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특강 17: 내가 속히 오리라 (22장)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오늘은 드디어 요한계시록 열일곱 번째 시간, 마지막을 마치는 시간까지 왔습니다. 지금까지 열여섯 번을 공부했는데, 계시록에 대한 큰 그림과 얼개가 그려지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시록을 공부하면서 요한계시록이 두려운 책이 아니라는 것, 이 정도만 깨달으셨다 하더라도 성공한 것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계시록의 말씀이 구약에 있는 말씀과 신약에 있는 말씀을 다 총정리한 책이라는 것, 이 정도 기억하시면 아주 훌륭히 공부를 잘하신 겁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두고두고 읽어야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인내하시고 또 길이 참아 주시는 책이라고 계시록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계시록 22장을 앞두고 지금까지 공부한 각 장의 제목을 한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 1장을 공부할 때는 "요한계시록,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주제로 공부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하신 것이 계시록의 말씀이고, 계시는 보여준 것까지만 우리가 알 수 있으며,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2장과 3장에는 일곱 교회에게 주신 말씀, 그 일곱 교회의 장점과 단점, 고쳐야 될 것, 책망할 것, 앞으로 이렇게 살아라 하는 말씀까지 일곱 교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4장부터 계시록의 서론이 나오는데, 요한이 올라간 하늘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4장에서 보여줬습니다. 계시록에는 세 가지 심판 시리즈가 있는데, 첫 번째 심판 시리즈가 일곱 인을 뗄 때마다 나타나는 심판입니다. 그런데 일곱 인 심판은 여섯 번째 인을 떼실 때까지만 하고 잠깐 건너갑니다. 7장에 십사만 사천이 나오고, 그리고 8장과 9장에 일곱 나팔 심판이 나오는데, 사실 일곱 나팔 심판 하기 전에 마지막 일곱 번째 인 심판이 8장에 나옵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그리고 일곱 나팔 심판이 8장과 9장에 한꺼번에 나오지 않고 여섯 번째 나팔을 부는 것까지만 나오고, 10장은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11장에 가면 두 증인이 나오고 거기에서 일곱 번째 나팔을 붑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일곱 번째 인과 일곱 번째 나팔이 한참 건너서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이 참고 인내하고 기다린다는 증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12장에 보면 여자와 용이 나오는데, 여자는 교회를 용은 사탄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13장과 14장에 보면 두 짐승 이야기가 나오고, 또 십사만 사천이 나옵니다. 십사만 사천은 7장에도 나오고 14장에도 나옵니다. 중요하니까 두 번이나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장과 16장에 가면 일곱 대접 심판이 나옵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그래서 세 번의 일곱 심판이 이제 완료가 됩니다. 이렇게 일곱 대접 심판이 끝나고 나면 이제 차례차례로 무너져 내리는데, 바벨론 곧 로마에 대한 심판의 서론이 17장에 나오고, 18장에 가면 바벨론이 멸망당합니다. 로마가 망하는 것입니다. 로마가 망하고 나니까 이제 어린양이 혼인 잔치를 하고 짐승이 멸망당합니다. 짐승은 국가 권력, 황제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망했으니까 황제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20장으로 가면 용의 심판과 멸망이 나오는데, 용은 배후 세력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이 멸망당했고, 그다음에 짐승이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면 바벨론과 짐승 뒤에서 배후 역할을 하고 있었던 가장 악한 세력인 용, 사탄이 멸망당합니다. 그리고 나면 이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오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대하고 기다렸던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공부할 "내가 속히 오리라", 이제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내용입니다. 잊어버릴 만하면 이 계시록의 각 장 제목을 계속 떠올려 보시고 생각해 보시고, 계속 암송하시고 외우시면 계시록 전체 주제가 머릿속에 들어와 있을 것입니다.
