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강 / 네 가지 마음 (4:1-20)

네 가지 마음 (막 4:1-20)

대지라는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은 펄벅 여사가 쓴 동풍 서풍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뤠난이라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대단히 중국적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남편은 집안끼리 정혼하여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부인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부인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이 그토록 좋았습니다. 그 남편을 위해서라면 살수록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이 여인을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오직 한 가지에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한 가지가 바로 여인의 전족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발을 꽁꽁 묶어 왔던 그 전족을 남편은 풀어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전족은 자신의 정성이고 부끄러움이며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여인은 남편을 더욱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전족을 풀어서 보여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남편 앞에서 전족을 풀며 기형적으로 뒤틀린 자신의 발을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에게는 정성이나 다름없고 보여주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었지만, 여인이 남편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보여준 귀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남편은 여인을 끝까지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 소설의 비극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에게 하신 모든 것은 우리가 요청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시고,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자신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그래서 우리 인생에게 주님의 그 모든 것을 다 허락하시고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퍅한 우리는 주님에게서 내가 필요한 것만을 골라서 얻으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런 강퍅하고 완악한 자들에게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모든 걸 다 주었는데 너희들은 내 앞에 나올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오느냐?" 주님 앞에 나오는 자들의 네 가지 마음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도 주 앞에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나왔습니까? 주님께서 모든 것 다 내려놓으시고 우리 인생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시며 주신 그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의 마음도 주께서 원하시는 마음으로 함께 빚어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인 수많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 무리들은 각자가 다 다양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옵니다. 겉보기에는 다 멀쩡한 것 같은데 속마음과 생각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네 가지 마음이 있는데 내가 원하는 옥토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유의 말씀을 아주 짧은 말씀으로 주님께서 요약해서 말씀하십니다. 3절 말씀입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여기 씨를 뿌리는 자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우리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어디에다 씨를 뿌리십니까? 농부는 밭에 씨를 뿌리지만,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에다 씨를 뿌리십니다. 여기 이 씨라고 표현된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말씀을 아주 연약하고 작은 씨앗에 비유하셨을까요? 주님의 말씀이 귀하고 아주 존귀하고 놀랍기 때문에 이 말씀을 황금으로 비유하든지 엄청난 건물이나 집으로 비유하면 좋았을 텐데 왜 작고 연약한 씨앗으로 말씀하셨을까요? 이 씨앗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황금이나 거대한 건물이나 집은 등가의 가치로 물건을 교환할 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 속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작은 씨앗이지만 이 씨앗이 떨어지는 땅의 상태에 따라서, 그리고 그 씨앗을 가지고 농사짓는 농부의 수고에 따라서 씨앗은 얼마든지 자라서 큰 나무가 될 수 있고, 그 큰 나무는 엄청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씨앗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생명 있는 씨앗이 떨어지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우리 마음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말씀을 내가 받았는데 이 생명을 받아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찌워 영광을 드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1. 길가와 같은 마음

그 첫 번째 마음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첫 번째 마음은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땅을 많이 밟으면 땅이 다져지고, 또 다니면 또 다져지고, 그래서 씨앗이 떨어졌는데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한 마음이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씨앗이 땅에 스며들지 못하니까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들이 와서 씨앗을 낼름 주워 먹어버렸습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바로 길가 같은 마음은 분주한 마음, 복잡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분주하다고, 바쁘다고, 바빠서 죽을 것 같다고,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심지어는 죽을 시간도 없다고 그렇게 바쁘다고 많이 말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바빠도 자기 할 일은 다 하고 살아갑니다. 맛집이 있으면 오랜 시간을 들여 맛집에 가서 밥도 먹고 오고, 동네에 멋진 커피숍이 오픈을 했다고 하면 거기 가서 커피도 마시고 와야 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바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바쁘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에는 시간을 쓰는데 싫은 일은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최우선 제일 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그다음 그다음 후순위여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저 밑바닥에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 예배드리고 말씀 듣는 것조차 나는 너무 바빠서 마음이 분주하다는 말씀입니다.

몸만 앉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서 바쁜 것 다 정리하고 정돈하고,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우선순위에 말씀 듣는 자세로 이 자리에 나와 있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라고 하는 두 자매의 집을 방문하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언니였던 마르다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합니다. 동생이었던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아래 앉아서 주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보니까 자기 여동생이 하나도 도와주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주님께 말합니다. "주님, 이 아이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고 하십시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 하라. 네 동생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이 좋은 편, 정말 좋다고 하는 것, 주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신 것, 이것은 말씀 듣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자리에 있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그 외에 어떠한 것도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 나무가 되고 많은 열매를 맺기 원하신다면, 분주함을 정리하시고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의 말씀을 세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돌밭과 같은 마음

두 번째 마음입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함으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문제는 돌밭, 흙이 얕은 돌밭입니다. 이 돌밭이 있는데, 이런 마음은 이 돌을 신경 쓰지 않고 위에다가 흙을 얕게 깔아 놓았습니다.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흙이 얕으니 당장 싹이 납니다. 하지만 뿌리는 내리지 못합니다. 그 안에 돌이 있어서 뿌리가 내려가다가 돌을 만나서 그만 말라버립니다. 해가 나면 타서 자라지도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문제는 이런 마음은 그 마음의 심각한 큰 돌덩이들을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의 돌을 가지고 계십니까?

