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새다와 게네사렛 (막 6:53-56)
1. 콜럼버스의 항해
1492년 8월 3일 스페인 팔로스 항에서 콜럼버스와 세 척의 배, 그리고 90여 명의 선원들이 역사적인 항해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 미개척지였던 아시아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서 역사적 항해의 닻을 올렸습니다. 그 당시 유럽에서 아시아의 향신료와 비단은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그런데 향신료는 이탈리아 상인들이 독점하고 있었고, 아시아와 육로를 통해 무역을 하려 해도 중간에 이슬람 국가가 가로막혀 있어서 무역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저마다 아시아 항로를 개척하는 것을 국가의 명운을 건 사명으로 여기고 열심히 개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스페인의 여왕인 이사벨 1세는 콜럼버스를 통해서 아시아 항로를 개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항해를 시작하고 70여 일이 지나서 육지를 발견합니다. 콜럼버스는 그 땅이 아시아라고 분명히 확신했습니다. 아시아의 인도쯤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땅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가 그 땅을 인도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때 만난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니 그 땅은 아시아도 아니고 인도도 아니고, 아메리카 대륙 카리브 해에 있는 바하마 군도의 작은 섬이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 땅을 아시아라고 여기고 본국에 돌아와 여왕에게 보고합니다.
여왕은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곧 금광이 발견될 것이고 향신료와 비단으로 나라가 부강해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기다려도 기다려도 향신료나 비단이나 금광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콜럼버스는 말년에 여왕의 눈 밖에 나서 비참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역사적 평가를 돌이켜보면 과연 콜럼버스가 이 여정에서 실패한 것일까요?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콜럼버스는 아시아 항로를 개척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탐험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 어느 누구도 콜럼버스를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콜럼버스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여정이 내가 원했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혹은 망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길게 보고 또 넓게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도 과연 우리 인생이 실패하고 망한 인생일까요? 과연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2. 벳새다가 아닌 게네사렛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보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도 원했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이들을 가리켜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고 우리 인생을 함께 돌이켜 보기를 원합니다.
2-1. 바뀐 항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병이어 사건을 행한 이후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각기 갈라섰습니다. 예수님은 산으로 기도하기 위해서 올라가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벳새다(Βηθσαϊδά)로 보내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아니지만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에 태워서 건너편의 벳새다로 보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던 도중에 바람과 풍랑을 만납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제자들이 바람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한달음에 내려오셨습니다. 물 위를 건너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두려워했는데 "안심하라, 걱정하지 말라" 하시고 배에 올라타시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배를 타고 육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도착해 보니 벳새다가 아니었습니다. 53절을 보십시오. "건너가 게네사렛(Γεννησαρέτ) 땅에 이르러 대고." 원래는 벳새다를 목적지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바람 때문에, 풍랑 때문에 항로가 바뀌었습니다. 도착해 보니 게네사렛 땅이었습니다. 원래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를 기준으로 보면 북동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게네사렛은 갈릴리 호수를 기준으로 북서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말하자면 동쪽으로 가려고 했다가 서쪽으로 온 꼴이 된 것입니다.
