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 전체녹취

요한계시록 특강-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1장)

요한계시록 1장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아멘.

서론: 요한계시록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오늘부터 시작해서 제17주 동안 요한계시록을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도 있고, 두려움도 있고, 잘 모르겠다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요한계시록은 아예 펼치면 안 되는 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아마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생명처럼 귀하고, 생명 그 이상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 17주 동안 요한계시록을 한 주 한 주 살펴보고 받으면서, 이 종말의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새롭게 결단하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지금 해야 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너무너무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요즘 이 시대가 이단들도 많고, 진리 아닌 비진리가 기승을 부리고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특히 요한계시록과 종말론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시한부 종말론자들과 사이비 종말론자들이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그들의 공격 무기로 삼기 때문에, 우리가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을 먼저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이번에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1. 요한계시록의 기본 이해

1-1. 편지로서의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성경에 나오는 여러 다양한 장르 가운데 편지에 속합니다. 편지를 읽을 때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될 전제가 있습니다. 편지는 보내는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남의 편지를 몰래 훔쳐볼 때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알면 그 훔쳐보는 재미가 훨씬 더 배가 됩니다. 그런데 보내는 사람도 모르고, 받는 사람도 모르고,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역학 관계와 상황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길바닥에 아주 중요한 편지가 내팽개쳐져 있어도 그거 우리가 아무리 읽어도 하나도 재미가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보내는 사람이 누군지, 받는 분이 누군지, 그리고 그때 기록된 상황과 정황이 어떤지, 이것이 계시록을 공부하는 기본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그렇게 시작하지 않습니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정황 이런 것 탕 무시합니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문자 그대로 성경구절 뽑아내고 싶은 것 그대로 그냥 가져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른 성경 읽기에서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역사적 상황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을 쓰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요한계시록이니까 요한입니다. 그런데 아주 기초적인 질문인데, 여기서 말하는 요한이 세례 요한입니까?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입니까? 그렇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 요한계시록을 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가 봤습니까?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성도들이 봤습니다. 그러면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도 요한이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제대로 살피지 않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성도로서 직무를 유기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교회에 보내는 편지라는 것, 이것을 먼저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1-2. 역사적 상황

그렇다면 상황이 어떤 상황에서 보내는 것일까요? 아주 좋은 상황, 행복한 상황, 요한이나 교회나 아주 평안하고 물질적으로 걱정이 없고 건강도 문제가 없는 그런 상황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그 상황은 아주 생명이 위협받는 그런 상황입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기원후 313년 이전입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에 로마 치하에서 성도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을까요? 사실 우리는 그 시대를 안 살아 봐서 알 수 없지만, 기록만 봐도, 영화만 봐도, 우리 민족이 과거 일제 치하의 36년의 삶을 살았던 것만 돌아봐도 그 수많은 고통과 환란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런데 로마가 식민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가 많은 어떤 정책으로 식민지를 지배했는가, 이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로마가 전 세계 제국을 형성하게 된 아주 기본적인 요인은 관용 정책이었습니다. 포용정책입니다. 로마는 어떤 나라를 정복하든지 간에 그 나라의 문화와 법률과 그 나라의 여러 가지 제도들을 그대로 다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냥 막무가내로 로마의 제도와 로마의 말과 로마의 헌법과 로마의 법률,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다 써라 이러면 저항이 일어날 텐데, 로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다 인정해 주고 거기에 총독 한 사람 딱 파견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바뀌었는데, 지배자는 바뀌었는데, 우리 삶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피지배 국가에 있는 사람들도 나라가 바뀌었는지 황제가 바뀌었는지 그들도 잘 인식을 못하고 산 것입니다. 그런 느낌으로 로마는 피지배 계급을 다 정복하고 다스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반드시 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되는데, 이것만은 꼭 지켜줘야 된다고 한 것이 무엇이냐? 황제 숭배입니다. 로마의 황제들이 있는데, 그 황제의 동상과 흉상을 동네 곳곳마다, 대도시 구석구석마다 다 세워 놓고 거기 와서 절하라고, 거기 와서 고개를 숙이라고 하면 모든 것은 너희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은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허락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황제마다 황제 숭배를 좀 강하게 밀어붙인 황제도 있고, 그냥 눈감고 넘어간 황제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이 당시에 로마 황제가 누구냐 하면, 도미티안이라는 사람입니다. 원래 원 발음 그대로 하면 도미티아누스(Domitianus)라는 황제입니다. 도미티안은 영어 발음이고, 원래 발음은 도미티아누스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의 재위 기간이 서기 81년에서 96년까지입니다. 16년을 통치했는데, 굉장히 악한 황제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을 어떻게 불렀느냐 하면 '네로의 재림'이라고 했습니다. 네로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이 사람은 악한 황제였습니다.

