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 / 전체녹취

요한계시록 특강 7 -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 (10장)

요한계시록 10장 10-11절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아멘.

오늘 드디어 요한계시록 10장을 살펴보는 날입니다. 계시록이 22장까지 있는데, 그중에 이제 거의 절반 지점까지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장별로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1장에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1장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그리고 2장과 3장에는 이 계시의 말씀을 받는 일곱 교회가 나왔습니다. 계시의 말씀을 받는 일곱 교회는 그 당시에는 소아시아에 있는 로마 황제의 압제를 받던 일곱 교회였지만, 계시록에 있는 7이라는 숫자가 주는 상징은 전체적이고 완전한 수를 의미하기 때문에 앞으로 올 모든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4장이 기억나십니까? 4장부터 본격적인 계시가 시작되는데,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하늘에 열린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4장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 하늘에 누가 계신지, 그 보좌 주변에 어떤 분들이 계신지를 설명했습니다.

5장과 6장이 기억나십니까? 계시록에는 심판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 5장과 6장은 심판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시리즈인 일곱 인입니다. 그 일곱 인을 떼실 분이 없었습니다. 두루마리가 있었는데 두루마리를 펼 자도 없었고, 일곱 인을 뗄 분이 없어서 사도 요한이 많이 울었습니다. 통곡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곱 인을 뗄 분이 누구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5장과 6장은 일곱 인 심판이 나왔고, 7장에 가니까 십사만 사천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8장과 9장이 심판 시리즈 가운데 두 번째 시리즈인 일곱 나팔입니다. 그렇게 해서 9장까지를 정리했습니다.

간단하지요. 그리고 오늘 10장은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에 대해서 살펴보려 합니다. 앞으로 중간에 가다가 한 번씩 1장부터 지금까지 온 흐름을 풀어보면 좋습니다. 보통 산속에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계시록이 어떤 흐름을 통해서 여기까지 오고 있는지를 함께 되새기는 작업을 하고 다시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1. 심판 사이의 은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이 일곱 나팔 심판입니다. 그런데 일곱 나팔 심판이 8장과 9장에 완벽하게 다 나왔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몇 번째 나팔까지 나왔습니까? 여섯 번째입니다. 그러면 일곱 번째 나팔이 상식적으로 보면 8장과 9장 언저리에 있든가, 그렇지 않으면 10장 초입에는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없습니다. 10장을 그냥 건너가고 11장에도 나오지 않고, 11장 끝 마지막에 가서야 일곱 번째 나팔이 나옵니다. 그 이유를 조금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앞에 일곱 인 심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일곱 인 심판 때도 5장과 6장에서 일곱 인이 다 나오는 것이 아니고 여섯 번째 인을 떼는 것까지만 나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7장에서 십사만 사천이 나왔습니다. 8장에 가서야 일곱 번째 인을 떼면 일어나는 심판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공부할 내용과 다음 주에 살펴볼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여섯 번째 나팔과 일곱 번째 나팔 그 사이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개념이 들어오십니까? 여섯 번째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나팔을 붑니다. 심판이 갈수록 점점 강도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세어진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견딜 만했습니다. 일곱 인 심판할 때만 해도 땅의 4분의 1이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나팔 심판할 때는 땅의 3분의 1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아직까지 3분의 2가 남았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견딜 만해' 이런 생각을 한다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본 것처럼 일곱 나팔 심판 때도 처음에는 사람의 생명에 직접적인 해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여섯 번째 나팔을 보니까 죽이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 나옵니다. 그런데 여섯 번째 심판을 겪게 되는 사람의 심리가 어떨까요? 점점 불안해지겠지요. 그리고 나서 한 텀 쉬고, 조금 더 있다가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중간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성도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시간일까요? 회개를 기대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 앞의 패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을 떼실 때도 여섯 번째 인까지는 정신없이 뗍니다. 정신없이 뗍니다. 그러다가 한 호흡 쉬고 일곱 번째 인을 뗄 때, 중간에 십사만 사천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섯 번째 인 심판과 일곱 번째 인 심판 사이에는 한 호흡이 있습니다. 그 기간은 하나님 입장에서 회개를 기대하는 기간입니다.