2-2. 제자들의 마음
이쯤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원래 벳새다라는 도시 이름의 뜻은 "어부들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미루어 짐작해 보면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역에 많이 힘들고 지쳐서, 이제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의 고향 마을이 있는 벳새다에 가서 좀 쉬었으면 좋겠다. 이름이 어부들의 집이니 어부들을 위한 시설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그곳에 가서 쉬고 회복하고 다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벳새다를 향하여 뱃머리를 돌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풍랑이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정신 차리고 도착해 보니 게네사렛이었습니다. 아마 제자들은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불안했을 것입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을 경험하게 되면 불안합니다. 진도대로, 계획대로 딱딱 맞아떨어져 가야 하는데, 벳새다가 아닌 게네사렛에 도착하고 나면 "도대체 여기서 어떤 일이 우리에게 벌어질까?"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 우리 인생에 또 펼쳐질까?" 기대가 아닌 불안감이 그들을 휩쌌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은 짜증이 몰려왔을 것입니다. 쉬고 싶은데, 어부들의 집 우리 고향 마을에 가서 먹거리도 마음껏 먹고, 어른들도 만나고, 모처럼 잠도 편안하게 자고, 몸보신도 하고 쉬고 싶은데 쉬지 못하니 짜증이 몰려왔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생각은 예수님에 대한 불신이 생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에 함께 타셨는데, 주님께서 오셔서 배에 타시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해 주셨는데, 왜 게네사렛인가? 왜 벳새다로 가지 못했을까? 제자들은 아마 이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마음속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원하던 대로 되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나는 분명히 목적지를 벳새다로 잡고 달려 나갔는데 중간에 풍랑에 닥칩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우리 인생에 굉장히 많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도착해 보니 벳새다가 아닌 게네사렛입니다. 불안해집니다. "왜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여기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나를 힘들게 할까?" 걱정이 한가득입니다. 짜증도 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되는데 내가 하는 일은 자꾸만 꼬이고 힘들어지니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화가 납니다. 예수를 잘 믿고 내가 신앙의 궤도에서 이탈한 적도 없는데, 신앙생활 열심히 했는데 왜 나에게는 이런 일이 닥치나. 주님에 대한 불신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물스물 올라오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살지 않습니까?
2-3. 게네사렛의 은혜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어쨌든 지금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게네사렛이라는 사실입니다. 게네사렛이 어떤 곳인지 한번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돌이켜 돌아갈 수 없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이곳이 어떤 땅인지 살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게네사렛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54절을 보십시오.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사람들 모두가 배에서 내렸는데 예수님을 예수로 알고 영접했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은 "우리가 게네사렛으로 가겠다"고 광고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벳새다였습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어떻게 알고 그랬을까요? 그곳에는 준비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병든 자들이 침상을 둘러메고 예수님에게 다가왔습니다. 살려달라고, 고쳐달라고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입소문을 타고 몰려왔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온 도시가 예수님으로 북적북적이었습니다. 시장에도, 이 마을에도 저 마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몰려왔습니다.
사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어떤 마을에 가든지 전도하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회당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마을 곳곳에 들어가서 전도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는 전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자기 발로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아무 데나, 어떤 도시나, 어떤 마을이나 예수께서 가시는 곳에는 병자들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고 했고, 예수님의 옷자락이 스쳐 지나가는 곳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만약에 풍랑이 없었더라면, 문제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그냥 벳새다로 갔을 것입니다. 벳새다에서 두 다리 쭉 뻗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마음껏 먹고, 마음껏 쉬고, 어른들도 만나고, 어부들의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면 게네사렛에서 간절한 영혼들, 예수님을 갈망하는 이 불쌍한 영혼들은 누가 돌봐 줘야 하는 것입니까? 그들은 다 예수님을 간절하게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소문으로 사모하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와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만져 주시기를 기대하고 바라고 소망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누가 돌봐 줘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풍랑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풍랑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풍랑을 일으켜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게네사렛으로 인도하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게네사렛에 도착해서 이 갈급한 영혼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불평했고, 불안했고, 짜증 났고, 예수님을 불신했습니다. 그런데 도착해서 지내다 보니 이곳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사역의 현장이라는 사실, 여기에 이 불쌍하고 갈급한 영혼들이 이렇게 몰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는 사실에 사랑과 은혜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나는 게네사렛이 아니라 벳새다로 가기를 원했는데, 이 삶의 풍랑과 고난 때문에 여기 와서 지금 정착해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지내면 지날수록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고비를 건너가면 저 인생의 때를 맞추어서 일을 저지르기를 원하는데,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게네사렛을 허락해 주신 것, 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인도하심
