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못하리니 (눅 1:18-25)
권위와 권력, 권세를 의미하는 한자 '권(權)'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저울추'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권세와 권위를 뜻하는 이 한자가 어떻게 저울추가 될 수 있는지 굉장히 생경하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옛날 저울을 보면 달고자 하는 물건을 한쪽에 걸어둡니다. 그러면 무쇠로 만든 저울추를 반대쪽에 답니다. 그런데 이 저울추가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면서 균형을 맞춥니다. 딱 좌우 수평이 되는 그 지점에서 눈금을 읽으면 바로 그 물건의 무게가 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저울추가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좌우로 왔다 갔다 합니다. 물건이 무거우면, 또 물건이 가벼우면 물건의 무게에 따라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움직입니다. 즉 저울추가 움직이는 것처럼 권위라는 것은 상대적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가진 권위는 모든 것이 상대적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세상에 없는 논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학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논문이 특별하다고, 탁월하다고 인정해 주어야 그 논문의 권위가 실리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음으로 권위를 가집니다. 어떠한 공동체에 어른이 있는데 그 어른이 진짜 어른으로서 권위를 가지려면 그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에게 권위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데 나 혼자 권위 있다고 생각하고 권위를 주장하면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권위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권위적인 사람들과는 함께하기가 힘듭니다. 같이 있으면 굉장히 불편하고 어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1. 절대적 권위의 하나님
사람의 모든 일들은 이렇게 권위가 상대적인데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하실까요? 하나님은 사람처럼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선 온 세상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도 지으셨습니다.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고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팔은 온 세상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말씀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선포될 때 우리가 그 말씀을 지키고 살아가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 보면 절대적 하나님 권위의 말씀을 의심한 사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분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그분이 어떤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지 이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권위의 말씀 앞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되는지를 함께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사가랴의 불신
사가랴는 참으로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분은 시대적 암흑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합니다. 하나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의인인데도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아주 소박한 소원인데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자기의 직무를 수행해 나갑니다. 성전 안에서 예배드리고 있는데,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하나님이 보낸 주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주의 천사가 그의 가정의 소원을 말씀합니다. 이어줍니다. 너희 가정에 주겠다고,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그 아들은 너희 가정에 즐거움이 되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놀라운 주의 천사의 현현을 목격한 이후에 사가랴의 반응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천사의 임재에 대한, 천사가 요한을 너희 가정에 주겠다고 한 말에 대한 사가랴의 응답입니다.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도 늙고 내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이 말은 기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즐겁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 젊을 때 그렇게 구할 때는 하나님 응답도 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다 늙어서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을 제가 어떻게 믿겠습니까? 그것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 저는 이미 나이가 많습니다.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난 것 아닙니까? 기쁜 것은 기쁜데, 행복하기는 행복한데, 그런데 하나님 앞에 시기와 때에 대해서 볼멘소리를 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너무 늦었다고.
2-1. 사라의 전례
그런데 이것은 사가랴만이 아닙니다.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 불편한 감정을 나타낸 사람이 더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 그중에 사라가 그렇습니다. 창세기 18장 10절과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였습니다. 사라의 나이는 89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사라의 나이 65세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그때 주셨습니다. 그때가 딱 좋았는데, 그때가 정말 나도 정말 간절했는데, 이제는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은 지가 정말 오래되었는데 이제 와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여성으로서의 기능이 끝났습니다. 내 남편도 이제는 기력이 쇠해서 더 이상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사라가 웃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가랴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 좋은 분들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말씀하셨던 분들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자기의 때, 내가 원하는 가장 적절한 때, 내가 원하는 최고의 때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니까 이런 식의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2-2. 하나님의 때
그런데 참으로 신비롭고 놀라운 사실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하시는데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데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 패턴을 우리가 알 길이 없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몇 년이나 했습니까? 무려 430년입니다. 430년 동안 그들이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건져 달라고, 살려 달라고, 힘들다고, 죽겠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430년 동안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무려 430년입니다. 430년을 지연시키다가 나중에 시간이 다 지나서 이제는 그들이 다 무력해졌을 때, 이제는 시큰둥해졌을 때 그때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가셔서 내가 너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건져내겠다고 말씀합니다. 430년을 지연시키셨습니다.
