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강 / 광풍이 일어날 때 (4:35-41)

광풍이 일어날 때 (막 4:35-41)

놀이동산에 가면 귀신의 집이 있습니다. 귀신의 집에 들어갔다 오신 분들이 아마 우리 중에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놀이동산 귀신의 집에 들어가면 냄새부터 굉장히 불편합니다. 매캐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고 포르말린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냄새뿐만이 아니고 곳곳에 귀신 분장을 하고 숨어 있는 사람들이 깜짝깜짝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피를 흘리는 귀신 모양으로 분장하고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으로 분장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비명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고 도망 다니기에 바쁩니다. 귀신의 집을 다 돌아보고 나와서는 다들 무서웠다고, 너무 무서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서운 귀신의 집을 다음에 또 갑니다. 그래서 귀신의 집은 여전히 문 닫지 않고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무서워하고 겁을 내면서 왜 귀신의 집을 계속 끊지 못하고 다니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아주 중요한 이유는 그 귀신이 우리를 위협하기는 하지만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돈을 내고 거기 들어가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를 해칠 수 없고, 겁을 줄 수는 있으나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명확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귀신의 집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현실도 이렇게 대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데, 우리 인생의 어떤 파도와 광풍이 몰아닥친다 하더라도 그 파도와 광풍이 우리를 난파시키거나 파선시킬 수 없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깨닫고 담대하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많이 겁을 냅니다. 두려워합니다. 이 파도 때문에 내가 여기서 잘못되지는 않을까? 우리 가정이 여기서 그만 길을 잃고 방황하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많이 두려워하고 겁을 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관계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두렵고 무서운 파도와 광풍이 몰아친다 하더라도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으면 겁낼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1. 저편으로 건너가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비유로 풀어주셨습니다. 네 가지 마음 밭에 대한 비유, 등잔 비유,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고 이제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일어나서 다른 데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저편은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사는 곳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했던 갈릴리 호수, 혹은 갈릴리 바다라고 하는 이 큰 공간을 가운데 두고 한쪽 편에는 유대인들이 모여 살았고, 또 한쪽 편에는 이방인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말씀과 비밀한 일을 다 말씀하시고, 이제는 우리가 배를 타고 건너가서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다운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시지 않으시고, 오늘은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셨으면 내일은 저곳에서 전하시고, 오늘은 이 마을에서 전도하시고 내일은 저 마을로 가서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은 머물러 있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또 아무도 가지 않는 사마리아를 거쳐서 또 갈릴리로, 주님은 항상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애쓰고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주님은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제자들에게 이제 우리가 일어나서 한 번도 말씀을 들어보지 아니한 이방인들에게 가서도 복음을 전하자고 하셨습니다.

이건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제자들도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방인들이 한 번도 말씀을 듣지 못했는데 예수님의 이 주옥같은 말씀이 이방인들에게도 선포되어야지 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2. 광풍 속 두려움

2-1. 미친 듯한 바람

그런데 가는 길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37절을 보십시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큰 광풍이 불었습니다. 풍랑이 일어났는데 이 바람이 보통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미칠 광(狂) 자를 써서 정말 미친 듯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상당수는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입니다. 어려서부터 거기에서 나고 자랐고 성장했고, 그리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고기잡이하고 살아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갈릴리 호수, 큰 호수의 습성과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지간한 바람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정도는 내가 견딜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자들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큰 광풍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배가 이리저리 흔들려서 곧 뒤집어질 것 같습니다.

