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 십사만 사천 / 전체녹취

요한계시록 특강 5 - 십사만 사천(7장)

요한계시록 7장 4절입니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아멘.

오늘은 요한계시록 다섯 번째 시간으로 7장 말씀을 함께 은혜 받겠습니다. 계시록을 우리가 네 번에 걸쳐서 지금까지 공부를 했는데, 아마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계시록은 '참 무서운 책이구나, 이건 펼쳐 보면 안 되는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에서 조금 자유로워지셨다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잘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은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던 말씀이 있는 책이 아니라, 구약에 있는 예언의 말씀을 이것저것 다 모아서 한꺼번에 총정리한 책입니다. 여기까지만 기억을 해도 굉장히 성공한 것입니다.

이제 오늘은 7장 말씀을 나누겠는데, 7장 전체 주제가 144,000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일곱 인 심판을 보았는데, 사실 일곱 인 심판이 6장에서 딱 떨어지고 끝나면 좋은데, 6장 끝이 여섯 번째 인까지만 나오고 8장에 가야 일곱 번째 인이 나옵니다. 그러면 7장은 6장과 8장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것인데, 왜 이렇게 중간에 7장을 삽입해 놓았을까요? 사도 요한이 왜 이렇게 기록해 두었을까요? 144,000이 주는 의미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7장이 길지 않은데 우리가 한 시간을 다 들여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천사와 인침의 비밀

1-1. 다섯 천사의 임무

첫 번째 질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천사와 그들의 대화를 자세히 말해 보십시오. 1절에서 3절을 보면 천사가 다섯 분이 나옵니다. 천사 다섯 분이 나오는데 어떻게 되어 있나 봅시다.

1절,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 네 모퉁이는 땅을 우리가 보통 상징할 때 동서남북을 말합니다. 천사 네 분이 동서남북에 좌표를 찍고 땅에 서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숫자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3과 4도 아주 중요합니다. 7이 완전수라고 했습니다. 완전수란 3과 4의 합입니다. 3은 하늘의 숫자를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그래서 3은 하늘의 숫자를 말하고, 4는 땅의 숫자입니다. 왜 땅의 수냐면 동서남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숫자가 더해진 7은 완전한 전 우주를 말하는 숫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수와 땅의 수가 곱해진 12는 또 하나의 완전수가 됩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천사 네 분이 땅 네 모퉁이에 섰습니다. 그건 그냥 땅따먹기 하려고 선 게 아니고, 천사가 땅을 다 장악하고 서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서 있느냐면,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한마디로 말하면 천사가 바람을 불지 못하게 하려고 땅에 서서 바람을 막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 바람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양면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여름에 바람이 불면 시원하고, 겨울에 바람이 불면 칼바람이 불어서 춥습니다. 지금 여기 계시록에서 말하는 바람은 재앙을 말합니다. 바람이 불면 재앙이 쏟아지고, 바람이 불면 땅에 풍파가 일어나고, 우리 삶에 좋지 않은 일이 자꾸 일어납니다. 그런데 천사가 바람을 막고 있습니다. 그 말은 천사가 재앙을 당분간 붙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2절을 보니까,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도장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또 다른 천사가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여기 잘 보십시오.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 아까 천사 네 분이 먼저 나왔습니다. 이 네 분은 땅의 동서남북에 서서 바람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 네 천사를 설명하는 말이 이 말입니다. 다시 보면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입니다. 그러니 네 천사는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권세를 당분간 멈추고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한 천사가 올라와서 외쳤습니다. 뭐라고 외쳤는지 볼까요? 3절,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네 명의 천사는 동서남북에 좌표를 잡고 서서 바람 부는 것을 막고 있고, 한 천사는 하나님의 인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한 천사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쳐서 말하는 것입니다. 뭐라고 말했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재앙을 좀 멈춰 달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찍어야 되는데 그때까지 이 땅에 바람이 불면 안 되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것입니다.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천사가 다섯 분이 계십니다. 네 분은 땅의 동서남북에 좌표를 잡고 서서 바람 부는 것을, 재앙을 막고 있습니다. 사실 그 네 천사가 땅과 바다를 해할 권세도 있는데, 그런데 또 한 분의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들고 와서 외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잠깐만 심판을 유예해 달라, 기다려 달라. 이런 그림입니다. 이런 환상을 사도 요한이 본 것입니다.