1. 새 예루살렘의 실체
이제 오늘은 교재 74쪽을 보시면, 지난주에 우리가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공부하다가 마쳤는데,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없는 것이 있고 성 안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 안에 무엇이 없으며 또 무엇이 있느냐, 이것을 한번 보겠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천국입니다. 장차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입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우리가 생각할 때 없는 것이 없어야 됩니다. 다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삽니다. 결여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부족하고 무엇인가 모자랍니다. 그런데 천국에 무엇이 없다고 하면, 과연 그것을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없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1-1. 성 안에 없는 것
성 안에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21장 22절을 보시면,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새 예루살렘에 무엇이 없습니까? 첫째, 성전이 없습니다. 왜 없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성전이 되시고 어린양이 성전 자체가 되시니까 성전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천국 가서 양산중앙교회를 찾으시면 큰일 납니다. 없습니다. 그런 교회는 이 땅에 있는, 지상에 있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아름다운 예배당도 천국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성전이 되시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아무리 멋지고 비싼 대리석으로 지은 성전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있을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천국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 땅에 있는 교회는 어떻게 봐야 될 것이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천국에 단순히 성전이 없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곤란하고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지정하신 것은 성막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은 사실 성막 천막 안에 거할 이유가 없는데, 내가 그곳에서 너희를 만나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내가 너희와 교제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발전하면 정착 시대에 가서 솔로몬 시대 때 성전이 됩니다. 그전까지는 성막으로 있다가 솔로몬 시대에 와서 최초의 성전이 됩니다.
그런데 솔로몬 성전이 타락하니까 성전을 하나님께서 부수셨습니다. 불태웠습니다. 성전에 있는 모든 금은보화와 각종 그릇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다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성전, 그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불타고 완전히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성전에 피하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은 그야말로 돌로 지은 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포로 이후에 귀환해서 지은 성전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중심이 되어서 지었기 때문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규모에 있어서는 솔로몬 성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전 영광보다 이후에 이 성전의 영광을 더 크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그곳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말씀을 지키며 살면 내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성전이 헤롯 성전입니다. 헤롯은 에돔 사람입니다. 이방인 헤롯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46년 동안이나 오랫동안 지은 건물이 헤롯 성전입니다.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이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하다 한들 천국에 가면 그 성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교회라는 건물을 어떻게 봐야 될 것이냐? 교회라는 건물은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잠시 잠깐 나그네로서 살아가고 있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겠다고 약속하신 공간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면서 교회라는 건물을 우상시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기능적으로 접근하셔야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교제할 수 있느냐, 안전해야 되겠고, 예배 잘 드릴 수 있는 곳이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니겠습니까? 더 이상 거기에다가 우리가 너무 많이 우상화하고 너무 많이 신성시하면 안 됩니다. 솔로몬 성전 때문에 우리 관념 속에는 성전은 최고로 지어야 되고 멋지게 지어야 되고 가장 아름답게 지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는 내 인격이라는 성전입니다. 성전을 아무리 그렇게 멋지게 지어 놓아도 그 안에서 믿음 생활하고 있는 성도들의 믿음 상태가 엉망이면 그 건물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천국에 가면 건물로서의 성전도 없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얼마나 우리가 인격적으로 잘 모시고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두 번째, 새 예루살렘에 없는 것이 있는데, 계시록 21장 23절입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해, 달, 별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해, 달, 별이 없으면 캄캄해서 어떻게 지냅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빛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에 좌정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에서 빛의 반사체인 해나 달이나 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천지창조를 보시면 첫째 날 만든 것이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달, 별은 넷째 날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첫날 만든 빛은 무엇이고 넷째 날 만든 해, 달, 별은 무엇입니까? 첫째 날 만든 빛과 넷째 날 만드신 해, 달, 별은 근원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보셔야 됩니다. 해, 달, 별은 오늘 우리가 보는 빛 그 자체의 반사체이지 빛 자체는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해, 달, 별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하나님 자체가 빛이 되신다는 사실, 그분 자체가 천국에 존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오늘 해와 달과 별이 있어도 밤이 되면 캄캄해지고, 낮이 되면 달이 보이지 않고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면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없는 것이 있습니다. 25절입니다.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밤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니까, 빛이 계속 계시니까 밤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여기 이 밤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의 어두운 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민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걱정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비유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 기나긴 밤과 같은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천국에는 밤이 없고 고민이 없고 걱정과 염려도 없고, 기쁨과 감동과 은혜만 있다는 뜻입니다.