큰 물이 배를 덮쳐옵니다. 이제 그만 죽을 것 같습니다. 일이 이쯤 되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닌데 내가 우겨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닌가? 또 어떤 사람들은 여기 이 배에 탄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큰 죄를 지어서 이런 풍랑과 폭풍을 우리가 만난 것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2-2. 인생의 풍랑

우리 인생도 살아가다 보면 많은 풍랑과 파도를 만납니다. 때로는 견딜 수 있을 만큼 풍랑이 불어올 때도 있는데, 이런 광풍이 불어서 우리 인생이 뒤집어질 것 같은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혹시 죄를 지어서 그 죗값을 지금 받고 있는 건 아닌가?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내가 지었던 죄들을 다 끄집어내 봅니다. 그래서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도 이런 문제를 겪으면 그만 믿음의 공동체 백성들에게 기도 부탁하기가 굉장히 주저스럽습니다. 혹시 내가 우리 가정에 불어닥친 고난과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어서 이런 일을 겪는 것이다.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걸음을 가서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이다. 사람들 구설에 휘말릴까 봐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족들끼리 입단속을 합니다. 우리 가정의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하자. 말하지 말자. 기도 부탁이라도 했다가 이게 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까 봐 두려워합니다.

3. 주님이 시작하신 길

3-1. 주님의 인도하심

그런데 성경을 보시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이 본문에서도 우리가 기억하고 반드시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예수님께서 가자고 하신 길이라는 점입니다. 제자들이 나서서 "예수님, 우리가 저 이방인들이 사는 곳에 가서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설득해서 나선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자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가서 건너편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도하시고 지도하신 길입니다. 그리고 이 배에는 예수님께서 타고 계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 분명함에도, 예수님이 함께 계신 공간에서도 풍랑에 휩싸이고 어려움을 겪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창세기 말씀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나오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사는 아브라함을 불러다가 하란에서, 그리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일어나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땅에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복이 아니었습니다. 기근이었습니다. 그 기근도 보통 기근이 아니라 아주 극심한 기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는데, 왜 그 땅에 기근이 있는 것입니까?

3-2. 고난 속의 섭리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받고 올라오실 때 하나님이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습니다. 이제 예수님 앞에는 탄탄대로만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환히 열린 주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세례받고 돌아서자마자 성령이 예수님을 이끌어서 광야로 데려갑니다.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이 있습니다. 그것도 세 가지나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건 사탄의 시험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야 했을까요?

요한복음 2장에 보면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혼인잔치에 계셨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있었고,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성경에서 포도주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함께 있는 그 가정에 기쁨의 포도주가 상실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잘 믿는 가정입니다. 봉사도 열심히 합니다. 헌금도 빠지지 않고 합니다. 예배도 빠지지 않고 주님 앞에 와서 예배 잘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 가정에 기쁨의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너무나 당황스럽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까요?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될 사실 한 가지는 예수님이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주님이 그 끝을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가자고 하셨지 않습니까? 주님이 일어나서 나를 따라서 저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으면 주님께서 해결하실 것입니다. 고난이 그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풍랑이 광풍이 되어서 우리를 집어삼킬 듯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 풍랑도 주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3. 교회 개척 이야기

한 교회에서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에 교회를 하나 세웠습니다. 한인교회였습니다. 교회에서 거기에 한인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몇 년 동안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 부목사님 한 분을 그 교회에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헌금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물질을 모으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목사님은 파송받아서 1년 반 이상 그곳에 가서 한인들을 전도했습니다. 성도들이 제법 모였습니다. 이제 교회에서 헌금한 그 돈으로 예배 처소를 마련했습니다. 성물도 다 준비했습니다. 이제 예배만 드리면 되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 성도들이 다 떠났습니다. 담임 목사님과 성도들이 축복하기 위해서 축하하기 위해서 입당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떠났습니다. 이제 내일이 예배드리는 주일인데, 토요일 날 중국 공안이 들이닥쳤습니다. 예배당을 폐쇄합니다. 그리고 예배당에 있는 집기들을 다 몰수했습니다. 식당에 있는 숟가락 하나까지, 젓가락 하나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털어갔습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아무리 항의해 봐도 막무가내였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교회라는 이유가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삼자교회 하나만 허락하는데 너희들은 비록 외국인들을 위한 교회이지만 허가받지 않았기 때문에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목사님 사택에 성도들이 다 모였습니다. 다 들어갈 수 없어서 모인 사람들끼리 눈물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다들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지만 뒤에서 하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나님이 원치 않은 교회 개척을 한 것인가. 혹시 우리가 기도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교회를 개척하는 목사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죄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사람들은 저마다 은혜롭지 않은 말들을 다 뱉어냈습니다.

