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서 찬송으로 (눅 2:15-20)
1. 예수의 심장을 품은 삶
손양원 목사님은 1902년에 태어나 1950년에 순교하셨습니다. 48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빛나고 영광된 인생을 사셨던 분입니다. 이분은 1925년 경남 성서학원을 졸업하고 호주 선교사 맥켄지의 전도사로 일했습니다. 부산 감만동에 있는 나환자 수용 시설에서 사역하면서 "내 평생에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이 나환자들과 함께하는 일이다"라고 마음에 결단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1938년 평양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바로 여수 애양원 교회로 전도사로 부임합니다.
그때 애양원 교회 교인들이 물었습니다. "이곳은 매우 열악합니다. 의사도 부족하고 약은 거의 없습니다. 시설도 별로 좋지 못합니다. 전도사님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그때 손양원 전도사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의사 친구도 데려오지 못했고 약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든든한 후원자도 함께 모셔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심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 말은 그냥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분은 애양원 식구들과 함께, 나환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같이 생활했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이 겁을 냈습니다. "병이 옮을까 봐 조금 떨어져서 계십시오. 우리와 설교할 때 저기 멀리서 하십시오." 그런데 이분은 그런 것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 주시고 사명을 주셨으면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여건도 허락해 주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발에 피고름이 가득한 환자의 발을 쥐고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애양원 교회는 정말 천국 같은 곳이 되어 갑니다. 물질이 많아서 천국이 아니고, 약이 좋아서 천국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목회자 한 분, 그리고 그 사랑이 그곳에 널리 전해지면서 정말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이 되어 갔습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돈이 있어야, 물질이 있어야, 그래도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무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 예수님, 목자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함께 빚어 가고 만들어 가는 이 공동체가 아무것도 없어도 행복하고 복된 공동체임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초대에 응답한 목자들
2-1. 밤에 밖에서의 삶
목자들의 삶을 가장 잘 정의하는 말이 "밤에 밖에서"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시간적으로 항상 밤을 밝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인생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참으로 캄캄한 인생이었습니다. 삶이 더 나아질 것도, 혹은 더 나빠질 것도 없이 교육의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목자들의 인생은 캄캄한 밤과 같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법정에도 회당에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경계선 밖에 소외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은 밖에 있는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천사들이 찾아갔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와 보라고 초대합니다.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노래하는 모습을 그들이 직접 보고 들었습니다. 이제 천사들은 초대장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이제 목자들의 결단이 남아 있습니다.
2-2. 한마음으로 달려감
천사들이 간 후에 목자들이 이렇게 반응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목자들은 누구 하나 먼저 할 것도 없이, 누구 하나 말릴 것도 없이 같은 마음,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말한 대로 "우리가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기 예수님을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의기투합하고 한마음이 되어 곧장 행동에 옮깁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빨리 갔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 목자들이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모두가 한마음이 되자 빨리 가서 요셉과 마리아,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 빨리 갔다는 말을 보면 우리는 마리아가 생각납니다. 마리아가 수태 고지를 받고 결단한 후에 천사의 말을 따라서 엘리사벳을 만나기 위해서 일어나 빨리 산골로 달려가지 않습니까? 마음에 결단했습니다. 그 결단은 결단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고 행동으로, 순종으로 이루어지고 옮겨가는 믿음을 우리는 마리아를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 이 목자들도 역시 똑같았습니다. 천사들의 초대를 받은 이후에 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었고, 같은 마음으로 빨리 일어나서 그곳으로 가 보려고 열심히 달려갑니다.
2-3. 핑계를 넘어선 순종
그런데 만약 여기서 한두 명이라도, 혹은 몇 사람의 목자들이라도 "야, 우리가 거기 가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지금 밤이 깊었고 그 사람들이 우리를 환대하겠느냐? 너희 꼴을 봐라. 우리가 지금 양의 분뇨를 묻히고 이런 옷을 가지고 아기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는 것이 너무 황당하지 않느냐? 그리고 지금 우리는 여기서 아예 눈을 붙이는 것이 훨씬 더 나을 수가 있다. 갔다 온다 한들 우리 인생이 달라질 게 뭐가 있느냐?"고 한두 명이라도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갔다면 그들은 다 힘이 빠져서 "그렇구나. 지금 밤이 깊었고 양들은 다 잠들었고 짐승들이 올 시간도 지났으니 우리는 여기서 쉬는 게 훨씬 더 유익하겠다" 이러면 못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서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현실적인 제약과 상황들, 그들의 피곤함을 떨치고 일어나서 빨리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달려갔습니다. 이 지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걱정, 염려, 근심, 고민만 하고 있어 봐야 인생에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일어나서 초대에 응하고 달려가야 그때 우리 인생이 변화되고 달라지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걱정, 근심, 염려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3. 네 명의 나병 환자
3-1. 포위된 사마리아 성
북이스라엘 시절, 엘리사가 예언했던 시절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 북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아람 나라는 군사적으로 강대국이었습니다. 아람이 북이스라엘을 쳐들어왔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 아닙니까? 사마리아 성을 에워쌌습니다. 그런데 아람은 군사력이 압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밀고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냥 포위하고 에워싸고 가만히 기다립니다. 물류를 차단해 버렸습니다. 사람도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게 막아 버렸습니다.
