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보내시는 예수님 (막 6:7-13)
만화영화를 좋아하십니까? 만화영화는 어린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만화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제가 본 만화영화 중에 가장 명작을 꼽으라면 저는 단연 '머털도사'를 선택하겠습니다. 머털도사는 1989년에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 '머털도사와 108요괴', '머털도사와 또메' 등의 시리즈가 연이어 나왔으며, 지금도 명절이나 공휴일이면 가끔 방영되곤 합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도술을 배워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주고 싶었던 머털이는 도사를 찾아갑니다. 누덕산에 있는 누덕도사를 찾아가 도술을 배우려 합니다. 그런데 이 누덕도사가 10년 동안 가르쳐 준 도술이라고는 화가 나면 머리털을 세우는 것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10년 동안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집안일만 시켰습니다. 그래서 머털이는 늘 불만이었습니다. 자신을 종처럼 부리기만 하고, 정작 배우고 싶은 도술은 가르쳐주지 않고, 머리털 세우는 것만 가르쳐준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누덕도사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머털이는 이 도술이 대단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머리털을 세우고 상상만 하면 상상한 것으로 변신할 수 있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놀라운 도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제자를 받을 때부터 이미 하산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아이에게 좋은 도술을 가르쳐 심성을 갈고닦아서, 때가 되면 세상으로 내보낼 준비를 처음부터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좋은 스승이란 훌륭한 제자를 기르고 훈련시켜서 때가 되면 세상으로 내보내는 사람입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받아서 열심히 가르치고 상급 학교로 진학시키며 사회로 내보내는 것이 좋은 선생님입니다. 반면에 나쁜 스승은 제자를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수족처럼, 종처럼 부리며 계속 가두어 두는 사람입니다.
1. 부르심과 보내심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마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나면 제자들이 홀로 남게 됩니다. 그때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이 덩그러니 남아 자립 신앙 없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고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때가 되더라도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배운 대로 훈련받은 대로 살면 된다고 지금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 되고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로 내보내시기를 원하시는지, 내보내실 때 무엇을 주셔서 보내시는지 함께 은혜받고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7절 말씀입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부르사'와 '보내시고'라는 두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부터 보내실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 제자들을 잘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잘 갈고닦아서, 때가 되면 세상 가운데로 내보낼 생각을 처음부터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주님이 처음 하신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백성들을 창조하신 이후부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를 저 갈대아 우르, 우상 숭배하는 곳에서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먼저 나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그를 훈련시키셨습니다.
1-1. 아브라함의 훈련
하나님의 훈련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훈련시키시고, 기근과 가난을 통해 훈련시키셨습니다. 주변의 여러 사람을 통해서 그를 다듬어 주셨습니다. 그의 인생 문제인 자녀 문제로 오랫동안 훈련시키셨습니다. 이제 때가 되니 그를 세상 가운데로 보내셨습니다.
그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증거가 있습니다. 함께 동역하며 평생을 해로했던 사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라가 죽고 나니 사랑하는 아내를 묻을 매장지가 없었습니다. 그때 헷 족속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에게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이여, 당신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지도자이십니다. 여기 우리의 온 땅이 있습니다. 아무 땅이나 택하십시오.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 지내십시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당신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백성답게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 땅을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여러 사람이 그를 믿음의 백성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인정할 만큼 그는 하나님의 보냄받은 곳에서 열심히 성실히 삶을 감당했습니다.
1-2. 교회의 본질
우리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교회란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훈련시키시고 내보내시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교회라고 본다면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는 것에는 혈안이 되어 있는데, 훈련은 열심히 시키는데 가두어 두고 있습니다. 내보내지 않습니다. 세상 가운데로 나가서 열심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고 보내지 않습니다. 교회에 가두어 두고 목사의 일꾼 만들고 교회의 기능인으로 만드는 것으로 성도를 전락시킵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인데, 삶의 자리와 일터에 나가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고 격려하고 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의 삶과 세상에서의 삶이 다른 이중인격자를 양산해내는 것이 오늘 교회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7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신 사건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습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놀라운 광경을 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환상 중에 대화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귀하던지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제가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 여기서 영원히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 나누며 천국 백성 되어 삽시다."
