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 일곱 인을 떼실 분과 일곱 인 심판 / 전체녹취

요한계시록 특강-4: 일곱 인을 떼실 분과 일곱 인 심판 (5-6장)

"장로 중에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5:5)

1. 일곱 인의 의미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소화하기가 쉽지 않지만, 한 주 한 주 따라오시면서 지금 벌써 5장과 6장, 네 번째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장에서 3장까지는 서론에 해당되는 내용이었고, 4장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자 요한을 하늘로 불러 올리셔서 환상 중에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5장과 6장부터는 본격적인 요한계시록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유대 묵시 문학 전통에서 읽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묵시 문학 전통 중에 잘 이해해야 할 것이 숫자에 대한 이해입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들어보셨지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세 가지 심판인데,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일곱 인 심판입니다. 그다음이 일곱 나팔 심판이고, 그다음이 일곱 대접 심판입니다.

그런데 각 심판마다 7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습니다. 왜 7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느냐. 7은 완벽하다,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심판 자체가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요, 둘째는 무섭게 심판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의 정도가 갈수록 세집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일곱 인 심판은 보기에 따라서 견딜 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올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고 완벽한 심판이니까 이쯤에서 돌이키라고 기회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오늘 말씀을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1-1. 봉인된 두루마리

보좌에 앉으신 이는 무엇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힘있는 천사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보좌에 앉으신 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이지요. 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오른손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왼손이라고 하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왼손은 한 번도 없지요. 하나님의 오른손, 하나님의 오른손은 하나님의 힘과 능력과 권능을 의미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왼손잡이인데 왼손잡이는 조금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성경에서 나오는 표현이니까요. 하나님의 오른손은 능력과 권능과 하나님의 힘을 얘기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오른손, 그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두루마리와 두루마기를 잘 구별 못합니다. 나중에 보면 두루마기도 나오거든요. 두루마기는 옷이잖아요. 곧은 포, 신랑이 결혼할 때 요즘은 결혼할 때 두루마기를 입는지 안 입는지 잘 모르겠는데, 과거에는 두루마기를 다 입었습니다. 두루마리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서 둘둘 말려있는 책, 여기서는 두루마리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오른손에 두루마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책을 가지고 계시는데,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림을 여러분 나름대로 그려보십시오. 그 책에는 안팎으로 글이 써져 있습니다. 안팎으로 썼다. 그리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봉하였다는 느낌이 어떤 느낌이 드세요? 봉했다는 말은 비밀스럽다는 뜻이 있겠지요. 비밀스럽다. 그러면 봉인이 되었다는 말은 그 봉인을 뜯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뜯는 자가 반드시 있다. 계시록은 구약에 있는 말씀이 계시록에 와서 종합되었다고 했지요.

1-2. 구약의 예언 성취

오늘 여기 안팎으로 썼다, 봉하여졌다 하는 말도 구약에 있는 말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에스겔 2장 9절과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안팎에 기록되었다 했지요. 그리고 그 위에 애곡과 애가와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다. 그게 곧 심판 아닙니까? 이 말이 그대로 에스겔서에 기록되어 있어요.

그리고 봉하여졌다는 말은 다니엘서에 비밀스럽다 하는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12장 9절과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봉해져 있어요. 말씀이 구약의 묵시서라고 하면 에스겔서, 다니엘서가 구약의 묵시 기록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봉해져 있어요. 그런데 이 봉해져 있는 말씀을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깨달으려야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니까 어떤 사람이 깨닫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까? 악을 행하는 사람, 악한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 계시의 말씀, 비밀의 말씀을 깨달으려 해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혜 있는 사람은 깨닫습니다. 지혜는 학교에서 배웁니까? 어디에서 배울 수 있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지혜, 잠언에서도 지혜가 나오는데,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조금 있다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3. 말씀을 깨닫는 자

우리가 이 말씀을 기준으로 오늘 우리 자신에게 한번 대입시켜 보십시오. 예배당에 나와서 앉아 있습니다.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습니다. 주일날마다 듣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악을 품고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고, 누군가를 저주하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고, 악을 행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깨달으려 해도 깨달아지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학교 근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학교라고는 다녀보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목사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경말씀을 읽고 깨닫는 지혜가 얼마나 깊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대학 교수님들을 한번 앉혀 놓아보세요. 마음속에 악이 가득한 분이라고 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어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마음 밭을 뒤집어 놓는 일을 하십니다. 마음을 기경하는 일을, 마음을 뒤집어서 악을 제하고, 그리고 마음이 가난해지도록 마음을 뒤집는 것을 내 스스로 해야 되거든요. 우리 스스로 마음을 기경하고 씨를 뿌리면 그 씨가 마음에 떨어져서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하도록 스스로 해야 되는데, 스스로 그것을 하지 않고 교회 열심히 다니고 가방 들고 예배당 출입은 열심히 하는데, 여전히 마음에 악한 마음, 독을 품은 마음,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 이렇게 갈고리처럼 굽어져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분을 사랑하시면 반드시 그 마음을 뒤집어 놓습니다.

