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강 / 순종과 헌신 (14:12-16)

순종과 헌신 (막 14:12-16)

허준이라고 하면 우리는 당연히 동의보감을 생각합니다. 동의보감을 지은 사람 하면 허준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허준과 동의보감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동의보감이 얼마나 대단한 책인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그 두께가 자그마치 2,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입니다. 목차만 하더라도 100페이지 이상이 됩니다. 그리고 동의보감을 위해서 참고한 중국 의학 서적만 해도 약 500권이 넘을 정도로 대단한 책입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허준이 이 책을 기록하기 위해서 14년 동안 연구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단독 저자로 저술했다는 데 있습니다. 허준은 원래 서자 출신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학문에 조예가 깊었고 특별히 그는 의약 분야에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학 분야의 재능이 있었기에 내의원 시험에 응시했고 당연히 합격했으며, 거기서부터 탄탄대로를 걷게 됩니다. 특히 그는 두창, 즉 천연두를 잘 다스리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선조의 아들이었던 광해군을 두창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조의 특별한 신임을 얻게 되고 그때부터 특별한 총애 가운데 살게 됩니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를 맞이했던 어느 날 선조 임금은 허준을 비롯해서 약 10여 명의 학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탁합니다. 중국의 의학 서적과는 다른 우리나라만의 의서를 편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0명의 학자들이 허준과 함께 그 일을 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1. 순종의 본, 허준

그런데 곧 정유재란이 불어닥쳤습니다. 허준을 제외한 나머지 학자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다 빠져나갔습니다. 선조 임금이 허준을 앉혀 놓고 묻습니다.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 허준이 "저 혼자라도 한번 감당해 보겠습니다"라고 결단했습니다. 그때 선조가 세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첫째는 중국의 의학 서적을 간단명료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것, 둘째는 병이 나고 나서 치료하면 치료가 어려우니 병 나기 전에 음식을 통해서 섭생하여 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기록할 것, 셋째는 중국의 약초가 아니라 우리나라 산천에서 자라는 약초를 가지고 백성들이 스스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기록할 것, 이 세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허준은 그렇게 약속을 하고 그때부터 밤낮 가릴 것 없이 전국 방방곡곡의 산천을 헤매고 돌아다닙니다.

약초를 직접 맛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죽을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밤이 되면 중국의 의학 서적을 펴놓고 열심히 정리했습니다. 음식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선조 임금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누명을 쓰고 정파 분쟁에 휩싸여서 북방으로 유배를 떠납니다.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습니다. 북방의 독방에 갇혀서 1년 8개월을 지내면서 동의보감을 결국 완성해 냅니다. 그래서 광해군 2년에 동의보감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책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건졌고,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음식을 조절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허준과 동의보감, 선조 임금의 관계를 통해서 보면, 한 사람 미련하고 어리석고 바보 같은 허준 같은 사람의 충성으로 인해서, 그분의 순종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일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두 번의 기회였습니다. 첫 번째는 나머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갔던 그때, 정유재란을 핑계로 그도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임금이 세상을 떠난 이후였습니다. 이제는 그 일을 더 이상 지속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난 임금이지만 군신 간의 예의와 의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다해서 그 일을 마무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허준을 통해서 "나는 신앙인인데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순종하고 충성되고 헌신된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값지고 놀라운지 다 경험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가만히 두었다면 죄의 종노릇 하다가 지옥 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에 빚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과 믿음 생활의 현주소를 오늘 말씀에 비추어서 함께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2. 경험을 초월한 순종

