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여종이오니 내게 이루어지이다 (눅 1:26-38)
1940년 5월 10일은 영국 역사상 가장 암울한 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서유럽 전체가 독일의 히틀러에게 넘어갔고, 대륙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프랑스마저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바다 건너 섬나라 영국 하나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65세의 윈스턴 처칠이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총리가 된 후 의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혹독한 시련 앞에 서 있습니다. 제가 총리가 되었지만 여러분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피와 노고와 땀과 눈물을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그런 극심한 어려움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과거 영국의 영화를 연설했을 것이고 앞날의 장밋빛 미래를 설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작금의 현실에 극심한 시련과 혼란이 있음을 있는 그대로 연설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연설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호도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를 겸손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 영국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싸우고 계속해서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바다에서도 싸울 것이고 공중에서도 싸울 것이고 들판에서도 거리에서도 계속해서 싸워서 결국은 승리할 것입니다. 저를 도와서 한마음이 되어 주십시오."
그는 피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영국마저 피한다면 이 유럽은 완전히 히틀러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데, 피하지 말고 혹독한 시련이 있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번 해보자고 격려한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되지 않았습니까? 겸손하게 현실을 인정하지만 어렵다고 피하지 않는 자세가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서 마리아도 역시 피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주의 여종"이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마리아가 받은 영광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을 통해서 이 세상에 보내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무엇이 부족한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라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고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천사의 방문과 은혜의 선포
사가랴는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불신앙적 고백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열 달 동안 그를 말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엘리사벳은 대단히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의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알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열 달 동안 침묵하고 묵상합니다. 사람들에게 떠벌리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천사를 만난 것도, 내가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가진 것도 사람들에게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께 묵묵히 아뢰며 엎드려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그렇게 보낸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사가랴를 찾아가서 요한의 소식을 알렸던 천사 가브리엘이 이제는 또 다른 여인을 찾아갑니다. 마리아였습니다. 26절과 27절을 보십시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마리아는 그저 평범한 처녀였습니다. 시골 처녀였습니다. 약혼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셉이라는 유다 지파의 자손이고 다윗의 자손인 한 청년과 약혼했습니다. 그냥 소박한 처녀입니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를 천사가 찾아갔습니다. 천사가 왜 찾아갔을까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간 것입니다. 천사가 전하는 소식을 봅시다. 28절에서 30절입니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아직까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두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천사가 마리아의 이름을 알고 왔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마리아여"라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습니까? 이 말은 다 파악하고 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낸 목적과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뜻입니다. 천사가 그냥 오다가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해서 어느 한 처녀를 찾아가서 같이 놀자고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린 것이 아니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서 온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받을 만한 자격이 있기에,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분명히 기억할 만한 자격이 있기에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을 마리아에게 보낸 것입니다.
두 번째 정보는 28절에도 은혜라는 말씀이 나오고 30절에도 은혜라는 말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두 번이나 은혜를 반복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은혜의 방향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옵니다. 수직적입니다. 은혜는 받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수여자가 되시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주관자, 주체가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리아가 은혜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셨고, 그래서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그 은혜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것이 은혜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 입장에서 이것이 과연 은혜인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이것이 은혜가 되려면 마리아는 이미 결혼한 상황이어야 합니다. 무려 이 상황은 2천 년 전 유대 땅입니다. 굉장히 보수적이고 율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만약에 마리아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가 불러온다면 사람들은 그녀를 돌로 쳐서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잉태 소식을 알렸고, 그리고 아이의 이름까지 천사가 지어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은혜가 된다는 말입니까?
마리아 입장에서 진짜 은혜로운 소식이라면 몇 가지 정도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너의 가정이 그렇게 부유하지 못하니 결혼할 때 지참금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저 뒷산에 가서 어디어디를 파보아라. 금덩어리 세 덩어리 정도를 내가 묻어두었으니 그것 가지고 가서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살아라." 그 정도가 되면 은혜로운 소식이 됩니다. "앞으로 네가 살면서 힘들 때 어려울 때가 얼마나 많겠느냐? 그런데 네가 그때마다 소원을 빌면 나는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세 가지 소원 정도는 내가 얼마든지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마." 그 정도가 되면 이것은 은혜로운 소식이 됩니다.
