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는 (막 4:26-34)
학교 다닐 때 국어 공부를 하면 여러 장르의 문학을 배웁니다. 시도 배우고, 수필도 배우고, 소설도 배웁니다. 소설을 공부하다 보면 문제에 꼭 나오는 것이 "이 소설의 시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황순원의 「소나기」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은 어떻게 다를까요? 관찰자 시점은 관찰만 하는 것입니다. 행동을 관찰하고 말을 관찰해서 행동과 말과 여러 주변 정황을 미루어 지금 등장인물은 이런 심리 상태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은 이 인물의 속마음까지 작가가 다 분석합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획을 세우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계획하는 것, 원하는 것, 품고 있는 것, 악한 것, 선한 것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시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사고와 계획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선한 계획도 알고 계시고 악한 마음을 품는 것도 다 알고 계십니다. 장차 일어날 일도,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여러 가지 상황들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시점대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어쩌면 함정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점으로 성경을 읽다 보니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형편없어 보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왜 저 사람은 기다리지 못하고 죄를 지어야만 했을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하나님이 약속의 자녀를 주실 텐데" 하며, 그것을 못 참고 이스마엘을 낳고야 마는 아브라함의 미련한 모습을 우리는 원망합니다. 다윗도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왕이 되고 나면 하나님 앞에 더 굳게 서서 믿음 생활을 잘해야 할 텐데, 왕이 되자마자 평안하게 살자마자 밧세바와의 범죄에 빠져드는 다윗을 보며 우리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우리가 성경상의 그 인물이라면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믿음을 지키는 것도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장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준다고는 했는데 시점을 못 박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일지 내일일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죄를 짓고, 다윗도 역시 연약한 인간성으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을 걷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역시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인생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우리 인생의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1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10년 뒤에는 어떤 일이 내 인생에 펼쳐질지, 그것을 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함께 읽고 묵상하고 은혜 받으면서,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 인생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인생인지 함께 길을 찾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
우리 예수님께서 두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이고, 두 번째는 겨자씨 비유입니다. 먼저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씨의 놀라운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6절과 27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농부가 있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이 씨가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 하나도 모르고 씨를 열심히 뿌렸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씨를 뿌리는 농부는 내가 뿌린 씨가 매일매일 얼마만큼 성장하고 얼마만큼 자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성장하는지 그는 그냥 밤낮 자고 깰 뿐입니다. 열심히 일할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뿌린 씨가 시간이 지나면 무럭무럭 자라서 나중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씨를 뿌렸는데 싹이 나고 자라서 이삭이 되고 나중에는 곡식이 되고 열매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사람이 한 일과 하나님의 일이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씨를 뿌리는 것이 나의 일이고, 하나님은 그 씨를 성장하게 하고 자라나게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내 일은 열심히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자라지? 얼마나 성장하고 얼마나 자랐을까?" 씨를 뿌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뿌리를 뽑아봅니다. 뿌리가 얼마나 내렸는지, 그리고 또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다시 또 뿌리를 뽑아봅니다. 그리고 또 심어둡니다. 그러면 이 식물이 어떻게 성장하겠습니까? 들들 볶이다가 그만 스트레스로 죽고 말 것입니다.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씨를 뿌려두었으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겠거니, 하나님이 성장시키시겠거니" 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려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씨를 뿌리는 일이고, 성장시키고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축구선수들이 감독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이 축구선수는 훌륭한 선수라 할 수 없습니다. 한 경기에 두 골, 세 골을 몰아쳐 넣어도 감독이 전술을 펼치는데 그 전술에 녹아들지 않으면 그 선수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너는 이 포지션에 가서 뛰어라" 하면 거기 가서 열심히 뛰어야 됩니다. 감독은 전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팀을 운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감독자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더러 하라고 하신 일은 열심히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1-1. 열매에 대한 마음
