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강 / 주님의 때를 분별하라 (14:1-11)

주님의 때를 분별하라 (막 14:1-11)

우리나라에서 주식투자의 대부라고 불리는 사람은 존 리라는 분입니다. 그분의 한국 이름은 이정복입니다. 그분은 연세대학교에서 재학 중이다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미국에서 7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다 할 정도로 모든 일을 다 해봤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분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회계사 시험 공부를 했습니다. 7년이 지난 이후에 회계사 자격증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투자 전문 회사에 취업을 합니다.

그곳에서 밑바닥부터 투자의 기본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 가기 시작합니다. 언제 어느 때 어떻게 투자해야 되며 돈의 흐름과 유통은 어떻게 되는지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최초의 외국인 전문 펀드인 코리아 펀드를 설립합니다. 이 코리아 펀드가 그야말로 역사적인 업적을 만들어 냅니다. 약 15년 동안 1,600퍼센트의 수익률을 창출했습니다. 기념비적인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모셔 가려고 했고 그는 그때부터 귀하신 몸이 됩니다. 이곳저곳에서 투자 전문 회사를 경영하고 운영하는 일을 했습니다. 후에 우리나라에 귀국해서 한 투자 전문 회사의 CEO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책을 저술하고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어느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진행자와 대담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대담 가운데 한 이야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진행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지금 현재 경제 위기로 인한 폭락장에서 매수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매도하는 것이 좋을까요? 매수의 시점과 매도의 시점을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주식을 산다면 어떤 종목을 사는 게 좋고, 판다면 처분한다면 어떤 걸 빨리 처분하는 게 좋을까요?" 사실 주식투자를 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매수와 매도의 시점을 잡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 않습니까? 어떤 종목을 투자하고 어떤 종목에서 발을 빼야 할지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묻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받았던 이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주식은 파는 것이 아니고 사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사고파는 일을 너무 자주 반복하는 나머지 주식이 투자라는 개념이 아니고 투기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한번 사면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오랫동안 붙들고 있어야 기업과 국가와 개인에게도 유익합니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교과서적인 답변입니다. 그런데 덧붙여서 한마디를 더했습니다. "주식을 언제 사고 언제 파느냐를 알면 제가 여기 있겠습니까? 하나님밖에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그분의 대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타이밍과 시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돈을 버는 일에는 시기가 중요하고 때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하나님의 때, 그리스도의 때를 분별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봐야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그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살고 있다면 성공적인 신앙생활이 될 텐데, 그렇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어딘가 모르게 어긋나고 빗나가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배경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명절입니다. 유월절을 둘러싸고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을 팔아버린 가롯 유다이고, 세 번째는 이름 모를 한 여인입니다. 예수님께 귀한 향유 옥합을 부어 드린 한 여인입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의 때를 분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불신앙적으로, 비신앙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모습도 다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1. 유대 종교 지도자들

먼저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1절과 2절을 보시겠습니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사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유월절은 큰 대목이었습니다. 원래는 대제사장이 되는 것은 혈통적으로 하나님께서 임명하고 지정한 사람이 대제사장이 되고 종교 권력자가 되는 것이지만, 이 당시에는 정치권력에 돈을 주고 종교 권력을 샀습니다. 밑천이 들어갔습니다. 많은 돈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 돈을 뽑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제사장도 서기관도 수많은 종교 권력자들도 돈을 들여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그들은 유월절을 기점으로 해서 그들이 투자한 것을 뽑아 내려고 했습니다.

유월절이 왜 그들에게 돈이 되느냐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자릿세를 받았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 비둘기 파는 사람들, 소나 양을 파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세금을 받습니다. 성전에서 가까운 곳이 그 세금이 비쌌습니다. 급기야 성전 안까지 들어왔습니다. 유월절 대목은 그들에게 한밑천 잡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상을 뒤집었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신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성전에서 이렇게 사고파는 것이 잘못되었고, 나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지 성전은 강도의 굴혈이 결코 아니구나. 그때부터 손님이 떨어져 나갑니다.