말씀의 배경은 유월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마지막 유월절을 맞이하셨습니다. 원래 유월절에는 출애굽을 기념해서 먹는 음식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음식은 구운 양고기를 먹고,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을 먹고,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리고 여러 과일을 부숴서 만든 소스를 만들어 먹습니다. 소금물도 먹습니다. 원래 출애굽 시절에는 음식이 이렇게 많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한 가지 한 가지 다 추가되어서 꽤 많은 음식이 되었습니다. 한 식구가 한 가정에서 유월절 음식을 먹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 13명이 함께 다니면서 이 많은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공간이 꽤 넓은 곳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것이 고민이 됩니다. 어디 가서 이 넓은 공간을 얻을 것인가? 당시의 예루살렘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흩어진 디아스포라 백성들과 수많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2-1. 물동이 든 사람을 따르라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 13명이 함께 가서 유월절 식사를 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예수님이 이미 유대 권력자들,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요주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에게 자신의 방을, 식당을 내준다는 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과 예수님 일행은 돈이 있어도 식당을 구하기가, 공간을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민이 됩니다. 주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묻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시겠습니다.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심각하게 고민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인데 이 유월절을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 드려야 할까 하는 고민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고민을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방향을 주십니다. 두 명의 제자들을 우선 따로 세웠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내로 들어가라. 그 성 안에 들어가 보면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 사람을 무조건 따라가라.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으로 들어가면 그 집 주인을 만날 것인데, 그 집 주인에게 이렇게 말해라. 선생님께서 나와 내 제자들이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내 객실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어보라. 그러면 그 사람이 큰 다락방을 보여줄 것인데, 그곳에 가서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말씀에 순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우리 같으면, 그 자리에 있는 제자라면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주님, 제정신이십니까? 이게 상식적으로 맞는 말씀입니까?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마 그렇게 항변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14절과 15절을 보십시오.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 입장에서는 이 말씀을 순종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물동이를 들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라 했는데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물동이를 들고 가는 사람이 남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관습에 의하면 여자들이 주로 물동이를 들고 가고, 남자들이 물을 들고 갈 때는 가죽 부대에 넣어서 물을 들고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동이는 여자들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관습이고 상식입니다. 그러니 길가에 가서 아무리 살펴봐도 남자들이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것을 찾아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을 수도 없을 뿐더러, 만약에 찾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에 어디든지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나와 우리 제자들이 먹을 나의 유월절 객실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얻어맞지 않겠습니까? 제정신이라고 사람들이 취급이나 하겠습니까? 이런 두 가지 어려움이 제자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2-2. 나귀 새끼의 경험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던 두 명의 제자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16절을 보시겠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우리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이 말씀에 순종했을까요? 이건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나귀 경험이 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절과 3절에 그 본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며칠 전에 예수님과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을 때 일이었습니다. 나귀가 필요한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한 번도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 새끼가 있을 것인데 그 나귀 새끼를 풀어라. 만약 누가 왜 이러냐고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대로 했습니다. 미심쩍었지만 그대로 순종했더니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났고, "주가 쓰시겠다" 하니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그 경험이, 며칠 전의 경험이 제자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경험과 상식의 수준을 뛰어넘는 주님의 말씀이지만 일단 한번 나가본 것입니다. 나가봤더니 남자가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것을 보았고, 그 사람 뒤를 따라가서 그 집 주인에게 말했더니 순조롭게 유월절 객실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순종의 결과와 의미

3-1. 기적이 상식이 되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주님과 함께 다니면서 이런 경험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번 매일같이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경험적인 일을,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상식을 넘어서는 일을 그들은 수없이 많이 경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났던 첫 번째 사건을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밤새도록 갈릴리 호숫가에서 그물을 던졌는데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물을 씻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 그런데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그들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입니다. 수십 년 동안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새벽녘 깊은 곳에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물을 던져 봐야 한 마리도 올라오지 않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랬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건져 올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첫 번째 만남입니다.

요한복음 2장,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 사흘 만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주님께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가득 채우라. 그리고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인들은 미심쩍었지만 그대로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경험, 이런 놀라운 경험들을 그들은 3년 내내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경험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일상을 넘어서는 기적이 그들에게는 상식이 되었고,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이 말씀이 주님 하신 말씀이 분명하다면 그들은 순종할 수 있는 결단의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 만나고 살아왔던 삶은 일상적인 생활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비상식적이고, 때로는 경험을 넘어서고, 우리의 일상을 넘어서는 일이지만 주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했더니 경험적인 놀라운 일이 많이 많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찬양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일상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구나" 우리는 기적을 많이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도입니다.