씨를 뿌리는 자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열매에 대한 마음입니다. 내가 씨를 뿌려서 이 씨의 열매를 내가 얻을 수도 있으나, 그러나 내가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29절을 보십시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농부가 열심히 씨를 뿌리고 추수 때가 되어서 낫을 가지고 추수를 합니다. 그런데 이 씨가 내가 뿌린 씨의 열매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됩니다. 남이 뿌린 씨앗을 내가 거둘 수도 있고, 내가 뿌린 씨앗을 남이 거둘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분들, 저 먼 외국에서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살다가 가신 분들, 그들이 씨 뿌리는 인생을 살았는데 그분들이 열매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것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백여 년 전에 이 땅에 와서 열심히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런데 그 열매를 지금 우리가 먹고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열심히 그 하루, 그 하루 하나님의 말씀에 지금 이 순간에 순종을 하면서 열심히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속에 소망과 열망은 있었습니다. "한 세기가 지나고 나면 이 땅이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이 땅이 충만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매는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 열매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새가족을 만납니다. 그들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복음을 받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되었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예수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내 친구가 나를 위해서 20년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처음에 나더러 예수 믿으라고 할 때는 나는 '예수 너나 믿어라'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10년,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넌 왜 나를 위해서 기도하니?' 그러니 그 친구가 복음을 전해서 내가 복음을 듣고 가까운 교회, 이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분을 위해서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분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한 친구가 20년 동안 기도의 씨앗, 눈물의 씨앗을 열심히 뿌렸습니다. 열심히 가꾸었습니다. 열심히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 열매를 우리 교회가 누리는 것입니다.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이 땅의 교회는 대부분 농촌교회였습니다. 농촌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열심히 씨앗을 뿌렸습니다. 술주정뱅이 아저씨를 데려다가 교회에서 말씀 가르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 나라가 산업화되고 도시화됩니다. 다들 도시로 다 떠나왔습니다. 도시교회가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예배당 지어놓으니 그 사람들이 다 몰려들어서 교회를 가득 채웠습니다. 열심히 씨를 뿌린 농촌 교회 목회자들의 그 수고와 그 열심으로 오늘 우리 도시 교회는 이렇게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내가 씨를 뿌린다고 그 열매를 내가 거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 세기 뒤에 우리 후손들이 누릴 수도 있고, 우리 자녀들이 그 열매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오늘 우리의 문제는 열매를 추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뿌리는 것은 등한시합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열매만 얻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얻을까? 어떻게 하면 누릴까?" 그리고 사람들이 조급합니다. "이만큼 투자했으니 이만큼 얻어야 되는 것 아닌가?" 교회에도 이런 경제논리가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씨를 뿌리는 수고를 감당해야 됩니다. 씨를 뿌리고 그리고 묻어두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겠거니, 때가 되면 하나님이 성장시키고 자라게 하셔서 우리 자녀들이, 우리 자손들이, 이 땅에 그 다음 세대들이 많은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런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씨를 뿌려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씨를 심고 있습니까?
1-2. 좋은 씨를 뿌림
씨를 뿌리는 자가 가져야 할 두 번째 마음은 좋은 씨를 뿌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씨 중에는 나쁜 씨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씨를 뿌려야 좋은 열매를 누릴 것 아닙니까? 우리가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 우리 자녀들이 훌륭한 열매를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좋은 씨를 뿌려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나쁜 씨를 뿌린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두 가지 족보가 나옵니다. 한 족보는 가인의 족보, 또 한 족보는 셋의 족보입니다. 가인의 족보는 악한 자들이 이룬 족보입니다. 형제를 죽였습니다. 살인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품어 안으려고 했으나, 가인은 하나님의 품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합니다. 하나님과 이제 담을 쌓고 성을 쌓아버렸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가인이 뿌린 씨앗을 나중에 후손들이 그 열매로 거둡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집단들,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가 다 가인의 후손들이 된 것입니다. 예배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예배 드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힘을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오직 권력이 유일한 세상의 힘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나쁜 씨를 뿌렸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나쁜 열매를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어땠습니까?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그를 너무 미워했습니다. 그를 팔아치웠습니다. 훗날 시간이 지나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안심시킵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당신들의 자녀와 가족들을 다 책임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했지만, 그들은 뿌린 씨가 있기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염려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후에 다시 요셉에게 와서 말합니다. 두렵다고, 불안하다고. 나쁜 씨를 뿌리고 나면 이렇게 두렵고 떨리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씨를 뿌리는 분들은 좋은 씨를 뿌려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씨를 뿌려야,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아닙니까?