2-1. 합리성의 돌

많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분들은 우리 마음속에 합리성이라는 돌덩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합리성이라는 돌을 가지고 있으면, 그 돌을 가지고 주의 말씀을 받으면 주의 말씀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하나님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렇지 말씀으로 이 세상을 다 창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비합리적이다. 내가 배운 과학 지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연구하는 분들도 성경은 전혀 역사성이 없는 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성경이 과학책이나 역사책입니까? 가설을 세우고 그리고 그 가설을 입증하고 실험하고 결과를 내는 과학책입니까? 인류의 연대를 가지고 하나하나 빠짐없이 다 입증하고 역사의 흐름을 설명하는 역사책입니까?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이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하나님 사랑의 편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으로 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얕은 과학 지식으로, 우리가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이 인생에서 길고 긴 하나님의 유구한 역사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넌센스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합리적인 잣대로 갖다 대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내려와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2-2. 경험과 문화의 돌

또 어떤 이들은 마음속에 자기 경험과 문화라는 돌덩이를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통계를 보니까 우리 이웃나라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매주일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인구는 전 인구의 0.25%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인데, 이 민족은 예배당이 꽉꽉 차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즐겨하는데,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경험, 그들의 삶의 자리 때문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다 신이 된다고 믿습니다. 동물도 죽으면 신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조상도 신으로 섬기고 동물도 신으로 섬깁니다. 하나님도 그 신들 중에 한 분입니다. 내가 우리 조상신을 섬기든 하나님을 섬기든 이게 무슨 차이가 있느냐, 하나님이든 조상신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그런 경험, 그런 자신들의 삶의 자세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일본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들이 모두 다 어렵다고 호소하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위대한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혹 큰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내 마음속에 경험이라는 것이, 내가 살아온 삶의 문화라는 것이 주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이 외에도 수많은 걸림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엄청난 돌들을 우리는 다 캐내고 정리하고 깨어내고 드러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생명 있는 말씀을 받아서 열매 맺는 백성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 흙이 얕은 돌밭이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돌을 깨어내고 캐낼 생각은 하지 않고 은폐해 두었습니다. 흙을 가져다가 얇게 뿌려 놓았습니다. 생각하기 싫으니까, 합리성을 제거하기 싫고 내 경험상 나와 이질적인 문화라고 여기기 때문에 복음을 듣기 싫어서 그냥 덮어 놓았습니다. 이런 자들은 내 마음을 정직하게 주님께 보여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는 주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와서 뿌리 내리지도 못하고 성장해 열매 맺지도 못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돌들을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캐내어 주 앞에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가시떨기 같은 마음

세 번째 마음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음으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가시떨기가 마음에 있습니다. 이 가시가 얼마나 기운이 센지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서 성장하는 걸 가로막고 있습니다. 양분을 다 빨아먹어서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가시떨기의 정체를 설명해 주십니다. 비유를 풀어 주신 말씀 18절과 19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 기타 욕심, 이것들이 다 가시떨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염려를 가지고 계십니까? 어디에 유혹받고 계십니까? 무슨 욕심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내 마음속에 가시떨기가 가득해서 이것이 주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기는 하나 말씀이 자라 열매 맺는 걸 끝까지 방해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셨습니다. 유황과 불로 그 땅을 다 심판하고 불타고 있었습니다. 롯의 가족이 탈출해서 나오는데, 그 여인 롯의 아내는 재물에 미련이 남았습니다. 뒤를 돌아봅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평생 동안 재물의 유혹에 사로잡혀 살아갔던 여인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쏟아지는데, 가서 살 길도 찾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는 미련한 여인이었습니다. 재물의 유혹은 결국 그녀의 인생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사사시대 삼손이라는 사사가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고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인에 대한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의 눈은 항상 여인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여색에 취해 살았던 그는 결국 패가망신하고 나라도 위험에 처하고 자기도 결국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염려와 유혹과 욕심은 말씀이 자라고 성장하는 것을 끝까지 방해합니다. 우리 마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을 아침저녁으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염려가 있는지, 어디에 나는 유혹받고 있는지, 무슨 욕심으로 나는 살고 있는지, 그렇다면 발견하셨다면 뽑아내야 합니다. 잘라내야 합니다. 이것 뽑아내지 못하고 이것 잘라내지 못하면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열매를 드리지 못하는 자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나를 바라보고 내 마음을 묵상하고 살펴야 하느냐?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나의 내면을 살피고 돌아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어서 항상 염려하고 무엇인가 유혹받고 항상 욕심에 사로잡히는 불쌍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났다는 건 없습니다. 나는 절대 유혹받지 않는다, 그런 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끝까지 유혹받을 것이고, 끝까지 크고 작은 염려에 시달릴 것이고, 욕심 때문에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매일같이 나를 돌아보고 내 내면을 살피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옥토 같은 마음

