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강 / 인생의 위기 앞에서 (13:14-27)

인생의 위기 앞에서 (막 13:14-27)

기원전 6세기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였습니다. 혼란스럽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전쟁과 전쟁, 자고 나면 지도가 바뀔 정도로 수많은 나라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매일매일이 인생의 위기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이 혼란한 사회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스물세 살의 한 청년이 책 한 권을 저술합니다. 그 책 이름이 손자병법이었습니다. 손자병법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가져다준 책입니다. 우리는 손자병법이라고 하면 전쟁에서 절대로 지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손자병법에 보면 어떻게 하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전쟁하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것이 최고의 수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성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와 성을 지키려고 하는 자가 전쟁을 합니다. 성벽을 기어 오릅니다. 지키려는 자는 뜨거운 물을 펄펄 끓여서 쏟아 붓습니다. 결국은 승패가 나게 됩니다. 이긴 자나 패한 자나 상처는 극심하게 남습니다. 이런 전쟁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국가 간, 민족 간, 인종 간 전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때 손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을 하려면, 꼭 해야 한다면 여기 다섯 가지는 반드시 기억하라. 그 다섯 가지가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 다섯 가지입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도(道)는 도리에 합당한가 하는 질문입니다. 하늘과 땅, 백성과 임금, 그리고 군사들까지 이 전쟁의 명분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면 그때 전쟁하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입니다. 천(天), 천시에 합당한가, 하늘의 때가 전쟁하기에 합당한 때인가. 예를 들면 농번기에는 전쟁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백성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어려워하는 시간들, 전쟁 때에 돌아와서 먹고살 곡식이 없을 것이라면 전쟁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입니다. 지(地), 전쟁하기에 적당한 지형인가. 보병이 진격하기에 적절한 지형이 아니라면 전쟁은 멈추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네 번째 장(將), 좋은 장수가 있는가. 백성들 그리고 군사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좋은 전략으로 탁월하게 전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장수가 과연 있는가. 다섯 번째 법(法)입니다. 엄격하게 군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는 엄격하게, 누구에게는 느슨하게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엄격한 군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도, 천, 지, 장, 법 이 다섯 가지를 다 갖추고 전쟁을 할 것이라면 우리는 전쟁하지 않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를 어떻게 날마다 지켜 가면서 전쟁하겠습니까? 손자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전쟁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감정에 복받쳐서 홧김에 전쟁을 해 버립니다. 기분이 나빠서, 마음이 상해서, 불쾌해서. 그런데 그 모든 피해는 백성들에게 다 돌아갑니다. 전쟁은 냉철하게 분별력을 가지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백성들에게도 이롭고 나라에도 이로운 일입니다.

이렇게 난세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손자가 가르쳐 주었지만, 이것은 주님의 지혜에 미치지 못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만날 때, 인생의 위기를 만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별력을 일깨워 주십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이 악하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새로운 주님의 말씀으로 지침을 삼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

먼저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말씀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옛날에 자신의 선조들, 아버지,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났을 것입니다. 기원전 168년에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예루살렘을 쳐들어 왔습니다. 성을 철저하게 유린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성전에 들어와서 번제단 위에 돼지를 잡아다 올려 놓습니다. 돼지 목을 따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우스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유대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저항할 수 없었고, 셀레우코스 왕조는 우리를 철저하게 짓밟았다.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각인되어서 그들의 심령 속에 두려움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들에게는 심각한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또 한 번 비슷한 일이 다가옵니다. 서기 70년 로마의 장군 티투스가 예루살렘에 쳐들어 옵니다. 성을 다 짓밟았습니다. 성전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교도의 제사를 행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교훈을 가지고 앞으로 장차 이런 일이 다가온다면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라, 분별력을 가지고 행동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분별력,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산으로 도망가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도망이라니요? 결사항전해야지, 여기에 붙들고 앉아서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싸워야지, 왜 예수님은 산으로 도망가라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도와 그 본 생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어디 돼지 목이나 이방에게 우상을 드리는 우상숭배뿐이겠습니까? 멸망의 가증한 것들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머리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는 성전, 교회여야 하는데 사람이 주인 노릇하고 있다면 그 또한 멸망의 가증한 것입니다. 물질이, 돈이 주인 노릇하고 있다면 그 또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고, 사람과 물질이 끌고 온 권력이 주인 노릇하고 있다면 그것도 역시 멸망의 가증한 것입니다. 그것이 성전에서 서지 못할 곳에 서서 그 자리에서 호령하고 있다면, 그때 너희들은 분별해야 된다, 거기에 미련 두지 말고 빨리 떠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고 하신 산이 과연 어디일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산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어느 산이 아닙니다. 공간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안전한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안전하게 쉼을 누릴 수 있는 그곳으로 너희는 피신하라 말씀하셨습니다.

1-1. 에스겔의 사례

기원전 597년에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갑니다. 그 당시 에스겔은 선지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었습니다. 꿈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이었습니다. 만 서른이 되면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제 나도 5년만 더 지나면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제사장으로 예배드리고 섬길 수 있게 되었구나, 많은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기대도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스물다섯 청년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갑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것으로 내 인생은 끝이로구나, 가장 안전한 곳이 성전이라고 믿었는데 성전이 아닌 나는 저 이방 바벨론 땅으로 끌려 가는구나.

