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비유-5 / 가라지 비유 (마13:24-30)

가라지 비유

본문: 마태복음 13:24-30

결벽증(mysophobia)이라는 말은 1879년 윌리엄 알렉산더 해먼드(William Alexander Hammond)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신경학자였던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환자가 다른 환자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 환자는 지나치게 예민했고, 세균 감염을 늘 걱정했으며,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손을 씻어댔습니다. 해먼드는 이 환자를 관찰한 끝에 그 증상에 '결벽증'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결벽증은 정신 병리학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오히려 강박증이 정신 병리학에 더 가까운 용어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강박증을 광범위하게 안고 살아갑니다. 강박이란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꾸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고 어떤 행동에 예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밖에 나와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갑자기 집에 가스불을 켜두고 왔는지 끄고 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한두 번 그런 것이 아니라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집에 가서 확인해 봐야 비로소 안심이 됩니다. 문단속을 했는지 열어두고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집에 가서 확인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집에서 마트까지 가는 길이 대여섯 갈래가 있는데 꼭 한 가지 길로만 가야 마음이 편안합니다. 다른 길로 가면 불행한 일이 생길 것 같고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강박입니다. 그런데 이런 강박은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폭넓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분이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면 응답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큰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는데도 기도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음에 강박이 생깁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가 어디서부터 틀린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더 자극적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려 합니다. 전 재산을 바치든지, 힘에 겹도록 시간을 들여서 봉사하든지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믿음의 강박일 뿐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다 알고 계십니다. 전 재산을 들이지 않아도, 삶에 지나친 무리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이해하시고 용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다 알고 헤아리시고 이해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신 내용입니다. 천국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종의 결벽증과 강박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천국에 대한 개념이 더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천국, 예수 그리스도 자신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 13:24)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규명해야 합니다. 첫째는 좋은 씨가 무엇인가, 둘째는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직접 해설해 주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 13:37-38)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며, 좋은 씨를 세상이라는 밭에 뿌리는 이는 바로 인자,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천국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천국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천국을 고정된 장소로 생각해 왔습니다. 죽어서 가는 곳, 이 땅에서 수고하고 땀 흘리고 피 흘린 이후에 세상을 떠나서 안식하는 그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땅에서 눈 감으면 바로 눈 뜨는 그곳이 천국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물론 이 말씀도 맞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만이 천국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의 개념을 확장시키셨는데, 천국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이시라면 주님께서 이 땅에서 겪고 경험하신 모든 일도 천국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서 겪으신 대부분의 일은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천국의 일부분으로 수용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떤 고난을 겪으셨습니까? 대적자들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율법학자, 대제사장,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하여 가신 그 길은 참혹하고 비참하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채찍에 몸이 맞아 살이 뜯겨 나가고 뼈가 드러났습니다. 십자가에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이 찔렸습니다. 온몸의 물과 피를 다 쏟아내셨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적인 고난도 깊이 겪으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까지 철저하게 배신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을 우리는 천국이라고 수용할 수 있겠습니까? 간혹 우리는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지옥 같은 세상이다. 이 악하고 험한 세상, 이렇게 힘겨운 세상을 빨리 하직하고 싶다. 이제 이 세상 떠나서 저 천국에서 눈뜨고 싶다.' 그런데 예수님이 천국이시라면 주님께서 겪으신 고난도 천국의 일부분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지키기 위해, 말씀 한 절 한 절을 따르고 순종하고 지키기 위해 겪는 고난은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천국의 한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명의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겪는 고난도 역시 천국의 한 부분이 됩니다. 물론 여기서 고난과 고생은 구별하셔야 합니다. 고생은 예수님과 상관없이 나 자신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입니다. 술을 과도하게 마시는 사람은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거짓말을 일삼으면 인간관계가 꼬이고 얽힐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고난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고생입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십자가와도 상관없고, 예수님과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을 고난이라고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고난은 예수님과 함께 주의 말씀을 따르고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면서 겪는 길 위의 모든 사건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천국에 대한 시각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 남편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이 필요합니까? 가정에 믿지 않는 식구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이 따릅니다. 믿음을 가진 한 며느리가 믿음이 없는 집에 시집옵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일가친척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 집안에서 며느리로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 믿음의 절개를 지키면서 그들을 회심시키고 변화시키면서 걸어간 그 길, 오직 한 길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며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고 구원으로 인도한 그 길은 참으로 값진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모든 과정이 다 천국의 한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면서 겪는 모든 십자가의 길은 천국의 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좋은 씨를 빚어내는 사명

그렇다면 천국 되신 예수님께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하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리셨습니다.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리는 일, 이것이 천국을 향한 가장 중요한 길이요 사명입니다.