그러나 주님은 그 말을 들으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장서서 산을 내려오십니다. 산을 내려오니 누가 있습니까?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병든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가 있습니다. 애통한 심정으로 간절한 심정으로 주님이 산에서 내려오시기만을 기다리던 한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아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산 아래에는 수많은 병자들, 고통받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산 위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머물러 있겠느냐. 이것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메시지입니다. 교회 안에 갇혀서 성도들끼리 함께 떡을 떼고 공동체를 이루고 찬양하며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이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세상 속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우리 각자의 교회 됨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서도(徐都) 하나의 교회입니다. 천여 명이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이 공동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훌륭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흩어져서 더 위대한 하나님의 교회가 되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천여 명의 교회가 움직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삶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고 민족이 바뀌어지지 않겠습니까?
사탄이 무엇을 더 두려워하겠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하나의 교회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아니면 흩어진 한 명, 한 명의 각자의 교회 됨을 더 두려워하겠습니까? 사탄은 함께 모여서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 그러나 흩어지지 않는 교회를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아놓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당 크게 짓고 사람들만 많이 모아놓으면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즐거워하고 자기들끼리 기뻐하고 자기들끼리 찬양하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두려워하는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 되는 교회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흩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능력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서 변화를 이루어내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든 교인이 하나의 교회가 된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 "너희들은 각자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둘씩 둘씩 짝지어서 가보라고 훈련시키셨습니다.
2. 권능을 주심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그저 보내지 않으십니다. 무언가를 손에 들려서 보내십니다. 7절에서 9절을 보십시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주님께서 흩어지는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권능이었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가져가지 말라고 하신 것도 있습니다. 많은 양식이나 전대의 돈이나 두 벌 옷도 가지고 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허락하신 것은 신발과 지팡이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 있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권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2-1. 권능의 확인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함을 가집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그 권능이 우리에게 있는 줄 어떻게 압니까? 증서도 아니고 면허증 같은 라이센스도 아니고 뭔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내가 권능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궁금해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권능을 가지고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평생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권능을 주셨는데,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보면 그 권능이 드러날 줄로 믿습니다. 살아보면, 하나님의 말씀답게 한번 부딪혀 보고 여기도 부딪혀 보고 저기도 부딪혀 보고,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정체성을 드러내고 살아가시면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살아보면 그 권능이 얼마나 위대한 권능인지, 얼마나 대단한 권능인지, 내가 상상도 못 할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임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권능을 한 번도 끄집어내서 사용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권능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권능인지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2-2. 권능의 경험
저는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신학대학원을 다녔습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임사역을 나갈 때 나이가 서른이었습니다. 이제 갓 서른이 된 사람이, 이제 막 결혼한 사람이 전임사역을 해서 성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전하고 심방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다들 어른들이시고 신앙생활을 몇십 년 동안 하셨는데, 교구를 맡아서 심방하고 그들의 경조사를 찾아가고 위로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너무 일찍 전임사역으로 나가는구나 싶어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전임사역지에서 그런 두려운 마음으로 사역하고 있는데, 담임목사님께서 모든 전임사역자가 성경공부 한 과목씩을 다 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부예배가 끝나고 나면 12시 30분인데, 점심 먹고 1시부터 2시까지 1시간 동안 과목을 정해서 성경공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과목은 기도학교였습니다.
과목을 받고 나니 더 막막했습니다. 권사님들은 평생 기도하신 분들인데, 이제 갓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칠까? 무슨 내용을 가르쳐야 하나? 기도는 하는 것인데 나는 기도를 길게 하지도 못하고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기도를 가르칠까? 두려웠습니다.
