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시간을 사는 법 (막 13:7-13)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삶의 일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대면 접촉을 피하게 되면서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새삼스럽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읽히는 책 중 하나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라는 소설입니다.
알베르 카뮈는 1913년에 태어나서 1960년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페스트」를 출판하기 이전에도 이미 유명한 소설가였습니다. 그의 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페스트」를 1947년에 출판하면서 세계적인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 소설이 194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한 손에 거머쥔 위대한 소설이 된 것입니다.
1. 성실함이라는 영웅
「페스트」의 배경은 알제리의 해안도시 오랑입니다. 오랑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던 리외라는 사람이 자신의 집 계단에서 죽은 쥐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저 쥐 한 마리가 죽어 있으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랑 전체에 죽은 쥐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모든 쥐가 입에 피를 물고 죽어 나갑니다. 사람들은 두려웠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한둘씩 아프기 시작했고, 도시 전체가 페스트에 감염되었습니다. 급기야 그 도시는 봉쇄령이 내려집니다. 사람들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은 신문 기자입니다. 오랑에 취재차 왔다가 갑자기 도시가 봉쇄되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처지가 되었습니다. 리외라는 의사도 등장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애를 썼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신부님도 한 분 등장합니다. 그분은 지금 오랑에 내려진 이 페스트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징벌하시는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타루라는 사람도 등장합니다. 그는 자살을 여러 번 시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랑이 이런 페스트의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자 그는 삶에의 의지와 활력을 되찾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시민 보건대를 결성합니다. 우리 힘으로 한번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보자는 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 가운데 작가가 가장 중심에 둔 인물이 다름 아닌 오랑의 말단 공무원으로 살아가고 있던 그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랑은 낮에는 공무원으로 일합니다. 하지만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소설을 씁니다. 능력이 있거나 재능이 있는 소설가가 아니었습니다. 한 줄을 쓰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립니다. 이 단어가 좋을까, 저 단어가 좋을까 지웠다가 썼다를 반복합니다. 그는 임시직 신세였습니다. 임금도 몇 년 동안 한 푼도 올려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성실했습니다. 이 페스트가 창궐하자 그는 시민 보건대에 자원해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합니다. 통계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병이 발생했으며 누가 어떤 발현 증상을 보이다가 죽어 가는지를 꼼꼼하게, 공무원답게 하나하나 기록해 나갔습니다.
그랑의 이러한 일을 카뮈는 영웅적인 일이라고 말합니다. 리외라는 의사의 입을 통해서 말합니다. 영웅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성실하게 그 일을 감당할 때 우리 모두는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오랑은 평온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알베르 카뮈는 그랑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통해서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랑(Grand)은 프랑스어로 '큰', '위대한', '대단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단 공무원으로 보잘것없고 별볼일 없고, 소심한 사람이고 능력 없는 사람이었지만, 맡은 자리에서 요란스럽지 않게 호들갑 떨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감당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명확히 설명하고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 이 말씀을 통해서 답을 찾고 길을 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헤롯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집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헤롯 성전이 무너지면 그때가 바로 종말이 아닌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람들은 모두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길을 알려 주십니다.
1-1. 종말의 의미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종말이 과연 언제인지를 한번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서 누구나 몇십 년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길게 살아야 100년 남짓한 인생입니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매일같이 경험합니다. 지금 우리가 온 국민이 경험하고 있는 전염병 사태가 바로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을 경험하면 우리 모두가 종말의 위기의식을 가집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말세라고, 그리고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우리는 조금 더 역사적 지평을 거시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역사를 조금 더 넓게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이런 일보다 훨씬 더 위기이고 훨씬 더 어려웠던 일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918년에서 1919년에 있었던 전 세계를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으로 전 세계인 가운데 5천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보다 세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스페인 독감으로 내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나갈 때 어떤 위기의식을 느꼈을까요. 이러다가 세상이 멸망하는 것 아닌가, 이러다가 정말 세상에 종말이 오는 건 아닌가. 그들은 굉장히 무섭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4세기 중세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 나갔습니다. 우리는 그 당시의 공포와 두려움을 소설로, 글로, 혹은 그림으로만 간접경험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경험했을 공포와 두려움, 이제 세상에 말세와 종말이 진실로 다가왔구나 하는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지금 이 땅을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종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건이나 한두 가지 사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종말은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면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구름 타고 올라가시면서 너희가 지금 나를 본 그대로 내가 다시 올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2000년 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2000년 전 그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종말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주님께서 온전히 실제로 내려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시면 그때가 종말입니다. 스페인 독감이나 페스트, 전염병 같은 사건이 종말이 아니라 주님께서 오시는 그때가 종말입니다.
이 종말에 대한 인식과 의식을 분명히 하고, 그렇다면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2. 두려워하지 말라
첫 번째 주님의 말씀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을 사는 자의 첫 번째 기억해야 될 부분입니다.
