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강 / 악한 농부들 (12:1-12)

악한 농부들 (막 12:1-12)

1. 춘향전과 성경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판소리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판소리는 아마 춘향전일 것입니다. 춘향전은 판소리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마당극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영조 정조 시대를 거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당극 춘향전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마당극 춘향전은 판소리로만 또 머물지 않고 마당극으로도 머물지 않고 영화가 되고 소설이 되어 심지어는 오페라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인의 가슴에 각인되었고 그들에게 큰 감동을 가져다줍니다.

춘향전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암행어사 출두입니다.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내려와서 악한 탐관오리 변사또를 오라 줄로 꽁꽁 묶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춘향전의 놀라운 백미 이전에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아직까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몽룡이 변사또의 생일 잔칫날 들어가서 시를 읊는 장면입니다. 그 시는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황금 술잔에 담겨 있는 맛 좋은 술은 천 명 백성의 피요, 옥 쟁반에 담긴 맛있는 고기는 만 명 백성의 기름이라.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피눈물이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더 높아진다."

이몽룡은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변사또에게 준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이 시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뉘우치고 돌아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변사또는 그의 시와 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잔치와 술판을 벌였습니다. 그때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소리가 나면서 곳곳에 포진되어 있던 포졸들이 담을 넘고 뛰어 들어옵니다. 변사또를 오라 줄로 결박합니다. 백성들을 구원해 냅니다. 그리고 사랑했던 여인 춘향이를 구출해 냅니다. 아름답고 통쾌하고 놀라운 장면입니다.

1-1. 춘향전과 성경의 공통점

그런데 이 춘향전은 성경과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우선 지고지순한 사랑을 간직했던 춘향이, 첫사랑의 감동을 간직하고 그 사랑을 절대로 변개하지 않겠다면서 마음속 깊이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던 춘향이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살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악한 무리들과 사탄이 등장하는데 이 춘향전에도 변사또로 대표되는 사탄과 악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탐관오리들이 있습니다. 임금이 이미 그들에게 고을을 맡겼습니다. 가서 이 나라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잘 섬겨 주어야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섬기고 임금의 마음대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수탈합니다. 백성들의 온갖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갑니다. 가재도구를 가져가고 곡식을 수탈합니다. 자기 여인이 아닌데도 불러다가 수청을 들라고 합니다. 악한 무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이몽룡입니다. 그는 춘향에게 내가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돌아왔습니다. 장원급제해서 암행어사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출하고 사랑하는 춘향이와 평생토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종말에 반드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아들을 다시 재림주로 보내시고 이 세상의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2. 포도원 비유의 내용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종말의 때에 이 세상의 악한 무리들을 정리하시고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포도원을 멋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산울타리로 울타리를 다 둘러쌌습니다. 즙 짜는 틀을 만들어다 두었습니다. 그리고 높다란 망대도 세워 두었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을 불렀습니다. "자네들, 이 포도원을 잘 부탁하네. 내가 나중에 포도원의 소출을 거둘 때가 되면 사람들을 보낼 테니 그때 세를 내게."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먼 나라 타국으로 떠나셨습니다.

2-1. 세의 의미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를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세를 약속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주인과 포도원 농부들의 역할 관계를 분명히 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비록 여기 없지만, 주인은 먼 나라 타국으로 떠났지만, 이 포도원의 주인은 반드시 이 포도원을 만든 주인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기억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비록 여기서 주인 행세하며 농사 짓고 있으나 그러나 이 포도원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먼 나라 타국에 가신 주인의 것입니다. 세를 낸다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걸 분명히 하고 주인은 먼 나라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2-2. 종들의 수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포도가 익어서 포도원 소출을 거둘 때가 됩니다. 주인은 종들을 보냈습니다. "가서 소출을 좀 받아 오라, 세를 받아 오라."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종이 갔는데 농부들은 그 종을 때려다가 놓습니다. 주인은 당황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또 종을 보냅니다.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죽지 않을 만큼 맞아서 돌아왔습니다. 또 다른 종을 보냅니다. 그런데 웬걸, 이제는 죽어서 시체가 돌아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종들을 많이 보냈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2-3. 아들의 죽음

그래서 주인은 이제 결심합니다. 마지막 남은 비장의 카드, 내 아들을 보내야겠다. 아들을 보내면 아들을 곧 나처럼 받아 주겠지. 그래서 지금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이제 아들에게는 함부로 하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들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본문 7절과 8절을 보십시오.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더라"

농부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들, 주인의 비장의 카드, 아들을 보냈는데 그 아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아들을 죽이면 이 포도원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 우리 것이 되지 않겠느냐, 잡아서 포도원 밖에 내던져 버렸습니다.

