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비유-2 / 불의한 청지기 (눅16:1-13)

불의한 청지기

본문: 누가복음 16:1-13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살펴보면,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공자(孔子)는 이 말을 무척 좋아했고, 실제로 생활에 옮기며 살았습니다. 공자가 이 덕목을 생활에 옮기면서 일어난 사건이 하나 있는데, 그 사건이 고사를 이루었습니다. '공자천주(孔子穿珠)'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말 그대로 읽어 보면 '공자가 구슬을 꿰다'라는 뜻입니다.

어느 날 공자에게 어떤 사람이 크고 귀한 구슬을 가져와 선물했습니다. 그 구슬에는 양쪽으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구멍은 중간이 뚫려 있는 직선 구멍이 아닙니다. 아홉 구비로 굽어 있습니다. 실을 꿸 수 있으면 한번 꿰어 보십시오." 공자가 아무리 실을 꿰려 해도 구불구불한 구멍에 실을 넣으면 반대편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바느질을 잘하는 아낙에게 가서 물어볼까 하고 한 아낙네를 찾아갔습니다. "자네, 이 구슬에 실을 어떻게 꿰면 좋겠나?" 아낙네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천천히 말했습니다. "꿀을 생각하십시오." 처음에는 수수께끼 같은 말인가 했는데, 마침 그때 공자의 발 아래로 개미가 지나갔습니다. 무릎을 탁 쳤습니다. 개미를 잡고 개미 허리에 실을 묶은 뒤, 한쪽 구멍으로 집어넣고 반대편 구멍에 꿀을 발랐습니다. 개미는 꿀 냄새를 따라 아홉 구비를 지나 반대편으로 나왔고, 실을 쉽게 꿸 수 있었습니다. 공자는 항상 자신의 지식을 확장하기 위해 누구에게든지 묻고 또 묻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흔히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롭지 않은 청지기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이처럼 악한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의 아들들인 우리보다 한 치라도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주님은 왜 이 사람을 칭찬하셨고, 우리가 무엇을 이 사람에게 배워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주인의 이름을 높인 지혜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눅 16:1)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재산을 쓸 수 없으며,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대가로 급여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해 버렸습니다. 여기서 '낭비하다'라는 뜻으로 쓰인 헬라어 '디아스코르피조(diaskorpizo)'는 '공중에 산산이 흩어 버리다'라는 뜻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공중에 산산이 흩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형사소송법상 횡령과 배임에 해당하는 큰 범죄입니다. 횡령은 타인의 재산을 맡아 가지고 있다가 자기가 가져가는 것을 말하며, 배임은 타인의 사무를 공적으로 대리하다가 거기서 생겨난 재산상의 이익을 자기가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청지기는 이 두 가지 죄를 한꺼번에 저질렀습니다. 주인의 재산이지 자기 재산이 아닌데,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공중에 흩어 버렸으니 횡령죄를 범한 것입니다. 또한 공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며 차용증을 만들고 주고받는 일을 하다가 생겨난 이익을 자기 마음대로 편취했으니 배임죄까지 저질렀습니다. 당장 감옥에 가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면, 큰 부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청지기를 고용해서 재산 관리를 맡겨야 할 만큼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또한 재산이 공중에 산산이 흩어지고 있는데도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 전해 듣고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기 때문에 새나가는 줄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알게 된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주인이 청지기를 불렀습니다.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눅 16:2)

'셈하라'는 여기서 '계산하다'가 아니라 '아포디도미(apodidomi)', 곧 '넘겨주다', '이양하다'라는 뜻입니다. 다른 청지기를 찾아볼 테니 그때까지 일을 정리하라는 것이니, 사실상 해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보면 주인의 인품이 드러납니다. 당장 감옥에 집어넣어도 시원찮을 판에, 청지기를 배려해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했기 때문에 청지기가 체면을 잃지 않도록 감옥에 넣지 않고, 조용히 일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인품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또한 이 대목에서 청지기가 이 일을 오래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부를 정리하고 뒷사람에게 인수인계가 필요할 만큼, 이 사람은 오랫동안 이 집에서 일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횡령하고 배임해서 가져간 돈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제 이 사람은 큰일이 났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지 걱정이 됩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눅 16:3)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지금 가진 재산이 한 푼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돈을 가져갔는데, 써 버렸는지 투자했다가 사고를 당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랫동안 책상 앞에 앉아 펜대만 굴렸으니 어떻게 땅을 파고 일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체면을 생각하면 남에게 빌어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수를 생각해 냈고, 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눅 16:5-7)

어마어마한 일을 벌인 것입니다. 가중처벌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주인은 돈이 많은 부자이니, 인근 각처에서 이 부자에게 신세 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차용증을 쓰고 돈을 빌리고 물품을 빌려 갔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일일이 불렀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두 사람만 기록하고 있는데, 기름 백 말을 빌려간 사람에게는 오십이라 쓰라 했고, 밀 백 석을 빌려간 사람에게는 팔십이라 고쳐 쓰라 했습니다.