도미티안 황제가 황제 숭배를 가장 강조했고, 황제 숭배하지 않는 사람을 잡아 죽이기까지 하고 거기에서 아주 극렬한 기독교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셔야 됩니다.

1-3. 성경을 보는 두 가지 렌즈

우리가 성경을 보는 관점이 필요한데, 성경은 두 가지 렌즈를 가지고 봐야 됩니다.

첫째는 역사적 정황을 절대로 빼버리면 안 됩니다. 성경이 기록된 그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의 토대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구약성경은 구약이라는 세계관과 구약이라는 역사 위에서 기록되고, 요한계시록은 그 당시 로마라는 그런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만약에 역사적인 정황을 빼버리고 성경을 읽는다면, 오늘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육받고 우리가 살아온 관점이 있고, 훈련받은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런 세계관으로 성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이 너무 많겠습니다. 이 성경의 언어가 우리말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 원어를 번역한 것인데, 그렇게 해서 성경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역사적인 정황을 우선 살펴야 됩니다. 이단들은 역사적인 정황을 싹 빼버립니다. 역사적인 정황을 연구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고 싹 빼버립니다. 그냥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가르치고 싶은 대로 자기 집단에 이로운 대로 구절 구절을 다 떼어 가지고 옵니다. 그것은 정말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렌즈가 또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역사성만 중요하고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중요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계시록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견뎌라, 인내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환란은 반드시 그 마치는 기간이 있다. 이것이 주제입니다. 로마 황제 핍박이 아무리 거세고 아무리 황제 숭배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반드시 끝나는 시간이 있다. 그것을 잘 견뎌라. 이것이 그 당시의 역사적 교훈입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에게로 가져오면, 21세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내가 당하는 믿음의 환란, 고난, 핍박, 어려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역사적인 정황과 오늘의 정황, 두 가지를 교차해서 봐야 된다는 사실, 특히 계시록에서 그렇습니다.

1-4. 유대 묵시문학 전통

요한계시록을 볼 때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방법을 먼저 인지하고 있어야 됩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라고 했습니다. 다 썼습니다. 편지를 썼는데, 적나라하게 썼다고 합시다. 예를 들어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사탄이다, 마귀다. 그놈이 죽도록 기도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반드시 밟아서 그를 이기고 오실 것이다."

만약 그렇게 써 가지고 회람 서신을 보냈습니다. 누군가가 그 편지를 가슴에 안고 오늘은 서머나 교회에, 오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내일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이곳저곳 교회를 다 돌아다니다가 비밀경찰한테 발각됐다고 합시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머니를 다 뒤졌는데 그것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누가 썼느냐, 어디로 가져가느냐, 교회가 초토화되겠습니다. 그렇게 쓸 수 없는 것입니다. 핍박받는 교회 입장에서는 그렇게 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써야 되느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오랫동안 공동체를 형성해 온 유대인들끼리는 말 안 해도 통하는 언어들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서는 '형제님, 자매님' 이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투쟁하라' 자연스럽습니다. 만약에 '투쟁하라'는 말을 적, 북쪽에 있는 사람들처럼 자본주의 미 제국주의와 투쟁하라,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투쟁하라고 얘기하는 것은 '피 흘리기까지 죄와 투쟁하라' 이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쓰는 교회 공동체에서 믿음의 백성들이 수백 년 동안,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흘러 내려왔던 언어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신학자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유대 묵시문학의 전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핍박받는 민족으로 내려왔던 그들의 문학적 전통이 있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로마의 비밀경찰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만약에 발각되었다 손 치더라도, 나중에 계시록 13장을 읽어보면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줬다'고 합니다. 용이 무엇입니까? 용은 유대 묵시문학 전통에 의하면 사탄입니다. 짐승은 국가권력입니다. 그 말을 그대로 풀면 사탄이 로마라는 국가권력에게 권세를 줬다는 것입니다. 국가권력의 대장은 누구입니까? 도미티아누스 황제 아닙니까?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항상 유대 묵시문학 전통에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수천 년 동안 그들의 방식대로 기록한 언어를 이해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계시록이 산으로 갑니다.