거기에는 또 천국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22장 3절입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저주가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저주가 성경에서 말하는 저주의 본뜻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보통 사람들끼리 대화하다가도 저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의 저주가 성경이 말하는 저주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저주는 하나님과 우리의 영원한 분리를 저주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분리되는 것, 그것은 저주 중에 가장 심각한 저주입니다. 사실 좀 가난하게 살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여러 가지 인생의 불편함이 있는 것, 그것은 저주 축에도 끼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고난일 뿐이고, 고생이고 고난일 뿐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저주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분리를 저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하나님과 우리가 분리될 일이 없습니다. 함께 계시는데,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그것이 왜 분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천국을 맛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3장 공부할 때, 여기 계시록 올 때도 공부했는데,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려고. "함께 있게 하시려고"가 헬라어로 스케노오(σκηνόω), "거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지난 시간에 공부했습니다. "함께"는 메타(μετά), 메타 스케노오, 함께 있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분리가 아니고 항상 메타 스케노오, 같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계속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얼마 동안? 영원토록. 그 시간의 끝이 없도록 영원토록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제자들에게 잠깐 3년 동안의 천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함께 있게 하시려고.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도 천국을 한번 연습해 보고 누려 보려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훈련을 하셔야 됩니다. 함께하려면 어떻게 하면 함께할 수 있을까요?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여기서 훈련 다 받았으니까 안 죽어도 돼" 하시고 데려가신 것 아닙니까?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자기 욕망과 자기의 의지를 일단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함께 동행할 수 있습니다. 자기 욕심과 욕망을 버리려면 말씀 따라 살아야 됩니다. 매일같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쓴 뿌리를 끊어내려면 기도해야 됩니다. 길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기본 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충실하게 하면 이 땅에서 우리는 천국을 연습하고 미리 당겨서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연습 미리 하고 천국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부연해서 말씀하는데요, 22장 5절을 보면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취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여러분, 이런 것들은 이제 천국에 없어도 되겠지요? 성전도 필요 없고, 해, 달, 별도 필요 없고, 밤도 필요 없고, 저주도 없고. 그런 천국, 우리 마음속에 항상 그리워하고 가보고 싶지 않습니까?
1-2. 성 안에 있는 것
이것이 천국에 없는 것인데, 이제 천국에 새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꼭 있는 것, 다 있겠지요. 이것 빼고는 다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성경 계시록에서 밝히고 있는 것은 우리가 꼭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이것만은 알아야 된다, 이것만은 너희가 꼭 기억하고 알아야 된다. 그것이 무엇이냐?
22장 1절을 보시면, 성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여기 잘 보십시오.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강 이름을 무엇이라고 불렀습니까? 생명수의 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상상력을 좀 발휘해 보면, 이 강의 이름이 생명수의 강이니까 이 강물을 마시면 생명이 어떻게 될까요? 먹고 죽어 버릴까요? 영원히 사는 강물일 것이고, 죽어 가는 것도 살리는 강물일 것입니다. 천국의 강물이니까요. 여기는 생명수의 강물이라 그랬는데, 그 끝에 또 보십시오. 1절 끝에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 강물이 어디에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까? 보좌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온다는 말씀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 이것을 우리가 보셔야 되는데, 그 힌트를 2절에서 주고 있습니다. 22장 2절을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어디로 흐릅니까?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고, 그 생명나무 가지는 여러 것들을 치료하는 도구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두 가지가 딱 떠올라야 됩니다. 에덴동산에 강이 있었다, 이것이 떠올라야 되고, 그리고 또 에스겔 47장이 떠올라야 됩니다. 에스겔 47장은 성경에 흐르고 있는 정신입니다. 이것을 계시록 마지막에 강으로 형상화하고 있고, 새 예루살렘 천국에 가면 이런 생명수의 강이 있는데, 이 강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강이 아니고 창세기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던 강입니다.