만약 이 일이 발각되면 앞의 일까지 더해서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주인이 선처를 베풀어 감옥에 넣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한데, 이처럼 무시무시한 일을 벌인 것입니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주인의 반응입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눅 16:8)

칭찬을 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법을 어긴 사람이며, 도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 사람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이 사람을 칭찬한 첫 번째 이유는, 이 사람이 주인의 이름을 영화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빚을 감면해 주었고, 때로는 탕감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은 청지기가 해고당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인은 조용히 일을 마무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누구에게 감사하겠습니까. 당연히 주인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주인이 참 선한 사람이구나. 돈만 많은 부자인 줄 알았는데, 구두쇠가 아니었구나. 우리가 어려운 줄 알고 빚을 줄여 주고 탕감해 주시다니." 동네방네에 주인의 이름을 높이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주인이 동네에 나가면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습니다. 그런 인사를 한두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상황을 살피고 파악해 보니 청지기가 벌인 일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그 상황에서 화를 내며 "이 일은 무효다, 오십이라 쓴 것은 다시 백이라 고쳐 쓰고, 팔십이라 쓴 것도 다시 백이라 고쳐 써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래 줬다 뺏는 것이 가장 기분 나쁜 법입니다. 사람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그 주인은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청지기가 오랜 세월 동안 재산을 공중에 산산이 흩어 버릴 때도 몰랐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이 돈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돈이었습니다. 오히려 이 돈으로 자신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그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온 동네방네에 그를 칭찬하는 소리가 자자했습니다. 이제 와서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아끼던 청지기에게, 자기 집안 사람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지만, 그 일로 그는 오히려 자기 이름에 영광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이 존귀하게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핵심인 십계명, 그 세 번째 계명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것입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 20:7)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망령되게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런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곧 반드시 벌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히 여기고 찬양하는 자,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 이름에 영광을 올려 드리는 자를 하나님은 복 주시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골리앗(Goliath)과의 전투에 무엇을 가지고 나갔습니까. 사람들은 물맷돌을 갖추고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간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골리앗과 맞서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굽어보고 계셨습니다. 소년 다윗이 무장하지 않은 채 물맷돌만 가지고 거대한 용사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돕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자리에 개입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세상의 악한 권세와 맞서 싸우면, 하나님은 그 자리에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크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이기 때문에,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다윗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 전쟁에 개입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이 경험을 귀하게 여기며 시편에 기록했습니다. 주의 이름이 얼마나 존귀한지, 바울도 하나님의 이름이 구원을 주시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나의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가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시 61:5)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기업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이름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는 이름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이름입니다. 주의 이름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먹고살 길을 열어 주시며, 세상의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승리도 주십니다.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영광 받기를 기대하고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고 있습니까. 내 인생과 내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김을 받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첫머리에 이렇게 기도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기에 생략된 말이 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까요. 바로 나를 통해서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의 뜻은 기도한 대로 살아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이렇게 기도했으니, 너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예수 믿는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집 대문에 교회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항상 싸우는 소리가 흘러나갑니다. 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불법과 탈법을 일삼고 있습니다. 내 말이나 행동이나 하는 모든 행실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이제 사람들은 내가 믿는 하나님을 욕할 것입니다. "저 사람이 예수 믿는데, 저 가정이 교회 다니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고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깎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때문에 불의한 청지기가 이 시대의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도 자기 주인의 이름을 존귀하게 했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삶을 통해서, 말이나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기뻐하시고, 그런 인생을 복 주십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습니다. 청지기는 자기 돈으로 주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돈으로 주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 것입니다. 자기 돈은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 말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원래부터 내 것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날 때 양손에 아무것도 쥐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적신으로, 맨몸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능을 주시고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좋은 가정을 주시고, 좋은 부모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주시고, 이 나라 이 민족, 대한민국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살고 있습니다. 집도 있고, 자녀도 있고, 일터도 있고, 옷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무것도 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내 것으로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는데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드릴 때도, 달란트를 드릴 때도, 시간을 드릴 때도, 건강을 드릴 때도,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는데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를 보십시오. 쫓겨나기 전에는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원래 주인의 것인데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대로 횡령하고 배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쫓겨날 지경이 되니까, 벼랑 끝에 딱 서게 되니까, 이제는 다 내놓아야 합니다.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족하게 해 주실 때,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내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청지기처럼 우리도 공중에 흩어 버리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원래 내 것이 아니었는데, 내 물질을 내 마음대로 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내 건강도, 내 마음대로 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서서 쫓겨날 지경이 되어서야 "이것이 내 것이 아니었구나, 하나님의 것이었구나" 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마시고, 지금부터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하시고, 주의 이름을 높이는 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음껏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가득 채우고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물질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하나님으로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시는 이유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눅 16:9)