1-5. 게마트리아와 숫자의 상징

나중에 우리가 뒤로 가면 한 단락에서 살펴볼 텐데 게마트리아(Gematria)라는 것이 있습니다. 게마트리아는 숫자를 분석하고 자기들끼리 숫자를 쪼개고 나누는 방식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문화에서 별로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숫자가 있습니다.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4라는 숫자가 우리에게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건물에도 1, 2, 3, 4층인데 1, 2, 3, 5층으로 가버립니다. 분명히 4층인데, 교회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우리 교회는 4층 그냥 딱 꽂아 놨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중국 사람들은 8을 좋아합니다. 8월 8일, 그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서양 사람들은 7을 좋아하고 13이라는 수를 싫어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숫자가 주는 상징이 굉장히 큽니다. 완전수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완전수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하루는 주 예수님께 물어봤습니다. "예수님, 제가 어떤 사람을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데, 제가 용서할 때 얼마나 용서하면 될까요? 일곱 번만 용서하면 될까요?" 예수님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씩이라도" 그러면 490번만 용서하라는 말입니까? 완전수입니다. 7이라는 수는 무한대로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12라는 수가 또 하나의 완전수입니다. 유대 전통에서 이스라엘의 지파가 12지파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입니다. 그래서 12라는 수는 유대인들 전통에서 완벽한 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전통에서 12, 신약의 전통에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 또한 12입니다. 그 12라는 데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룟 유다가 다른 길로 갔습니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11명의 사도들이 그 한 자리를 또 채워 넣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맛디아라는 사람을 세워서 꼭 12를 맞춰야 된다는 강박이 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완전수는 7과 12입니다.

그러면 그런 의미에서 보면 144,000이라는 것도 신천지에서 말하는 그냥 문자 그대로의 십사만 사천으로 보시면 곤란합니다. 그 십사만 사천은 게마트리아식 방법으로 해석해야 되고, 666 또한 역시 그렇습니다. 666번 버스도 안 타는 사람을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집 전화번호에 6이 세 개나 들어가는데 이 전화번호를 바꿔야 됩니까?"하고 저를 찾아온 사람도 제가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게마트리아적 방법이나 유대 묵시문학 전통이나 요한계시록의 역사적 지평을 완전히 무시한 해석입니다. 전혀 그럴 이유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 요한계시록을 하나하나 살펴볼 생각입니다.

1-6. 구약과의 연결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닙니다. 구약에 보면 묵시문학 전통이 있는 책이 몇 개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다니엘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서가 있고, 이사야도 부분적으로 그렇고, 스가랴서도 그렇습니다. 오늘 나중에 스가랴 3장을 인용해서 볼 텐데, 그런 구약의 전통에서 나오는 성경구절이 계시록에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그냥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고 구약 전체의 총집합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의 흐름을 쭉 공부하고 있으면 계시록은 전혀 어렵거나 전혀 이상하게 해석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책입니다. 그것까지 기억하시고 오늘은 1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2. 계시의 의미와 전달

2-1. 계시란 무엇인가

1절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그냥 이렇게 읽었는데요. 이 안에 엄청난 정보와 엄청난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계시라는 이야기를 먼저 우리가 살펴봐야 되는데, 계시는 헬라어로 아포칼립시스(Ἀποκάλυψις)입니다. 헬라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에게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나타내다, 드러내다'라는 뜻입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입니다.

학문과 다릅니다. 학문은 우리가 인간 편에서 그 진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수학적 진리를 찾아가고, 과학적 진리를 찾아가고, 과학적 사실에 근접한 것을 실험을 통해서 밝혀내는 과정에서 인간 편에 주도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계시는 다릅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타내 보이는 것이 만약에 50이라면 우리가 지금 50을 다 알 수 있을까요? 알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만 100퍼센트 알아도 엄청난 것인데,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도 제대로 모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면, 하나님이 일반 계시 자연을 다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자연의 신비를 다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해 주셨는데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셨으니까요. 그런데 의사들이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인간을 탐구하고 연구해 봤지만 질병 하나 제대로 밝혀낸 것이 없습니다. 인체구조의 신비를 하나님이 이렇게 다 계시하시고 보여주셨는데 우리는 그것 중에 단 몇 퍼센트조차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히 하나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인간의 그 좁은 소견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이 하나님이 계시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나 하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 조그만 머리로, 이 연약한 인간의 육체로, 어떻게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이 세상과 자연 만물의 계시를 다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도 다 캐내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함부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계시의 특징을 세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절 보시면 이렇게 나옵니다. '주사, 보이시려고, 알게 하신 것.' 주시고, 보여주시고, 알게 하신 것이 계시의 특징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보여 주셨고,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입니다. 계시의 주체는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보여 보이셨고,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입니다. 누구에게요? 우리에게. 하나님 계시의 주체는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저 무엇입니까? 계시를 받는 입장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열심히 받으려고 애쓰고 탐구하고 하나님께 집중해야 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이 수업을 해 주십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 주시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데, 학생들의 이해도와 소화도가 얼마나 될까요? 집중해야 이해할까 말까입니다. 아니요, 아무리 집중해도 100퍼센트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러면 질문해야 합니다. 쫓아 가서 물어보고, 선생님 제가 이것 복습했는데 잘 몰라요 하고 물어봐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태도여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보이시고, 알게 하신 것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계시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탐구하셨습니까? 기도하시고, 하나님 나에게 보여주신 것 좀 깨닫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기 성경 말씀 좀 알게 해주세요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 미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계시하신 것이 있습니다. 말씀드렸습니다. 일반 계시인 자연, 특별 계시인 성경. 그런데 이 계시를 제쳐놓고 환상 보여달라고 합니다. 환상을 보여 달라고. 그러면 하나님이 그러실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것아, 내가 이미 너에게 계시란 계시는 다 보여줬는데, 성경도 주고, 자연도 주고 다 보여줬는데, 왜 그것을 탐구하지 않고, 왜 거기에 집중하지 않고, 너는 자꾸 또 다른 것을 보여 달라고 하느냐?"

