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 마리아와 엘리사벳 (1:39-45)

마리아와 엘리사벳 (눅 1:39-45)

19세기 후반 우리나라는 어둡고 긴 암울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험한 세월을 살아갈 때 그 세상에 태어난 사람 모두가 고난을 겪지만, 특히 여성들의 삶은 유난히 힘들었습니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몇몇 세도가 집안을 제외하면 여성들의 삶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고난이 예고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때도 아이들이 태어나고 여자아이들도 태어났습니다.

1860년 경기도 구리에서 한 여성이 태어났습니다. 윤희순이라는 여성이었습니다. 그 집안은 예로부터 유학을 공부하고 가르쳤던 뼈대 있는 유학자 집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라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교육을 받고 곱게 성장했습니다.

윤희순은 16세에 결혼을 합니다. 유 씨 집안에 시집을 갔는데, 결혼할 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시집가 보니 시아버지와 남편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귀하게 자랐던지라 세상물정도 잘 모르고 독립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지만, 그 집에 식구로 살면서 이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그냥 뒷바라지만 하고 있는 것보다 자신도 무언가 할 일을 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윤희순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 됩니다. 그런데 여성 의병장이라는 것이 혼자서 깃발 든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함께 뜻을 모으고 같이 이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서줘야 합니다. 무려 서른 명이나 모았습니다. 서른 명의 여성들을 모아서 조직을 했는데, 조직 이름이 안사람 의병단입니다. 그런데 이 여성 의병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생각보다 꽤 조직적이고 치밀했으며 구체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이분들이 군자금을 모금하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모인 군자금을 전달하는 전달책 역할도 했습니다. 남성들에 비해서 불심검문을 비교적 덜 받기 때문에 안전하기도 해서 여성들이 그 위험한 일을 감당했습니다. 또한 실제로 의병들이 전투를 벌일 때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고 세탁 업무를 도맡아 한 적도 있습니다. 드물기는 했지만, 폭탄을 제조하고 운반하는 일도 했습니다.

안사람 의병단은 열심히 의병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최선을 다했지만, 나라는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1910년 일제에 의해서 국권을 빼앗깁니다. 그러자 유 씨 집안 모든 식구들이 만주로 이주를 합니다. 모든 재산을 처분해서 만주에 가서 학교를 세웁니다. 그때부터 후학들을 만주에서 가르칩니다. 그런데 만주에서 시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남편도 죽고, 1935년 윤희순도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역사가 기억하는 윤희순은 단 한 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의 위대한 점은 신념을 가지고,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주변을 알아봤더니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모았고, 조직했고, 앞장서서 일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나가면 돕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은 의지,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두 사람씩 모이기 시작하고 세력을 얻으면 그 일은 흐름을 타게 되고, 결국 역사를 바꾸는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런 일을 하는데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믿음을 가지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으면, 그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주변에 그와 같이 동역하는 사람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함께 동역해 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두 명의 여인이 나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 여인입니다. 이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이들은 서로가 하나님 앞에 귀하게 일꾼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을 살펴보면서, 나는 과연 하나님의 일을 할 만한 사람인가,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가, 내 주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는가 묵상하고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결단과 즉각적 행동

마리아는 수태고지를 받았습니다. 우선 천사가 와서 그에게 수태고지를 하는데, 이제 마리아가 결정을 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나는 주의 여종입니다"라고 여종 신앙을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은혜가 아니지만, 하나님이 은혜라고 하시니 은혜로 받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주인의 범위를 넓힙니다. 나는 요셉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자신의 소속과 신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촛대를 붙잡았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다른 데로 가지 마시고 나를 통해 아버지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고백합니다. 결단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그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천사가 떠났습니다. 이제 마리아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39절을 보십시오. "이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한 동네에 이르러." 마리아가 빨리 일어나서 산골로 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사벳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천사가 수태고지 하면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너의 친척 엘리사벳도 지금 임신한 상태라고. 마리아는 알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아기를 가지거나 낳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빨리 달려간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어나 빨리"라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 앞에서 결단했습니다. 결단 이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의 여종입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결단하고 그냥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일어났습니다. 빨리 달려갔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 듣습니다. 성경 읽습니다. 은혜 받습니다. 기도하면서 결단합니다. 눈물도 흘립니다. 그런데 결단은 하는데 결단 이후에 행동으로 가는 것은 굉장히 더딥니다. 결단은 되는데 결단 이후에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빠르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재빠르게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결단은 하지만 행동까지 가는 것은 힘이 듭니다. 100번의 결단을 하면 한 번 움직일까 말까입니다.

