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받으시더라-4 (눅 4:1-13)
1. 진실과 거짓의 경계
미국의 실리콘 밸리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IT 기업을 선도하고 이끌어가며 혁신을 주도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글, 애플, 인텔 같은 기업들의 본사가 있는 곳이고, 수많은 연구 인력들이 그곳에 모여서 연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은 대단히 중요한데, 얼마 전에 그곳에 혜성같이 나타났다가 바람같이 사라져 버린 테라노스라는 기업이 있었습니다.
이 기업을 창업한 사람은 1984년생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여성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력이 좀 특이합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인 스탠퍼드 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다니지 않아서 학교를 그만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테라노스라는 회사를 창업합니다.
이 사람은 대학에 들어올 때 한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피 한 방울로 인류의 모든 병을 진단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과연 가능할까 하는 기대 반, 설렘 반, 의심 반을 가지고 대학에 왔습니다. 피 한 방울만 떨어뜨려서 검사해 보면 각종 유전병이나 암 진단까지 가능한 기술을 왜 만들 수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화학공학과에 지원했는데, 그가 만났던 모든 교수들과 연구원들은 다 부정적이었습니다.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학교를 그만두어 버렸습니다. 창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디슨이라는 진단 키트를 만들었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투자자들을 모집하는데 투자자 모집 방법이 아주 단순했습니다. 자신의 비전을 명확하게 선포합니다. "인류를 병으로부터 자유하게 하고 싶다." 이것이 그가 내건 슬로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력과 스토리를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사실 흥미가 가는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똒똑한 사람입니다. 공부를 잘했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명문대학에 들어갔는데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비전이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미국의 정재계 인사들, 문화계 인사들 등등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입니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과 SNS 팔로우를 맺습니다. 그리고 인맥을 과시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엘리자베스 홈즈가 인플루언서가 되어 갑니다. 그리고 이 인플루언서를 기반으로 해서 투자자들을 유치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를 지지합니다." 이렇게 각종 선전 도구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투자를 앞다투어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기업이 최대치를 뽐낼 때 우리나라 돈으로 기업 가치가 13조 2천억까지 치솟았습니다. 엄청난 기업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연구원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연구원들을 뽑을 때 비밀 유지 각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연구소를 차려 놓고 사람들을 모아서 연구하게 하지 않습니다. 각자 분산시켜서 개인 사무실을 다 두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겼고, 연구원들은 연구 키트 에디슨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이건 시중에 나와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고 조잡했습니다. 문제가 많았습니다. 아마 엘리자베스 홈즈의 생각은 우선 투자를 받고 시간을 벌고 난 이후에 제대로 한 방을 터트리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연구원들이 증거를 수집했고, 이를 이상하게 여겼던 월스트리트저널이 심층 취재에 들어갑니다. 2015년에 사기 행각은 꼬리를 잡히고 2018년에 회사는 파산했습니다. 결국 재판을 거쳐서 엘리자베스 홈즈는 2022년에 징역형을 선고받고 지금 감옥에 가 있습니다. 21세기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사실 전 재산을 투자한 사람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뭘 보고 투자를 하겠습니까? 논리적으로 상식적이라면 사람들은 정확한 정보를 요구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여기에 투자할 만큼 정보가 있느냐, 그걸 요구해야 합니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실험 데이터를 요청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요구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이 이 사람과 인맥을 맺고 지지하니 "설마 거짓말이겠어?"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은 다 투자를 결심했습니다. 결국 그것이 그 사람도 망하고 그 기업도 파산하게 만든 것입니다. 모두가 다 이런 사람들의 거짓에 놀아나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사실 확인을 잘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팩트 확인을 잘하지 않습니다. 그저 감정적으로 스토리에 열광하고 거기에 꽂히면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세상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속이려고 합니다. 사탄의 권세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서 있어야 될 삶의 자리는 변함없고 틀림없는 진리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미래도 영원히 변함없고 틀림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 위에 뿌리를 내리고 그 위에 집을 지어야 우리는 속임수에 당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우리 예수님께서 사탄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 높은 곳에 세우고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며 "나에게 엎드려 절하면 이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너의 발을 받들어 다치지 않게 할 것이다." 세 번째 시험은 치명적이고 강한 유혹이었습니다. 성전 안에도 마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사람들의 자기 과시의 욕구를 사탄은 계속해서 자극합니다. 사탄은 상식을 파괴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사탄 마귀도 성경을 너무 잘 알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세 번째 유혹에 대해서 우리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아주 단순한 대답처럼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6장 16절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2-1. 맛사의 교훈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언급한 맛사(מַסָּה)가 중요합니다. 이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그때 광야에서 르비딤이라는 곳에 도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광야 르비딤에서 그들은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물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물을 달라고 계속 외쳤습니다. 