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강 / 예수를 배척한지라 (6:1-6)

예수를 배척한지라 (막 6:1-6)

벨기에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파랑새」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마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읽어보신 분도 기억이 희미하시겠지만, 그 아름다움과 따뜻함은 여전히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 밤, 한 가난한 집에 치르치르와 미치르라는 남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길 건너 부잣집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부잣집에는 성탄트리가 아름답게 서 있었고, 그 주변에는 성탄 선물이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언제 저런 집에서 저렇게 아름다운 성탄트리 밑에서 좋은 선물을 받으며 살아갈까?' 아주 부러워하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웃집 할머니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우리 집 손녀가 지금 병이 들었는데, 파랑새를 만나면 나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여기 내가 가져온 이 길다란 초록색 마법 모자를 쓰고 빛의 요정을 따라가서 파랑새를 찾아와 주렴."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길다란 초록색 마법 모자를 쓰고 파랑새를 찾아 나섰습니다. 추억의 나라도 가보고, 아름다운 정원의 나라도 가보고, 밤의 궁전도 가보았습니다. 하지만 파랑새를 데려올 수 없었습니다. 어렵게 파랑새를 발견했는데, 데려가려고 하니 파랑새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다가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정원에 도착했습니다. 그 정원에는 행복의 요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행복의 요정이 자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집에 살고 있는 행복의 요정이랍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집은 행복하지 않은데, 우리 집은 가난할 뿐인데, 어떻게 이 행복의 요정이 우리 집에 살고 있다고 말할까?' 그 생각을 알았는지 행복의 요정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갑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집에 행복이 있다는 걸 잘 모르고 지낸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깼습니다. 성탄절 아침이었습니다. 멍하니 지난밤 꿈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웃집 할머니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우리 손녀가 병이 들어 아픈데, 이 집에서 기르고 있는 새를 보여주면 손녀가 나을 것 같다"며 새를 빌리러 왔습니다. 분명히 자기 집에서 기르고 있던 새는 다갈색 비둘기였는데, 빌려주려고 가보니 파랑새였습니다. 깜짝 놀라서 새를 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 할머니가 새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새를 새장에 다시 넣으려고 하는 순간, 파랑새가 하늘 높이, 창공 높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전혀 아쉽지도 않고 안타깝지도 않았습니다. 파랑새가 없어졌어도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행복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행복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이 애쓰셨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행복이 이미 넘치도록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르고, 주변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아마 많이 헤매고 다니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감사할 조건들, 행복에 필요한 것들을 이미 가득 채워주셨음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선물해 주신 그 행복으로 가득한 가정, 일터, 우리의 가족들,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 감사하는 은혜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 그리고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여인, 그리고 죽었던 사랑하는 딸을 주님이 고쳐주시고 살려주셨습니다.

1. 고향을 방문하신 예수님

그리고 나서 주님이 길을 나섭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처음으로 주님의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는 일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예수님의 첫 번째 고향 방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고향은 나사렛입니다. 나사렛은 혼인잔치로 유명한 갈릴리 가나와, 예수님께서 한 번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나인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해서 그곳에 살았습니다. 당연히 예수님도 공생애 이전에 30년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사렛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런 곳이 바로 여기 나사렛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30년 동안 꿈을 키워온 곳,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키워왔던 그곳입니다. '이제 내가 이 죄악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백성들을 구원해야 할지, 내가 이제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할 텐데 어떻게 그 힘든 고난을 이겨내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키워왔던 그곳으로 주님께서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나올 때는 혼자 나왔는데, 이제 돌아갈 때는 제자들 열두 명을 데리고 나사렛으로 발걸음을 옮겨갑니다.

얼마나 설레셨을까요? 주님이 아마 그런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이웃집 어머니가 몸이 많이 편찮으셨는데 허리는 괜찮으실까? 내가 메시아의 권능으로 안수하여 낫게 해드려야겠다. 또 다른 이웃집 아버지가 다리도 불편하고 몸이 많이 안 좋으셨는데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가서 한번 치료의 능력을 보여드려야 되겠다.' 그런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자랐던 이웃과 친구들을 생각하며 그곳으로 발걸음을 하시지 않았겠습니까?