유대 종교 권력 지도자들은 한밑천 잡을 기회를 놓쳤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미웠을까요? 예수님이 눈에 가시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예수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예수만 없으면, 저희 예수를 죽이면 내가 돈 버는 것도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걱정 없을 텐데, 예수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걸림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백성들에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유월절에 예수를 죽이기라도 하면 민란이 일어날까 봐 겁이 나는 것입니다. 민란이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고 그들의 권력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를 죽이는 걸 이때는 하지 말자, 잠시 미루어 두자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들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유월절은 출애굽의 기쁨도 아니고, 유월절은 지난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그날도 아니요, 오직 돈 보는 날 그것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었는데 예수님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예수를 죽이는 일을 뒤로 미루어 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2. 가롯 유다

그런데 그들에게 혜성같이 나타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시겠습니다.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가롯 유다가 나타났습니다. 내부 고발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내부 고발자가 자기 발로 걸어가서 예수를 넘겨 주고, 예수를 팔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가롯 유다가 어떤 명목으로 예수를 고발했는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고발자가 나타났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가롯 유다가 어떤 말을 했든지 그건 포장하면 그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보니 예수는 부도덕한 사람이었다. 앞에서는 좋은 소리, 입에 발린 소리를 했는데 사실은 내부 고발자의 말을 들어보니 그 조직이 썩어 있었다." 이렇게 포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혐의는 정치적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로마가 정치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서 "예수가 로마를 전복시키려고 음모를 꾸몄다"고 혐의를 뒤집어 씌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자신의 인기를 믿고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로마 정치권력을 전복하려고 한다"고 해버리면 예수님이 체포되고 사형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악하게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2-1. 유다가 배반한 이유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렇다면 왜 유다가 예수님을 고발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예수를 유다가 왜 고발했을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로는 유다는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믿고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면 로마의 권력을 전복시키고 실제로 예수님이 정치적 지도자가 될 줄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에게서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기력합니다. 예수를 따라다녀 보니까 예수님은 죽음을 얘기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는 걸 말합니다. 부활을 말합니다. 얼토당토않는 일이라고 그는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예수는 나에게 아무 효용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예수에게서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중요한 자리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가롯 유다는 내가 다른 제자들보다 못한 것이 없는데 차별받고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2-2. 돈에 대한 욕심

그런데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보다 더 중요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 유다가 예수를 팔아버린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습니다. 유다는 돈을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같은 본문을 얘기하고 있는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유다가 예수를 팔고 받은 돈의 액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 30입니다. 그 당시에 은 30은 종을 사고파는 데 소요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몸값이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을 가질 것입니다. 유다는 이렇게 은 30이라도 받아야 예수님을 파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거라도 받아 챙겨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유다의 속마음은 예수님을 통해서 권력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를 무찌르고 권력자 자리에 오르면 유다도 그중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에게는 좋은 세상이 열립니다. 부귀영화가 그에게 들어옵니다. 엄청난 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돌아보니 분위기를 보니 예수님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예수라도 팔아 치워서 은 30이라도 받아야 손해 보지 않는 장사라고 여긴 것입니다. 3년을 내가 따라다니면서 그분에게 쏟아부은 시간과 정열이 얼만데 이거라도 챙겨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원래 돈을 좋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그는 예수님 시절에 회계를 관리하는 사람, 돈궤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의 돈이요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헌금에 손을 댄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그의 약점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2-3. 예수님을 수단으로 삼다

그래서 그는 돈을 좋아했던 사람이기에 예수님을 파는 것을 거리끼지 않았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가롯 유다의 공통점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돈 버는 일에 걸림돌이 되기에 예수를 제거하려 했고, 예수님을 딛고 올라가서 돈을 벌려고 했는데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기에 예수를 팔아 치우려고 했고, 예수를 팔고 예수를 사는 일이 그들에게 거래관계처럼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가롯 유다의 공통점은 돈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그들은 예수님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목적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수단으로 바라보십니까?

