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함께 (1:29-39)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함께 (막 1:29-39)

저는 얼마 전 이를 뽑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건이라 표현할 만큼 두 가지 큰 교훈이 있었고, 생각보다 굉장히 아프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어금니를 발치하면서 경험한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참으로 필요하다는 교훈입니다. 어금니가 오래전에 씌워져 있었는데, 그 씌워놓은 이가 잇몸에서 들떠 그곳으로 음식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썩기 시작했고, 치과에서는 이제 씌운 것을 뜯어내고 이를 뽑은 후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발치 후 치과 선생님께서는 양치를 평소에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잇몸에서부터 시작해서 위로 닦아 올리면서 하루에 세 번, 삼 분씩 꼼꼼히 양치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잇몸에 음식물이 끼어 썩고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치하는 법을 다시 배웠습니다. 나이 오십이 가까이 되어서 어릴 때 배워야 했던 양치질을 새롭게 배우며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기본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아주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큰 문제가 일어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깨달음은 평소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를 뽑고 나니까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불편했습니다. 자꾸 혓바닥이 그쪽으로 가서 허전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음식을 그쪽으로 씹기도 하며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늘 함께 있던 사람, 늘 곁에 있는 사람이 너무 소중하고 중요한데, 그 사람에게 나는 정말 그 소중함을 표현하며 살았는가.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 상실감과 공허함으로 혹시 낙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기본에 충실한 인간관계, 사람을 사랑하고 곁에 있는 사람을 돌봐주고 손잡아주는 인간관계를 나는 평소에 성실하게 해왔던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람을 잃고 나서 후회해 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가까운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어가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가족, 함께 있는 분들, 일터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는 동료들에게 어떤 관계를 맺어가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가족 같은 제자들에게 주님은 극진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들에게 머물러 있지 않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시니까 이 사랑이 널리 전파되고 퍼져가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의 날개 그늘 아래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지 깨닫고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회당에서 권위 있는 말씀을 능력 있게 전하시니까 숨어있던 귀신이 견디지 못하고 자기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말씀 가르치기를 다 마치시고 회당을 나오셨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심방을 가십니다. 그 첫 번째 심방이 예수님의 가장 사랑하는 최측근 제자였던 베드로의 장모였습니다.

베드로의 집에 가니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그 여인을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아마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첫 번째 심방을 보고 이런저런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첫 번째 하신 심방이 가장 가까운 제자의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첫 심방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집에 가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가치 판단을 유보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선과 악의 문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이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극진하게 챙기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만약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이제 막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는데, 그 가정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장모의 열병입니다. 이 때문에 가정의 모든 일이 다 멈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신다면, 예수님이 신경 써주지 않고 고쳐주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제자인 베드로가 주님을 마음 다해 따를 수 있겠습니까? 걱정이 되어서, 염려가 되어서 주를 따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가장 심각한 베드로 가정의 문제부터 해결해 주시고 그리고 나서 너는 나를 따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을 닮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행동,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 모두를 다 따라가기를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관계도 가장 가까운 관계부터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가까운 가족, 사랑하는 자녀, 남편, 아내, 일가친척, 늘상 만나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어떻습니까? 그들의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고 계십니까? 내 자녀의 아픔과 내 남편, 내 아내의 고민과 걱정을 나도 함께 끌어안고, 그 고민을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함께 밤새워서 염려하고 울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그건 그들의 문제이고 나는 지금 내 일이 바빠서 내 사랑하는 가족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시간이 없다며 애써 외면하고 계시지는 않으셨습니까?

1-1. 가족 사랑이 곧 하나님 사랑

성경은 가까이 있는 자들의 문제를 살피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시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눈에 보이는 가족과 형제,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표현하신 것은 눈에 보이는 제자, 가장 가까이 있는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를 내 문제로 끌어안고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하겠다 하시면서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족을 주셨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라고 주셨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는 질문은 함께 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십니까 하는 질문과 바꾸어 읽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 질문 앞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신다고 대답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가까이 있는 자들을 내가 챙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속고 있고 거짓말하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2. 사랑의 확산

