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부터 (막 11:27-33)
조선 후기의 실학자 중에 연암 박지원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열하일기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분은 어려서 영조 시절에 소과에 장원급제를 했습니다. 비록 소과이지만 장원급제를 했고, 그 글이 워낙 탁월한 문장이라서 영조 임금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임금이 그의 글을 보고 탁월하다 하면서 도승지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대신들이 함께 돌려 보라고 명령했습니다. 신하들이 그 글을 본 자마다 모두가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새겼습니다. 나중에 이 분이 대과에 급제하면 큰 인물로 발탁하리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연암은 대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과에 합격해서 장차 조정에 나가서 큰 뜻을 세우고 펼치겠다는 마음 자체가 아예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안 어른들의 성화를 못 이겨서 시험을 보기는 했으나 백지를 내기도 일쑤였고, 서너 문제에 그림을 그려내어 낙방하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마흔네 살이 됩니다. 마흔네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친척 형님 중 한 분이 청나라 사절단을 이끄는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형님이 연암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가서 큰 나라와 넓은 문물을 보라는 배려였습니다. 그는 형님을 따라서 청나라를 다녀오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오랑캐 나라라고 무시하고 멸시했는데 이 나라가 이렇게 위대한 나라로 발전했다니,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시선은 여느 사람하고는 달랐습니다. 여느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은 청나라의 대궐과 부자들이 사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는 평민들의 삶, 백성들의 삶을 봅니다.
그 백성들의 삶에서 그는 두 가지를 보았습니다. 하나는 깨어진 기와 조각으로 정원을 만들고 화단을 만드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말이 길을 가면서 배출한 배설물을 가지고 축대를 견고하게 쌓아올린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청나라의 저력이라고 평가합니다. 이것이 열하일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이것을 저력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라와 관가와 임금이 거대한 토목공사를 벌여서 백성들을 그 공사에 동원하면 백성들이 어찌 정원을 가꿀 시간이 있겠는가, 백성들이 어찌 화단을 가꿀 시간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깨어진 기와 조각으로 정원과 화단을 가꾸며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으니 태평성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자원을 재활용해서 축대를 쌓아 올리니 이 나라의 국고가 든든해질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열하일기에 자신의 탁월한 관점을 기술했습니다.
돌아와서 열하일기를 출판합니다.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사람들마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고 다들 열하일기를 구해서 읽으려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조정에서 사대부 자제들이 쓸 수 있는 문체, 글의 문체까지 정해 두었습니다. 그 당시 정조 시절에 정해둔 문체는 다산 정약용이 표준이었습니다. 정약용처럼 쓰고 정약용처럼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약용의 문체보다는 연암의 문체에 열광했습니다. 급기야 정조가 문체반정을 지시합니다. 바로잡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벼슬도 하지 않은 연암의 글을 사대부 자제들이 쓰는 건 옳지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임금이 아무리 말해도, 조정에서 아무리 문체를 정해 줘도 쓰지 않으면 그뿐입니다. 백성들은 모두가 다 은밀하게 더욱 깊이 자기만의 글쓰기 세계에 빠져 가는데, 그때 표준이 바로 연암이었습니다.
이것이 권위입니다. 사람들이 쓰지 않으면 권위가 생기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면 그 어떤 권위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나라에서 표준을 정해 두어도 쓰지 않으면 그뿐입니다.
1. 하늘로부터 오는 권위
하나님 나라의 권위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하나님 나라의 권위는 먼저 위로부터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옳다 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야 그때 권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권위는 반드시 영적인 사람들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고 순종하면서 그 권위는 확정되고 완성되어 갑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권위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과연 하늘로부터 받은 권위 있는 자인가, 아니면 권위적인 사람인가, 우리 자신을 깊이 묵상하고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이후에 며칠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전 이곳저곳을 둘러보십니다. 과연 성전이 이제 제대로 되어져 가는가, 성전이 제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새로워져 가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성전을 둘러보십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일단의 무리들을 만납니다. 그 일단의 무리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종교 권력자들,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길 가다가 성전 안에서 예수님과 마주칩니다. 그들은 길고 긴 회의를 마친 후였습니다. 예수를 죽이겠다고 결론 지어 놓고 죽일 방법을 찾았습니다. 오랜 회의 끝에 그들은 예수를 이렇게 죽이겠다고 결정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의 일행과 예수님의 일행이 마주치자 그들이 분노한 목소리로 예수님께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이런 일이란 성전 안을 뒤집어 놓고 성전을 정화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과연 성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그 권위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이냐, 누구 허락을 받고 이런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최고 의결 기관이 있었는데 그 기관은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유대인의 최고 의결 기관입니다. 모든 일을 거기에서 다 결정합니다. 성전에서 짐승을 사고파는 것, 성전에서 돈을 바꾸는 것도 산헤드린 공회에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네가 공회에서 결정한 일을 뒤집다니, 도대체 너는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냐, 공회원들보다 네가 더 높으냐 하는 질문입니다. 적반하장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그 아들이 새롭게 하시고 정화하시고 바르게 하겠다는 데, 이들이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가 누군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할 가치를 찾지 못하십니다. 내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그 권위의 출처를 말하기를 예수님은 불편해 하십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질문에 대해서 또 다른 질문으로 응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되묻고 보십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갑자기 예수님께서 요한을 들먹이십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이 과연 하늘로부터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냐, 이 질문이었습니다.