그런 말들로 교회가 어지러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깨닫게 됩니다. 웨이하이시에 삼자교회가 큰 예배당을 지어서 입당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한 6개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예배당을 너무 크게 지어서 공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종교국에서 나왔습니다. 6개월 전에 문을 닫게 한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아직까지 그 교회 성도들이 흩어지지 않고 있다면 여기 공간이 남아 있으니 월세를 내고 와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제는 허가받고 예배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공간에 들어가 보니 그냥 공간만 있을 뿐입니다. 예배 집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마이크도 없는 그곳에서 함께 모여서 눈물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함께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으고 헌금해서 의자도 하나씩 사들이고 성물도 하나씩 준비해서 1년 이상 지내니까 제법 교회다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교회 성도들이 고백합니다. 처음에 우리들은 후원교회를 믿었습니다. 후원교회가 집기도 사주고 예배 처소도 마련해 주고, 우리는 후원교회를 의지했는데 하나님의 뜻은 너희들이 세운 교회, 너희들이 책임지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다 빼앗기고 이제 빈털터리가 되어서 예배드리는데 그 예배가 얼마나 은혜로운 예배인지, 그래서 지금도 그 교회는 하나님 은혜 아래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돌려놓고 나면,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우리 인생에 불어닥친 광풍과 고난과 풍랑도 하나님의 프로그램 안에 있었음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니 하나님이 끝내실 것임을,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야 섭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과정 가운데 있으면, 폭풍의 한가운데 있으면, 우리는 시야가 좁아지고 눈이 흔들려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4. 주님께 나아감

4-1. 제자들의 선택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본문의 제자들은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 38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아주 훌륭한 일을 제자들이 했습니다. 그 훌륭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나와서 구한 것입니다.

주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십니까? 일어나서 이 상황을 좀 살펴보십시오. 제자들은 누구의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풍랑이 일어났는가? 혹시 네가 어제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된 건 아닌가? 제자들끼리 서로 화살을 겨누지 않습니다.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누구의 탓을 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와서 해결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우리 인생에 광풍이 불어닥칩니다.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누구의 탓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탓인가? 내 가족의 탓인가?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런데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광풍은 불어닥치고 있는데, 네 탓, 내 탓,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폭풍의 한가운데에서 결코 헤어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한 분이신 주님 앞에 나와서 이 문제를 내려놓고 "주님 해결해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이 상황을 좀 보십시오." 주님께 가지고 나와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줄로 믿습니다.

4-2. 책임지시는 하나님

제자들이 주님께 나와서 이런 간구를 드린 것은 당신이 시작하신 일이니,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니 책임지십시오, 라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절대로 계획 없이 어떤 일을 시작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구약을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출애굽시킨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출애굽시켜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해 가십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인원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남자만 60만이었습니다. 어린아이, 여자, 노인들까지 하면 200만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람들을 40년 동안 어떻게 먹이고 어떻게 입혀야 됩니까? 사람들은 걱정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지, 어떻게 입지, 어떻게 살아갈까?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립니다. 메추라기를 내려주십니다. 목이 마르면 반석을 갈라서 생수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너무 더우면 하늘에서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가려주셨습니다. 밤이 되어서 사막이 추우면 불기둥으로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이런 계획을 하나님은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신 분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에 광풍이 닥치면 하나님께 말해야 됩니다. 하나님 책임지십시오. 나를 창조하셨으니까 책임지십시오. 하나님께서 책임지지 않으시면 지금 나는 어디에서 이 문제를 호소해야 됩니까?

