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을 주의하라 (막 8:11-21)
1969년에 필립 짐바르도라는 교수가 의미 있는 실험을 합니다. 두 대의 차를 동네 골목 어귀에 세워 두고 보닛을 열어 둡니다. 한 대는 보닛을 열어 둔 채 유리창을 작게 깨뜨리고 흠집을 내 놓았습니다. 다른 한 대는 보닛만 열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을 지켜봅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보닛만 열어 둔 차는 일주일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보닛을 열어 두고 유리창을 조금 깨뜨려 둔 차는 일주일 만에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하루가 채 되지 않아 배터리를 도둑맞고 타이어와 휠을 빼앗겼습니다. 깨진 유리창은 더 크게 깨졌고, 사방의 유리창이 박살 났습니다. 차 안에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털렸습니다. 그다음에는 온갖 쓰레기와 오물이 투척되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한 차는 멀쩡한데 한 차는 박살이 났습니다. 1969년의 이 실험에 1982년 두 명의 범죄심리학 교수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이론이었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한 도시나 한 마을에서 강력범죄, 흉악범죄로 그 도시가 완전히 범죄화되는 데는 처음부터 그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진 유리창처럼 작은 틈이 그 도시에 열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다는 이론이었습니다.
우리는 굳이 거창한 이론이나 실험을 하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이런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동네 전봇대에 누군가가 쓰레기를 아침에 버립니다. 그러면 저녁이 되어 그 쓰레기 더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 그곳은 쓰레기 천지가 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곳을 깨끗하게 쓸고 닦고 청소하면 아무도 함부로 그곳을 더럽히거나 쓰레기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많이 하며 살지 않습니까? 이 깨진 유리창 법칙은 1994년에 뉴욕시에 부임한 줄리아니 시장이 도입했습니다.
그 당시 1994년에 뉴욕시는 강력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지하철역 주변에서 일어나는 심야 시간대의 강력범죄였습니다. 아무리 병력을 증강하고 경찰력을 늘려도 강력범죄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줄리아니 시장은 이 이론을 도입해서 약 5년에 걸쳐 뉴욕시에 있는 모든 낙서를 다 지웠습니다. 5년이나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비난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기껏 한다는 것이 낙서 지우기냐, 낙서를 지운다고 범죄가 줄어들 것 같으냐.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5년이 지나면서 범죄율이 서서히 떨어지더니, 깨끗해진 도시에는 강력범죄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깨끗한 곳에서 범죄를 저지르기를 두려워하고 거리낍니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은 영향력과 전파력에 대한 이론입니다. 사람들은 선한 영향력은 쉽게 받지 못합니다. 선한 영향력이 넓게 퍼져 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악한 영향력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나를 지배하고 우리 공동체를 잡아먹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누룩, 곧 영향력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는 어떤 영향력 아래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악한 영향력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바리새인의 시험
예수님께서 칠병이어 기적을 행하시고 갈릴리 서쪽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던 일단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반갑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힐난하며 시험했습니다. 여기서 힐난했다는 말은 의문을 제기했다는 뜻입니다. 곧 이 말은 지금까지 당신이 행하신 수많은 기적과 표적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우리 앞에서 한번 행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하면 우리가 당신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믿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유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부에서 파견된 메시아 판정단이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예수님의 기적. 마가복음 6장에서 8장까지만 보더라도 주님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까?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기적,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신 이야기, 귀먹고 말이 어눌한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 수많은 기적이 사람들에게 넘쳐 가고 퍼져 가니 예수님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갔습니다. 그랬더니 메시아 판정단이라는 바리새인들이 와서 지금 우리 앞에서 기적을 행해 보라,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메시아로 인정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기적을 베푸셨을까요, 아니면 그냥 무시하셨을까요? 1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우리는 좀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을 보여서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시든지, 돌들을 가지고 멋진 음식을 차려서 먹여 보내시든지, 아니면 이들의 몸에 괴질이 나게 해서 혼내 보내시든지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보내셨을까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기에 겪었던 한 가지 사건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사탄에게 이끌려 시험받으신 사건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3절과 6절 말씀을 보면 그 시험이 나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6절도 보십시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사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에서 사탄이 전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네가 만약 이 돌들로 떡을 만들지 못하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네가 만약 이 높은 데서 뛰어내리지 않으면 너는 메시아가 아니다 하는 말입니다. 정말 네가 메시아로 인정받고 싶거든 이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라, 높은 데서 뛰어내려라. 사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리새인은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이 하는 말과 그 옛날 예수님께 사탄이 한 말이 어쩜 이렇게 똑같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지금까지 하신 모든 기적에 의문을 제기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라, 그러면 우리가 너를 메시아로 인정하겠다고 합니다. 스스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바리새인이나 사탄이나 그 근본 마음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말씀도 대꾸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사람 앞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이시기에 사람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는 가짜들의 도발에 쉽게 화를 내거나 동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진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왜 사탄에게 인정받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사건들을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가 고팠던 사람들, 이들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목자의 심정으로 뭔가 하나를 먹여 보내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았는데 떡 다섯 개, 떡 일곱 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축사하시고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기적이 오병이어, 칠병이어 기적 아닙니까? 한 여인이 "저는 자존심이 상해도 좋습니다. 저를 개 취급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 딸은 고쳐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딸에게서 귀신 들린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귀 먹고 혀가 굳어서 말하지 못하는 환자를 보시고 주님은 가슴 아파하시며 그의 귀를 만져 주시고 혀를 풀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열심히 배 젓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면서 산에서 기도하다가 한달음에 내려오셔서 물 위를 걸어가셔서 제자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긍휼이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위로는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아래로는 백성들만 바라보며 사셨던 결과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유명해지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거나, 예수님 스스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단 한 번도 행하신 적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랬기에 바리새인들에게 표적을 행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도 하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다시 떠나가십니다.