볼까요? 창세기 2장 10절,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에덴동산은 가장 완벽한 곳 아니었습니까? 가장 완벽한 곳.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에덴에 두셨고, 그 곳에 강을 두셨습니다. 이 강이 천국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 있는 생명수의 강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짓고 이 강을 잃었습니다. 생명수의 강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죄 가운데 흘러 흘러 흘러 흘러 살다가 나중에 나라까지 잃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갑니다. 포로 70년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그 환상이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물의 환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강이 흘러 나온다는 말과 너무 닮아 있지 않습니까?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물이 흘러나온다. 그 물이 흘러 나와서 처음에는 사람의 발목을 채웁니다. 그다음에는 또 천 척을 측량하니 어떻게 됐습니까? 무릎을 채웁니다. 그다음에 허리, 그다음에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강이 흘러 흘러 흘러 들어가는데, 그 강이 이르는 각처마다 죽어 가는 모든 생명들이 다 살아납니다. 죽은 바다에 그 강이 흐르니까 바다도 다시 살아납니다. 어부들이 물고기를 다시 낚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에스겔 47장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보여준 다시 소성케 되는 이스라엘 민족과 세계 열방에 역사의 비전입니다. 볼까요? 에스겔 47장 1절,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이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물이 흘러나온다. 그러면 그 성전에서 무엇이 나온단 말씀입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이 생수의 강처럼 흘러 나와 가지고, 그 강이, 그 생수의 강이 처음에는 발목, 그다음 무릎, 허리, 강이 되어서 죽어 가는 모든 생명을 살린다는 말씀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생수의 강 이야기, 이것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비전입니다. 이 강이 새 예루살렘에 가면 이 땅을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어서 가는 나라가 천국이지만, 오늘 이 땅에서도 우리는 천국을 얼마든지 누리고 얼마든지 경험하고 얼마든지 전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면, 교회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이 생수의 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소문이 생수의 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강이 이르는 모든 각처마다 우리 이 지역을 살리고, 이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고, 열방을 살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뻐하면서 온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말씀 전하고 복음 전하고 전도해서 죽어가는 모든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 있는 우리가 천국을 꿈꾸고 이루어 가는 사람들의 비전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계시록 말씀은 그냥 이 땅은 소망 없는 땅이고, 버린 땅이고, 그냥 우리는 저 피안의 세계 천국만 사모하자는 말씀이 아니고, 지금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주신 새로운 성전 환상의 비전이 오늘 우리의 비전이 되어서, 이 말씀을 붙들고 살면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바른 말씀이 선포되도록 목회자는 설교와 말씀 앞에 바로 서려 노력을 하고, 성도들은 그 말씀을 붙들고 나가서 전하고, 말씀대로 살아내고, 내가 곧 생수의 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도 당연히 하나님 나라가 구현될 것이고, 저 천국에 가면 "아, 내가 이 땅에서 천국을 잘 연습하다 왔구나, 생수의 강이 있구나" 이것을 더 느끼고 누리고 살 것 아닙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하루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물었습니다. "예수님,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안에 있다"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영어 성경에 보면 "너희들 가운데 있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너희들 가운데"라는 말은 너희들이 노력하고 애를 쓰고, 하나님께서 천국을 구현하라고 이루어지라고 말씀대로 살면 얼마든지 너희 공동체에서도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정이 천국이 될 수 있고, 교회가 얼마든지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바른 말씀이 흘러 나와야 됩니다. 그것을 붙들고 우리가 살아 내야 되고, 그러면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2. 새 예루살렘의 소망
성 안에 없는 것, 있는 것 다 정리했습니다. 이제 8번 질문, 새 예루살렘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계시록 21장 26절과 27절을 보시면,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우리는 세상에서 참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합니다.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훨씬 더 노력하지 않은 사람, 게으른 사람이 더 잘 되는 것도 보고 억울해하기도 하고, 나는 이렇게 성실하고 거룩하고 진실하게 사는데 하는 것마다 잘 안되고, 그래서 하나님께 따지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혈기 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 인간들은 못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속된 것,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공정한 곳이니까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는 곳이니까요. 어린양의 신부만 들어가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이 땅에서 불공정한 것 때문에 억울하고 화가 나고 기분 나쁘고 죽고 싶어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조금만요. 그러면 이 땅에서 조금만 참으면 천국에서 영원한 안녕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우리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습니다.
