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강 /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10:2-12)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막 10:2-12)

1. 창조적 파괴의 원리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가르친 조지프 슘페터 교수가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남겼습니다. 그분이 말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한 혁신적인 기업가가 자신의 기업의 조직과 문화를 파괴합니다. 그런데 이런 파괴는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라 창조를 위한 파괴입니다. 새로운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데, 그 물건을 유통시킬 유통 구조도 파괴합니다. 기존의 조직과 기존의 질서로는 한 단계 더 도약해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기존의 것들을 파괴하고, 그리하여 한 단계 더 도약해 나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경제는 발전하고 세상은 변화되고,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왔던 경제개발과 발전은 이런 창조적 파괴의 힘 입은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한 일간지에서 한국경제 100년의 모멘텀 이야기를 열 가지 사건으로 적어 놓은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 기사 중에도 창조적 파괴에 대한 이야기가 몇 가지 들어 있습니다. 한국경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극적인 사건 중에 제1번으로 꼽힌 것이 1983년에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이었습니다. 1983년 삼성은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수장이 난데없이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 당시 반도체는 초고밀도 집적회로를 통해서 만들어 내는 것인데, 가전제품을 겨우 만드는 회사가 언감생심 그걸 꿈꿀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비난하고 비웃기 시작합니다. 인텔 같은 회사는 이병철은 과대망상증 환자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수십 년이 지난 오늘 어떻게 되었습니까? 삼성은 세계 반도체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 일에는 기업의 절반 이상이라도 바꾸고 혁신하고 이별하고 털어 내려고 하는 각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열 가지 사건 중에 제2위로 꼽히는 것이 1993년에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었습니다. 출장 중에 이건희 회장이 한 충격적인 영상을 봅니다. 자신의 회사의 세탁기 제조 라인에서 있었던 일인데, 제조 라인의 작업자가 뚜껑이 불량인 세탁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칼로 깎아서 맞추어서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임직원 200명을 소집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양적 경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질적 경영, 품질경영을 하겠다. 그래서 그때 중요한 명언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아내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꾼다. 파괴하지 않으면 창조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오늘, 그 기업은 여전히 일류기업으로 살아남고 또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기업이 된 것입니다.

기업은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서 파괴합니다. 기업은 살아남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해서 과거와의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우리는 과거와의 아름다운 단절과 때로는 안타까운 단절까지 감수해야만 하는데, 우리는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예수님께서 파괴하지 않으면, 털어내지 않으면, 우리가 옷 벗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의 편에 들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대림절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가 지금 묶여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낡은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 자신을 함께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2. 바리새인들의 질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질문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질문할 때는 항상 목적이 있고 의도가 있습니다. 좋은 의도로 질문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항상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 건너편 이방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시는데 거기까지 따라왔습니다. 예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막 10:2)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이혼해도 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뜬금없이 이 질문을 왜 하는 것일까요. 정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덫을 쳐 놓고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1. 헤롯 안티파스의 배경

예수님과 바리새인이 있는 그 자리는 요단 동쪽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는 지역입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어떤 인물입니까? 아내를 버린 인물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동생이 결혼했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서 결혼했습니다. 헤로디아를 자신의 처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침묵했습니다. 왕이었으니까, 두려웠으니까 모두 다 침묵하고 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세례 요한은 잘못되었다고 외쳤습니다. 지도자가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왕이 그렇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당장 사죄하십시오. 다시 되돌리십시오. 그리고 해결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다가 세례 요한이 잡혀갑니다. 참수당했습니다. 이 일을 예수님도 알고 바리새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답을 세례 요한처럼 하면 똑같이 고발해서 세례 요한의 그 길을 걷게 하려고 무서운 덫을 쳐 놓은 것입니다.

2-2. 예수님의 역질문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예스 노로 대답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거꾸로 질문하십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에게 무엇을 명하더냐"(막 10:3)

모세를 언급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다음으로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출애굽의 영웅입니다. 율법의 창시자입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어떻게 말했는지야 바리새인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율법 박사들이니까요. 모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모세의 이야기를 언급합니다.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 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막 10:4)

모세가 이혼을 허락했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3. 모세의 이혼 규정

신명기 24장 1절에 보면 모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신 24:1)

신명기 24장 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치되는 일이란 어떤 일일까요. 여기 수치되는 일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모세가 율법은 기록했는데 율법에 대한 주석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 시대나 그 이후에나 수치되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 사람들은 나뉘어서 그 일에 대한 해석을 했습니다.

3-1. 두 학파의 해석

보수적인 학파인 샴마이 학파 같은 사람들은 이 수치되는 일을 음란, 불륜, 간음에 한정시켰습니다. 성적인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이혼해야 된다고 이렇게 한정시켰습니다. 그런데 보다 자유로운 학파인 힐렐 학파는 이 해석을 보다 포괄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여성으로서 남자가 볼 때 수치된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이혼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밥을 태우면 이혼 사유가 됩니다. 음식이 짜서 먹지 못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것도 이혼 사유가 됩니다. 가정경제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함부로 흥청망청 써서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것도 이혼 사유가 됩니다. 남자의 판단에 의해서, 남편의 판단에 의해서 여성은 얼마든지 내쫓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각 파로 나뉘었습니다.