2. 배척당하신 예수님

2-1. 다른 종류의 놀람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님께서는 다른 마을에서도 했던 것과 똑같이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운집한 회당에 들어가서 안식일에 말씀을 전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 놀람은 이전에 사람들이 놀랐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놀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때도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왜 놀랐습니까? 서기관들, 랍비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가르쳤던 것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 그 자체로 받고, 주님을 통해서 은혜받고, 병 고침을 얻고, 귀신이 떠나가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었던 놀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놀람은 다른 종류의 놀람입니다. '예수가 이런 말을 하다니, 우리가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는데, 이렇게 위대한 능력을 전할 사람이 아닌데, 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 이래서 놀랐다는 뜻입니다. 은혜받지 못하는 놀람입니다. 그냥 놀랐습니다. 말씀은 참 좋은데, 그런데 이 사람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그런 놀람이었습니다.

2-2. 스칸달리조(σκανδαλίζω)

그 놀람에 이어서 이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여기 '배척하다'라는 말이 스칸달리조(σκανδαλίζω)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많이 들어보신 말입니다. '스캔들'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걸려 넘어지다',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다'라는 뜻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전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할 때는 병든 자가 일어났습니다. 무릎에 힘이 없는 자가 일어났고, 절망한 자가 살아났습니다. 도리어 일어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놀랍게 전했던 역사가 바로 예수님이 이전에 전했던 복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걸려 넘어졌습니다. 스캔들이었습니다.

2-3. 혈통과 직업의 걸림돌

무엇에 걸려 넘어졌습니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척하게 만들었습니까? 3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혈통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업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혈통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육체의 부모가 마리아와 요셉이었습니다. 그들의 형제가 지금 이 마을에 살고 있었고, 그의 자매들이 그들의 며느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 그런 비천한 혈통에서는 이런 놀라운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날 수 없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직업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목수였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목수 일을 할 때 예수님은 장남이라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목수 일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문짝이 고장 나면 문짝을 고쳐 다는 일, 식탁이 고장 나면 식탁을 고치는 일, 의자가 삐걱거리면 의자를 다시 손보는 일. 이런 일들을 예수님과 예수님의 아버지가 목수 일을 하면서 열심히 마을을 돌아다녔습니다.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혈통에서, 어떻게 이런 직업에서 이런 놀라운 역사를 행할 수 있느냐' 하며, 그것이 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내쫓아버렸습니다.

2-4. 놓쳐버린 축복

얼마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나 불행한 일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 시절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7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다. 그분이 오시면 우리를 위로하실 것이다. 나라를 잃고 지금 식민지 상황에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를 그분이 오시면 위로하실 것이다. 그분은 말없이 잠잠히 고통 가운데 끌려가실 것이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렸다." 이런 말씀을 그들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것이다. 양과 맹수가 함께 뒹굴어도 해함이 없는 사회, 어린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물리지 않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이 메시아가 오시면 일어날 것이다. 그들은 그래서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간절하게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역사가 일어날 것임을 그들은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이 땅에서 33년을 계셨는데, 그중에 무려 30년을 나사렛 마을에서 머물러 계셨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축복입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세상 사람들, 이 지구상에 있는 어떤 사람도 받아 누리지 못했던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메시아가 메시아인 줄 몰랐습니다. 그때는 몰랐을 수 있다 해도, 이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얻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가르침을 말씀하십니다. 유명해지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습니다. 그 메시아가 다시 나사렛으로 오셨습니다. 능력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혈통으로, 직업으로 걸림돌을 삼아서 예수님을 배척해버렸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3. 이미 주신 은혜

3-1. 맥추감사의 의미

이런 일이 오늘 우리에게는 과연 없을까요? 맥추감사주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해의 첫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절기입니다. 보리나 밀을 추수하고 나면 하나님께 첫 곡식을 가지고 나와서 감사하는 날입니다. 현대는 농경사회가 아니기에, 지난 시간 동안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감사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간구했는데 이루어 주셔서 감사하는 것도 있고, 이미 나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셔야, 이 손에 두 손 가득 받아야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미 하나님은 나에게 충만한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나사렛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30년 동안 주셨는데, 그들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비아냥거리고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 정말 귀한 자녀들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에 감사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터를 주셨습니다. 그 일터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받을 수 있는 교회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그 공동체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예배드릴 수 있고,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이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내쫓아버린 나사렛 마을 사람들과 같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3-2. 시온산의 깨달음

시편 125편 1절과 2절에 보면 한 순례자의 노래가 나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고 있었던 한 순례자가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높은 고지대에 있으니까 성을 따라 올라오면서, 옛날에는 몰랐는데, 예루살렘 성을 이렇게 두르고 있는 시온 산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은혜를 받아서 지어 부른 노래가 시편 125편입니다.