1-1. 심판 너머의 사랑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계시록을 보실 때 '이건 너무너무 무섭구나, 두렵구나' 하셔야 합니다. 무섭지요. 두렵지요. 심판이 있는데 두렵다 하지 않으면 그 성경을 잘못 읽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 이면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인내와 기다림이 절절히 녹아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때로는 심판으로, 때로는 기다림으로, 이중적으로 계속 변주곡처럼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냥 무자비하게 칼로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은 계속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가, 한 호흡 쉬었다가, 또 심판하시고 합니다. 일곱 번째 나팔을 불면 큰 심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기간, 그 시간을 호흡을 가다듬고 계시는 기간입니다.

1-2. 말씀과 교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여섯 번째 나팔 불고 일곱 번째 나팔을 불기 전, 거기에 삽입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씀이 삽입되어 있고, 다음 주에 살펴볼 11장에는 교회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말씀과 교회입니다.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구원받으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오늘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입니다. 일곱 번째 나팔이 불려지기 전에 너희들은 이 말씀에 집중하라, 이것이 큰 주제입니다. 오늘 10장을 살펴볼 큰 주제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이 한 절 한 절 자꾸자꾸 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흐름 가운데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2. 힘센 다른 천사

이제 이런 그림을 가지고 10장을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본 힘센 다른 천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힘센 다른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기억나십니까? 계시록에 힘센 천사가 세 번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5장에 한 번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한번 볼 때 그때는 일곱 인을 떼기 전에 나타났고, 지금 이제 10장에 또 한 번 나타나고, 나중에 18장에 또 나타납니다. 그런데 5장과 18장과 다른, 이 힘센 다른 천사, 두 번째 나오는 천사는 좀 특별합니다.

자세히 보겠습니다. 1절입니다.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힘센 다른 천사가'까지 보시고, 이 분이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분별하셔야 됩니다. 우리 편인지 나쁜 편인지 계시록에서는 '이게 정말 사탄인가, 아니면 우리 편인가'를 생각하며 읽어야 합니다.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우리 편일까요, 사탄일까요? 왜 그렇습니까? 보니까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일단 느낌이 나쁩니까, 좋습니까?

우리가 지난주에 본 9장 1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여기 보십시오. 하늘에서 땅에 어떻게 합니까?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떨어진 것이 아니고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떨어진 것하고 내려오는 것하고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떨어지는 것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9장 1절은 사탄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구름 타고,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나쁜 분이 아닙니다.

2-1. 그분의 정체

그리고 또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는 것을 우리는 어디서 봤습니까? 이런 구절이 기억나야 됩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본 기억이 나야 됩니다. 사도행전 1장 9절에서 11절까지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장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때 모습입니다. 승천하실 때 구름 타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놀라니까 곁에 있는 두 천사가 말하기를,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본 그대로 이분은 다시 오실 것이라 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9절에서 11절은 구름 타고 올라가신 예수님이요, 지금 여기는 구름을 입고 내려오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이분이 힘센 천사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해와 불기둥을 언급했습니다. 해와 불기둥을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계시록 1장 15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발이 풀무불, 불에 단련되면 벌겋게 달아올라서 불이 되겠지요. 그 발, 그 발로 악을 밟으면 어떻게 될까요? 풀무불에 달구어진 그 발로 악을 밟으면 악이 심판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심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1장 15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할 때 배어난 구절입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1절에서 보니까 '얼굴은 해 같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특징 두 가지, 그 발은 불타고 있고 얼굴은 해 같고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시고, 그러면 이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분이 힘센 다른 천사라고 표현했지만 이분은 영락없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2. 천사의 모습으로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냥 예수님이라고 말하면 되지, 성경은 왜 예수님을 굳이 '힘센 다른 천사'라고 표현해야만 했을까요?

그런데 이것은 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집을 방문한 세 천사가 계셨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아브라함이 하루는 문 앞에 서 있는데 세 나그네가 길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억지로 그분들을 끌어들여 가지고 '집에 들어오셔서 쉬고 가십시오, 이렇게 더운데 어디를 가십니까?' 하면서 억지로 끌어들여서 발 씻을 물도 내어드리고, 급하게 송아지 잡고, 고운 가루로 반죽을 하고, 엉긴 우유를 만들어서 대접했습니다.

