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강 / 시험을 받으시더라-3 (4:1-13)

시험을 받으시더라-3 (눅 4:1-13)

아주 옛날에 까마귀 한 마리가 살았습니다. 그 까마귀는 자기 얼굴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기 얼굴을 아무리 봐도 너무 까맸습니다. 옹달샘에 가서 씻고 또 씻어도 그 까만 얼굴이 하얘지지 않습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아빠에게 나를 왜 이렇게 낳았느냐고 불평해 봐도 돌아오는 건 잔소리와 꾸지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보았는데 동네 이웃들도 다 까맸습니다. 가족들도, 주변 까마귀 전부 다 까맸습니다. 너무 싫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공작새 깃털 하나를 주웠습니다. 그걸 그냥 자기 몸에 하나 꽂아 보았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너무 멋집니다. 자기가 자신을 봐도 정말 아름답고 멋진 모습입니다. 고작 공작새 깃털 하나 꽂았을 뿐인데 까마귀가 공작이 된 기분을 느끼다니. 그래서 결심합니다. 공작새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가서 깃털을 최대한 많이 수집하려고 합니다. 많이 모았습니다. 몸 곳곳에 다 꽂았습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걸어봅니다. 이제 자기가 진짜 공작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공작새들이 모인 곳에 가서 스스로 공작이라고 자랑합니다.

공작들이 처음에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가만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달려들어서 털을 다 뽑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무리에서 쫓겨납니다. 까마귀는 흠씬 두들겨 맞고 털은 다 뽑히고 쫓겨나서 생각합니다. '그렇지, 내가 까마귀였지.' 그래서 그는 돌이켰습니다. 돌이키고 뉘우치고 다시 까마귀 집단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제는 까마귀 친구들이 받아주지를 않습니다. '너 스스로 공작이라고 했으니까 넌 공작새들에게 가서 놀아라'고 받아주지를 않습니다. 그때부터 까마귀는 외톨이가 됩니다. 파멸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자기 과시 욕망의 마지막은 파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자기 과시의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욕망,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 합니다. 과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가 아닌데 자기인 척하고 남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다 보면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이 나옵니다. 악한 사탄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자기 과시의 욕망을 한껏 자극합니다. 오늘 이 마귀의 시험이 왜 위험한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피고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 충만하셨습니다. 보통 성령 충만하면 시험이 비켜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성령 충만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니 사탄도 함께 일합니다. 마귀 사탄이 예수님께 시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입니다.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의 배고픈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건드리면서 과정을 건너뛰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시험을 말씀으로 잘 이겨냅니다.

두 번째 시험입니다. 높은 산 꼭대기로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나에게 엎드려 절하면 이 영광과 권위를 너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사탄에게 절한다는 것은 사탄의 방식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만 내 아버지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두 번째 시험도 이깁니다.

이제 세 번째 시험입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 성전과 사탄의 활동

1-1. 성전에도 마귀가 있다

우리는 이 9절 말씀을 읽으면서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성전의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할 때 성전이라고 하면 완전한 곳, 그리고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좌정해 계시기 때문에 완전한 곳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이 그곳에서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성전은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전에 마귀가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마귀가 예수님을 자유롭게 시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생각하기를 성전은 완전히 영적으로 무균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악한 사탄 마귀가 감히 성전에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에 마귀가 있다니, 이걸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 전체를 읽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배웁니다. 에덴동산, 하나님이 창조하신 곳 아닙니까? 그런데 에덴동산에도 시험이 있었습니다. 사탄 마귀가 뱀을 통해서 하와를 시험했습니다. 에덴동산도 영적으로 완전한 무균실이 아니었습니다. 사탄 마귀의 시험이 있었고, 유혹이 있었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죄가 들어옵니다.

첫 번째 교회 공동체인 초대교회, 신령한 곳 아닙니까? 사도들이 한 번 설교하면 수천 명이 회개했던 곳입니다. 성령 충만한 역사가 일어났던 곳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도 사탄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과 히브리파 유대인 과부들이 구제 문제 때문에 서로 갈등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공동체에도 죄가 들어옵니다. 첫 번째 교회가 이랬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는 알고 있어야 됩니다. 교회에 사탄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면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목사님, 교회가 왜 이래요? 교회에 왜 저런 사람이 있습니까? 교회가 왜 이렇게 시끄럽고 분열됩니까?"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너무 신령하게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완전하거나 안전하지 않습니다. 사탄 마귀가 활동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깨어 있어야 됩니다.