하나님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출애굽기 17장 6절과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מְרִיבָ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이 7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시험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을 주시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고, 물을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들은 단정하고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 시험하다라는 의미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출애굽기 17장까지 오는 시간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한번 되새겨 보셔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건지기 위해서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일강을 피로 물들게 하셨습니다. 흑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특히 열 번째 재앙,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을 다 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안에 있으면 죽음의 사자가 지나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죽음의 사자를 그 피를 보고 지나가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죽음을 경험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백성들은 다 죽음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열 가지 재앙, 다 하나님이 하신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다 행하신 기적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홍해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섰을 때 홍해를 갈라 놓으셨습니다. 마른 땅같이 건넜습니다. 뒤따라 들어오던 이집트 군대가 홍해에 다 수장당했습니다. 그리고 광야가 펼쳐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기적입니다. 만나도 내려 주셨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17장에 와서 다시 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하나님을 떠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검증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하나님이 이만큼 일하시고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당신의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 이 물을 주시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물을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검증하고 시험대에 올려 놓고 있습니다.
2-2. 신뢰와 시험의 차이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사람들이 만나서 인간관계라는 것을 만들어 갑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사귀고 교제하고 사건과 사건들이 만나서 오랫동안 시간이 지나면 신뢰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래서 친구가 됩니다. 그 세월이 10년이 지나고 20년 30년이 지나면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결혼해서 40년, 50년을 사는 부부도 이렇게 서로 친밀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신뢰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면 주변에서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해도 나는 그 사람을 신뢰합니다. "저분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을 가장 잘 압니다. 내 아내는, 내 남편은, 내 친구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는 믿어야 하지 않습니까?
인간관계도 그러한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보여 주신 것이 있지 않습니까? 열 가지 재앙 보여 주셨고, 홍해를 갈라 주셨고,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여 주셨고, 만나를 주셨으면, 이제는 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물이 없으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물이 없습니다. 지금껏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셨는데 지금 물이 없는데 하나님, 도와주실 거죠. 물 좀 주십시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무작정 원망부터 하고 봅니다. 불평부터 하고 봅니다. 모세와 아론을 죽일 듯이 물어뜯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교만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물을 주시면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고,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라고.
우리 예수님은 그것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껏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셔서 보여 준 것이 있지 않느냐? 그러면 이제 제발 하나님을 신뢰하라.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시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속인 적이 있습니까?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만나고 지금껏 오면서 하나님과 많고 많은 관계들, 하나님과 많고 많은 사연들을 쌓아서 여기까지 오셨지 않습니까? 때마다 기도할 때 하나님 들어 주셨고 응답하셨고,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복을 누렸고 행복했습니다. 그 관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합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만 닥치면, 문제만 닥치면 "하나님, 이것 들어 주셔야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십니다. 들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떠보고 계속해서 검증한다면 하나님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평생 동안 키웠는데, 지금껏 부모가 자식에게 쏟아부은 사랑이 있는데, 어떤 상황만 닥치면 "당신이 내 부모임을 증명하라"고 말한다면, 그것 얼마나 불쾌하고 마음 아픈 일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사탄은 그렇게 우리를 부추깁니다. 하나님을 검증해 보라고. 진짜 그 하나님이 하나님이 맞는지 달아 보라고. 이것은 마치 우리가 공장에서 시제품을 만들어서 시험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시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험적으로 시제품을 만들어서 테스트해 봐야 합니다. 이 제품이 불량인지 괜찮은지 100번이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돌려 봐야 합니다. 그래서 괜찮으면 시중에 내놓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검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일들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알고 있습니다. 이 세 친구들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왕 앞에 섰습니다. 왕이 이 세 친구들의 재주를 아깝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지금이라도 내가 만든 금 신상에 절하면 너희들을 살려 주겠다." 했습니다.