그분들이 천사였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분이 누구셨습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두 분은 천사고 한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대접 잘 받고 말씀하셨습니다. "내년 이맘때에 이 집에 아들이 있을 것이다."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던 사라가 그것을 듣고 피식 웃었습니다. 웃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의 모습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 집에 심방도 가시고, 그렇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힘센 다른 천사'라고 표현했지만 이분은 구름을 입고 내려오시고 얼굴이 해 같고 발이 불 같고, 이분은 영락없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큰 그림을 말씀드렸습니다. 여섯 번째 나팔을 불고 난 이후에 심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나팔이 불리기 전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과 심판 사이에 오셔서 이 땅에서 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마지막 설득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은 노력하시고 경고하시고, 구원받으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록의 구조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3. 두루마리와 심판

이제 두 번째 질문입니다. 힘센 다른 천사가 가지고 있는 것과 서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힘센 다른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어디에 서 있습니까?

2절을 보겠습니다.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발이 아까 무엇이라 했습니까? 불기둥이라 했습니다. 불기둥이,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불기둥입니다. 벌겋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한쪽 발이 바다에 있고 한쪽 발이 땅을 밟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다와 땅을 예수님이 어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심판입니다. 그런데 심판하시는데 한 손에는 또 무엇을 들고 있습니까? 한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습니다.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가 무엇입니까? 말씀 아닙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손에는 말씀을, 발에는 심판을 상징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바다와 땅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온 세상입니다. 우리가 온 세상, 지구 전체를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오대양 육대주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오대양, 바다입니다. 바다와 땅은 이 세상 전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고 있고 발은 바다와 땅에 놓여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 말씀을 들고 있는데 너희들은 임박한 심판 앞에 서 있다. 이 말씀을 수용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아멘으로 화답하지 않으면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발 아래 너희들은 모두가 일곱 번째 나팔을 불면 심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경고하시면서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 느낌이 이해되십니까? 이런 느낌을 여기 1절과 2절을 읽어가면서 충분히 상상하고 충분히 묵상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한 주에 한 장씩 이렇게만 나가다 보니까 사실은 굉장히 급하게 나갑니다. 그런데 한 절 한 절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한 절 한 절을 읽고 계속 묵상하는 연습과 훈련을 하시면 훨씬 더 은혜가 됩니다.

3-1. 펴 놓인 두루마리

그런데 이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라고 하니까 우리가 계시록 5장이 생각납니다. 계시록 5장 1절과 2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내가 보니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니 힘이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처음에 최초의 사도 요한이 보니까 두루마리가 이렇게 말려 있고 일곱 인이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뗄 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통곡하고 사도 요한이 울고불고 했습니다. 그때 말씀하시는 것이 5장 5절입니다.

"장로 중에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그분이 두루마리를 펴고 인을 뗄 것이다.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이제 그분이 두루마리를 폈습니다. 그래서 이제 펴진 채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현을 어떻게 했습니까?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폈다는 뜻입니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만 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만 말씀을 닫을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목회자는 예수님께서 펴서 전달하고자 하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달하는 통로에 불과한 것입니다. 목사가 말씀을 먹이고 목사가 말씀을 주는 것이 아니고, 목사는 심부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펴셨습니다. 봉인된 말씀을 펴서 우리에게 알기 쉽게 잘 설명하라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목회자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 내용이 있습니다. 3절과 4절입니다. "사자가 부르짖듯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일곱 우레가 뭔가를 말했습니다. 그런데 4절을 보십시오.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 하니…" 사도 요한이 무엇을 하려 했습니까? 기록하려 했습니다. 일곱 우레가 뭔가를 말했는데 사도 요한이 그것을 기록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봉인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3-2. 비밀의 인봉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두루마리를 직접 주시고 먹으라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펴시고 했는데, 일곱 우레가 뭔가를 말했는데 그것은 기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에도 그 말씀이 나오거든요. 다니엘 12장 4절과 9절을 보겠습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씀을 간직하고 이 책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책을 봉함하라 그랬습니다. 9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 길을 가라 이 말씀은 마지막 때까지 간직되고 봉함 될 것임이라"

마지막 때까지 봉함 될 것이라는 말씀이에요. 아직은 안 됩니다. 아직은 그때가 아닙니다. 기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직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지막 때까지 봉함 될 말씀이 있다는 뜻이에요.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지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그 비밀이 풀릴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인생의 미스터리를 잘 보셔야 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면서 살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누굽니까? 요셉입니다. 요셉이 자기 인생을 처음 살 때 어땠습니까? 아버지의 과잉 사랑을 받아서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생겼는데 죽임 당할 뻔하다가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것이 보디발의 집이었는데, 보디발의 아내에게 저항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서 해몽해 준 사람들이 요셉을 잊어버려서 2년간 더 있었습니다.

