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강 / 마음이 문제입니다 (7:14-23)

마음이 문제입니다 (막 7:14-23)

조선왕조 오백 년 중 가장 최악의 군주는 누구였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산군을 떠올릴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조광조의 조의제문을 빌미 삼아 많은 사람을 사지로 내몰았습니다. 무오사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는 패륜과 주색에 빠져 국사는 내팽개치고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삶은 최악으로 치달았고 삶의 자리는 힘겨워졌습니다.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에 닿았고, 결국 중종반정으로 쫓겨나 귀양살이에 오르게 됩니다. 그 이후 그는 얼마 살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왕조 오백 년 중 최고의 성군은 누구였을까요? 아마 두 사람 정도를 떠올리지 않겠습니까? 세종대왕 그리고 후기의 정조입니다. 정조에 대해 말씀드리면, 그분은 규장각을 설치하여 많은 인재들을 모으고 백성들을 위해 일하도록 판을 열어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양반과 상민을 가리지 않고 실력만 있으면, 능력만 있으면 등용했습니다. 그 당시 성리학과 논어맹자, 사서삼경이 백성들의 삶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실학을 집대성하여 백성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힘썼던 참으로 훌륭한 개혁 군주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연산과 정조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정반대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어려서 부모를 비명에 잃었다는 것입니다. 연산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렸을 때 어머니 윤씨가 폐서인이 되어 궁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그 이후 삼 년이 채 되지 못해 사약을 받고 비명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이 되고 난 이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는 어머니 죽음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색출해냈습니다.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사람, 미지근했지만 동조했던 사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말리지 않았던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피의 보복으로 갚아갔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연관되어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피의 보복을 일삼았습니다. 온 나라가 다 피바다였습니다. 그렇게 복수하며 지냈고, 그렇게 해서 일으킨 것이 갑자사화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피바람이 몰아치는 조선 정국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조는 달랐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서 비명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죽이도록 사주한 신하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어떤 세력들이 배후에 있었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척점에 있었던 사람들을 탕평을 통해 나라의 관리로 등용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요? 비슷한 경험, 거의 같은 경험을 했던 두 사람의 결과가 왜 이렇게 하늘과 땅처럼 달라졌을까요? 많은 역사학자들과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결국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왕의 마음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었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연산의 마음에는 자신밖에 없었습니다. 복수심, 내 어머니의 피를 당신들도 역시 똑같이 흘려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속에는 백성이나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수와 자기 자신의 아집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조는 달랐습니다. 왕이었기 때문에 개인의 피의 복수보다는 백성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그의 마음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백성과 나라가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복수는 묻어두고 뒤로 미루어 두며 오직 이 나라가 잘 되는 일을 위해 대탕평정책을 실시했던 것입니다. 결국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들 마음이 문제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환경을 탓하지 말라. 주변 상황을 탓하지 말라. 그것은 비겁한 짓이다. 너의 마음 중심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일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책잡을 거리를 찾기 위해 먼 곳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손 씻지 않고 음식 먹는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인 본질을 희석시키는 어떤 인간의 전통도 다 제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이어서 오늘 이 말씀도 함께하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손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은 위생상 문제는 있을지언정 그 사람의 인격과 그 사람의 영혼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의아한 말씀이었고,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파격적이고 의외의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음식을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으로 나누어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1장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결한 음식, 부정한 음식. 짐승들 중에도 굽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이나 되새김질하지 않는 짐승은 부정한 음식이니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물고기 중에도 비늘이 없고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는 부정한 것이니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기준에 비추어보면 토끼나 돼지나 미꾸라지는 먹으면 곤란한 음식입니다. 그것을 먹으면 내가 부정을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음식이 우리의 인격과 영혼에 하등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다고, 하나님이 주신 음식은 다 정결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이런 음식이 내 마음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내 배로 들어가서 배설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마음에 영향 주는 것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음식은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지만, 우리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눈으로, 귀로, 생각으로 들어오는 것들, 내가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들이 굉장히 많이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환경이라고 부릅니다. 환경에는 자연환경이 있고 인문환경이 있는데, 인문환경이 특히 우리에게 심각한 영향을 줍니다. 인문환경에는 대표적으로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에도 식구들이 있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있고, 일터에 가면 동료들이 있습니다. 공동체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들어낸 문화도 인문환경의 한 가지입니다. 문화가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우리에게 영향을 주면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건축물도 인문환경의 일종입니다.