3-2. 이혼 증서의 본래 의도

모세 시절이나 그 이후 시절이나 그래서 모세는 이 문제 때문에 여성들이 공동체에서 쫓겨나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가부장적인 남편을 만나서 마치 짐승처럼 살다가, 인격적으로 대접받지 못하다가 꼬투리 하나 잡혀서 내쫓기면 그 여성은 공동체에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다 보니까 모세는 한 가지 안전책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이혼 증서입니다. 이혼 증서를 써서 여성을 내보내면 이것을 가지고 재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 이혼 증서가 있으면 여성이 새출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 이것이 모세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혼 증서가 남발되고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때 이후로 이혼 증서를 함부로 써서 다 내쫓아 버렸습니다. 마치 모세가 이혼을 100% 허락했던 것처럼 그렇게 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증서를 써서 내보내 버렸습니다. 이 또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4. 마음의 완악함

예수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막 10:5)

마음의 완악함(σκληροκαρδία, 스클레로카르디아)을 문제로 보셨습니다. 완악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고, 완악했기 때문에 결국은 가정의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피해 보도록 만든 것 아니냐 이렇게 판단하셨습니다.

5. 결혼의 본질

그리고 주님은 결혼의 본질 문제로 더 깊이 들어가십니다. 결혼의 본질을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최초의 가정을 이루어 주신 것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막 10:6-8)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가정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가정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조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입니다. 사람들이 부모를 떠나야 새로운 가정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5-1. 부모를 떠남의 의미

새로운 가정은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 창조라고 본다면, 그 부모를 떠나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 파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이 있어야 새로운 가정의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혼했는데 자녀들이 부모에게 여전히 용돈을 받아 쓰고 있다면 그 결혼은 온전한 결혼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양가 부모님들께 때만 되면 달려가서 용돈 받아서 쓰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다면 그 결혼은 진정한 의미에서 결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걱정거리가 있으면 둘이서 머리 맞대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끊임없이 엄마 찾아다니고 아빠 찾아다니면 그 가정은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부모를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여전히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결혼을 했다면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독립을 해야 그 결혼이 온전한 가정의 창조로 이루어지고 이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5-2. 아담과 하와의 경우

부모를 떠나는 것을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아주 단호하게 정리하신 사건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부모가 누구십니까? 육신의 부모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모이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까요. 하나님이 그들을 짝지어서 결혼시킵니다. 그리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악과에 대한 명령을 하십니다. 이 선악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이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제 그 말씀을 지켜 나가는 것은 두 사람의 몫입니다. 하나님은 불안했지만 한 걸음 뒤에 빠져 계십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에 못 이겨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 주었을 때 하나님은 개입하지 않습니다. 가슴 아프지만 개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모를 떠났기 때문에 책임도 그들이 지는 것이고, 그 책임에 대한 결과도 그들이 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발짝 물러 계셨습니다. 말씀을 미리 주시고, 선택도 그들의 몫이고, 책임도 그들의 몫으로 하나님은 남겨 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의 원리입니다.

5-3. 과거의 습관과의 단절

그런데 사람이 결혼을 하면 부모만 떠나는 것으로 창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과거의 습관으로부터도 떠나야 됩니다.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만났던 이성 친구를 그대로 만난다면 그 가정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불씨를 그대로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결혼 전에 술을 좋아했습니다. 새벽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결혼을 했습니다. 청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그 결혼이 올바른 결혼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를 과감하게 파괴해야 창조로서 결혼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결혼 전에 내가 버는 것 내 마음대로 사용했습니다. 경제적 주체가 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결혼하면 알뜰하게 아껴 쓰고, 미래를 위해서 모으고, 그다음을 준비해야 됩니다. 과거의 나를 과감하게 버리고 파괴할 수 있어야 아름다운 가정을 창조해 나갈 수 있습니다.

5-4. 완악함의 본질

다시 5절로 돌아가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과거를 청산하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완악함입니다. 과거를 나는 그대로 유지하고 지금의 결혼 생활도 유지하겠다는 것이 완악함입니다.

