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막 3:7-19)
가끔 맛집을 경험하고 싶어서 맛집이라고 소개된 곳을 찾아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맛집을 기대하고 갔는데 그 집 문 앞에 서서 가끔 이런 문구를 볼 때가 있습니다. "오늘 준비한 재료가 다 소진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다음번에 오시기 바랍니다." 그런 글을 보시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내가 조금 더 일찍 올걸, 아쉽다. 내가 다음에는 꼭 일찍 와서 이 음식을 먹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동시에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 집이 참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준비된 식재료가 다 끝나고 나면 장사를 그만하는 걸 보니, 이 집은 손님을 아주 귀하게 생각하고 그 음식을 잘 준비해서 손님을 대접하는 귀한 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어느 식당에 가서 제가 홍합이 들어간 음식을 주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음식을 주문받는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 집 홍합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다른 음식을 주문해 주십시오." 제가 그 얘기를 듣고 갑자기 그 식당에 대해서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아, 그냥 한 그릇 팔아서 돈만 벌려고 하는 식당이 아니구나. 손님의 건강을 생각하고 가장 맛 좋은 요리를 준비하는 식당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음식도 장인정신으로 만들고 돈을 벌기 위한 식당도 이렇게 경영을 해가는데,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정신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되는지, 어떻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이 땅의 교회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주님을 찾아온 무리
예수님의 소문이 온 나라에, 온 동네에 퍼져갔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이곳저곳에서 몰려들었습니다. 먼저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예수님이 지금 계신 곳이 갈릴리였습니다. 갈릴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큰 무리를 지어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갈릴리에서만 주님을 보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8절을 보십시오.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일을 듣고 나오는지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도 주님을 보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가장 북쪽에 갈릴리 지방이 있고, 가운데 사마리아, 남쪽에 유대와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북쪽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 가운데 끼인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습니다. 그 땅은 저주받은 곳이고 더러운 곳이라 여겨서,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가서 둘러서 갈릴리로 들어옵니다.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유대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도 북쪽 갈릴리에서 사역하고 계신 우리 주님을 꼭 한번 만나보겠다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고 온 나라 사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전국이 야단이 난 것입니다. 주님 한번 보기 위해서 왜 이렇게 이분들은 우리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온 것일까요?
1-1. 병고침의 기대
이들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온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병고침을 받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이전까지 많은 병자를 고치지 않았습니까?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고, 나병환자, 중풍병자, 한쪽 손이 마른 사람도 주님께서 고치셨습니다. 수많은 각색 병자들을 주께서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온 나라의 병자들이 다 우리 예수님을 만나서 병고침을 얻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1-2. 정치적 열망
두 번째로, 이들이 예수님을 이토록 간절하게 찾아온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입니다. 그 당시 지배권력이었던 종교권력, 곧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에게 주님은 속 시원한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정치인들을 향해서도 주님께서는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말씀하셨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사람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중에 어떤 것을 해야 되겠느냐" 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전까지 어떤 사람도 이렇게 예수님처럼 속 시원한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한번 만나서, 예수님께서 정당을 만든다고 하면 내가 예수님을 정치적 지도자로 받들고 살겠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2. 피하신 예수님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렇게 수없이 몰려드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처신하십니까?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 하나를 준비해 달라 하시고 그 배를 타고 사람들을 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피해서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셨을까요?
2-1. 영혼 구원의 사명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들이 예수님을 찾는 목적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찾는 목적은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정치적인 억압에서 해방받기 위해서, 이들은 인생의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주님 만나면 이런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된다는 기대를 가지고 찾아 나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의 백성들에게 그대로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동시에 이 땅의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내 영혼의 문제, 내 영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당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죽어가는 영혼의 문제를 살리고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을 찾는 자들은 영혼의 문제는 관심이 없고 현실적인 문제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우리 예수님께 두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주님, 육체적 문제, 현실적 문제가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예수님이 해결해주시면 안 됩니까? 가난한 자를 부자 되게 해주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나라가 로마의 압제에 빠져 있는데 해방시켜 주시면, 이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이것부터 해결해 주시면 안 됩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치유함 없이, 내 영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 없이, 내 영혼이 구원받는 것 없이 병만 낫는다면, 나라만 해방된다면, 그 다음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병 나은 육체를 가지고,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서 죄짓고 살지 않겠습니까? 죄 열심히 지으라고 병 고쳐 주는 것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동시에 내 영이 온전히 회복되고 치유되지 않고 나라가 해방을 맞이한다면, 사람들은 이합집산하고 갈라질 것입니다. 모두가 다 그 나라의 주인이 되려고, 해방된 나라에서 한자리 차지하려고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입니다. 영혼이 치유되지 않으면, 속사람부터 고침받지 않으면, 병 낫는 것도 나라가 해방되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오히려 그들에게는 해가 되고 악이 될 뿐입니다.