그런데 과거는 과거대로 기억의 저편으로 건너가 버리고,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운 일에는 주님의 말씀이 주어지면 순종하기가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한 번도 우리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경험과 상식을 뛰어넘는 말씀을 하실 때, 그때 순종하는 것이 진짜 제자이고 그때 순종하는 것이 진짜 믿음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어려운 시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제안을 들어보면 모두가 다 어두운 미래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그분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만 사실 우리는 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름지기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 말씀에 더 귀 기울여야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눈을 뜨고, 말씀에 마음을 열어야 됩니다. 말씀을 듣고 읽다 보면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말씀이 우리 심령에 임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그때 순종해야 됩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하시면 그 길을 따라가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했습니다. 그들은 430년 동안 이집트 바깥을 나가 보지 못했습니다. 종으로,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킵니다. 출애굽시키면서 주신 말씀 한 절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그들은 40년 동안 붙들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여기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너희들 한 번도 광야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내가 앞서 가마. 너희들은 내 뒤만 따라오너라. 내 뒤만 따라오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광야 길을 승리하고 극복하고 넘어가게 될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뒤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웬걸, 그 앞에 바다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홍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따라오라 해서 갔더니 바다가 있습니다.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 바다를 여셨습니다. 마른땅같이 이스라엘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사막의 길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만 사막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목이 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배고플 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따라오라 하신 그 길을 따라가니 역사가 일어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려운 시대를 겪으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면서, 이 나라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우왕좌왕합니다. 전 세계의 정부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해야 될지,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는 이때 기도하고 엎드리고 말씀 앞에 더욱 간절하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정도, 학교도, 모든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이끄시면, 지금까지 경험한 경험을 뛰어넘고 상식을 뛰어넘는다 하더라도 그 길을 걸어가면 그 길 끝에 구원과 승리의 길이 함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2. 순종하지 않으면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여기서 상상을 해보면, 만약에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유월절 객실을 준비하라는 이 말씀을 거부했다면, 그러면 제자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유월절 음식을 먹을 장소를 구해야 됩니다. 과연 구했을까요? 과연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 13명이 먹을 수 있을 만큼 넓은 장소를 구할 수 있었을까요? 구했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만큼의 그 장소를, 그 훌륭한 장소를 구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 하인들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쳐버렸다면 그들은 두 손에 양동이를 들고 포도주를 구하러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처럼 양이나 질이나 훌륭한 포도주를 구할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그다음 책임은 내가 져야 됩니다. 순종하지 않고 그다음 책임을 내가 져야 되면 그때는 고난의 가시밭길이 시작됩니다. 어려운 길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내가 다한다고 보장도 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 순종했는데 기근이 그 땅에 닥쳤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묻지도 않습니다. 상의하지 않습니다. 곧장 이집트로 도주해 버렸습니다. 이건 마치 훈련병들이 담을 넘어서 탈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소에 있으면 먹는 것, 입는 것 군부대에서 다 책임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나가버리면 그다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져야 됩니다. 고난의 가시밭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때부터 당했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 아내를 지켜야 됩니다. 아내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빼앗길까 봐 겁이 납니다. 그래서 거짓말했습니다. 누이라고. 그런데 걱정이 현실이 됩니다.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아내를 빼앗깁니다. 우여곡절 끝에 극복하고 돌아왔지만 상처만 잔뜩 남았던 이집트 여행이었습니다. 이렇듯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결국은 손해는 내가 보는 것이고, 고난의 가시밭길은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는 순종했는데 왜 기근이 올까?" 그러나 그 기근도 하나님의 약속 안의 하나님의 훈련 프로그램임을 깨닫고, 경험과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만 했습니다.

