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받으시더라 (눅4:1-13)
요즘은 건강을 위해 누구나 한두 가지씩 운동을 합니다. 그중에 필라테스라는 운동이 있습니다. 격하게 몸을 쓰지 않아도 호흡과 동작을 꼼꼼하게 따라 하다 보면 한겨울에도 땀이 비 오듯 흐를 정도로 운동량이 대단합니다.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독일인 요제프 필라테스입니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몸이 매우 허약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이런저런 운동을 다 시켰습니다. 건강을 위해 여러 운동을 했는데, 30대 초반에 돈을 벌기 위해 독일에서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권투 선수 생활도 잠깐 했고 서커스 단원 생활도 했습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사람이었던 그는 적군으로 오인되어 수용소에 감금됩니다. 수용소에 들어가 보니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 가운데 몸이 만신창이가 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재활을 돕고 싶었지만, 마땅한 시설이나 장비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수용소 안에 있는 철제 침대와 철기둥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세를 고안하고 가르친 것이 오늘날 필라테스 리포머의 기원이 됩니다. 그는 192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있는 한 허름한 아파트에 세 들어 삽니다.
그 아파트에는 뉴욕시티 발레 단원들도 많이 살았습니다. 발레를 하는 분들은 근골격계 질환이 많습니다.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퇴근 후에 특별한 장비 없이도 집 안에서 조금씩 몸을 풀고 운동할 수 있도록 방법을 고안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필라테스의 기초가 됩니다. 필라테스에 대한 이분의 공헌은 굉장히 많은데, 그중에 획기적인 것은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전까지 운동이라고 하면 마당이 넓은 곳에서, 제대로 된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녀야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상생활에서 사무실에서도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 몸이 망가지는 것은 큰 사고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사고로 몸이 상하는 경우는 비율이 극히 낮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몸이 망가집니다. 자세가 바르지 않거나 같은 자세로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오래 하다 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망가진 몸을 하루하루 풀어가고 회복시켜 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을 고안한 사람입니다.
1. 영적 전투의 현장
이것을 우리의 영적 생활에 한번 적용해 본다면 영적 전투라는 것이 어디에서 일어나겠습니까? 단어 자체는 대단히 거창합니다. 영적 전투라고 하니까 대단한 전쟁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영적 전투가 일어나는 자리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고, 가정에서, 일터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곳곳에서 영적 전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영적 전투가 바로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장면입니다. 먹는 것으로 시험받습니다. 일상 아닙니까? 그리고 산 위에서, 성전 꼭대기에서 시험받으셨습니다. 우리가 항상 다니는 내 삶의 범주 안에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시험의 자리가 되고 시험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을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 전투의 자리가 어디인지, 사탄은 어떤 식으로 우리를 시험하는지를 살피고 돌아보며, 사탄의 권세를 이기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함께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1. 성령 충만과 시험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기 때문에 세례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과 같아지는 모습을 보여 주시려고 겸손하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총출동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소리를 내시면서 "내 기뻐하는 자"라고 칭찬해 주십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머리 위에 임합니다.
겸손한 자, 자신을 비워낸 자에게 하나님께서 이토록 기뻐하시고 성령 충만하게 도우셨습니다. 이제 우리 예수님은 성령 충만한 마음으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가장 처음 만난 자가 바로 사탄 마귀였습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우리는 이 1절과 2절 말씀을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상식과 반대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면 사탄 마귀가 떠나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고 가득한데 나를 막는 어떤 사탄 마귀가 존재할까? 내가 걸어가면 사탄 마귀가 홍해가 갈라지듯이 쫙 갈라질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성령 충만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이것이 가능합니까? 성령 충만한 예수님을,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을 사탄 마귀가 시험하다니, 예수님의 영적 상태가 성령 충만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어떤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인간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에 속박되고 사망 권세에 눌려 있는 자들을 위해서 예수께서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의 영광으로 그들을 건져내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메시아가 직접 이 땅에서 활동을 시작하시는 단계라는 말입니다.
거꾸로 사탄 입장에서 보면 이제 사탄의 왕국이, 마귀의 나라가 망하는 시작입니다. 사탄 마귀가 가만히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일하시면 마귀도 함께 일합니다. 예수님이 떨쳐 일어나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시작하시면 사탄 마귀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당연히 그들도 덩달아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음을 고쳐먹고 이제는 신앙생활 한번 제대로 해봐야 되겠다고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 사탄도 함께 일합니다. 널브러져 있는 사람, 일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발버둥치거나 애쓰지 않는 사람, 가만히 놔둬도 죄의 길로 가다가 망해버리는 사람을 사탄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사탄 마귀도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할 일이 너무너무 많은데 그런 자들까지 건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주의 일을 하려고 애쓰고 힘쓰는 자들에게 사탄이 함께 덤벼들고 일합니다.