3. 비유의 해석

비유의 해설을 해 보겠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누구십니까? 당연히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면 포도원은 어디입니까? 넓게 보면 이 포도원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포도원으로 만들어 놓으시고 그리고 그곳에 지도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들을 세웠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충성과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이 나라 백성들을 잘 다스려라, 포도나무 같은 내 백성들을 성실하게 잘 섬기고 잘 다스려 다오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수탈합니다. 잘 다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종들을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들입니다. 선지자들이 흠씬 맞고 돌아왔습니다. 심지어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이 당황하시고 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하나의 비장의 카드,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를 어떻게 했습니까?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잡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3-1. 성전으로 본 비유

이 포도원을 이제 좁게는 성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전으로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농부로 세운 이들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이 부탁하셨습니다. 이 성전에 오는 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섬기고 양육하고 돌보라고, 이곳에서 예배가 이루어져야 하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부탁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백성들을 수탈합니다. 백성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성도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성도들이 가지고 오는 물질에만, 그들의 소와 양과 염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선지자들이 가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선지자들이 쫓겨납니다. 흠씬 맞습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남은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이러면 안 된다고 마지막 기회를 주셨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또한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궁리했습니다. 죽이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죽일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제 곧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비유의 내용과 해설입니다.

4. 농부들이 아들을 죽인 이유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을 생각하셔야 됩니다. 왜 농부들은 아들을 죽였을까요. 본문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농부들이 아들을 죽이며 "그는 상속자니 이 포도원이 우리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세 살 먹은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아들을 죽인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 포도원이 자기 것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걸 모를 리가 없습니다. 아들을 죽인 이유는 그다음 주인 나오라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오면 우리는 주인까지도 처단해 버리겠다, 주인까지도 제거해 버리고 완전히 이 포도원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생각한 것입니다.

4-1. 세금의 문제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 질문은 그럼 이들이 왜 주인을 제거하려고 했을까요. 왜 포도원 주인을 제거하려고 한 것일까요. 한 가지입니다. 세금 때문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두고 농부들과 계약을 합니다. 세를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세금 때문입니다.

그럼 주인과 포도원 농부들 사이에 맺은 세금은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을까요. 주인은 농부들에게 어느 정도의 세금을 요구하셨을까요. 많은 물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보면 당신의 백성들에게 물질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신 것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짐승일까요. 소나 양이나 그들의 기름이나 그들의 고기나 그런 수많은 짐승들을 가져오라고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아버지이십니다. 이 하늘과 땅 온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제물은 상한 심령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에게 올 때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나에게 다가오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간절하고 갈급한 심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예배,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그것만을 원하셨습니다.

5.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금

그렇다면 정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농부들과 맺었던 그 세, 그 세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창세기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해서 여러 선지자 시절까지 공통적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 18장 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택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무엇입니까? 의와 공도를 행하라 하셨습니다. 의는 체다카(צְדָקָה), 공도는 미쉬파트(מִשְׁפָּט)입니다. 여기 미쉬파트와 체다카는 우리말 성경에 다양한 단어로 번역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정말 원하셨던 것은 미쉬파트와 체다카, 공도와 의, 체다카와 미쉬파트, 의와 공도였다는 사실입니다.

5-1. 이사야의 증언

이사야 5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정의, 미쉬파트(מִשְׁפָּ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포학을 일삼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체다카(צְדָקָה), 공의였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들리는 소리는 백성들의 울부짖음과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에서 예언했습니다. 남유다 백성들, 그들을 인도하고 이끄는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들은 정의와 공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종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5-2. 아모스의 외침

아모스 5장 24절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을 대하여 예언했던 선지자였습니다. 북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나라에도 정의가 사라지고 공의가 사라졌습니다. 미쉬파트(מִשְׁפָּט)와 체다카(צְדָקָה)가 사라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북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6. 정의와 공의의 의미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정의는 무엇이고 공의는 무엇인지 미쉬파트와 체다카에 대해서 살펴봐야 됩니다.