1-1. 세례 요한의 권위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입니까?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오신 분이고 예수님의 친척입니다. 세례 요한의 집안을 살펴보면 입이 쩍 벌어집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사가랴였는데, 그가 제사장 24반열 중에 한 반인 아비야 계열의 자손이었고, 직업이 제사장이었습니다. 혈통이 제사장 가문이었습니다. 또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세례 요한의 어머니는 엘리사벳인데, 엘리사벳의 뿌리를 올라가고 올라가고 올라가 보면 대제사장 아론을 만납니다. 대제사장 아론이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의 조상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뿌리가 대제사장, 제사장과 닿아 있습니다.
그는 그러므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제사장이 될 사람입니다. 그것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만히 있으면 대제사장의 일 번 후보였습니다.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뿌리부터 지방(地方)부터 훌륭한 사람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종교적 카르텔의 자리에 매여 있지 않겠다, 박차고 나왔습니다. 빈 들로 가버렸습니다.
세례 요한이 빈 들로 가버린 이후에, 그때 그 당시의 정치 권력이 어떠했는지를 누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3장 1절과 2절입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복잡한 말씀이고 복잡한 지명과 이름이 나오고 있는데 단순합니다. 삼 단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제일 위에는 로마 황제가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빌라도가 있습니다. 또 그 아래에는 헤롯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아래에는 헤롯에게 무릎 꿇고 헤롯에게 권력을 탐하고 있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꼭대기에 황제, 그 아래 총독, 그 아래 분봉왕 헤롯, 그 아래 종교 지도자들. 이런 사람들이 서열을 좇아서 그 자리에서 손을 비비고 아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총독에게, 관저에 가서 금덩이를 가져다주고 관직을 얻어 옵니다. 어떤 사람은 헤롯에게 가서 돈보따리를 가져다주고 관직을 얻어 옵니다. 그런 것이 그 당시의 현실이었습니다. 거기에 어떤 권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빈 들로 갔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 빈 들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그 자리가 권위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권능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이 일어나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빈 들에 갔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그 자리가 바로 권능 있는 자리, 권위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썩어빠진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자리에서 손을 비비며 돈을 갖다 바치며 대제사장 자리를 탐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빈 들로 갔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1-2. 빈 들의 부흥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하는 것은, 세례 요한 혼자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 임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들을 사람이 없는데요. 더 놀라운 사실은 들을 사람이 자기 발로 걸어서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3장 7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있는 빈 들까지 수소문해서 물어물어 그 자리까지 찾아 나왔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들은 종교 권력 발밑에 가서 손을 비비고 아부하고 그들이 가진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갈급한 사람들, 어떻게 하면 영이 죽지 않고 참되게 살지를 고민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 있기 때문입니다. 차가 있습니까? 교통수단이 있습니까? 걸어서 걸어서 광야까지 세례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으려고 나갔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세례 요한은 그렇게 찾아온 자들에게 독설에 가까운 회개의 선포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칩니다. "어떻게, 누가 너희에게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 강력한 회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미국에서 시작된 번영 신학이 이 땅에 내려와서 교회 성장론으로 뿌리 내렸습니다. 교회 안에 잘못된 복음을 많이 뿌렸습니다. 번영 신학에서는 성도들을 대하는 방식을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로 교회는 성도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성도가 어떤 요구를 하든지 교회는 100% 성도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일견 옳은 말이면서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만약 성도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렇게 돌아가기 시작한다면 교회 안에서 복음의 선포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어떻게 회개의 선포가 가능하겠습니까? "여러분들 그렇게 살다가 지옥 불구덩이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복음의 선포가 어떻게 교회에서 가능하겠습니까? 비위 상할까 봐. 그런데 번영 신학은 그렇게 이 땅에 가라지를 뿌려 두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박차고 나온 사람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빈 들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로부터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 담대한 복음의 말씀을 강력하게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회개하라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로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이 말씀을 능력 있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역사가 일어납니다. 누가복음 3장 10절입니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그들이 묻습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중적으로 살고 죄 많이 짓고 살았고, 우리가 이렇게 살아선 안 되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이렇게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자녀 된 백성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엎드려 간구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늘로부터 주시는 권위 있는 말씀이 그에게 임했고, 그는 그 말씀을 가지고 담대하게 전했고, 그 말씀은 듣는 사람들의 심장과 폐부를 찔러서 쪼갰고, 그래서 부흥의 역사와 회개의 역사가 날로 날로 불일듯 일어난 것이 빈 들에서 일어났던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2. 비겁한 자들의 대답
예수님 시절의 유대인들은 이런 세례 요한에게 일어났던 놀라운 역사를 모두가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이후로도 진리와 정의를 전했습니다. 헤롯이 자신의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서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지도자가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강력하게 외쳤습니다. 잡혀 갔습니다. 참수당했습니다. 형장의 이슬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세례 요한의 권위 있는 모습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빌미로 그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냐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냐" 이 질문은, 이 질문을 듣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순간 혼란으로 몰아넣습니다.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됩니까?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요한을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자기들의 제사장직, 종교적 카르텔을 깨고 뛰쳐나간 배반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한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어떻게 인정하겠습니까? 자존심상에서 그동안 요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니 백성들이 두렵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요한을 진정한 참된 선지자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들의 심장 속에는 요한이 빈 들에서 외쳤던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 그 말이 마음속 깊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그런 열정을 가졌던 요한, 요한을 기억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요한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겁한 선택을 합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비겁하게 빠져나갔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분들의 모습에서 어떤 권위를 찾을 수 있으십니까? 우리는 이 분들의 모습에서 어떤 권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비겁하고 비열하고 꽁무니만 빼는 무지하고 어리석고 때로는 불쌍한 사람의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2-1. 권위와 권위적인 것