오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기껏 살아봐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연약한 인생입니다. 우리의 경험과 내 상식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보다 우리가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시면 그건 나를 위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순종하기 힘든데, 순종하고 따라가 보면 결국은 그 순종의 끝은 나를 잘 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4. 헌신하는 삶

4-1. 무명의 성도

우리가 오늘 이 말씀에서 또 한 가지 기억해야 될 것은 여기에 숨어 있는 한 무명의, 이름 없는 성도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방을 온전히 제공한 한 사람의 성도입니다. 그분은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유대 종교 권력, 유대 권력자들에게 낙인찍혀 있었던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방을, 유월절 객실을 열어서 제공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할 수 있도록 온전히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공간을 제공해 드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람들은 그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예수님과 깊은 관계였을 것이다, 아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 때마다 그분의 집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물동이를 들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라. 그가 들어가는 곳이 어디든지 그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서 준비된 객실을 줄 것이다"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집이 어딘지 이미 작정해 놓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사람과 어떤 관계에 있던지,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헌신입니다. 초대 교회에는 이런 분들의 헌신과 수고로 인해서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져 갔습니다.

4-2. 마음을 여는 헌신

헌신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4절과 15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두아디라 시에서 온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빌립보 성에서 바울이 첫 번째로 복음을 전한 사람이 루디아라 이름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색 옷감을 파는 여인입니다. 그분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이전에 섬기던 우상과 잡스러운 것들이 다 사라집니다. 그랬더니 이제 주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바울과 그의 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초대했습니다. 그 집이 빌립보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로부터 빌립보가 성장하고 발전해 나갑니다. 그 이후로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빌립보 교회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열려 있고, 마음이 깨끗하게 정결하게 되어져 있어야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찾아오셔서 "내가 오늘부터 너 마음에 들어가서 거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니까 마음속에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탐욕도 있고, 욕심도 있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내 마음에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 오늘은 안 되겠는데요. 제가 이것부터 정리해야 되니까 다음에 다시 오십시오" 하고 주님을 내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마음은 항상 깨끗하고 정결하게 비워야 됩니다. 영적인 안테나가, 신앙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여, 주님의 말씀을 향하여 항상 방향이 올바르게 지워져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오셔서 "내가 너에게 헌신을 원한다, 내가 너 마음에 좀 들어가겠구나, 네 필요한 공간을 좀 쓰겠구나" 하시면 "언제든지 사용하십시오" 하고 내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 사람이, 주님께 유월절 객실을 제공한 이 사람이 외부에서 온 손님을 받기 위해서 그 자리를 이미 예약해서 드렸다면, 만약 그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면, 예수님과 일행이 싫어서 주님의 일행을 거부했다면, 주님은 유월절 객실을 구할 수 없었고 그분의 이 위대한 헌신의 사역이 성경에 기록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불행한 일은 성경의 도처에 나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뱃속에 넣고 해산할 때가 다가옵니다. 호적하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갔습니다. 이제 곧 배에서 아기가 나오려고 합니다. 모든 여관집을 다 두드렸지만 "방이 없다"는 말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그 뱃속에 있는 아이가 이사야 선지자가 700여 년 전부터 예언했던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빈방이 과연 없었을까요? 방을 비워 놓고, 집을 통째로 비워 놓고서라도 "메시아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고 영접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은 우리에게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실지 모릅니다. 그때 우리 마음이 주님을 향하여 열려 있어야 됩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을 향하여, 주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향하여 방향이 지워져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헌신할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연약하고 죄 많은 존재를 하나님은 동역자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으시는 자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시는데, 하나는 순종이요, 또 하나는 헌신입니다. 순종은 때로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결국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헌신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귀한 상급을 쌓는 것입니다. 부디 주님이 원하시는 순종과 하나님이 바라시는 헌신을 마음껏 드려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훌륭한 믿음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의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는 말씀이 임하면 몹시 부담스럽습니다. "못하겠습니다" 거부할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보니 이 모든 것이 주님을 실망시키는 죄악이었음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모든 모습을 아시고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실 때 그 순종에 화답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을 비워 두고 우리의 생각을 주님께 집중시켜서 헌신을 요구하실 때마다 헌신하고 결단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귀한 승리와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받는 믿음의 백성으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고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 모를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며 헌신하며 길을 찾는 믿음의 백성으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