1-2. 인침의 목적

그러면 이마에 인치기까지 왜 기다려 달라고 했을까요? 그 비밀이 9장에 가서 밝혀집니다. 9장 3절과 4절을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옴에 그들이 땅의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황충, 전갈, 이러니까 느낌이 어떻습니까? 별로 안 좋습니다. 이건 악의 권세를 말합니다. 황충이 전갈의 권세를 받았습니다. 전갈의 권세를 받아서 어떻게 하는지 4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무섭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만 골라 가지고 황충이 와서 전갈의 권세를 가지고 해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그 뒤에 예고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일이 그 뒤에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한 천사가 올라와서 좀 기다려 달라, 내가 지금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마에 인을 계속 치고 다닐 테니까, 이게 끝나고 나면 그 다음 황충을 풀어 놓아라, 그럼 황충이 와서 하나님의 사람들 이마에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골라 가지고 심판하면 되지 않느냐, 그 시간을 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사실 계시록 9장 말씀은 나팔 심판입니다. 나팔 심판에 있을 그 한 가지 심판을 황충으로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 계시록 7장의 주제는 인친 자입니다. 이마에 인침을 받은 자. 어떤 사람이 인침을 받고 어떤 사람이 인침을 받지 못할까? 어떤 사람이 도장을 받고 어떤 사람이 도장을 받지 못할까? 나는 과연 인침을 받을 수 있을까? 이제 이 질문이 7장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2. 144,000의 참된 의미

2-1. 숫자의 상징성

두 번째 질문 한번 보겠습니다. 인침을 받은 자의 수가 몇 명입니까? 몇 명이 인침을 받는가 궁금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4절 우리가 처음 읽었지만 한 번 더 읽겠습니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144,000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계시록에서 144,000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144,000이 문제가 됩니다. 지금까지 수도 없는 세월 동안 생겼다가 쓰러졌다가 생겼다가 또다시 생겨났다가 없어졌다 하는 이단들, 종말론 이단들이 대부분 144,000을 숫자로 이해했습니다. 그냥 144,000 그 숫자 그대로.

여러분,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144,000은 그냥 문자 그대로의 숫자로 이해하면 큰일납니다. 144,000은 12 곱하기 12 곱하기 1,000으로 이해하셔야 됩니다. 신천지는 왜 멀쩡한 144,000을 그렇게 쪼개어 가지고 소인수분해 하듯이 쪼개 가지고 12 곱하기 12 곱하기 1,000으로 하느냐, 그냥 144,000이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서두에 계시록을 처음 시작할 때 말씀드렸다시피 계시록은 유대 묵시 문학 전통에 있습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핍박과 압제를 받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힘을 주려고, 일곱 교회의 성도들에게 잘 견디고 조금만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힘을 주려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기록한 묵시를 받아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이 편지가 가다가 발각되면 들고 간 사람도 죽고, 그 편지를 발신한 사람, 그 편지를 받는 모든 공동체가 일망타진됩니다. 그래서 그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그들의 숫자적 상징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 배경과 그 전통을 잘 이해하고 알고 계셔야 됩니다.

그렇다면 12 곱하기 12 곱하기 1,000, 이 각각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말씀드렸습니다. 3과 4에 대해서. 3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니까 하늘의 수이고, 4는 땅의 수입니다. 유대인들은 숫자에 대한 상징이 다 있습니다. 1은 무엇입니까? 유일하신 하나님. 2는 무엇입니까? 증인을 세울 때 두 사람 이상 세워라 했습니다. 3은 하늘의 수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4는 동서남북 땅의 수입니다. 3과 4가 더해지는 7은 완전수이고, 3과 4가 곱해지는 12도 또 하나의 완전수입니다.