네 번째 마음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좋은 땅, 옥토입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좋은 땅과 앞에 세 땅이 다른 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네 가지 마음은 모두 다 내 마음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길가와 같은 분주한 마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내 마음에 여러 가지 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을 때도 있기도 하고, 욕심과 시기가 엄청나게 자라서 이것 때문에 주의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이런저런 마음이었다가, 우리 믿음의 여정을 거치면서 좋은 땅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내 마음을 개간하는 과정입니다. 믿음 생활의 유일한 목표가 있다면 우리 마음을 옥토로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처음 믿음을 가질 때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이가 나에게 "교회 한번 가자"고 했습니다. "바빠 죽겠는데 교회 가서 앉아 있어?" 그래서 가서 한 시간 앉아 있기로 하고 교회 왔습니다. 와서 몸은 앉아 있는데 마음은 딴데 가 있습니다. 너무 분주한데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처음 신앙을 가질 때는 모두가 다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다가 믿음이 들어옵니다. 말씀을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 마음에 합리성이라는 돌덩이, 내 경험과 문화의 돌덩이를 제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냥 듣습니다. 그러니 열매가 없습니다. 조금 더 믿음 생활을 합니다. 말씀을 계속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염려와 유혹과 욕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우리는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여기서 기억하고 되새기고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농부이신 우리 주님께서 쉼 없이 씨를 뿌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길가와 같은 내 마음에도 계속 씨를 뿌리고 계시고, 돌짝밭 같은 내 마음에도, 가시떨기에도 씨를 뿌리고 계십니다.

정상적인 농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왜 씨가 아깝게 왜 그렇게 뿌리고 계십니까? 좋은 밭에만 씨를 뿌리시지 왜 이런 땅에 씨를 뿌리고 계십니까?" 그렇게 묻는다면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 땅이 바뀌어 좋은 땅이 될 거라 믿고 나는 기회를 주며 지금도 씨를 뿌리고 있다. 믿음 생활하며 길가와 같은 마음이 옥토가 되고, 돌짝밭의 돌을 다 걷어내서 옥토가 되고, 가시떨기를 다 제거해서 좋은 땅이 되기를 나는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알아서 내 스스로 내 마음을 좋은 땅, 옥토로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계속 기다리고 계시는데, 그런데 주님의 그 기다림이 너무 오래되면, 내가 할 생각이 없이 나는 여전히 길가, 돌밭, 가시떨기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주께서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 마음을 농사지을 것입니다.

주께서 직접 내 마음을 옥토로 개간하신다는 의미는 고난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단단하게 다져진 마음을 주께서 부드러운 흙으로 만드는 건 간단합니다. 고난을 던져주면 됩니다. 고난이 우리 인생에 떨어지면 분주했던 모든 것이 다 정리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달릴 것입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고쳐 주십시오. 이 문제를 내가 어떻게 해결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인생에 고난이 닥치면 단단했던 길가와 같은 마음도 부드러운 흙이 될 것이고, 우리 주님께서 흔들어서 내 마음에 있는 돌들을 다 드러내실 것입니다. 곡괭이로, 삽으로 찍고 드러내고 파내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때부터 고통과 고난이 시작됩니다.

부디 주님께서 그렇게 직접 손대시기 전에 우리 스스로 내 마음을 개간하고 정리정돈 하시는 지혜로운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주께서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들이 "호산나" 노래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호산나!" 찬양하며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다녔을까요?

불행하게도 그들은 좋은 마음으로, 좋은 땅과 같은 옥토로 주님께 호산나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속셈이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욕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바라본 것입니다. "주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로마를 전복시키고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때 영광의 날에 주의 우편과 주의 좌편에 앉아서 영원히 왕 노릇 하겠다." 제자들조차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은 슬픈 날입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주님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의 욕심을 가진 세 번째 마음 가시떨기 같은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노래 부른 날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오늘 이 종려주일을 맞이하며 우리는 그런 자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께 옥토와 같은 좋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와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우리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길가와 같다면 마음의 분주함을 정리하시고 주의 말씀 듣는 걸 우선순위로 여기시고, 내 마음에 돌들이 가득해서 말씀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돌들을 드러내고 정리하시고, 걱정과 유혹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마음속에 있는 엉겅퀴와 가시떨기를 다 제거하셔서, 좋은 땅으로 주님 앞에 서서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