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막 15:16-22)
1. 우연 속에 숨은 필연
영어 단어 가운데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뜻밖의 결과로 마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렌디피티는 주로 과학적 발견에서 사용됩니다. 인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질병 중 하나가 천연두였는데, 이 천연두가 극복되는 과정이 바로 세렌디피티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천연두는 16세기에 아스텍 문명과 잉카 문명을 한꺼번에 멸망시킬 만큼 굉장한 파괴력과 전염성을 가졌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도 천연두가 심각한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영국에 살고 있던 의사 제너에 의해 이 천연두가 극복됩니다. 제너가 살고 있던 마을에도 천연두가 엄습했고, 어른부터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전염되어 사람들은 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젖을 짜는 여자아이들은 천연두에서 자유로웠습니다. 의사 제너는 이 현상에 주목했고, 소젖을 짜는 여자아이들을 더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소에게 있는 우두균에 대한 면역을 그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천연두에 면역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의사 제너는 우두균을 건강한 사람에게 주사했고, 결국 백신을 얻게 되었으며, 동시에 건강한 사람들이 천연두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1796년 영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 이후로 라틴어에서 소를 가리키는 바카(vacca)라는 단어가 영어 백신(vaccine)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우연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요, 아니면 필연일까요? 파스퇴르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 맞는 말입니다. 제너가 천연두를 극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연구하고 애쓰고 노력하며 발견하려고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소젖 짜는 여자아이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연구가 시작되어 종두법이 발견된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 가운데 마치 우연처럼 보이는 일이 굉장히 많은데, 사실은 필연으로 다가오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이러한데 하나님께서는 더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베풀어 주시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우연적인 요소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밀하게 간섭하시고 돌보시며 하나님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사람은 미련하고 또 연약해서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우연이라고 치부해서 그렇지, 하나님은 우리 삶을 살피시고 보호하셔서 세밀하게 간섭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희롱당하신 예수님을 살펴볼 것이고, 구레네 사람 시몬이 마치 우연처럼 십자가를 진 것을 볼 것입니다. 하지만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섬세하고 세밀하신 간섭하심이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지난날 살아오던 삶의 현장에도, 앞으로도 있게 될 것을 기대하시고 소망하시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희롱당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관저에서 재판받으시고 빌라도의 법정에 서셨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는 정의에 의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군중들의 목소리가 이겼습니다.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이 소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은 빌라도에 의해서 판결받고 군중들에게 넘겨지셨습니다. 주님은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 형장으로 끌려가십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절차가 더 남아 있었습니다. 정치범들에게 주어지는 형벌, 곧 군인들이 정치범인 예수님을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운데 세워놓고 수많은 사람들과 군인들이 둘러싸서 예수님을 희롱하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더 이상 이 공동체에 반역자나 정치범이 나타나지 않기를 원하는 그들의 속셈에 있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브라이도리온(Πραιτώριον)은 빌라도의 관저 뜰입니다. 넓은 광장인 이곳에 온 군대를 모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 군대는 빌라도의 관저를 지키는 군인들을 말합니다. 많을 때는 600여 명 정도가 있었고, 적을 때는 약 200여 명 정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는 사건이 사건인지라, 예수님을 처형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군인들, 약 600여 명의 군인들이 다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인파로 가득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운데 세워놓고 희롱하기 시작합니다.