1-2. 마귀는 사람을 통해 일한다

여기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데, 마귀는 사람을 통해서 일한다는 사실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따라 합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세워서 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시는데, 사탄 마귀도 사람을 조종해서 그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일할 때 우리는 마귀의 일에 앞잡이가 되면 안 됩니다. 에덴동산을 보십시오. 사탄 마귀가 뱀을 통해서 하와에게 침투합니다. 하와가 에덴동산을 망치는 도구로 쓰임받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교회에 탐욕을 심는 도구로 쓰임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습니다. 출애굽 공동체가 하나님이 약속하고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다운 땅입니까? 첫 번째 전투인 여리고성 전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가 아간을 조종해서 거기에 탐욕과 도적의 마음을 심습니다. 아간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하와도 사탄 마귀의 도구로 쓰임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아 주의 일꾼이 되어야지, 마귀의 도구로 쓰임받아서 사탄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그렇게 되고 맙니다. 교회가 갈등하고, 교회가 분열하고, 교회 공동체에 죄가 들어오는 것은 사탄이 사람을 통해서 집어넣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통로가 되면 안 됩니다. 일평생 신앙생활하면서,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공동체의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야지, 어떻게 사탄 마귀의 일꾼으로 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꾼인가? 나는 사탄에게 조종받는 사탄의 앞잡이인가? 그건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항상 경계해야 됩니다. 자칫 잘못해서 우리가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세 번째 시험의 치명성

이제 사탄이 예수님에게 이런 시험을 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 주님을 세우고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사탄 마귀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네가 여기서 뛰어내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들을 보낼 것이다. 주의 천사가 날갯짓하며 날아와서 너의 발이 사뿐히 착지하도록 도울 것이다. 그렇게 유혹합니다. 번지점프는 줄이라도 매달고 뛰어내리는데, 이건 그냥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뛰기만 하면 천사들이 너를 받들어 다치지 않게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절에 성전 남동쪽 구석에 가면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기드론 골짜기가 보입니다. 성전 남동쪽 가장 높은 곳에서 기드론 골짜기까지 높이가 무려 137미터 정도 됩니다. 137미터는 요즘 건물의 높이로 따지면 약 40층 정도 빌딩의 높이가 됩니다. 고층 빌딩 아닙니까? 거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성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 제사장을 만나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 세계 각지에서 성전을 순례하러 오는 순례자들, 시골에서 성전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북적입니다. 그런데 그 높은 곳에서 예수님더러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유혹이 왜 치명적인 유혹이 되는가?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에게도.

2-1. 자기 과시의 욕망

첫 번째는 자기 과시의 욕망을 한껏 자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탄은 자기 과시의 욕망을 이 시험을 통해서 제대로 자극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사탄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너 메시아라면서? 하나님께서 너를 이 땅에 보낸 메시아라면서? 그러면 메시아인 걸 한번 보여 봐. 메시아라는데 왜 메시아임을 입증하지 않는 건가? 네가 정말 메시아라면 가장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다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 봐. 그게 네가 메시아임을 입증하는 것 아닌가?" 너를 나타내고 표현하고 입증하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에게 왜 유혹이 되는가? 그렇게 하면 예수님의 사역이 쉬워집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해야 되는 유일한 한 가지가 있다면 복음 전파 아닙니까?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시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백성들을 죄의 자리에서 건져내고 구원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한 방에 해결하는 것이 제일 쉽습니다. 사탄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쉽게 가자고. 어렵게 가지 말고 쉽게 쉽게 편하게 하자. 한 번에 네가 메시아임을 보여주고 이 많은 백성들에게 네가 어떤 분인지를 나타내 보여라." 이렇게 사탄이 유혹합니다.