그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이렇게 말합니다. 다니엘 3장 17절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왕이 세우신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지금껏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이들이 전적으로 100%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해 주시면 감사한 것이고, 기도 응답하지 않으셔도 하나님의 그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신뢰하는 자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그 어디쯤에 와 계십니까? 사탄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부채질을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야, 이번이 좋은 기회야. 너 간절하잖아. 이 기도 제목 절실하잖아. 그러면 너 의심스러웠는데 이 기도 제목 응답하시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올인한다고 이야기해 봐. 앞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이야기해 봐. 그런데 들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것이라고." 사탄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때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시험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하나님은 내가 신뢰하고 믿어야 될 분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계속 달아 보고 검증하고 하나님을 테스트하는 그런 위치에 있는 자가 아니라고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끝나지 않는 영적 전투
13절을 보십시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세 가지 시험을 마귀가 했습니다.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 높은 곳에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고 "나에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영광과 권세를 너에게 주겠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그리고 나서 우리 예수님이 말씀으로 이겨내시자 마귀가 떠났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얼마 동안 떠나니라"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마귀가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패배를 선언하고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 하고 엎드려 절하고 도망가 버린 것이 아닙니다. 얼마 동안 떠났다는 말은 다시 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사탄 마귀는 다시 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마치실 때까지 마귀는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괴롭혔습니다. 주님을 시험했습니다.
몇 가지 예만 들어 보면,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통해서도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베드로가 신앙 고백을 멋지게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체포당하고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 앞을 막아섭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사탄이라고까지 책망하셨을까요? 그만큼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제자가 얼굴이 창백하게 되어서 그 앞에서 예수님을 만류하니 주님도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것을 끊어 내기 위해서라도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강력하게 외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 중에 사탄은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통해서도 주님을 시험했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사탄은 유혹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6절과 37절을 보십시오.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왜 십자가에 매달려서 이 짓을 하고 있느냐? 내려와라. 유대인의 왕이 이것이 뭐냐? 벌거벗김을 당하고 손발에 못이 박혀서 옆구리에 창이 들어가서 이것이 뭐냐고 사탄이 계속 유혹합니다.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비슷하지 않습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그렇게 유혹했던 사탄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 그 순간까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사탄이 얼마나 집요한지 모릅니다. 십자가 지시지 못하도록. 사탄은 끝까지 예수님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이것이 사탄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보면 사탄이 우리에게도 이렇게 유혹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조차 이렇게 시험하는데 그 사탄이 우리라고 가만히 두겠습니까? 우리 인생, 우리의 목숨 끝나는 날까지도 마귀 사탄의 유혹은 끝나지 않습니다.
학교를 다니면 졸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학위를 받는 것이 있고, 기술을 공부하면 수료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탄의 유혹도 이제 끝나는 지점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정도 되었으면 끝났다. 이제 이것은 완전히 마스터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시험은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마귀 사탄의 유혹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목숨 다하는 날까지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옵니다.
