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강 / 성령의 능력으로 (4:14-19)

성령의 능력으로 (눅 4:14-19)

고대 그리스에서 내려오는 이카루스의 날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카루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매우 뛰어난 장인이자 발명가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아테네에서 큰 죄를 지어 쫓겨나게 됩니다. 크레타 섬으로 유배를 갔는데 그곳에서도 역시 큰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는 미궁의 가장 높은 곳에 갇히게 됩니다. 그곳은 사람의 힘으로는 탈출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날개가 있는 새라면 모를까, 사람은 절대로 도망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이달로스는 장인이자 발명가였습니다. 그가 곰곰이 살펴보니 새들이 그곳에 와서 많이 쉬었다 갑니다.

그는 새의 깃털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깃털을 잔뜩 모은 후 밀랍으로 연결하여 등에 달았습니다. 시험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것 하나와 자기 것을 만들고 아들 이카루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줍니다. "이건 진짜 날개가 아니다.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녹여서 이어 붙인 가짜 날개다. 그러니 너무 높이 날면 밀랍이 태양빛에 녹아서 떨어져 죽는다. 너무 높이 날지 말거라. 너무 낮게 날다가 바닷물에 깃털이 젖으면 무거워져서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으니 너무 낮게 날지도 말거라. 너는 그냥 나만 따라오면 된다. 적당하게 날아야 한다." 아버지가 신신당부했습니다.

아들 이카루스가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날아올랐습니다. 그런데 이카루스는 하늘을 나는 것이 난생처음이라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갑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태양볕에 밀랍이 녹고 아들 이카루스는 추락해서 죽고 맙니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진짜와 가짜의 차이입니다. 진짜 날개를 가진 새들이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새가 아무리 높이 날아도 녹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새가 아무리 낮게 날아도 바다에 빠져 죽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새는 진짜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짜 날개를 가진 사람은 걱정합니다. 너무 높게 날지도, 낮게 날지도 못합니다.

1. 성령의 능력으로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은 예수님 사역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일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제대로 된 사역을 하려면 성령의 능력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피곤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아프지도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 없이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일하면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마치 가짜 날개를 달고 있는 이카루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올 한 해 우리의 인생은 진짜였는지, 아니면 내 힘으로 하는 가짜 날개를 가지고 살았는지를 돌아보고, 새해에는 어떻게 성령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는지도 함께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4장 14절과 1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우리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갈릴리에 가셨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에 퍼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칩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칭찬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의 기자 누가는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일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누가복음 3장 21절과 22절, 4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예수님께서 겸손하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뭐라고 합니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겸손한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성령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십니다. 사십 일 동안 금식기도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1-1. 겸손과 성령

겸손할 때 성령을 받습니다. 겸손한 자에게 임한 성령은 마귀의 시험도 능히 이기게 합니다. 예수님은 그 성령을 가지고 이제 능력으로 갈릴리에서 일하셨습니다. 능력으로 일하시니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좋아집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좋아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굉장히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여기에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여기에 걸리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기에 불편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 겸손하시고, 성령 임했고, 임한 성령으로 죄와 싸워 이기고,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칭송했습니다. 굉장히 자연스럽습니다. 만약 여기에 성령이 없다고 한번 가정해 보십시오.

성령 없이 마귀 사탄의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함 없이, 성령과 함께하는 말씀 사역 없이 사탄의 시험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성령과 함께하지 않고 사십 일 동안 금식기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한 끼만 굶어도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셔야 사십 일 금식기도 하고 마귀 사탄의 유혹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성령과 함께하지 않고 내가 내 이름을 나타내도록 아무리 애쓰고 힘써 봐도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방팔방으로 나를 선전하고 다녀도 사람들은 저 사람을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함께하시니 그저 회당에서 말씀만 전했는데 소문이 인근 각처에 널리널리 퍼져갑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아주 편하게 되어갑니다.