초대교회 베드로가 감옥에 들어갑니다. 처형당하기 직전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즉각 응답됩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베드로를 옥에서 손잡아 직접 이끌어내 주셨습니다. 기도하자마자 그것은 하루가 되지 않아서 즉각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는 430년이 지나서야, 하나는 즉각 이루어졌는데 여기에 패턴이 있습니까? 여기에 무슨 공식이 있습니까? 두 기도 다 구원을 위한 기도입니다. 두 기도 다 자기의 욕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민족의 해방과 구원을 위한 기도요, 또 한 기도는 지도자의 석방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는 우리 편에서 모든 것을 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이 다 있다는 점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좋은 시기,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정확하고 가장 적절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루시거나 혹은 당기시거나 하나님의 뜻을 그 기도에 담아서 응답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어떤 것은 지연시키시고 어떤 것은 당겨 주시고. 사가랴의 기도, 엘리사벳의 기도를 지금까지 지연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가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예수님이 오실 그때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실 그 시기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서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해야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실 때는 예수님보다 딱 6개월 먼저 오시면 딱 좋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 가장 최고의 시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사가랴의 시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젊을 때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예수님보다 너무 일찍 오셔서도 안 되고, 예수님보다 뒤에 오셔도 안 되고, 같이 오셔도 안 됩니다. 예수님보다 딱 6개월만 먼저 오셔야 됩니다. 그것은 사람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으로는 이 하나님의 때와 시기를 수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믿음 좋은 사가랴조차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조차도. 그런데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큰 믿음, 성장하는 믿음, 넓은 믿음, 좋은 믿음은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고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 맡겨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비록 수용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가장 정확한 시기에 이루실 줄을 믿고 하나님께 위탁하고 의탁하는 큰 믿음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3. 가브리엘의 선언
19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Γαβριήλ)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가브리엘이 당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보냈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으니까 가브리엘이 말합니다. 이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나는 보내심을 받았다고. 그런데 이것이 사가랴나 엘리사벳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나쁜 소식도 아닙니다. 젊어서 주셨으면 최고의 소식인데 기쁘기는 하나 걱정도 앞섭니다. 이제 어떻게 키웁니까? 내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늙었는데 내가 세상을 떠나면 이 아이는 누가 돌봐 줍니까? 막막합니다. 힘이 듭니다. 그런 마음이 불평으로, 불신으로 입으로 나와 버린 것입니다.
3-1. 입을 봉하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는 아주 무서운 선언, 놀라운 선언을 해버립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가 언제입니까? 열 달 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생명 요한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까지 너는 말을 못하는 자가 될 것이다. 입을 봉해 버렸습니다. 야단이 났습니다. 이것은 지금 심각한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그 밖에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2절과 23절을 보십시오.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백성들이 제사장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기다립니까? 관례에 의하면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예배를 집례하고 제사를 인도하고 난 이후에 밖에 나오면 기다리고 있었던 백성들, 그때까지 기도하고 있었던 백성들에게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축도를 해 줍니다. 그때 축도가 아론의 축도입니다.
민수기 6장 24절에서 2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대제사장 아론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축복 기도의 내용입니다. 앞으로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들은 이런 축복 기도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너희에게 주노니 모든 백성들 앞에서 축복을 해주라고, 축복 기도를 선포해 주라고 이 기도를 하나님이 아론을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나면 가장 마지막 순서로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에게 하늘을 향하여 손을 높이 들고 이 기도를 해 줍니다.
그러면 지금 백성들은 사가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오지를 않습니다. 도대체 성전 안에 들어가더니 나오지를 않는데 나오면 축도 받고 집에 가려고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왔더니 벙어리가 나왔습니다. 들어갈 때는 멀쩡하게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말문이 막혀서 나왔습니다. 손짓발짓으로 뭔가 표현은 하는데 백성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습니다. 말을 못 하니까. 말은 하고 싶은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데 하나 확실한 것은 이 사람에게 오늘 축복 기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백성들은 당황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사가랴 입장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축복 기도를 못 했습니다. 늘 하던 기도입니다. 항상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나면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에게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했던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가 못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무서운 벌입니다. 평소에 늘 했던 것 아닙니까?
