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 일곱 나팔 심판 / 전체녹취

요한계시록 특강-6: 일곱 나팔 심판(8-9장)

요한계시록 8장 7절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짐에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버렸더라"

오늘은 요한계시록 여섯 번째 시간으로 일곱 나팔 심판에 대해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144,000명이 등장하는 7장을 살펴보았고, 오늘은 8장과 9장을 살펴봅니다. 오늘 주제가 일곱 나팔 심판인데, 8장과 9장을 살펴보면 여섯 번째 나팔까지만 나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은 11장에 나오므로 그때 가서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첫 번째 나팔부터 여섯 번째 나팔까지 함께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계시록을 공부할 때 일곱 인 심판을 공부했는데, 계시록에는 세 가지 심판이 나옵니다. 첫 번째가 일곱 인, 두 번째가 오늘 공부할 일곱 나팔, 세 번째가 일곱 대접입니다. 이렇게 숫자 7로 심판이 세 번 나오는데, 계시록에서 나오는 숫자 7의 의미를 지난 시간에 상세히 말씀드렸습니다. 7은 3과 4의 합인데, 3은 하늘의 수라 했고 4는 동서남북 땅의 수라 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수와 땅의 수가 더해진 7, 하늘과 땅의 수가 곱해진 12는 완전수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의 수가 더해진 7 심판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이렇게 반복되면 남아나는 것이 있겠습니까. 남아나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 심판의 완전성을 말하고, 그 심판의 무서움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난번 일곱 인 심판은 견딜 만한 심판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은 "이거밖에 안 되나, 견딜 만한데"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인내를 느껴야 합니다. 여기서 빨리 돌이키고 돌아가면 하나님은 그다음 진도를 나가지 않으시는데, 거기서 돌이키지 않고 강퍅한 상태로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우리가 계시록을 공부할 때 일곱 심판이 세 번 반복되는데, 갈수록 강도가 세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일곱 인 심판도 첫 번째 인을 뗄 때와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뗄 때 강도가 다르고, 오늘 살펴볼 일곱 나팔 심판도 처음부터 점점 갈수록 강도가 아주 세집니다. 잘 기억하시고 보겠습니다.

1. 나팔의 신학적 의미

먼저 8장 6절을 보겠습니다.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나팔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제가 늘 말씀드리는데 계속 반복적으로 계시록에서 너무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계시록에 있는 모든 말씀은 재앙이든 축복이든 어떤 말씀이든지 성경 전체에서 나온 말씀을 총망라해 둔 총정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팔이라는 말도 계시록에 처음 나온 말일까요, 아니면 구약이나 신약에 더 나온 말씀일까요. 여러 번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나팔의 구약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신학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공부하고 살펴봐야 그런 맥락에서 계시록의 일곱 나팔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1-1. 구약의 나팔

구약에서 나팔 이야기가 처음 나오는 장면이 출애굽기입니다. 출애굽기 19장 16-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옴에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성경을 읽을 때는 맥락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나팔 소리가 들렸고, 백성과 모세가 하나님을 맞이하려고 산 기슭에 서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의 맥락은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준비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고, 하나님께서 출애굽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신없이 몰아가다가 시내 산 아래에 가서 한숨 돌리게 하십니다. 거기서 기다리게 하시고 "내가 십계명을 주고 나머지 율법을 줄 테니까 백성들 너희들은 집합하라" 하시고 나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출애굽기 19장에 나오는 나팔 소리는 하나님께서 곧 임재하신다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9장은 하나님께서 곧 나타나실 테니 준비하고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하면 우리는 어떤 느낌입니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반갑습니까, 도망가고 싶으십니까. 양가감정이 다 있겠지요. 일단 두렵고 떨리기도 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그런데 죄 지은 사람은 도둑이 제 발 저리니까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나팔 소리가 들리면 도망가기 바쁠 것이고, 하나님 빨리 만나고 싶고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아온 사람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리면 빨리 하나님 앞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우리의 지금 영적 상태를 바로 진단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첫 번째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했습니다.