요셉의 그 시간 동안에 요셉은 억울했을 것입니다. 형들 때문에 죽을 뻔했고, 노예로 팔려갔고, 충성 다하며 잘 섬겼는데 감옥에 가게 되었고, 감옥에서 잘 섬기면서 해몽해 주었더니 2년간 잊어버림을 당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뭔가를 계시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막에 달려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총리가 되지 않았습니까? 총리가 되어서 바로 앞에 형들이 왔습니다. 형들이 와서 절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말하잖아요. "형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그때서야 아 이렇구나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가 우리에게 완전히 밝혀질 때까지, 우리에게 확실하게 눈에 보여질 때까지, "아 이것 때문이었구나" 보여질 때까지 우리가 꼭 붙잡아야 될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성실함입니다.

만약에 요셉이 자신의 인생을 저주했다고 생각합시다. "나는 하나님 말씀 제대로 믿고 제대로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씀에 굳게 서고 살았는데 내 인생이 왜 이 꼴이냐고?" 그리고 광야에서,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보디발 아내의 유혹에 그냥 넘어가 버렸더라면? "나는 노예로서 주인의 아내와 정을 통하고 여기서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내 인생 끝내겠다"고 생각했다면 그의 인생은 그냥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말씀을 붙잡고 살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서 "이제 나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 그냥 포기하고 죄수로서의 삶을 그냥 그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한테 나쁜 것도 배우고 그냥 그렇게 살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존재였고, 말씀 붙들고 매일매일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나중에 이해될 때, 그 날까지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가 꾼 꿈이 있지 않습니까. 해와 달과 별이 그에게 절하는 것, 여러 곡식 단이 그에게 절하는 것. 그 꿈이 현실이 되었지 않습니까? 형제들이 와서 곡식 사려고 와서 절하지 않습니까? 그제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아 이것 때문이었구나."

성실해야 됩니다. 우리에게 계시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해야 합니다. 어릴 때 부모가 자녀를 안만큼 계속 기르지 않습니까? 자녀나 할 때, 태몽 꿀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요셉이 꿈꿨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꿈이 실현되기까지 하나님은 타인, 모든 사람에게 각자 각양 다양한 달란트와 다양한 기대를 갖고 사람들을 이 땅에 보내셨는데, 각자가 살다가 자기 갈 길로 다 가버리고 남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역사를 바꾸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에 붙잡힌 바 되는 것입니다.

요셉 같이 지금 여기 계시를 인봉하라 했지 않습니까. 인봉된 계시가 풀릴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3-3. 비밀이 이루어지는 날

자 이제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비밀이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말씀의 소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일곱 인을 뗄 때는 5장과 6장의 일곱 인이 다 심판되지 않고 7장 건너뛰고 8장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은 기다리시고 돌아올 때까지 심판을 유예하셨다고 했습니다.

지금 여기 일곱 나팔도 여섯 번째 나팔 불고 일곱 번째 나팔 불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계시록에 나오는 심판 시리즈인 일곱 나팔, 그다음 무엇입니까? 일곱 대접입니다. 일곱 대접 심판은 15장과 16장에 나오는데, 16장에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일곱 대접 심판도 여섯 번째 대접을 붓고 일곱 번째 대접 부을 때까지 중간에 텀이 있을까요? 기다리는 시간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바로 여섯 번째 대접에서 바로 갑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두 가지인데요. 하나님 심판에 대해서, 하나님은 좋으시고 인자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랫동안 참으십니다. 오랫동안 참으시는데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 참으시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마지막이 있습니다. 아니 심판하시지 않습니까? 소돔과 고모라 심판하셨지 않습니까? 노아 홍수 심판하셨지 않습니까?