여러분,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절망적입니까? 낙심되십니까? 이것 견딜 수 있을까? 이겨낼 수 있을까? 하지만 절망할 필요도 낙심할 이유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이 마귀 사탄의 유혹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이미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높이에 맞게, 우리 수준에 딱 맞게 이렇게만 하면 얼마든지 유혹은 극복할 수 있다고 주님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4. 말씀으로 이기는 삶
여러분, 예수님이라면 하나님의 아들 아닙니까? 하늘 보좌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계속 예수님 앞에서 얼쩡거립니다. 괴롭게 합니다. 귀찮게 합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불러서 "이 사탄 마귀 좀 묶어다가 저기 던져 버려라." 그럴 능력이 없는 분입니까?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데 주님이 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못 하니까. 우리는 그럴 능력이 없으니까. 우리 예수님이 인간의 눈높이에 딱 맞추셔서 우리가 예수님 따라 하기만 하면, 이 방법으로 하기만 하면 마귀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세 가지 유혹을 받으십니다.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 그때 주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 3절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네가 나에게 엎드려 절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사탄이 유혹할 때 예수님 뭐라고 하십니까?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 13절을 인용하셨습니다.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면 천사가 너의 발을 받들어 다치지 않게 하겠다." 할 때 주님 하신 말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탄의 공격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붙들고 있으면 어떤 사탄의 시험에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없어서 문제이지, 말씀을 가지기만 하면 사탄의 유혹에도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갈고닦고 입에 두고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이야기했습니다. 아무쪼록 믿음직한 영적 전투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서서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까지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잘해도 무승부입니다. 비기는 것밖에는 못 합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졌습니다. 적의 불화살을 소멸합니다. 방패 뒤에 숨어서 저기 불화살을 쏠 때까지 우리는 그 뒤에 숨어 있어야 합니다. 저기 불화살을 다 쏘았습니다. 화살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갈 수가 없습니다. 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들이 다시 불화살을 준비해서 또 쏩니다. 그러면 방패 뒤에 숨어서 또 기다려야 합니다. 투구도 쓰고 호심경도 붙이고 신발도 신고 허리띠도 띠고 방패도 가졌지만 한번 휘둘러 볼 무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유일한 공격 무기 하나를 말씀하셨는데,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유일한 공격 무기가 성령의 검인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했습니다. 여기서 "가지라"는 말은 데코마이(δέχομαι)라는 뜻입니다. 영접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놓치지 말고 꽉 쥐고 있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가 칼을 꽉 쥐고 놓지 않는 것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터에 나가서 무기인 칼을 손에 쥐고 놓치지 않고 붙잡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던져 버리고 저기 던져 버리고 잃어버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데코마이해야 합니다. 말씀을 영접해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꼭 붙들고 사십시오.
그러면 어떤 사탄 마귀의 유혹에도 우리는 견디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교회가 중요합니다. 교회 사명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교회를 구호 단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자선 단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100% 옳은 말도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성도들을 불러서 훈련시켜서 내보내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훈련시켜서 세상에 나가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말씀을 가르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가장 우선된 사명이고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 없는 교회가 어떻게 교회이겠습니까? 말씀을 익히고 배우고 말씀을 제대로 알아서 그 말씀을 붙들고 나가야 세상에서 악한 사탄 마귀와 싸워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이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온전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부족한 것을 채운다는 말 아닙니까? 우리의 부족함을 보고 사탄은 우리를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내 부족함이 노출되는 순간 사탄은 그 약점을 노리고 끝까지 물어뜯습니다. 놓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 주고 채워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 마귀의 공격에 안전합니다.
여러분, 지금쯤 되면 내년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일터에서 저마다 다양한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하지만 내 영혼을 위해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까? 여전히 내년에도 사탄의 유혹과 시험은 계속될 것입니다. 내 부족한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메꿔야 합니까? 실력이 부족하면 노력하면 됩니다. 하지만 믿음의 백성들은 나의 영적인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들어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그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을 위한 영적인 계획 가운데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견고한 믿음의 백성이 되어 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탄 마귀가 우리를 지속적으로 공격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게끔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지금껏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신뢰합니다. 신뢰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사탄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리를 시험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까지 시험했던 사탄이 우리를 끝까지 시험할 텐데, 그때 지지 않고 이겨내기 위하여 진리의 말씀, 하나님 말씀 위에 터 닦고 집 짓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씀을 굳게 붙잡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셨사오니 그 말씀을 가지고 오직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