이런 것들을 내가 거부하려 해도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런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습니까? 태어나 보니 우리 부모님이 계셨고, 태어나서 자라보니 일가친척과 가족들이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나에게 악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주변에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일터에도 천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에 온갖 악한 사람들이 다 일터에 모여 있고, 그런 사람들이 나에게 수많은 영향, 엄청난 영향력을 주며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의 문화도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면서 우리는 그 영향과 함께 어울려 지냅니다.

학령기에 자녀를 둔 부모는 굉장히 긴장합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야 하는데, 학교 가는 것이 걱정됩니다. 특히 가장 걱정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보내는 자녀를 두신 부모들입니다. 부모들은 항상 기도 제목을 내놓습니다. 만남의 복을 주십시오.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 만나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좋은 친구만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인격도 좋고, 왕따도 하지 않고, 희생하고 헌신하고 나누어 주고, 입에는 욕 한마디 하지 않는 친구, 그런 학교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는 온갖 다양한 아이들이 다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원하지만, 실력도 있고 인격도 훌륭하고 자녀들을 내 자녀처럼 더 알뜰하고 살뜰하게 보살펴주는 선생님만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선생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있는 것이 학교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환경에 우리 자녀를 노출시킬 수 없다고 해서 자녀를 데리고 있으려 합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몇 살까지, 평생 동안 내 자녀를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때가 되면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서운 죄가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현실이고 세상의 본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문화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사람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가정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학교나 일터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을 핑계 삼아서 환경이 이러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핑계하며 지내야 되겠습니까? 나도 악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2. 말씀의 필터

우리 마음을 단단하게 잘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마음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 선물이 양심입니다. 그런데 양심은 자라면서 어그러질 수도 있습니다. 양심은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양심만 믿고 있었다가는 낭패하기 쉽습니다. 양심만 믿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보다 훨씬 더 나은 필터를 우리 마음속에 장착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필터여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필터가 우리 심령에 들어와 있고, 그 말씀의 필터를 우리 마음에 장착하고 있어야 외부에서 어떤 위협과 어떤 사탄의 유혹과 어떤 주변의 좋지 않은 환경이 들어와도 말씀의 필터로 걸러내면 우리는 선한 행동을 하고 선한 말을 하고 선한 사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의 필터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핑계하기 쉽고 불가항력적이라고 말하면서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2-1. 동성애 문제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까요? 동성애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동성애 문제는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외국 이야기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외 뉴스에만 나오는 이야기,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여겼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는데, 이제 오늘 우리가 정신 차리고 보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이것은 다른 나라 문제가 아니고 내 나라의 문제이고, 우리 자녀의 문제이고, 내 가정의 문제이고, 우리 교회의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 자손들의 심각한 도전과 심각한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떻습니까? 이 사회를 보시고 교회를 보십시오. 양극단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세론을 말합니다. 이미 끝났다. 손쓰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미 동성애는 우리 안에 문화로 들어와 있으니 이것을 거부하면 교회도 시대에 뒤처진 것이 된다. 이미 상황은 끝났다. 어찌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한쪽 극단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한쪽 사람들은 절대로 안 된다. 동성애를 조장하는 사람, 조장하는 문화, 동성애자들을 철저하게 정죄하고 철저하게 배격하고 교회에서도 가려내고 사회에서도 도태시켜야 한다. 이 양극단이 아주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필터를 장착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요한복음 8장 말씀에 보면,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이렇게 다루십니다. 여러 사람들이 손에 돌을 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사라졌습니다. 예수님과 여인 둘이 남았습니다.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우리는 말씀의 필터를 장착하고 어떤 죄인이든지 그 사람 자체를 내가 정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이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이든지 동성애자이든지 무슨 자격으로 그를 정죄하겠습니까?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으셨는데, 우리는 그를 정죄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또한 그 다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위가 죄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보내주는 것은 죄짓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죄인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두 번 다시 똑같은 죄를 범하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너를 심판하실 것이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것을 죄라고 각인시켜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에 비추어 보면, 오늘의 시대에 동성애자들 사람은 사랑하고, 사람은 교회가 품어안고, 사람들은 용서하되, 그러나 그 행위는 죄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는 것이라고, 똑같은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필터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있지 않으면 양극단에 서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이 들어와 있으면 우리는 합리적이고 성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2-2. 세대 간 갈등