여기 "거짓말하는 자"라고 표현을 했는데, 거짓말하는 자는 우리 계시록의 언어로 옮기면 예 빼임, 뱀입니다. 예 빼임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를 꾀인, 그들을 유혹한 뱀입니다.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장난쳤습니다. 말씀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속이고 살아가면서 거짓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난질 치는 자를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3. 말씀의 권위
여기에 대해서 이제 22장에서 조금 더 상세하게 말합니다. 22장 4절 거절은 아까 다뤘으니까 넘어가고, 이제 그다음 페이지 보시면 76쪽, 계시록 22장입니다.
3-1. 신실하고 참된 말씀
6절을 한번 볼게요. 사도 요한이 듣고 보고 전한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이 말이 무엇일까요? 여기서 하는 이 말은 지금 22장까지 왔습니다. 지금 계시록이 1장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셨던 모든 말씀입니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이 말씀은 하나도 거짓이 없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밑에 있는 22장 16절을 볼게요.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 예수는"—예수님이 스스로 말씀하신 것입니다—"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이것들은 계시록의 말씀입니다. 지금 계시록에서 하셨던 모든 말씀입니다. 다시 그 의미를 살려서 읽어 볼게요.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지금까지 말한 계시록의 모든 말씀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계시록이 누구를 위한 말씀이라는 뜻입니까? 교회를 위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계시록 전체 말씀이, 지금까지 우리가 17주 동안 계속 나누고 읽은 말씀이 교회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자들, 천사들을 보내서 전하라 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계시록을 가르치고 전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것을 등한시 했기 때문에 계시록이 이단들의 전매특허가 된 것 아닙니까?
교회가 예수님의 뜻대로 계시록의 말씀을 제대로 풀어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단들이 그 틈새를 노리고, 교회가 해석하지 않으니까, 교회가 가르치지 않으니까 자기들이 마치 하늘의 신비와 비밀을 다 아는 자처럼 계시록을 자기들 마음대로 풀어 버린 것 아닙니까? 이단들이 계시록까지 고장 낸 것은 기존 교회 문제가 첫 번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계시록의 말씀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계시록을 봤지만 여기 두려운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짐승의 표 받은 자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들이 겁을 내야지, 우리는 계시록의 말씀이 하나도 겁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묻어 났습니다. 오랫동안 참고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습니까?
3-2. 가감하지 말라
조금 있다가 보면 계시록에 나타난 복을 한번 정리해 볼 것입니다. 계시록이 얼마나 복 주는 말씀이 많은지요. 또 계시록에 나오는 이 말씀의 특징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22장 18절과 19절 보시면,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오." 무섭지요? 말씀을 보태지 말라는 말입니다. 19절,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무섭지요? 굉장히 엄청난 말씀입니다.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 빼임, 마귀, 뱀은 어떻게 했습니까? 말씀을 자기 맘대로 넣었다 뺐다 마음대로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 두려워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 프로도 하고 자기 생각대로 넣어 가지고 거기에다가 양념을 치고, 그것에다가 말씀을 변형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빼버리고, 이것을 가감한 자, 하나님이 이렇게 벌한다 하셨습니다. 이런 벌 중에 정말 무서운 벌 아닙니까?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재앙들을 더한다고 했고,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제하여 버리신다는데 얼마나 무서운 벌입니까?
