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강 / 서로 화목하라 (9:38-50)

서로 화목하라 (막 9:38-50)

세상의 기업들은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분투하고 있습니다. 합종연횡도 하고 자기 기술 개발도 열심히 합니다. 때로는 경쟁 기업과 소송도 불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경쟁 관계에 있던 기업이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의아하기도 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총수들이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삼성과 애플이 전략적 제휴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삼성과 애플은 서로 갤럭시와 아이폰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서로 소송이니 여러 가지가 얽혀 있습니다. 그런데 두 기업이 어느 한 분야에서 손을 잡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삼성 스마트 TV를 구입하면 애플의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드웨어에 자신이 있는 삼성과 콘텐츠에 자신이 있는 애플이 서로 전략적으로 손을 맞잡은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경쟁 관계보다 이 분야에서는 서로 공생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완성차 기업인 벤츠와 BMW가 서로 손을 잡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기업은 서로 완성차 업계에서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에서 앞다투는 잘나가는 기업들입니다. 그런데 두 기업이 차량 공유 서비스를 각각 시작했습니다. 벤츠는 '카투고'라는 업체를 시작했고, BMW는 '드라이브나우'라는 업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유럽에서 우버에 밀려서 좀처럼 시장 확장성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기업이 합작 회사를 설립합니다. 서로 손을 맞잡은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우버에 대항하기 위해서 서로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처럼 잘나가는 기업들, 세상의 기업들도 경쟁 관계에 있다가 서로 손을 잡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면 세상의 모든 기업의 특징은 판을 깨지 않습니다. 오히려 판을 더 넓혀가고 지경을 넓혀가며 더 많은 것들을 얻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1.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 가치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하나의 교회에만 집중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교회, 내가 신앙생활하고 있는 이곳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장 최종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각을 좀 더 넓혀 보면, 눈을 조금 더 크게 떠 보면, 하나님 나라라는 더 크고 더 위대한 가치가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 과제이고 사명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그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자기가 예수님께 칭찬받기 위해서 나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요한이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그분이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이 사람이 우리와 함께하는 공동체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제자들도 아니고 안면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당신 우리 선생님 아느냐?"고 그랬더니 그분이 너무 기뻐하셨겠지요. 요한이 혼을 냈습니다.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말라"고 나무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런 일들을 주님께 이야기하고 "저 잘했지요?"라고 칭찬받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그래, 우리 편이 아닌 자를 혼내 주었으니 잘했다."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금하지 말라." 이어서 40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보편적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누군가가 독점하는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은 누군가가 특허 내어서 우리 열두 명의 제자만 사용하는 그 이름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누구나 다 부를 수 있고, 주님의 이름은 누구나 다 불러야 되는 이름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온 세상 만방으로 펼쳐져 나가야 구원받는 백성들이 널리널리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이 본문의 요한은 주의 이름이 전파되는 전도를 가로막는 어마어마한 큰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1-1. 전도의 참된 자세

우리 교회 전도대가 화요일은 오전과 오후로, 토요일은 오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일이 있다고 합니다. 정해진 장소에서 전도하는데 가보니까 다른 교회 전도팀에서 그 자리에서 전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기 내 구역이니까 딴 데 가서 전도하시오" 하고 쫓아내고 싸워야 됩니까? 아니면 저 너머로 물러나야 됩니까? 조용히 딴 데로 가야 됩니까? 자존심이 상하고 싸울 일이니까 "이건 상도에서 안 되는 거야" 하고 싸우는 일은 조폭이나 하는 일입니다. 구역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건 조폭들이나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역을 가지고 다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이 있으면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다른 곳으로 가서 전도해야 옳습니다. 왜 기뻐해야 됩니까? 이 땅에 이곳에서 전도하는 또 다른 교회가 생겨난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 교회 말고도 전도하는 교회가 이렇게 많이 생겨나는구나! 우리의 목표는 이 양산 땅이 아니라 이 나라 온 나라 전체, 그리고 세계 열방이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 만방으로 전파되는 것, 하나님께서는 그걸 바라고 계시고 우리도 그 일에 쓰임 받고 훈련받고 동역하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우리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우리 교회 참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하십시오" 우리 그렇게 전도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우리가 폭을 넓혀서 전도한다면 "가까운 교회 가십시오.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참 좋은 하나님, 구원받고 그 하나님 통해서 온 가족이 구원받으십시오" 이렇게 전도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우리가 천국 가면 어느 교회 출신이냐는 것으로 다투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 교회는 유일한 하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함께 찬양하는 이 천국에서 우리는 함께 모여 예배할 그때를 기억하고 고대합니다.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는 건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 가서 "나는 대형 교회 출신입니다. 나는 저 산골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다 왔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한 교회의 공동체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는 우리의 동역자들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2. 다양한 하나님의 교회

