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비유 6 - 천국은 마치 1
본문: 마태복음 13:31-35
구글(Google)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구글이 처음부터 이토록 거대한 기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구글에게도 미미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96년 스탠퍼드(Stanford) 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이 두 사람이 기존의 검색 엔진과 차별화된 새로운 검색 엔진을 만들려는 프로젝트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했습니다. 1998년 7월, 친구의 차고를 빌려 정식으로 구글을 출범시켰고,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인의 90% 이상이 구글을 검색 엔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축적된 모든 검색 데이터는 빅데이터가 되어 빅데이터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알파고(AlphaGo)로 대변되는 AI 시장도 구글이 선점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2006년 유튜브(YouTube)를 인수합병하여 날개를 달았고, 현재는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순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구글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발전하여 차고에서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거대 기업이 되었지만, 그 성장의 뒷그늘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구글에 2,07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지난 8월 31일 국회에서는 이른바 '구글 갑질 방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구글이 스마트폰 마켓 시장에서 과도한 수수료를 책정하여 막대한 이익을 독점한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구글은 독과점적 지위를 활용하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서 과도한 수수료를 챙기고 있습니다. 물론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세계적으로 구글의 이러한 행태를 제어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센 것도 현실입니다. 구글의 거대한 독과점적 폐해가 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돌아보면 23년 전 차고에서 두 사람이 시작했을 때, 과연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들은 초심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이렇게 불완전합니다. 거대하게 성장하고 좋은 기업이 되었지만, 성장만을 바라보며 앞만 보고 달려온 나머지 결국 이런 폐해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장하되 상처 주지 않는 나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발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성장하고 발전하면서도 그 누구 하나 상처 받지 않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자체로 완벽하고 완전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완전성과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 13:31)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을 말씀하실 때 "천국은 마치"라고 설명하십니다. "천국은 마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천국을 누구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유로 설명하시겠다는 예수님만의 독특한 방식입니다. 천국은 예수님 이외에는 경험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천국을 경험하지 못했고, 그 누구도 천국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가보지 못한 천국을,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천국을 어떻게 직설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비유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천국을 설명하실 때, 혹은 사람들의 지혜가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할 때,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항상 비유로 설명해 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말씀을 오늘날 이 시대의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이 성경 전체가 비유라고 호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마 13:34)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이 말씀을 근거로 성경 전체가 비유 풀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천지창조, 선악과 사건, 노아 홍수 사건, 예수님의 기적 사건, 이 모든 것을 전부 비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이 이렇게 성경 전체를 비유라고 말하는 것이 지식인들에게 먹히고 있고 통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소위 많이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 세상적인 지식과 사회과학적인 지식, 그리고 물리학적인 지식으로 무장된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과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몹시 힘들어합니다. 천지창조 이야기, 선악과 이야기, 노아 홍수 이야기,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 — 이것이 그렇지 않아도 고민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비유라고 하니 그들은 반색하며 그 말을 마음 다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의 이단이 그들에게 통하고 먹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며,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이 땅에서 성취하셨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누구도 가보지 않은 천국을 말씀하실 때 비유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고, 설교를 듣는 사람의 지식이 부족하고 경험이 천박하여 잘 알아듣지 못하면 주님이 그들의 눈높이까지 낮추셔서 비유를 풀어 가신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비유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주님께서 필요에 따라 비유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늘 천국 비유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 13:31)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기왕이면 거대한 건물이라고 비유하시지, 왕이 사는 웅장한 왕궁이라고 비유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왜 하필 겨자씨, 그것도 그 작은 한 알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겨자씨 한 알은 사람 손에 올려놓으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자칫 땅에 떨어뜨리면 찾을 수조차 없습니다. 왜 천국을 위대하고 아름다운 왕궁처럼, 거대한 건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작디작은 겨자씨 한 알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건물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 자체로 완벽하고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그 자체로 화려하지만, 더 이상 생명이 없기 때문에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처음이자 끝이고, 건물 자체는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겨자씨는 그렇지 않습니다. 작고 보잘것없고 연약하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성장의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핵심입니다. 천국은 생명이요, 천국은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을 우리 주님은 천국의 핵심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셨습니다.