우리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 있는 제자를 사랑하는 이 사랑은 이 한 사랑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이 널리 소문났습니다. 퍼져갔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오늘 말씀 32절과 33절을 보겠습니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님이 여인의 열병을 고쳐주고 있을 때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습니다. 작은 동네이니까 전부 다 어떻게 하시나 보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열병을 고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식사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각색 병자들이 다 몰려들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다 모여들었더라. 온 동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아픈 구석이 있는 사람들은 다 주님 앞에 치유받기 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의 한 사람을 위한 고침의 사랑이,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신 제자의 장모를 고친 이 사랑이 온 동네까지 퍼져나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2-1. 작은 시작의 위대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천 년 전 갈릴리 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이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깟 작은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하십니까 하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삼 년 동안 예수님의 사랑은 널리 전파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 모든 민족과 방언과 백성에게서 다 예수님 앞에 나왔다고 성경이 기록합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어린 양 앞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예배드리고 경배드리고 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놀라운 큰 무리가 나오게 된 그 첫 출발, 첫 시작은 예수님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베드로의 인생 문제, 장모를 고치신 이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한 푼, 두 푼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됩니다. 유명해지기를 원하십니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됩니다. 멀리 큰 그림을 보고 널리 뻗어나가기를 원하신다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아름답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조던 피터슨이라는 사람이 쓴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이 책이 영미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요즘 영미권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조던 피터슨은 굉장한 반향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책이 소개되어 베스트셀러 상위 랭크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느냐, 책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별 내용이 없습니다. 그 중에 한 세 가지 내용만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두 번째는 세상을 향하여 원망하지 말고 네 방부터 청소해라. 세 번째는 거짓말하지 말라. 이런 내용들로 12가지가 채워져 있습니다.

옛날에 어디서 많이 듣던 말씀 아닙니까? 어머니에게 듣던 잔소리 아닙니까? 너 왜 그렇게 허리 구부정하게 있느냐, 어깨 좀 펴고 당당히 서라,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고,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불만을 하면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방 청소나 하라는 이야기 많이 들었지 않습니까? 거짓말하지 말라, 절대로 진실하게 살아라.

그런데 이 말이 우리 인생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자기 주변을 돌아보고 정리하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거울을 보고 세상을 향하여 당당히 서지 못하는 자, 어떻게 세상을 향하여 전투력 있게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자기 주변 방 청소부터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세상을 정복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인격을 갈고닦아서 진실하지 못한 자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 주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더 넓은 세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옛날 조선시대 때 여덟 살만 되면 읽히는 책이 있습니다. 소학입니다. 소학의 내용을 보면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해야 될 일, 세수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고, 어른들에게 인사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군신에 대한 예의, 일가친척에 대한 호칭, 그리고 친구들과의 교우관계 이런 것들이 다 쓰여 있습니다. 여기 아래에 기초한 것 위에 학문을 쌓아야 됩니다. 그 위에 논어, 맹자, 사서삼경이 쌓여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주변의 인격을 돌보지 않고 소학을 떼지 않고 그다음 책의 진도로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 어른들의 지혜입니다.

우리도 우리 주변부터,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돌아보신 주님의 지혜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애플의 주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1조 달러라고 하면 우리 돈으로 약 1,117조 원 정도가 됩니다.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돈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애플의 창업주 두 사람, 로널드 웨인과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애플을 창업할 때 그들은 공간이 없었습니다. 돈이 없었습니다. 사무실을 빌릴 돈 한 푼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티브 잡스의 양아버지의 차고를 빌렸습니다. 그곳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처럼 번쩍이는 사무실도 없었고 화려한 집기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열정이 있었고 실력이 있었습니다. 한 구석진 차고에서부터 시작한 그 기업이 이제는 주가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한 위대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구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사람이 구글을 창업할 때 그들도 역시 차고에서 창업했지 않습니까? 돈이 없어서 그곳에서부터 창업했는데 지금은 전 세계 모든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화려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을 때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이 세상의 법칙이기도 하고 하나님 나라의 진리의 법칙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이 있는 측근들에게,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맞대고 호흡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심을 다 쏟아부어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그 사랑은 온 세상 열방으로 퍼져갔습니다. 이런 귀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영적 영향력

예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은 이제는 영적인 영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35절과 36절을 보겠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예수님이 새벽 기도를 하셨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셨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안식일에 주께서 하신 일을 돌아보면, 주님이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회당에서 나와서는 심방을 가셨습니다. 열병을 앓고 있는 여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여인의 집 앞에 수많은 무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져주시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치유가 다 끝나고 나니 아마 새벽녘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잠깐 눈을 붙이시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새벽 기도 가셨습니다. 주께서 가셔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관계를 맺기 위하여 기도하기 위해서 나만의 기도의 골방을 찾아 들어가신 것입니다.

