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강 / 세례요한과 헤롯 (6:14-29)

세례요한과 헤롯 (막 6:14-29)

셰익스피어에게는 4대 비극이 있습니다. 햄릿, 리어왕, 오셀로, 그리고 맥베스입니다. 맥베스는 1605년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합니다. 충직한 신하이자 용맹스러운 장군이었던 맥베스는 자신의 부관 뱅코 장군과 함께 그날도 어김없이 전쟁을 수행하고 귀환하고 있었습니다. 왕을 성실히 받들고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살았던 맥베스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던 길에 이름 모를 마녀 세 명을 만납니다. 세 명의 마녀는 맥베스에게 난데없는 신탁을 들려줍니다.

그 신탁의 내용은 "당신은 앞으로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지금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내가 왕이 되어야 할 것 같고, 내가 왕이 되면 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거짓된 욕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서 돌아와서 자신의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아내도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아내가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마침 우리 영지에 왕이 지금 와서 머물고 있으니 이건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왕을 제거하고 이제 진짜 왕이 되십시오." 그래서 아내의 충동과 자신의 욕망이 맞물려서 그는 왕을 제거하고 스스로 왕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신탁을 들을 때 함께 있던 뱅코에 대해서도 마녀들이 신탁을 해주었습니다. 뱅코의 후손 중에 어느 누군가가 훗날 왕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작 자기가 왕이 되고 나니 이 뱅코를 제거해야만 후환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객을 보내어 충성된 신하까지 제거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맥베스와 그의 아내는 뱅코의 환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죽은 뱅코가 밤마다 나타나서 괴롭히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죄책감에 시달렸고, 밤마다 꿈마다 나타나서 "나를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라는 외침 가운데 단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맥베스의 아내는 신경쇠약과 정신분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아내가 떠나자마자 그는 더욱 치닫게 되고 더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각종 학정과 폭정을 일삼게 되었고, 나라는 민심이 이반하여 더 이상 왕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맙니다. 인근 잉글랜드 군대가 쳐들어왔고, 이제 그는 잉글랜드 군왕의 칼날 앞에 말없이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맥베스가 남긴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저 위대한 넵튠의 바닷물을 다 사용한다 하더라도 내 손에 묻은 피와 죄를 씻을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이 피가 저 푸른 바닷물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 그는 불행하게도 죄책감 가운데 사로잡혀 평생을 허비하며 살다간 불행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와 비슷한 한 사람을 만납니다. 헤롯입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였습니다. 그는 악한 왕이었고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반대 편에는 착한 마음도 있었고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는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세례 요한을 죽이고 나서 그 환영에 휩싸여 잘못된 삶을 살다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권력이라는 껍질을 벗지 못하고 그 껍질에 휩싸여 살다간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이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내가 깨고 벗고 나서야 될 것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두 명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병든 자가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온 팔레스타인과 유대 땅에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실로 수백 년 만에 맛보는 유대 땅의 기쁨과 환희였습니다. 그 땅은 약 700여 년 동안 어둠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당했고,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유린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 땅에는 빛이 없었고, 희망이 없었고, 슬픔과 고통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대로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신 이후에 그 땅에는 행복과 기쁨과 병든 자가 일어나는 놀라운 은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불안과 초조와 공포와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헤롯이었습니다. 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을 죽이고 나서 그는 끊임없는 고통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능력이 온 세상에 전파되자, 그는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며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그는 고통에 휩싸여 살아야만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헤롯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가 이 헤롯을 살펴보려면 그의 아버지 대헤롯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헤롯이 나오는데, 그의 아버지 대헤롯은 예수님 탄생 시절에 두 살 미만의 영아를 학살한 사람입니다. 아주 무서운 사람입니다. 에돔 사람이었고, 로마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서 팔레스타인 온 유대의 권력을 독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유대 땅 팔레스타인은 아들 세 명에게 나누어졌습니다. 남쪽 유다는 헤롯 아켈라오가 다스리고, 북쪽의 갈릴리 곧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곳은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이 바로 이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리고 이방인 지역은 헤롯 빌립이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헤롯 빌립의 아내는 헤로디아였습니다. 헤로디아는 아주 사악한 여인이었고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가득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남편 헤롯 빌립은 권력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헤로디아가 볼 때는 무능해 보였습니다. 오히려 헤롯 안티파스가 욕심이 있고 악한 왕이었으며 자신과 마음이 맞을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헤로디아를 자신의 아내로 삼습니다. 짐승도 하지 않을 짓을 사람이, 그것도 지도자라는 사람이 그런 짓을 범하고 버젓이 살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회개하라고 세례 요한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선지자의 목소리로, 예언자의 목소리로 강하게 외쳤습니다. 헤롯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세례 요한을 함부로 다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 헤로디아는 달랐습니다.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언젠가 기회만 되면 세례 요한의 목을 치고야 말겠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헤롯의 생일이었습니다. 헤로디아는 생일에 딸 살로메를 앞장 세웁니다. 살로메가 춤을 추었습니다. 술이 거나하게 올랐습니다. 그때 헤롯이 이렇게 말합니다. 딸에게 소원을 말해보라,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내가 너에게 주겠다, 어떤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살로메가 엄마와 공모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말합니다. "이 소반에 세례 요한의 목을 담아 주십시오." 주변 사람들의 눈치와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세례 요한의 목을 쳐서 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가 날로날로 전파되자, 그는 자신이 목 베어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죄책감과 환영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입니다.