우리가 성령과 함께하면 이렇게 편안하다는 말입니다. 올 한 해 살아오시면서 우리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우리 삶에 걸려 넘어진 것들이 있고 잘 안 된 것들이 있습니다. 하려고 열심히 애는 썼는데 문제가 생긴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을 한번 반추해 보십시오. 그 문제의 중심에 나만 있고 성령은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 없이 내가 우격다짐으로 한번 해보려고 노력하고 힘을 쏟아부었을 때, 그때 일은 잘 되지 않습니다. 하다가 마는 일이 많습니다. 주의 성령이 함께하셔야 일이 되는 것이지,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아무리 하려고 해도 잘 되지를 않습니다. 주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고 편안하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겸손 아니겠습니까?

1-2. 웃시야의 교훈

겸손한 자에게 성령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남유다의 여러 왕들 중에 웃시야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웃시야 왕은 처음에는 꽤 좋은 왕이었는지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역대하 26장 4절과 5절 말씀입니다.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알게 하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왕이었지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국정 전반을 운영하는 데, 큰 나라를 다스리고 운영하는 데 하나님께 항상 물었습니다. 그것이 겸손 아닙니까? 왕이지만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왕이지만 자기 소신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그런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주장은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서 겸손하게 뜻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형통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웃시야 왕이 이렇게 평생을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그는 이렇게 평생 가지 못합니다. 중간에 변질됩니다. 역대하 26장 16절과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강성하여짐에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웃시야가 손에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뭐라고 말합니까? 그가 강성하여짐에 그의 마음이 교만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잘 되니까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기 의지대로, 자기 주장대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성전 안에서도 제사장이 하는 일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자기가 분향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에게 나병을 내립니다.

비록 왕이라 하더라도 나병 환자는 격리시킵니다. 그가 별궁에 격리되어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 갇혀서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평생 동안 겸손했더라면 성령이 그와 함께하셔서 그의 평생이 자유롭고 행복했을 텐데, 그가 교만해지니까 일이 잘 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성령과 함께한다는 것은 나의 자아를 내리고 내 겸손함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는 뜻입니다. 올해 잘 안 된 일들도 있고, 새해에 많은 일들을 우리가 계획할 것입니다. 새해를 계획하는데 수많은 일들을 계획해도, 내 주장대로, 내 고집대로 내가 교만해서 일을 하면 새해에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잘 될 수가 없습니다. 이 계획하는 모든 일 가운데 나의 겸손이 첫째입니다. 하나님 앞에 물어야 합니다.

여쭈고, 무릎 꿇고, 기도하고, 뜻을 구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 겸손에 성령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늘 하시던 대로

누가복음 4장 1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예수님께서 자기가 자라신 나사렛 회당에 가셨습니다. 회당에 가셔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셨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늘 하시던 대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항상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예배드렸다는 말입니다.

랍비들의 말씀을 듣고, 랍비들의 설교를 듣고, 그들과 함께 토론하는 일들을 우리 주님은 항상 일생 동안 빠짐없이 지속적으로 하셨다는 말입니다. "늘 하시던 대로", 이 말씀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예수님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성령 충만하셨습니다. 겸손해서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 충만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에 충만하게 퍼져나가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성령에 대해서 오해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성령을 초자연적인 힘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 정도로 오해합니다. 이를테면, 성령을 받으면 방언하고, 예언하고, 병 고치고,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성령의 전부도 아닙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은 사람, 오늘 우리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성령받은 사람은 좋은 습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성령 없이 늘 하시던 대로 매주일 빠짐없이 예배 자리에 가서 성경 읽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어떤 성도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별다른 재주가 없습니다. 저는 능력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주일 성수 꼬박꼬박 잘하고, 새벽 제단 열심히 쌓고, 하루에 두세 장 성경 읽고, 교회에서 맡기는 큰일은 못 해도 자그마한 일 한두 가지 정도는 성실하게 하고, 매일 기도하고, 전도하려고 애쓰고, 전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이것이 그냥 작은 일입니까? 어마어마하게 큰일입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성령의 능력 없이 매주일 주일 성수를 수십 년 동안 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도우심 없이 매일 새벽 제단을 쌓고 성경을 두세 장 꼬박꼬박 읽을 수 있습니까? 성령의 도우심 없이 주의 전을 섬기는 일을 한두 가지씩 몇 년 동안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못 하는 일입니다.