헤롯을 보십시오. 헤롯은 정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음란한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거의 정욕을 청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이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녀가 비록 동생의 아내라 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비극이고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헤롯뿐만이 아니고 그 당시 유대인들,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과거를 청산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완악함이 지금 현재의 결혼 생활을 창조로 만들어 가지 못하고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6. 영적 적용

우리는 이 문제를 단순히 결혼 생활에만 국한시켜서 볼 수 없습니다. 영적인 부분으로 한 단계 더 승화시켜서 봐야 됩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이라고 표현하고,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신부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도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여러분들도 각자가 다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이 무엇입니까? 순결입니다. 그 순결은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입니다. 과거와 완전히 단절해야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아름다운 믿음의 창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6-1. 자기 부인의 의미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너 신앙인이냐? 너 나를 따르는 사람이냐? 너 예수의 제자가 되기 원하느냐? 그러면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부인이 무엇입니까? 과거와의 단절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세우실 때 그에게 요구하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명령에서부터 요구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너에게 익숙했던 것들과 결별하라. 과거를 파괴하라. 그러면 새로운 믿음의 창조의 문이 열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2.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 전체를 보십시오. 과거와의 단절입니다. 중간에 죄를 짓습니다.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도 끊어내라고 하셨습니다. 단절하고 내보내라. 죄를 끊어내라. 너 과거의 잘못된 습관을 잘라내라 말씀하셨습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에게 빠져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도 끊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여정은 과거와의 단절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추어 두었던 나의 옛 자아와의 완전한 단절과 이별이 믿음의 여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내 과거의 잘못 놓여 있었던 습관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져야, 그래야 우리는 새 창조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6-3. 변화에 대한 저항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나이에 내가 어떻게 변하겠느냐, 당신이 나를 이해해라,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라, 나는 변하지 못하겠다, 노력해도 안 된다, 당신이 나를 이해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말든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신앙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끊어야 합니다. 과거의 나와, 익숙한 나와,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나와 결별하고 넘어서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 기뻐하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6-4. 새 피조물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새것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전 것을 떠나보내야 됩니다. 이전 것은 흘려보내고 떠나보내야 우리는 새것이 됩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피조물을 기대하신다면 떠나보내지 못했던 것들을 과감히 청산해야 됩니다.

하나하나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 아직까지 떠나보내지 못했던 것들, 나만이 아는 은밀한 습관과 비성경적이고 비도덕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을 정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새로운 창조의 피조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6-5. 하나님의 개입

만약 내가 끊어내지 않으면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손대고 끊어내기 시작하면 우리에겐 고통이 따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그의 야비함과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혔을 때 엄청난 훈련을 받지 않습니까? 사람 훈련을 받고, 물질 훈련을 받고, 자녀 때문에 훈련받고, 20년 동안 혹은 그 이상 그는 수많은 훈련 가운데 자기 자신의 시간을 허비하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끊으라 할 때 끊어내고, 정리하라 할 때 정리하시면 믿음의 도약이 한 단계 더 뛰어오를 줄로 믿습니다.

7. 더 좋은 교회를 향하여

가정도 정리해야 될 것 정리하고, 나 개인도 하나님 앞에서 끊어낼 것 끊어내고, 교회도 역시 그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교회를 보면 나쁜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인데, 좋은 교회가 더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면 여기에 안주하고 머물기 쉽습니다. 그런데 진짜 좋은 교회가 어떤 교회일까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건물이 좋은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성도가 많이 모이는 교회, 재정이 좋은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좋은 교회는 예수 닮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말씀대로 서 있는 교회가 진짜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가 예수님 닮은 교회, 말씀에 굳게 서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과거를 청산해야 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지금 좋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또 끊어내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 정리해야 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살펴봐야 됩니다.

교회가 지금까지 재정 사용을 보면 굉장히 건전하게 사용해왔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완전해지려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고, 마음을 모아서 살림을 줄여가며 아껴가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것만 해도 좋은 교회입니다. 그것만 해도 하나님 기뻐하실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한 가지 한 가지를 찾아내서 더 좋은 교회가 되기로 노력하고 애를 쓴다면 하나님 기뻐하시는 선한 자리에 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8. 대림절의 의미

대림의 시간을 보내고 성탄을 기대하시는 오늘 이 순간, 우리는 예수님을 기억해 보셔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수님이 하늘을, 보좌를, 그 과거를 청산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과거를 청산하고, 과거를 파괴하고, 새로운 구원의 창조를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오늘 내가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진실로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야 됩니다. 완악함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습관으로부터도 떠나야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나를 묶고 있었던 과거의 죄 사슬에서 떠나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더 좋은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도 좋은 교회이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혁신하고, 개혁하고, 창조적 파괴를 끊임없이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며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계획하며 지난 한 해 깨지 못했던 것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시고, 새해를 새롭게 시작하고 결단하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루어 가정이 되었습니다.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온전히 떠나야 하고, 과거의 습관으로부터 떠나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죄로부터 떠나야 함을 깨닫습니다. 잘못된 습관으로부터도 떠나야 함을 깨닫습니다.

여전히 잘못된 습관에 집을 짓고 죄의 낙을 누리며 살아갔던 우리의 모습을 파괴하게 하여 주옵소서. 새 창조를 위하여 과거와 과감한 단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더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하여, 예수 닮은 교회가 되기 위하여, 지금 좋은 모습에서 더 좋은 교회로 도약하는 믿음의 교회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