1. 권력의 옷을 벗지 못한 헤롯

오늘 이 헤롯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서 이렇게 고통 가운데 헤매고 살아야만 했겠습니까? 우리가 읽은 본문 20절을 보십시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라"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가 불편한 사람이긴 했으나 그의 말을 들을 때 달갑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진리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으나 세례 요한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나도 언젠가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진지하게 세례 요한과 마주 앉아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세례 요한과 독대해서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 제대로 서기만 했더라도, 그가 이런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았을 것인데,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를 뒤집어 싸고 있었던,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권력의 옷이 너무나 두터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내려놓기가 힘겨웠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과 마주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이 옷을 벗어야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삼형제가 권력 다툼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 내가 이 권력을 놓으면 어떻게 살까, 이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던 권력과 세속적인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1-1. 빌라도의 경우

이와 비슷한 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빌라도입니다. 빌라도가 누구입니까? 로마의 총독 아닙니까? 로마 황제의 명을 받아서 유대 땅 팔레스타인을 다스리는 황제의 전령이었습니다.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 이 땅을 다스리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로마 본토에 가서 출세하는 것이었습니다. 황제의 마음에 들어서 출세가도를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비록 내가 이 식민지에 와서 다스리고 있으나 언젠가는 본토에 가서 내 이름을 날리게 될 것이다, 그 날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유대인들이 청년 예수를 붙잡아 왔습니다. "이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십시오. 흉악범 바라바를 석방해 주시고 이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예수를 심문해 보았습니다. 만나고 대화해 보니 죄가 없었습니다. 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신비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하는데 그를 만나보니 진짜 같았습니다. 그에게 끌림을 느꼈습니다.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예수에게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그도 진리에 목말라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의 소리가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나가서 말합니다. "이 사람은 죄가 없다." 오히려 소리가 커졌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민란이 날까 봐 두려웠습니다. 민란이 나고 자기가 다스리는 유대 팔레스타인이 위기에 휩싸이게 되면 인사 고과가 좋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출세 가도에 걸림돌이 될 것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출세를 안겨 줄 사람이 아니라 걸림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을 씻습니다.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 너희들에게 돌리니 뜻대로 하라." 예수를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빌라도와 헤롯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권력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크고 너무나 깊었습니다. 자신을 뒤집어 싸고 있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속적 욕망 때문에 그들은 진리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더 깊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 몇 년이나 유용할 것 같습니까? 이 땅의 대통령도 5년 임기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속의 권력이 몇 십 년 동안 유효할 것 같습니까?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헤롯과 빌라도는 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진리를 박차고 나간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까지 박차버린 참으로 무지한 백성들이었습니다.

1-2. 벗고 주님 앞에 나오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너희들, 세속의 옷을 다 벗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얼마나 많은 물질을 가지고 있든지, 얼마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든지, 얼마나 큰 야망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 벗고 주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가지고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진리에 대한 관심만 가지고서는 부족합니다. 내가 진리에 대해서 조금 관심이 있다고, 예수님을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모든 것 다 벗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렇게 주님 앞에 나와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떨기나무 가시떨기 앞에서 모세를 만나 주실 때 "네 발에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80이 넘은 모세는 20대의 왕자도 아니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신발까지 다 벗고 주님 앞에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에게 나오라. 네 더러운 죄까지 다 벗고 나에게 나오라. 그러면 내가 너와 만날 것이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만나 주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거듭남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유대인의 관원이라는 직책도,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라는 직책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가 거듭남의 비밀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었습니다. 이름 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딸의 죽음 앞에서 그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청년 예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도 구원받고 딸도 살림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올 때 무엇으로 포장하고 계십니까? 내 자존심, 사람들의 눈빛, 내가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가치, 이런 것들을 다 정리하고 주님 앞에 나와야 그때 우리가 주님을 진정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독대하고 만나기를 원하신다면 내가 가진 여러 가지 것들을 다 내려놓고 다 정리하고 주님 앞에 진실된 마음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헤롯은 그것에 실패했던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2. 권위를 지키려다 잃어버린 헤롯

또한 여기 이 헤롯은 권위를 주장하다가 오히려 권위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25절과 26절을 보십시오.