1-2. 성경 속 사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여리고성 전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자기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성령 충만해졌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진짜 일어나다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성을 돌았더니 정말 이 성이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우리가 손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 성을 정복했구나. 이 충만한 하나님의 영이 가득했을 때, 그때 아간에게 사탄 마귀가 틈탑니다.
아간을 통해서 도둑질을 하게 합니다. 전리품을 훔쳐서 감추어 버렸습니다. 지도자 여호수아가 이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이 성을 만만하게 보고 기도하지 않고 자기가 명령 내리고 가다가 그 성에서 거대한 실패를 경험합니다. 서른여섯 명이나 죽습니다. 그 전투에서 져버렸습니다. 사탄 마귀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함께 일하러 나서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간을 통해서도, 지도자 여호수아를 통해서도 마귀가 일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내가 이제 되었다고 생각할 때, 이제는 성령이 충만했으니 이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악한 사탄 마귀의 권세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는 넘어질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올 한 해 엉뚱한 일도 많이 하고 믿음 생활 제대로 못했다 할지라도 마무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잘해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 기도하고, 새 마음을 품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에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립니다. 그때 주의하셔야 합니다. 마귀도 함께 일합니다.
어떻게 이겨내야 합니까? 더 경성해야 합니다. 더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주변에 기도 부탁을 하시고 나도 엎드려 기도하고, 다시 한번 깨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사탄 마귀가 방해할 때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당연한 일입니다. 마귀가 방해하는 일들이 많으면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고 있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의 뜻대로 사는 사람 주변에 방해 세력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했기 때문에 주의 뒤를 따르는 자들,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2. 사탄의 시험 방식
이제 마귀가 어떤 시험을 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아주 단순해 보이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시험의 내용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아주 복합적입니다.
2-1. 약점을 노린다
우선 마귀는 아주 똑똑합니다. 간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현 상태를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공생애를 앞두고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배가 고프셨습니다. 주리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 오실 때는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고, 주님이 가장 바라셨던 것은 따뜻한 한 끼 식사였습니다. 배고프셨기 때문에 사탄은 이 지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상태가 배고픈 상태라는 것을 말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금식한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사탄은 이런 시험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상태가 이랬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먹을 것으로 공격합니다.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 말은 사탄이 오늘 우리의 상태도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어디에 목마른지, 내가 무엇에 배가 고픈지, 나는 지금 무엇을 갈망하는지 사탄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잘 모를지도 모릅니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정말 내가 지금 뭘 원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냥 몸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사탄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 나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청년 노예였던 요셉이 가장 배고픈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자유에 목말랐습니다. 사랑에 배고팠습니다. 형제들에게 팔렸지 않습니까? 하루아침에 배신당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못 봅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그 사랑에 배고프고, 노예이니까 자유에 목마릅니다. 청년입니다. 내재되어 있는 청년의 정욕이 있습니다. 사탄은 이 지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를 통해서 공격합니다. 동침을 청합니다.
하룻밤 함께 자자고 합니다. 그 순간 요셉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지금 노예인데 내 주인의 아내와 하룻밤 동침을 하면 나에게 자유가 주어질까? 이것을 정말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제는 내가 자유롭고 사랑받고 청년의 정욕도 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넘어가면, 그것을 물어버리면 그때부터 영원히 사탄의 종이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탄도 요셉의 상태를 알고 접근했는데, 요셉도 자신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동침하지 않을뿐더러, 함께 있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상황을 아예 만들지를 않습니다. 내가 나를 잘 아니까, 내가 어디에 배고프고 어디에 목마른지 내가 내 상태를 아니까 그런 상황을 만들지를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서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합니다. 그때 겉옷을 벗어두고 나가버렸습니다.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다가는 나를 지킬 수가 없기에 요셉은 누구보다 자기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시험을 견디고 이겨낸 것입니다.
여러분, 나를 잘 알고 계십니까? 어디에 목마르십니까? 무엇에 배고프십니까? 사탄은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내가 평소에 정말 갈망했던 것,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을 사탄이 건네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사탄은 그 정도 권세가 있습니다. 그때 덥석 잡으면 안 됩니다. 분별하셔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셔야 합니다. 나의 목마름을 통해서 사탄이 나를 시험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위대한 하나님의 선물인지, 사탄이 나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준 미끼인지 분별하셔야 합니다.