여러분들이 공포 영화를 보시면 공포영화에는 거의 두 종류 정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포물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귀신의 모습을 처음부터 보여줍니다. 그런 영화가 무섭습니까? 아니면 귀신의 모습을 끝까지 감추고 보여주지 않는데 분위기, 느낌, 소리 그런 것으로 사람을 공포스럽게 하는 영화가 더 무섭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가 더 무섭다고 말할 것입니다. 실체는 보여지지 않는데 귀로만, 느낌으로만,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 훨씬 더 두렵습니다. 두려움의 실체는 없습니다. 다만 소문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소문이 사람들을 두렵게 합니다. 종말의 시기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문제입니다.
북한에서 핵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동해 쪽으로 미사일을 발사합니다. 그런데 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저것이 지금 동해로 떨어져서 그렇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어느 지점에 어디에 떨어질 것인가, 얼마나 날아갈 것인가, 타겟이 어디일까. 북한의 미사일에 대응하는 정치권의 대응에 따라 국론이 분열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민들은 그 난리와 난리의 소문, 전쟁이 곧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국론이 나뉘어지고 서로 물어뜯고 집어 뜯고 싸웁니다. 소문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현실 가운데도 소문이 나라를 힘겹게,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2-1. 소문을 이용하는 자들
예수님 시절에는 어떤 소문이 있었을까요. 로마가 예수님 시절의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소문에 소문이 났습니다. 지금은 비록 로마가 총독을 파견해서 우리를 다스리고 있지만 로마 본토에서 군대를 보낼 것이라는 소문이 횡행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인들은 이것을 적절하게 이용합니다. 너희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너희들이 반란이라도 폭동이라도 일으키면 로마에서 군대를 보낼 것이다,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죽여버리고 쓸어버릴 것이다. 그런 소문이 사람들을 힘겹게 만듭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정치권력과 종교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권력은 소문을 적절하게 사용했습니다.
이단 집단들도 이러한 소문과 두려움을 잘 이용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1992년 10월에 있었던 다미선교회 사건을 말입니다. 이 집단은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한다고 말했습니다. 혹세무민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다 갖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흰옷 입고 산속에 들어갔습니다. 밤 열두 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며 찬송을 부르며 열광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온 나라가 사이비 이단들의 세치 혀끝에 놀아났습니다. 심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이단 집단은 14만 4천을 말합니다. 14만 4천이 다 차면 우리만 구원받을 것이라며 숫자적으로 14만 4천을 구원의 핵심 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그 집단이 30만 명이 넘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단들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을 말하고 예수님께서 재림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돈을 받습니다. 땅을 삽니다. 건물을 짓습니다. 교주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종말을 말하면서도 이 땅의 것들에 집착하는 이중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바로 이단들의 모습입니다.
2-2. 진정 두려워할 것
사람들은 그런 소문과 소문 때문에 두려움에 휩싸여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종말을 사는 사람들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이 말은 일상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소문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될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가 그렇지 않는가입니다. 말씀대로 살고 있는 나 자신, 혹은 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살피고 그걸 두려워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이 순간, 지금 이 자리에서 공중에 재림주로 나타나신다고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살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지금 당장 재림주로 오신다고 하면 우린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천사장의 호령 소리와 나팔 소리로 구름 타고 나타나시면 우리는 공중에 들림 받아서 예수님의 순결한 신부가 될 것입니다. 천국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 땅의 땀 흘리는 수고와 눈물의 고통과 가슴 아픈 모든 고통들을, 이제는 다 쉬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는가.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영적인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있는지 그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 내가 살아있을 때 종말이 오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우리 코에서 호흡이 떠나가고 내가 한 줌 흙이 되고 영혼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이 땅에서 예수님 잘 믿고 믿음생활 잘했다면 우린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문도, 죽음도, 눈물도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과 믿음을 잘 지키며 살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을 사는 자의 첫 번째 자세로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스스로 조심하라
두 번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리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두 번째 말씀하신 것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입니다. 여기 '조심하라'라는 단어는 '블레포(βλέπω)'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살피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살피라는 말씀일까요. 우리의 영혼을 살피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누가 살펴 줍니까?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스스로'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종말의 시간에 우리 영혼을 돌보고 살펴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3-1. 자녀를 떠나보내는 부모
가정의 부모들이 있습니다.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입니까? 자녀들이 성장합니다. 20대가 되었습니다. 대학 뒷바라지를 해 줍니다. 30대가 됩니다. 시집 장가 갑니다. 그때도 여전히 그들을 뒷바라지해 줍니다. 나이가 40이 되고 50이 되도 부모가 여전히 자녀들의 바람막이가 되어 줍니다. 정상적인 부모라 할 수 없습니다.
정말 훌륭한 부모, 좋은 부모는 적절한 시기에 자녀를 떠나보내는 부모입니다. 이제 세상을 향하여 훨훨 나가라, 부모의 날개 그늘 아래 있지 말고 이제는 스스로 판단하고 이제는 스스로 성장해서 건강하고 귀한 사회인이 되거라 하고 자녀들을 떠나보낼 수 있는 부모, 그런 부모가 훌륭한 부모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오랫동안 잡아주지 않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졸업시킵니다.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도록 내보냅니다. 그래야 그 학생도 정상적인 학생이고 그 학교도 좋은 학교가 될 것입니다.
