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비유 7 - 천국은 마치 2
본문: 마태복음 13:44-46
성공을 이루는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실을 꼽을 것입니다. 성실하기만 하면 어떤 일을 하든, 어느 자리에 있든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실이 전부는 아닙니다. 성실로 성공을 거두었다 해도 방향이 올바르지 않으면 그 성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어떤 방향을 가진 사람이냐에 따라 성공의 진정한 여부가 판가름 납니다.
재능 있는 누군가가 공부를 잘해서 대학 졸업 후 훌륭한 법조인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의 방향이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부귀영화와 영달을 향한 것이라면, 그의 성공은 국가적으로 재앙이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자신에게도 큰 화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방향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브라(Cobra)는 적을 만나면 물기 전에 먼저 적의 눈을 향해 독을 살포합니다. 눈을 멀게 하여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한 후 적을 물어 제압합니다. 야생 양귀비도 같은 원리입니다. 양귀비의 붉은 꽃이 아름다워 초식동물이 이를 먹으면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고 취해서 이리저리 비틀거립니다. 초식동물이 야생의 세계에서 방향을 잃어버리면 포식자의 먹잇감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체를 창조하시고 생태계에 질서를 부여하실 때에도 방향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주신 천국 비유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성실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동시에 방향이 중요함을 함께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과연 성실한지, 성실하되 올바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상 한가운데 숨겨진 천국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4)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규명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는 천국이 밭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농부에게 밭은 가까운 일상의 공간입니다. 멀리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하루 종일 그곳에서 수고하다가 해가 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밭은 곧 일상의 영역이자 일터입니다.
이 비유를 듣는 사람들은 천국을 저 먼 곳에 있는 것으로만 여겼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기에 지금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곳이라고만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우리의 일상 한가운데, 일터의 영역에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농부에게 밭은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입니다. 긍정의 마음과 부정의 마음이 공존합니다. 일터는 농부에게 먹고사는 터전입니다. 그곳에서 생산한 소출로 자녀를 건사하고 가정을 돌보며,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불편하기도 합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뙤약볕을 견디며 수고했는데, 태풍 하나로 밭이 쑥대밭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산짐승이 내려와 다 먹어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밭에 나가기가 싫어집니다. 이토록 땀 흘리고 수고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탄식하게 됩니다. 수고한 만큼의 열매나 결과를 얻지 못할 때, 일터는 고통의 공간이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일터는 마찬가지입니다. 보람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지만, 반대의 감정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일하러 가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평생 한 직장에서 몸과 마음을 다해 일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별로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터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이토록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바로 이 일터에 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멀리 있는 천국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일상의 공간에 천국이 있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가까운 일상의 공간에서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의 일상의 공간, 그의 일터는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 잔뼈가 굵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았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실패와 고통 속에서 새벽이 밝아왔고, 이제 그물을 정리하던 중에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2-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일터의 공간,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언제 어디서건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잘 차려입고 위엄 있게 메시아를 영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땀에 절은 베드로를,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빈손인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일상의 영역, 일터의 공간에서 주님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그곳에서 보화를 발견하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제 후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말씀하셨고, 그때부터 베드로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실패했던 영역, 자신의 일상의 공간에서 성실하게 일했을 때, 바로 그곳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입니다.
구약에는 룻이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큰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시아버지도, 시숙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루아침에 한 집안의 남자 셋을 동시에 잃었습니다. 동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시어머니를 봉양해야 했기에 밭에 나갔습니다. 추수를 마친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룻도 젊은 여인이었습니다. 자존심이 있었고,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을 내려놓고 일터에 나가서 성실하게 일했더니,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한 남자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터에 보아스라는 보화를 숨겨두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상의 공간에 하나님께서 숨겨두신 보화가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매일 눈 뜨고 밥 먹고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우리 일터는 날마다 출근하여 땀 흘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매주일 예배드리러 오는 곳입니다. 모두 나의 일상의 영역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내 가정, 그곳에 보화가 있습니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내 일터, 그곳에 하나님께서 감추어두신 보화가 있습니다.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내 교회, 그 깊숙한 곳에 하나님께서 숨겨두신 보화가 있습니다.