그다음 민수기 10장 2절입니다.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민수기가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이동에 대한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동하고 또 이동해서 결국은 가나안 땅 입구까지 가는 장면이 민수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팔이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요. 회중을 소집하고 출발시키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백성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남자만 60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린아이, 여자, 노인까지 하면 족히 200만 명이 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육성으로 그들을 다 불러모을 수 있겠습니까. 곳곳에서 진영에서 나팔이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나팔을 길게 불면 이렇게 행동하고, 짧게 몇 번 불면 이렇게 행동해라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팔에 따라서 일사분란하게 자기들끼리 움직이는 것이 나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말씀이 이러면 이렇게 행동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적 지휘 체계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동으로 가라 하는데 서로 가고, 서라 하는데 뛰어가고, 가라 하는데 머물러 있고, 이러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구약의 나팔 소리는 백성을 소집하고 백성을 움직이게 하고 출발하게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다음 민수기 10장 9절입니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또 나팔이 언제 분다고 합니까. 전쟁하러 나갈 때, 대적을 치러 나갈 때 그때 나팔을 붑니다. 정신 차리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나팔 기억나십니까. 기드온이 300 용사 데리고 전쟁하러 나갈 때 세 가지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칼이나 창이나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나팔, 항아리, 횃불. 항아리 깨뜨리고 나팔 불고 횃불 들었습니다. 나팔은 영적인 각성을 의미합니다. 사탄의 권세와 싸우려면 영적으로 각성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냥 여기에 머물러 있고 여기 잠들어 있으면 어떻게 영적인 각성을 일으켜서 사탄과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나팔의 또 다른 의미는 전쟁입니다. 사탄의 세력과 악의 세력과 싸울 때 영적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영적 나팔을 불었으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지난번에 살펴보았습니다. 144,000이 12 곱하기 12 곱하기 1,000인데, 천이라는 숫자는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 성도의 정체성을 말하며, 정체성이 곧 군대라 했습니다. 나팔 소리가 들리면 전장으로 뛰쳐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팔 소리가 들리는데 숨어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미적대 버리고 어떻게 전쟁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적 나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전장으로 뛰쳐나가야 합니다. 어떤 악의 세력과도 맞서서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6장 5절입니다.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전쟁하러 나갈 때도 나팔을 불지만 전쟁 시에도 나팔을 붑니다. 전쟁하다가 군사들에게 나팔을 이렇게 불면 전진하고, 이렇게 불면 그대로 머물러 있고, 이렇게 불면 퇴각하고, 전쟁 시에도 나팔을 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에 있는 나팔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임재요, 백성들의 영적 각성이요, 전쟁 시에 쓰이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습니다.

1-2. 신약의 나팔

그러면 신약의 나팔은 어떤 의미냐 하면 똑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8절입니다.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나팔은 곧 영적 전투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1절입니다.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종말 심판을 말합니다. 신약의 나팔 소리는 마지막 심판의 날, 종말의 날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면 이제 세상이 끝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마지막 나팔, 정말 두렵지 않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심판의 날, 종말의 날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맥락, 구약과 신약의 이런 나팔의 맥락에서 일곱 나팔 심판에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에게 그 나팔 소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는 뜻이겠지요.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인 맞은 자들, 144,000인 들,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자들은 나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어떤 느낌일까요. 이제 이 땅에서 고생이 끝났구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 땅의 악을 제거하시고 심판하시는구나,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호령 소리가 나니 우리는 이제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구나, 우리에게는 행복, 기쁨, 감사, 영광이겠지요.

그런데 인 맞지 않은 자들, 그런 자들에게 나팔 소리는 여전히 그들에게도 심판입니다. 나팔 소리는 이 두 가지 감정이 함께 동시에 공존하는 것입니다.

2. 일곱 나팔 심판

이제 이런 나팔의 의미를 가지고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부터 보겠습니다.

2-1. 첫째 나팔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7절입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짐에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버렸더라"

여기 삼분의 일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나팔 심판을 읽을 때는 삼분의 일이 계속 나옵니다. 둘째, 셋째, 넷째 때 계속 삼분의 일이 나오는데, 삼분의 일이 탄다는 말, 삼분의 일이 심판당한다는 말은 아직 얼마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까. 삼분의 이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마음이 있어야 합니까. "삼분의 일 정도 잃어도 아직 삼분의 이가 남았으니까 견딜 만해, 살 만해" 이런 느낌이어야 합니까, 아니면 정신이 번쩍 드셔야 합니까.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합니다.