'저 시온 산이 옛적부터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을 이렇게 두르고 지키고 있었구나. 나는 옛날에 아버지 손을 붙잡고 올라올 때, 할아버지와 함께 올라올 때는 이 산이 이 성을 두르고 있는 걸 깨닫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처럼 위대한 산이 아름다운 성을 두르고 지키고 있구나. 이걸 보니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 오늘도 나를 지키고 돌보고 계시는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고백한 것입니다.

산이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감사한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부모가 항상 그 자리에 계시면 우리는 부모님께 감사한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교회가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우리의 인생에 귀한 영향력을 끼치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 그 건강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 여기 이 나사렛 백성들, 주님과 함께 30년을 거했는데 이걸 깨닫지 못하고 주님을 내쫓아버린 그런 불행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은혜의 때를 분별하라

4-1. 제한된 역사

주님을 배척한 이후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주님의 능력이 제한되었다는 말일까요? 아무런 능력도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다는 말이 그 뜻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그대로이나, 주님께 고침받기 위해서 나왔던 사람이 소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 고침받기 위해서 다른 마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밤새도록 고치고 고쳐도 날이 샐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아무도 예수님께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만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자 나온 소수의 사람들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혈통이 걸림돌이 되고, 직업이 걸림돌이 되어서 주님께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 일생일대의 가장 아름다운 기회를 발로 걷어차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마을을 떠나서 공생애 기간 동안 다시 그 마을에 돌아오지 아니하였습니다.

4-2. 영적 민감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는 시기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눈으로 그때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하면 마음을 활짝 열고, 생각의 문을 활짝 열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혈통이 걸림돌이 되고, 직업이 걸림돌이 되어서, 내가 생각한 것으로 은혜의 빗장을 닫아 걸고 예수를 배척하면 나만 손해 볼 뿐입니다.

은혜의 시기를 영적으로 민감한 눈으로 발견하고, 마음과 생각을 집중해서 하나님 은혜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주신 것에 감사하고, 이미 주신 것을 받아 누리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주신 은혜에 감사한 자들

5-1. 홉니와 비느하스의 실패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참으로 놀랍고 값진데, 이것에 감사하지 못해서 은혜를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가 제사장이었습니다. 아버지 덕에 그들은 회막이 있는 실로에서 가만히 있으면 은혜 가운데 잘 지냈으면, 대를 이어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감사하고 은혜를 은혜로 받아야 했건만,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그 자리를 방종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이 재물을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그 재물을 갈취합니다.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빼앗았습니다.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서였습니다.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자리, 성도들을 섬기는 자리, 예배드리는 자리를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리로 삼았습니다. 그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전쟁터에서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셨습니다.

5-2. 사무엘의 충성

반면에 같은 공간에 살고 있었던 사무엘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굴러들어온 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와서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깨어서 성전에 등불이 켜 있는 동안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상이 희귀하여 흔히 보이지 않던 그 시기에도 하나님은 사무엘에게는 역사하셨습니다.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성전을 사모하고 은혜를 사랑하는 자,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5-3. 다윗의 감사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갈 때 무엇을 가지고 나갔습니까? 다윗이 전쟁하러 갈 때 그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을 향하여 출전을 선포했을 때, 사울 왕이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너무 안타까워서 자신이 입고 있던 갑옷을 벗어서 입혀줍니다. 투구를 벗어서 씌워주었습니다. 왕의 칼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싸우라 했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입고, 투구를 쓰고, 칼을 들고 몇 걸음 걸어보다가 말합니다. "왕이시여, 이건 저에게 맞지 않습니다. 불편해서 전쟁에 나갈 수 없습니다." 훌훌 벗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나간 것이 물맷돌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왕의 겉치레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왕의 투구와 왕의 갑옷과 왕의 칼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것 들고 전쟁 나가서 어떻게 승리하겠습니까? 몇 걸음 걷다가 그만 골리앗에게 잡혀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재능과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강점에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고 돌만 몇 개 들고 나가는 그를 사람들은 다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물맷돌에 감사하고 나갔습니다. 들판에서 양을 지킬 때 맹수가 양을 잡아가면 그는 물맷돌을 돌려서 맹수의 입에서 양 떼를 건져내었습니다. 그런 능력과 재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에게 주신 재능을 감사하고, 그 재능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던 사람입니다.

6. 결론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물맷돌을 주셨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총이 크고 넘칩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나와 함께한 놀라운 은혜, 그 은혜를 가지고 세상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가십시오. 그러면 골리앗도 이기고 승리할 것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끄집어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일터를 주신 것에 감격하고, 교회 공동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의 때를 기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나사렛 백성같이 살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