성경 전체는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려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3-1. 출애굽의 여정
출애굽 사건을 보십시오. 출애굽 해서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 가나안 땅까지 가는 길은 지도를 펴고 돌아보면 40년 동안 헤맸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짧은 길, 그 당시도 당연히 짧게 가는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변 길입니다. 이집트에서 출애굽 해서 지중해 연안을 따라서 해변 길로 올라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낸 바로조차도 이들이 해변 길을 통해서 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생각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7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생각이 드러나 있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 이 길이 해변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집단입니다. 이들이 버티고 있어서 가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을 만나면 다시 돌이켜 이집트로 돌아갈까 봐 하나님이 그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2의 길도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왕의 대로"라고 불리는 길이었습니다. 사신들이 다니는 길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넓은 길입니다. 악당들이 없습니다. 안전한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왕의 대로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길은 길이 아닌 길이었습니다. 바다 길이었습니다. 홍해에 길이 없습니다. 홍해를 여시고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사막에 무슨 길이 있습니까? 그런데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사막을 마치 길이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강한 손과 크신 팔로 인도하셨습니다. 자그마치 40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짧은 길, 편한 길, 안전한 길로 인도하시면 되는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인도하셨을까요? 신명기 8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 나오고 있습니다.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복이 됩니까? 빨리 가는 것이 복이지, 안전하게 가는 것이 복이지, 왜 40년 동안 방황하는 것이 복이 됩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43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 그대로 가장 짧고 편안한 길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버리면 그들의 내면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껍데기만 출애굽했을 뿐입니다. 내면은 여전히 이집트 사람들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종처럼 노예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노예 의식과 그들의 종된 의식을 광야에서 다 떨어뜨리고 다 제거하고 들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40년 동안 이집트에서 들인 쓴물을 다 빼고, 이제는 단물로 바꿔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시내산에서 말씀을 받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온전히 거듭난 채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하나님은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이고 이것이 곧 복인 줄로 믿습니다.
3-2. 바울의 선교 여정
신약성경을 보면 바울의 전도 여행 선교의 여정이 나옵니다. 1차 전도여행을 무사히 마친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목적지를 에베소로 정했습니다. 에베소가 그 당시 소아시아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말씀을 심으면 그 도시를 통해서 복음이 널리 널리 전파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바울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에베소가 아닌 유럽으로 건너가길 원하셨습니다. 바울은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바울을 유럽으로 건너가게 말씀하십니다. 꿈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나와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합니다. 바울은 그 꿈을 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에게 해를 건너갑니다.
유럽에 도착하고 나서야, 사역을 한창 진행하고 나서야 하나님이 왜 나를 유럽으로 인도하셨는지 깨닫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자색 옷감을 파는 장사 루디아를 통해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덕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감옥에 갇힐 때마다 빌립보의 성도들이 그를 후원해 주었습니다. 선교 여행을 갈 때마다 그들은 훌륭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여행 중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빌립보에 와서 쉼을 누렸습니다. 회복되었습니다. 유럽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빌립보를 개척할 수 없었고, 그 교회를 개척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동안 이렇게 훌륭한 후원을 받지 못했을 텐데, 그는 유럽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를 통해서 훌륭한 동역자, 동역하는 교회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에 가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납니다. 바울의 평생 동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의 사역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훌륭한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에베소를 개척한 사람들이었고, 로마를 개척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의 일생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평신도 부부가 없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동역자를 2차 전도여행 유럽 여정을 통해서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뜻이 있습니다. 에베소가 아닌 유럽으로 바뀐 데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섭리가 그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4.