이제 이 정도면, 왜냐하면 일곱 인을 떼실 때 심판은 사분의 일이었거든요. 기억나십니까. 그때는 사분의 일이었습니다. 사분의 일 정도 되면 25%인데, 그때 정신 차리고 돌이켰으면 일곱 나팔, 일곱 대접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인데,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니까 일곱 인 심판에서 넘어가서 일곱 나팔까지 온 것입니다. 이제 일곱 나팔에서는 삼분의 일을 심판하십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니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구나, 두 번째는 돌이키지 않으면 나머지 삼분의 이도 끝장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을 때 자세히 읽어보시면, 사람이 상한다는 말이 있습니까.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가 가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말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자연과 수목에만 해당되는 심판입니다. 그러면 일곱 나팔의 심판도 주변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나중에 여섯 번째 나팔을 불 때 보면 사람을 직접 심판하십니다.

자, 그러면 이것을 우리에게 한번 적용시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책망하시고 심판하실 때 직접 들어오지 않으세요. 어떻게 하세요. 사인을 주시지요. 주변 사람을 통해서 말씀도 하시고 환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너 조심해라, 너 조심해라, 그렇게 자꾸 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이렇게 자꾸 우리에게 여러 가지 사인을 주십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부터 서서히 싸늘한 기운이 들어옵니다. 그때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때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지경까지 가 버립니다.

반면에 사탄의 입장에서 보면, 사탄이 한번 우리의 영혼을 잡아챘습니다. 발목을 잡아챘습니다. 놓고 싶을까요, 놓고 싶지 않을까요. 당연히 붙잡고 끝까지 파멸시키고 싶겠지요. 그럼 사탄은 어떻게 합니까. "지금 돌아가면 넌 끝이야." 도박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요. 조금만 한 타, 조금 더 한 타, 본전 생각을 하다가, 그다음에는 다 찾을 것 같은 느낌, 그다음에는 이거 다 찾아서 내가 가족에게 떳떳이 돌아가고 싶은 그 느낌이 자꾸 있지 않습니까. 사탄이 그 발목을 잡고 놓아 주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첫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주변이 심판당하는 것을 보고 그때 속히 돌이켜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2-2. 둘째 나팔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8절을 보시면,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짐에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서서히 옥죄어 오는 느낌이 드십니까. 여기에 두 가지를 보셔야 하는데, 하나는 불붙는 큰 산, 또 하나는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이 피가 되는 것, 불붙는 큰 산, 이것들이 구약에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재앙과 상징은 구약에 그대로 있는 것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러면 불붙는 큰 산이 의미하는 게 무엇입니까. 바다가 피가 된다는 것은 우리 기억에 나지요. 나일 강이 피로 물든 이미지가 우리 속에 강렬하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불붙는 큰 산은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예레미야 51장 25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원수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불탄 산이 된다 했습니다. 불붙은 큰 산, 불탄 산, 같은 의미지요. 자 그런데 예레미야서에서 말하는 불탄 산이 어디를, 혹은 누구를, 어떤 나라를 말하는 것일까요. 예레미야 선지자가 어느 나라에서 예언했습니까.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망하기 직전에 예언했습니다. 남유다가 망하는 것을 자기 눈으로 보았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그 불탄 자리에 주저앉아 속으로 탄식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것이 예레미야애가입니다. 자, 그러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았던 남유다를 멸망시킨 나라가 바벨론 아닙니까. 지금 여기 이 불탄 산은 바벨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원래 하나님의 지팡이, 막대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통 당신의 백성들이 말을 안 듣고 잘못하면 주변 나라, 이웃 나라를 도구로 들어서 하나님 백성들을 치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쓰임받는 막대기는 겸손해야 하거든요. "아, 나는 요 정도만 해야지, 하나님께 쓰임받으니까 여기 정도까지만 해야지" 그래야 하는데, 바벨론이 너무 나갔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을 심하게 고문하고 그들을 죽이고 그들을 압제하고 주변 여러 나라, 여러 민족들을 박해하기를 아주 심각하게 했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내가 들어서 사용한 지팡이, 막대기 바벨론을 불탄 산같이 파괴해 버리겠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에서 나중에 계시록 17장, 18장 그 이후로 가면 바벨론이라는 상징이 나오거든요. 신약에서 말하는 바벨론, 계시록에서 말하는 바벨론은 구약의 그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말하지만, 계시록이 말하는 바벨론은 로마 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불탄 산을 계시록에서 언급하는 이유는, 그것을 듣는 유대인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알지 않습니까. "아, 불탄 산은 바벨론을 말하는 것이지. 그러면 여기 지금 이 로마 제국도 결국은 바벨론이 망한 것처럼 망할 것이다." 이 희망을 가지도록 유대 묵시 문학 전통에서 이렇게 기록해 둔 것입니다. 어렵긴 한데 이해가 되시지요.