예수님을 수단으로 바라보면 예수를 통해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부자가 되길 원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출세하기를 원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내 자녀가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내가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했는데 그 수단이 신통치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 열심히 믿었는데 내가 원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요? 건강도, 물질도, 명예도, 내 자녀도 잘 되지 않으면 이 수단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용도 폐기하시겠습니까? 가롯 유다는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수단으로 여겼고, 그 수단이 신통치 않다고 생각한 순간 예수님을 폐기한 것입니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웠기 때문에 예수를 팔아서 은 30이라도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신앙생활하고 있는 우리 중에도 예수님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뭔가를 얻으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용도 폐기합니다. 신앙을 떠나버립니다. 믿음 생활을 포기해버립니다.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야 될 것은 예수님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목적으로 두고 주님 한 분만 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우리는 가만히 두었다면 썩어 없어질 인생이었고 지옥 불에 불살라질 수밖에 되지 못한 인생이었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그 피의 공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 생명책에 우리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는 예수님이 목적이 되어서 예수님을 위해서, 주님의 말씀을 위해서, 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목적으로 삼는 인생입니다. 가롯 유다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처럼 예수를 수단으로 삼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향유 부은 여인

또한 한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3절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갑자기 일어난 일입니다. 한 여인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머리에 아주 귀중한 나드 옥합 하나를 깨뜨려 부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이 향유가 흘러내리는데 몇 초나 걸렸을까요? 이삼 초가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 몇 초 만에 이 아까운 것이 다 쏟아져 내렸습니다.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진동합니다.

이렇게 갑작스레 일어난 일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그 자리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여인을 책망합니다. 4절과 5절을 보시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책망했다 지 단어는 엔에브리마오마이(ἐνεβριμῶντο)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엔에브리마오마이는 절제력을 잃고 심하게 꾸짖다, 몰아붙이다 라는 뜻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절제력을 잃었습니다. 여인을 심하게 책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인이 한순간에 쏟아 부은 향유 옥합의 값이 때문입니다. 돈으로 바꾸면 삼백 데나리온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기록합니다.

3-1.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

그렇다면 삼백 데나리온은 얼마나 많은 돈일까요?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사건을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보고 예수께서 빌립에게 묻습니다. "빌립아 이 사람들을 먹이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하겠느냐?" 빌립이 뭐라고 합니까? "돈을 조금씩 가져도 이백 데나리온어치에 돈이 부족합니다." 이백 데나리온은 남자 오천 명, 어린아이 노인 여자들까지 하면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런데 삼백 데나리온은 성인 남자만 칠천오백 명, 그 외에 여자 노인 어린아이까지 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먹일 수 있는 돈입니다. 게다가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일 데나리온입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입니다. 이 돈을 한순간에 쏟아 부었습니다.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베다니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이 여인도 가난한 사람입니다. 주변에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너는 지금 정신 나간 짓을 한 것이다. 이걸 팔아서 여기에 수많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면 훨씬 더 유익할 텐데 왜 이런 짓을 했느냐" 책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인의 행위와 책망하는 사람의 말 중에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여인이 정신 나간 짓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책망하는 사람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봐야 됩니다.

3-2. 예수님의 칭찬

주님께서는 어떻게 판단하셨을까요? 6절에서 8절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니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잘했다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잘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는데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니 잘한 것이다.