오늘 이 시대, 이 사회는 세대 간의 갈등이 말할 수 없이 심한 사회입니다. 십수 년 전 이 사회는 동서가 분열되어 지역감정으로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역에 국한된 감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시대는 세대 전체가 싸우고 있습니다. 노년세대와 젊은세대가 하나의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도 여론조사를 하면 항상 어른 세대와 젊은 세대를 나누어서 조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어르신 세대와 젊은 세대가 나뉘어져 있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의 필터를 가지고 있다면, 젊은이들이 말씀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나 청년들이 말씀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나 어르신들이 말씀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나 여기에 차별이 있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똑같은 눈으로, 말씀의 필터로 세상을 보면 모두 다 동일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씀의 필터를 장착하고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3. 성경 속 인물들

성경에는 여러 가지 복잡하고 어려운 환경을 마음속에 말씀의 필터를 가지고 극복하고 이겨낸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중 몇 사람의 예를 들어봅니다.

3-1. 요셉의 경우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갔을 때 그의 나이가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고등학교 일학년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는 서른이었습니다. 십삼 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형제들에게 팔려서 버림받았다는 상실의 트라우마, 노예로 살면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그 시간의 고통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았는데 죄수로 살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께도 버림받았다는 그 고통, 그 십삼 년의 고통을 지내면서 보통 사람들이라면 아마 사람이 망가졌을 것입니다. 몹쓸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방임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형제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의 삶은 달랐습니다. 나중에 형제들을 만나서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 45장 7절과 8절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형제들이 곡식을 사기 위해 애굽에 와서 요셉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요셉이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형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이제 우리는 죽었구나. 그런 생각을 할 때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보내서 이 기근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와서 총리가 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당신들의 고통을 누가 해결해 주겠습니까? 그러니 당신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보낸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십삼 년 동안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과 환란과 고난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재해석해낸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환란이 들어옵니다. 형제들이 나를 팔았다는 자책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필터가 그것을 걸러냅니다. 걸러내며 이것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하셨기에 이렇게 기막힌 일이 내 인생에 벌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해석해낸 그 놀라운 요셉의 능력,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이라는 필터가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3-2. 다윗의 경우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까닭 없는 고난을 십수 년 동안 겪었습니다.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해서 그를 에워쌌습니다. 보통의 사람 같으면 인간성이 말살되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닥치는 대로 약탈하며 유린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달랐습니다. 원수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습니다.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혼자서도 살아가기 힘든 광야생활을 사백 명의 억울한 사람들, 힘든 사람들,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을 거두어 주었습니다. 아둘람 굴에 사백 명과 함께 지냈습니다.

어떻게 그런 따뜻함이 가능했을까요? 혼자서도 살기 어려운 이 세상을 어떻게 그런 따뜻한 마음을 드러내며 실천하며 살았을까요? 다윗의 시편 19편 7절과 8절을 보면 그 비결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 이것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주변의 어떤 악한 환경에서도 그는 타락하지 않고 인간성이 말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따뜻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4. 마음에서 나오는 것

오늘 이 자리에 계신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경을 탓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의 여러 가지 환경에 에워싸여 있고, 사람마다 여러 다른 환경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가 삐뚤어진 것도, 내가 부모를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내 환경이 이래서 그렇다고 그 환경 뒤에 숨는 것은 비겁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그 말씀의 필터로 걸러지고 새롭게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서 나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예를 하나하나 들어서 설명하십니다. 21절에서 23절을 보시겠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우리 마음의 필터가 깨끗한 말씀의 필터가 들어가 있으면 좋은 것만 나올 것입니다. 선한 말과 선한 행동과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내 몸을 통해서 발현되고 나올 것입니다.

부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필터를 꼭 간직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을 열심히 읽고, 말씀을 열심히 묵상하고, 말씀을 암송하고, 그 말씀을 마음의 생명처럼 간직하신다면 어떤 악하고 힘든 환경에 있더라도 환경 때문에 휘둘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아름다운 열매가 나타나고, 그 열매를 여러 주변 사람들이 먹고, 그 열매로 행복한 복된 아름다운 나무 같은 인생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