그다음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된다는 것, 이건 출애굽기 7장 20-21절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심판하실 때 첫 번째 재앙이 나일 강을 피로 물들게 하신 것 아닙니까. 이것은 자연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 때 출애굽기에 있었던 재앙이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물은 곧 생명의 근원 아닙니까. 사람이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직접 생명을 치시기 전에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을 피로 물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애굽에 있는 생명의 삼분의 일이 죽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곧 그다음 단계에서 너희야말로 하나님이 그렇게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이 예고를 제대로 알아두고 거기서 돌이켜야 하지, 그렇지 못하면 계속해서 심판의 자리로 나아가면 결국 우리에게는 종말이 더 빨리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2-3. 셋째 나팔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절입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이 사건이, 이런 일이 구약에 있었을까요. 이것도 구약에 있습니다. 기억이 나실 은지 모르겠는데, 이사야 14장 12-13절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이것 그대로 보여 주세요. "네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그랬지요. 계명성은 모닝스타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새벽별입니다. 새벽별처럼 찬란하고 새벽별처럼 아름답고 밝은 별, 그 별이 의미하는 것은 역시 바벨론입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열국을 엎은 자가 땅에 찍혀 버렸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3절에 나오지요.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얼마나 교만했습니까. 바벨론이 그렇게 교만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교만한 자를 하늘의 별자리에서 떨어뜨리시고, 결국에 모든 것을 얻었는데 그 얻은 자리를 뒤집어엎으신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은 계속해서 나팔 부는 천사가 나타날 때마다 바벨론을 떠올리게 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읽는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바벨론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지금 이 바벨론이 곧 로마를 상징하게 하고 로마가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바벨론이 일곱 성도들에게 어떤 악한 영향을 주었는가, 11절을 볼게요.

"이 별 이름은 쓴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쑥이 되매 그 물이 쓰게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별 이름을 쓴쑥이라 그랬습니다. 별이 바벨론이라 했는데, 그 별의 또 다른 이름이 쓴쑥이라 했습니다. 저는 쑥을 그냥 날 것을 씹어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쑥이 아주 쓰다 그러더라고요. 정말 쓴쑥인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쑥이 몸에 좋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유대 묵시 문학에서 말하는 것은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악한 영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향력, 바벨론의 악한 영향력이 무엇입니까.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하고 결국은 우상숭배, 딱 한 가지로 바벨론의 쓴쑥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 우상숭배가 결국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많은 사람이 죽더라" 그랬지 않습니까. 우상숭배의 결말은 사람의 죽음입니다. 우상숭배의 결말은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여기 세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사람이 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지요.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살려 두질 않으십니다.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 아닙니까.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서 거기서 우상을 숭배하고 섬기는 자들, 하나님 가만히 두지 않겠다 하십니다. 그리고 그 쓴쑥이 물에 풀리면 그 물이 어떤 물이 될까요. 쓴물이 되겠지요. 우상숭배자가 흘려 놓은 영향력이 물이 되어서 흘러흘러 들어가서 사람들이 마시면 그 사람들도 역시 죽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더 기막힌 일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3장 15절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할지니"

여기도 쑥과 독한 물이 나오지요.