만약에 마리아가 결단하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마리아가 생각이 복잡해졌을 것입니다. '이것을 부모님께 알려야 하나? 우선 나의 정혼자 요셉에게 말해야 하나?' 부모님께 알리고 가족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방에 가둬 버렸을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제 뱃속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가 자라고 있답니다." 믿겠습니까? 부모님이 방에 가두어 놓고 나오지 못하게 하고, 이제 가족들이 이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알고 있습니다. 나의 신분과 나의 소속은 부모에게도, 요셉에게도 아닌 주의 여종이다. 그녀는 결단하고 일어나서 빨리 달려갑니다. 그 빨리 달려간 이 마리아가 복된 여인입니다. 결단과 행동이 바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1-1. 라합의 결단

우리는 여리고 성에 살고 있었던 라합이라는 여인을 알고 있습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여관집 주인으로 살았습니다. 오며 가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 드나듭니다. 히브리 민족을 책임지고 있는 여호와라 하는 하나님, 그 신 이야기를 사람들이 자꾸 이야기해 줍니다. 흥미로웠습니다. 그 여호와라고 하는 신이 자기 민족을 저 강력한 제국 이집트에서 열 가지 재앙으로 출애굽시켰다더라, 홍해를 가르셨다더라,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다더라.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여러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듣다가 그만 라합에게 믿음이 생겨버렸습니다. 마음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 믿음을 달아볼 수 있는 시간이 속히 옵니다. 여호수아가 보낸 두 명의 정탐꾼들이 자기 여관에 들어옵니다. 신고하고 잡아가라고 하든지, 아니면 숨겨주든지, 둘 중에 하나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라합의 선택은 후자였습니다. 라합이 후자를 선택하는 순간 이제 라합은 목숨을 건 모험에 뛰어들어간 것입니다.

정탐꾼들에게 이렇게 요청합니다. 여호수아 2장 12절과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라합이 이렇게 정탐꾼들에게 요청합니다. 이 요청은 현실 그대로 됩니다. 여호수아가 명령하지 않습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그날에 우리가 약속한 대로 저 집에 붉은 줄이 매여 있는 집은 손대지 마라. 그 집에, 라합의 집에 그의 형제 가족 일가친척들, 심지어 짐승들까지 다 모여 있었습니다. 그중에 생명을 잃은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라합이 결단했고 결단을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라합뿐만 아니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다 살아나지 않습니까? 위험한 결단이었습니다. 목숨을 건 결단입니다. 그런데 이 결단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웁니다. 결단으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행동으로 옮겨냅니다. 라합과 같이 마리아도 역시 그랬습니다. 라합도, 마리아도 결단하고 일어나 빨리 달려갔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결단했다면, 즉시 움직여야 합니다. 결단한 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결단한 대로 움직이고, 결단한 대로 살아가야 내 인생에 열매가 맺힙니다. 살지 않으면 열매는 맺힐 수가 없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성령충만의 역사

이제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이 이렇게 말합니다. 42절을 보십시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5절도 함께 보십시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놀랍지 않습니까? 엘리사벳이 이미 두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방금 마리아가 천사와 나눈 대화 내용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마리아가 엘리사벳 집에 문을 두드린 상태입니다. 두 사람이 들어가서 앉아서 오늘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전후 사정 마리아가 다 고하기 전입니다. 이제 막 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렇게 신비로운 일이 일어난 까닭과 이유가 무엇입니까?

41절을 보십시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충만이 그 비결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마리아를 한눈에 보고 딱 알아본 것입니다.

2-1. 성령충만의 준비

엘리사벳이 성령 충만했다는 것은 엘리사벳의 지난 6개월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여러분, 갑자기 성령충만해질 수 있습니까? 믿음생활 제대로 하지 않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해져서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양손에 생길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성령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그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하며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간구하다가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 말씀을 열심히 듣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서 성령을 주십니다. 뜨겁게 찬양하는 그 자리에, 찬양으로 내 마음을 준비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십니다. 간구하고 기도하고, 영적인 기본 생활을 하고 예배 생활을 잘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사벳의 지난 6개월의 삶이 어땠단 말입니까? 그녀는 남편이 말을 못하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손짓 발짓하며 서판에 써가며 남편의 사정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냥 여기서 사람들에게 천사 만난 이야기하고 임신한 이야기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고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합니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이들은 하나님과 깊고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눕니다. 그것을 잘했다는 말입니다. 엘리사벳은 하나님과 깊고 은밀한 교제를 잘 했을 때, 그때 마리아가 오셨을 때 성령께서 엘리사벳에게 성령충만을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2-2. 서로를 알아봄

