의 행위가 기록돼 있는 거예요. 생명책 단수 한 권에는 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요, 심판할 책들에는 심판할 사람들의 행위가 기록돼 있는 거예요.
이거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생명책에는 우리의 행위가 기록돼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생명책에는. 행위로 구원받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위로 구원받으면 구원받을 사람 어딨어요. 여기 온 세상에 오고 오는 모든 인류 중에 구원받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무엇으로 구원받는 겁니까. 믿음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내가 비록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음으로, 내가 그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의지해서 이를 악물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거기에 고개 숙이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계시록을 읽다 보면 행위 구원으로 흐를 수가 있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마지막에 보면 생명책에는 우리의 행위가 기록된 게 아니에요.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한 자, "돌아오라 돌아오라"고 계속 그랬잖아요. 일곱 인 심판할 때 여섯 번째 인 떼고 건너뛰고 여섯 번째 인 기다릴 때, 일곱 나팔 심판할 때 여섯 번째 나팔 불고 또 건너뛰고 기다릴 때, 바벨론을 멸망하실 때 하나님께서 또 기다리셨죠. 맞아요. "내 백성아" 하면서 돌아오라고, 계속. 그때라도 돌아왔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거예요. 근데 안 돌아왔으니까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거죠. 그래서 책들에는 행위가 기록됐던 거예요. 비참한, 부끄러운 행위들, 그 행위를 따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겁니다.
4-3. 행위대로 심판
심판하는 자들에게는, 자 둘째 사망을 설명해 보면, 그 행위를 따라 이렇게 돼요. 13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그랬죠. 자 우리는 행위대로 심판을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안 받아요. 왜냐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돼 있기 때문에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일이 없다니까요. 근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자는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이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거예요. 행위대로 심판에서 걸리지 않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이 말씀은 잘한 자는 구원하고 못한 자는 버린다 이 뜻이 아니고, 행위대로 심판한다는 말은 무조건 심판한다는 뜻이에요. 무서운 말씀이에요.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누구든지"라 그랬죠. 행위가 좀 나은 놈은 좀 봐주고 그렇지 않아요.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다 불못에 던져지더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계시록 2장 남았습니다. 21장과 22장 남았는데 다음 주에는 21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장 제목들은 한 번씩 읊어 보시고 기억하시고, 21장을 잘 읽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배우게 하신 것을 마음에 새기고 결단하고 실천할 용기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사탄은 우리를 분열시키고 갈라놓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둘이었던 것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갈라놓는 악한 세력들 우리가 그것들을 잘 경계하고 기억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우리 스스로 다시 금을 긋고 갈라놓는 일이 없도록 주여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어리석은 곡과 마곡처럼 부화뇌동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미혹되지 않도록 도우시며, 큰 마귀가 풀려난다 하더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우심이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자리에 항상 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는 자들이 되도록 주께서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고,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로 살기 원하오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며 그 안에 거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오늘도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종말의 때에 악한 사탄의 무리가 악의 잔당들이 우리를 미혹하고 유혹할 때 넘어가지 않도록 도우시고, 이미 큰 마귀가 사로잡혀 있으니 우리는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 얼굴 보고 십자가 보고 담대하게 나아가서 결국 승리하는 믿음의 백성들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