사마리아 성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단법석이 났습니다. 물건이 오가지를 못하니까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물가가 오르는 것도 물건이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먹고 살 것이 없습니다. 물도 없습니다. 먹을 것도 없습니다. 이제 그들 가운데 지옥이 시작됩니다. 자기 자식을 잡아먹기 시작합니다. 그런 지옥 같은 상황들을 떨치고 이들이 문 열고 나와서 항복하기를 아람 군대는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3-2. 목숨을 건 결단
그런데 그때 성 밖에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도 역시 걱정과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원래 나병 환자인지라 성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동냥하고 구걸해서 먹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출입하지를 않으니 먹고 살 수가 있습니까? 동냥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이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이 이제 결단을 내립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제 이틀만 더 지나면 죽을 것 같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여기서 적진 아람 군대로 한번 가 보자. 그들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먹을 것을 주면 우리가 거기서 사는 거고, 거기서 그들이 죽이면 거기서 그냥 죽자. 여기서 굶어 죽거나 그들의 칼에 죽거나 마찬가지이니 한번 해 보자." 네 명이 해 질 녘에 터벅터벅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고 적진으로 가 봅니다.
3-3. 텅 빈 적진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아람 적진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7장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람의 군인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의 발걸음이 거대한 말발굽처럼, 큰 군대가 지축을 흔들면서 달려오는 것처럼 들렸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용병을 샀구나. 헷 족속의 군인들과 애굽 사람들의 군인들이 우리를 치려고 달려오는구나."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그 자리에 모든 것을 놓고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네 명의 나병 환자가 가 보니까 텅 비어 있고 음식이 너무나 많습니다. 배 터지게 먹었습니다. 새벽까지 먹습니다. 그런데 먹다가 문득 여전히 사마리아 성을 굳게 걸어 잠그고 거기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백성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열왕기하 7장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병 환자들이 서로 말하되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이들이 "이제 우리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되겠다. 왕궁에 가서 이 기쁘고 좋은 소식을 알리자" 하고 돌아가서 적진이 텅 비었다고 알렸다는 이야기입니다.
3-4. 행동하지 않으면
이것을 보면 어이없고 황당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라셨던 것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백성들, 사마리아 성에 있는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그중에 책임지는 왕이 군대를 이끌고 나와서 아람 진영으로 달려갔더라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겁을 주게 하시고 그 군대에게 힘을 주셔서 당연히 승리하게 하실 것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은혜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도 성문 밖을 나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왕도, 군인들도, 책임지는 지도자들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모두가 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면서 자기 자식들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데, 움직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가 그들에게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오죽 답답하셨으면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의 그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군대의 말발굽 소리로 듣게 하셨겠습니까? 그들이 이것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4.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라
하나님께서 목자들에게 초대장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고.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로 끌고 가지 않으십니다. 선택을 우리가 하게 하십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우리가 지게 하십니다. 선택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십니다.
그런데 목자들이 일어나서 가지 않으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초대장을 영접하고 받아들고 일어나 갔기에 그들은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됩니다. 나병 환자들이 "우리가 여기서 죽거나 거기서 죽거나 마찬가지라" 하고 목숨을 건 결단을 했기 때문에 그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발걸음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초대장을 주십니다. 은혜의 자리로 오라고, 말씀 듣는 자리로 오라고, 주와 함께 섬기는 자리에 함께해 보자 하고, 기도하는 자리로, 말씀 듣는 자리로,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로 많은 초대장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거절합니다. 때로는 세련되게, 때로는 다양한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못 하겠다고, 안 가겠다고 움직이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그고 성 안에 있는 우리 백성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나 자신에게는 그렇다면 어떤 은혜도 변화도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움직이고 은혜의 자리를 향하여 초대에 응해야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부르는 그 초대에는 우리는 얼마나 발 빠르게 응답하는지 모릅니다. 돈이 된다고 하는 초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하는 그 자리에 우리는 수없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갑니다.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번 해 보자고, 이 자리에서 한번 은혜받지 않겠느냐고 부르시는 그 부르심에 우리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 부르심에 응답해 왔는지. 목자들은 그 초대에 응답해서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어 갑니다.