그런데 마리아 입장에서는 전혀 은혜롭지 않은 소식, 처녀가 잉태한다는 소식을 천사가 전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다윗의 왕위를 이야기하고 야곱의 집을 말합니다. 거대한 역사의 대서사시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마리아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 나는 역사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는 소박하고 연약한 시골 처녀입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내 남편이 될 요셉과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고 싶습니다. 이 정도의 소망만 가지고 있는데 거대한 역사 이야기는 저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마리아가 소심하게 이렇게 묻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궁금해서 묻는 것입니다. 나는 전혀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약혼한 사이이지 결혼한 사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결정권이 없는 사람 아닙니까? 하나님이 결정하셔서 천사에게 전하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37절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주신 최후의 선포였습니다. 이제 천사는 자기 할 일을 다 했습니다. 마리아를 찾아왔고, "은혜받을 자여"라고 말했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소식을 전했고, 마리아는 거기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능하지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마리아의 위대한 고백
이제 마리아에게 공이 넘어왔습니다. 받아야 될지, 밀어내야 될지, 주저앉아 울어야 될지, 못한다고 뒹굴어야 될지, 이 모든 결정은 마리아에게 달려 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여러분, 이 고백은 성경에 나오는 인간의 어떤 고백보다 가장 위대합니다. 왜 위대한 고백입니까?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 인간이, 흙으로 빚어진 우리 인간이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품어 안는 고백의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영광, 구약 때부터 수많은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이 말씀하셨던 그리스도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는데 나를 통해서 이 땅에 오심을 영접하는 순간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위대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이 진짜 위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마리아가 여기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2-1. 하나님의 시각으로 은혜를 바라보다
첫 번째로 "주의 여종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여종 신앙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은혜를 자기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고백입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은혜롭지 않습니다. 은혜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겠다는 말입니다.
주여, 저는 여종입니다. 당신은 나의 상전입니다.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여종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나의 이 좁고 좁은 소견으로는 지금 이것을 은혜로 받을 수 없지만,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은혜라고 하시면 저는 지금은 모르지만 은혜로 한번 받아보겠습니다. 지금 나는 이것을 은혜로 감히 수용할 수 없지만, 주의 여종이니 주인께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니 은혜로 주신다면 한번 믿고 받아보겠습니다. 이런 고백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에 크고 작은 일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납니다.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도 있고,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오느냐고 밀어내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확실하다면, 내가 받을 만한 것만 은혜로 받지 말고, 하나님 입장에서 시각을 바꾸어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네가 볼 때 이것은 화처럼 느껴지고 이것은 은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시간이 한번 지나갈 때까지 견뎌 보아라. 받아보고 기다려 보아라. 화가 바뀌어 복이 되고, 은혜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큰 은혜가 되어서 너에게 돌아올 테니 기다려 보아라"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변방 늙은이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변방 오랑캐와 접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에 한 나이 많은 노인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 집의 가장 큰 재산 목록은 말이었는데 이 말이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혀를 찹니다. "저 집 재산 목록을 잃어버렸구나." 노인이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한번 기다려 보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오." 그런데 정말 얼마 가지 않아서 이 말이 친구를 데려왔습니다. 딱 봐도 좋은 말입니다. 준마요, 명마입니다. 사람들이 이 노인의 혜안에 박수를 칩니다. "친구를 데려왔군요. 두 배로 부자가 되셨군요." 노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합니다.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복이 될지 화가 될지." 아들이 그 명마를 타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합니다. "저거 일어나 그럴 수 있을까? 화가 되었군요." 노인이 또 말합니다. "이것도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랑캐가 쳐들어왔고 징집 명령이 떨어졌는데, 아들은 징집을 피하게 됩니다.
화가 바뀌어 복이 되고 복이 바뀌어 화가 됩니다. 변방 늙은이도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데,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들을 어찌 좁은 내 소견으로만 판단해서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시각으로, 크고 놀라우신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내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불행같이 여겨지는 것이 은혜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지금 도저히 이 상황을 수용할 수 없어서 밀어내고 싶은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은혜라고 말씀하시니까 은혜로 받아들이면 진짜 그것이 복이 되어서 내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시편 123편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 시편의 이야기를.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주인이 가라 하면 가고, 주인이 멈추라 하면 멈추겠다는 뜻 아닙니까? 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인께서 시키시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라는 결단의 다짐 아닙니까? 종이 무슨 판단을 할 수가 있습니까? 주인이 판단하면 종은 그냥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종 신앙이 중요합니다. 마리아는 여종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지금 제가 볼 때는 은혜가 아니지만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라고 하시니 저는 믿고 순종해 보겠습니다." 이 결단이 우리의 결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2-2. 소속의 확장
또한 "주의 여종이오니" 이 고백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그녀의 소속을 넓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마리아의 소속은 누구의 소속입니까? 요셉의 소유 아닙니까? 요셉과 약혼한 사이니까요. 나의 소속이 요셉의 소속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밀어내야 됩니다. 나는 요셉과 약혼한 사이입니다. 이제 곧 있으면 결혼할 사이인데 어떻게 약혼한 사람이 배가 불러올 수 있습니까? 요셉이 알면 난리가 납니다. 안 됩니다. 저는 못합니다라고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나의 근본적인 소속이, 나는 누구의 것이냐, 나는 누구의 소유된 백성이냐, 이 지점을 고민했습니다. 나는 요셉의 소유인 것은 현실적인 소속이지만 나의 근본적이고 영적인 소속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주의 여종"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요셉의 약혼자인 것은 나의 현실이나, 보다 더 근원적이고 보다 더 폭넓고 바꿀 수 없고 본질적인 나의 소속은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폭이 넓어집니다. 그러니까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대부분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땅에 내가 속해 있는 소속감만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정치적 신념을 평생 동안 붙들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신념이 큽니까? 하나님이 크십니까? 하나님이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신 분 아닙니까? 내가 먹고사는 내 직업의 현장의 소속감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주의 몸 된 자녀의 소속감이 더 중요합니까? 보다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나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이 고백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우리는 여종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평생을 내가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존재로서 이 땅 사람들처럼 나는 요셉에게 소유된 사람입니다라고 살면 그 범주와 그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주의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의 백성들이 주의 여종 신앙을 가지고, 나의 소유가, 나는 누구의 것인지, 나의 정체성과 내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기가 쉬워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손에 온전히 붙잡혀 쓰임 받을 수가 있습니다.
