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눅3:3-14)
세계적인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였던 제인 구달이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분은 침팬지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던 분입니다. 제인 구달 이전까지는 침팬지를 우리에 가두어 놓고 관찰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탄자니아의 열대 우림에 직접 들어가 10년 동안이나 텐트를 치고 침팬지를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침팬지의 생태를 놀랍게 추적하고 관찰하여 글을 쓰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침팬지에 대한 업적뿐만 아니라 이분이 남긴 업적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중에 특별한 것이 '뿌리와 새싹 프로그램'입니다.
1991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한 지역의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 있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도록 프로젝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환경 문제를 인식해도 직접 풀어가거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역의 어른들과 성인들을 연결해 줍니다. 그러면 청소년과 성인들이 함께 이 문제를 풀어 가도록 오랫동안 노력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탄자니아에서 10명의 청소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100여 국에서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뿌리와 새싹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처음에 이분이 이 일을 시작할 때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지금 청소년들에게 환경을 잘 유지하고 물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환경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고, 이 환경을 우리가 잘 관리하지 못하면 나중에 큰 재앙이 올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한번 해보자, 이거라도 내가 한번 해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지금 이만큼 성장하고 발전했습니다.
선한 일은 처음 시작이 중요합니다. 한번 해보기 시작하면 훗날 시간이 지나서 이 일이 어떻게 커질지, 열매를 맺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 아닙니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거기에서 일하시고 역사하시고 기름부으시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1. 회개의 세례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요한이 광야 빈들에서 외쳤던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이 말씀을 외칠 때 그는 큰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외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큰 울림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고 회복시켰으며, 2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읽고 은혜받고 있습니다. 오늘 종교 개혁 기념주일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와 진리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로마 황제 디베료가 통치하던 시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중심은 로마였습니다. 또한 총독이 있었던 가이사랴 혹은 두 명의 대제사장이 있었던 예루살렘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곳이 아닌 빈들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세례 요한은 빈들에서 그저 빈들처럼 자신의 마음을 비워내고 살았을 뿐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세례 요한에게 임합니다.
말씀이 임했기 때문에 그는 일어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 자들은 여전히 세속적 욕망을 쫓아서 로마로, 예루살렘으로, 혹은 가이사랴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세례 요한이 있는 빈들로 달려옵니다.
빈들로 달려온 자들, 그들에게 세례 요한이 전한 메시지의 핵심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 이 말씀이 그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이었습니다.
1-1. 물세례와 회개의 세례
그런데 이상한 것은 회개면 회개고 세례면 세례인 것이지 회개의 세례가 무슨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물에 들어가서 받는 것이고, 회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털어 놓는 것인데 회개의 세례란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요한이 세례받으러 온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이 세례는 물세례를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 강 주변에서 사역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와서 세례를 받으면 겉사람부터 속사람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와서 세례받기를 청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란 말을 쏟아붓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세례식이 있고 입교 예식이 있었는데 그분들에게 목회자가 설교하면서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요한은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할 만큼 강력한 말씀을 전합니다.
왜 그렇게 말씀한 걸까요? 물세례라고 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외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례받지 않습니까? 세례받고 나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직분을 받습니다. 집사가 되고, 조금 더 지나면 권사도 되고, 조금 더 열심히 하면 교회 중직인 장로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세례부터 시작해서 신앙의 외형을 만들어 가고 형성하게 됩니다. 봉사 생활도 하고 헌금 생활도 하고, 우리가 눈에 보이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물세례로 표현했습니다.
1-2. 내면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입니까? 과연 우리 신앙이라는 것이 물세례로 대표되는 신앙의 외형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껍데기가 잘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이분의 직분이 괜찮은 직분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은 봉사의 직분과 섬김과 사명을 다하고 있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똑바로 서 있지 않으면 그분의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세례 요한이 자신에게 물세례를 받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 그들에게 외친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서 세례받고 나서 신앙생활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그냥 물세례가 너희 인생을 바꿔 줄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라고 말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 속에 있는 독사 같은 기질을 바라보라. 너희 내면에 있는 하나님을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을 바라보라. 그래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것입니다.
2. 회개에 합당한 열매
이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8절과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까지 합니다.
물세례는 신앙의 외형이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우리 입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삶으로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입으로 하나님 앞에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데까지 한 번 더 전진하고 나아가라. 그 말씀을 오늘 세례 요한이 세례받으러 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2-1. 탐심을 버리라
그런데 요한에게 세례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 세 부류 정도가 있습니다. 그들이 묻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까라고 묻습니다.