"그 하녀가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딸의 춤에 흠뻑 빠졌습니다. 딸에게 말합니다. "소원을 말하라,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그런데 그 아이가 소원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의 목을 담아 주십시오." 여기서 헤롯은 자신의 말을 거두어 들여야 했습니다. "내가 실수했구나, 내가 술에 취해서 흥에 겨워서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하고 말았구나, 미안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실언했다"고 인정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권위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 내가 내뱉은 말을 잘못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딸을 나무라야만 했습니다. "네가 네 나이에 맞지 않는 참람한 요구를 하는구나. 법에 의해서 다스려야 될 것을 어찌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하느냐?" 그렇게 나무라야만 했습니다. "다른 소원을 말하라"고 말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는 것이 권위라고 여겼습니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내가 내뱉은 말을 지키는 것이 왕으로서의 권위를 지킨다고 여기고, 그는 잘못된 것을 끝까지 주장하고 고집했습니다.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도록 죄책감에 빠져 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실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찌르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 마음에 영의 찔림이 있을 때, 주변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지적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참된 권위는 내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돌이켜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권위입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습니다. 주변 공동체도 함께 살아날 수 있습니다.

2-1. 사울과 다윗의 대조

성경에 보면 권위를 지키려고 권위적으로 살다가 권위주의에 빠져서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도 있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뉘우쳐서 하나님 앞에 새롭게 회복받은 영웅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은 권위주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인들의 노래에 분노했습니다. 여인들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발끈했습니다. 질투에 휩싸였습니다. 그때부터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좀 넓었으면 어땠을까요? "내가 왕인데 내 부하가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하니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가. 이렇게 훌륭한 부하들이 많이 나와야,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이 나라가 복되고 흥왕할 것 아닌가. 나보다 더 뛰어난 신하를 두고 있는 내가 얼마나 더 위대한 왕인가." 자신의 마음을 넓혔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질투 때문에,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는 명목으로 다윗을 살해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망한 지름길이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어땠습니까? 훗날 그가 왕이 되고 난 이후에 아들 압살롬의 반란 때 광야로 내몰립니다. 광야로 쫓겨 나가는 그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난합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그를 욕했습니다. 주변에서 듣고 있었던 신하들이 참아내지 못해서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저에게 허락하시면 제가 건너가서 저 사람의 목을 치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실 말씀이다. 하나님이 내가 잘못한 것을 저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내가 그대로 수용하고 들을 테니 잠잠하고 가만히 있으라." 다시 다윗은 왕권을 회복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무도 그렇다고 해서 다윗을 권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겸허히 인정하는 사람, 그가 진실로 권위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깨달음을 허락하실 때, 우리는 즉시 돌이키고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두 번의 기회를 놓친 헤롯

참으로 이 헤롯이 어리석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두 번의 기회를 주셨는데 그 기회를 두 번 다 놓쳐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첫 번째 기회는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가 짐승보다 못한 짓을 했을 때,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서 자기 아내로 삼았을 때, 그때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통해서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양심의 찔림을 외면했습니다.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례 요한의 목을 치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두 번째 기회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죄책감이 그렇게 높았습니다. 밤마다 세례 요한의 환영이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죄책감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양심을 통해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돌이키라고, 회개하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은 세례 요한을 통해서, 두 번째는 양심의 죄책감을 통해서. 그러나 그는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그에게 충언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직언해 주는 신하도 없었습니다. "왕이시여, 잘못한 것 같습니다. 돌이키십시오.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단번에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여러 번 기회를 주십니다. 두 번, 혹은 세 번.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도 의인 열 사람을 찾고 기다리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러 번의 기회를 주시는데, 그 기회를 박차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기회 주실 때마다 그 기회를 붙잡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는 헤롯처럼 미련한 인생을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헤롯을 보고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이 사람과 비슷한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권력의 옷과 세속의 옷을 입고 이것을 하나님 앞에 벗지 못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미련한 인생들.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그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여전히 계속해서 직진하고 있는, 돌이키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인생 아닙니까?

여러분, 기회 주실 때, 그때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돌이키고 회복하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헤롯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헤롯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자신의 권력의 옷을 벗지 못해서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는 미련한 자,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서 잘못한 일인 줄 알면서도 세례 요한의 목을 치는 자,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통해서, 양심의 소리를 통해서, 죄책감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데 여전히 돌이키지 않는 미련한 자. 오늘 우리가 그런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즉시 돌이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주시고, 그것을 벗어 버리고 오로지 주님 앞에 새롭게 매달려 결단하고 헌신하고 나아가는 믿음의 백성으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올바른 주님의 백성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