주님은 곤히 자고 있는 제자들을 깨우지 않으셨습니다.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두고 주님이 혼자 나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인기척을 느낍니다. 제자들도 너무 피곤하지만 주님이 혼자 나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함께 따라 일어나 나갔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영향력 아닙니까? 나가보니 수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새벽부터 주님 따라가서 기도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 따라 나서고 있습니다.

3-1. 은혜가 영향력이 된다

이 놀라운 기도의 영향력이 어디에서부터 나왔습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은혜를 입은 자, 그 은혜를 주님 따라가면서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피곤해서 주님 따라가서 옆에서 졸고 있다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 혼자 이 새벽에 어찌 보내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제자들이 따라나선 것입니다.

이것이 영향력입니다. 병 고침을 받았던 수많은 무리들이 다 예수님처럼 기도하기 위해서 따라나섰습니다. 새벽 제단은 대규모 군중집회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이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영향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를 따라 나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자신의 영적인 영향력을 점검해 보십시오. 우리 가정에서 내 영향력은 얼마나 되십니까? 내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공동체와 일터에서 나의 영향력은 얼마나 되십니까? 내가 가면 사람들이 그 말에 동의하고 따라오는 영향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사사건건 문제가 생깁니까?

우리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들에게 내 마음을 다 쏟아낸다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영향력이 생겨날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가는 곳에 사람들이 따라오고, 내가 하는 일에 사람들이 동의하는 놀라운 영향력을 주님이 가지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영적이고 위대한 영향력이 함께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가까운 곳에서 땅끝까지

주님의 이 영향력은 기도하는 것에서 이제 나아가서 전도하는 것으로 펼쳐져 나아갑니다. 38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우리 주님이 전도하신 것은 가까운 마을부터 시작하셨습니다. 한 동네 한 동네, 한 마을 한 마을 가셔서 주님은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선포가 이 마을들로 그치지 않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갈릴리 온 전역으로 예수님의 전도의 영향력이 퍼져나가고 뻗어나갔습니다. 가까운 마을들로부터 온 갈릴리까지. 갈릴리에서 그쳤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마리아로, 온 유대로, 예루살렘 핵심까지 예수님의 복음의 영향력은 거기까지 펼쳐져 나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끝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바울을 통해서 로마로 갔습니다. 로마를 통해서 복음은 세계복음이 됐습니다. 그 세계복음이 여러 선교사들을 통해서 온 세계로 지금도 뻗어나가고 있고, 오늘 우리의 심장 한가운데에도 주님의 말씀의 복음이 들어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까운 마을에서 전도하신 이 전도가 오늘 우리의 심장 한가운데까지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가장 가까운 마을부터 시작했더니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히고 또 넓히고 더 넓혀주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4-1. 예루살렘부터 땅끝까지

예수님은 이런 정신으로 복음 사역을 늘 감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예루살렘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은 로마부터 복음 전도를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부터 복음 전도를 시작하셨고,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곳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 계셨던 갈릴리 가까운 마을부터 시작하셨던 복음의 역사가 땅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전도의 자리가 어디겠습니까? 교회와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이 동네입니다. 지역사회입니다. 이 지역사회에 우리 교회가 어떤 의미인지, 이 지역사회와 우리 교회는 어떤 관계 설정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시민들에게 우리 교회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전도의 자리입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서 그다음은 유대, 그다음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배제하고 땅끝부터 간다는 것은 주님의 방법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개인으로 이 말씀을 가져오면,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가족들, 지금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녀, 내 일가친척, 시댁, 친정, 본가, 처가, 이들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그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계십니까?

부디 예수님이 가장 가까운 제자, 그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이 은혜가 우리에게 그대로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시고, 손잡아주시고, 그 문제에 깊이 개입하셔서 그 문제를 함께 싸매어주고 위로해 주어서 지경이 널리 전파되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자들에게는 잘하지 못하면서, 그들의 손도 잡아주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도 못하면서 다른 큰일을 하려고 이리저리 다녔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가장 가까운 베드로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지혜를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일가친지를 공경하고, 서로 싸매고, 서로 위로해 주는 귀한 은혜가 오늘 주의 백성들의 사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는 예루살렘을 가까이하게 해주시고,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기게 해주시고,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널리 퍼져나가도록 축복하시고 도와주시옵소서. 영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하나님의 은총과 역사가 드러나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