먼저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옷이 두 벌이 있느냐, 그러면 나누어 주라. 먹을 것이 있느냐, 그것도 그렇게 나누어 주라 합니다.
세리들이 묻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세리들에게도 말합니다. 부과된 세금 이외에는 더 이상 거두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 세리들은 두 배, 세 배, 네 배 이상의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로마가 지정한 세금은 로마 당국에 바치고 더 이상의 세금은 자기 주머니로 다 들어갑니다. 그래서 세리들이 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짓, 그런 행동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군인들이 묻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그때 말합니다. 군인들에게는 강탈하지 말라, 거짓 고발하지 말라, 받은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통틀어서 한마디로 말하면 어떤 말로 우리가 정리할 수 있을까요? 무리들에게, 세리들에게, 군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탐심을 가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옷 한 벌로 충분하고, 가지고 있는 음식으로 충분하고, 거두어들인 세금만 받고, 군인들이 받은 급료로 충분하니 더 이상 탐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고 하는 것은 너희 삶에서 드러나는 열매여야 되는데 그 열매 중에 가장 중요한 열매가 탐심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2-2. 탐욕의 무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의 본성 중에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이 바로 탐심이기 때문입니다. 더 가지고 싶습니다. 감사가 사라지고 더 많이 쌓아 놓고 싶고, 더 많이 누리고 싶고, 더 많이 가져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입니다.
그것은 옛날부터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출애굽할 때 그들이 광야 길을 걷습니다. 광야 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농사 지을 수 없지 않습니까? 양과 소를 데리고 다니며 목축할 수 없습니다. 그럼 뭘 먹고 살아야 됩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하늘에서 양식을 내려 주시는데 만나였습니다. 만나는 공짜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나가서 거두어 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들은 만나를 먹고 배불렀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습니다.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노동도 하지 않았는데, 일하지도 않았는데 이만큼 많은 것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다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고기를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집트에서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 구워 먹고 있을 때가 좋았는데 고기 달라고 원망하고 아우성입니다.
모세를 괴롭게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구합니다. 하나님이 고기를 주십니다. 실컷 먹어 보라고 하늘에서 메추라기를 내려 주십니다. 그들이 고기를 먹고 난 이후에 하나님은 이렇게 그들을 심판합니다.
민수기 11장 33절과 34절을 보십시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קִבְרוֹת הַתַּאֲוָה)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기브롯 핫다아와는 그들이 그 결과 죽어서 묻힌 무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른바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만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없는 것에 대해서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탐욕을 쌓아 갔습니다. 그 쌓은 탐욕의 무덤 속으로 그들 스스로가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양손에 도구를 가지고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돈 한 푼 들고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적신으로 왔습니다. 빈털터리 벌거숭이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좋은 부모님과 가정을 주셨습니다. 일터를 주셨습니다. 지금 이만큼 살게 된 것이 다 누구의 덕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 여기까지 오게 하셨고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감사의 고백이 없습니다. 오히려 없는 것에 대한 원망과 저주와 불평만 있습니다. 탐욕을 쌓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데 더 가지고 싶습니다. 누리고 있는데 더 누리고 싶습니다. 나누지 않습니다. 베풀지 않습니다. 옷이 두 벌 있으면 네 벌 가지고 싶습니다. 먹을 것이 있는데 창고를 열어서 더 쌓아두고 싶습니다. 그런 인생은 탐욕의 무덤을 만들어 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탐욕의 무덤을 만들고 쌓아 두면 그것이 우리의 무덤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이 세상 떠나면 저 열린 천국문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생 복락 누리고 살아야 되는데, 내가 쌓아 놓은 탐욕의 무덤 속 기브롯 핫다아와 속으로 우리가 들어가 버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잘못한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외적인 물세례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의 세례를 받아야 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그 열매 중에 가장 중요한 열매가 탐심을 없애는 것입니다.
2-3. 자족의 비결
사도 바울은 좋은 집안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꽤 부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향한 학구열이 불탔습니다. 이 아들 잘 길러보고 싶었습니다. 아들도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사울을 데려다가 가말리엘 선생님에게 맡겼습니다. 최고의 학부입니다. 좋은 선생님입니다. 돈도 많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유대인의 학문의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사울이었던 시절을 회고하며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나서 그가 고백한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내 이전의 모든 것을 만물의 찌꺼기같이 여겼다고 했습니다. 쓰레기라는 말입니다. 과거의 모든 것을 다 쓰레기로 여기고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고백하는 말을 보십시오. 빌립보서 4장 11절과 12절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여기 보면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다, 배부름도 배고픔도 다룰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배고프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견디는 수밖에 더 있습니까? 먹을 것이 없는데 비천하면 어떡합니까? 참는 수밖에 더 있습니까? 배고프고 비천하면 참고 견디는 것밖에 없습니다. 혹시나 나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겨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분들을 통해서 도움을 얻어서 감사를 하고 살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풍부에 처할 때입니다. 많은 것을 가졌을 때, 어쩌다 모든 것이 생겼을 때 그 풍부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문제입니다. 어떻게 다루십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들, 회개의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은 사람들은 풍부를 다룰 줄을 모릅니다. 두 개가 있으면 세 개를 가지고 싶고, 먹을 것이 있으면 더 쌓아 놓고 싶고, 남들의 것을 강탈해서라도 내 창고를 채우고 싶은 마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악한 모습들입니다.