아마 이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어,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시네. 평소에 예수님은 가난한 자, 헐벗은 자, 도울 길이 없는 자들을 도우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 자신에게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부었는데 이걸 칭찬하시니 예수님도 할 수 없이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구나." 사람들은 그렇게 주님을 오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8절입니다.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제 며칠 있으면 유월절 어린 양으로 고난받고 죽고 장례 치르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입니다. 여인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나가시면 예수님을 육체로는 다시는 만날 수 없습니다. 이제 내가 주님을 육체로는 만날 수 없는데, 심판 날 하나님 앞에 가서야 주님을 만날 수 있을 텐데, 내가 주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는데, 나는 내가 가진 가장 귀중하고 가장 소중한 것으로 주님께 부어 드리고 싶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3-3. 주님의 때를 분별하다

그렇다면 여인은 예수님의 장례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예수님이 이 마을을 떠나면 고난당하고 십자가 지고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여인은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시간 나면 말씀하셨습니다. 고난받고 죽고 부활하신다는 사실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들었지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수난 예고를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고난당하고 죽고 부활하시고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씀을. 그런데 제자들은 들리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음속에 욕심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수난 예고하신 이후에 제자들은 서로 다툽니다. 누가 크냐, 누가 일이삼 자리에 앉을 것이냐, 그걸 가지고 다툽니다. 주님이 고난당하고 십자가 지고 죽는다는 사실, 부활한다는 사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마음속에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돈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들리지 않습니다.

듣지 않으면 주님의 때를 알 수 없고, 들어도 욕심으로 가득 차서 들으면 주님의 때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이 여인은 베다니에 자주 오시는 주님의 설교를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오실 때마다 편견 없이 마음의 욕심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듣다 보니 이제 주님께서 유월절에 올라가시면 다시는 육체로는 만날 수 없겠구나, 그걸 알게 된 것입니다. 듣다 보니 주님의 때를 분별했습니다. 들을 때 욕심 없이 듣다 보니 주님의 때에 자신의 삶을 초점을 맞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때에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까,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때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집을 팔아야 될까요, 사야 될까요? 살 때입니까, 팔 때입니까? 우리 자녀들의 결혼 문제가 시간이 걸려 있는데 내 아들 딸의 결혼할 때가 언제입니까? 나는 언제쯤 승진할까요? 언제 어느 때, 때에 관심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서 끊임없이 여쭙기도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너의 때는 관심이 있는데 나의 때는 관심이 있느냐? 내가 고난받고 내가 십자가 지고 내가 부활하는 그때는 관심이 있었느냐? 내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때, 너는 어떤 관심을 기울이고 있느냐?" 주님께서 우리에게 되묻고 보실 것입니다. 그때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부끄럽게도 하나님의 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민망하게도 주님의 때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때만 관심이 있습니다. 욕심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주님의 때를 분별하셔야 됩니다.

3-4. 분별 이후의 삶

주님의 때를 분별한 이 여인은 그다음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요? 여인을 책망했던 사람들은 여인에 대해서 이걸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는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향유 옥합의 기름부음을 받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 지고 돌아가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여인의 삶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난한 자, 병든 자, 연약한 자들을 섬기며 살았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 하면, 한 가지를 하면 그다음 그다음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때, 주님의 때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인생은 남들이 시키지 않아도 한 가지가 되면 그다음 그다음 더 자연스럽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자들을 돕지 않는다고 비난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주님의 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가난한 자들도 돕지 않습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때에 관심을 맞추지 않으면 그 나머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음에 욕심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가난한 자를 돕는 일도 게을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건 되고 이건 되지 않는 인생을 살면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때에 관심을 가지면 다른 다른 일도 다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칭찬하셔서 길이길이 축복하시고 계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이 여자가 행한 모든 일이 복음이 전파되는 그곳에 널리널리 퍼져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와 은혜를 허락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때에 우리의 때를 맞추고, 주님의 시간에 우리의 시간을 맞추며 살아가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인생을 둘러싸고, 우리가 원하지 않은 것까지도,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소원까지도 주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놀라운 은총을 받고 살아가시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의 때에 관심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사실 우리 인간의 때, 돈이 되는 때, 출세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주께서 우리에게 바라고 원하시는 것은 주님의 때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의 때에 분별력을 가지고, 주님의 때에 관심과 마음을 가지고, 열정을 기울여 주님을 섬기는 믿음의 백성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마음의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주님의 때를 분별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도록 축복하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