그런데 바벨론 땅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에스겔 1장 3절을 보십시오.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그의 위에 있으니라."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제사장 에스겔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5년이 지나서 그가 서른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친히 임재하셔서 그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 주셨습니다.

만약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그는 서른이 되어서 제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배 제사장들의 뒤치다꺼리를 했을 것입니다. 그 성전은 썩어 있었습니다. 부패했습니다. 어울리다가 그도 부패하고 타락한 제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성전이 안전하지 않은 곳이기에 에스겔을 데려다가 갈대아 땅의 바벨론 그발 강가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에스겔을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전하다고 하시는 그곳은 성전이 아니라 오히려 바벨론 땅 그발 강가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진정한 영적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훌륭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1-2. 모세와 다윗의 사례

성경에는 그런 예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집트 궁전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으시고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이집트 궁전은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부유한 곳이고 먹고살기에 좋은 곳이었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에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궁전,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에게 그곳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데려다가 광야로 데려가셨습니다. 광야는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은 영적으로 우리가 안전함을 누리는 곳입니다. 인생의 위기가 닥쳐올 때, 인생의 큰 파도가 우리 인생을 크게 덮쳐 올 때, 그때 우리는 영혼의 안전한 곳을 찾아 가야 됩니다.

1-3. 교회와 가정의 책임

그곳이 어디입니까?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목사로서 저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성전을, 성도들에게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 세워 가야 할 막중한 책무가 목회자인 저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셔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셔야 하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그곳이 안전한 곳입니다. 만약 지금의 교회가 물질과 사람과 욕망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되어서 서지 못할 곳에 서게 되면, 그곳들이 결코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성도들을 그 성전에 묶어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각자도생하도록, 가장 안전한 곳으로 하나님은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목회자의 책임, 중직자의 책임, 하나님의 백성들의 책임은 하나님의 교회를 가장 안전한 곳으로, 가장 안전한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만들고 개혁해야 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어떻습니까? 가장의, 부모 된 자의 일차적인 책임이 무엇입니까? 부모들은 물질을 많이 가져다가 자녀들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 일차적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렸습니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넓은 집에 살아도 하나님이 그 가정에 머물러 계시지 않으면 그것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가정에 불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자녀들은 끊임없이 일탈을 꿈꿀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계셔야 안전한 곳이 됩니다. 돈 벌어오는 부모가 주인이 아니라, 세속적 욕망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가정을 만들어 가시고 세워 가시는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이, 우리 자녀들이 가장 안전한 곳에 머물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산에 우리가 다 피할 수 있도록, 인생의 파도가 닥쳐올 때 교회가 가장 안전한 곳이 되고 가정이 가장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다해 애써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긍휼을 구하라

두 번째 말씀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의문을 가집니다. 고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셔야지, 왜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했을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고난 자체가 나에게 닥치지 않기를, 인생의 환란이나 이 세상의 파도나 어려운 것들이 나를 휩쓸어 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무결점의 완벽한 상태에서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걸 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박국 3장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하박국 선지자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유다를 심판하시겠다는 걸 하박국 선지자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말합니다. 하나님, 바벨론이 어떻게 우리를 심판하도록 그냥 두시겠습니까? 이 일이 닥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제서야 하박국 선지자는 깨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휼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이 일을 속히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너무 큰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2-1. 하나님의 주권 인정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십니다. 이 세상을 다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토기장이가 자신이 만든 그릇을 어떤 것은 좋은 그릇으로, 어떤 것은 귀한 그릇으로, 어떤 그릇은 천한 그릇으로, 또 어떤 것은 깨뜨리는 권능과 그런 주권이 없겠습니까? 하나님은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심판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감히 하나님 앞에 이래라 저래라 하겠습니까? 심판을 계획하신 하나님 앞에 심판을 철회하라고 목청을 높일 수 있겠습니까? 그건 하나님의 주권에 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2-2. 기도가 최선임

또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를 인간의 능력으로 막을 수가 없습니다. 홍수를 어떻게 막겠습니까? 태풍과 비바람을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축대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단단하게 받치고 있는가, 배수로를 깊게 파는 일입니다. 홍수 피해가 심해지지 않도록. 기도는 바로 그런 역할입니다.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 일을 빨리 멈추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보다, 그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멈추시는 시기도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기도할 것은 이런 진노 가운데, 세계적으로 고통받는 이 현상 가운데 주님 긍휼을 잊지 마십시오, 어린아이들, 가난한 자들, 소외된 계층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우린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인생의 큰 파도를 헤쳐 가는 자에게 주신 주님의 지혜의 말씀입니다.

3. 분별력을 가지라

세 번째 말씀입니다. 21절과 22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종말의 시기가 다가오면, 인생의 환란과 비바람과 폭풍이 다가오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출몰한다고 했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위기와 파도를 경험하면 마음이 가난해지고 힘들어집니다. 그때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목청을 높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끌려갑니다.