우리는 한 세대 전 우리 부모님 세대, 그 세대가 참 행복했다고 혹은 정이 많았다고들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가 가난했으니까, 모두가 배고팠으니까, 모두가 비천했으니까 그때 조그만한 것이라도 나누면 그것이 그렇게 크게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때는 행복하고 오히려 마음은 따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지금 이 시대는 과거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사는 세월이 되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왜 더 각박하다고 느낍니까? 사람들이 나누지를 않습니다. 베풀지를 않습니다. 더 쌓아 두려고 합니다. 더 큰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니 각박하다고 느낄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고 탐심을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종교 개혁 기념주일입니다. 종교 개혁은 뭐 큰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근원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아드 폰테스(Ad Fontes). 이 근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간 것이 근원인데 근원으로 돌아간 것이 종교 개혁이고, 오늘 이 말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도 뭐 큰일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있으면 그 하나로 만족하고, 내게 남는 것이 있으면 나누고 베풀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
우리 삶에서 이런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히기를 바랍니다. 아멘.
3. 이사야 예언의 성취
오늘 세례 요한은 과거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말씀을 그대로 가져와서 인용합니다. 오늘 말씀 4절에서 6절을 보십시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40장 3절에서 5절까지 예언한 이 말씀을 세례 요한이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우리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탐심을 억제하면 이런 일이 현실이 된다는 말씀입니
정말 이 일이 현실이 됩니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습니까?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져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설교합니다.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서 베드로에게 와서 묻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묻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하지 않습니까? 회개하여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 말했습니다.
회개해서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들 모두가 다 세례받고, 그 자리에서 삼천 명이 회개하고 예루살렘 교회 성도가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 유무상통했습니다. 부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물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사도들에게 이것 가지고 가서 나누어 주라고 합니다.
3-1. 골짜기가 메워지다
골짜기가 메워지는 순간입니다. 움푹 파인 골짜기, 가난의 골짜기, 힘들었던 인생의 골짜기가 은혜받고 회개하고 탐심을 물리친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 자들이 물질을 가지고 내어 놓으면서 그 골짜기가 메워집니다.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물질이 있고 권세가 있고 부귀 영화가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교만합니까? 산처럼 높아 있습니다. 내가 가진 물질이 곧 내가 아닌데, 내가 가진 지위가 나의 인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높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런데 그들이 회개하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니 물질을 내려놓고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서로가 함께 나누고 함께 대화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만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3-2. 굽은 길이 평탄해지다
굽은 길이 평탄하여집니다. 모든 길이 다 평탄해집니다. 가난한 자들이 하루를 살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들이 살아가야 될 길이 굽은 길입니다. 그들이 걸어가야 될 길이 험하고 험준한 산악 같은 길입니다. 그런데 탐심을 내려놓으니 예루살렘 교회의 구비진 길이 평탄해졌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수백 년 전 예언했던 그 예언이 지금 이 교회에서 현실이 되어서 나타나지 않습니까? 아멘.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큰 그림을 그린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종교 개혁자들의 후손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고 회개한 사람들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서 나에게 있는 탐심을 내려놓고 베풀고 나누어 주기를 시작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역사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우리 각 사람에게 임하고 흘러가고 넘쳐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가운데 물세례로 만족하는 자들이 있지 않기를 원합니다. 신앙의 외형은 이루었는데 신앙의 껍데기는 만들었는데, 그러나 신앙의 내면을 만들어 가지 못해서 여전히 회개의 세례가 없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가 진실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탐심을 꺾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속에 있는 악한 마음, 더 가지고 더 누리려고 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골짜기가 메워진다고 했습니다. 움푹 파인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는 교만이 사라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돌아가는 길이 이제는 평탄한 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주여, 나부터 이 일을 실천하는 자들 되도록 도우시고, 우리 삶이 종교 개혁자의 후손들로서 근원으로 돌아가서 진실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 그 한가운데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