성실한 자만 발견하는 보화
예수님께서 천국의 보화를 말씀하시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덧붙이셨습니다. 그 보화는 공개된 곳에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감추인 보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아무나 찾을 수 있는 보화가 아니라, 성실한 사람, 열심을 다해 땅을 파는 사람만 발견할 수 있는 보화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듣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이 비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Palestine) 땅은 예로부터 전쟁이 잦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피난을 갔습니다. 피난 가면서 금은보화와 보석을 모두 챙겨갈 수는 없었습니다. 집에 있는 것들을 모아 땅을 깊이 파고 숨겨둔 뒤 피난을 떠났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너무 멀리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쟁 중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주인을 잃은 밭에 새 주인이 나타나 경작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주는 직접 땅을 갈지 않고 사람을 고용하여 소작을 줍니다. 수많은 일꾼들이 그 밭에서 봄여름가을겨울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일꾼들이 그 밭을 갈고 또 갈았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밭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던 보화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단 한 사람, 쟁기질을 하며 깊숙이 땅을 팠을 때, 그 쟁기 끝에 보화가 걸려 올라왔습니다.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밭은 내 밭도 아닌데, 적당히 일하고 품삯만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에 보화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땅을 파고 성실하게 땅을 일군 이 농부는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서,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깊숙이 땅을 파는 사람은 누구든지 보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실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인 저에게도 날마다 성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설렁설렁 말씀을 연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연구할 때 더 깊이 파들어가라고 하십니다. 깊이 묵상하고 더 깊이 말씀을 연구하여, 거기서 길어내는 원천으로 성도들을 돌보고 먹이며 공동체를 이롭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깊숙한 곳에 하나님 말씀의 보화인 원천이 숨겨져 있습니다.
전도할 때는 어떻습니까? 전도 대상자 한 사람을 정하고 마음을 다해 기도합니다. 선물도 주고 연락도 하며 정성을 쏟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반응이 냉담하고 싸늘하면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고 잊어버립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저 사람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단정해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 하는 전도의 방식입니다. 더 깊이 전도해야 합니다. 한 번 마음에 품었다면, 한 번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다면, 5년, 10년, 20년, 삶이 다할 때까지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쉼 없이 가슴에 품고 기도하며 전도하다 보면, 전도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보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깨닫게 되고, 내가 변화됩니다. 전도 여부와는 별개로 내 인생이 달라지고, 그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간증의 샘이 솟아나게 됩니다.
기도는 어떻습니까? 기도 제목을 가지고 엎드려 기도하는데, 원하는 대로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포기해버립니다. 원하는 시기와 방식대로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안 되나 보다 하며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깊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간절하게, 깊숙이 기도하며 묵상하면, 기도 응답의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그 깊숙한 곳에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적 보화가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보화가 나를 변화시킵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성실, 전도의 성실, 말씀 연구의 성실, 삶의 일상에서의 성실을 요구하십니다. 대충하는 자, 소작하는 농부처럼 '이건 내 밭이 아니니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설렁설렁 일하는 사람에게는 깊은 천국의 보화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보화를 발견할 기회를 왜 놓쳐버리겠습니까? 깊이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신 보화를 반드시 발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적 안목이 분별하는 참된 가치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 13:45)
주님께서는 천국이 진주 장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진주 장사는 보통의 장사가 아니라 좋은 진주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입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자격 하나가 필요합니다. 바로 좋은 진주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입니다. 이 진주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가짜라면 왜 가짜인지, 진짜라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진주보다 더 훌륭한 진주여서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취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에 비유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영적 안목이 있느냐를 질문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가장 귀한 것을 찾고 발견할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느냐,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라다니는 가치가 아니라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영적 안목이 과연 있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장 귀한 진주가 돈이라고 말합니다. 돈만 있으면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며, 좋은 진주를 구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권력만 가지면 최고의 진주를 가진 것이라 여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녀가 좋은 진주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평생 쌓아 올린 자신의 업적이 최고의 진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가장 값진 진주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가치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주가가 상한가와 하한가를 오가는 것처럼 널뛰기를 거듭합니다. 돈은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만큼이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만큼 모으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와 더 많이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권력도,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의 우리 자녀와 30대, 40대의 우리 자녀는 전혀 다른 인격이고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가장 귀한 진주는 가치가 일정해야 합니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그 가치가 동일한 진주가 가장 귀한 진주입니다. 그 가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가치가 일정하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항상 최고의 가치로 영롱한 빛을 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분이야말로 가장 귀한 진주이십니다. 과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가치임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바로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가치임을 발견한 자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됩니까? 손양원 목사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여순 반란 사건 때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공산당의 총에 잃었습니다. 두 아들의 장례를 마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양자로 입양했습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을 팔아서 자신의 유명세에 이용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자식을 죽인 자를 어떻게 양자로 입양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귀한 보화, 가장 귀한 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아들은 이미 목사님의 손을 떠나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이 확실했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두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내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내가 건져주지 않으면 사형을 당하고 지옥 백성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래서 그를 탄원하여 데려다가 자기 집에 양자로 입적시키고 전도사를 만들었습니다.