2. 누룩을 주의하라
2-1. 바리새인의 누룩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잘 기억해라. 이제 앞으로 살아가면서 위로는 하나님 한 분만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들만 사랑하고 살아야 한다. 어떤 충동질이 있더라도 사람들의 누룩에 전염되거나 감염되면 곤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누룩은 영향력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의 영향력, 헤롯의 영향력이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여기서 예수님이 주의하라고 하신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종교적 기득권 집단의 이기심을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기득권을 주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나누고 섬기고 베풀고 사랑하셨고,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까지 주님은 다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을 중심으로 한 종교 집단은 달랐습니다.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고 이미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팔아서 장사하는, 하나님 팔이 장사치에 불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붙들고 있었던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율법입니다. 그 당시 모든 백성은 성경을 읽으려야 읽을 수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경을 읽어 줍니다. 말씀을 읽어 주는데 자신에게 유리한 말씀만 뽑아서 읽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오해하도록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잘못 듣고 세뇌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주장하고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하는 악한 사람들이 바리새인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도 언젠가는 교회를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승천하고 하늘로 올라가고 나면 교회를 맡길 텐데, 너희들이 교회를 맡는 그 순간 여기 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해야 한다. 너희들도 언젠가는 원하든 원치 않든 기득권 세력이 될 텐데, 그때 내려놓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결코 기득권에 편승해서 사람들을 억압하면 곤란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래전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될 때 그때 이 땅의 교회는 힘이 없고 미미했습니다. 사람도 적었고 물질은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건물은 초라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난 오늘, 교회는 우리가 인정하건 인정하고 싶지 않건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세상에서 권세 있는 사람들, 영향력 있는 사람들, 많이 가진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이 교회 성도로 모여듭니다. 성도들이 헌금을 합니다. 교회에 헌금이 쌓여 갑니다. 사람이 있고 돈이 있습니다. 건물이 높아져 가고 땅이 넓어져 갑니다. 그러면 영향력 집단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익집단이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 교회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자칫 이익집단의 말로, 자칫 기득권 집단의 압력 단체로서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위험한 시점입니다.
교회가 기득권 세력이 되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 시민에게 절차가 있고 법칙이 있고 법과 규율이 있는데, 그것을 넘어서서 위에서부터 찍어 내리기 시작하면 그것은 교회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럴 때는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복음적입니다. 안 해야 옳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음이고 그래야 예수님이 살아 숨 쉬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공동체성을 만들어 가야 하니까. 그런데 그런 깨진 작은 유리창 틈으로 사탄이 들어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이란 별것이 아닙니다. 종교 집단의 이기적인 기득권과 종교 집단의 이기심의 발로가 깨진 유리창 틈으로 들어와서 온 집단을 마비시키는 것, 이 악한 영향력에 교회가 물들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악한 영향력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의하라고 하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는 이기적인 압력 단체가 되고, 교회는 이기적이고 정치적인 집단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신 말씀, 종교적 기득권 집단의 이기심을 버려라, 이런 누룩에서 자유하라 말씀하셨습니다.