하나님이 뒤집어 놓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고난을 주시면 됩니다. 고난을 한번 딱 주면 마음이 얼마나 가난해지는지 모릅니다. 마음에 지진이 일어나서 뒤흔들리기 시작하면 마음이 그냥 막 뒤집어져서 말씀이 그때부터 얼마나 잘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악을 제하고 지혜를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 앞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앞에 순종하셔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지혜로운 말씀을 듣고 우리의 삶을 바꾸고 고쳐나갈 수 있습니다.

1-4. 힘있는 천사

이렇게 봉해진 말씀이 있는데요, 2절에 보니까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이렇게 힘있는 천사가 나왔어요.

계시록의 힘있는 천사는 세 번 나옵니다. 여기 한 번 나왔어요. 뭔가 힘있는 천사가 나타나면 불길한 일이 일어나요. 심판이 일어나거나 굉장히 큰 일이 일어나거나. 그것은 심판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길한 일이에요. 그런데 하나님 잘 믿고 믿음생활 잘 지킨 일곱 교회, 믿음의 진리를 굳게 지킨 성도 입장에서는 심판은 통쾌한 일이잖아요. 빨리 심판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와요. 내가 천국 백성 되고, 이제 이 땅에서의 고통과 눈물이 끝날 것 아닙니까? 힘있는 천사는 어떤 큰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힘있는 천사가 한 번 나왔기 때문에 바로 일곱 인을 떼는 심판이 나오는 거예요. 그럼 그다음 힘있는 천사가 언제 나오느냐, 계시록 10장 1절입니다.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11장부터 그리고 12장 쭉 이어져서 일곱 나팔 심판이 시작되거든요. 힘있는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나지요.

그다음 18장 21절 보겠습니다.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큰 성 바벨론, 어떤 느낌이 드세요? 계시록에서 말하는 큰 성 바벨론은 악한 도성을 말하는 거예요. 로마예요. 그 당시에는 로마, 오늘 우리 시대에는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세속 권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큰 성 바벨론에 큰 맷돌 같은 것을 그 힘센 천사가 던진다 했지요. 세상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서 심판하실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이렇게 힘센 천사가 계시록에 세 번 나오는데, 5장에 나오고 10장에 나오고 18장에 나오는 것을 다 살펴봤습니다.

1-5. 사도 요한의 눈물

3절입니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감히 누가 그 봉인을 뜹니까? 누가 하나님께서 그 권능의 오른팔에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누가 감히 열어서 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사도 요한이 너무 답답한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누가 나에게 해석하고 누가 나에게 알려 줄까? 답답해서 사도 요한이 어떻게 했어요? 4절 보니까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절망스러운 눈물이에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해 줄 사람이 없다는 그 절망감에 사도 요한이 크게 울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 줄 분이 아무도 없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은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한 분만이 해석하고 우리에게 들려주고 그 봉인을 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그다음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일곱 인을 떼실 분

두루마리에 봉인 일곱 인을 떼실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5절과 6절, 9절과 10절에 나와 있는데요.

2-1. 유대 지파의 사자

먼저 5절을 보겠습니다. "장로 중에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이 울지 말라는 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으세요? 예수님도 이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7장에서 하셨습니다.

나인 성 과부를 보고 보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나인 성 과부가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죽었어요. 그 아들이 죽어서 동네 사람들이 다 울면서 뒤따르면서 상여가 나가요. 예수님과 예수님의 일행은 나인 성으로 들어오다가 그 상여를 마주쳤어요. 보니까 기가 막힌 장례 아닙니까?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세상을 떠났으니까, 이제 그 어머니는 도대체 누구를 의지하고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과부를 보시고 한 말씀 하셨어요. "울지 말라" 예수님께서 울지 말라 하면 그것은 그냥 사람이 하는 위로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울지 말라 하면 눈물의 근원을 해결해 주겠다는 뜻이에요. 예수님 어떻게 하셨어요? 청년을 살려 주셨잖아요. 일으켜서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울지 말라 하면 그것은 내가 해결한다는 뜻이에요.

장로 중에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울지 말라 했어요. 왜 울지 말라고 했냐 하면, 그 봉인 일곱을 떼실 분이 계시기 때문에 그래요. 그분이 누구입니까?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이겼으니 했지요. 이겼으니, 이미 끝난 싸움이라는 뜻이에요.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계시록 전체까지 성경에 흐르는 묵직한 신학적인 흐름, 구속사의 흐름은 이미 이겨두신 싸움을 우리가 확인하고 짓밟고 가는 과정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결코 침몰시킬 수 없습니다. 제가 주일설교 때도 말씀드렸지요. 겁을 주거나 겁박할 뿐이지 결코 우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제풀에 걸려서 제풀에 죄짓고 제풀에 쓰러질 뿐이지, 사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이겨두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알 수 있는 성경 해석의 원리가 나오는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통해서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해석해야 돼요. 그래서 목회자나 우리 성도들이 나, 예수님께 말씀에 근원 되시는 주님께 지혜를 구하고, 그리고 성경은 예수님이라는 거울에 잘 비춰봐야 성경의 해석이 됩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 아닙니까? 신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고, 사도행전 그 이후는 오신 메시아가 말씀하신 교회가 세워진 이후의 성경의 역사이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거나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 없이 성경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 없이 자기의 철학과 자기의 사상과 자신의 학식을 전하는 것은 그야말로 잘못된 이단 중에 제일 큰 이단입니다. 예수님 없이 절대로 성경을 풀거나 해석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풀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막힐 때도 어떻게요? 주님께 지혜를 구하고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그래야 성경이 잘 해석되고 풀려 나갈 것 아닙니까?