성경 열심히 읽고, 말씀 열심히 공부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계시록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귀를 기울이고 열고 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하나님께 물어봐야 됩니다. 기도도 하고, 그리고 목사에게 와서 묻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탐구해야 하나님이 보여주신 10가지 중에 한두 가지를 그나마 알까 말까 한 것인데, 떠먹여 줘도 별 관심 없고, 열심히 하라 해도 관심 없고, 그렇다면 하나님 입장에서 얼마나 화가 나실까요? 얼마나 서운하실까요? 계시는 바로 그런 특징이 있습니다.

2-2. 계시의 전달 과정

1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계시의 전달 과정을 보셔야 됩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이 첫 번째 나옵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까? '그에게' 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했으니까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습니다. 순서가 첫째 하나님, 그다음 누구에게요? 그리스도.

예수님은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누구를요? 천사를. 순서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천사. 그다음 누구에게 갑니까? '그 종 요한에게' 종들에게 갑니다. 그리고 그 종 요한이 누구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까? 생략되어 있습니다. 교회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계시의 전달 순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천사, 사역자, 성도들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천사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사역자들에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교회에게 전달하고,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중에 두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거기서 사람이 나옵니다. 교회에 전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사역자입니다. 요한으로 대표되는 사역자.

그러면 사역자가 천사에게 말씀을 받든, 그리스도에게 말씀을 받든, 하나님께 말씀을 받든, 말씀을 받아서 교회에게 전달해야 됩니다. 오늘 저 같은 목사들, 그리고 구역장들, 교회학교 교사들, 과거의 선지자들, 말씀을 전달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전달하는 자는 다른 말로 하면 통로 아닙니까? 통로. 거룩한 통로가 되어야 됩니다. 저 같은 자들, 거룩한 통로가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거룩한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참기름을 담아둔 병이 있습니다. 참기름을 담아둔 병, 참기름을 다 먹었습니다. 비웠습니다. 물로 열 번 헹궜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다음에 맹물을 담으면 참기름 맛이 그 향이 사라집니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더러운 악취가 나는 그릇, 아무리 이렇게 깨끗하게 씻는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깨끗한 음식을 담아서 먹을 수 있습니까?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통로가 정결하지 않으면, 깨끗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말씀도 하시지 않고 그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영적인 순결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 구역장들, 교회학교 교사들, 말씀을 먹이는 자들은 자기 자신의 영성을 관리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 못하면 안 해야 됩니다. 큰일납니다. 나도 망하고 내 말을 받아 먹는 사람도 망합니다.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같이 큰일납니다.

그래서 이 계시의 전달 순서를 상세히 살펴보시면, 여기에 최종 수여자는 교회 성도들인데, 그 중간에 전달자가, 사람이, 사역자가 있다는 사실, 그 사역자는 하나님 앞에 깨끗한 영혼과 깨끗한 마음으로 서 있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2-3. 사역자의 증언

사도 요한은 보고 알게 되는 것을 어떻게 했습니까? 2절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상당히 담백합니다. 좀 감정을 실어서 읽으십시오. 저는 이렇게 읽고 싶습니다. "다 증언하였느니라." '다'를 좀 길고 크게 읽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정말 중요한 한 글자를 꼽으라면 '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사에게 주어진 말씀을 자기가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자기가 삭제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어떤 것은 전하고 어떤 것은 전하지 않고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교회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니까 내가 꿀꺽 삼켜야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또 "이 말은 교회가 좋아하는 말이니까 내가 좀 더해야지" 그러면 큰일납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거기서 더하다가 쫓겨난 것 아닙니까? 큰일납니다.