"나는 이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실 수 있는데, 그런데 사실 우리도 그런 죄를 자주 범합니다. 어떻게 그런 죄를 범하느냐? 말씀을 취사선택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계속 읽고 내가 원하는 말씀만 계속 쫓아다닙니다. 복 준다는 말씀, 잘 된다는 말씀. 한국 교회에 옛날에 "삼박자 축복" 이런 것 들어보셨지요? 오박자 축복. 그런 것 다 복 준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복 주신다는 말씀이 있지요.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 당한다 하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예수 믿어서 망한 사람이 성경에 훨씬 많습니다. 예수 제대로 믿고 돈 못 벌고 망하고 힘들고, 그런데 천국에서 복 받고 천국에서 구원받고 영생 얻은 사람들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애써서 부인하고 안 보려고 그럽니다. 가르치지도 않으려 하고, 교회에서 그런 것 잡고 이야기하면 교인들 떨어져 나가니까요. 십자가를 이야기합니다. 계속 고난을 이야기합니다. "너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걸어가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싫어하니까, 부담스러워 하니까, 그것은 말씀을 가감하는 것입니다. 빼버리는 것입니다. 지우는 것 아닙니까? 성경에는 지옥도 있고 천국도 있습니다. 왜 지옥을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유황불과 불못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계시록에 그것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늘 이 시대의 문화를 보고 유행을 보고, 젊은 사람한테는 이런 것 싫어하니까 이렇게 이야기 못하고, 그러면 우리도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는 잘못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완전체입니다. 통합적으로 성경 전체를 통해서 이런 말씀도 저런 말씀도, 건강하려면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 22장까지 골고루 먹어 오셔야 됩니다. 때로는 이런 말씀, 때로는 저런 말씀, 어떨 때는 말씀 드리면서 깊은 찔림이 있고, 어떨 때는 약간 "내가 잘하고 있구나" 힘이 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골고루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선택하는 것은 말씀을 가감하는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말씀의 권위를 어떻게 밝혔는지, 신명기 4장 2절을 보시면 모세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담백하게 말씀하셨지요? 가감하지 마라. 더하거나 빼지 마라. 그냥 그대로 지켜라. 묻지 말고 따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그대로 있는 대로 지켜라. 얼마나 단순합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냥 여러 가지 핑계가 많아서 원하는 것은 지나치게 취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취하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는 정말 옳지 않습니다.
4. 속히 오리라
4-1. 임박한 재림
"내가 속히 오리니" 7절을 보십시오. 임박한 재림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속히"에 동그라미 치시고, 10절도 보시면 22장 10절도 이렇게 나옵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움이라." 속히 오신다, 이 말은 때가 가깝다는 말씀 아닙니까?
이제 12절을 더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여기에 "속히"라는 말에도 또 동그라미 치시고, 20절에 보면 이제 한 단어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어떻게 속히 온다고요? "진실로" 속히 온다고요. "진실로"가 붙었으니까 정말 속히 온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속히"라는 단어를 우리가 좀 이해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 "속히"라는 단어를 들으시면 어떤 느낌이세요? 당장, 금방, 지금이라도, 내일이라도, 그런 느낌이지요? 그런데 "속히"라는 단어의 원뜻을 살펴보면 시간적인 의미보다는 감정적인 의미가 훨씬 더 강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속히가 "갑자기"라는 의미입니다. 갑자기. 시간적인 속히는 오늘, 내일, 모레, 일주일 이것을 속히라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는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을 갑자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상치 못할" 이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내가 예상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때와 날은 누가 아느냐?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한 분만 알고 계십니다.
속히 온다, 이 말, 이것 때문에 임박한 재림 사상이 있었고,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에 보면 공중에 구름 타고 올라가시잖아요? 천사들이 그렇습니다. "너희들이 본 모습 그대로 오시리라."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백성들, 성도들에게는 "본 모습 그대로 온다" 그랬으니까 금방 오시는 것이니 그랬다고요. 그런데 속히 온다고 했으니까 언제 오시나? 그런데 이 "속히"라는 말의 헬라어 원뜻은 "예상치 않을 때" "갑자기"입니다. 2천 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안 오시겠지요? 갑자기 오시는 것을 갑자기.
4-2. 깨어 있으라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깨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정신 차리고 분별하고, 언제 오실지 모르니까, 예상치 않을 때 오시니까, 절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항상 긴장하고 살아야 됩니다. 영적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됩니다. 영적 긴장,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태도입니다. 믿음 생활하는 자들에게는, 그래야 죄에 깊이 빠지지 않습니다. 죄 짓는 현장에서 예수님 만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죄 짓는 현장에서, 그 추악한 죄 현장, 사람들은 모르고 내 가족도 모르고 내 식구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고 나 혼자 하는 그 죄 짓는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공중에 나팔 부시고 공중 재림의 주로 나타나시며, 그때 우리 어떡해요? 그 순간 상상 한번 해 보십시오. 끔찍하지 않으세요? 두렵지 않으세요? 그 순간 어떻게 해요? 그 어떻게 변명합니까? 그 순간.