3-2. 지도자를 다루시다
가끔 성경을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을 엄격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지도자를 하나님은 대단히 무섭게 다루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입을 막아 버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입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자녀 달라고 젊은 시절 기도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입으로 불신을 말합니다. 그 일이 이루어질지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는 늙었고 내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한 입으로 기도하고 한 입으로 불신을 내뱉습니다. 한 입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했는데 또 다른 입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과 불만을 내뱉습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그 입을 닫아 버립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지도자들에게 굉장히 무섭고 엄격하게 다루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이렇게 하셨지 않습니까? 모세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지겨웠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것. 그 원망과 불평 때문에 모세는 한시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40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이제 광야 40년 거의 끝나가는 지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또 물 때문에 불평합니다. 길 때문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납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백성들을 모으라고 했습니다. 반석 앞에 모으고 반석에게 명령해서 물을 내라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모았습니다. 모여 있는 백성들의 얼굴을 보니 울화통이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옵니다. 반석에 명령해서 물을 내라 해야 되는데 반석에 명령하지 않고 그 분노, 그 화를 지팡이를 들어서 반석을 두 번 쳐버렸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옵니다. 백성들은 그 물을 마시고 해갈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했던 백성들을 하나님은 책망하거나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하나님 뭐라고 하십니까? 민수기 20장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너희가 나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 나를 믿지 아니하였다, 이 이유로 너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 모세는 당연히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안 들어가면 그 땅에 누가 들어갈 것인가? 그 땅은 나는 당연히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니 못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계신데 모압 평지 느보 산에서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데 어떻게 들어갑니까? 그 생명을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는데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내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백성들을 이끌고 내가 당연히 마땅히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4. 당연하지 않은 은혜
사가랴가 백성들을 향하여 하늘 높이 두 손 들고 축복 기도하는 것, 그것은 늘 하던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을 막아 버리니까.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은혜를 대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침에 눈 뜨는 것,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난밤에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우리가 어떻게 아침에 눈 뜰 수 있습니까? 우리가 두 다리로 걸어서 하나님의 성전에 예배드리러 나오는 것, 이것이 결단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더워서 화내고 더워서 짜증 내고 불평불만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육체의 병이 있고 질고가 있어서 누워 있을 수밖에 없으면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 예배드리고 주의 전에서 섬기고 봉사하는 것 결단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가능하고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기도하고 같은 입으로 불신의 말을 내뱉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가랴를 그렇게 다루신 것, 모세를 다루신 것 같은 맥락 아닙니까? 출애굽기 32장에 모세가 어떻게 기도합니까?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하나님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릴지라도 이 백성들을 멸하지 마십시오." 백성들을 향한 간곡한 중보의 기도를 드렸던 모세 아닙니까? 그랬던 모세가 그 입으로 백성을 저주합니다. 그 손으로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면서 백성을 향한 분노를 드러냅니다. 이중적입니다. 하나님은 지도자의 이중성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4-1. 입술을 지키라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될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중에 야고보 사도가 말했습니다. 우리의 입술을 지키라고 말하는데 야고보서 3장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을 보십시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 입으로 형제를 저주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마땅하지 않은 것을 행하는 사람 그 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드렸다면 내가 드린 기도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 기도에 대해서 불신하지 마십시오. 그 기도를 우리가 붙들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다면 그 신실하심을 붙잡고 계속해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정하신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시간에 하나님이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5. 묵상의 시간
이제 사가랴가 민망함을 무릅쓰고 도망치듯 자기 집으로 내려갑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집에 돌아가서 사가랴가 엘리사벳에게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선 엘리사벳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멀쩡했던 남편이 입이 봉해져서 돌아왔으니까 벙어리가 되어서 왔으니까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그런데 사가랴는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손짓발짓 하다가 안 되니까 판을 가져와서 썼겠지요. 의사소통을 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엘리사벳은 짐을 쌉니다. 산골로 들어갑니다. 다섯 달 동안 거기에 숨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엘리사벳이 얼마나 지혜로운 여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 집에 그대로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사람들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어떻게 된 일인지 계속 물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배는 불러옵니다. 그들이 기도한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그가 벙어리가 된 것, 그녀의 배가 불러 온 이야기, 성전 안에서 주의 천사를 만난 남편 이야기를 엘리사벳이 계속해서 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말이 많은 사람이 대체로 묵상의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 아닙니까? 백성들 앞에 서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대중 앞에 서서 말하는 자입니다. 묵상의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기도하고 엎드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런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는 이 열 달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엎드리고 묵상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말만 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사가랴도 하나님 앞에 불신의 죄를 회개하고 엎드려서 기도하는 묵상의 시간이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5-1. 약함을 자랑하다
여러분 때로는 말 많이 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닫고, 사람 앞에서 입을 닫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우리의 마음을 열고 엎드리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학벌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가진 것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습니까? 그런데 그는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자랑했습니다. 세 번이나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해 주지 않았던 그 사건을 자랑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사랑장에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 앞에 자기의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가지고 묵상하고 엎드리는 것이 때로는 더 큰 능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오늘 이 말씀 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기도하고 하나님은 이루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의 손안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불신하시면 안 됩니다. 기도의 입술이 또 다른 불신의 입술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믿음의 백성으로 또 한 주간 승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 손 안에 달려 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젊은 시절 열심히 기도했으나 하나님의 시간은 예수님 오시기 6개월 전이었습니다. 그들은 불신했고 그들은 낙심했고 절망했습니다. 주여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간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큰 믿음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한 입으로 기도하고 또 같은 입으로 불신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였으면 끝까지 믿고 신뢰하도록 도우시고 사람에게 말만 하고 자랑하는 입술을 그치고 그저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주여 우리의 삶이 주 앞에 온전히 맞추어진 삶 되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