2-2. 예수님의 네 가지 소개

이제 여기 5절과 6절 그리고 9절과 10절을 보면 일곱 인을 떼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어요.

먼저 하나로 우리가 봤지요.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고 했는데, 여기 사자라는 말은 보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라이언을 얘기합니다. 라이언, 백수의 제왕 사자를 말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49장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9장 9절과 10절을 보겠습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했구요, 이 말이 그대로 있지요. 그리고 10절에 규(שֵׁבֶט)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겠다 했습니다. 규는 왕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 옛날 성경에 보면 홀이라고 했거든요. 왕의 지팡이, 홀, 그것을 규라고 얘기했습니다. 다윗이 왕 중에 왕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왕이 다윗이잖아요. 그래서 유다 지파에서 사자를 얘기했고, 다윗에게서 규를 얘기했습니다. 창세기 49장 9절과 10절에 야곱이 자기 열두 아들을 데려다 놓고 축복한 내용 중에 유다 지파를 축복한 그 내용을 그대로 계시록에서 받아서 이렇게 기록한 겁니다.

2-3. 유다와 다윗

그럼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봐야 될 것이 있습니다. 유다나 다윗이나, 원래 어떤 사람이었느냐. 유다나 다윗이나, 유다는 야곱의 아들이긴 해요. 그런데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누굽니까? 라헬이잖아요. 라헬에게 난 아들이 누굽니까? 요셉이잖아요. 요셉과 베냐민. 요셉과 베냐민은 야곱이 말하지 않아도 지극히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사랑하지 않은 여인이 있었는데, 라반에게 속았잖아요. 첫날밤 지나고 눈 떠보니 레아가 앉아 있는 거예요. 당황스럽지 않아요? 성경에 레아는 시력이 약하다 했어요. 시력이 약하면 늘 찌푸릴 수밖에 없고 미간을 찡그리고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눈이 항상 작게 보여요. 그러니까 야곱 눈에는 라헬이 훨씬 더 아름답고 훨씬 더 이쁘게 보였던 미인이었던 건데, 레아를 첫 번째 아내로 라반이 그냥 밀어 넣은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레아를 사랑하셔서 레아에게서 아들을 여섯이나 낳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레아가 낳은 여섯 명의 아들 중에 네 번째 아들이 유다예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예요. 아들이 12명이나 있는데, 그중에 아버지 야곱은 요셉과 베냐민, 베냐민은 나중에 났으니까 요셉만 특별히 이뻐했지, 유다는 전원 이름도 몰랐을 거예요. 어릴 때 아이들이 막 뛰어 다니면 얘가 누군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만큼 존재감 없던 아들, 그만큼 아버지의 사랑도 못 받던 아들, 그에게서, 유다 지파에서 다윗이, 다윗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거든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것은 유다가 자신의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다가 나중에 베냐민 대신에 내가 여기 잡혀 있겠다고 했잖아요. 차라리 나를 잡아서 내가 여기 있겠습니다. 내 동생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 아버지가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여기 잡아주시고 내 동생을 보내달라고 자신의 목을 내놓았잖아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거기에 잡히면, 그 사람이 자기 동생 요셉인지도 모르고 애굽의 총리에게 자신의 목을 그냥 내놓았습니다.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고 죽이는 사랑, 그 사랑의 초상으로 유다가 되게끔 하도록 하나님은 그렇게 유다 지파에서 예수님을 나게 하신 겁니다. 유다는 정말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을 내어주는 헌신 때문에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다윗은 또 어때요? 다윗이 이새의 8번째 아들, 막내 아들 아닙니까? 다윗의 집에, 이새의 집에 그 당시 최고의 선지자가 왔습니다. 그 당시 최고 선지자, 사무엘이 왔어요. 그 당시 이스라엘 전역에서 가장 이름난 선지자, 사무엘이 한번 기도하면 그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정도로 대단했던 걸출한 권세를 가진 사무엘이 왔어요.

그러면 일반적인 부모라면 우리 자식 다 여기 불러놓고 사무엘에게 안수 기도 받고 싶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 이새는 달랐습니다. 막내아들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게 했습니다. 그 형제 7명만 그 집에 모아봤습니다. 그만큼 그 집에서 존재감 떨어지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아이를 막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얘도 아니다, 얘도 아니다, 1번부터 7번까지 다 퇴짜 놓으니까 묻잖아요. 사무엘이 이새에게 다시 아들이 있느냐, 아직 남은 아들이 있느냐. 그때 이새가 말했어요. "막내가 하나 있긴 한데 개는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때 막내라고 말한 이새가 말한 이 막내가 히브리어 하카톤(הַקָּטָן)이에요. 하카톤이라는 말은 순서상에 막내라는 의미가 아니고, 능력상에 막내라는 뜻입니다. 아이들 중에 가장 떨어지는 아이가 바로 여기 이 자리에 없는,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는 막내가 있습니다. 이름도 부르지 않아요. 다윗이라고 이름도 불러지지 않아요.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아이 다윗이 있는데 그래도 보시겠습니까?