안재선의 아들 안경선은 현재 목사가 되어 아프리카 부룬디(Burundi)에서 한센인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손양원은 여수에서 한센인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고, 손자뻘인 안경선은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한센인을 위해 쓰임받고 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에게는 가장 귀한 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기에, 세상의 이데올로기든 가장 사랑했던 두 아들이든 예수 그리스도보다 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세상을 다르게 살 수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그분이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가장 귀한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천국이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분이 곧 천국이었습니다. 그분이 천국이 되니 함께하는 사람들이 천국을 경험했습니다. 반대로 지옥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 곁에 있으면, 그 곁에 있는 사람도 지옥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귀한 보화이신, 가장 귀한 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우리가 바로 천국이 됩니다. 내가 천국이 되면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천국을 누리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 3:8-9)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최고의 학벌로 가말리엘(Gamaliel) 문하에서 배웠습니다.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탁월한 말솜씨와 빼어난 문장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얻고 나니 이 모든 것이 배설물로 여겨진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과 함께한 사람들은 바울이 곧 천국이었기에, 바울을 통해 천국을 경험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천국이고, 바울이 천국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이십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손양원 목사님처럼 가장 값진 보화이시며 진주이신 예수님을 발견하여 천국의 삶을 누려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 비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4)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 13:46)
'소유를 다 팔아'라는 표현입니다. 천국은 발견한 자가 올바른 방향을 가지고 소유를 다 파는 헌신이 있어야 차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농부가 성실하게 일하여 보화를 발견했는데, 거기서 갈등한다면 올바른 방향을 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진주 장사가 안목으로 가장 좋은 진주를 발견했다면,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이 진주를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단해야 합니다. 방향을 정하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께서는 양자택일의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결단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삭이냐 이스마엘이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보내고 이삭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결단을 촉구하셨습니다. 네 아들 이삭이냐, 나 여호와 하나님이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셨던 것처럼 끊임없이 결단과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세상에도 한 발을 두고 하나님 나라에도 한 발을 두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도 지키면서 이 보화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를 정리해서 가장 귀한 보화를 발견하고, 내가 가진 것을 정리해서 가장 귀한 진주를 소유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 한 부자 청년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 청년은 공의회 의원이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젊음도 가지고 있었고 부자이기도 했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결단을 요구하셨습니다.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그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양쪽을 다 가지고 싶어하는 자에게 남는 것은 근심뿐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실한 자가 천국을 발견합니다. 발견했다면 결단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달려가라고 요구하십니다. 이 요구에 응답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천국은 우리의 일상의 영역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정과 일터와 교회 공동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천국이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성실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믿음생활 하여,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보화를 발견하게 하옵소서. 가장 귀한 영적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안목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가장 귀한 진주를 찾는 천국 백성이 되도록 도우시고, 우리가 천국이 되어 함께하는 이들에게 천국을 경험하게 하는 믿음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양자택일의 결단 앞에 서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하나님께서 분명한 방향을 주셨사오니, 세상에 한 발을 딛고 하나님께 한 발을 딛고 살지 않도록 도우시고, 하나를 정리하고 올바른 방향을 가지고 달려가는 믿음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