품을 내어주는 큰 나무
그런데 천국이 성장하면 어디까지 성장하고 어디까지 자랄 수 있을까요.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 13:32)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됩니다. 나무가 되면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새들이 큰 나무가지에 와서 둥지를 틉니다.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 새끼를 부화시키고 새끼를 먹입니다. 어미 새가 새끼를 돌보기 위해 잠시 둥지를 비워야 할 때, 안전하지 않으면 거기에 둥지를 짓지 않습니다. 안전하다고 느낄 때, 이곳에 집을 지어도 새끼들을 잘 돌보고 살필 수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새들이 둥지를 틀게 됩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특징은 자라서 성장하되 자기 품을 내어주는 존재가 바로 천국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장하기는 했는데, 큰 나무가 되고 울창한 숲을 이루기는 했는데, 자기 품을 내어주지 않고 어떤 새도 거기 와서 평안하게 집을 짓지 못하고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천국은 성장하되 품을 내어주고, 타인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드릴 수 있는 곳, 그 장소와 그 사람을 우리 주님은 천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서 우리 자신을 한번 대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천국의 삶을 살고 있는가. 첫째,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여기서 성장이라는 것은 키가 자라고 몸이 자라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키와 몸은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열심히 하면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성장하고 몸집이 불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면 키의 성장이 멈춘 이후에도 재산이 불어나고, 돈을 열심히 모으면 집도 넓혀갈 수 있습니다. 과연 이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참된 성장의 기준입니다. 성장한 이후에 내 품을 타인을 위해 마음껏 내어줄 수 있는가, 이 기준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부모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는데, 자식에게 기댈 수 있을 만한 언덕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나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파도를 만나고 큰 어려움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존재입니까. 와서 상의하고 싶고, 한번 울고 싶고, 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식사라도 나누고 차라도 나누고 싶은 존재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천국의 삶을 살아오고 이룬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돈을 많이 벌지 못했고 넓은 집에 살지 못했고 성공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보실 때 성장한 큰 나무가 되어서 천국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제법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오히려 나를 피하고, 자식조차도,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조차도 나를 슬금슬금 피한다면, 우리는 인생을 잘못 산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품을 과감하게 타인을 위해 내어주지 않고, 내 인생과 내 존재를 내어주지 않아서 나라는 큰 나무에 사람들이 둥지를 짓고 살 수 없도록 만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언가 우리가 잘못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 기준에 의해서 교회를 살펴보면, 천국 같은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성장하는 교회 아닙니까. 그러나 수적인 성장이 교회 성장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숫자가 성장하고 교회 건물이 커지고 땅이 넓어진다고 과연 진정한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공동체에 오시는 성도들이 이 교회에서 예배 드리면서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느껴야 합니다. 이곳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릴 수 있어야 하고, 여기에서 영적인 양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이곳이 행복하고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교회가 천국 같은 교회입니다. 불편하고 불안정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없다고 느끼면, 그것은 교회가 어디론가 잘못 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교회나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장해서 좋은 나무가 되고, 품을 내어주고, 사람들이 거할 수 있고, 누구나 와서 함께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공동체를 세워 간다면, 우리는 지금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처럼 천국의 삶을 살아간 인물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이라는 한 사람을 이집트(애굽)의 한 겨자씨로 심으셨습니다. 요셉이라는 겨자씨가 이집트에서 성장하고 자라면서 얼마나 많은 환란을 겪었습니까. 노예로 살았습니다. 죄수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꿋꿋이 견뎌서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좋은 나무가 되었습니다. 요셉이라는 큰 나무에 이집트의 황제 파라오도 둥지를 틀고 집을 지었습니다. 이집트의 수많은 사람들이 요셉이라는 큰 나무 아래에서 기근을 피했습니다. 이집트의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자신을 종으로 팔아버린 형제들조차 요셉은 용서했습니다. 자기 나무 그늘 아래 형제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아버지부터 형제와 일가친척까지 이집트로 모셔서 그곳에서 여생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자신의 품을 아낌없이 내어주었습니다. 그 누구도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모아놓은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을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서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이게 되면 그것이 바로 천국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요셉은 바로 그 자체로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한 겨자씨를 이집트 왕궁에 심으셨습니다. 