5. 환대와 경청의 공동체
5-1. 불청객을 맞이하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초대에 응해서 예수님을 만난 자리,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7절과 18절을 보십시오.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이것을 우리가 그림을 한번 그려 보십시오. 상상을 한번 해 보시라는 말입니다. 목자들이 요셉과 마리아,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왔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제 갓 아기를 출산한 산모 부부입니다. 그들이 부른 적이 없습니다. 이들은 이 목자들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불청객들이 온 것입니다.
그들의 옷차림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지금까지 양을 돌보다가 왔지 않습니까? 한밤중에 목자들이 양 치다가 빨리 달려왔습니다. 땀이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양의 분뇨 냄새로 코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갓 태어난 아기를 만나겠다고 그 자리에 왔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마리아라면, 내가 만약 요셉이라면 내 아기 앞에 그들을 앉히고 싶습니까?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자리에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5-2. 간증과 경청
목자들이 자기들이 경험한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노래한 이야기를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이야기도 들려주고, 천사들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그 찬란하고 놀라웠던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그것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쫓아내지 않습니다. 영접해서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19절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마리아가 가장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이제 아기를 갓 출산한 산모가 "빨리 좀 가세요"라며 그런 마음이 아니라, 열심히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고 간증을 듣고 있다는 말입니다.
목자들이 언제 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아 봤을까요? 목자들은 사회 하층민들입니다. 노예, 품꾼들입니다. 이들은 법정에도, 이들은 회당에도 출입이 제한된 분들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직업군에 있는 목자든지 자기 가족밖에 없습니다. 한 번도 이런 환대와 경청의 은혜를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데 이 젊은 부부가 환대하고 경청하며 은혜를 받으며 듣고 있습니다. 눈빛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그 표정을 보면 내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 하는 것을 이들이 느끼지 않습니까? 목자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내가 환영받고 있구나" 하는 것을 목자들이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
5-3. 예수님의 차별 없는 사랑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간 수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사역의 뿌리에 변함없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차별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차별한 적이 없습니다.
복음서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이방인 지역, 유대인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똑같이 데칼코마니처럼 사역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오병이어 사건,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유대인들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가셔서 칠병이어 사건을 보여 주십니다.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똑같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도 병 고쳐 주시고 그들에게도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 주셨고, 이방인들을 위해서도 똑같이 병 고쳐 주시고 귀신들도 내쫓아 주시고, 유대인들에게도 설교하시고 이방인들에게도 설교해 주시고, 주님은 차별 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똑같이 대해 주셨습니다. 이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5-4. 예수님의 경청
또한 예수님의 사역의 중요한 두 번째 자리는 경청이었습니다.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다 들어 주셨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이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이 여인을 불러 세웁니다. "너의 간증을 해 보라. 너의 지난날에 안타까웠던 사연들을 한번 들어 보자." 이 여인이 울며불며 그 이야기를 다 쏟아냅니다.
그런데 그때는 굉장히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기 위해서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그 자리에서 그 여인의 사연을 듣지 않습니까? 열두 해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이 자기 속마음을 풀어 놓을 때가 누가 어디에서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여인의 사연을 다 들어 줍니다.