2-2. 훈련의 필요성
두 번째로 우리가 주님께 이런 질문도 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그렇다면 여기 온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말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나는 이 땅에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서 왔다. 너희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왔으니 영혼부터 치유하자. 이렇게 말씀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고 사람들은 한 번 혹은 두 번 설교 듣는다고 고쳐지지 않습니다. 변화되지 않습니다. 정말 변화를 원한다면 훈련받아야 됩니다. 삶이 바뀌기를 원한다면 오랜 시간 동안 훈련받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이 수많은 사람들을 훈련시키기란 불가능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잠시 자리를 피한 것입니다.
3. 열둘을 세우심
주께서 자리를 피해서 어디로 가셨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예수님은 배를 타고 다른 곳에 가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주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예수님 사역에 꼭 필요한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지목하시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몇 명입니까? 14절을 보시면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열두 명을 예수님께서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 열두 명의 제자를 세우셨을까요? 예수님이 12명을 훈련시켜서, 이 12명의 제자들이 몰려온 많은 사람들을 붙들고 훈련시키고, 그들의 현세적인 목적과 현실적인 이유를 영적인 것으로 바꾸어 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물러가시고 가장 급한 것, 가장 시급한 것, 예수님의 제자를 세우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 이 시대에 교회가 가야 될 길을 발견합니다. 오늘 이 시대 교회가 누구의 길을 따라가야 됩니까? 교회는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공동체 아닙니까? 주님의 길을 따라간다고 하면,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는 현실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부자 만들기 위해서, 교회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서 이 나라를 새로운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의 문제가 해방되고, 죄의 짐에서 벗어나고, 영혼의 구원을 위한 것이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일단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데 급급합니다. 일단은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로 불러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교회 오시면 인생의 수많은 고민들이 해결됩니다. 자녀들도 복을 받습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갑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할 것입니다. 돈도 많이 벌 것입니다. 병고침을 받습니다. 염려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광고하지 않습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직해야 됩니다. 교회 와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교회 온다고 해서 병이 낫거나, 교회 온다고 해서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교회 온다고 해서 공부 못하던 아이가 좋은 학교에 입학하거나,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생활하면 문제가 더 생길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발버둥치고 애쓰다 보면 더 수렁에 더 깊이 빠지는 경험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미 악해 빠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됩니다. 교회 와도, 신앙생활을 해도 인생의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셔서 험한 십자가 함께 지고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가실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혼자였다면, 이제는 그 힘들고 어려운 길을 예수께서 함께 동행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동행하셔서 여러분의 영혼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 올 때는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교회 왔지만, 그러나 이곳에서 진짜 주님을 만나신다면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아서 훗날 천국에서 눈뜨게 되실 것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보다 영적인 문제가 우리에게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말해야 이것이 정직한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해야 교회가 교회다운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교회는 사람들을 많이 모아서 그다음 무엇을 할 것입니까? 그다음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모이면 그다음 교회를 크게 지을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큰 교회를 지을까? 어떻게 하면 건물을 높이 쌓을까? 그 걱정을 합니다. 그다음 어떻게 됩니까? 건물을 크게 지으면 또 이 예배당을 채우려고 사람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러 모을 것입니다. 그렇게 모아서 그다음은 어떻게 합니까? 그다음은 목회자가 왕이 됩니다. 그다음은 목회자가 군림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결코 그런 일을 벌인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사람들 위에 왕이 되려고 하셨다면, 우리 예수님께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셨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그 사람들을 가지고 예수 정당을 만들고,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당을 세우고, 로마를 전복시키고, 예수님은 혁명가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군림하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왕이 되려고 하는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피하셨습니다.
사람을 세웁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몰려온 사람들을 양육하고, 붙들고, 훈련하고, 그들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힘을 줘서 다시 세상 가운데로 내보내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가 되도록, 이것이 우리 주님이 꿈꾸고 바라셨던 교회입니다.