6-1. 미쉬파트의 의미

여기서 정의란 즉 미쉬파트(מִשְׁפָּ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로 하는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로 하는 정의라는 것은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왕정 국가에 왕이 세워지면 왕인 뜻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없는 왕들은 자기 맘대로 합니다. 세상의 왕들은 왕의 말이 곧 법이 아닙니까? 왕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곧 자기의 법 아닙니까? 왕의 말과 행동과 자신의 뜻대로 행합니다. "저놈 잡아다가 감옥에 가둬라" 가둬야 됩니다. "저 사람에게 상을 주라" 상을 내려야 됩니다.

다윗을 한번 보십시오. 다윗은 자신의 충실한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서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우리아는 전쟁터 제일 앞에 내세워서 그를 살해했습니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여느 왕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마음에 드는 여인을 데려다가 자기 아내로 삼는 것 뭐가 문제가 될 것이 있습니까? 백성들이 뒤에서 수군거릴지언정 이건 왕의 말이 곧 법인 세상에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미쉬파트(מִשְׁפָּט),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커다란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근거하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찾아옵니다. 왕에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당신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미쉬파트 정의의 관점에서 잘못했습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신의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눈물로 침상을 적셨습니다. 왕의 체면도 위신도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에 근거한 미쉬파트 앞에 그는 보잘것없이 속절없이 무너뜨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잠시 곁길로 빠졌으나 다시 중심으로 돌아와 중심을 잡은 것입니다.

아합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 아합과 이세벨, 그의 나라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나봇은 널따란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그 포도원이 탐이 납니다. 빼앗고 싶습니다. 빼앗아서 벌였습니다. 그를 살해하고 죽여 버렸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율법을 근거로 한 미쉬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엄청난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의 죄 값을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농부인 우리가, 농부인 왕이, 농부인 영적 지도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율법에 근거하지 않은 행위를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6-2. 체다카의 의미

체다카(צְדָקָה)는 무엇입니까? 체다카는 관계에 근거한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관계,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사실 우리는 허물이 많고 죄가 많은 존재들입니다. 얼마나 죄가 많은지 내가 나를 보아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무지하고 연약하고 죄 많고 마음에 사악한 생각으로 가득한 이 주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나와 너의 관계 안에 넣어둔 것처럼 너희도 이웃을 그렇게 사랑하라." 이것이 바로 체다카이며 공의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라. 고아와 과부의 인격과 인간성을 보지 마라, 고아와 과부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하라. 이것이 관계입니다.

성경을 보면 매 칠 년마다 면제년이 선포됩니다.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스스로 종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영원히 너희 가정에 종으로 삼지 마라, 7년이 되면 그 종을 해방시켜 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은 곧 내 재산인데 왜 나의 사유재산을 하나님이 침해하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체다카의 공의로 그들을 해방시켜 주라, 이것이 체다카 사랑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이렇게 선포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성전에는 하나님께서 믿고 맡긴 그 농부들이 하나님의 체다카의 공의를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압제했습니다. 그들의 먹거리를 빼앗았습니다. 무지몽매한 그들을 통해서 오히려 자신들의 배를 불리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낸 것입니다. 공의가 사라지고 정의가 사라지고 미쉬파트와 체다카가 온전히 없어진 그 땅에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마지막으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낸 것입니다.

7. 오늘 우리에게 맡긴 포도원

이스라엘과 성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가정도 주셨습니다. 교회도 주셨습니다. 일터도 주셨습니다. 하나님 맡겨주신 포도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포도원에서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포도원에서 미쉬파트(מִשְׁפָּט)와 체다카(צְדָקָה)를 행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고자 하는 세금은 미쉬파트와 체다카입니다.

하나님은 돈 봉투 헌금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물질을 가져오고 하나님을 달래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종교와 다른 분이십니다. 격이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미쉬파트와 체다카입니다.

7-1. 가정의 포도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아내를 주시고 남편을 주시고 사랑하는 자녀를 주셨습니다. 돈을 벌어 옵니다. 그렇다고 내가 가정의 주인입니까? 내가 배 아파서 우리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가정의 자녀의 주인이 나 자신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율법인 말씀에 근거해서 정의가 이루어지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우리는 말씀으로 양육하고 가르쳐야 됩니다. 내 경험과 내 의지와 나의 욕심대로 자녀를 길러 가면 안 됩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육해야 됩니다. 그건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맹렬하게 가르치고 투쟁해야 됩니다. 우리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견고히 세워 나가야 됩니다. 동시에 덮어주는 체다카도 함께 존재해야 됩니다. 덮어주고 가려주고 사랑해주고.