하나님께 구하고 또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닐 때 광야에서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요?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어디에 숨어야 될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십수 년을 피해 다니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찬양이 시편 23편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으니, 하나님이 나를 광야로 내모셨으니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먹고사는 것 걱정 없이 해주시고, 내 영혼이 피폐해질 때는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내가 원수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고 건져주시고, 내가 원수 때문에 속이 상할 때는 원수의 목전에 상을 차려주시고 그 상을 나 혼자 받아먹게 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체면 세워주시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다윗은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도 이렇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풍랑 가운데, 고난 가운데,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시작하신 일이고, 주님이 지금 그 배에 함께 타고 계시니 우리는 절대로 파선하지 않습니다. 파선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우리 주님께 나와서 소리 질러 책임지라고 주께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5. 주님의 응답

5-1. 잠잠하라

주께서 어떻게 해결해 주셨습니까? 3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고 잠잠하라 그랬더니,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5-2. 왜 무서워하느냐

이렇게 해결하신 후에 우리 주님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0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너희들 나를 깨운 것은 너무 잘한 일이다. 너희들끼리 싸우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근원인 나를 깨워서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한 것, 너무 잘한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는데, 왜 무서워했니? 왜 두려워했니?

내가 편안하게 잠자는 모습을 너희에게 보여주었지 않느냐. 우리 주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바람과 풍랑 때문에 제자들이 난리가 났는데 주무시는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이렇게 태평스럽게 잠자고 있으니까 이 배가 절대로 파선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라 하는 사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주님이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도 두려웠습니다. 걱정되었습니다. 배가 뒤집힐까 봐, 파선하고 난파하고 이제는 생명을 다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무서워하며 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그 어떤 두려움도 이길 수 있는 굳센 믿음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5-3. 바울의 담대함

사도 바울은 이런 비슷한 상황에 안전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3절에서 25절 말씀입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재판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결수 상태로 갇혀 있었습니다. 이제는 로마에서 황제 앞에서 재판받기 위해서 배를 타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호송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입니다. 광풍이 불어닥쳤습니다. 배가 곧 뒤집힐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잠잠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이 배에 함께한 모든 사람들을 내가 너에게 주었다. 그러니 안심하라. 분명히 너는 로마로 가서 로마 황제를 만나게 될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 바울은 주님의 그 위로하는 음성을 듣고 여러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시작한 일이 분명하면, 이 배에 주께서 함께 타고 계신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용기 내고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그저 기도하고, 맡기고 나아갈 뿐입니다.

6. 두려움을 넘어

우리 인생에 어떤 두려움이 있으십니까?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낳습니다.

두려움이 또 다른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그래서 그 두려움이 나중에는 집을 짓습니다. 그 집을 사탄은 이용합니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 그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 나를 나중에는 집어삼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이미 사탄과의 싸움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귀신의 집에 어떤 무서운 분장을 한 귀신도 내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어떤 두려움도 나를 상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매달리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 예수님이 함께 임하시는 일터에도 거센 풍랑, 광풍이 불어올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죄를 찾지 마시고 남의 탓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매달리며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탄은 나를 두렵게 할 것이나, 그러나 그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온전하게 담담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가신다면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 광풍을 잠재우시고 우리를 아름다운 물가로 아름다운 육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귀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의 바다에 거센 풍랑이 불어오고 광풍이 불어닥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고 하나님이 이 일을 시작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어오는 광풍에 우리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두렵습니다.

남을 탓하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 오로지 주님 앞에 나와 엎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무시고 계신 주님 앞에 편안한 마음으로 나와서 주님 살펴보아 주시옵소서 주님께 간구하는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르짖고 기도하여 이 광풍이 잠잠해지고, 우리 인생의 평안함을 얻을 수 있도록 주께서 책임져 주시옵소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셨사오니 책임지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장중에 온전히 붙잡아 온전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