여러분, 이게 과연 하나님의 방법입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예수님은 이 사탄의 유혹에 대해서 일절 응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역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과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녔다고 했습니다. 발품을 팔았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녔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세 가지 단어로 얘기했습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셨다고. 제자들에게 우리 주님이 말씀을 가르칩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설교하셨습니다. 병자들이 주님께 나아오면 그분들의 병을 주님이 제대로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하신 방법은 한 영혼 한 영혼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주님이 철저하게 그들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소문이 수리아 온 땅에 널리널리 퍼져 갔습니다. 주님은 한 방에 해결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차근차근 한 사람 한 사람부터 그 사람을 제대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변화시키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기적을 행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주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이라면. 그런데 기적이 사람을 변화시키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보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광야에 접어들자마자 그들이 불평합니다. 물이 없다고. 물을 주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먹을 것이 없다고 고기를 달라고 불평합니다. 기적이 있어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한 사람을 붙들고 살아내고,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눈물로 기도하고, 호소하고, 애쓰고 힘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주님께서 사람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건너뛰라고, 쉽게 쉽게 가자고, 네가 메시아인 것을 보여서 한 방에 해결하자고 유혹합니다. 이건 대단히 유혹이 됩니다. 그럴 능력이 없는 분이라면 유혹받지 않지만, 그럴 능력을 가진 예수님이라면 유혹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한 번에 해결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또 무너집니다. 이제 좀 성장했다 싶은데 또다시 원점입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또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이루어 갑니다. 우리의 가정도, 일터도, 교회도, 내 신앙도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끊임없이 수고하고, 매일의 수고와 성실이 쌓여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온전히 감당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높은 곳에서 자유낙하하십니다. 만약에 천사가 그를 받들어 세운다고 합시다. 이게 하나님께 무슨 영광이 됩니까?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쇼 아닙니까? 사람들은 박수칠 것입니다. 환호할 것입니다. "마침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놀라워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 그건 아무런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공동체에서 많은 성도들이 받는 유혹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 이것도 할 수 있는데, 나 이런 능력이 있는데, 나 이 정도 재능이 있고 이 정도 물질이 있고 이 정도 권력이 있고, 이거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지 않으니까" 답답해합니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는 우리가 무엇을 보여드리고 있는가? 하나님께 보여드릴 게 있습니까? 내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보시고 "너 정말 잘하는구나.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실 만한 그 무엇인가를 우리가 하나님께 보여드린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런 기적을 행하는 건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놀랍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말씀을 보면 고넬료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넬료의 신앙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 깊게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기도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우리의 기도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나의 기도의 깊이가 얕은지 깊은지, 넓은지 좁은지,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마음으로 기도하는지, 다른 마음을 품고 기도하는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만큼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께 보여드릴 만한 건 별로 없습니다.

고넬료는 구제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구제.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구제입니다.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하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욕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생각하십시오.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보여드릴 수 있는지,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내가 뭔가를 보여드려서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그걸 살펴야 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지 사람 앞에 사는 게 아닙니다.

사탄이 "뛰어내려라. 사람들에게 보여줘라." 이 자기 과시의 욕망은 우리를 자극하지만, 그때 생각하셔야 됩니다. 이건 치명적인 유혹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된다.

2-2. 상식 파괴의 위험

두 번째 이 유혹이 위험한 까닭은 상식을 파괴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137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는 것이 상식입니다. 죽어야 정상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상식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비상식적이지 않습니다. 몰상식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자연 법칙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자연에는 물리학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중력의 법칙이 있습니다.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인과관계의 법칙들이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우리는 그 법칙에 따라서 병원에 가야 됩니다. 의사를 만나고 약 처방을 받아야 됩니다. 좀 더 심하게 아프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수술을 받아야 됩니다.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수술을 거부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기적은 어떻게 된 것인가? 우리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기적, 사복음서에 다 나오는 기적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분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마음만 먹었다면 남자만 5천 명, 여자, 노인, 어린아이까지 수만 명이 되는 사람들을 벳세다 들판에 앉혀 놓고 고급 레스토랑의 셰프 같은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주님은 그걸 근사하게 차려서 "이걸 먹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 어떻게 하셨습니까?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얘기했습니다. 준비하라는 말입니다. 가져오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뒤져서 오병이어를 가져왔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그걸 가져오자 주님이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기적은 우리의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병이어의 바탕 위에 우리 주님의 기적이 집을 지었습니다. 그 당시 백성들의 현실 위에 우리 주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비상식적이고 몰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8절에서 30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우리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누군가가 망대를 짓는다면 당연히 비용을 계산하고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의욕에 앞섭니다. 열정에 앞섭니다. "한번 시작해 보자. 돈이 없더라도 까짓것 되겠지. 믿음으로 한번 해보자." 시작했는데 땅만 파고 기초만 쌓고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믿음으로 하겠다고 기도했는데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세워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왜 이렇게 했느냐"고. 그게 믿음입니까?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을 보십시오. 많은 교회들이 믿음으로 하겠다고 하면서 규모에 맞지 않는 대규모 건축을 시작합니다. 교인들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재정 규모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상황들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믿음입니까? 시작했습니다. 하다 말고 멈추어 버립니다. 건물은 지었습니다.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빚을 갚을 수가 없습니다. 이단들에게 그 건물들이 팔려 나갑니다. 신천지가 그런 건물을 삽니다.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가 그 건물을 삽니다. 가슴 아픈 일 아닙니까? 그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그게 무슨 믿음입니까?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비상식적이고 몰상식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이성과 판단력과 분별력, 이건 일반 은총에 해당되는 일입니다. 왜 그 은총을 우리가 무시합니까? 믿음이라고 하는 건 내가 받은 일반 은총과 이성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그걸 인정하고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잘 갈고 닦아서 그 위에서 내가 최선을 다하면, 그다음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것이 기적이고 놀라운 역사입니다.