7-2. 교회의 포도원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의 주인이 목사입니까? 교회 주인이 중직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주인은 이 교회를 만드시고 이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 뜻을 가지고 살도록 하신 아버지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농부들입니다. 담임목사도 농부, 목회자들도 농부이고 여러 중직들, 제직들, 성도들 모두가 농부들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교회를 어떻게 목양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미쉬파트에 근거해서 교회를 목회해야 됩니다. 성도들이 말씀에서 벗어나서 옆길로 가면 끌어다가 중간에 가져다 놓아야 됩니다. 훈육하고 가르쳐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그래야 교회다운 교회라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사랑받아야 될 사람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고아와 과부 같은 사람들, 이 시대의 연약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체다카의 의로 덮어 주고 위로해 줘야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야 교회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포도원인 아름다운 교회를 주셨는데 우리가 내 관점대로 정의를 마음대로 행하고 나의 관점대로 체다카를 행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책망받고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 죄를 어떻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동체를 주신 것은 이 공동체에서 미쉬파트와 체다카를 행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지엄하신 분부입니다. 그 세금을 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걸 내라고.

우리는 하나님의 세를 잘못 이해했습니다. 헌금 봉투 가득 채워서 하나님께 드리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은 정의와 공의, 미쉬파트와 체다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행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귀찮게 생각했습니다. 아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이제 주인까지도 내가 제거해 버리면 이 제2의 온전한 포도원이 내 것이 될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8. 악한 농부들의 결말

그런 악한 농부들을 하나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8-1. 첫 번째 착각

농부들의 두 가지 착각이 있습니다. 첫 번째 착각은 주인이 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첫 번째 종을 흠씬 두들겨 패서 보냈을 때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주인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우리를 처단할까 봐. 그런데 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종을 보냅니다. 계속해서 종들만 보냅니다. 때려죽여도 주인이 오지 않습니다. 아들까지 죽여도 주인이 오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음, 주인 안 오시겠구나."

그러나 얼마나 큰 착각입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성경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책입니다. 성경은 창조가 있고 종말이 있는 책입니다. 우리는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훗날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와 약속한 세금은 언제 낼 거냐? 내가 너에게 포도원을 맡기지 않았느냐? 너에게 맡긴 포도원에서 너는 정의와 공의를 행했느냐? 보자, 계산해 보자."

"아니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 헌금 많이 드렸는데요. 그거 원하시는 줄 알고 많이 드렸는데요."

"너가 날 오해했구나. 너는 저 지옥불 유황불에 들어가야 되겠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정말 오시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미련한 사람 중에 가장 미련한 사람입니다. 종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내가 죽든지 내가 죽기 전에 역사의 종말이 임하든지 반드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산하자 하십니다. 정의와 공의를 계산하자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보여드릴 장부가 있어야 됩니다.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8-2. 두 번째 착각

또한 이 악한 농부들의 두 번째 착각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주인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주를 제거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지음 받은 피조물이 지으신 창조주를 없애 버릴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탄은 계속 그렇게 유혹합니다.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그렇게 유혹하지 않았습니까? "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지라." 오늘도 사탄은 우리를 그렇게 유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고, 하나님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착각 중에 가장 큰 착각입니다. 피조물은 피조물의 자리를 지켜야 됩니다. 지음 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포도원에서 그 토지를 열심히 일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야 됩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9. 결론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주입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의 고난과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한다고 하면서 정말 주께서 원하고 바라시는 정의와 공의를 나의 포도원에서 행하지 않고 산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악한 농부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더 크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 놀라운 하나님의 포도원의 아름다운 농부, 착한 농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포도원에서 우리는 착한 농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포도원을 주시고 세를 원하셨는데 하나님이 원하셨던 세는 정의와 공의였습니다. 우리는 미쉬파트와 체다카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여전히 이 포도원이 내 것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다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가정도 교회도 공동체도 이 나라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곳에서 농사 지어서 열심히 정의와 공의를 하나님께 드리는 농부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농부의 삶을 기억하고 농부로서 탐욕 없이 그저 하나님께 모든 것 드리는 믿음의 자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고 영과 영으로 소통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속히 이 성전에 모여 예배할 수 있는 시간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