예수님이 좋은 씨를 뿌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주님이 공생애 3년 동안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세상으로 파송하셨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처음부터 좋은 씨였겠습니까? 처음부터 천국의 아들들이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제멋대로였습니다. 좌충우돌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답게 성격이 불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열심당원도 있었습니다. 가슴에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세리 마태도 있었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을 예수님이 불러 모아서 훈련시키셨습니다. 말씀으로 훈련시키고, 가르치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둘씩 둘씩 짝지어서 파송해 보기도 하셨습니다. 전도도 가르치시고, 말씀도 가르치시고, 기도도 가르쳐서 그들을 천국의 아들로 빚어내셨습니다. 이것이 천국이신 예수님께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하신 일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가며 마음을 다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예수님처럼 사람을 길러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3년간 공생애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가서 제자 삼으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셨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하고 계십니까? 좋은 씨를 만들어서 세상에 보낸다는 이 말씀을 오해해서, 자녀들을 잘 길러서 좋은 옷 입히고, 좋은 학교 졸업시키고, 남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취직시켜서 시집 장가 보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다 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천국을 일구어 가기 위해 헌신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결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말씀으로 훈련시켜서 좋은 씨앗이 되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꾼으로 길러서 세상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도록 가르치고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도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단 1시간 교회학교에 자녀들을 맡겨놓고 부모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가정에서부터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고 길러서 세상으로 내보내셔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천국이 되려면 교회도 예수님처럼 믿음의 자녀들을, 믿음의 다음 세대들을 잘 길러서 훈련시켜서 세상으로 파송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비전센터 건축을 결의하고 설계 단계에 와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멋진 건물이 세워질 것입니다. 건물을 세우는 것은 물질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마음을 모아서 헌금하면 얼마든지 멋진 건물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건물이 세워지고 우리 믿음의 다음 세대들이 그곳에서 교육받고 훈련받는데, 말씀을 생명으로 알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면, 교회학교 교사들이 헌신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들에게 넣어주는 사람이 부족하다면, 건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처럼 천국이 되셔서 좋은 씨앗을 잘 길러서 세상으로 파송하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서 불길처럼 일어나야 합니다. 그때 이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참으로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천국을 만들어 가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가르치고, 한 영혼 한 영혼을 돌보고 양육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

예수님께서 이처럼 천국의 사명을, 사람을 가르쳐서 세상으로 보내는 사명을 감당하시면 사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마 13:25)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가버렸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원수는 누구입니까?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마 13:39)

가라지를 뿌리는 자는 사탄, 곧 마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탄의 특징은 하나님을 모방하고 따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입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신 분입니다. 사탄도 하나님처럼 성실합니다. 얼마나 성실한지, 사람을 시험할 때 한두 번 시험하고 그치는 법이 없습니다. 넘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시험합니다. 하나님은 열정이 있는 분이십니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신 분입니다. 사탄도 열정이 있습니다. '반드시 저 사람을 넘어뜨리고 말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달려듭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사탄도 대단히 똑똑합니다. 우리는 사탄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사탄은 교활합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나님을 따라 하면서도 이것만은 할 수 없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자신의 목숨을 버려 모든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손해 보지 않습니다. 사탄은 헌신하거나 희생하거나 대신 죽지 않습니다. 이 한 가지를 빼고 사탄은 하나님을 다 따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이 열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좋은 씨앗을 만들어서 세상에 뿌리셨습니다. 사탄도 하나님이 일할 때 함께 일합니다. 가라지를 뿌립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노아 시대를 보면, 예배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아담의 셋째 아들 셋의 후손들이 예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유혹하는 사람의 딸들이 있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의 역할은 예배 공동체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유혹해서 예배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복음 사역을 하실 때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차, 2차, 3차 전도여행에서 로마까지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복음 전도를 방해하는 악한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 세력은 오늘 이 시대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애를 써 보면 사탄도 함께 일합니다. 우리는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데, 전도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인데, 왜 이렇게 방해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하나님,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방해하는 세력이 많습니까?'

그러나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방해도 강하게 일어나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면 방해받을 일도 없습니다. 거꾸로 말해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사탄의 방해를 경험한 적이 없다면, 심각하게 우리의 믿음을 돌이켜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 일만 한 것입니다. 가만히 두어도 사망의 길로 걸어갈 자를 사탄이 왜 굳이 방해하겠습니까?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골라서 방해합니다.