권위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갖은 물질을 다 가지고 있고 세상의 가장 큰 권세를 다 가지고 있으면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까? 이 분들은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물질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말 한마디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권위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진 물질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비겁하고 비굴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도 보십시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의 자리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비겁하게 살고 있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신앙 양심을 속이고 살고 있는지, 우리는 얼마나 하루에도 몇 번씩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고 살고 있는지.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 때문에,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온 세상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권위는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에서 권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권력에서 권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말씀, 그 말씀을 붙들고 사는 자로부터 권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고 이 말씀을 선포하면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고, 말씀 듣는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찔러서 능력의 역사를 하실 것입니다.
2-2. 사사 시대의 교훈
예수님 시절보다 훨씬 더 위로, 구약 시절 쪽으로 올라가면 사사 시대를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고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열두 지파에게 다 나누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열두 지파에게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고 살게 하십니다. 레위인들을 세웠습니다. 열두 지파 땅으로 다 흩어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희들은 각 지파에 가서 각 지파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라. 그들에게 예배를 알려 주라. 그들에게 영적인 분별력을 가르쳐 주라." 레위인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레위인은 사명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사 시대, 그 이전에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기피합니다. 더 많은 돈을 위해서, 더 많은 물질을 준다고 하는 곳으로, 가정을 따라 지파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위인 제사장들이 물질의 탐욕에 물들어 가고 타락한 것입니다. 레위인들 중에는 첩이 있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레위인들이 성적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타락하고 성적으로 타락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영을 거두어 가십니다. 물질과 성을 좇아서 살아가는 사람들, 육체적 욕망을 좇아서 살아가는 사람들, 말씀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은 영광을 거두시고 말씀을 떼어서 가셨습니다.
오히려 평신도들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왼손잡이 에훗, 오른손을 못 쓰는 장애인입니다. 왼손잡이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받은 그가 이스라엘을 도탄에서 건져내는 사사가 됩니다.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때려죽인 삼갈, 농부였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임하니 그가 사사가 됩니다. 여사사 드보라, 여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훌륭한 영적 지도자가 됩니다. 소심한 기드온, 기생의 아들 입다, 이 모든 사람들이 그 당시 하나님께서 말씀을 거둬 가시고 평신도들에게 말씀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건져내고 구원하게 하신 말씀받은 영웅들이었습니다.
3. 권위 있는 삶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말씀받은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권위 있는 사람인가, 나는 과연 권위 있는 사람인지 우리 자신을 깊이 살펴보셔야 됩니다. 교회 안에서 권위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직분이 권위를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 오래 다닌 것이 교회 안의 권위로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 헌금 많이 하면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전하는 사람으로부터 권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으로 섬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 그분에게 권위가 임할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 갈등이 있고 고민이 있을 때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권위 있는, 말씀받은 자를 찾아가지 않겠습니까? 직분을 가지고, 교회에 오래 다닌 연수를 가지고, 권위 있는 말씀이 아닌 여타의 것으로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을 우리는 권위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 유대 종교 권력자들, 물질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권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권위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권위적인 사람들 앞에 가서 사람들은 그저 엎드리고 숙이는 척합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존경하지 않습니다. 따르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따라가서 그분에게 무릎 꿇고 상담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물어보지 않습니다. 권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껍데기만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우리 가정에서 부모로서 살아가면서 권위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됩니다. 하늘로부터 주시는 말씀이 충만해서 빈 들에서 세례 요한이 말씀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가르치셨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전하고 가르치는 백성이 되셔야 됩니다.
교회는 어떤 교회가 권위 있는 교회입니까? 세상에 교회를 보면 권위적인 교회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건물이 권위적입니다. 어마어마한 건물입니다. 대단한 평수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말씀대로 행하는 교회가 아니라면 권위 있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권위가 있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고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다 교회로 성장하고 자라가는 사람들인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우리 교회가 권위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우리가 하늘로부터 주시는 말씀을 받아 전하는 권위 있는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세상은 권위적인 사람들 앞에 가서 엎드립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 종교 권력자들, 많은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위로부터 주시는 말씀을 받지 못했기에 권위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주여,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 받아서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권위적인 사람의 틀을 깨고 권위 있는 백성으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