불러 오라고 했지요. 하나님께서 감동 주시니까 그에게 기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보잘것없고, 그만큼 존재감 없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그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나가잖아요.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고 나가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게 하시는 거지요.

유다와 다윗의 공통점,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거지요.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타인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신분과 우리의 처지와 출신과 내가 가진 재능이나 그런 것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유다처럼 존재감 없어도, 다윗처럼 아버지도 인정하지 않는 아들이라 하더라도, 그러나 하나님 마음에 합하면 하나님은 그를 들어서 쓰시고, 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게 하시는 놀라운 영광도 허락해 주신다니까요.

오늘 우리는 내가 처해있는 처지 때문에 실망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도 유다처럼 하나님 손에 붙잡힌 바 되어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되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때 유다, 그리고 다윗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4.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

두 번째입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예수 그리스도를 두 번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잖아요. 그래서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뭡니까? 양을 잡아서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은 모두가 다 구원받았잖아요. 어린양은 대속 제물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두 번째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2-5. 일곱 뿔과 일곱 눈

세 번째, 계속해서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예수님을 일곱 뿔과 일곱 눈이라고 설명했어요. 우리가 이것을 그냥 문자 그대로 보면 예수님에게 일곱 뿔이 났다고, 예수님이 괴물인가, 예수님의 눈이 7개라고, 이렇게 눈 달린 괴물인가, 이렇게 생각하시면 곤란하고 계시록에 있는 숫자의 상징성을 보셔야 되지요.

7이라는 수는 완전이라는 얘기라 했잖아요. 뿔은 뭡니까? 권세, 능력입니다. 그러면 일곱 뿔은 완전한 권세. 눈은 뭡니까? 감찰, 통치, 통찰. 그러면 완전한 통치, 완전한 감찰, 완전한 통찰을 의미하잖아요.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감찰하시고 통찰하시고 지켜보고 계시고, 예수님의 능력은 지금도 만물 천하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놀라운 권세와 권능이시다, 뿔을 얘기하는 신명기 33장 17절이 있습니다.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민족들을 받아다 땅끝까지 이르리니 이는 곧 에브라임의 자손은 만만이요 므낫세의 자손은 천천이로다"

모세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축복하는 장면이 있는데 요셉 자손을 축복하면서 뿔 이야기를 했어요. 이 뿔도 역시 권세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냥 계시록에서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고, 구약의 전통에서 뿔을 권세와 능력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을 제가 여기서 보여드리는 겁니다. 그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6. 새 노래와 구원의 범위

이제 예수님에 대해서 네 번째 소개가 나옵니다. 9절과 10절을 보면요.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이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여기서부터예요. "일찍이 죽임을 당하셔서" 예수님이 일찍 죽임 당하셨지요.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뭡니까? 족속은 민족을 얘기하지요. 방언은 뭡니까? 언어를 얘기하지요. 백성은 각 나라를 말하지요. 뒤에도 나라 나오지요. 이것은 온 세상 모든 인류를 다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임 당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 한 민족만을 위해서 죽임당하신 게 아니라, 예수님의 피는 온 세상 오대륙 모든 인류를 다 포함하고 그대를 구원하고 남음이 있다라는 뜻이에요.

그다음 보시면요.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고" 예수님의 피가, 신천지가 말하는, 이단들이 말하는, 종말론자들이 말하는 14만 4천 명에게만 피의 효력이 있습니까? 지금 여기 족속, 방언과 백성과 나라를 다 말했잖아요. 온 세상 모든 인류, 그 인류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인류에게 다 효력이 있는 피라는 뜻이에요.

이제 7장에 보면 144,000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가 다음 시간에 십사만 사천을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십사만 사천은 숫자적인 십사만 사천이 절대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의 피가 14만 4천 명에게만 효력이 있고 144,000 한 명째부터는 효력이 없어요, 만약에 그렇다면, 그러면 144,001 명째 온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인간이 가진 제도가 그렇잖아요. 시험이라는 제도가 100명을 뽑기로 했는데 천 명이 왔어요. 101등으로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나 천등으로 떨어진 사람이 다 똑같잖아요. 101등으로 떨어진 사람, 100등으로 붙은 사람, 0점 1점 차이라면 그게 얼마나 억울합니까? 인간이 만든 제도는 커트라인이라는 게 있고 시험이라는 게 있어서 이게 이렇게 불합리한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누구를 줄 세우는 구원이 결코 아니에요.

주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을 믿고 붙들고 의지하는 자, 144,001명 너는 미안하지만 집에 가, 이게 아니고 오고 오는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양 십자가 보혈을 믿으면 누구나 다 구원받는다는 본질적이고 놀라운 구원의 약속이에요. 그 말씀을 하시는 거지요.