어쨌든 하라고 하시니 시작을 했습니다. 모집을 하고 반을 개설했는데 그때까지 몇 명이 올지 몰랐습니다. 몇 명이 올까?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첫 개강 날 세 분이 오셨습니다. 넓은 강의실에, 그런데 두 분은 할머니였는데 교실을 잘못 찾아서 오신 분들이었고, 한 분은 제가 섬기는 부서의 총무 집사님이었습니다. 전도사님 혼자 서 있을까 봐 의리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 분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세 분을 모시고 오리엔테이션을 마쳤습니다.
저희 반에 3명이 왔다고 하니 우리 부목사님 중 한 분이 그 반 폐강하라고 했습니다. 너도 힘들고 그분들도 1년 동안 얼마나 힘들겠느냐, 왜 그걸 1년을 끌고 가려고 하느냐, 그냥 폐강해라, 다음에 사람을 많이 모아서 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에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첫 번째 반인데,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첫 번째 사람들인데, 몇 명이나 되어야 만족할까? 5명, 10명, 혹은 그 이상 100명? 하나님이 세 명을 주셨는데 이분들을 300명으로 여기고 열심히 준비하고 해보자.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점심 먹고 1시가 되니 얼마나 졸리겠습니까? 할머니 두 분은 시작하자마자 주무시고, 한 분 선생님도 너무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도 힘들고 배우는 분도 힘들고, 그렇게 두어 달, 석 달을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명색이 기도학교니까 첫 시작할 때 기도 제목을 받았습니다. 우리 이 제목 가지고 열심히 기도해서 응답받자고 기도하고 시작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적어낸 기도 제목이 자신의 손주가 세 돌이 지났는데 잘 걷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걷지 못하고 잘 서지도 못해서 손주가 걷고 뛰었으면 좋겠다는 기도 제목을 써주셨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석 달이 지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손주가 일어서고 뛰고 걷는다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여기서 기도해서 이 일이 일어났다고 얼마나 많이 자랑하셨는지 모릅니다.
저는 지금도 믿습니다. 저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데, 저는 아무런 권능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 할머니의 기도를 들으시고, 부모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변에 기도하시는 수많은 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손주를 일어서게 하시고 걷게 하시고 뛰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할머니가 주변에 많이 소문내셔서 기도 응답받는 반이라고 해서, 1년이 지날 때는 10배, 30명이 넘고 더 많은 분이 와서 공부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런 권능이 없는데 하나님이 사역자들을 내보내실 때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시는구나. 함께하시는구나.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셔서 역사가 일어나는구나.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두렵기 때문에 나가지 않고, 두렵기 때문에 전하지 않고, 두렵기 때문에 행하지 않습니다. 내가 일터에서나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그래서 손해 보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악한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끄집어내서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휘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2-3. 비우고 나아감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져가지 말라고 한 것도 있습니다. 많은 양식과 전대의 돈과 두 벌 옷을 가져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이 길을 떠날 때 짐을 무겁게 하며 떠납니다. 양식을 등에 지고, 전대에 돈을 가득 채우고, 옷도 가득 채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양식이 떨어집니다. 돈이 떨어집니다. 옷도 해어집니다. 그러면 두려워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때 주의 권능만 붙들고 의지하고 나아가야 했으나, 주의 권능은 뒤에 밀쳐두고 내가 의지하는 양식과 물질과 내가 가지고 있는 세속적 지위와 옷을 여러 벌 들고 시작했기 때문에, 이것이 사라지면 하나님의 권능도 사라졌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불행한 현실 아닙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권능이 능력 있게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가 가지고 있는 양식이나 물질이나 지위를 가져가지 말라, 세상을 향하여는 오직 주의 권능만 붙들고 나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4장 2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이때 모세의 나이가 80이 넘은 노인입니다. 남루한 옷을 입었습니다. 손에 지팡이 하나 들었습니다. 상대는 세계 최고의 강국 이집트의 파라오입니다. 파라오를 향해 걸어가는 남루한 노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초라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초라함 이면에 하나님의 권능을 넣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세와 함께 있을 테니 너는 나의 권능을 믿고 바로에게 나아가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40세 언저리에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때 그는 공주의 아들이었고 이집트의 왕자였습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돈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힘이 있습니다. 젊은이의 지혜도 있습니다. 이런 힘과 열정과 지혜와 물질과 세상이 가지는 모든 것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켰다면 훨씬 더 능력 있는 사역을 감당했을 텐데.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모세가 가졌던 물질,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직함, 이집트의 왕자라는 직함,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사회적 지위, 그의 건강까지 다 내려놓고, 이제 80이 되어서 굽은 허리로 하나님이 주신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주의 권능 가지고 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그때 복음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날로 더 흥왕할 줄로 믿습니다.