다 증언해야 됩니다. 있는 그대로를 다 전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를 참된 사역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리스도께 받은 계시, 그리스도께서, 천사가 받아서, 천사가 입에 넣어준 말씀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다 증언하는 것이 사역자들이 해야 될 역할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씀을 맡은 자들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셔야 되고, 또 성도들이 목회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실 때, 가장 기본은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물론 그 기도도 너무너무 중요한데, 이렇게 기도해 주셔야 됩니다. 담대하게 다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다 전할 때 우리 성도들이 아멘으로 받아 적게 해달라고. 그리고 다 전할 때 내 표정이 바뀌지 않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셔야 됩니다. 그래야 사역자들이 담대하게 말씀을 다 전할 수 있습니다.

3. 말씀을 받는 자의 복

말세에는 어떤 자들이 복이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이 저주의 책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은 죽는다, 죽인다, 망한다, 심판이 빨리 온다, 불탄다, 이런 것만 계속해서 나오는 책인 줄 알았는데, 왠걸요. 3절에 가서 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어떤 자입니까?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 읽고 듣고 끝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런 말씀을 한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는 것으로 끝이면 복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말 복이 완성되려면 읽고 듣고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계시록은 첫 서두에 복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 22장 끝에도 복을 얘기합니다. 22장 7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에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왜 읽는 자 듣는 자는 빼버리고 지키는 자만 남겨 두었을까요? 계시록 끝에 왔으니까요. 이미 이 말씀을 읽었으니까, 이미 이 말씀을 들었으니까, 이제 너희에게는 지키는 것만 남았다. 읽고 듣는 것은 했으니 지키는 것만 남았다. 지키는 것이 두 번 강조됩니다. 1장에도 있고 22장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행하는 것입니다.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두 아들 비유가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네, 아버지 가겠습니다." 안 갔습니다. 둘째는 "싫어요. 좀 못 가요." 그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 둘째를 칭찬하셨습니다. 행하고 지키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4. 삼위일체 하나님과 은혜

4-1. 일곱 교회의 의미

사도 요한의 편지를 받는 계시록의 수신자는 누구입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계시록을 쓰는 사람은 사도 요한인데, 물론 사도 요한이 자기가 창작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통해서 주신 말씀을 사도 요한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그대로 다 증언한 것입니다.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다 적어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받는 자가 누구냐? 교회입니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정보가 여기 들어 있습니다.

4절입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7이라는 말을 계시록에 나올 때마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숫자의 상징성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7이라는 숫자의 상징을 뭐라고 했습니까? 완전이라고 했습니다. 완전수. 유대 묵시문학 전통에서 7은 완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 일곱 교회라는 것은 그 당시에 있는 일곱 교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올, 과거 현재 미래 모든 교회를 다 총칭해서, 모든 교회를 다 모아서 일곱 교회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역사상 존재하는 모든 교회가 이 일곱 교회 모습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일곱 교회가 곧 오늘 우리 교회도 계시록의 말씀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말씀으로, 내가 정말 말씀을 받는 거룩한 통로가 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정결하게 서야 됩니다.

4-2. 성부 하나님

그런데 교회에게 은혜와 평강을 얘기하는데 엄청난 이야기를 사도 요한이 하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누구입니까?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뒤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가 다 나오는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그리고 장차 오실 분,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4-3. 성령 하나님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누구일까요? 성령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얘기하는데 왜 일곱 영이라고 얘기할까요? 여기에 대해서 논쟁이 좀 있습니다. 성령이 한 분이신데 성령이 일곱 영으로 쪼개어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계시록에서 말하는 7은 완전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완전한 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일곱 영이라는 것이 성령의 완전하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7이라는 숫자로 표현한 구약의 구절이 있습니다. 스가랴 4장 10절을 보십시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이 일곱은 뭐라고요?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계시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고 구약에서 묵시문학 전통이 있는 말씀을 다 가져온 것이라고. 7이라는 묵시문학 전통은 완전이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은 성령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완전한 눈으로 온 세상을 감찰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성령께서는 과거나 지금이나 오늘도 완전한 하나님의 눈으로, 여호와의 눈으로 오늘도 나를 감찰하시고,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받는 우리 교회 성도들 각 사람 각 사람을 지금도 살피고 감찰하고 계십니다.

설렙니까? 두렵습니까? 계시록은 심판도 얘기합니다. 심판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심판은 두렵습니다. 그런데 심판을 잘 준비한 사람에게는 설렘이 있습니다. "야, 이제 이 풍진 세상 끝이로구나. 빨리 수업 끝내고 천국 가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함께 왕 노릇 하고 싶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이 세상, 내가 열심히 수고하고 땀 흘려서 열심히 수고하고 열심히 전도한 이 세상, 이제는 하나님 제발 나를 좀 부르시면 가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준비한 자들이 심판에 대해서 가지는 이중적인 마음입니다. 두렵지만 설렘도 있습니다.