2-2. 12 곱하기 12의 의미

그렇다면 여기 12 곱하기 12, 왜 두 번 했을까요? 앞에 12는 구약의 열두 지파, 구약 교회 성도들을 말하고, 뒤에 12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신약 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고,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가 세워지고, 그 교회가 세워진 자리에서 함께 복음을 받아 들고 지금 우리까지 온 것입니다. 구약 교회의 성도들과 신약 교회의 성도들.

그러면 12 곱하기 12만 하더라도 우리가 셀 수 없는 엄청나게 많은 수입니다. 하늘과 땅의 수가 더해진 것도 모자라 곱해졌고, 그게 두 번 곱해졌고, 구약의 교회와 신약의 교회가 곱해졌으니까, 이건 앞으로 신약의 교회는 그 이후로 예수님이 오시는, 재림하실 그때까지 세워질 모든 교회 성도들을 다 포괄하는 말입니다. 그걸 12 곱하기 12라는 수로 확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144,000이라고 그냥 문자 그대로 이야기하면 이걸 어떻게 우리가 수용하겠습니까? 종말론 이단들이 144,000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까요? 열심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열심을 내도록, 봉사 열심히 하고, 헌금 열심히 하고, 구제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고. 그래서 등수를 정해 주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줄 세워 가지고 선착순 시킵니다. 끝까지 가서 달려오면 1등, 2등, 3등까지 끊고, 자 다시 갔다 와라. 그럼 다시 또 3등까지 끊고. 그래서 달리기 못하는 아이들은 5바퀴에서 10바퀴 열 바퀴 돌다가 운동장에서 퍼집니다. 교회 성도들을 줄세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단들, 종말론 이단들에 사람들이 미혹되느냐 하면, 우리 속에 그런 못된 줄 서고 싶은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을 내고 싶은 본성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 사순절 40일 기간에 61일을 정해 가지고 성경 구절을 나눠서 새벽에 기억나십니까? 새벽에 오시는 분들에게 성경구절 하나씩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걸 다 모으면 하나의 성경 암송 카드 60여 절 카드가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거 못하면 사면 되는데, 5천 원 주고 사면 되는데, 그게 뭐라고 그 새벽에 그렇게 열심히 오시더라고요. 그렇게 열심히 그거 하나 받으려고 열심히. 근데 그거 끝나고 나니까 썰물 빠지듯이 싹 빠져나가시더라고요.

그런 열심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거 다 채우고 싶고, 퍼즐을 다 맞추고 싶고. 그럼 교회에서 그걸 이용합니다. 그 본성을. 이단들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144,000이라는 숫자를 딱 한정시켜 놓고, 여기에 들려면 재산도 팔아야 되고, 시간에 헌신도 해야 되고, 시키는 거 다 해야 되고. 그러니까 이런 일에 얼마나 열심히 하겠습니까? 얼마나 열심히 헌금도 얼마나 많이 하겠습니까? 그래서 열심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 숫자 144,000을 확정적인 숫자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복음이 어디 있습니까?

2-3. 보혈의 무한한 능력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144,000까지만 가능하고, 144,001명만 되면 '야, 너는 한 사람 모자라서 안 되겠다. 내 피의 능력이 여기까지야. 나눠 줄 수도 없고, 미안하다. 넌 지옥 가야 되겠다.' 이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라면 그 예수님을 우리가 왜 믿습니까? 그 예수를 왜 믿고 앉아 있습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런 예수를 믿을 이유도 없고, 그런 복음이 지금까지 2천 년 이상 동안 이어 온 이유도 없습니다.