목회자로서 저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답을 찾고 길을 찾습니다. 목회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까? 1년의 계획을 세우고 10년의 계획을 세우고, 단기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 계획 안에 "내가 뿌리고 내가 거두겠다"는 단견을 버려야 되겠다는 것이 오늘 이 말씀이 저에게 준 교훈입니다. 열심히 씨를 뿌려야 됩니다. 목회자도 오늘도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우리도 열심히 기도하는 기도의 씨앗을 뿌리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씨앗을 뿌리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뿌리고 내가 거두려고 하면 그러면 조급증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밤낮 우리가 자고 깨고 일하고 하는 중에 성장하게 하시고 자라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몫은 성장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자라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먼 미래를 바라보고 열심히 좋은 씨앗을 뿌리기만 하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도 이렇게 열매 맺게 하시고, 우리 교회도, 이 나라와 민족도 이렇게 열매 맺게 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씨를 뿌리고 살아간다면, 삼천리 방방곡곡에 많은 씨가 뿌려지고 좋은 열매가 자라나서 우리 후손들이 그 열매를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다 이런 꿈을 꾸시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겨자씨 비유
겨자씨 비유를 보겠습니다. 30절에서 3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겨자씨 비유에서 주님이 하고 싶은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2-1. 생명 있는 말씀
첫 번째는 씨가 보잘것없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습니다.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은 씨 아닙니까? 정말 보잘것없고 볼품없습니다. 그런데 그 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비결은 그 씨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내 모습은 보잘것없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생명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이 말씀이 자라고 폭발해서 나중에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좋은 나무, 큰 나무가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보시면 보잘것없지 않습니까?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우리 자녀들 보면 때로는 한심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속에 생명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기만 하면, 그 말씀이 그 속에 살아 숨 쉬기만 하면, 자라서 놀라운 폭발력을 보여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살아 있고 활력 있는 말씀이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와서 자라고 나무가 되고 놀라운 열매를 맺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는 다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보십시오. 그는 비겁한 겁쟁이였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갈 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거짓말했습니다. 아내의 미모 때문에 자신에게 닥칠 화가 두려워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말씀이 들어왔습니다. 성장하고 자랐습니다. 믿음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독자 아들 이삭을 하나님 제단에 바치게 되기까지 그는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도 역시 겁쟁이였습니다. 한 여종 앞에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님을 세 번이나 맹세하며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말씀이 들어왔습니다. 자랐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연약하고, 나는 부족하고, 나는 형편없는 인간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내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나는 달라질 것입니다. 큰 나무가 될 것입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2-2. 좋은 나무의 조건
또한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자라서 큰 나무가 되면 그 나뭇가지에 많은 새들이 쉰다는 사실입니다. 새들만 쉬겠습니까? 나그네도 오며 가며 그 그늘 아래 쉴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새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나무가 좋은 나무입니다. 좋은 나무는 그늘을 많이 만들어주는 나무가 좋은 나무입니다. 좋은 나무는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 그늘 아래 와서 "나 다리가 아파서 좀 쉬었다 가겠다" 하면 당연히 그 그늘을 제공해 줍니다.