성령께서 여호와의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시는 데 그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설레기도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성령께서 나를 지금 좀 제발 좀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 내가 이렇게 주일에 애쓰고 힘쓰고 있는데 나를 좀 봐 주셨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내 인생이 좀 향기로웠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하루 24시간 "아, 좀 보지 말고 쟤 좀 보지. 왜 하나님은 맨날 따라다녀 가지고 날 이렇게 괴롭히시나" 이런 생각 가지고 있으면 곤란한 것입니다.

4-4. 성자 하나님

하나님 나왔고요. 성령님 나왔습니다. 그다음 5절 봅시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이렇게 나오니까 감이 딱 옵니다.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특징을 어떤 단어로 설명합니까? 5절 첫 마디의 '충성된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충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이라고.

충성의 어떤 개념입니까? 충성. 군인으로서 충성된 군인은 국가를 위해서 자기 한 목숨 바치는 군인 아닙니까? 전쟁터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내가 이 나라, 이 강산, 이 산하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산화시키는 군인이 충성된 군인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십자가에서 피와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자신의 몸을 다 찢어 주셨기 때문에 충성된 증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의 제자라고 하면, 감히 내가 예수님의 제자 되고 싶다고 말하면, 우리도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어디에요? 사람에게 충성하면 안 됩니다. 목사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바른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에 충성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충성하다가 같이 넘어집니다. 그 사람 실족하고 그 사람 타락하면. 절대로 사람에게 충성하면 안 됩니다. 말씀에 충성하고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4-5. 은혜와 평강의 근거

하나님 나왔고, 성령님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 나왔습니다. 이제 사도 요한이 하고 싶은 말이 나옵니다. 5절 다시 보시면,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이 얘기하려고, 교회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선포하려고 하나님도, 성령님도, 예수님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되고 배워야 될 것은 성도의 은혜와 평강의 주체가 누구시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지금 평강을 누리는 것이 무엇 때문에 평강합니까? 내 평강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돈이 많아서? 직장이 든든해서? 건강해서? 자식이 취직 잘하고 그들이 다 영광스럽게 잘 살고 있어서? 그것은 가짜 평강입니다. 그것 사라지면 불안합니다.

내가 그저 맡겼다, 물질이 한없이 하늘에서부터 부어주고 떨어져서 그것이 은혜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은혜가 진짜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꿀 수 없는 은혜,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가 진짜 내 것입니다.

세상적인 은혜, 세상적인 평강은 그것이 사라지면 은혜도 사라지고 평강도 사라지고 다시 불안해지니까요. 그것이 어떻게 은혜고 그것이 어떻게 평강입니까?

그리스도인의 평강과 그리스도인의 은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편지를 받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가 평안하냐? 그들이 은혜 가운데냐?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삶의 자리인 당시 서기 81년부터 96년까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핍박과 그의 압제 가운데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로마에 가면 카타콤 있습니다. 지하에서 신앙생활했습니다. 그들이 지하에서 땅굴 파고 살아갔던 것이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두더지도 아니고 태양도 못 보고, 황제 숭배 안 하면 매매도 못하게 하고, 애들 학교도 못 보내게 하고, 거의 죽음인데, 원형 경기장에 집어넣고 맹수에 밥이 되게 만드는데, 그것이 어떻게 살아도 사는 것입니까?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것이 은혜와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외부적인 요인을 얘기한다면 감히 사역자가 "지금 너희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사는지 아는데" 그 은혜와 평강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우리 교회 성도 가운데 극심한 가난과 물질의 고통과 몸이 아파서 언제 돌아가실 줄 모르는 분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면 욕하지 않겠습니까? 속으로 기분 나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도 요한은 대담하게 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가치가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될 것은 내가 지금 근거하고 뿌리내리고 있는 은혜와 평강의 뿌리가 어디냐 이것입니다. 이것을 살피셔야 됩니다. 만약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물질과 내 학벌과 내 경험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세속적인 가치라면 그것은 신앙생활 잘못한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그분으로부터 우리는 은혜와 평강을 가져셔야 됩니다.

5. 요한계시록의 핵심 주제

7절과 8절을 한번 보십시오. 계시록 전체의 요약이 있습니다. 여기에 엄청난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여기 두 가지 정보가 나오는데요. 첫째 정보,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인 메시아성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계시록 전체의 주제로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을 이기고 왕이신 메시아로 다시 오신다.

또 7절을 보면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자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를 핍박하고 죽인 자들 아닙니까? 그런데 그 로마 병사들만 보는 것이 아니고 그 이후에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 지금도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을, 그런 자들이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라.' 애곡이라는 말은 회개한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회개하게 된다. 계시록 끝에 가면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적인 메시아로 오시고,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회개하는 장면입니다.