2-2. 자존심을 건드린다
3절 말씀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사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바꾸면 어떻게 됩니까? 네가 만약 이 돌을 떡으로 빵으로 만들지 못하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상당히 기분 나쁘게 자극하는 말입니다. 도발하는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에게 이런 사탄의 도발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식의 도발을 사탄이 지속적으로 합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신앙을 가지지 않은 일가친척들에게 이런 말들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까? 너 지금까지 예수 믿었다면서, 30년 신앙생활 했는데 열매가 뭐냐, 결과가 뭐냐, 예수 믿기 전 30년 전과 신앙생활 하고 난 30년 후 지금 너는 뭐가 달라졌느냐, 너의 자녀들이 승승장구하느냐, 너의 가정에 아픈 사람, 병든 사람이 없느냐, 너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모아 놓았느냐, 큰 부자가 되지는 못해도 너는 노후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 부유하게 살고 있느냐. 이런 등등의 말을 듣습니다.
아니라고 말하면, 그러면 왜 시간 낭비하느냐고, 그러면 왜 너는 교회 다니느냐고, 거기 가서 시간 낭비하고 거기 가서 앉아 있느라고 너는 돈 벌지 못하고 다른 사람처럼 잘 살지 못했는데 그 시간에 돈 버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여러분 그런 말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런가? 적어도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정도 살아줘야 되는 것은 아닌가. 성경에 보면 부자도 많은데, 꽤 잘 산 사람도 많은데, 지금 난 이게 뭔가, 내 신앙의 모습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러면서 의기소침해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은 아닌가? 내가 제대로 믿지 못해서. 거기서 조금 더 나가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나 한 걸까? 거기까지 갑니다. 하나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과 질문에까지 가게 됩니다.
사탄이 던지는 이 말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도 이 말을 던졌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빵을 만들어 봐. 네가 빵을 만들지 못하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야. 오늘 우리에게도 던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부귀영화, 권세, 영광 다 누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참수당해 순교했습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님 중에 한 분이셨던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좋은 집안 출신입니다. 학벌도 좋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심지어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옥에 갇히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그분 역시 목이 베여 참수당해 순교했습니다.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 한국전쟁 당시 공산당에 항거하며 교회를 지켰던 수많은 사람들도 다 순교했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이 예수를 잘못 믿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그분들은 다 마귀의 자식들입니까? 그분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을 믿고 믿음 생활 제대로 한 믿음의 백성들입니다.
2-3. 좁은 문과 좁은 길
우리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과 14절을 보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우리 예수님은 좁은 문, 좁은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것, 좁은 문, 좁은 길로 오신 것입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입니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는 자는 예수님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이런 시험을 하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로 가야 한다고.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라면 부귀영화 권세를 누려야 한다고. 우리는 거기에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로 걸어가는 존재들입니다.
여러분, 그 길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찾는 자가 적고 함께 가는 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길 끝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사탄은 속삭입니다. 이 넓은 길로 오라고.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면 적어도 이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그 길을 한번 걸어가 보십시오. 끝에 어떻게 되는가. 후회할 길만 남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영광과 권세를 쫓아간 그 길에서 우리는 영광의 부활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 봐야 무엇합니까?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좁은 길, 좁은 문, 그 길이 다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함께 가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동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함께 가는 친구가 있고, 성도가 있고, 가족이 있습니다. 그 길을 가다 보면 복된 일도, 즐거운 일도, 가끔 웃을 일도, 행복할 일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때마다 시마다 우리에게 오아시스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갔던 광야 여정을 보십시오. 광야가 죽을 만큼 못 살 곳도 아니었습니다. 만나도 있었고, 메추라기도 있었고, 오아시스도 있었고, 반석에서 나오는 물도 있었고, 낭만적인 행복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좁은 길도 갈 만합니다.
2-4. 과정을 생략하라
3절 말씀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마귀가 이 돌이 떡이 되게 하라, 빵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시험의 본질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과정을 건너뛰라, 과정을 생략하라는 시험입니다.
빵이 만들어지려면 밀을 심어야 합니다. 그냥 심고 던져 두면 안 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열심히 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추수를 해야 합니다. 추수하고 탈곡합니다. 탈곡하고 밀을 빻아서 가루가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가루를 반죽해야 합니다. 거기에 누룩을 넣어야 합니다. 빵 모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구워내야 합니다. 그래야 빵이 됩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 과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돌이 빵이 되게 하라고 모든 과정을 다 생략해 버렸습니다. 결과만 중요합니다. 너 할 수 있잖아. 너 하나님의 아들이잖아. 과정을 건너뛰고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를 지금 나에게 당장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결과에 목숨을 겁니다. 운동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려면 피, 땀, 눈물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자기를 갈고닦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약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약을 먹으면 근육이 강화되어서 순간적으로 힘을 쓸 수 있다고. 그것을 먹는 순간 파멸입니다. 과정을 건너뛰고 생략하는 순간 우리 인생은 파멸입니다.