3.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제 두 번째 마리아의 고백,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입니다. 짧은 세 어절입니다. 가장 강조되는 지점이 어디입니까?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그 당시 마리아에게로 돌아가 본다면 아마 마리아는 "내게"라는 말을 강조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라는 고백을 한 것으로 봐서 하나님의 성품을 정확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사람이 없어서 일하지 못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만약에 마리아가 "하나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습니다. 저는 요셉과 약혼한 사이 아닙니까? 내 주인은 요셉인데 저는 도저히 이것 못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주의 천사는 그냥 떠나갑니다. 하나님은 마리아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주의 크신 일을 행하셨을 것입니다.
이 땅에 많고 많은 사람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고 모든 사람들의 형편과 처지를 다 돌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심령을 다 감찰하시고 뚫어보시고, 못 하겠다고 하는 사람, 안 하겠다고 하는 사람 굳이 그 사람 붙잡고 설득하지 않으십니다.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는 것이 본질적으로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거나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떠나가십니다.
마리아는 "떠나가시면 안 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고 꽉 붙잡았습니다.
우리는 에베소 교회를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개척한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번성했고 가장 큰 일을 많이 했던 교회입니다. 바울이 소아시아의 중심 도시 에베소에다가 교회를 개척하고 3년을 공들였습니다. 두란노 서원을 세웠습니다.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그들을 가르치고 훈계했습니다. 교회가 대단히 번성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장 5절에 보면 첫사랑을 네가 버렸으므로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대단한 교회가, 어마어마한 교회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사랑을 버리니까 하나님은 교회의 규모를 보고 기다려 주지 않으십니다. 촛대를 옮기십니다. 주의 일이 다급하시니까요.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번성했습니다. 지금 가보십시오. 폐허만 남아 있습니다. 돌무더기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촛대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서 유럽 교회로, 유럽 교회에서 미국 교회로, 미국 교회에서 대한민국으로 옮겨왔습니다. 이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촛대가 어디로 또 옮겨지겠습니까? 우리가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내게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이다" 하고 주의 일을 하겠다고 결단하고 붙잡지 않으면 하나님의 촛대는 자유롭게 어디든지 옮겨가고 이동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의 촛대를 꽉 붙잡았습니다. "떠나지 마십시오. 저에게서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기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종 신앙을 가지지 않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내 소유와 내 위치만을 공고하게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은 촛대를 금방금방 옮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이 없어서 일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할 사람을 주님이 또 찾고 또 찾으셔서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배짱 부릴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촛대를 옮기시면 그때 가서 우리가 후회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 사역을 하실 때 예수님의 고향 마을에 가신 적이 있습니다. 고향 마을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동네 어른들이 말합니다. "이 사람의 이런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그의 부모는 요셉과 마리아요, 그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형제들과 그의 누이들이 지금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리고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마태복음 13장 57절과 58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복음서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가장 미련하고 가장 어리석고 가장 안타까운 사람들이 이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30년 넘게 알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직접 보았습니다.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능력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면부지의 사람,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 주십니다. 말씀으로만 하셔도 그들의 병이 고쳐지고 맹인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립니다. 죽은 자가 일어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고향 동네 사람들은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고 싶어도 행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촛대가 옮겨져 버린 것입니다.
예수 오래 믿었다고, 교회 오래 다녔다고, 신앙생활 수십 년 몇 대째 했다고 그것이 우리의 촛대를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처럼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붙잡아야 됩니다. 그것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분투하고 살아내고, 은혜의 자리에 있겠다고 결단하고, 사명의 자리를 붙들고 살아가야 그래야 우리는 주의 쓰임받을 수 있는 종들이 됩니다.
여종 신앙 기억하시고, 지금 나에게 있는 촛대 꼭 붙들고 견디고 버티고 이겨내어 주와 함께 귀하고 복된 일 감당하시는 주의 자녀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종의 믿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리의 눈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내 기준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이 은혜라고 하시면 은혜로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소속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닫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촛대의 면류관을 굳게 지키겠습니다. 주여,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