교회를 보면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습니다. 예배만 봐도 오늘 우리 교회처럼 이런 모습으로 전통적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고, 또 어떤 교회는 훨씬 더 역동적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일어나서 찬양하고 춤추고 방언도 하고 안수 기도도 하고 예언도 하고 그런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살아 계시고 이단만 아니라면 우리가 그분들을 비난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금 신앙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에 따라 오늘 이 교회에서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있을 뿐, 모든 교회는 우주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교회 중에는 아주 특별한 공동체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섬기고 돕고 있는 교회 중에 노숙인들을 섬기는 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그 교회 목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봤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 성도들은 냄새를 잘 못 맡는 은사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노숙인들이 냄새가 심하지 않습니까? 주일날에서 함께 예배 드리는데도,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고 예배 드리는데도 냄새가 나서 코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들은 괜찮다고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합니다. 그런 특별한 분들이 함께 모여서 노숙인들을 섬기고 식사를 대접하는 그 공동체, 하나님 보실 때 아름다운 교회 아닙니까?

농아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농아인들이 함께 모여 자신들의 삶의 애환과 고통을 나눕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입니까? 외국인 공동체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분들이 주일날이면 함께 모여 자기 나라 언어로 예배 드립니다. 찬양도 하고 말씀도 듣습니다. 함께 성경도 읽습니다.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눕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공동체 교회 아닙니까?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여러 기관 단체도 있습니다. 신학생들을 길러내는 신학교도 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를 구별해 내는 신학 연구소도 있습니다. 방송국도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교회 가서 예배 드리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24시간 복음 방송을 송출하는 여러 방송국도 있습니다. 이 모든 기관들, 이 모든 교회들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두가 한 동역자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하고 기억하고 계셔야 됩니다.

2. 물 한 그릇의 상급

그런데 그중에는 형편이 좀 나은 공동체도 있고 형편이 어려운 공동체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특정한 공동체들은 형편이 좋지 못합니다. 그러면 형편이 나은 교회가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돕는 것이 상식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41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절대로 상을 잃지 않으리라. 형편이 좀 나아서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할 힘이 있으면 베풀고 대접해 주라. 우리 모두가 같은 동역자들인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모두가 다 함께 다 잘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우리 교회에서 바자회를 했습니다. 수익금이 조금 남았습니다. 두 군데를 나누었습니다. 한 공동체는 양산에서 신앙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교회였습니다. 주로 필리핀 분들이 모이는 교회인데, 그분들은 따뜻한 나라에서 살다 와서 한국의 초겨울 추위를 견딜 수 없이 추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뭐라도 좀 사서, 난로라도 사서, 토퍼라도 사시라고 조금씩 지원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공동체는 CBS 방송국을 지원했습니다. CBS 방송국이 신천지와 싸워 주기 때문입니다. 신천지가 어떤 단체인지, 어떤 이단성을 가지고 있는지 철저하게 파헤치고 취재해서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전체 사회의 신천지 경계 캠페인을 그 방송국이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방송국으로는 그 일을 감당하기가 어렵기에 교회가 함께 돕고 함께 지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베풀 수 있는 여력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2-1. 양극화와 상생

우리 교단 통계에 의하면 성도 수 100명 이하의 교회가 전체 교단 교회 중에 60%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 수는 7.4%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도 수 500명 이상의 교회는 약 7%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성도 수는 무려 15%가 넘게 몰려 있습니다.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좀 넘편에 속한 교회입니다. 우리 많은 성도들이 제법 모이는 교회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의 백성들, 우리 성도들은 미자립 교회, 열심히 노력해도 성도 수가 늘어나지 않는 교회를 보고 어떤 마음을 가지십니까? 말은 하지 않아도 혹시 우리 마음속으로 "전도나 열심히 하시지,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복음 전하고 노력하면 교회가 부흥할 텐데" 혹시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아무리 열심히 복음 전하고 아무리 열심히 전도해도 성도 수가 늘지 않는 교회도 이 땅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시골 교회, 농촌 교회를 가보시면 젊은이들이 다 도시로 떠나가고 어르신들,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그 예배당 재단을 지키고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생계를 걱정하면서 그 자리에서 열심히 지금도 목회하고 계신 목회자들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어찌 우리 교회만 십자가 높이 올리고 땅을 사고 넓혀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함께 나누고 함께 베풀고 같이 공생하고 함께 상생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우리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자라고 해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 금하면 안 된다. 네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큰 벌을 내리실 것이다. 요한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교회만 성장하는 것이 교회 성장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만 성장하고 다른 교회들이 다 어렵고 다 힘들게 되어서 교회 문을 닫는다면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함께 성장하고 함께 발 맞춰 나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이루어 가야 할 아름다운 가치입니다.