그래서 죄 짓는 것 하면 안 됩니다. 예상치 않을 때 갑자기 예수님이 오신다고 그랬습니까? 그래서 성도가 항상 경건하고 깨끗하게 사는 비결은 "예수님이 갑자기 오신다" 이것을 항상 하루에 아침에도 생각하시고, 밥 먹다가도 생각하시고, 잠자기 전에도 생각하시고, 아, 그러면 정신 번쩍 듭니다. 아예 죄를 계획했다가도 내려놓게 되고, "오늘 저 인간하고 내가 한번 사생결단 해야지, 멱살 좀 잡아야지" 하다가도, 아요, 예수님 그때 오시면 어떡해? 저 멱살을 쥐고 있다가 예수님 보시면 내가 이거 부끄러워서. "속히"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셔야 됩니다.
5. 복 있는 자
이제 복 있는 자. 제가 계시록을 다 뒤져 보니까 계시록에 복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개념 속에는 계시록은 무서운 책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복 주는 책입니다. 복을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는지 모릅니다. 계시록에서 복 준다는 말씀 한번 볼게요.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어떤 자가 복이 있다고요? 말씀을 지키는 자. 여기 "지키다"라는 말을 헬라어로 테레오(τηρέω)라고 되어 있습니다. 테레오는 "붙잡다"라는 뜻입니다. 꼭 붙잡다. 우리는 "지킨다"는 말을 "내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고 다 해야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겁을 내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원뜻은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꼭 붙들고 안 놓치려고 하나님의 말씀 기억하고 붙들고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 살면서 좌절하면 또 확 약속하면서 돌아서고, 계속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어떻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복이 있는 자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말씀을 붙들고 있느냐로 판가름 납니다.
계시록 1장 3절부터 이제 복을 언급했는데요, 그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원래 1장 3절에는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했는데, 22장에 오니까 읽고 듣는 것은 없어져 버리고 지키는 것만 나왔지요?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붙들고 있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 읽게 되고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 내게 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자가 복이 있느냐? 계시록 14장 13절 보면,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무슨 의미냐? 주님 품 안에서 죽는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이 말은 내 생명 끝날 때까지 배신하지 않고 주님 붙들고 살다가 생명 끊어진 자입니다. 내 호흡 끝날 때까지 주님 안에서, 예수님 부인하지 않고, 배반하지 않고, 짐승의 표 받지 않고, 666 받지 않고, 배교하지 않고 살아간 자, 그가 복되다고 했습니다. 의리를 지킨 자.
히브리서 기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7절과 8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읽을게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옛날에, 초대교회 시절에 중간에 배교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워낙 심했으니까요. 그래서 한때 뜨겁게 불타오르다가 갑자기 확 식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교하고 "우리 교회가 저기 있습니다, 저 공동체가 저 구석에 있습니다" 고발하며, 그 교회 성도들 오 표가 가지고 다 원형 경기장의 사자 밥이 됩니다. 그래서 한때 믿음 좋은 사람 보고 본받지 말고, 끝까지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끝까지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됩니다. 정말 우리가 복되려면, 내가 죽을 때 장관을 하다가 죽고, 국회의원 하다가 죽고, 돈 많이 벌어서 어느 회사 사장으로 회장으로 있다가 죽고, 이것이 복이 아닙니다. 예수님 꼭 붙들고 살다가 믿음 생활 잘하다가, 믿음 의리 꼭 지키고, 예수님 배반하지 않고, 신앙고백 하고 돌아가시는 것, 그것이 진짜 복입니다. 그 복을 위해서 기도하셔야 됩니다. 하나님, 제가 생명 다하는 날까지 예수 이름 배반치 않게 해 달라고, 그러면 복 받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또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느냐? 16장 15절에 보면,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자기 옷을 지키고 벌거벗지 않는다.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 똑같은 말씀이지요? 죽을 때까지 믿음을 지킨 자,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
계시록 19장 9절을 보시면 또 어떤 자가 복이 있느냐?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어떤 자가 복이 있다고요? 청함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 받은 자, 즉 신부가 되어야 됩니다. 우리 지난번에 공부했지요? 어린양의 신부가 될 자격이 있는 자, 어떤 자가 자격이 있다고 했습니까? 순결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순결, 영적 순결, 깨끗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으로 순결하고, 우상숭배하지 않고, 나를 항상 깨끗하게 지키셔야 됩니다. 그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말하는 것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20장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고 했습니다. 첫째 부활. 첫째 부활이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면, 예수님의 재림 직전까지 신앙생활 하다가 믿음 잘 지키고 세상 떠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24장로들 그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그런 분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 아닙니까? 우리 교회사에 의하면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유관순 누나, 이런 분들, 이런 분들 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신 분들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신앙의 선배들, 이런 분들 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22장 14절에 보니까,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두루마기는 옷입니다. 두루마기를 빤다. 이 두루마기를 빤다, 이 말은 회개한다라는 뜻입니다. 회개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사람이 살다가 죄 지을 수 있는데, 회개하고 완전히 돌이켜 양이 되면, 회개의 영을 하나님께서 부어 주셔서 완전히 돌이키면 복이 있다.