알곡으로 자라가는 지혜

사탄이 가라지를 뿌렸는데, 그 가라지는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마 13:26)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지가 정체를 드러냅니다. 씨를 뿌렸던 종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좋은 씨앗을 뿌렸는데 가라지가 자라나니 주인에게 와서 묻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할까요? 뽑아버릴까요?" 우리 생각에는 뽑으면 간단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 13:28-29)

지혜로운 대답입니다. 같은 토양에서 가라지도 자라고 곡식도 자랍니다. 가라지가 뿌리 깊게 박혀 있으면 그것을 뽑다가 곡식까지 함께 뽑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곡식을 위해서 가라지를 가만히 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 가라지가 과연 없을까요? 교회에도 가라지가 있습니다. 세상에도 가라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에 가라지가 있다니, 우리는 깜짝 놀랍니다. 교회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좋은 사람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하나님 앞에 온전히 마음이 드려진 사람들만 오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도 사탄이 뿌려놓은 가라지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라지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듭니까? '하나님, 좀 뽑아주십시오. 저 사람들 때문에 믿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방해가 됩니다. 나의 영적인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하나님, 저 사람들 좀 거두어 주십시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라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곡식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만히 두라고 하십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 13:30)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셨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추수꾼들에게 명령하여 가라지는 먼저 잘라서 불에 넣어 사르고, 알곡은 모아서 하나님의 곳간에 넣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가라지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에너지를 빼앗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에게 신경 쓰느라 자신의 영적 성장을 방해받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충동질하고, 어렵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알곡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누구 손해입니까? 나만 손해입니다. 가라지는 가라지일 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그냥 버려두고, 우리는 알곡으로서 성실하게 자기 자신을 돌보셔야 합니다. 양분을 빨아들여서 성장하는 데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햇볕을 받고 튼튼한 알곡이 되어서 나중에 심판 날, 추수 때 주인께서 보시기에 정말 잘 영그는 알곡이구나 하실 수 있도록 좋은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가라지 신경 쓰느라 마음을 빼앗기고, 분노하고, 화가 나서 나의 영적 성장과 신앙의 성숙을 방해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은 다윗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 십수 년을 광야에서 쫓겨 다녔습니다. 다윗은 혼자 다닌 것이 아닙니다. 그와 함께한 사백여 명의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일행과 함께 부자들의 양과 짐승들을 돌봐주었습니다. 도적 떼의 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 준 것입니다. 나발이라는 사람도 부자였습니다. 나발의 양 떼와 소 떼, 염소 떼를 다윗의 일행이 돌봐주었고, 그 대가로 먹거리를 얻어서 생활했습니다. 호구지책으로 삼은 것입니다.

양털 깎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때는 잔치 날입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떡과 고기를 요청했습니다. 정당한 요청이었습니다. 그들을 돌봐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발이 다윗을 무시했습니다. '사울에게서 떠난 네가 누구냐? 내가 왜 너에게 먹거리를 주어야 하느냐?' 하며 다윗을 모욕했습니다. 다윗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사백 명을 거느리고 칼을 차고 말을 달려 나발의 목을 치기 위해 달려갑니다.

그때 다윗 앞에 멈춰 선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이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삼상 25:25)

아비가일이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십시오. 나발은 가라지 같은 사람인데, 이 불량한 자가 당신의 마음을 충동질하여 분노하게 해서, 당신의 고귀하고 정결한 손에 피를 묻힌들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다윗 당신은 앞으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야 할 분입니다. 그 귀한 손에 이 사람의 피까지 묻혀가며 왜 의미 없는 살육을 하려 하십니까? 이 길을 멈추십시오. 개의치 마십시오. 상관하지 마십시오. 이 사람은 생각조차 하지 마십시오.'

이 말을 듣고 다윗이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으로서 장차 이 나라의 왕이 되어야 할 사람인데, 가라지 같은 미련하고 불량한 나발 때문에 내 영혼이 휘둘리다니.' 다윗은 그 자리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 곳곳에도 가라지가 많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교회에도 있고, 일터에도 있고,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 가라지들이 있습니다. 가라지가 있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들에게 마음 쓰지 마시고, 마음 빼앗기지 마시고, 원수가 뿌린 가라지를 거두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시간에 하늘을 향하여 광합성을 하고, 땅을 향하여 양분을 섭취하여 훌륭한 알곡이 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심판 날에 주님의 곳간에 들어갈 알곡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천국은 예수님 자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고난도 천국의 한 부분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겪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천국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게 하옵소서. 천국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 세상에 뿌리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우리 가정에 사랑하는 자녀들을 좋은 씨앗으로 성장시켜 세상이라는 밭에 뿌리는 믿음의 부모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에서 자라나는 어린 생명들, 그들을 잘 길러서 세상이라는 밭에 뿌리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가라지가 있습니다. 사탄이 열심히 일하며 가라지를 뿌리고 있습니다. 주여, 가라지 때문에 마음 상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가라지는 신경 쓰지 않고 개의치 않으며 오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여 좋은 알곡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