한 가지만 생각해 봐도, 그거 하나만 생각해 봐도 144,000은 숫자 그대로의 숫자가 절대 아닙니다. 12 곱하기 12, 오고 오는 모든 인류를 앞으로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오는 모든 이들을 다 포함하고도 넉넉하게 남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 그 모든 자들을 다 포함하고도 남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이걸 기억하셔야 됩니다. 이것만 기억해도 그런 사이비 종말론 이단 따위에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2-4. 천의 의미와 성도의 정체성

그다음 천이 왜 붙는가. 100이 붙어도 되고, 만이 붙어도 되고, 10이 붙어도 되는데 왜 하필 천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체성을 생각하셔야 됩니다. 민수기 31장 4절을 한번 볼까요? 제가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각 지파에서 천 명씩을 전쟁에 보낼지니라 하니" 전쟁에 보내는 단위가 천 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성경 한 권의 키워드를 좀 알고 계시는 게 좋습니다. 창세기의 키워드는 창조입니다. 출애굽기의 키워드는 구약과 언약, 시내산 언약입니다. 그다음 레위기는 율법이고, 민수기는 무엇입니까? 민수기는 이동입니다. 계속 달립니다. 구름 기둥 불기둥 따라가지고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고, 계속 달립니다. 민수기는 이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 가지고 가나안 복지까지 들어가는 이동입니다.

그런데 그 이동하는 기간에 적들을 만납니다. 악한 놈들 만납니다. 모압도 만나고, 암몬도 만나고, 사막의 해적 같은 놈들도 만나고, 여러 악당들을 만났는데, 그 악당들을 만나면 당하고 있으면 됩니까? 싸워야지요. 전쟁해야 됩니다. 전쟁해야 되니까 나팔도 불고, 전쟁해야 되니까 조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내산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모으시고 성막을 만드셨습니다. 성막이 가운데 가고, 레위인들이 그 성막을 들고 가는 것입니다. 이동할 때는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세 지파씩 대를 이루어 가지고 진을 이루어 가지고 함께 전진하는 게 민수기입니다. 그러면 전쟁할 때 성인 남자들 중에 최대 단위가 천 명씩입니다. 천부장 들어보셨습니까? 천부장, 백부장, 그다음 오십 부장, 십부장. 만 부장 들어보셨습니까? 만 부장은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조직을 만들 때 군대 조직의 최대 단위, 제일 큰 단위를 1,000이라고 규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천 명의 군대를 이끄는 대장을 천부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천부장이 나온 것은 군대 조직입니다. 이동을 할 때 12 곱하기 12 뒤에 천이 붙었습니다. 그럼 정체성이 무엇이라는 뜻입니까? 군인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정체성, 성도의 정체성, 앞에 12는 구약 교회, 뒤에 12는 신약 교회, 그 뒤에 천이 붙습니다. 그러면 구약 교회의 성도들, 신약 교회의 성도들을, 오늘 우리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군인입니다. 군인. 제가 맥추감사절 설교 때도 말씀드렸습니다.

군인이 전시에 휴가 나갔다가 중대 통째로 다 몰살됐다 그러면 그 군인 인생이 편안하겠습니까? 전우들이 다 죽은 죄책감 때문에 남은 인생 제대로 못 삽니다. 그만큼 군인한테 옆에 함께하는 전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옆에 형제 자매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군인이 전쟁 중에 지가 편하겠다고 총기 들고 탈영하면 어떻게 됩니까? 탈영병 전시에는 총살입니다. 전쟁 안 해도 군기교육대 아주 심하게 당합니다. 탈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 정체성이 군인인데 우리는 왜 맨날 탈영합니까? 탈영하면 안 됩니다. 군대에 남아서 이 믿음의 전쟁을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군인이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무공훈장을 받습니다. 그러면 왕이 사열할 때 무공훈장 받은 군인들은 앞에 딱 나갑니다. 아, 저 사람은 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달았구나. 왕이 딱 봐도 알 수 있도록. 그래서 무공훈장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땅에서 고난 속에서 힘들게 믿음의 싸움을 잘 싸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기억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하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갚아 주신다는 것,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무공훈장 같은 걸 달아 주실 것입니다.

또 군인한테 중요한 게 뭡니까?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명령 불복종 위수령 위반 이거 다 중한 죄입니다. 군인이니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아멘으로 받고, 그래 라고 하시면 그래 하고, 가라고 하시면 가고, 서라고 하시면 서고, 남아서 견뎌 내라 하면 견뎌 내야 됩니다. 교회의 정체성, 성도의 정체성이 군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군인의 정체성이 천이라는 숫자에 들어 있습니다.

