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자가 나타나 (눅 1:9-17)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는 척박하기가 이를 데 없고 추위도 굉장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역사에 기록되고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가 약 870년부터였습니다. 그런데 초기에 이 땅에 정착한 사람들은 이 땅이 굉장히 비옥한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지대 지역은 나무의 키가 작아서 나무를 벌목하고 정착하며 집 짓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고지대에는 목초지가 많아서 양이나 짐승을 목축하기에 굉장히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정착자들은 그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하던 방식대로 나무를 베고 벌목을 하고 집을 지었습니다. 양 떼와 염소 떼를 풀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무를 베었는데 더 이상 나무가 자라지 않았습니다. 양들을 풀어서 목초지에 풀을 뜯어 먹게 했는데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써 보아도 자기들이 살던 지역의 생태계와 너무 달랐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화산재가 날아와서 토양 위에 쌓였기 때문에 그 토양이 굉장히 얕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토양이 얕으면 생태계 복원력이 그만큼 떨어집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던 고향 땅과는 너무나 다른 땅이었습니다. 그걸 알 턱이 없는 그들은 약 천 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열심히 씨 뿌리고 안 되고, 절망하고 포기하려고 했다가, 그다음 세대가 또 하고 또 안 되고, 가난해지고, 사람들은 죽고 그 지역을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약 19세기 말쯤에 와서 그들은 이제는 농업을 포기하고 어업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때부터 20세기까지 그들은 탁월한 어업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섬나라 아닙니까? 둘러보면 전부 다 바다입니다. 배만 만들어서 띄우면 얼마든지 나가서 물고기 잡아와서 먹고살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그 나라의 1인당 국민 소득이 약 8만 5천 달러 정도 됩니다. 그리고 전 세계 7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정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기 싫어서, 귀찮아서, 인정하기 싫어서 그 길을 가지 않을 뿐입니다. 다 알고 있는데, 이미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바다로 배 띄워서 나가기 싫어서, 어쨌든 그곳에서 정착하고 살고 싶어서 그들은 천 년의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항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십시오.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살았습니다. 뒤죽박죽인 인생이 된 사람도 아마 있을 것입니다. 제대로 한번 해보려고 일을 하는데 그 일이 또 다른 문제를 낳고, 그 문제가 또 다른 얽히고설킨 문제를 낳습니다. 잘해 보려고 하는데 잘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정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기본을 지키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가랴가 우리에게 그 답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1. 예배는 모든 것에 선행한다
1-1. 사가랴의 예배 사역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입니다. 지식인입니다. 어려서부터 그들은 역사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 민족의 역사와 과거는 어떠했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나라가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고 에돔 사람 헤롯의 압제 치하에 있습니다.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주님 앞에서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모든 계명과 규례를 잘 지키고 흠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의인이라면 소박한 작은 소원 정도는 들어주셔야 되는데 가정에 자녀가 없습니다. 소원 성취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제사장의 직무를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오늘 본문이 알려 줍니다.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좀 쉽게 말하면 제사장이 예배를 인도했다는 뜻입니다. 사가랴 제사장이 예배를 인도하고, 백성들은 그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제사장이 예배를 집례하고 인도합니다.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앞에서 열심을 다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살아 숨 쉬는 그 공간, 귀하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1-2. 열심당의 비난과 예배의 우선순위
그런데 오늘 우리의 시각은 그렇지만, 그 옛날 그 자리에 있었던 유대인들 중에는 이것을 굉장히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젤롯(ζηλωτής)이라고 하는 열심당원들이 있습니다.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의 독립을 위해서 이 한 목숨 바친 자들입니다. 예수님 시절에도 열심당원들이 꽤 많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지금 너희가 한가롭게 예배나 드리고 있을 때냐? 지금 너희가 성전에서 기도나 하고 있을 때냐? 제사장들이여, 너희들은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이니 일어나서 혁명을 하자. 얼른 일어나서 로마를 향하여 전진하고 에돔 사람 헤롯을 전복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을 성취해야 되지 않겠느냐?" 열심당원들은 그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있는 사람들을 굉장히 무기력하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폄하했습니다. 그런 시각들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사가랴와 그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열심당원들이 그렇게 말하는 역사적 교훈, 역사적 배경도 있었습니다.
기원전 167년부터 기원전 142년까지 유대인들은 셀류쿠스 왕조를 향하여 독립 전쟁을 벌였습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너무 강력하게 압제를 하니까 견딜 수 없어서 유대인들이 셀류쿠스 왕조를 향하여 들고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혁명을 이끈 가문이 마카비 가문이었는데, 그 가문은 바로 제사장 가문이었습니다. 그 혁명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되찾았습니다. 기원전 142년에 유대인들이 독립을 했습니다. 100년 동안 그 독립된 나라가 존속했습니다. 이른바 하스몬 왕조가 100년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로마가 그 이후에 일어나서 그 왕조도 다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열심당원들은 제사장 집단이 그 일을 이끌었다는 데 의미를 두었습니다.