40년 동안 이집트 왕자로, 공주의 아들로 키우셨습니다. 때가 되자 그 나무를 뽑아서 미디안 광야로 옮겨 심으셨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80세까지 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나무를 큰 나무가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여정을 이끌어 가게 하셨습니다. 사실 모세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실패한 사람입니다. 한때는 왕위 계승자의 자리에 있었지만, 이집트의 왕자였지만, 실패한 사람이 되어 이집트에 돌아와 왕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실패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영적인 거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80년 동안 훈련받은 후에 큰 나무, 좋은 나무가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나무의 품에 안고 출애굽의 대업을 성취했습니다. 모세라는 큰 나무가 없었다면 출애굽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40년 광야 여정이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가능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이 모두 이처럼 천국 같은 존재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 중에 가장 큰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겨자씨를 갈릴리 나사렛에 심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보잘것없었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한 보잘것없는 작은 겨자씨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겨자씨 예수님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큰 나무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라는 가지에 둥지를 틀고 집을 짓습니다. 지금 우리조차도, 앞으로 올 모든 이들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열두 겨자씨를 심으셨습니다. 그중 하나의 겨자씨인 가룟 유다는 실패했습니다. 나머지 겨자씨는 또 자라서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 나무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그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둥지를 틀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겨자씨를 심으셨습니다.
과연 나는 천국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나이가 들어가고 시간이 점점 가고 있는데, 과연 나는 내 품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천국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나라는 큰 나무의 품에 둥지를 틀고자 합니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천국 같은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천국을 빚어내는 선한 영향력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3)
우리 예수님이 또 "천국은 마치"라고 설명하시며 천국은 마치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룩은 겨자씨와 비교해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더 작고 미미한 존재입니다. 겨자씨는 겨자씨 하나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누룩은 그 하나로는 가치가 없습니다. 존재감이 없습니다. 누룩은 어떤 것에 들어가서 부풀게 해서 빵이 되게 할 때 비로소 존재 가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가루 서 말 속에 들어가서 그것을 전부 부풀게 하여 빵이 되게 해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존재가 될 때, 그때 비로소 누룩은 가치 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누룩을 통해 하고 싶은 천국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하고 싶은 말씀은 바로 누룩이 영향력인 것처럼 천국도 영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천국은 누룩이 빵을 만드는 영향력이 된 것처럼 천국도 선한 영향력, 좋은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을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 곳곳을 보면 누룩에 대해 나쁜 영향력을 말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악한 영향력의 누룩을 주님도 경고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 16:6)
여기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막 8:15)
여기서는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누룩이라고 다 같은 누룩이 아닙니다. 악한 누룩도 있습니다.
우선 바리새인의 누룩은 어떤 누룩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위선의 누룩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입니다. 길거리 사거리에 나와서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경건함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금식할 때는 머리를 풀고 세수도 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초췌하게 보입니다. 자기가 지금 금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말씀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건함을 과시하여 출세의 도구로 이용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겉과 속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 같은 자"라고. 그들은 실제로는 돈을 좋아하고 권력을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며 사는 위선자들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바로 위선의 누룩입니다.
사두개인들은 현실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 땅에서 돈 많이 벌고 이 땅에서 성공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더 누리고 살까,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더 가지고 살까, 그래서 그들은 항상 현실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사두개인의 누룩은 현실주의적 누룩입니다.