8절 한번 볼까요?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한마디로 말하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계시록 전체의 주제입니다. 계시록 전체의 주제를 7절과 8절에서 이 세 가지로 딱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한번 더 정리합니다. 첫째, 왕이신 메시아로 오신다. 둘째, 세상 사람들이 회개한다. 셋째,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세 가지가 계시록의 주제로 곳곳에 나타납니다.

6. 사도 요한의 소명

6-1. 요한의 자기 소개

사도 요한은 어떤 사람이며 지금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9절을 볼까요?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이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의 형제다. 동참하는 자다. 그리고 증언하는 자다.'

증언하는 것, 아까 2절에서 봤습니다. 빼서 증언했습니까? 더해서 증언했습니까? 다 증언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다. 요한은 자기 자신을 담백하게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거추장스럽게 "나는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받은 제자요, 나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이요, 나는 요한일서 2서 3서를 기록했고, 내 형제는 야고보인데 사도 중에 가장 먼저 순교한 자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이력을 막 화려하게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사역자로서 딱 한마디, 증언하는 자다. 빼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라.

6-2. 요한의 사명

요한은 어떤 사명을 받았습니까? 10절과 11절입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이것이 사명입니다. 본 것 그것을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 명확합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그리고 또 나오죠. 일곱 교회, 숫자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이 일곱 교회는 그 당시에 일곱 교회이고, 과거 현재 미래 모든 교회에, 오늘 우리 교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나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말씀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받는다는 느낌으로 이 말씀을 읽으셔야 됩니다.

7.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7-1. 촛대 사이의 인자

사도 요한이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군지, 그분이 누군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분이 누구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 아닙니까? 예수님을 3년 동안 모신 제자 아닙니까?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은 그가 육신으로 옷을 입고 계실 때 그 모습이 아닙니다. 영광 중에 변모하신 모습, 그 모습을 이렇게 하나하나 나열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하나 살필 것입니다.

12절입니다.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뭘 봤습니까? 일곱 금 촛대를 봤습니다. 일곱 금 촛대가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나중에 나오는데 촛대는 교회입니다. 일곱 금 촛대.

그런데 13절, "촛대 사이에" 사이라는 것은 교회 사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교회, 그 교회 공동체 사이를 "인자 같은 이가" 인자 같은 이가 누구입니까? 인자인데 인자고 인자 아니면 인자 아니지, 인자 같은 이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다니엘서에서 그대로 가져온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인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라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그대로 오신 분이라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상징을 보셔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 사이를 거닐고 계셨습니까?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셨습니다. 촛대가 뭐라고요?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 사이를 거닐고 계셨습니다. 교회 안에도 계시고 교회와 교회 사이를 거닐고 계셨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야 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이 드러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주인 노릇하고, 사람이 막 자기 목소리를 내고, 사람이 자기를 알아달라고 "내가 이 교회에서 헌금 제일 많이 하는데, 내가 이 교회에 몇십 년 다녔는데, 내가 이 교회에서 직분이 뭔데, 내가 이 교회에서 목회해서 몇 명의 성도를 만들었는데, 내가 이 교회를 백 배로 성장시켰는데, 건물을 지었는데" 이 따위 소리는 사탄이 하는 짓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만 나타나는 곳입니다. 촛대 사이를 인자 같은 이가 거닐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진짜 좋은 교회는 하나님이 보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됩니다.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사람의 모습이 자꾸 드러나고 하면, 교회가 썩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가 병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7-2. 제사장의 옷

이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출애굽기를 보면 제사장의 예복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의미에 메시아,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아닙니까? 왕이시고 제사장이시고 선지자이시고, 구약의 삼중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사장의 옷을 입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의 역할을 합니다.

7-3. 거룩과 통찰

14절입니다.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흰 양털, 눈, 흰색. 거룩입니다. 순결. 죄가 없으신 분.

"그의 눈은 불꽃 같고."

통찰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이 불꽃 같다. 그 눈 앞에서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감출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 불꽃 같은 눈으로 나를 감찰하시는데 무엇을 숨기고 어떻게 감출 수 있습니까?

7-4. 권세와 말씀

15절입니다.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예수님의 발, 사탄을 밟으시는 발입니다.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머리를 짓밟으실 것이다. 예수님의 그 주석 같은 발.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권세를 의미합니다.