좋은 나무는 새들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내가 받아들이고 저 새는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내쫓지 않습니다. 어떤 새든지 와서 다 쉬고 거기 와서 깃들게 해줍니다. 내가 좋은 사람인가? 나는 좋은 하나님의 백성인가? 나를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내가 신앙생활을 수십 년 했는데, 나라는 나무 그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쉼을 누립니까? 내가 원하는 사람만 내가 받아들이고, 내가 원하는 사람만 선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좋은 사람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든 다 나라는 나무 그늘에 쉼을 누리는 좋은 나무, 넉넉한 나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도 이런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성장하고 자라면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누구든지 오라, 누구든지 와서 값 없이 돈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예수님이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와서 우리 교회의 그늘 아래 쉬고 거할 수 있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이것이 좋은 사람이고, 이래야 좋은 교회입니다. 부디 오늘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고 훌륭한 믿음의 백성이 되는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자라서 큰 나무가 되면 혼자 독야청청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 아름답고 큰 나무, 좋은 나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3. 믿음의 거장들
유관순 열사, 손양원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 분이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궁금해하지만, 찾아보면 이분들은 다 1902년생입니다. 태어난 해가 1902년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에 태어나서 1920년에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02년에 태어나서 1950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02년에 태어나서 2000년 98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이분들은 다 복음이 들어가기 전에는 보잘것없는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충청도 어느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주 구석진 산골에서 태어난 여자아이에게 누가 관심을 주겠습니까? 그런데 그녀에게 말씀이 들어갔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들어갔습니다. 놀랍게 자랍니다. 가슴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서울 가서 말씀을 듣고 성장하고 고향 동네에 내려왔습니다. 60이 넘은 어르신, 70이 넘으신 할아버지를 다 모아놓고 우리가 독립만세운동을 해야 된다고 외칩니다. "나가서 우리가 태극기라도 한번 흔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가서 우리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에 불타오르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과 복음의 능력이 18세 소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유관순은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오늘 그 나무 그늘에 이 시대에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그 그늘 아래서 쉼을 누리지 않습니까? 민족의 정기를 그녀에게서 배우지 않습니까?
손양원 목사님. 저 여수 골짜기 시골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환자촌에서 목회하셨습니다. 보잘것없는 큰 교회도 아닌 작은 교회를 섬겼던 목회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랑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분 마음속에 복음이 들어오고, 여순 반란 사건으로 총살당한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 놀라운 능력으로 그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화와 감동을 주었습니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그래서 그는 지금도 복음의 거장이 되고 믿음의 나무가 되어서 그 나무 그늘에 많은 사람이 쉼을 누립니다.
한경직 목사님. 폐병 환자였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에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3년만 목회할 수 있도록, 3년만 하나님 은혜를 전할 수 있도록 저에게 시간을 연장시켜 주십시오." 그런데 98세까지 사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이 시대의 가난한 자, 약한 자, 병든 자, 군인들을 위해서, 또 이 시대의 서민들을 위해서 많은 목회의 길을 보여주셨던, 놀라운 은혜를 보여주셨던 믿음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인간 한경직, 인간 손양원, 인간 유관순은 볼품없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겨자씨처럼. 그런데 그들 속에 복음의 생명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라서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부디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나는 보잘것없으나 주는 능력이 있으시고, 나는 능력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고 활력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우리 심령에 들어오면, 우리 자녀들 마음속에 들어가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10년 뒤도 모르고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할 일은 좋은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열심히 씨를 뿌리시고 하나님 말씀에 매여 사시면, 하나님이 성장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고 좋은 나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 아래 살아가시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닥칠 일을 알 수 없습니다. 내일 일을 알 수 없으며 장래 일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씨를 뿌리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오늘 우리에게 좋은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도와 말씀과 사랑의 씨앗을 열심히 뿌리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성장시켜 주시면 그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백성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는 비록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겨자씨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기에 우리는 미래를 꿈꿉니다. 자라서 좋은 나무 되어서 우리 나뭇가지 아래 많은 새들이 쉬고,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큰 나무, 좋은 나무, 좋은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