2-1. 거룩한 습관의 힘

내 힘으로 한번 해보려고 "내가 올 한 해는 성경일독 해야지"라고 시작합니다. 내 능력으로, 내 힘으로 하려고 시작했다가 1~2월도 못 가서 그만 포기해버립니다. 새벽제단 한번 나와봐야지 하다가 금방 피곤해져서 못합니다. 주일성수 수십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섬김도, 봉사도, 예배도, 기도도, 말씀 읽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지속성이 떨어집니다. 못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셔야 이 모든 일을 늘 하던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백성들은 습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루의 일상 가운데 영적인 습관들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 일생 가운데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습관이 몇 가지나 있습니까?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같이 하는 일을 한번 적어보십시오. 똑같이 하는 일을 적어보면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영적인 거룩한 습관들이 몇 가지나 있는지요? 하루에 커피 한 잔은 반드시 마셔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매일같이 똑같은 드라마는 매일 봐도,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읽지 않습니다. 매일 루틴을 지켜가며 자기 몸을 위해서는 열심히 운동하지만,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손과 발이 수고하는 그 헌신의 수고는 당하지 않습니다. 하다 맙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성령의 힘을 덧입어서 일상의 자리가 강건해야 합니다.

사탄 마귀가 흔들어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만한 일상의 자리를 제대로 지켜가는 영적인 습관, 거룩한 습관이 매우 중요합니다. 새해를 설계하시면서 성령께서 나에게 임하시면 그 능력과 그 힘을 가지고 우리 일상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늘 하던 대로의 습관을 많이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부터 끝까지 늘 하던 대로의 습관을 계속해서 지켜가셨습니다.

2-2. 습관을 따라

누가복음 22장 39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예수님이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무엇을 따라 가셨습니까? 습관을 따라 가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감람산에 습관을 따라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러 가실 때도 우리 주님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기도는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늘상 있는 자신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이 기도하러 가시면, 그것이 일상이었으니까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 루틴이 되고 일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예배가 이벤트가 되면 안 됩니다. 우리 삶의 기도가 어쩌다 한 번 있는 특별한 일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 삶의 기도와 우리 삶의 말씀과 예배와 하나님 기뻐하시는 모든 일은 늘 하던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가족들도, 내 자녀들도, 내 믿음의 후배들도 그 습관을 따라, 제자들이 예수를 따라간 것처럼 그렇게 따라갈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1년에 몇 번 교회 나오는, 1년에 절기 때만 예배드리러 오는, 이것이 이벤트가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가 없습니다. 매 순간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것을 내 삶의 습관으로 온전하게 만들어서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백성으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예수님의 출사표

누가복음 4장 17절 말씀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회당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리가 상상하며 보아야 합니다. 회당에는 주로 그 회당에서 말씀을 낭독해주는 랍비가 있습니다. 랍비가 주로 말씀을 읽어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먼 데서 온 유력한 설교자가 성경 말씀을 읽고 해석해 줍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크게 두 가지로 읽어줍니다. 먼저 모세오경을 읽습니다. 모세오경을 읽고 난 이후에는 낭독자가 예언서 중의 한 부분을 읽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모세오경을 읽으시고 예언서의 말씀을 읽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읽으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과 19절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사야 61장 1절과 2절 말씀을 우리 주님이 낭독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자기 고향 마을에서 이 말씀을 공생애 시작 초기에 처음에 읽어주신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출사표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는 삼 년의 공생애 사역을 이 말씀을 붙들고 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에 일 년 표어가 있는 것처럼 우리 예수님은 자신의 삶에 년 전체의 중심되는 말씀을 이 말씀으로 붙잡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삼 년 동안 어떻게 일하셨는지가 가장 명확하고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말씀의 시작이 어떻습니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 말은 우리 주님은 성령과 함께 일하겠다고 결단하신 것입니다. 즉 성령 없이는 나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아닙니까? 하나님의 아들도 성령과 함께 일하시는데 우리가 뭐라고 성령 없이 일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령과 함께 일하시면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구약의 기름 부음을 받는 자,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삼중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내가 기름 부음을 받고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성령께서 나와 함께하셔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신다. 어디로 보내십니까? 가난한 자에게, 포로 된 자에게, 눌린 자에게, 눈먼 자에게 보내십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시고, 포로 된 자와 눌린 자들에게는 자유를 선포하라고 보내시고, 눈먼 자에게는 다시 보게 함을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우리 예수님 삼 년의 사역이 바로 이 세 가지로 집약됩니다. 하나하나 봅시다.