정리해 보면 계시록이 복을 얼마나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이것만 봐도 계시록은 두려운 책이 아니고, 복이 한꺼번에 쏟아져 있는 책입니다. 계시록만 보더라도 복, 복, 복, 우리가 좋아하는 복을 얼마든지 많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6. 마라나타
마라나타 신앙고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했는데, 20절 보시면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말을 아람어로, 아람어—예수님도 아람어 방언을 자주 쓰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제파다" 뭐 이런 것 다 아람어입니다—여기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을 아람어로 하면 "마라나타"입니다. 마라나타.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였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항상 저들이 길에 만나면 "마라나타! 마라나타!" 이렇게 인사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왜냐하면 고통스러우니까,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너무 고통스러우니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서 마라나타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이것이 마라나타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말씀을 나중에 성경에 한번 찾아보시면 거기에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그 아래 내려가면 "마라나타"라고 적혀 있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되느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말하려면 우리 영적 상태가 어때야 됩니까? 더러운데 "어서 오십시오" 할 수 있습니까? 깨끗해야 됩니다. 내가 어린양의 신부가 될 정도로 순결해야 됩니다. 자신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 지금 당장 오셔도 나는 어린양의 신부가 되어서 새 예루살렘에 함께 거하고 그곳에서 생명수 강가를 누릴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다" 이 정도의 자신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마라나타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항상 성도들끼리 만나면 "마라나타! 마라나타!" 했다고요. 그런데 오늘 우리도 이 땅에서의 복락과 이 땅에서 누리는 것만 추구하지 말고, 언제 예수님 다시 재림 하셔도 자신 있을 정도로 마라나타 믿음을 갖고 계셔야 됩니다. 죄 짓지 않고, 정결하게, 우상숭배하지 않고, 하나님 자녀답게, 영광과 은혜 중에 사셔야 됩니다.
나가며
이 계시록 이제 우리가 오늘 열일곱 번째 말씀까지 다 공부하고 22장까지를 다 배웠습니다. 아마 공부하시면서 "아, 좀 어렵다" 하는 것도 있었을 테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영상이 다 있으니까 나중에 복습도 한번 해 보시고, 저희 교회는 계속 계시록에 대한 말씀을 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또 나눌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내일 새벽기도부터 다시 또 계시록 1장이 됩니다. 놀랍지 않으십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섭리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계시록 복습하시고, 계시록 1장부터 내일 다시 새벽기도 말씀이 돌아가니까 한번 더 복습하시고 또 공부하시고, 계속해서 이렇게 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극진한지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오늘 출석 봉투 갖고 오셨으면 나가시다가 제출하시고, 질문 있으면 적어 오라고 했는데, 질문 있으면 우리 교육자들에게 주셔도 되고 우리 출석 봉투에 같이 넣어 주셔도 됩니다. 제가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심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영원히 우리와 함께 나누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경륜을 깨달았습니다. 주여,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느끼고 깨달아 싸온 데 앞으로 우리가 그 사랑 안에 살아가도록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고, 축복의 영화를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주의 백성들, 교회에게 주신 이 계시록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먼저 읽고 묵상하고 깨닫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가르치고, 교회 공동체와 다음 세대들에게도 계속해서 전파하고 가르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정결하고 깨어 있는 자가 되어서 언제 어디서든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초대할 수 있는 순결하고 깨끗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