2-2. 헤롯의 누룩
그러면 헤롯의 누룩은 무엇일까요? 헤롯은 뼛속 깊이 정치인이었습니다. 정치인의 권력이라는 누룩을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최고 목적이 무엇입니까? 권력을 잡는 것 아닙니까? 대권을 잡는 것, 권력을 창출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헤롯은 원래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헤롯은 에돔 사람의 혈통입니다. 에돔의 뿌리를 올라가고 올라가 보면 에서까지 올라갑니다. 야곱의 집에서 축복의 흐름이 야곱에게 흘러가자 에서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세일 산에 가서 한 민족을 이루고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에돔 족속의 후예인 헤롯이 유대인을 지배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 당시 로마와 친밀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잘 보여서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들, 유대인들을 지배하려 하니 그들에게 무언가 선물 보따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을 말없이 지배하기 위한 그 선물 보따리가 성전이었습니다. 헤롯이 어마어마하고 대단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른바 헤롯 성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헤롯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방인 헤롯입니다. 그런데 그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성전을 지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덥석 받았습니다. 타락한 종교 집단과 타락한 권력이 만나서 손잡는 순간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어떻게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헤롯을 향하여 네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언자의 목소리, 선지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겠습니까? 그것과 아무런 상관없는 세례 요한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목 베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세례 요한의 순교 이후로 아무도 할 말 하지 못하고, 아무도 헤롯에 대해서 목소리 내지 못하는 그런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 정치하는 사람들이 오늘 이 헤롯처럼 권력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 당시 예수님 시대에 타락한 종교 집단은 스스로 알아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자청합니다. 헤롯의 세계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권력을 시중들겠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종교 세력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그 발밑으로 엎드려 기어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너무나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이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그들의 진영 안에 가두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진보는 말합니다. 예수님은 진보적이지 않습니까? 교회가 우리와 함께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진보를 넘어서 급진적인 분이셨습니다. 얼마나 급진적이셨습니까?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떤 한 자리를 탐한 적이 있으셨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그런데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인 중에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는 사람을 단 한 분이라도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은 진보의 논리에 매이는 분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또한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조개같이 벌이신 분이십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의 이웃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 진보라고 자처하시는 분들 중에 자신의 재산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스스로 가난해진 분을 찾아볼 수 있으십니까? 단 한 분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진보의 논리 아래 복음을 가둘 수 있겠습니까?
보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도 교회가 보수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예수님처럼 전통을 수호하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진리의 말씀을 옹호하신 분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까? 이사야 예언 때부터 약 칠백 년이 넘도록 주님은 그 말씀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오로지 견뎌 오셨고 오로지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셔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고 이루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그야말로 말씀의 수호자, 말씀의 보수주의자셨습니다.
그런데 보수라 자처하시는 분들 중에 오로지 국민만 보고, 오로지 백성만 보고 평생 동안 한 길 간 정치인을 찾아볼 수 있으십니까? 이합집산하고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서 여기 가고 저기 가는 사람이 어떻게 보수라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땅의 교회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의 정치 권력 아래 하수인으로 가두려 하겠습니까? 이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 가치가 훨씬 더 위대하고, 하나님 나라 가치가 훨씬 더 고결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이 땅의 정치 권력이나 이 땅의 기득권 종교 권력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깊이 있고 훨씬 더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헤롯의 누룩,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바리새인의 누룩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때부터 기독교의 생명은, 하나님 나라 복음의 생명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3. 둔한 제자들
그렇다면 과연 이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했을까요? 주님의 이 위대한 말씀을 제대로 이해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님께서 누룩 이야기를 자꾸 하시는데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가 고프시구나. 왜 자꾸 누룩 이야기를 할까?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 드릴 떡이 없구나. 큰일 났다. 갑자기 떡을 달라 하면 어떡하지? 염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크고 위대하고 원대한 말씀을 하시는데, 그들은 떡이 없음으로 걱정하고 있습니다.
답답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한 말씀 하십니다. 17절과 18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 칠병이어 사건을 행하셨습니다. 떡이 많아서 사람들을 먹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님과 함께 있기만 하면, 내가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만 하면 먹고사는 것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내가 주님과 함께하지 않으면서 먹고살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기적을 두 번이나 보여 주시면서, 너희들 나와 함께 있으면 내가 생명의 떡이기 때문에 먹는 것, 입는 것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리새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은 상관없고, 그저 내가 배고픈 것, 그저 내가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이것만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보다 큰 말씀을 하십니다. 종교적 기득권의 권력에 취하지 말라, 정치적 권력의 하수인이 되지 말라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이런 것에 상관없습니다. 그저 내가 배고픕니다. 그저 내가 먹고사는 것만 나에게는 관심이 있습니다. 이러고 있다면 주께서 답답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않느냐, 그러니 먹고사는 것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먹이고 돌보고 입히고 책임지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디 오늘 주님의 이 위대한 말씀이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주간 살아가시면서 깨진 유리창으로 누룩이 물밀듯 들어와서 우리의 믿음을 해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위로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시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리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시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누룩에 취해 살면서도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권력에 취해서 우리 교회가, 이 시대의 기독교가 이미 기득권 세력으로 누리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고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스스로 내려놓게 하여 주시고, 스스로 포기하는 능력 있게 하여 주시고, 오히려 더 바보같이 백성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권력의 하수인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정치 권력으로 교회가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주께서 도우시고, 오직 더 크고 고결하신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우리가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먹고사는 것 염려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걸어가기만 한다면 먹는 것, 입는 것 주께서 책임지심을 믿고 나아가는 믿음의 백성으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