논문 쓰는 분들, 자료를 모으고 불철주야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의 논리를 이해하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해서 논문을 완성해야 하는데, 남의 논문을 베껴오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파멸입니다. 과정을 건너뛰고 생략한다면. 그런데 사탄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열매만을 요구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2016년 3월에 왔습니다. 그때부터 2017년까지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목사님 우리는 언제 천 명이 될까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 출석했던 교인들이 약 600명에서 700명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런데 천 명이라니요. 천 명이 되려면 우선 700명이 되어야 하고, 그다음 800이 되어야 하고, 그다음 900, 그다음 천 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산술적이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데가 1년 지나고 나면 하늘나라 가시는 어른들이 꽤 많이 계십니다. 또 1년 지나고 나면 이사 가시는 분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또 서로서로 싸우고 서로 삐져서 시험에 들어서 두 분 다 안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기 결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새 가족이 오십니다. 새 가족들이 100% 다 정착합니까? 그런저런 이유로 교회가 숫자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 교회 주보를 펼치면 지난주 출석 통계가 있었습니다. 그것만 봅니다. 주일날 교회 오면 지난주에 몇 명 나왔더라? 주보를 모읍니다. 주보를 모으시는 분들이 엑셀 파일에 입력을 해서 그것을 가지고 숫자를 통계 내고 그래프를 만들어서 목사에게 보여줍니다. 답답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한 영혼을 붙들고 기도하고, 이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훌륭한 기둥이 되도록 애쓰고 힘쓰고 노력하고 수고하지 않고 그 과정을 다 건너뛰고 천이라는 숫자만 생각합니까? 그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사탄 마귀가 우리에게 주는 목표치입니다. 거기에 노예가 되면 천 명이 되면 그다음은요, 그다음 1500, 1500이 되면 그다음은요, 그다음 2천. 그래서 뭘 할 것입니까?
교회가 교회다워야 하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지, 교회가 왜 숫자 놀음에 빠져 있습니까? 지금은 주보에 찾아봐도 숫자가 없습니다. 그냥 하다 보면, 믿음 생활을 우리가 재미있게 하다 보면, 하나님 말씀대로 말씀을 농사짓고 살다 보면 그다음 성장도 따라오는 것이지, 성장이 목표가 되면 우리 인생도 파멸입니다. 과정을 다 건너뛰게 되니까요.
3. 승리의 비결
여러분, 오늘 우리 인생에 이런 도전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 도전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겨내야 합니까? 4절 말씀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 예수님이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신명기 8장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라. 이 말씀이 답입니다.
3-1. 말씀을 농사짓다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하나님이요, 예수님 말씀을 전하는 분 아닙니까?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밭에 떨어집니다. 네 가지 밭이 있습니다. 길가와 같은 밭, 흙이 얕은 돌밭, 가시덤불 같은 땅, 그리고 좋은 땅입니다. 4분의 1의 확률로, 25%의 확률로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나머지는 씨앗이 자랄 수 없는 곳입니다.
4분의 1의 확률로 좋은 땅에 떨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가만히 두면 열매 맺습니까? 농사 지어야 합니다. 열심히 농부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김매 주어야 하고, 고랑을 만들어서 배수로를 만들어 주어야 하고, 가을이 될 때까지 수고하는 농부의 수고가 그곳에 엄청나게 많이 투자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말씀이 떨어졌는데 가만히 있으면 열매 맺습니까? 말씀을 받기만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주십시오라고 기도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열매가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말씀을 가지고 내 삶을 농사지어서 살아내야 합니다. 농부의 수고를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그것을 가지고 살아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거기에 열매가 있습니다.
3-2. 성실한 하루
과정을 생략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 하루가 성실하고, 이 성실한 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이 한 달이 1년이 되고,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열매가 우리 인생에 가득 차고 충만할 줄로 믿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공격합니다. 우리의 약함을, 나의 상태를 사탄이 알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살피고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좁은 길을 가셔야 합니다. 사탄은 과정을 생략하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을 농사지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사탄의 시험을 온전하게 승리하고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령 충만한 우리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해서 뭔가를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자꾸만 마귀가 시험합니다. 그때마다 넘어지고 무너지고 포기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도와주옵소서. 다시 한번 이겨내게 하시고,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할 때 마귀도 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사탄 마귀는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내 상태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아서 우리는 우리의 상태를 잘 모릅니다. 도와주옵소서. 나의 약점을 알게 하시고 그 약한 부분을 깨어 경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주의 딸들이라면, 주여 우리가 좁은 길 걷게 하여 주옵소서. 사탄은 과정을 건너뛰라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실하게 살아내어 농부가 되겠습니다. 열심히 농사해서 열매를 기대하겠습니다. 아버지 우리와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