사탄이 말했습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라." 이 유혹은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비상식적으로 한번 도전해 봐. 그러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걸 보여 봐."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주신 이성과 논리와 판단력 위에 집을 짓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게 진짜 믿음입니다.

2-3. 말씀의 왜곡

세 번째 이 유혹이 위험한 까닭은 사탄도 말씀을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은 시편 91편 11절과 12절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가져와서 인용했습니다. 사탄이 이 구석에 있는 말씀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 적재적소에, 이 타이밍에 이 말씀을 가져올 줄 사탄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사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말씀이 그 구석에 있는지도 아마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적어도 우리보다는 성경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사탄은 성경을 굉장히 잘 알고 있습니다. 대단히 깊이 있게 알고 있고, 많은 구절들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치명적인 약점도 있습니다. 마귀 사탄은 자기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대로 말씀을 가져와서 인용합니다.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에 따라서 말씀을 흐름 안에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시편 91편 11절과 12절 말씀은 우리가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됩니다. 91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가 어떤 자들입니까? 하나님 은혜 아래 살고 있는 성도들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역자들이요, 훈련받은 사람들이요, 사명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의 일을 감당하다가 위기에 닥칠 때,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위험한 일이 닥칠 때도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서 너의 발을 받들어 다치지 않게 하시리라. 그 말씀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믿음으로 온전하게 그 일만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너의 뒤를 지키시고 돌봐 주신다. 그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런 맥락으로 똑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과 18절을 보십시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들고 나가서 선교하고 전도하는 자들이 밀림에서 뱀을 만나서 뱀에 물리더라도 그 독이 그 몸에 퍼져가지 않을 것이고, 독을 마신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의 복음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보았습니다. 뱀에 물려도 괜찮습니다.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 용감하게 그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뒤를 봐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감당할 때 두려움이 있을 때 이 말씀 붙잡고 나가라고 시편 91편도 기록된 것이요, 예수님이 마가복음 16장 말씀에서 하신 말씀도 바로 그 맥락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 맥락을 잘라 먹습니다. 자기 과시를 위해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일을 쉽게 하기 위해서 "성전에서 뛰어내려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너를 받들어 주실 것이다." 사탄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유혹을 견디고 이길 수 있습니까?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마귀 사탄보다는 성경을 잘 알아야 됩니다. 사탄 마귀보다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됩니다. 그걸 분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마귀 사탄보다 성경을 모르면 평생 끌려다닙니다. 매번 집니다. 뻔한 싸움입니다. 사탄도 성경을 알고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읽지 않고, 깨닫지 않고, 그 말씀 붙들고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유혹에서 이겨내겠습니까?

정신 차려야 됩니다. 제대로 정신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부지런히 읽고 마음에 새기고 암송해야 됩니다. 그래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이 치명적인 이유를 잘 되새기고, 여기에 지지 않고 승리하는 주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전은 완전하고 안전한 곳이 아니라, 그곳에도 사탄 마귀가 활동하는 곳임을 보았습니다. 주여, 우리가 마귀의 도구로 쓰임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과시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도록 도우시고, 일을 쉽게 쉽게 하려는 욕망에 쓰러지지 않도록 도우시며, 믿음이라고 하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 은총의 보편적 이성 위에 집을 짓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부지런히 읽고 또 읽어서, 마귀 사탄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고 깨닫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