이제 성령충만이 임한 자에게 어떤 역사가 나타납니까? 성령충만의 결과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다양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는, 성령 충만한 자는 또 다른 성령의 사람을 즉각적으로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지금 성령충만 했습니다. 마리아가 그렇지 않습니까? 마리아도 수태고지의 말씀을 듣고 주의 여종의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고백하고, 결단하고, 행동하고, 일어나 빨리 이곳으로 달려왔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 왔습니다. 그러니 성령충만한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한 마리아를 보고 딱 알아본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로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 항상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상 18장 2절에서 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그날이라 함은 다윗과 요나단이 처음 만난 날을 말합니다. 이전에 일면식도 없습니다. 함께 식사 한 끼 한 적도 없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처음 만났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다윗을 생명처럼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이해되십니까, 이런 분위기가? 겉옷을 벗어줍니다. 군복도 줍니다. 칼과 활과 띠도 다 줍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객관적으로 보면, 믿음이 없는 눈으로 보면 이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의 아버지가 사울왕 아닙니까? 사울왕이 죽으면 요나단은 적법한 왕위 계승 서열의 1번입니다.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마땅히 왕이 되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어떻습니까? 백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지 않습니까? 백성들은 다윗이 가는 곳마다 환호합니다. 따지고 보면 요나단과 다윗은 경쟁자입니다. 내가 왕이 되는데 다윗은 잠재적인 위협 세력입니다. 어쩌면 정상적이라면 요나단이 자객을 보내서 다윗을 죽여야 그것이 정상입니다. 세상의 법칙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보고 생명같이 사랑했다 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요나단이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 생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정치 이념, 내가 가진 환경과 처지, 이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넘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또 다른 성령 충만한 다윗 같은 사람을 만날 때 금방 알아봅니다. 내가 이 사람과 함께 손을 잡아야 할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 사람의 인격이 어떤지, 요나단이 다윗을 보고 자기 생명처럼 사랑한 것은 그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끝까지 이어집니다. 순간 반짝하고 끝나는 사람의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이 죽을 때까지 다윗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자기 아버지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요나단이 다윗을 얼마나 많이 구해줍니까? 변치 않았습니다.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령 충만한 성령의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이 오래갑니다. 그 사랑이 깊어집니다.

요나단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윗 가슴에는 아픈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세월이 지났습니다. 왕이 되고 난 다윗이 요나단의 후손을 찾습니다. 두 다리를 다 저는 므비보셋입니다. 그를 다시 품어주지 않습니까? 므비보셋에게 자기 할아버지 사울이 가졌던 밭까지, 땅까지 다 회복시켜주고 왕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게 했습니다. 둘 다 성령의 사람이기 때문에, 둘 다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 그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은 다 이해하지 못해도 다윗과 요나단은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정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서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 나이 차이가 얼마나 많이 납니까? 마리아는 이제 정혼한 사람입니다. 엘리사벳은 할머니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나이를 극복하고 서로 하나 되지 않습니까? 둘 다 성령으로 충만하니까 서로가 서로를 알아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저런 기도 제목이 많이 있는데, 내 평생에 내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만한 친구 한두 명만 있으면 좋겠다, 내 얼굴만 보면 척하면 내 마음을 알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 내 손을 잡고 함께 웃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믿음의 동역자가 한둘만 있으면 이 험한 세상 살아갈 만할 텐데,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 그런데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면 내 주변에 성령 충만한 사람이 당연히 보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보고 말하기 전에 그의 임신 사실과 그의 상태를 금방 알아챈 것처럼, 마리아가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엘리사벳에게 달려온 것처럼,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 하나가 되어서 서로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사람이 되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2-3. 바울의 동역자들

여러분,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이 돈이 있었습니까? 바울이 무슨 재산이 있습니까? 바울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충만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를 돕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생겨납니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바울을 만나자마자 그때부터 자신의 전 생애를 그에게 투자합니다. 디모데, 바울을 따라다니기 시작하면서 평생 동안 바울의 동역자가 됩니다. 의사 누가, 누가는 바울의 동역자로 복음사역에 계속 동행자로 삽니다. 그의 개인 주치의로 활동합니다. 디도도 그랬습니다.