주인이, 곧 예수님께서 청지기를 칭찬하시는 두 번째 이유는 관점을 물질에서 사람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사람은 목표가 돈이었습니다. 돈만 최고였습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위기에 딱 처하게 되자, 이제는 사람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사람을 얻으면 적어도 내가 쫓겨났을 때 이 사람들이 나를 영접해 주겠지, 나를 살려 주고 도와주겠지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관점과 방향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생 이것만 먹고 살았는데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청지기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칭찬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물도 사라지는 것이고, 사람도 결국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재물의 특징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9절을 다시 살펴보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라고 했습니다. 재물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없어질 때에.' 재물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돈은 물 흘러가듯 우리 손에서 빠져나갑니다. 아무리 많이 있어도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물을 손에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모래를 언제까지나 움켜쥐고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물질은 다 사라지고 다 빠져나갑니다.

청지기가 열심히 횡령하고 열심히 배임했지만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은 다를까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물질이 있을 때, 권세가 있을 때는 입에 침이 마르게 함께하겠다던 사람도 떠나가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이 불의한 청지기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하고 싶으신 핵심 말씀을 13절에서 들려주십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 16:13)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고 싶으셨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예수님은 똑같은 말씀을 마태복음 6장 24절 산상수훈에서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역으로 풀이하면, 재물이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올라가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시대도 그렇고 오늘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돈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합니다. 범죄도 하고, 양심도 팝니다. 재물이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아 보면 물질은 금방 사라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영원히 존재하시며, 영원히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우리에게 삶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십니다.

우리가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물질만 쫓아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 살면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물질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이집트(Egypt)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40년을 훈련시키시면서 한 가지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 16:4)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하늘에서'입니다.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렸습니다. 얼마 동안이었습니까. 40년 동안 매일 빠짐없이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늘에서 내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면서 노예로 살았기에, 내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벌어 먹고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열심히 건강하게 일하면 내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말미암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틀렸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물질, 먹고사는 것은 내가 버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날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훈련하신 이유입니다.

물질은 내가 버는 것입니까,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한 가지를 훈련시키십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첫 번째로 만나는 성이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가나안 땅 40여 개의 성읍 가운데 가장 강하고 가장 큰 성이었습니다. 그 성을 정복할 때 하나님은 특별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헤렘(herem), 곧 진멸 명령이었습니다. 전리품을 다 가져와서 하나님의 곳간에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전쟁에서는 전리품을 승전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독 가나안 땅 첫 번째 성 여리고성에서는 하나님께 다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은 그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명령에 불순종한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습니다. 아간(Achan)입니다. 아간은 전리품을 자기 장막 밑에 숨겼습니다. 보물에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상 숭배자였기 때문입니다. 도둑질한 사람이 어떻게 우상 숭배자가 되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골 3:5-6)

여러 죄 가운데 탐심은 곧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가장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아간이 돌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과 재물, 누구를 섬기시겠습니까. 하나님을 통해서 재물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시는 말씀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통해서 물질이 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도 자기 주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빛의 아들들인 우리는 그보다 더 깊은 지혜로, 우리의 삶과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려야 합니다. 물질은 언제나 사라지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드려진 것은 영원히 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 비유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 말씀대로 한 주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불의한 청지기에게서 배웁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이름을 영화롭게 했는데, 우리는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과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주여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만 섬기게 하시고, 하나님을 통하여 받는 재물이 가장 값지고 귀하고 보람 있는 재물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주 안에서 승리하는 인생 되도록 도우시고, 언제나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