이 땅을 하나님 지금 두고 보고 참고 계십니다. 적 북한 땅도 하나님 계속 참고 계십니다. 그런데 반드시 심판할 날이 있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여섯 번째 인 떼고 일곱 번째 인 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여섯 번째 나팔 불고 일곱 번째 나팔 불 때까지 기다립니다. 대접 심판할 때는 그대로 갑니다. 그냥 갑니다. 그래서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내를,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하실 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자 이제 우리에게 주신 이 기회의 시간을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4. 말씀을 먹으라

이제 8절과 9절을 보면 사도 요한에게 들린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7절까지가 그림이 그려진 것입니다.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이제 사도 요한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8절과 9절입니다.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은 힘센 천사 즉 예수님 음성이 아닙니다. 누가 주신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말씀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말씀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주실 분은 하나님, 예수님 아닙니까? 그러면 사도 요한은 이 말씀을 받을 자격이 생긴 것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버리라" 먹으라 그랬습니다. 말씀을 먹어라. "네 배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배에는 쓰는데 입에는 달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씀일까요?

그러면 이런 말씀이 구약에도 있는가, 있습니다. 구약에도 있습니다. 계시록은 구약의 총집합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에스겔 3장 1절에서 3절을 보겠습니다.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말씀을 입에 넣어주신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배에 넣고 창자에 채우라 하셨습니다. 이제 배까지는 나왔습니다.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달다는 것까지는 나왔지요. 쓰다는 말이 없습니다. '배는 쓰다'는 말이 에스겔에는 없습니다. 에스겔에는 '입에는 꿀 같이 달다'는 말씀만 있고, '배는 쓰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계시록에 가니까 '배에는 쓰다'는 말씀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119편 103절도 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 꿀보다 더 달다, 이것은 우리가 많이 들어보셨습니다. 그런데 '배는 쓰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4-1. 배에는 쓰다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보겠습니다. 헬라어를 보면 '쓰다'는 말이 '피크라이노(πικραίνω)'라고 되어 있습니다. '피크라이노'라는 말을 풀어보면 '비참하게 하다', '쓰라리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칼로 베다는 뜻도 있습니다. 비참하게 하고 쓰라리게 하고 칼로 베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감지해 보셨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얼마나 답니까? 꿀송이처럼 말씀 읽고 설교 듣고 성경공부 할 때는 재밌지 않습니까? 재밌습니다. 그런데 소화되는 과정에서 배는 쓰다는 말씀입니다. 소화되는 과정입니다. 말씀을 소화시킨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삶으로 살아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이 되어서, 내 배에서 소화되어서, 내 삶의 원동력과 에너지가 되어서 나와서 꿈틀거리기 위해서는 쓴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 중에 십중팔구가 이 입에는 단 말씀으로 끝내버립니다. 입에는 단 말씀으로 끝내버리면 그것은 그냥 지적 유희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 그 깊이를 깨닫고 읽고 듣고 묵상하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그리고 주변 사람들한테 말씀 가르치고 얘기하면 아는 척도 하고 좋지요. "아 저 사람 믿음 있어 보이네, 신앙 있어 보이네, 성경을 나보다 많이 아네." 아 그렇게 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소화되어 가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이 말씀이 내 속에서, 배에서 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되는 말씀입니다. 목회자가 괴로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 괴로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가 진짜 괴로운 것은 말씀을 전하는 대로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말씀을 잘 압니다. 강단에서 말씀을 많이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저보다 말씀 많이 하는 사람 있습니까? 교회에서 교회 안에서 주일날 설교하지요, 새벽기도 하지요, 수요일날 하지요. 이렇게 말씀을 많이 전하는데, 그런데 그대로 못 살아내면 어떻게 될까요?