3-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가 누굽니까? 돈이 없는 자들입니까? 물질이 부족한 자들입니까? 그렇다면 복음서를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를 만나면 기도해서 돈을 만드는 기적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만나서 집을 사 준 적도, 땅을 사 주신 적도, 물질을 쏟아부어 주신 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 중에 한 가정,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 그들의 집에 가셔서 항상 전하신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가난한 자들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허한 자들입니다. 돈을 가져도 가져도 항상 마음이 메마른 자들, 그들을 위해서 우리 주님은 생명의 복음의 말씀을 전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께서 행하신 것,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 복음의 말씀을 매 순간 전하신 것이 주님 사역의 핵심입니다.

3-2. 눌린 자에게 자유를

두 번째,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로마의 압제로 정치적인 포로, 정치적인 눌림을 받는 자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모두가 죄에 포로 된 자, 죄의 짐을 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우리 예수님은 자유를 선포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실 때 죄 사함의 자유를 먼저 선포하셨습니다. 중풍병자의 네 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 친구를 메고 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님께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지붕을 뜯었습니다. 줄을 달아 내렸습니다. 중풍병 환자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중풍병자 낫고 싶은데 우리 주님이 먼저 하신 말씀이 죄 사함의 선포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쳐주셨습니다.

중풍병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죄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이 더 큰 고통이기에 주님은 죄에 포로 된 자, 죄 짐을 지고 고통받는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셨습니다.

3-3.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또한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예수님이 맹인들을 눈뜨게 하신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 눈먼 자들은 눈 뜨고 있으나 못 보는 자들입니다. 보고 있는데 모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과 함께 대화도 했습니다. 예수님과 논쟁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릅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모르고, 진리를 모르고, 천국을 모르는 자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그들을 눈뜨게 하겠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께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하신 모든 일, 누구의 일입니까? 주님이 하신 모든 일은 교회가 이어받아야 할 일입니다. 주께서 하신 모든 일은 교회에서 성도 된 내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죄 짐에 눌려있는 자들에게 그들의 속박을 풀어줄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교회가 되고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보고 있으나 못 보는 자들에게 진짜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전하는 교회가 되고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구호단체들처럼 교회는 돈을 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공동체, 바로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은 성령과 함께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해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성령과 함께하면 모든 일이 편안하고 순탄합니다. 가짜 날개가 아니라 진짜 날개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함께하면 거룩한 좋은 습관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과 함께하면 우리 주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계획하면서 우리 모두가 성령과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그 능력이 오늘 우리의 능력이 되고, 그 능력을 붙잡아서 우리 주님이 하신 그 사명을 온전히 이어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성령과 함께 일하기를 원합니다. 진짜 날개인 성령과 함께 일하면 모든 일이 편하고 순탄하다고 하셨습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행할 때는 일상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멈추었지만, 그러나 성령과 함께 거룩한 습관을 세워가기를 원합니다. 예배와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신앙생활 전반을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새해에는 거룩한 습관들을 많이 만들어 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예수님께서 주의 성령을 힘입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 된 자와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심을 선포하신 것처럼, 주여,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본받아 우리 교회도 우리 각자 성도들도 이 일에 동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장 본질적인 일, 가장 기본적인 일, 이 일을 성실하게 감당할 때 예수님의 제자다운 인생을 온전하게 살아가기에 부족함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