2-1. 자색 옷과 가시관
17절 말씀입니다.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자색 옷은 그 당시 로마 황실의 가족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리고 유대의 왕족들에게 입히는 옷입니다. 이 자색 옷에 대해서 로마 황제들은 굉장히 민감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네로 황제가 특별히 더했는데, 원형경기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다가 저쪽 반대편에 누군가가 자색 옷을 입고 있으면 군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리고, 옷을 벗기고, 때렸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몰수해버렸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목숨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감히 네가 자색 옷을 입느냐" 하는 형벌인 것입니다. 그만큼 유대나 로마 황실에서는 자색 옷이 가지고 있는 색깔의 의미가 굉장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혔을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내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래, 네가 유대인의 왕이면 여기 자색 옷을 입어라" 하고 입혀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웁니다. 가시가 이마를 찌릅니다. 피가 흘러내립니다. 그 피가 자색 옷을 적십니다. 선혈이 낭자하게 그 피가 그 옷에서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나서 이들은 예수님을 무릎 꿇리고 그 앞에 자기들이 무릎을 꿇고 경배합니다. 갈대로 막대기를 만들어서 예수님을 때립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합니다. 침을 뱉습니다. 각종 모욕적인 언사를 다 쏟아냅니다. 서로 웃고 낄낄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러고는 다시 예수님이 입고 계시던 자색 옷을 벗깁니다. 원래 예수님이 입고 계셨던 옷을 다시 입힙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들의 행위가 지금 여기 단 한 번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수없이 많이 이런 행위를 한 것처럼 자색 옷도 가져오고, 갈대 지팡이도 가져오고, 가시관도 머리에 씌우고, 침을 뱉고, 마치 기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들은 이런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치범을 처형할 때마다 이런 일을 수없이 많이 반복했기 때문에 죄의식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2. 로마 군인들의 죄
그런데 여기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로마 군인들도 가정에 돌아가면 한 가정의 자녀들의 아버지입니다. 한 여인의 남편입니다. 훌륭한 가장입니다. 아마 이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문제의식 없이, "나는 공무원으로 공무를 집행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를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당신 왜 이렇게 악한 일을 했습니까? 왜 이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조롱하고 예수님에게 각종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나는 다만 국가에 충성하고 우리 가족, 자녀들을 먹고 살리기 위해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사람들은 그렇게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로마 군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이 사람은 나치의 장교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나치가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 이 사람이 맡았던 보직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로 수송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주변에 자랑 삼아 했던 말이, "내가 아마 아우슈비츠로 실어 나른 유대인만 하더라도 500만 명이 넘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나치가 패망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름을 바꿉니다. 얼굴을 변장합니다. 이탈리아를 거쳐서 아르헨티나로 도주해서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의해서 발각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끌려왔습니다. 1961년 유명한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 재판을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이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기록한 책이 유명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재판이었다고. 왜냐하면, 한나 아렌트는 그 악명 높은 아이히만을 보기 전에 상상을 했습니다. 아주 무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재판 내내 목소리 높이고 소리 지르고 자기는 죄가 없다고 소리 지를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왠걸요? 재판장에서 만났던 아이히만은 우리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이 든 노인에 불과했습니다. 평범한 아저씨였습니다. 늙고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무지막지한 일을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선량한 목소리로 자신을 항변합니다.
변호사를 통해서, 그리고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죄가 없습니다. 나는 군인이었고 공무원이었습니다. 죄가 있다면 독일이 죄가 있는 것이고, 죄가 있다면 나치와 히틀러가 죄가 있는 것이지,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만약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들 먹여 살릴 수가 없으니까 저는 공무를 수행했을 뿐이지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무죄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그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962년 그는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로마 군인이나 아이히만을 누구나 보아도 죄 없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조직이라는 것을 가지고 면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몸담고 있었을 뿐이지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죄짓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뒤에 숨는다고 해서 죄가 가려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로마 군인들, 누가 죄 없다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히만, 누가 그를 무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서 있고 행동하고 말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모든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혹은 하나님과 원수 된 일인지 항상 우리 자신을 깨어 살피고 돌아보는 믿음과 능력과 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말씀을 이루신 예수님
또 한 가지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 자리에서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이 모진 고난과 수치와 모욕을 다 온몸으로 받아내셨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사야 50장 6절 말씀입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7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 말씀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온몸의 고통을 받으시고 고난 받으시고 수치와 모욕을 받으셨지만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예수께서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더라" 이런 말씀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이 땅에서 하신 모든 일은 말씀을 그대로 이루려 하신 일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하는 말은 예수께서 율법을 하나도 어김없이 다 실천하시고 이루어내셨다는 뜻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바로 우리를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이 율법은 타락한 우리 인간은 결코 다 지켜 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율법을 지키려고 해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무너지고 또 무너집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죄를 짓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율법을 지키시고 하나도 어김없이 다 실천하시고 이루신 예수 안에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율법을 다 지킨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내가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다 지키시고 십자가 지신 예수님 한 분 붙들고 의지해서 예수님 등에 타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 지시고 모든 율법을 다 지켜 행하셨습니다.
4. 억지로 진 십자가
이제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향해서 올라가셔야 됩니다. 그런데 로마 군인들이 볼 때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주님은 이미 채찍질을 심하게 당하셨습니다. 피를 많이 흘리셨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치와 모욕을 다 견디셨습니다. 밤새도록 재판받느라 한잠도 주무시지 못하셨습니다. 이 상태에서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시다가 탈진해서 길에서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됩니다. 그전에 죽어버리면 책임 소재가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군중들 중에 한 사람을 찾기로 했습니다.