바울이 그것을 고민했고 두려워했지 않습니까? "내가 남들은 다 구원받게 하고 내가 버림받을까 봐" 그것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말씀을 많이 하고 말씀을 많이 전하는데 이것을 소화시켜서, 배 쓴 말씀으로 살아내는 것이 그토록 괴롭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살아보니까 죄인 중에 괴수임을 깨닫고, 나는 곤고한 사람임을 깨닫고, 자기 자신이 매일같이 죽어야 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소화된다는 것을 바울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4-2. 예레미야의 고백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 여기서 여섯 번째 나팔 불고 일곱 번째 나팔 부는 그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힘센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심판을 예고하시면서 손에는 두루마리 말씀을 들고 사도 요한에게 "받아 먹어라" 하셨습니다. 심판은 사도 요한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도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소화시켜 삼지 않으면 그냥 반쪽짜리 신앙, 절름발이 신앙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말씀 듣고 그냥 끝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사랑하라'는 한 말씀 지키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 하셨지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듣기에는 좋습니다. 감미롭지 않습니까?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소화시키려고 하니까 소화가 안 됩니다. 이렇게 딱 걸려 있습니다. 소화가 안 됩니다.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저기서 다가오고 있으면 저 사람 보기만 해도 화가 납니다. 말도 걸기 싫습니다. 얼굴을 돌리고 발 돌려서 그냥 다른 데로 가버리지 않습니까? 소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기도와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신앙은 전부 다 헛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예레미야가 우리에게 본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20장 8절과 9절입니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폭행과 멸망을 선포함으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조롱 거리가 되었나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따져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외치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가 어떤 상황이었느냐 하면, 남유다 말기에 예언한 선지자 아닙니까? 예레미야 시절의 남유다 왕실에는 두 파가 있었습니다. 친 애굽파와 친 바벨론파가 엄청나게 싸웠습니다. 정권을 누가 잡았느냐 하면 친 애굽파, 친 이집트파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집트에도 기대지 말고 바벨론에도 기대지 말고 하나님만 꼭 붙잡아라, 그래야 너희 민족이 살 것이다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가서 전한 것입니다.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 나라는 망한다, 이집트 붙들고 있다가 상한 막대기, 부러진 막대기 같은 갈대 같은 이집트 붙들고 있다가 다 망한다, 너희 자손은 끌려갈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 꼭 붙들고 살라"고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치욕과 조롱거리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거기서 "나 같이 욕당하고 조롱을 당해도 이 말씀 전하는 것을 그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사람들에게 왜 칭찬받고 싶지 않겠습니까? 선지자가 말씀 전하면 사람들이 다 박수치고 환호하고 기뻐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예레미야는 말씀 전할 때마다 사람들이 다 떠났습니다. 그 말씀 듣기 싫다고 귀 막고 등 돌리고 다 떠났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20장 1절과 2절입니다.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제사장이었던 이 사람이 예레미야가 이 예언함을 들은지라" 무엇이 예언입니까? 제가 말씀드린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윗문에 목에 씌우는 나무칼에 채워 두었더니"

이렇게 놓고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다 보게 해버렸습니다. 얼마나 치욕스럽고 부끄럽습니까? 하나님 말씀 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을 소화시켜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배가 쓴 것입니다. 예레미야처럼 배가 써서 "더 이상 못 하겠다"고 그랬는데 다시 또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예레미야의 마음이라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적는 것으로 그친다면 신앙생활은 정말 쉽습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좋은 인문학 강좌, 좋은 특강 듣는 것처럼 설교도 듣고 싹 잊어버리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세상에서 내 멋대로 살고, 그렇게 살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고 좋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살면 일곱 번째 나팔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입에는 꿀송이처럼 달지만 이 배는 쓴, 이 말씀을 소화시키며 말씀대로 살아라, 그래야 일곱 번째 나팔 심판을 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이 죽고 사는 문제가 달린 것입니다. 하셔야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말씀 붙들고 투쟁하는 사람이 되셔야 됩니다. 이것은 목사도 예외가 아니고 누구나 예외가 아닙니다. 사도 요한도 예외가 아니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5. 다시 예언하라

이런 말씀을 받은 사도 요한이 두루마리를 먹은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10절과 11절입니다.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그렇습니다. 말씀을 받았는데 행동하고 행하고 살아내는 것이 너무 쓴 것입니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이 말씀을 다시 그대로 예언해라, 그래서 그들이 다 일곱 번째 나팔 심판을 피하도록 네가 예언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계시록을 큰 그림으로 보시고, 여섯 번째 나팔 심판과 일곱 번째 나팔 심판 사이에 끼어 있는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시간입니다. 이 기회를 힘센 천사,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되는 그분을 통해서 주신 것, 그리고 말씀을 받아 먹으라는 말씀, 이것을 꼭 기억하시고 한 주간 읽어서 꼭 붙들고 묵상도 해보시고 암송도 해보시고 그렇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진노를 멈추시고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말씀을 먹이시고 말씀대로 살라고 방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여,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아가서 일곱 번째 나팔 심판을 피하는 자들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임박한 진노와 심판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끊임없이 부르짖고 끊임없이 외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의 그 극진하고 놀라우신 사랑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