10절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네 가지로 소개했습니다. 결국 여기서 핵심은 그거예요. 일곱 인을 떼실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누구시더라, 네 가지로 이렇게 상세하게 소개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하는 것, 성경은 그렇잖아요. 예수님을 소개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이것을 우리가 때로는 외우실 필요도 있습니다. 아, 예수님을 이렇게도 소개할 수 있구나, 예수님을 이렇게도 소개할 수 있구나. 그럼 나는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할까? 계시록은 이렇게 소개했고, 복음서는 이렇게 소개했는데,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할까? 요한은 예수님을 참 포도나무라고 소개했잖아요.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 스스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계시록은 이렇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 두루마리를 취하신 후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취하신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 두루마리를 취했어요. 그럼 어떻게 되실까요? 이제 봉인을 뜯으시겠지요. 봉인을 떼면 첫 번째 인을 뗄 때 심판이, 두 번째 인을 뗄 때 심판이 해서 이제 그 심판이 6장에서 본격적으로 나오는데요. 이제 취하시고 떼기 전에 두 가지 일이 일어나요.

3-1. 성도의 기도

두 가지 일이 7절에서 9절을 먼저 봅니다.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하나님이시지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어린양,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두루마리를 주시는 거예요. 예수님만이 그것을 취할 수 있고, 받으셨어요.

"그 두루마리를 취하심에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거문고는 찬양을 위해서 필요한 악기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이에요. 여기에 뭐라 되어 있느냐. "이 향은 성도의 기도더라"

우리가 이 땅에서 드린 기도가요,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 보좌 앞에서 금 대접에 이렇게 담겨져 있어요. 향으로 하나님께 다 올려지고 있어요. 놀랍지 않으세요? 놀라운 일이에요. 이거 조금 더 또 나와요. 뒤에 6장에 또 나오는데, 성도들이 드린 모든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향처럼 올라가서 금 대접에 담겨 있다니까요.

금 대접이 의미하는 게 뭐예요? 금은 순결하고 금은 귀한 거잖아요. 성도들의 기도가 가장 귀하기 때문에 금 대접에 다 받아서 하나님께 이렇게 올려 드리고 있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땅에서 우리가 드린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제단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금 대접에 담겨서 향기롭게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기도를 쉬면 안 되잖아요. 기도의 입술을 닫으면 안 되잖아요. 열심히 기도하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돼요.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가 내가 기도한 게 내 뜻대로 내 소원대로 내 눈앞에 보는 대로 내 손에 잡히는 대로 성취되지 않으면 기도를 져버립니다. 해도 안 되네,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네, 우린 그렇게 쉽게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판단할 문제가 결코 아니에요.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드리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요, 그 시간과 그때와 그 장소도 하나님이 정하셔야 요. 우리는 그냥 기도할 뿐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그래요. 특히 사랑하는 가족, 내 자녀,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버지, 내 어머니, 간절하잖아요. 얼마나 간절합니까? 그런데 내가 드리는 모든 기도가 그냥 다 흩어지는 기도가 아니고, 땅에 떨어지는 기도가 아니고, 금 대접에 담겨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향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어떻게 멈추겠습니까?

출애굽기 3장 7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보고, 듣고, 알고, 동사 3개가 나오지요.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고, 다 듣고 계시고, 다 알고 계셨어요. 43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는 것 다 듣고 계셨어요. 그들이 고통당하는 거 다 보고 계셨어요. 그들이 마음 아파하는 거 다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질문할 수 있지요. 하나님, 그러면 보셨으면, 들으셨으면, 알고 계셨으면 왜 빨리 건지게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영역이에요.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어찌 할 수 있는, 우리 인간이 포이에마에게 갑이 따질 수 없는 영역이에요. 물론 하나님께 항변할 수 있지요. 하나님 왜 일찍 해주시지요.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카이로스(καιρός)의 시간에 속한 영역이라서 우리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오직 유일한 것 한 가지가 있다면 하나님의 전능과 하나님의 그 시간을 믿고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냥 기도하고, 그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서 향기로 올려지고 있다는 사실, 그거 믿고 열심히 기도하세요. 봉인을 떼기 전에 기도가 올려지고 있다는 거, 이게 첫 번째고요.

3-2. 찬양과 예배

9절 보겠습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셔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고" 이제 이 성도들이 어떤 기도를 했을까요?

그 당시에 핍박받고 있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 압제 치하에서 핍박받고 있었던 일곱 교회의 성도들이 어떤 기도를 했을까요? 오늘 우리가 드린 기도 말고 그 당시 성도들이 드린 기도. 제발 저 로마의 권력을 하나님 파괴해 달라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압제가 좀 멈추게 해달라고, 하나님 제발 저 로마가 망하게 해달라고 얼마나 많이 기도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이 기도했겠어요.

이제 봉인을 떼면 어떻게 됩니까? 봉인을 떼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때가 차매 봉인을 떼면 그때부터 심판이 시작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 시간과 그때와 그 장소를 결정하신다는 사실.