3-1. 함께 있게 하심
12명의 제자들을 우리 예수님께서 어떻게 훈련시켜 가십니까? 14절과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제자훈련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딱 한 가지였습니다. "함께 있게 하시고", 함께 살자는 것입니다. 3년 동안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자마자 나가서 전도해 와라,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져라, 주문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 살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주님과 함께 살면서 우리는 주님의 기도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러 가십니다. 제자들 피곤해도 주님 따라 기도하러 가야 합니다. 예수님 밤이 맞도록 붙들고 기도하십니다. 나도 내 인생에 문제가 있으면 예수님처럼 밤을 새워서라도 기도해야 되겠다는 결단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주님은 기도부터 먼저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다 보면 우리 주님이 사람을 대하는 것을 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주님은 똑같이 대하셨습니다. 똑같이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면 주님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우리도 보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다 보면 주님의 언행일치를 배웁니다. 말씀하신 것 그대로 행동에 옮기십니다. 우리는 주님과 살아가면서 이것을 배웁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자기들의 연약한 것이 다 드러납니다. 약한 것도, 추한 것도, 죄된 것도 보여드립니다. 주님이 때로는 책망하십니다. 때로는 강하게 질책하십니다. 때로는 위로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도 자기를 보이고, 예수님도 자신을 보이고, 그렇게 훈련받아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훈련받고, 또 제자들은 동역자들과도 함께 모이며 훈련받습니다. 나 혼자 주님과 훈련받는 것이 아니라 12명이 함께 모여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존재들 아닙니까?
3-2. 다양한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의 면면을 한번 보십시오. 16절에서 19절입니다.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라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업을 보십시오. 어부도 있고 세리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 출신이십니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지역도 다양합니다. 갈릴리 어부들도 있었고, 가룟 출신의 유다도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색깔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나안인 시몬이라는 사람은 열심당원입니다. 열심당원은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닙니다. 칼 품고 다니다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칼을 빼들고 덤벼드는 사람들입니다. 굉장히 무서운 다혈질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가룟 유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성격이 불같은 사람, 우레의 아들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베드로 같은 사람도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12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우레의 아들들끼리 다투지 않았겠습니까? 베드로와 다툼이 없었겠습니까? 지역이 다른 사람들끼리 지역색을 드러내지 않았을까요? 직업이 다른 사람들끼리 생각이 얼마나 달랐을까요? 그러면서 자기들의 모난 모습이 깎여져 갑니다. 모난 모습이 훈련되어 갑니다. 둥글둥글해져 갑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훈련받고 자기들끼리 깎이고 단련받고, 이렇게 훈련받는 이유는 훗날 교회 지도자가 되면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넓은 마음으로 수용하라고, 예수님을 배우고 인격을 훈련하라고 주께서 이들을 이렇게 "함께 있자" 하시고 훈련하신 것입니다.
4. 교회의 길
나중에 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죽어버렸지만,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지도자가 준비되고, 예수님에게 훈련받은 사람이 세워지니까 그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릇만 준비되면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사람들을 보내주십니다. 베드로가 한 번 설교할 때 3천 명, 두 번째 설교할 때 5천 명,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현세적인 이유를 가지고 왔다 하더라도 베드로와 요한, 훈련받은 사람들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끌어안고 훈련하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다 흩어졌습니다. 모두가 흩어져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도마는 인도까지 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제자를 길렀습니다.
4-1. 사람을 세움
그렇다면 오늘 우리 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을 따라가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교회가 해야 될 가장 우선적인 일은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예배당 세우는 일이 급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급한 일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이 사람들을 예수님 혼자 양육하고 가르칠 수 없어서 주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세우고 그들을 통해서 제자들을 훈련하고 또 훈련하고 변화시켜 나갔던 것처럼, 오늘 이 시대 우리 교회도 사람을 세우는 것이 가장 급한 일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를 세워서 믿음의 자녀들을 양육해 나가야 됩니다. 지금은 어린아이지만 이 아이들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그 나뭇가지에 새들이 깃들이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쉬게 되고, 그 그늘에 사람들이 다 쉼을 얻게 되는 믿음의 거목으로 우리 교회학교 아이들을 길러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를 길러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 많이 오시는 분들, 이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끌어안고 양육하고 그들을 훈련하고 말씀을 먹일 만한 지도자들을 길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교회가 걸어가야 될 가장 급하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부디 우리가 교회가 가야 될 길을 오늘 이 말씀 통해서 마음에 깊이 새겨 나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2. 제자된 삶
또한 우리도 내가 교회 안에서 어떤 일로 하나님께 가장 크게 영광을 드려야 될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가장 크게 영광 드리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제자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거하며 예수님 닮아가고, 성도들과 함께 부대끼며 내 모난 모습이 갈고 닦아지고, 그래서 내가 훈련받아 나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사람들을 말씀으로 먹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그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돌보는 사람이 되어서, 정말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 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다 교회입니다. 우리가 다 강한 교회가 되고 견고한 교회가 되어서, 내가 가는 그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지는 귀하고 값진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