3-1. 다양한 거짓의 양상

여러 가지 부류의 이런 집단들이 있습니다. 먼저는 정치적 이단 집단입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에 패닉에 빠진 독일인들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히틀러였습니다. 사람들은 히틀러에게 이렇게 경배했습니다. "하일 히틀러"라고. 뜻은 이렇습니다. 히틀러 총통에게 영광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드려야 될 영광을 히틀러에게 바치고 있습니다. 종말이 다가오고 독일인들에게 큰 어려움과 큰 폭풍과 파도가 닥쳤을 때, 히틀러가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로 출연해서 백성들의 마음을 훔쳐 갔습니다.

경제적인 영역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 가지 실험을 했는데, 여러 가지 실험 가운데 실험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처드 세일러 교수의 불편한 호의 실험입니다.

첫 번째 집단입니다. 물가 상승률이 0%입니다. 임금 삭감이 7%입니다. 기업이 너무 힘들어서 우리가 임금을 삭감해야 되는데 7%에 동의해 주십시오. 실질 소득 감소는 7%였습니다. 정당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38%였습니다.

두 번째 집단입니다. 물가상승률이 12%입니다. 물가가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기업의 형편이 여전히 좋지 못했습니다. 임금 상승은 5%밖에 올려 주지 못했습니다. 똑같습니다. 실질소득 감소도 역시 7%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정당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78%였습니다.

똑같이 실질 소득 감소가 7%입니다. 그런데 임금을 삭감한 것과 임금을 상승한 것에 대해서 정당과 부당의 퍼센트가 갈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사람의 심성입니다. 사람들은 현금을 손에 받는 걸 좋아합니다. 조금이라도 내가, 조금이라도 명목 소득이 상승되는 걸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보편적 심성에 기대어서 정치인들이 긴급 재난 지원금을 주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열기가 지난 지금 아직까지 여전히 다투고 있습니다. 긴급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우리는 그래서 저 정치인들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진짜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표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그래서 이 실험을 불편한 호의의 실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살고 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영적 이단들도 출몰하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이단들이 있지 않습니까? 신천지, 정명석, 안상홍 등등의 수많은 이단들이 시한부 종말론, 임박한 종말론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사람들을 끌어 갑니다.

3-2. 거짓에도 능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에게도 능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이들도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고 했습니다. 히틀러가 얼마나 능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까? 현금을 주겠다고 하는 이 돈은 얼마나 큰 능력이 있습니까? 이단들이 말할 때 사람들은 귀가 솔깃해집니다. 그들은 탁월한 언변과 화술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이적과 기사를 보입니다.

그 옛날 모세가 바로 앞에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 했을 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던져 놓았습니다. 지팡이가 뱀이 됩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이집트의 술사들도 자신의 지팡이를 던져 놓았습니다. 그때 그들의 지팡이도 뱀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일을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도 행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3-3. 말씀을 보라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야 될까요?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우리 주님은 분별의 기준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여기에 말씀 삼가라,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 13장에서 세 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5절, 9절, 그리고 23절. 5절에 보시면 주의하라, 9절에 보시면 조심하라, 23절은 삼가라. 우리말에는 다 다르게 표현하지만 원어에는 블레포(βλέπω)라는 같은 단어입니다. 블레포, 원어의 본뜻은 보다라는 뜻입니다. 주의하라, 조심하라, 삼가라, 무엇을 보라는 말입니까?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나의 영혼과 내면을 보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보고 말씀에 굳게 서고, 기도함으로 내 영혼을 제대로 살펴서, 그리고 나서 저들의 행실을 보라. 그러면 이단이 보일 것입니다. 히틀러가 정말 참된 지도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이 돈이 진실로 백성을 위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이단들의 탁월한 언변과 화술을 내가 따라 가야 될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말씀을 보고 내 영혼을 깊이 살피지 않으면 우리는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말씀도 읽지 않고 내 영혼도 살피는데 우리는 주의하지 않습니다. 주의하고 조심하고 삼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절없이 이단들의 궤변에,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가 인생의 큰 파도와 위기 앞에서 해야 될 일이 아닙니다. 이런 분별력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주의하고 조심하고 살피고, 말씀과 내 영혼을 깊이있게 보면 그런 자들에게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주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진짜 주님이 누구신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궤에 속지 않고, 주님께서 심판 날 다시 오실 때, 주님께서 참된 말씀을 하시는 그 주님이 누구신지 우리는 제대로 발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험하고 어려운 이 세상에 큰 위기를 만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께서 원하시고 주께서 계획하신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인생의 위기 앞에서 주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볼 때, 가장 안전한 곳으로 도망하기를 원합니다. 그 가장 안전한 곳이 오늘 우리의 교회가 되길 원하며, 가정이 되기를 원하오니, 주여 우리가 예수님을 모신 교회, 주님을 모신 가정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긍휼을 허락해 달라고 원하는 기도를 주께 드리는 주의 백성들 되도록 주께서 도우시며,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분명한 분별력을 가지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보며, 내 영혼을 살피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