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쯤 되면 이제 우리도 한번 돌이켜 봐야 됩니다. 목표가 분명하신 분들, 목적이 분명한 분들은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좌절도 굉장히 큰 법입니다. 목표 의식 없이 사는 분들은 좌절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내가 목적지가 분명하고 목표가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좌절과 실망이 크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과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결과의 강박에서 자유로워지셔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이렇게 자신을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길은 통로입니다. 예수님은 목적지를 정해 놓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길이 분명하다면, 내가 가는 그 길의 과정이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이 분명하다면, 그 목적지가 벳새다가 되었든 게네사렛이 되었든 그것이요, 그 결과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 분명하다면 그 길의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광야 길이든, 사막길이든, 바닷길이든 예수님이 나와 함께 손잡고 그 길을 건너가시면 우리는 행복한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유럽이든, 극동이든, 에베소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라고 하신 길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내 손 붙잡고 가시는 길이라면 그 길은 전혀 두려운 길이 아니라 행복한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많은 분들이 목회자인 저에게 묻는 질문 중에 하나가 "목사님은 어떤 교회를 꿈꾸십니까? 어떤 교회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꽤 많이 받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어떤 교회를 꿈꾸는지, 교회에 대한 그림을 그려 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이미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목사가 정한 교회의 그림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매일매일 한 그림, 한 걸음, 예수님께서 곧 길이라고 하셨으니 주와 함께 가는 길이 중요할 것입니다. 10년 뒤에 우리 교회의 모습은,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가기만 한다면, 10년 뒤에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한 것, 기대한 것, 상상한 것 그 이상일 것입니다. 그 이상일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도, 우리 인생의 최종 종착지도 결과를 정해 놓고 결과를 향해 달려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분명하기만 하다면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므로 욥은 욥기 23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과정과 길에 주목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결과는 순금같이 되어 나올 것이라는 그 기대를 가지고 매일매일 하나님과 힘든 여정을 달려왔습니다.
어느 해 우리 청년들이 해외 단기 선교를 떠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단기 선교를 위해서 청년들이 오랜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길게는 1년, 짧게는 5개월 정도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인들 전체가 함께 기도로 후원했습니다. 물질로도 후원했습니다. 파송 예배를 드렸습니다. 새벽에 출발했는데 저를 비롯해서 우리 목회자들 그리고 여러 성도님들이 나와서 함께 환송했습니다. 축복 기도하고 떠나 보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경유지를 거쳐 선교지로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비행기를 탄다고 제가 연락을 받았습니다. "잘 갔다 오게, 끝까지 잘 갔다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후 늦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공항에 발이 묶였습니다. 경유지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서 공항 이착륙이 금지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님 연락이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곧 다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걱정할 것이 없구나. 우리 청년들에게 얼마나 훌륭하고 좋은 기회인가. 세계 뉴스의 한복판에 있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놀라운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전 세계 언론들이 다 주목하고, 비행기가 뜨지도 못하고 내리지도 못해서 아무도 오지 못하는데 우리 청년들은 직접 눈으로 그 현장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선교사님에게도 걱정하지 마시라고, 사역이 많이 있어도, 사역 다 못해도 상관없다고.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함께 가는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청년들에게 계획하고 원하고 바라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 하루 만에 상황이 해제되고 가서 잘 사역하고 안전하게 돌아왔습니다.
우리 인생 살아가다 보면 풍랑도 만나기도 하고 암초도 만나기도 합니다. 원래 내가 원했던 목적지는 벳새다였는데 암초와 풍랑 때문에 게네사렛에 도착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함께하셨다면, 주님이 배에 함께 동행하셨다면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정이 중요하고, 주님은 더 놀라운 역사로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세우시고 살리실 것입니다. 그런 주님의 마지막 결과를 기대하시고, 과정을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는 지혜로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벳새다를 향하여 달려가는 인생입니다. 그곳에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안정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풍랑을 통해서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게네사렛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불평과 불안과 원망과 불신이 우리 마음속에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도착해서 사역하다 보니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뜻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주여, 결과에 얽매이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사오니 길 되신 주님과 함께 인생 길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그 길 끝에 우리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이 험한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 온전하고 아름다운 길 될 줄로 믿사오며, 우리 모든 주의 백성들 그 길을 걸어가는 지혜로운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