4-1. 마침 그 자리에
21절 말씀입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로마 군인의 눈과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눈빛이 마주쳤습니다. 군인이 이리 오라고 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어영부영 끌려갑니다.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살펴봐야 할 것,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마침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라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만 보면 우연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하필 그 자리에 있어서, 하필 시골에서부터 와서 그 자리에 있어서, 하필 로마 군인과 눈이 마주쳐서 거절할 수 없어서 십자가를 지고 간 구레네 사람 시몬.
그런데 그는 왜 시골에서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을까요? 그는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구레네는 오늘의 리비아입니다. 그 먼 곳에서부터 이곳에 온 이유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순례자의 한 사람으로 왔습니다. 그가 모든 명절을 다 지켰는지 아니면 돈을 모아서 몇 년에 한 번 이 자리에 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경건한 신앙인으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올라와 보니 십자가형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구경하러 왔습니다. 어떤 형벌인지 시골로부터 와서 그 일을 한번 보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서 로마 군인과 눈이 마주쳐서 십자가를 져야만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 일진이 사납구나. 내가 왜 하필 그 자리에 있어서, 한 발짝만 뒤로 물러가 있었으면 눈이 마주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면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갑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앞에는 예수께서 걸어갑니다. 길 가다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넘어지면 채찍질 당하고 갈대 지팡이로 때리고, 군인들은 침을 뱉고 각종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냅니다. 그때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생각합니다.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모진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가?' 어머니처럼 보이는 여인이 옆에서 통곡합니다. 많은 따르는 여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슬퍼합니다. 반대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교차하는 무리들과 함께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깊이 생각합니다. 그 잔상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분이 어떤 분인지. 그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4-2. 구원받은 가정
로마서 16장 13절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 루포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그의 어머니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가리켜 바울은 나의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정이 다 구원받았습니다. 그 가정이 로마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내 어머니라고 말할 만큼 바울과 친밀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어찌 놀라운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가가 이 마가복음을 기록하면서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소개하는 것으로 봐서 초대교회 공동체에 이미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문은 유명한 가문이 되었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믿음과 복음의 역사가 그 가정을 구원했고, 그 가정의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성령으로 믿음 생활을 잘 해나가는 구원받은 믿음의 식구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찌 우연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침 시골에서 와서 지나가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했는데",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우연으로 보이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필연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세심하게 그를 그 자리에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누구나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조차도 게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하지 않으셨습니까? 십자가는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연을 가장해서 십자가를 우리에게 피할 수 없도록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이 억지로 진 십자가의 능력이 자신과 아내와 자녀들과 가정을 구원하고, 오고 오는 모든 자손들에게 한량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물할 수 있는 그 놀라운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택이라고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가 있다면 수용하고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피할 수 없는 십자가를 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선물이구나, 이 억지로 진 십자가를 내가 지고 가면 하나님께서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과 자손과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한량없는 복을 주시는 그 축복의 열쇠가 되겠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억지로 진 십자가는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임을 깨닫고 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 베드로가 빠진 자리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자리가 원래 누구 자리냐 하는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는데, 원래 이 자리는 베드로의 자리입니다. 베드로가 도망만 가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의 수제자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길에 "주님, 제가 대신 지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매 맞고 쓰러져 계신데, 제가 대신 지겠습니다" 하고 베드로가 대신 지고 가야 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지금 없습니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이 자리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빠진 그 자리, 하나님께서는 마치 우연처럼 한 사람, 구레네 사람 시몬을 준비하시고 그 자리에 데려다 놓으시고, 시몬을 통해서 그 십자가를 지고 가게끔 하셨습니다. 기억하셔야 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결코 없습니다. 누군가가 십자가를 내팽개치고 도망가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우연처럼 또 다른 사람을 준비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해서 움직여 가고 발전해 나갑니다. 하나님의 일은 원래 그렇게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그들의 형편을 움직여 주셔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아니면 시몬을 통해서, 구레네 사람 시몬을 통해서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그의 가문이 구원받고 초대교회의 유명한 가문이 되도록 만들어 가셨습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 인생에도 그대로 부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에게 포기할 수 없는 십자가,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구나' 하고 감사로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무심코 서 있는 이 자리가 죄 지을 수 있는 자리라는 사실도 기억하시고, 깨어서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살아가시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마침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다가 십자가를 지게 된 구레네 사람 시몬이 그 십자가 덕분에 그의 아내와 자녀들과 온 가정과 오고 오는 모든 자손들이 구원받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 맡겨주신 억지로 진 십자가, 불평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십자가를 버리고 도망가 버리면 그 자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사실도 깨닫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 감사로 받아내는 믿음의 백성으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로마 군인들처럼, 아이히만처럼 우리가 있는 그 자리가 죄짓는 자리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우리가 하는 말과 행위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가 되도록 우리가 깨어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