3. 열두 지파와 단 지파의 교훈

3-1. 인침을 받은 열두 지파

세 번째 질문 보겠습니다. 인침을 받은 열두 지파에서 단 지파가 빠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5절에서 8절까지 보면 열두 지파의 이름이 쭉 나옵니다. 읽겠습니다. "유다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가 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서 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서 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서 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서 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서 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서 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서 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서 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서 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서 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가 만 이천이라."

열두 지파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 열두 지파에서 뭔가가 달라요. 야곱의 아들 열둘이 있습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요셉, 베냐민. 열둘인데 여기에 보면 요셉 대신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열셋이잖아요. 구약 때도 그래서 열셋인데 땅을 나눌 때 레위를 빼 버렸습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해야 되니까 따로 분배받지 않고, 온 땅이 레위의 땅입니다. 레위 지파만 땅이 한 군데 뭉쳐져 있지 않고 쫙 퍼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를 빼고 땅을 열두로 나눴습니다.

근데 여기 144,000 열두 지파 땅에 분배받는 열두 지파와 달라요. 어떻게 달라요? 단 지파가 빠졌습니다. 레위 지파가 들어와 있습니다. 결국 단 지파가 빠진 자리에 레위 지파가 들어온 것입니다. 참 이상하죠? 하나님은 단 지파도 하나님의 백성 아닙니까? 야곱의 열두 자녀 중 하나 아닙니까? 왜 하나님은 단 지파를 인침 받을 자의 명단에서 삭제해 버렸을까요?

이거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창세기 49장 17절 볼까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단이 있어요. 단이 있는데 야곱이 죽기 전에 열두 아들을 모아 놓고 축복 기도를 했습니다. 축복도 하고 책망도 하고 막 섞여 있잖아요. 근데 단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참 이상한 축복입니다. 축복이 아니죠. 단은 뱀이 될 것이다.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다. 말의 발굽을 물어가지고 말의 탄 사람을 떨어지게 할 것이다. 단, 이름 자체가 '심판하다'라는 뜻입니다. 정의가 회복되다 이런 뜻인데 그러면 좋은 뜻이잖아요. 근데 왜 단이 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예언했을까요?

3-2. 단 지파가 삭제된 이유

야곱의 예언은 맞습니다. 야곱이 예언한 대로 됐습니다. 단 지파가 어떻게 됐는지 보십시오. 원래 단 지파에게 분배된 땅은 중부지방 지중해 바닷가 쪽입니다. 근데 땅이 작아요. 바닷가 쪽에 한쪽이 바다니까 다른 지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땅이 작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들끼리 회의를 한 거예요. 하나님이 여기 살라고 했는데 여기 좁습니다. 다른 데로 갑시다. 어디로 가요? 팔레스타인 제일 북쪽에 보면 단이라는 도시가 지금도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보다 더 북쪽에 단이라는 도시가 있어요. 뭐 하러 거기까지 갔을까? 거기가 더 좋대요. 번화하고 물 좋고. 거기에 외래 종교가 있었습니다. 우상숭배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종교. 가나안 종교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터 잡고 살았습니다.

사사기 18장 이것도 제가 다 설명하면 설교가 굉장히 길어지는데 결론만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단 지파가 그 땅에 가서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다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배해 주신 땅을 거절하고 지 마음대로 외래 종교가 있는 곳에 가서 거기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에서 야곱이 예언한 단은 뱀같이 될 것이요 독사같이 될 것이라고 한 그 예언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제 교훈을 얻어야 됩니다. 단 지파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144,000에서 삭제됐어요. 인침을 받은 자에 명단에서 삭제됐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리가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분이 있고, 우리는 이게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이걸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생각하고, 눈뜨면 말씀 보고, 눈감으면 기도하고, 교회 생각하고, 거기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건 싫다고, 다른 거 생각하고, 그 자리를 이탈하면 하나님이 구원의 자리에서 삭제해 버리십니다.