"이는 사악함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당황스럽지요. 쓴쑥과 독한 물이 예루살렘에 있는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졌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쓴쑥과 독한 물을 먹고 죽게 되었습니다. 아까 쓴쑥과 독한 물이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곧 바벨론이라 했고요. 그런데 그 우상숭배를, 악한 바벨론이 하는 우상숭배를 누가 하고 있다고 합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선지자들, 목회자들이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진짜 목회자들이 우상을 숭배했습니까.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보면 성전에 들어가 보면 금 신상이 있고 우상이 있고 그랬습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물질, 정욕, 사람, 권력, 그 당시에 남유다가 망할 때 하나님께서 성전을 불태워 버리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 더 이상 두고 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있는 제사장들, 거기에 있는 선지자들 전부 다 세속 권력과 결탁해 들어서, 거기서 물질은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나가진 않습니다. 백성들에게 흘려 보내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영적인 삶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다 우상숭배하는 제사장들, 우상숭배하는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이 내뿜는 쓴쑥과 그들이 내뿜는 독한 물을 백성들이 먹고 죽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바벨론을 심판한 것처럼 내 나라를 심판하겠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저 같은 목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정신이 번쩍 나고 두렵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신앙생활 오랫동안 하고 교회 중직을 맡게 되고, 자녀들에게는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가 신앙생활 수십 년째 해서 믿음 좋은 부모라고 믿고 있는데, 그런데 사실 내 마음 중심에는 돈이 우상이 되고 있고, 내 마음 중심에는 권력이 우상이 되어 있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이 우상이 되어 있으면, 나에게서 흘러나오는 이 쓴물이, 독한 물이 자녀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목사가 목회하면서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사실은 목회자가 마음속에는 두 마음을 품고 있고 세속적인 마음과 물질과 세속 권력을 탐하고 섬기고 있으면서 그리고 설교하고 말씀 전하고 성경 공부하고 있으면, 영혼들 다 죽이는 일입니다. 진작에 때려쳐야 합니다. 지금 그 말씀을 아주 심각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나팔, 두 번째 나팔은 사람 죽는다는 이야기까지 다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사람을 죽는다 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쓴물 하면 한 가지 우리에게 딱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쓴물을 해독하는 게 하나 있지요. 쓴물을 해독하는 것, 여호와 라파입니다. 여호와 라파 생각하십니까.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니라." 나뭇가지를 던졌지요. 출애굽기 15장 24-25절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매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셨더라"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습니다. 출애굽해서 신났습니다. 신나서 찬양하고 소고 치고 춤추고 야단법석입니다. 그런데 조금 가니까 그만 목이 타고 삼 일을 가니까 물이 없지 않습니까. 원망하지요.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물이 있었습니다. 물을 마시니까 쓴물입니다. 원망하고 죽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물이 없었으면 몰랐는데 있는데 마실 수 없으니까요.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지요. 한 나뭇가지를 던져라. 그랬더니 그 쓴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다" 입니다.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이 출애굽기 15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나무, 나뭇가지가 의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쓰디쓴 인생을 달게 바꾸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상숭배로 중독되어 있는 우리의 영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밖에 치유책이 없습니다. 다른 것으로 어떻게 고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우상숭배자들도 용서받고, 거기서 다시 회개하고 구원받고 다시 돌이키고, 그 안에서 다시 구원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십자가가 모든 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쓴물을 먹고 쓴쑥을 먹고 독한 물을 먹고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와 능력으로 다시 살게 되는 역사를, 우리도 그것을 경험했고 우리 자녀들, 우리와 함께하는 자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십자가밖에 줄 묘책이 없습니다. 그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2-4. 넷째 나팔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2절입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춤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삼분의 일이 빛을 잃었습니다. 자 조명의 밝기에 삼분의 일이 어두워졌습니다. 어떤 느낌입니까. "어둠 속이다" 이런 사람이 있고, "견딜 만한데" 이런 사람이 있고요. 자, 이것은 우리가 그냥 자연계 만물의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삼분의 일을 잃었다 이렇게 볼 게 아닙니다. 영적인 어두움이 이 땅에 찾아온다는 것으로 보셔야 합니다.

영적인 어두움, 그것을 구약 때 흑암 재앙은 어떻게 표현해 내는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킬 때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치실 때 아홉 번째 재앙이 흑암 재앙 아닙니까. 장자 죽음 바로 앞 재앙이 흑암 재앙인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0장 21-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니라"

더듬을 만한 흑암, 손으로 이렇게 더듬으면서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흑암, 이 정도 되면 삼분의 일보다 훨씬 더 빛을 잃은 흑암입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빛이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는 흑암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어둠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에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었지요. 그중에 하나가 흑암에서 빛으로의 창조입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실 때 우리가 예수 앞에 나오면 암중모색이었고 캄캄했던 우리 인생이 빛으로 환하게 빛나게 됩니다. 세상이 밝아서 빛이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시니까 밝아진 인생입니다. 그런데 종말은, 타락은, 그렇게 밝던 인생이 다시 어둠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종말이, 타락이 빛이 어둠으로 가는 것이 다시 타락이고 그것이 종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에는 빛이 환하게 있었다 그랬지 않습니까. 당연히 우리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빛으로 걸어가야 하지요. 어둠은 그다음 무엇을 부릅니까. 어둠은 죄를 부르지요. 당연히 어두우니까 보이지 않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방종하고 행동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빛은 빛으로 나가면 죄가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환한 빛 가운데 가 보세요. 지금 이 밤에 형광등 불빛 밑에 제가 있는 것하고 환한 대낮에 우리가 있는 것하고, 티끌 하나 그대로 다 드러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빛의 자녀가 되셔야 합니다.