11절에서 13절을 보면요, 지난주에 봤던 내용들이 나와요.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큰 음성으로 뭘 했을까요? 찬양했지요.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찬양이에요. 기도를 받으시고 찬양을 받으셨어요. 봉인을 떼기 전에 그림이 그려지지요. 하나님께서 오른손에 두루마리를 가지셨는데 이게 봉해져 있었어요. 아무도 뗄 사람이 없었어요. 해석해 줄 사람이 없었어요. 사도 요한이 우니까 장로 중에 한 사람이 울지 말라, 그리고 예수님을 소개했어요. 네 가지로 소개했지요. 예수님이 하나님께 그 두루마리를 받으셨어요.

그러자 두 가지 일이 일어나지요. 그 두 가지 일은 성도들의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서 올려드려지는 역사, 그리고 찬양으로 예배드리는 역사. 천국에는 찬양이고 예배라 했잖아요. 천국에는 목사가 필요 없다 했잖아요. 천국에는 설교가 필요 없습니다. 성경 해석이 필요 없습니다. 말씀 자체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고 말씀을 말씀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설교가 왜 필요합니까? 성경 공부가 왜 필요합니까? 찬양만 있는 거예요. 찬양이 곧 예배니까.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가 천국을 경험하시려면 찬양을 열심히 하시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찬양하셔야 돼요.

4. 일곱 인 심판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일곱 인을 뜯습니다. 6장으로 가면 6장에 일곱 인 심판이 다 나오잖아요. 6장에 여섯 인 심판만 나오고, 7장 건너가서 8장 1절에서 5절까지 마지막 일곱 번째 인 심판이 나와요. 그래서 오늘 우리 교재에 일곱 인 심판을 7장 건너가서 8장까지 적어놓고, 그리고 다음 주에는 7장을 다시 돌아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염두에 두실 것, 계시록에 나오는 세 가지 심판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갈수록 심판의 강도는 세진다. 일곱 인 심판은 심판이라 하지만 꼭 견딜 만한데, 이런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거다. 이것을 먼저 염두에 두고 보십니다.

4-1. 첫째 인: 흰 말

첫째 인을 떼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절 2절입니다.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레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흰 말, 그 탄 자가 활을 가졌어요. 계시록의 흰색이 의미하는 것은 성결, 정결, 깨끗, 승리를 의미하지요. 이것은 성도들 입장에서 보면 기분 좋은 일이에요. 이제 적들을 심판하시니까. 심판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때부터 이제 종말의 지옥 문이 활짝 열리는 그 시작이에요.

그런데 말 탄 자가 활을 가졌다. 말 타면서 기마 자세에서 활을 쏜다, 이게 굉장히 훈련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렇겠지요. 말 타고 가는 것만 해도 힘든데, 말 타고 자세 잡고 달리면서 활 쏘아서 움직이는 사물을 맞춘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그 당시 이 예언을 만약에 들었다면 로마인들은 두렵고 떨리는 그 하나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파르티아 사람이라는 로마의 적대 세력이 있습니다. 파르티아는 페르시아 족속의 후예들이에요. 그런데 이 파르티아가 하나의 세력을 이루었는데, 파르티아가 로마에 굉장한 타격을 준 사건이 있습니다.

기원전 55년과 서기 62년에 그들이 게릴라처럼 여기저기에서 일어나서 로마를 타격을 준 사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는 서기 81년에서 96년 사이이거든요. 서기 62년 해봐야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어요. 로마인들 기억에는 활, 말 타고 다니면서 활 쏘는 파르티아인들에 대한 기억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흰 말을 타고 활을 쏜다, 그럼 그 사람들이 장래에는 파르티아인이 딱 생각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로마인들에게 두려움이 있도록, 떨림이 있도록 그들이 당한 역사적 정세까지 잘 고려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완전 승리, 완전 승리 아닙니까? 첫 번째 인을 떼니까 말 탄 자, 흰 말 탄 자가 나왔어요. 이제 이 전쟁 전체가 결국은 승리를 가져올 거다. 면류관은 승리하고 받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첫 번째 인을 떼는데 첫 번째 흰 말 탄 자가 이미 면류관을 받았어요. 그것은 뭐예요? 이미 이 싸움은 끝난 싸움입니다. 승리한 싸움이다 했지요.

성경의 전체 정신, 계시록의 정신, 창세기부터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정신은 이미 승리한 싸움을 우리가 확인하고 가는 거다. 두려워하지만 않으면, 떨리지만 않으면, 제풀에 넘어지지만 않으면, 죄만 짓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이것을 기억하라는 확인의 말씀입니다.

4-2. 둘째 인: 붉은 말

둘째 인을 떼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절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라" 4절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첫 번째 인을 뗄 때 흰 말이 나오지요. 둘째 인을 떼니까 붉은 말이 나와요. 붉은색이 의미하는 게 뭐예요? 피. 이제부터 본격적인 피의 전쟁이 시작된다.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했어요. 누구의 허락을 받았을까요? 땅에서 피를 흘리는데 화평을 제할 허락을 하나님께 받으신 거예요. 하나님께. 이것이 땅에 임하는 모든 악한 일과 전쟁과 살육과 일어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이거 욥기에서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정신 아닙니까? 욥기에서도 보면 사탄이 천상의 회의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얘기하잖아요. "하나님, 저 욥이 진짜 의로워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잘해주니까, 못 박게 하니까, 돈 잘 벌게 하니까, 자녀들 번창하게 하니까, 건강하게 하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제가 한번 가서 잘 다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요. "생명만 건드리지 말고 너 멋대로 해보라." 하나님이 허락하시니까 그 허락하는 범주 안에서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 거예요.