"너희들은 영적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이끌고 거리로 나가서 전투하고 백성들과 함께 맞서 싸워야 되는 존재들 아니냐? 지금 이 시국에 무슨 예배냐?" 그런 시각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들의 말이 헷갈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종과 우리의 처지와 우리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이런 것 다 제외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되는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우리 인간으로서 가장 우선순위로 해야 된다고 명시적으로 기록해 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일에 쉬셨습니다. 안식일을 하나님은 규정해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셨습니다. 십계명에도 안식일 규정이 있습니다. 그 말은 안식일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앞서야 되는 것이 예배입니다. 모든 것은 예배 그다음 그다음에 있는 것입니다. 남유다가 왜 망했습니까? 돈이 없어서, 실력이 없어서, 군사력이 약해서 망했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전 신앙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을 불태우시고 그 성전의 모든 기물들, 모든 금은보화들을 다 약탈당하게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망했습니까? 의인 10명, 예배드릴 만한 10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노아 홍수 사건이 왜 일어났습니까? 예배 공동체가 붕괴되어서 일어난 것 아닙니까? 예배드리지 않는 백성, 하나님 앞에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예배를 하나님께 경홀히 여기는 백성을 하나님은 심판의 대상으로 삼으십니다. 그다음 그다음이 있는 것이지, 예배는 모든 것에 선행하는 하나님 자녀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자 목적입니다. 그것을 사가랴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시위가 벌어집니다. 큰 소리가 들립니다. "지금 당장 제사장들은 나와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라. 백성들을 이끌고 나서라." 그런데 그는 먼저 해야 될 일이 예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백성들은 그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망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예배가 무너지면 그냥 다 망하는 것입니다.
2. 신실한 예배자에게 임하는 영광
2-1. 주의 사자가 나타나심
이렇게 성실하게 예배드리는 사가랴, 그리고 그의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서니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주의 사자가 향단 우편에 나타나셨습니다. 사가랴가 놀랐습니다. 더 나아가서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대단히 역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유다의 요아스라는 아주 훌륭한 왕이 계셨습니다. 요아스는 선정을 베푼 왕입니다. 그런데 그를 자식처럼 잘 길러 주었던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그러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고 난 이후에 요아스는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전에는 굉장히 괜찮은 왕이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도 선하고 백성들에게도 참 좋은 왕이었는데,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까 그는 갑자기 폭군이 됩니다. 사람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제사장이 왕에게 직언을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임금이시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자 요아스가 스가랴 제사장을 성전 안에서 돌로 쳐 죽이고 맙니다. 성전 안에서 살인을 했습니다. 왕이 제사장을 죽인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그때 이후로 하나님의 영적 임재가 성전에서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주의 사자가 찾아온 적이 없습니다. 천사가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성전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영광이 사라졌습니다. 수백 년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수백 년 동안 단절된 하나님의 영광이 지금 사가랴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사가랴가 제사장 아닙니까? 평생 동안 이렇게 살았습니다. 평생 동안 예배를 인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나타난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자기 아버지 제사장, 할아버지 제사장에게도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놀랍고 두려운 일입니다.
2-2.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우리는 시대를 탓합니다. 요즘 시절이 그렇지 않다고, 옛날과 다르다고, 옛날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불붙듯 일어나고 기적이 나타났는데 요즘은 그런 시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변했습니까? 사람이 변했습니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역사를 주관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지금도 똑같은 분이십니다. 여전히 동일하신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일하심은 과거나 현재나 지금이나 미래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변한 것은 세상이요, 변한 것은 사람입니다. 내가 변한 것이지,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한 것이지, 하나님이 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변한 것이 아닌데 우리는 하나님께 핑계 대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이 그렇지 않다고, 하나님의 영광은 이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사가랴가 세월이 악하고 암울하고 희망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에게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신실하게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있으니 주의 사자가 몇 백 년 만에 그에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여전히 주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꿈꾸고 그 일을 감당하려고 애쓰고 힘쓰는 사람,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서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당연히 일하시고 당연히 나타나십니다.
2-3. 사무엘
그것은 사무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상 3장 1절과 4절을 보십시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사무엘 시대를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야. 그래서 우리가 이상을 볼 수 없어."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보다 그 윗 시절 사사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사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보다 더 올라가면 여호수아, 더 올라가면 모세, 하나님의 임재가 모세를 통해, 여호수아를 통해, 사사들을 통해서 놀랍게 역사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맥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사무엘을 찾으십니다.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그에게 이상을 보여 주시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나타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성전의 등잔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등불은 꺼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교대로 일을 삼고 서로 순서를 정해 가며 성전 안에 등불을 켜는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성전의 등불, 성전 안의 등불은 성도들의 기도를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시절 제사장은 엘리입니다. 그의 두 아들은 홉니와 비느하스였습니다. 누구도 성전 안에 등불을 관리하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자기 처소에 가서 누워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배들입니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와서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누가 기도하는 자가 있는지 살피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쪽잠을 자 가며 불 안 꺼뜨리려고 성전에서 불 밝히며 매 순간 매 순간, 매일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악하고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시대라 할지라도 사무엘이 그 자리에서 기도하고 불을 밝히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당연히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는 주일 성전에 나오면서 기대감이 별로 없습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와서 그냥 한 시간 때우고 가면 그만, 그런 기대감 없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상을,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경험하고 만날 수 있겠습니까?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성취하심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려면 우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됩니다. 그래야 놀라운 주님의 역사가 사무엘에게 임하셨던 것처럼, 사가랴에게 임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오늘 우리에게도 임할 줄로 믿습니다.