종말이 되면 영적인 어둠이 우리를 둘러쌀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될 것은 그 어둠은 하나님의 백성을 절대로 침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빛이 있으니까요.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천사가 나팔을 백 번 불든 이백 번 불든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항상 빛이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2-5. 독수리의 예언

이제 8장의 마지막 절입니다. 13절, 잠깐 쉬어 가는 그 절입니다.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어떤 말을 합니까. 천사가 숨 가쁘게 나팔을 네 번이나 불었지요. 그리고 공중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가는데 그렇게 말합니다. 13절입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독수리가 화를 몇 번 언급했습니까. 화, 화, 화. 그래서 앞으로 재앙이 세 번 더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9장의 다섯 번째 나팔, 여섯 번째 나팔이 불려지고 11장에 가면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이 불려집니다. 독수리가 이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 나타나는 독수리의 개념들이 여럿 있습니다. 힘도 이야기하고 권능도 이야기하는데, 지금 여기는 심판을 말합니다. 신약에서 독수리가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48장 40절을 볼게요. 독수리가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이 이렇게 나옵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모압에 그의 날개를 펴리라"

모압을 심판의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수리가 나타나면, 지금 그 구약의 예레미야서에 예언을 가지고 와서 요한계시록에도 독수리를 심판의 상징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2-6. 다섯째 나팔

이제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데요. 굉장히 깁니다. 11절까지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일어날 일을 정리해 두고 있습니다. 9장 1절입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그다음 잘 보세요.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하늘에서 별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어떤 느낌입니까. 별이 떨어졌습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는 것은 길한 느낌입니까, 불길한 느낌입니까. 일단 불길하지요.

그런데 그 별을 어떻게 설명했느냐,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별을 곧 그라고 설명했습니다. 별을 마치 인격처럼, 사람처럼, 별이 곧 그입니다. 그가 누군가요. 그가 누굴 것 같습니까. 누가복음 10장 18절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사탄입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지요. 그런데 이 사탄이, 별은 곧 사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탄이 무엇을 받았습니까.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누가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얼마 동안 세상을 통치하고 얼마 동안 세상을 어지럽힐 권세도 하나님이 부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될 것이 있습니다. 무저갱이 무엇이냐, 도대체 무저갱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천문학을 공부하고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은 블랙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나가기보다는 우리는 이 무저갱을 하나님께서 악한 영들을 제어하고 가두는 곳이라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8장 30-31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지금 이것은 어떤 장면이냐 하면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마가복음 5장에 나오고 누가복음은 8장에 나옵니다. 거라사 지방에 가니까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 사람을 만나고 그 귀신이 하는 말입니다. 그 귀신이 예수님을 만나니까 군대 귀신 들린 자가, 그 귀신이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여, 저에게 무저갱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압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자기를 잡아다가 무저갱에 다시 집어넣을 것을요.

그럼 무저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악한 영들을 가두고 제어하는 곳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그런데 이 무저갱을 헬라어에서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아비소스(ἄβυσσος)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무저갱을 헬라어로 아비소스라고 합니다. 뭐 우리가 이걸 시험 볼 것 아닙니까.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에는 이와 비슷한 용어를 찾아보니까 창세기 1장 2절이 맞습니다.

창세기 1장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에 깊음이라고 했지요. 깊음을 히브리어로 테홈(תְּהוֹם)이라고 하거든요. 이것이 헬라어 아비소스, 무저갱하고 통하는 말입니다.

자, 그러니까 무저갱은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제어해서 가두는 곳인데, 하나님께서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그에게 무저갱의 열쇠를 줘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그 사탄이 무저갱의 열쇠를 열면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서 악한 영이 다 쏟아져 나올 것 아닙니까. 쏟아져 나와서 온 세상을 어지럽힐 것 아닙니까.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는 그다음에 나옵니다. 2절입니다.