2-4. 경건의 능력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가 무엇을 자랑하고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울은 이 시대 교회의 악함을 한탄하며 디모데후서 3장 5절에서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을 대비해서 말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오늘 이 시대의 교회는 안타깝게도 모양을 갖추는 데 주력합니다. 건물을 넓게 하고 십자가를 높이 세우고 휘황찬란한 건물을 높게 높게 세워가고, 사람들을 많이 모으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것은 경건의 모양일 뿐 경건의 능력이 그 속에서 상실되고 사라진다면 그 안에서 하나님이 어떤 능력을 발휘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모양이 아니라 능력이라는 사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양식이나 물질이나 눈에 보이는 옷가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래부터 주셨던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사실, 이 사실을 믿고 의지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나 일터나 우리 각자가 교회 된 우리나 모두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의 권능 하나 붙들고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사람의 반응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한 가지 주의사항을 말씀해 주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복음만 전하면 "내가 왜 이때까지 이 말씀을 듣지 못했을까요?"라며 기쁨으로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행복하게 영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반면, 어떤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냉담합니다.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핍박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느냐?"고 도리어 치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마라. 영접하지 않더라도 상처받지 마라. 발의 먼지를 떨어버려라.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들이 기쁨과 행복으로 복음의 말씀을 받는다 하더라도 들뜨지 마라. 자만하지 마라. 너희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라, 흔들리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3-1. 하나님의 뜻
오늘 이 말씀을 교회에 적용시켜 보십시오. 교회에 성도들이 모이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누구 덕분입니까? 목사 때문입니까? 아니면 성도들 각자가 좀 더 열심히 해서 우리의 수고 때문입니까? 그 이전에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주신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왜 이렇게 성도들을 보내주십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성도들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우리 교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과 목적과 뜻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목말라 하고 기도하고 무릎 꿇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반대로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면 누구 탓입니까? 목사 탓, 성도 탓, 당회 탓입니까? 그런 탓을 하기 때문에 오늘 한국 교회에 수많은 문제가 일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요? 왜 이런 시련과 고통을 주십니까? 아버지 뜻이 무엇입니까? 오늘 이 문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알게 해 주십시오. 고쳐나가고 순종해 나가겠습니다." 무릎 꿇고 여쭈어야 합니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터가 흥왕하고 잘 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일터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가정이나 일터나 교회나 모든 것이 내가 잘해서 된 것은 결코 없습니다. 모든 것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영광일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니 하나님이 주신 권능을 가지고 가서 전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말씀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3-2. 예레미야의 사역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유다가 멸망할 때 40년 동안 예언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성전의 모든 기명이 다 약탈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40년 동안 예언했던 선지자가 이 나라의 멸망에 책임이 있습니까? 그가 예언을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이키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어느 누구도 예레미야가 잘못했다고 탓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을 받아서 전했습니다. 백성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나라를 바벨론 포로로 돌리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잘 되어도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리고, 문제가 생기고 복음을 영접하지 않아도 너는 책임이 없으니 발에 먼지를 떨어버려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행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고 요구하십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훈련하셔서 보내시는 곳입니다. 교회는 가두어 두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때 우리 각자가 교회 됨을 인정하시고 보내실 때 우리 각 사람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 권능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물질과 양식과 세속적 가치보다도 하나님의 권능을 사용하시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내 몫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주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 뿐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