마찬가지지요. 그 붉은 말은 탄 자가 허락받고 땅에 있는 화평을 제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우리를 둘러싼 세계 모든 정세들, 이것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돼요.

우리는 질문할 수 있지요. 하나님, 그런데 저 가난하고 병든 자들, 저희 약한 자들,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 우리가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잖아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의심도 하고 하나님께 따지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훗날 우리가 천국 가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을 날이 분명히 올 겁니다. 그것을 꼭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4-3. 셋째 인: 검은 말

세 번째 인을 떼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5절과 6절인데요.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이제 세 번째 말이 나와요. 첫 번째 흰 말, 두 번째 붉은 말, 세 번째 검은 말. 그런데 그 탄 자가 뭘 가졌어요? 저울을 가졌어요.

저울이 의미하는 게 뭘까요? 공평, 정의, 저울은 공평해야 돼요. 누구에게나 정의로워야 돼요. 속이면 안 돼요. 속이는 추는 정의롭지 않잖아요. 과거 북이스라엘이나 남유다가 한창 망조가 들 때, 그때는 속이는 추가 얼마나 유행했습니까? 정의로워야 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그다음을 얘기하지요. 6절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감이 없잖아요. 한 데나리온, 우리가 하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에요. 가장이 밖에 나가서 일해서 하루 벌어서 가지고 오는 돈이 한 데나리온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라, 해서 밀 한 되는 뭐냐, 밀 한 되는 한 사람의 하루 양식 정도가 된다 했어요. 그러면 식구가 5명이 있어요. 그런데 이 가장이 하루 노동해서 한 사람 분량밖에 돈을 못 벌어 오면 나머지 식구는 어떻게 삽니까? 나머지 식구는 밀 한 되를 나누어 가지고 5분의 1로 먹고 배가 고프거나, 어쨌든 남의 것을 도둑질을 하거나 뭐 그럴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물가가 심하게 인플레이션될 거다. 이것은 그 당시에 로마 당시의 물가로 약 8배에서 10배 정도 사이라 해요.

그리고 보리 석 되, 이것은 하루에 한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양 정도라 해요. 그러면 이것은 한 가장이 벌어서 한 가족이 하루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것을 벌어온다는 뜻이잖아요. 그럼 이게 무슨 재앙이야,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 정도면 견딜 수는 있겠네. 또 뒤에도 나오지요.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감람유도 계속 공급이 되고요, 포도주도 계속 공급이 돼요.

이 정도는 견딜 수 있겠네,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이제 심판의 서막이 올랐기 때문에 이쯤 되었을 때 회개하고 돌이켜야 돼요. 이쯤 됐을 때, 여기서 회개하지 않고 여기서 돌이키지 않으면 그다음 일곱 나팔, 그다음 일곱 대접, 그래서 끝장나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심판의 전조도 주시고, 심판하실 때 적은 것부터 큰 것으로 가면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자기 발로 걷어차 버리고, 뭐 이쯤 되면 그냥 견디지, 그리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경제적인 문제가 생길 때 부자는 탐욕을 멈추고 나눌 수 있어야 되고요. 교회도 거두어들이는 것을 멈추고 나눌 수 있어야 되고요. 세상에 가진 자들, 가난하고 병들고 헐벗은 자들 돌볼 수 있어야 됩니다. 호화롭게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소수의 사람,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사람은 더 많이 넘쳐나잖아요. 공평과 정의, 이미 저울이 무너진 세상이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견딜 만한데, 살 만한데, 그래서 그냥 회개하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면, 그다음 우리는 그다음 일곱 나팔, 그다음에 일곱 대접, 그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나누어야 돼요. 정의가 회복되도록 계속 흘려 보내고 나누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야 됩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그리고 가진 사람이 자기 먹고 살 만한 것, 그리고 계속 나누어야 돼요. 저울이 회복되도록, 공평과 정의가 회복될 수 있도록, 그게 회개예요. 입술로만 회개하면 뭐합니까?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눈물 꿀꺽 흘리면 뭐합니까? 저울이 다 기울었는데 나누지 않는데, 자기 곡간은 터져 나가는데, 자기 이웃과 가난하고 병들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그것은 거짓된 회개예요. 하나님은 그 입술을 가증하다 하실 겁니다.

4-4. 넷째 인: 청황색 말

넷째 인을 떼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7절 8절입니다.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첫 번째 흰색, 두 번째 붉은색, 세 번째 검은색, 네 번째 청황색, 색깔별로 다 나왔어요. 그런데 그 탄 자의 이름이 뭡니까?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이제 죽음이 와요. 붉은색, 피를 본다 했지요. 검은색 말, 공평과 정의가 무너지고 배고픔이 시작되겠지요. 이제 네 번째, 청황색 말, 그 탄 자가 사망과 음부라 그러니까 이제는 곧 죽음이 닥치는 겁니다.