"그가 무저갱을 여니"

여기서 그는 누구입니까. 떨어진 별, 그 사탄이지요. 사탄이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며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아,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마치 짙게 낀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들판에서 불을 피워 가지고 연기가 자욱한데 거기 사람이 가는 것처럼, 이것은 무저갱의 열쇠를 여니까 사탄이 온 세상에 쏟아져 나오니까 영적인 암흑과 영적인 어둠과 영적 분별력이 사라진 세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입니까. 요즘은 상대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돈 되는 게 선이고 돈 안 되는 게 악이라고, 억울하면 니네 부모를 탓해라."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절대적인 진리가 다 사라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옛날 세상에는 선과 악의 절대적 기준이 있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 기준이라고 붙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가도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동성애가 마치 세상의 참인 것처럼, 성 소수자들을 보호하고 돌봐야 되는 것처럼, 그것을 그들의 권리처럼, 그것을 아니라고 말하면 범죄자 취급당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이런 세상은 안개가 자욱하고 어두워진 세상이 된 것입니다. 무저갱의 열쇠를 여니까 악한 영들이 나와 가지고 사람들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입니다.

죄짓고도 뻔뻔하게 TV에 나오지요.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그냥 얼굴에 철면피처럼 하고 다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이 사람이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수치심이 있어서 뭔가 잘못하고 도덕적인 죄를 저지르면 자중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어졌습니다. 가치관의 혼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무저갱의 열쇠를 여니 악한 영들이 쏟아져 나와서 나도 옳고 너도 옳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냥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3절입니다.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옴에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황충, 황충을 언제 보셨습니까. 우리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성경에 나옵니다. 요엘서 1장 4절입니다.

"팥충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늦치가 먹고 늦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다 보세요. 팥충이, 메뚜기, 늦치, 황충이, 사 세대에 걸쳐 있지요. 요엘 선지자는 기원전 8세기에 남유다에서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앞으로 너희들이 영적인 타락이 계속되면 이방 민족이 순서대로 올라와서 너희 먹을 것 다 빼앗아 갈 것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순서대로 이방 민족이 네 민족이 차례대로 와 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황충은 이방 나라의 군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로 말하면 로마 군사들 얼마나 무섭습니까. 바벨론으로 말하면 바벨론의 군사들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4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자, 황충이 올라왔습니다. 누구만 골라서 해해야 합니까. 144,000인에 들지 않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 흰 옷 입지 않은 사람들, 배교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골라 가지고 그들을 해하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걱정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팔을 백 개, 이백 개 불어도 우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 가지 재앙 때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되었습니다. 고센 땅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았다는 말씀이 반복되지 않습니까. 두 구절만 보시면, 출애굽기 9장 4절, 9장 26절 보겠습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할지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시고"

이것은 다섯 번째 재앙이거든요. 악질 재앙을 하나님께서 내리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26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

우박이 없었습니다. 아까 우리가 보았지요. 흑암 재앙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임하지 않고 빛이 있었다 그랬습니다. 악질 재앙, 우박 재앙, 흑암 재앙 그 외에 여러 다른 재앙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임한 적이 없습니다. 장자 재앙도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고 그 안에 들어가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죽음의 사자가 건너갔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재앙을 겁낼 필요가 없고 나팔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나팔은 곧 이 땅에서 수고와 고생의 끝입니다.

자, 5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니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이것은 곧 지옥 아닙니까. 죽고 싶은데 안 죽습니다. 황충이 전갈처럼 사람을 쏘는데, 인 맞지 않은 사람, 하나님의 자녀 아닌 사람을 골라 가며 괴롭게 하는데, 아무리 죽고 싶어도 죽지도 않습니다. 죽을 수도 없습니다. 이런 큰 고통, 살아 있으나 지옥 같은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황충들의 모양을 이야기합니다. 7절입니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군대라 그랬지요. 그래서 황충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어로는 그 이름이 아바돈(אֲבַדּוֹן)이요 헬라어로는 그 이름이 아폴뤼온(Ἀπολλύων)이라"

그들에게 왕이 있는데 무저갱의 사자라 그랬지요. 결국 황충이 다 무저갱에서 놓여 나서 온 세상에 연기처럼 자욱한 가치관의 혼돈을 일으키는 자나 그 대장은 사탄이라는 말입니다. 그 사탄, 마귀가 온 세상을 이렇게 어지럽게 할 것입니다. 나팔을 불 때마다 강도가 어떻게 됩니까. 점점점 세지고 두려워지지요.

2-7. 여섯째 나팔

여섯째 나팔입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기란 안위를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십시오. 자, 12절 보니까,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아까 독수리가 화를 몇 번 언급했습니까. 세 번 화, 화, 화를 했지요. 첫째 화가 지나갔다는 말은 다섯 번째 나팔을 불어 쓴 그 화가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직 화 둘이 남았다, 여섯 번째 나팔, 일곱 번째 나팔이 남아 있다는 뜻이지요.