16절입니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일곱 별은 조금 있다가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이것은 좀 찾아봐야 됩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날선 검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 말씀을 한번 보셔야 됩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을 뭐라고 했습니까? 검,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도 똑같습니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검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곧 유일한 공격무기입니다. 그 검이 누구를 벱니까? 사탄을 베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가진다는 것, 말씀을 암송한다는 것, 말씀을 이해한다는 것은 강력한 검을 가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 검을 가지면 세상 겁날 게 없습니다. 어디 악한 사탄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오겠습니까?

"목사님, 저는 이제 나이가 60이 넘어가지고 하나를 외우면 열을 까먹어요."

그래도 외워야 됩니다. 그래서 계속 외우고 또 외우고 또 외우고 또 외우고 계속하셔야 됩니다. 또 읽고 또 읽고. 그래야 그 검이 내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지라고 했는데 왜 저를 아직까지 가지지 않습니까?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영광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 요한이 본 그대로 다 증언한 것입니다.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얼마나 영광스러우십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늘의 왕으로 올라가신 아버지의 아들로 올라가신 재림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8. 주님의 선언

8-1. 두려워하지 말라

쓰러진 요한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요한이 예수님의 영광을 보니까 쓰러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 죄인인 인간이 재림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광을 보니까 "나는 감히 살 수 없게 되었다" 쓰러져 버린 것입니다.

17절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첫째,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창조 때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종말에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십니다. 처음과 끝에 예수님이 그런 가운데 함께 계셨습니까? 계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처음과 나중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과거에는 나와 함께 하시더니 내 기도도 잘 들어 주시더니 요즘은 딴 데 가셨나 봐요" 이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처음과 지금과 항상 동일하시고 종말까지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8-2. 사망과 음부의 열쇠

18절입니다.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신 분.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 그 열쇠를 열고 사탄 마귀를 거기에 가둘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8-3. 기록하라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이것은 계시록을 쪼개서 얘기하는 것인데요. '내가 본 것'은 1장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장. 그리고 '지금 있는 일', 지금 있는 일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말하는 것이고요. '장차 될 일'은 4장부터 22장까지 전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19절 전체는 요한계시록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앞으로 내가 보여줄 모든 일을 기록하라, 기록해서 편지를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

9. 일곱 별과 일곱 촛대

주님이 요한에게 기록하라 하신 것 중에 요한이 본 것은 무엇입니까? 본 것이라고 했으니까 지금 1장에 말하는 것,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입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일곱 별은 뭘까? 그리고 금 촛대는 뭘까? 그랬는데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별이 일곱 교회 사자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자라는 말은 사역자라는 뜻입니다. 보냄 받은 자들, 사역자들, 목회자들, 교회에서 열심히 주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 자들. 도미티아누스 황제 핍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지금도 사역하고 있는 자들을 예수님은 뭐라고 표현하셨습니까? 별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저 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은 자라고 주님이 표현하셨습니다.

핍박을 견디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자들을 우리 주님은 저 하늘의 별과 같은 자들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영광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걸그룹이나 BTS 정도 되어야 스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스타는 생명력이 짧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주는 그 생명이 백 년 갈 것 같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를 별처럼 만들어주겠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며 신앙생활 열심히 하며 그 교회의 사역자로 열심히 사역하면 세상 사람들은 너희들 몰라줘도 나는 너희를 하늘의 별과 같이 만들어주겠다."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런 영광이 우리에게 이미 수여되어 있습니다. "아니, 왜 저를 이 모양 이 꼴로 여기 되셨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이미 우리는 하늘에 있는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인데, 7이라는 수의 상징성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일곱 교회 사역자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올 모든 교회의 사역자를 다 별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했습니다. 이제 2장과 3장에 가면 본격적으로 그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결론

계시록이 어렵지 않습니다. 이제 제가 오늘 1장을 하나하나 말씀드렸는데, 한두 번 복습하고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교재 목차를 보시면 그다음 그다음 진도가 나와 있습니다. 다음 주는 계시록 2장과 3장을 공부하니까, 2장 3장 읽지도 않고 그냥 오면 따라가기 힘듭니다. 적어도 서너 번은 열심히 읽고, 모르는 것은 줄도 치고 물음표도 하고, 그렇게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를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으로 불러주시고, 이 악하고 험한 시절에 묵시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과거에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섬기며 믿음을 굳게 지켰던 일곱 교회 성도들의 본을 본받아, 우리도 별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기를 원하오니, 주여 우리의 믿음을 정결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고백하오니, 사람이 주인 되려는 일체 시도를 그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은혜와 평안을 누리는 그 근거가 세속적인 근거가 되지 않게 하시옵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그 은혜와 평강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지금까지 세속적 근거에 집을 짓고 있었다면 허물게 하여 주시고, 다시 한번 믿음의 견고한 집을 지어 가도록 주여 우리의 믿음을 훈련해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