3. 작은 자를 실족케 하지 말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요한에게 굉장히 무서운 말씀으로 책망하십니다. 42절을 보십시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달려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조금 전에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는 것을 금한 자, 이 자가 이 작은 자들 중에 하나입니다. 이 작은 자는 오늘 우리가 손 내밀어 돕지 못하고 지금도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있는 우리 공동체, 작은 교회, 작은 단체들, 어려워하고 있는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고 있는 교회들, 각 기관들입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혹 이들이 도움을 청하는데도 돕지 않는다면 그들을 실족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 실족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벌인지 주님은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여러 가지 길들이 있는데 손으로, 발로, 눈으로 실족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이 실족하게 하거든 손을 찍어 버려라. 발이 실족하게 하면 발을 찍어버리고 눈이 실족하게 하면 눈을 빼 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까지 주님은 아주 강력한 어조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까지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아주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이 작은 자, 소자를 귀하게 여기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3-1. 손의 범죄

손으로 그들을 실족하게 한다는 의미가 어떤 의미일까요? 오므라진 손입니다. 그대를 향하여 펴지지 않는 오므라진 손, 내 손에 먹을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나만 먹고 살겠다고 이 손으로 움크리고 오므라들고 있는 이 손, 주님 보실 때는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고 있는 범죄한 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중국에서 온 선교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약 15년 전에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고 가셔서 지금도 열심히 섬기고 계십니다. 그분은 동일 문화권 선교사로 파송받으셨습니다. 이른바 한인 교회를 선교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무늬만 한인 교회고 사실은 중국에 있는 지하교회를 돕고 있는 분입니다. 지금까지 15년 동안 사역하시면서 중국 지하교회를 네 교회 개척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 지도자를 훈련시키고 보내서 사역하게 하시고, 지금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습니다. 그분의 한인 교회 사역을 통해서 성도들이 헌금을 하면 그 헌금의 대다수를 그 지하교회 성도를 위해서 돕고 교회를 세워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불법이 아니고 나름 합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큰 위기와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시진핑 집권 이후로 장기적인 집권이 지속되면서 한인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 선교사들이 약 200여 가정이 되었다가 지금은 거의 다 추방당해서 22개 가정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쫓겨나기 전에 먼저 정리하고 나오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쫓겨나면 어떻게 하실려고요?" 그랬더니 그분이 "나는 하나님이 중국의 지하교회를 섬기라 사명을 받았으니까 쫓겨날 때까지 이 일을 감당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지금 그 교회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한인들이 다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제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아서 한인 기업들이 동남아 다른 국가로 다 이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인들이 많이 빠져나갔습니다. 형편이 많이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을 듣게 하시고 보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신데, 우리 손이 오므라져 있으면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손을 펴서 그들을 돕는 것이 교회가 해야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손이 우리 교회만, 우리가 정말 우리 공동체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전 우주적인 교회가, 모든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을 기뻐하며 섬길 수 있도록 우리가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3-2. 발의 범죄

발이 범죄한다는 것은 함께 하나님 기뻐하시는 사명을 향해서 발맞추어 걸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서 함께 돕고 함께 발맞춰 걸어가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우리 교회만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다면 이 또한 발이 범죄하는 것입니다.

3-3. 눈의 범죄

눈이 범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라고 하신 것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내부적인 문제에만 매몰되고 사로잡혀 우리 교회 성장에만 우리가 눈을 두고 이것만 교회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이 눈을, 이제는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크게 보고 멀리 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눈을 열어서 더 큰 세계로, 열방을 향하여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보라고 하신 것을 보지 못해서 실제로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눈을 뽑아 버린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삼손입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였는데, 사사가 보아야 할 것은 백성들의 삶이었습니다. 얼마나 고통받는지,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백성들의 삶을 살펴야 했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했습니다. 열심히 성경 읽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깨달은 대로 실천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삼손의 눈은 백성들에게, 성경 말씀에 가 있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14장 1절과 16장 1절을 보십시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삼손의 눈은 여인들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기생들에게, 이방 여인들에게. 하나님은 이것을 끊임없이 책망하셨건만 그의 눈은 하나님의 말씀에게로, 백성들에게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은 결단하십니다. 사사기 16장 21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그의 눈을 뽑아 버리는 것이 어쩌면 삼손을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눈이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오늘 우리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나와 내 가정만, 우리 교회만 보고 있다면 우리는 이기적인 신앙인들입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 전체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 전체를 보시고, 지금도 고통받고 지금도 어려운 가운데 끊임없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그 모든 사역자들, 그 교회에게도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길 바랍니다.

4. 소금같이 화목하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런 모든 공동체가 소금같이 화목한 공동체라고 말씀하십니다. 50절을 보십시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제물에는 소금이 반드시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잇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는 자기를 녹여 맛을 내는 소금이 반드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개인이, 우리 교회 공동체가 이토록 우리가 녹아지고 우리가 짠맛을 내어서 하나님과 백성들 잇고,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존귀히 여기는 아름다운 공동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대림절 첫 주에 주께서 주시는 말씀을 기억하시고 서로 화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여러 공동체가 이 땅과 세계 열방에서 지금도 주의 일을 열심히 행하고 있습니다. 주님,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우리 교회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만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나라가 함께 성장하고 하나님 나라가 함께 발전하며, 이 땅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공동체가 함께 한 걸음 맞춰서 나아가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운 형편에 처한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교회 되게 하여 주시고, 그 일을 위해서 함께 동역하고 기도하고 손 내미는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대림절 첫 주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가 넓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금같이 화목한 믿음의 백성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