"그들이 땅 4분의 1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4분의 1이라 했어요. 그럼 얼마가 남아 있으니까? 4분의 3이 남아 있어요. 4분의 1을 면할 때 그때 돌아와야 4분의 3이라도 건지지요. 사람들이 밀어 내서 턱밑까지 심판이 닥쳐도 돌이키지 않잖아요. 애굽의 바로를 보세요. 열 번째 재앙이 와야 자기의 장자가 죽어야 그저야 돌이키지 않습니까? 첫 번째 나일강이 피로 변했을 때 돌이켰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4-5. 다섯째 인: 순교자의 기도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9절과 10절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이제는 말 탄 자가 안 나와요. 말 탄 자가 넷이져, 뭐가 있습니까?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다 했어요. 제단, 제단은 하나님의 제단이 생각나지요. 죽임 당한 영혼들이 그곳에서 하나님께 청원하고 있어요. 뭐라고요?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순교자들이, 먼저 순교한 자들이 하나님께 청원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를 죽인 저 악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 로마의 권력자들을 어서 심판해 달라고 청원하고 부르짖고 있는 거예요.

11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제 흰 두루마기가 나오지요. 두루마기는 옷이잖아요. 흰옷을 입혀 주셨다는 말이에요. 흰옷은 순교자들에게 주시는 거룩한 옷이잖아요. 너희들은 구별되었다.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이것을 오해하시면 곤란해요. 숫자가 몇 명이 차야 심판하리라, 이게 아니고 아직까지 심판의 날이 남아 있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은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순교자가 조금 더 나올 때까지, 그때까지 그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기다려서 한 영혼이라도 더 돌이킬 수 있을까 해서.

4-6. 여섯째 인: 자연재해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여섯째 인을 떼시면 자연재해가 일어납니다. 볼까요?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지진 나지요.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지매" 엄청난 자연재해가 이렇게 표현된 대로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 지진 한번 경험해 보셨지요, 안 그래요? 어떤 느낌이셨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지요. 그런데 지진만 살짝 흔들어도 이런데, 하늘이 갈라지고 이런 재앙이 막 일어난다 했어요. 자연재해 앞에 왕이나 일반 백성이나 차이가 있을까요? 왕은 거기서 안전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5절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다 평등해진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되기 전에 나누어라 말 아닙니까? 이렇게 되기 전에 돌이키라는 말 아닙니까? 저울의 공평함을 회복하라는 뜻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것을 참고 참으시다가 여섯째까지 인을 떼시니까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왕족이나 임금이나 백성이나 전부 다 산과 들에 다 숨어 버릴 거예요. 다 평등해졌어요.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아무도 하나님의 자연재해의 진노를 피할 자가 없다. 이제 좀 심각해지지요. 갈수록.

4-7. 일곱째 인: 심판의 서곡

마지막, 일곱째 인을 떼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일곱째 인을 떼실 때, 이것은 8장입니다. 8장 1절에서 5절이에요.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이것은 뭘 얘기하느냐 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예루살렘 성전에 오전에 반 시간쯤 고요한 시간이 있어요. 그 시간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상제단에 향을 피우는 시간이에요. 향은 곧 성도들의 기도라고 했지요.

그다음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일곱 나팔. 일곱 인이 끝나고 나면 그다음 심판이 뭐예요? 일곱 나팔 아닙니까? 이제 일곱 나팔을 준비하는 거예요. 벌써 돌이키지 않으니까.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여기 성도의 기도 또 나오지요. 많은 향을 받아, 그렇지요.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했어요.

성도들이 어떤 기도를 했길래 이 향연이 함께 올라가서 땅에 쏟아 버릴까요? 불을. 일곱 교회의 성도들이 이제는 심판을 하나님께서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을 거 아니에요. 살아있는 성도도 기도했고, 이미 순교한 성도들도 하나님께 청원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제는 하늘에서 불을 내린다는 뜻이에요.

성도들의 기도가 향연이라는 것은요, 여기 계시록에 처음 나오는 말이 아니에요. 시편에도 나옵니다. 다윗의 시, 시편 141편 2절 말씀 한번 보겠습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게 해달라고 다윗이 그렇게 기도했잖아요. 기도가 구약의 전통부터 하나님의 제단에서 향을 피워 드리는 것을 성도의 기도라고 표현한 거예요. 계시록에 처음 나오는 게 아니고 구약부터 이어져 내려온 정신입니다.

나가며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아들 그리스도에게 두루마리의 말씀을 주시고, 예수님께서 그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하나하나 떼실 때마다 일어나는 심판을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고, 특별히 기도를 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항상 받으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절대로 기도를 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일곱 인을 떼실 분이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가 어떤 분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에게 아름다운 성도들의 기도를 향연으로 올려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약한 심판부터 강한 심판까지 허락해 주시는데, 우리는 미련해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깨닫지 못하고 견딜 만하다고 교만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향연이라고 하셨사온즉,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하여 하나님 아버지 제단에 우리의 기도를 향연으로 올려드리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시는 그 시간과 그 장소와 그때는 하나님의 시간에 맡겨 드리오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받으시는 줄로 믿고, 매일같이 기도하며 매 순간 기도하며 항상 기도하는 지혜로운 백성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