바울 주변에 수많은 성령의 사람들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 한 사람이 강력한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성령의 사람이면 주변에 사람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돕는 손길들이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을 탓할 이유가 없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나 자신이,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내가 성령의 사람으로 바로 서면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애쓰고 힘쓰지 않아도 믿음의 사람들이 몰려들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이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굳은 의지를 가지고 의병들을 모으는데도 뜻을 같이 하는 30명이 모이는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성령의 일로 주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데 왜 사람들이 모이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영의 존재입니다. 도둑질하는 사람, 사기꾼,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 이상하고 놀랍게도 그런 사람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만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요합니다. 남을 원망하기 전에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바랍니다.

우리 청년들, 결혼을 위해서 많이 노력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닙니다. 믿음 있는 사람을 찾아다니고, 애도 쓰고 노력도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내가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로 서면 나를 알아볼 사람이 생깁니다. 나를 알아보고 나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일꾼 된 자의 기쁨

오늘 이 본문의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지금 이 본문에서 굉장히 기뻐합니다. 두 사람이 기쁨으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제삼자가 볼 때, 객관적인 눈으로 볼 때 이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엘리사벳, 물론 나이가 들어서 아기를 가졌으니까 기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면 어떻게 키웁니까? 언제 죽어도 이상치 않을 나이가 되었는데 이 아이를 어떻게 돌봅니까? 그것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사벳은 기쁩니다.

마리아는 더합니다. 마리아는 지금 이 상황을 요셉에게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부모에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일어나 빨리 이곳으로 와버렸습니다. 알려지면, 나중에 배가 불러오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수습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마리아는 그냥 기쁩니다.

왜 기쁠까요?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어서 이 두 여인이 바꿀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한 까닭은 하나님의 복음의 통로로 쓰임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데 귀하게 쓰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를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가죽옷, 누군가의 희생으로 생겨난 것 아닙니까? 큰 날, 때가 되면 내 아들을 보내서 그를 희생해서 너희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려주겠다. 그 옛날 에덴에서 약속하셨던 그 약속이 지금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수없이 하셨던 말씀이 지금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마리아 자신을 통해서. 그것이 기쁜 것입니다. 나 같은 연약하고 비천한 여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니, 내가 이 구원 역사의 통로로, 일꾼으로 쓰임받는다니, 그것이 기쁜 것입니다.

엘리사벳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세례요한을 이 땅에 탄생시키는 어머니로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쁜 것입니다.

3-1. 에스더의 사명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의 기쁨은 하나님의 일꾼이요, 동역자가 될 때 그 기쁨이 충만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로가 되고 일꾼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기쁘다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1등 해야 기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의 주인이 누굽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성경의 주인공은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사람이 주인공이 되려 했다가는 다 교만 때문에 다 망해 나갔습니다. 주인공이신 하나님, 이 세상을 다스리고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 되면, 하나님의 일꾼으로 기능하고 쓰임받으면 그때 가장 기쁩니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페르시아 시절 수산궁에 에스더가 왕후로 살았습니다. 만약 에스더가 성공한 왕비였다면, 아하수에로 왕에게 사랑스러운 아내였고 백성들에게 인정받는 왕비였다면 성경에 기록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왕비는 지천에 널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구원하는 도구로 쓰임 받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나는 한낱 여기에서 죽어도 괜찮다는 결단으로 하나님께 쓰임받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에스더를 높이 높이 들어서 사용하시고 지금도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 위에 군림해서 기쁘십니까? 그것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정말 기쁨, 진짜 기쁨, 영원한 기쁨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는, 하나님의 손잡고 일하는, 하나님의 백성 된 자로서 일꾼 된 자로 기능할 때, 그때 우리는 가장 기쁜 것입니다. 그 놀라운 영광과 기쁨이 오늘 우리 삶에 충만하고 가득 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마리아처럼 결단하고 즉시 행동하겠습니다. 일어나 빨리 자리를 털고 달려가겠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처럼 서로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기를 원합니다. 내 주변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성령으로 충만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먼저 성령으로 가득한 자가 되어서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오니 아버지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또한 나를 통하여 주의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여,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의 통로로,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원하오니 주여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