집사, 권사, 장로, 뭐 하는 사람들입니까? 그냥 명예직으로 그 자리 달아서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목사님 칭찬받으라고 그 직이 세워 놓은 거 아닙니다. 있으니까 파고, 자리 값 해야 됩니다. 그게 너무너무 중요한데 그거 하지 않겠다고 다른 데로 도망가 버리면 하나님이 가만히 두고 보시겠냐고요.

히브리서 12장 16절을 보면 에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명분 중요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졌죠. 지가 직접 팔았어요. 그거 별로 필요 없다고. 배고프니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 팔아 치웠어요. 그거 별로 안 중요하다고.

우리 교회 다니는 분들이 어디 술집에 가면 오늘은 계급장 떼고 마시자, 제가 그런 얘기 전에 들었거든요. 오늘은 장로도 아니고 권사도 아니고 집사도 아니고 그냥 부장님, 사장님, 회장님 하고 그리고 마시자. 굉장히 악한 짓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어느 자리에 있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서 장자의 명분을 팔아치운 에서, 하나님도 그를 기뻐하지 않으셨어요. 축복의 물줄기가 야곱으로 가지 않습니까?

명분, 그거 붙들고 있는다고 밥이 나오냐, 죽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그건 별로 안 나올지 몰라도 구원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명분 붙들고 부여잡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 내셔야 됩니다. 단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약속의 땅 버리고 제 마음대로 북쪽으로 가니까 하나님도 빼 버립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사기 18장 30절, 31절입니다.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뭘 했다는 얘기입니까? 우상숭배입니다.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우상숭배하는 자, 다 이런 말입니다. 우상숭배하는 자, 하나님은 열두 지파, 레위 지파 이름 넣어 가지고 단 지파 삭제하고 12라는 숫자 맞추셨습니다. 국가별로 주의합니다. 단 지파 있건 없건.

그래서 우리가 구원의 자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인침을 받는 자의 자리에 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교훈을 잘 기억해야 됩니다. 단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리, 명분, 직분 소중하게 여기고 잘 지켜 내셔야 된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자리를 허락해 주셨는데, 거기서 우상숭배하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에 취해서 쓰러져 있으면 하나님이 그냥 두고 보시지 않습니다. 단이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입니다.

4. 흰 옷과 종려가지

4-1. 셀 수 없는 큰 무리

그다음 페이지 넘기시면 24쪽입니다. 144,000을 계시록은 어떻게 해석합니까? 흰 옷과 종려나무 가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9절을 볼까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각 나라, 족속, 백성, 방언, 이 표현이 지난 시간에도 봤습니다. 이건 무엇을 이야기한다 그랬습니까? 온 세상 모든 민족을 이야기한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이게 곧 144,000입니다. 144,000을 4절에서 나온 144,000을 9절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가 굳이 12 곱하기 12 곱하기 천이라고 유대인의 숫자 개념을 가지고 해석하지 않아도, 성경이 그 뜻을 풀어서 해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이게 144,000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분명히 144,000의 정체를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44,000을 그냥 숫자 그대로라고 말하는 그 이단들의 생각을 알 수가 없습니다. 144,000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입니다. 당연히 구약의 교회와 신약의 교회,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올 모든 성도들을 다 포함하는 말이니까, 구원받은 백성들, 우상숭배하지 않고 자기 믿음의 자리를 굳게 지킨, 단 지파 같은 사람들이 아닌 모든 백성들을 다 포함하는 말이니까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렇게 수많은 엄청나게 많은 백성들, 그 백성들이 흰 옷을 입었습니다. 흰 옷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원을 의미합니다. 계시록에서 흰 옷. 종려나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승리를 의미합니다. 왜? 승리한 왕에게 흔들어 주는 것이고, 장군에게 흔들어 주는 것입니다. 흰 옷 입은 백성들이 144,000이 이제 승리하고 개선장군처럼 천국에 입성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싸우고, 이 땅에서 고통과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핍박을 견디고, 순교할 정도로까지 견뎌낸 그 모든 성도들의 수고가 끝이 나고 하늘에 입성하는 그날, 하늘의 천사들이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그대를 맞아주는 장면입니다. 영광스럽지 않습니까?