헤롯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헤롯은 권력 지향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동방 박사들이 헤롯을 찾아왔습니다. 헤롯이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가 팔레스타인(Palestine)의 왕인데 어디서 왕이 나셨다는 말인가. 헤롯은 왕이 났다고 추정되는 그 지역의 두 살 미만 아이들을 모두 학살했습니다. 영아 학살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서,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갓 태어난 어린아이까지 함부로 죽이는 무서운 사람이 헤롯입니다. 그의 아들 헤롯은 자신에게 참된 말, 바른 말을 하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사람을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사람이 헤롯입니다. 헤롯의 누룩은 권력을 사랑하는 권력 지향적 누룩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영향력을 주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눈빛이나 사소한 식습관까지 모든 것이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그대로 흘러갑니다. 학교 교사들의 영향력은 학생들에게 그대로 흘러갑니다. 목회자의 영향력은 성도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 지도자는 국민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좋은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영향력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과연 좋은 영향을 주는 누룩인가, 나도 바리새인처럼, 사두개인처럼, 헤롯처럼 악한 영향력을 주는 누룩인가. 그것은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빵이 되어서 타인을 먹여 살리는, 생명을 살리는 좋은 사람이 된다면 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누룩인 것입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오랜 기간을 보낸 사람이 바리새인처럼, 사두개인처럼, 헤롯처럼 변해 가고 있다면, 우리는 악한 영향력을 끼친 악한 누룩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천국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영향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악한 영향력의 존재가 되지 말고, 선한 영향력을 끼쳐 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갖다 심고 갖다 넣는 수고
예수님께서 겨자씨와 누룩을 말씀하셨는데, 이 두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 13:31)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3)
발견하셨습니까. 공통점은 "갖다 심은", "갖다 넣어"입니다. 누군가가 겨자씨를 심어야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될 것이 아닙니까. 누군가가 갖다 넣어야 가루가 전부 부풀어 올라서 빵이 될 것이 아닙니까.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겨자씨를 심지 않는다면 씨는 씨대로 있고 땅은 땅대로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어주지 않는다면 가루는 가루 그대로 있고 누룩은 누룩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수고해서 천국을 이루어 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천국이란 이 땅을 떠나서 죽어서 가는 고정불변의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천국의 개념을 확장시켜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수고하고, 이 땅에 씨를 심고, 우리가 갖다 넣으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사명입니다. 씨를 심은 사람은 심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수고해야 합니다. 물을 주고 김을 매고 가꾸는 수고와 견디고 훈련하는 수고를 통해 좋은 나무를 일구어 가야 합니다.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은 사람도 넣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됩니다. 빵을 반죽하고 빵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만들어진 빵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천국을 이룰 수 있다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고, 지금 포기하고 살아가는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 이 나라와 이 민족까지도 천국으로 만들어 갈 사명을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입니다. 누군가가 갖다 심어 겨자씨를 큰 나무가 되게 만들라,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어서 전부 부풀게 한 것처럼 너희가 그 일을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에게 이 위대한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천국을 만들어 가는 사람, 우리 가정과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를 천국으로 변화시키는 사명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으니,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그 일을 믿음으로 잘 감당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 한 알과 같고, 천국은 마치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겨자씨이지만 생명이 있어 자라 큰 나무가 되어 자신의 품을 새들에게 내어주는 나무가 됩니다. 주여, 오늘 우리가 이렇게 성장하고 우리 자신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나눔의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천국은 누룩 같은 선한 영향력, 좋은 영향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의 영향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좋은 영향력을 주며 살고 있는지 우리를 돌아보게 하옵소서. 이 땅에 천국을 이루어 가는 사명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는데, 우리는 과연 농부의 수고를 하고 있는지, 빵 만드는 이의 수고를 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하나님의 백성, 자녀가 되도록 주여 우리의 믿음과 삶을 책임져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