3-2. 자립 신앙의 교회
그런 기준으로 교회를 한번 바라보십시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성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체크하고 확인하고 삶의 자리 자리까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체크하고 간섭하는 교회, 그런 목회, 정상적인 교회, 정상적인 목회자가 아닙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되는지, 누구랑 결혼해야 되는지, 내가 지금 땅을 팔아야 되는지 사야 되는지, 이사를 가야 하는지 머물러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은 지금까지 내가 믿음생활 해온 나의 판단의 근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최종 목적이 성도들을 자립 신앙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끝까지 의존하게 하고, 끝까지 심리적으로 성도들을 억압하고 끌고 다니는 교회는 좋은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적인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배우고 훈련받고 성장해서 삶의 현장에 나가서 처절하게 싸웁니다. 믿음의 투쟁을 합니다. 그러다가 깨지고 상처받고 병들고 다시 교회로 들어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말씀으로 위로하고 싸매어 주고 함께 다독입니다. 그리고 다시 길을 찾고 답을 찾습니다. 다시 파송합니다. 매주일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영적인 베이스캠프가 바로 교회입니다.
지금 한 번도 겪지 못한 전염병 사태를 겪으면서 건강한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가 판가름 나고 있습니다. 평소에 성도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하고 말씀으로 길러 냈던 교회는 성도들이 흔들림이 없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과 함께 긴밀한 영적 교제를 나누면서 올곧게 그 길을 걸어갑니다. 전혀 불안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먼저 선 성도가 믿음이 연약하고 어린 성도를 돌보아 줍니다.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참 좋은 교회입니다.
3-3. 성령과 말씀으로 서라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곁에 데리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3년간 훈련시킨 이후에 세상으로 보냅니다.
보낼 때 주님께서 주신 것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3년 동안 말씀을 먹였습니다. 제자들의 심령 속에 말씀이 한 가득 들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성령입니다. 말씀에 불을 지르는 성령입니다. 성령과 말씀, 이 둘을 가지면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도, 예수님이 승천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고 계셔도, 그들은 스스로 조심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될 것은 이것입니다. 나는 자립 신앙인인가. 나는 홀로 설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이 부족하고 어디가 부족한가. 내가 부족하고 연약한 것이 있다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말씀으로 나를 복종시키고 바르게 세워서 홀로 서서 좌로 가야 할지 우로 가야 할지 좌우를 내가 결정하고 분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주신 성령 받아서, 이 험하고 악한 종말의 시간을 승리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복음을 전파하라
세 번째입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될 것은 복음 전파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생각합니다. 지금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약 두 달 정도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가장 심각한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일까요. 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현실적인 심각한 문제는 헌금 문제입니다. 교회 헌금 수입이 줄고 있습니다. 모여서 예배 드리지 못하니까 이건 당연한 현실 아닙니까? 그러면서 교회는 비상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이걸 어떻게 할까,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 이 문제 해결하는 데 골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복음 전파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유일한 한 가지 목적, 내가 구원받은 백성으로 이 땅을 숨 쉬고 살아가야 하는 유일한 존재 목적,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복음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유언과 같이 부탁하셨지 않습니까?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을 다 모아놓고 하셨던 말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환경이 할 만하면 하고 못할 만하면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4-1. 흩어져도 복음을 전하라
교회는, 모든 성도들은 이전과 이후의 복음 전파 방식을 고민해야 됩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사태를 겪으면서 교회에 대한 이유 없는 반감과 불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전도해야 됩니까?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산 복음을 우린 어떤 방식으로 전해야 됩니까? 현실적 필요에 매여서, 헌금 문제 거기에 매여서 교회가 거기에 휘둘리며 살아가야 될 것이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종말을 살아갈 때일수록 본질에 집중해야 됩니다. 그 본질은 다름 아닌 복음 전파입니다.
사도행전 8장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불어닥쳤습니다. 베드로가 한번 설교하면 3000명, 또 한번 설교하면 5000명이 모였던 대형 교회가 핍박이 불어닥치자 사람들이 흩어집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 당하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극심한 핍박이 몰아칩니다. 사람들은 흩어집니다. 각자도생합니다. 살아남아야 되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흩어지면서 한 가지 붙잡았던 것이 있는데,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평신도 빌립 집사 말입니다. 그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전도합니다. 말씀을 증거합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의 자세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 그 말씀을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슴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떤 고난, 어떤 핍박이 올지라도 말입니다.
5. 성실한 영웅이 되라
예수님께서 종말을 사는 자에게 세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을 지키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것을 두려워하라. 자립 신앙을 가지도록 스스로 조심하라. 절대로 본질적 사명, 복음 전도의 사명을 잃지 말라.
이 말씀을 하나로 모으면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라. 오랑의 말단 공무원 그랑처럼 우리도 이런 종말의 시기에 흔들리지 말고 참된 하나님의 제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과 구원의 역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할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영웅 같은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금 이 시간은 종말을 경험하는 두렵고 무서운 시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겠다고 하신 그때부터 우리는 종말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복음 전파에 힘쓰라.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를 원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본질에서 어긋나는 삶을 살지 않도록 도우시고, 두려워하거나 겁내면서 영적인 일상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