4-2. 어린 양에게 드리는 예배

두 번째 질문입니다. 큰 무리가 어린 양에게 드리는 예배를 묘사해 보십시오. 이제 큰 무리가, 144,000이, 엄청나게 많은 무리가 천국에 입성했습니다.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섰습니다. 10절 보십시오.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이거 중요합니다. 구원은 누구로부터 말미암습니까?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종교다원주의자들이 구원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 우리가 농담으로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 볼까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만한 이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무엇입니까? 종교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자리에 다른 걸 집어넣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문장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인데, 예수 자리에 다른 걸 집어넣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그리스도, 마호메트 그리스도, 그러다가 어디까지 가느냐면 자기 이름을 집어넣습니다. 나 그리스도,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있다. 물질 그리스도, 암호화폐 그리스도. 다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등산 비유를 쓰는데, 이쪽 등산도 A 코스를 가도 정상, B 코스를 가도 정상, C 코스를 가도 정상. 나중에 천국에 가면 불교 믿었던 사람이 나와, 기독교 믿었던 사람이 나와, 힌두교, 이슬람 믿었던 사람이 나와. 그 정상에서 만나는데 왜 그렇게 종교끼리 싸우고 다투느냐고. 싸우지 말고 다 친하게 지내고, 각자 다 형제니까 그렇게 살라고. 그게 종교다원주의입니다. 그럴듯한데 그러나 거기에 아주 독한 사탄의 속수리 들어 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 고백이 없으면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생활 거꾸로 한 것입니다. 구원론에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44,000이,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들이 찬양합니다.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오직 한 분밖에 없도다. 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배 드립니다. 11절, 12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천사가 경배합니다. 12절,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천상에는 예배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144,000이 천상에 올라왔는데 천사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천상에서 예배는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찬양입니다. 설교도 필요 없고 떠드는 거 필요 없습니다. 천상에서 예배는 그냥 찬양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찬양 연습 많이 하셔야 됩니다. 열심히 하셔야 됩니다.

4-3. 흰 옷 입은 자들의 정체

세 번째 질문, 흰 옷 입은 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말하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흰 옷 입은 자, 144,000의 정체를 묻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큰 환난에서 나온다, 이 말은 환난을 이긴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환난을 이긴 자.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 예수님의 피가 자신의 행위를 거룩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인간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만 구원받는다는 뜻 아닙니까? 계시록은 성경 전체의 요약본입니다. 다 그 진리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5. 섬기는 예배의 본질

5-1. 라트레오의 의미

네 번째 질문,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이 흰 옷 입은 사람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무엇을 하셨는가? 15절,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여기 '섬기다'라는 말, 헬라어로 '라트레오'(λατρεύω)라고 되어 있습니다. 라트레오, 예배드린다는 뜻입니다. 섬기는 것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거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예배는 '겸보다' 라트레오,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불평이 많습니다. 교회에 오면 평가 더 열심히 합니다. 찬양대 찬양 가지고 평가하고, 목사 설교 가지고 평가하고, 기도 자기도 길다고 평가하고, 교회 냉난방 시스템 가지고 평가하고, 주차 가지고 평가하고. 섬김을 해야 되는 사람들이, 우리가 섬기기 위해서 예배드리러 왔는데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불평 많은지. 예배드리고 집에 돌아가다가. 예배 정신은 섬기는 것입니다. 누구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드리고 돌아갈 때 딱 한 가지만 생각하고 가야 됩니다. 내가 오늘 하나님을 잘 섬겼는가? 내 마음과 정성과 내 모든 영으로 하나님을 잘 섬겼는가? 하나님 기뻐하셨을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영인데 나도 영으로 예배드려야 됩니다.

몸은 여기 앉아 있어서 목사 보기에는 제일 거룩하게 잘 앉아 있고 거룩한 척 다 하면서 마음은 콩밭에 가 있고,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으면 그러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돌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잘 섬겨 드렸나요? 난 오늘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서 섬겼다. 이 뿌듯함이 있어야 예배 제대로 드린 것입니다.