3. 기본에 충실할 때 주어지는 축복
3-1. 사가랴에게 주어진 약속
사가랴에게 찾아오신 주의 사자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3절과 14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가정에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름하여 요한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것이 이 가정의 기쁨 아닙니까? 요한이 태어났으니까 너도 즐거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이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됩니까? 의아한 마음을 사가랴는 감출 수가 없습니다. 주의 사자는 이어서 요한이 태어나는 것이 왜 많은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지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15절에서 17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천사가 말씀하신 이 말씀이 세례 요한의 전체 사역을 다 요약하고 집약한 말씀이 됩니다. 먼저 주 앞에서 큰 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앞에서 큰 자가 된다, 천사가 말한 이 내용이 훗날 우리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 주 앞에서, 즉 예수님 앞에서 큰 자가 되는 것으로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 앞으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듣고 돌이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가 주 앞에 먼저 온다 하셨습니다. 준비하리라 하셨습니다. 그가 예수님보다 6개월을 먼저 왔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하나님 앞으로, 예수님 말씀 앞으로 먼저 잡아다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준비한 사역을 그가 열심히 감당했습니다. 그는 사라지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소리는 전하고 사라져 가는 것처럼 세례 요한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여기서 전해진 말씀 그대로 세례 요한이 살지 않습니까? 이것 때문에 너희 가정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다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사가랴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떨떨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사가랴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한 적이 없는데, 나는 이렇게 거대하고 원대한 소망을 하나님께 구한 적이 없는데, 그냥 소박하게 우리 가정의 기쁨이 될 만한 자녀 하나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뿐인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크게 응답하시는가?" 아마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원리를 깨닫습니다. 우리가 어떤 큰일을 하려고, 업적을 세우려고 도모하는 자에게 큰일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큰돈을 벌려고 돈 따라가는 사람들 중에 돈 버는 사람 보셨습니까? 나라에 큰 공을 세우려고 공적을 쫓아가는 사람에게 공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사람, 믿음의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지나서 그것이 자라서 열매가 되어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로 맺히는 것입니다. 사가랴에게 이런 놀라운 축복이 주어진 것은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의 기본을 지키며 예배드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큰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 업적을 향해서 그는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큰 공을 세우기 위해서 쫓아다니지 않았습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기본은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영적인 기본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생활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기도하지도 않았던 것, 그가 소원하지도 않았던 것까지 깊은 뜻으로 이루시고 열매를 맺게 해 주셨습니다.
3-2. 한나
한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 6절과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의 집에는 한 남편의 아내가 둘이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녀가 있습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습니다. 그의 대적 브닌나가 한나를 몹시 못 살게 굽니다. 괴롭힙니다. 뻐기고 자랑합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는 마음이 매우 괴롭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브닌나와 다투지 않습니다. 그의 머리채를 잡아 끈 적도 없습니다. 가정을 시끄럽게 만들거나 분란으로 몰아간 적이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나는 그저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기본에 충실했다는 말입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다른,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그냥 하나님 앞에 와서 엎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한나에게 사무엘을 주십니다. 위로의 선물입니다. 이미 위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무엘이 자라서 어떤 인물이 됩니까?
사무엘이 기도하면 그 기도한 것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됩니다. 위대한 영적 사사가 됩니다. 훗날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왕으로 세웁니다. 다윗의 영적 멘토가 됩니다. 한나는 기도할 때 이것을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이를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내 억울함 풀어달라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한나가 잘한 것은 그저 기본에 충실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때, 복잡한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문제뿐만이 아니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내가 만들 수 없는 위대한 업적도 하나님의 손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랍고 위대한 섭리입니다.
4. 다시 예배의 자리로
여러분, 지난 6개월 동안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뭔가 해보려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내 땅도 개간하고 내 일도 열심히 하려고 수고하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되는 것이 없다면 답은 쉬운 곳에 있습니다. 다시 예배의 자리로, 다시 기도하고 말씀 사랑하는 자리로 오십시오. 그 자리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열매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 6개월 열심히 살았습니다. 내 인생의 곳간을 채우려고, 내 인생의 땅을 경작하려고 열심히 땅도 파고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되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것, 기도하지 않고 예배 생활 제대로 하지 못한 것,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모든 부분이 하나하나 다 무너지고 있었던 것을 우리가 몰랐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사가랴처럼, 한나처럼 다시 기본의 자리에 서겠습니다. 세상이 시끄럽고 힘들어도, 그를 향하여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도 사가랴는 그저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자리에 집중했습니다. 주의 사자가 그를 찾아오셨고, 그가 기도하지 않았던 것까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주여, 우리에게도 이 열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