우리 예수님, 사마리아 수가성에 가셔서 사람을 피해서 정오에 물 기르러 오는 수가성 여인을 직접 찾아가십니다. 여인의 사연을 듣습니다. 이 여인의 마음을 경청해 줍니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들어 줍니다.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았는지, 얼마나 사랑에 갈급하는 여인인지 우리 주님은 경청해 주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이들도 역시 경청의 은혜를 목자들에게 베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 경청해 줄까요? 경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잘 듣는 사람이 사람들의 이야기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를 보십시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말씀을 영접했습니다. 요셉은 꿈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 여자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하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주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신 말씀처럼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들었던 요셉과 마리아, 목자들의 이야기도 잘 들어 주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난하고 병든 자, 어려운 자, 나와 형편과 처지가 다른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잘 기울이는 자들은 연약한 자들의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주의 백성들이 예수님처럼, 마리아와 요셉처럼 이런 상황에도 환대와 경청의 은혜를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눌 수 있는 능력 있는 주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
20절을 보십시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20절이 우리에게 주는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6-1. 빈손으로도 충만한 은혜
첫째는 요셉과 마리아, 예수님 그리고 목자들이 모인 이 공동체가 은혜가 풍성한 자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읽으면서 "아, 여기 정말 은혜가 넘치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온 동방에서부터 온 박사님들이 계십니다. 이 세 분의 박사들이 가지고 온 예물이 있지 않습니까?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굉장히 귀중한 것들입니다.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보지도 못하고 만져 보지도 못할 만큼 귀중한 것들입니다. 그 예물을 가지고 이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은요? 목자들은 빈손이었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빈손이었기도 하지만 준비할 시간이 있고 경황이 있다 한들 목자들이 가지고 올 무언가가 있었겠습니까? 빈손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처음 만나러 오는데 이들이 무려 빈손으로 주님 앞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빈손임을 우리가 잊어버릴 만큼 이 자리가 은혜가 넘치지 않습니까?
예물이 없습니다. 재물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가 은혜가 넘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자들의 순종과 결단과 헌신이 이 자리에 있고, 이 자리에서 목자들이 경험한 하나님을 향한 간증이 이 공동체에 있고, 이들을 환대하고 경청하는 마리아와 요셉의 따뜻한 마음이 이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없어도,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없어도, 많은 재물이 없어도 공동체가 이토록 은혜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6-2. 세상과 다른 공동체
교회 공동체는 세상과 달라야 됩니다. 교회 공동체는 은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자들의 간증이 넘쳐나는 곳이고, 그 간증을 우리가 환대와 경청으로 들어 주는 곳이 되어야 됩니다. 나오는 사람이 아무것도 내놓지 않아도, 아무것도 들고 오지 못해도, 그저 빈손으로 목자들처럼 와도 그래도 이 자리가 은혜가 넘치는 곳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교회는 타락하고 세속화된 것입니다.
세상은 물질 공동체입니다. 물주가 있어야 됩니다. 밥을 사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돈을 내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먹을 것 마실 것이 있어야 풍성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교회 공동체는 먹을 것이 없어도, 마실 것이 없어도, 물질이 없어도 나눌 수 있는 말씀과 은혜가 있으면 됩니다. 경청과 환대가 있으면 얼마든지 은혜로울 수 있습니다.
7. 찬송하며 돌아가는 삶
두 번째로, 이 목자들이 이제 어떻게 돌아갑니까? 찬송하며, 찬양하며 이들이 돌아갑니다. 이들은 돌아가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목자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밤에 밖에서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사람들에게 차별받고, 사람들에게 냉대받고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적어도 이전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하루 전과는, 천사들을 만나기 전과는, 그들이 순종하기 전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이전의 삶이 원망과 불평과 어둠 속의 삶이었다면, 이제는 그들의 입술에 찬양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입술에 기쁨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환대받았기 때문에, 경청해 주었기 때문에, 나를 영접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그래서 이들은 이제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 아닙니까? 내가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했다면, 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차를 마셨다면, 나와 만난 사람이 나를 만나기 전에는 원망과 불평과 풀이 죽어서 왔는데 그리스도인인 나를 만나고 돌아가면 그 입술에 찬양이 회복되어야 됩니다. 그 정도로 내가 영향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주일날 예배당에 올라올 때는 풀이 죽고 힘들어서 원망과 불평과 인생의 모든 짐을 지고 올라왔다가도 이 자리에서 환대 받고, 이 자리에서 경청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세상으로 나갈 때는 새 노래로 찬양하며 내려가야 됩니다. 그것이 제대로 된 교회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백성들이라면 이런 삶을 살아가고,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순종했습니다. 그들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초대에 응했을 때 그들은 온전히 삶이 달라졌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의 삶에 주님의 초대가 있습니다. 은혜의 자리로 나오라고, 섬기는 자리로 나오라고, 함께 일해 보지 않겠느냐고. 그때 다양한 방식으로 거절했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의 초대에 적극적으로 응하겠습니다. 응답하겠습니다. 이제 빨리 가서 그 은혜의 손을 붙잡겠습니다.
주여,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리아처럼, 요셉처럼 환대하고 경청하는 자들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환대와 경청을 경험한 사람들이 목자들처럼 찬송하며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런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