5-2. 스케노의 축복

이제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장막을 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12장에 가면 또 나오는데 오늘 여기서는 간단하게만 살펴보겠습니다. 헬라어로 '스케노오'(σκηνόω)라는 단어입니다. 거하다라는 뜻입니다. 잘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스케노오, 거하신다, 머물러 계신다는 뜻입니다.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거하신다라는 말이 이렇게 덮어 주시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시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많은 자리가 특정하게 있어서 우리가 그곳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됩니까? 아니면 우리가 예배드리는 자리, 자리마다 하나님이 오셔서 스케노오해 주십니까? 둘 다 틀린 말은 아닌데 본질적으로 옳은 말은 후자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그곳에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스케노오해 주십니다.

만약에 전자가 진리라면 교회가 지나치게 비대하게 되고, 교회가 지나치게 화려하게 포장되게 됩니다. 거기다 자꾸 강조해서 이곳만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이래 버리면, 여기에 하나님이 스케노오하신다 이래 버리면, 가장 비싸고 가장 좋은 것으로만 교회를 짓지 않겠습니까? 교회가 휘황찬란하고 삐까번쩍하게 그렇게 짓지 않겠습니까?

성막 보십시오. 최초의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곳, 성막. 하나님이 인간이 만든 아무리 화려하게 만든 곳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런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온 천지 만물입니다. 어디서나 하나님 다 계십니다. 다만 하나님이 이곳에서 너와 내가 만나겠다 약속하신 것이지.

그래서 중요한 것, 우리가 항상 어디에 있든지, 예배당 안에 있든지, 일터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성도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예배드리는 자, 라트레오 하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곳에 하나님이 스케노오하십니다. 우리가 어디서든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은 그곳에서 스케노오하셔서 우리를 살피고 돌보십니다.

5-3. 야곱의 깨달음

야곱이 그걸 깨달았습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벧엘에서 꿈속에서 환상 중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닥다리,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고, 그 꼭대기에 보좌에 하나님께서 앉아 계시고. 야곱은 그때 깨달았습니다. 난생처음 집을 떠나 봤는데, 지금까지 하나님은 자기 집에만 계신 줄 알았는데,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이고 도망자 신분이 돼서 광야로 나왔는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더라고요. 하나님이 지금 이 땅에도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야곱이 잠이 깨어서 고백합니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하나님의 집이 어디입니까? 그것이 자기가 예배드리는 곳이 벧엘입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야곱이 그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전 신앙을 다시 재정립하셔야 됩니다.

예배당에도 하나님 계십니다. 집에도 계십니다. 일터에도 계십니다. 내가 가는 곳 어디서나 하나님 다 계십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라트레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배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기에 거하십니다.

5-4. 스케노오의 역사

하나님께서 그곳에 오셔서 어떤 역사를 보여 주십니까? 16절, 17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섬기고 하나님이 거하시면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이런 역사와 이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고, 아 나는 내가 가는 모든 곳을 섬기는 예배의 장소로 만들겠다, 그곳에서 계급장 떼고 살지 않겠다, 직분의 정체성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 잘 섬기면 하나님이 스케노오하셔서 생명의 샘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이걸 꼭 마음에 새기고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144,000 절대로 두려운 것도 아니고 저주가 아닙니다. 이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특권이고 축복입니다.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계시록 말씀을 허락해 주시고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의 정체성이 군대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명령에 불복종하는 탈영한 군인이었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게 하시고 주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든 그 말씀을 가지고 전진하고 이겨 내고 달려가는 하나님의 백성, 믿음의 자녀 되도록 주여 우리의 믿음을 붙잡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어디서든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시고 하나님의 훌륭한 제자 되고 하나님의 성도 되어서 그곳에 스케노오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누리게 하옵소서. 인침 받는 자의 자리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도우시고 단 지파처럼 그 자리를 경홀히 여기고 벗어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도우시며 우상숭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