13절입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의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하나님 앞 금 제단의 뿔에서 음성이 나왔다, 음,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14절입니다.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이제 하나님이 천사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큰 강 유브라데, 결박한 천사. 자, 큰 강 유브라데는요, 로마인들에게는 아주 두려운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 강을 기점으로 로마와 파르티아가 전선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는데 파르티아는 페르시아의 후손입니다. 그들이 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들은 로마를 항상 괴롭게 했습니다. 기원전 55년, 서기 62년 로마에게 아주 큰 타격을 입힌 민족이 파르티아입니다.

유브라데에 결박당한 천사가 놓임을 받는다. 자,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이제 곧 큰일이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결박당한 천사, 결박한 천사를 놓아 주라, 결박한 천사가 어떤 의미냐, 여러 가지 해석들이 많습니다.

자, 제 재량 천사. 하나님께서 그들을 풀어 주실 것이다, 그러면 그 천사가 다니면서 세상을 어지럽게 할 것이다, 이런 해석도 있고요. 이것을 문자 그대로 보지 않고 조금 의역해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매인 천사, 그렇게 보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천사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다음 일어나는 일들이 중요합니다.

15절입니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이제 사람이 삼분의 일 죽습니다. 이제 무서워지지요. 처음에 첫 번째 나팔, 두 번째 나팔에는 사람 죽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나팔에 계명성 바벨론이 떨어지고 별이 떨어지고 바벨론의 우상숭배 때문에 우상숭배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제는 여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까 놓여진 네 천사가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했습니다. 이제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벌어집니다. 진짜 심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병대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만만이 얼마일까요. 지금 성경 밑에 보면 이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萬)이 두 번 곱해 주고 앞에 숫자 2가 있으면 이억입니다. 마병이 이억이다, 엄청난 수입니다. 이억 마병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네 천사가 놓였는데 마병의 수가 이억입니다.

자, 17-18절입니다.

"이같은 환상 가운데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억 마리의 말이 불과 유황과 연기를 내뿜고 막 달려옵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기에 전 세계 사람,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의 삼분의 일은 다 죽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제 드디어 삼분의 일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삼분의 이가 남았을 것 아닙니까. 인침을 받지 않은 삼분의 이, 삼분의 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회개해야 하지요. 돌이키고 회개해야 하지요. 근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20절입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회개하지 아니하고 우상숭배하며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절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다음 일곱 번째 천사가 일곱 번째 나팔을 불겠지요.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다음 일곱 대접 심판이 연이어 이어지겠지요.

그런데 왜 회개하지 않을까요. 왜 한번 죄를 향하여 달려가면 사탄이 그 발을 잡고 놓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가면, 탕자가 얼마나 힘이 됩니까.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가 "내 아버지 집에는 풍성하게 먹을 것이 많다, 배부른 양식이 많다" 하고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살찐 송아지 잡고 손에 가락지 끼우고 좋은 옷 입히고 잔치하는 것 아닙니까. 돌이키지 않으면 절대 회복이 없습니다.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3. 마무리

이제 여섯 번째 천사가 나팔 부는 것까지 했고요. 11장 14절 잠깐 한 절만 보고 넘어갈게요.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둘째 화가 지나갔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여섯 번째 천사가 나팔 부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화, 화, 화 했지 않습니까.

"셋째 화가 속히 이르리로다"

이게 11장에 나오다 보니까요. 그래서 그냥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지 않고 성경을 읽다 보면 꼭 일곱 나팔인데 일곱 번째 나팔은 어디 갔지, 그러다가 10장 읽다가 다시 11장 가다 보면 헷갈립니다. 나중에 11장 공부할 때 다시 여기서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일곱 나팔 심판 잘 기억하시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한번 더 돌이켜 보시고 또 복습도 해 보시고, 이 자리에 오시기 전에 그다음 공부할 것을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 미리 읽고 오시면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결국은 그들의 생명까지 거두심을 보았습니다. 주변을 치실 때 깨닫고 돌이키는 능력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람의 생명을 치지 않을 때, 그때 돌이키는 은혜와 은총이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 가지 말씀으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찔림을 주신 말씀들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도록 도우시고, 어떤 심판에도 하나님의 자녀는 예외라 말씀하셨사오니, 우리가 말씀 안에, 빛 가운데 거하는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