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마치 3
본문: 마태복음 13:47-52
독일 총리로 재직했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독일을 넘어 유럽,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녀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16년간 재임한 최장수 독일 총리, 취임 당시 최연소 독일 총리, 동독 출신 양자물리학 박사 등 수많은 직함과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동독에서 루터교 목사인 아버지와 영어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대학에서 양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러던 중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에게 발탁되어 정치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녀가 정치를 시작하며 마음에 품었던 한 가지 다짐이 있었습니다. "나는 실용주의자가 되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정파적 이익이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실제로 그녀가 2005년에 총리가 된 이후 16년 동안, 자신의 정파적·정치적 이익을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연정을 통해 국가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판단했습니다. 2005년 총리에 취임했을 때 독일은 "유럽의 환자"라고 조롱받았지만, 16년이 지난 뒤 독일 경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이제 유럽을 책임지고 세계 경제의 한 축을 이루는 나라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로존 금융위기를 타개하고, 시리아 난민 문제를 해결하고, 코로나 사태에도 하나하나 대응해 나갔습니다.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그녀는 약 75퍼센트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그녀가 총리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녀는 총리였지만 여전히 총리가 아닌, '이미'와 '아직' 사이의 경계에서 긴장을 품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총리가 되었지만, 아직 총리가 아닌 것처럼 여전히 겸손하게, 여전히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국민을 바라보며 나아갔던 것이 그 비결입니다. 그녀의 삶에서도 이러한 자세와 태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녀는 항상 검소한 정장 재킷 차림의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총리 관저가 제공되어도 그곳에서 살지 않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주말이면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는 평범한 일상을 유지했습니다.
총리뿐만이 아닙니다. 정치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삶의 자리에서 성공을 이루고, 뛰어난 일을 함께 만들어 가려면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교사가 되었는데 초임 교사가 완벽한 교사라고 착각하는 순간, 그 사람의 경력에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때부터 진정한 교사가 되어 가는 과정으로서 배우고 익혀 가야 합니다. 목사가 안수를 받는 순간 완전한 목사일 수 없습니다. 이미 목사가 되었지만 아직 목사가 아닌 상태로, 배우고 끊임없이 발전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 비유입니다. 천국은 이미 도래했으나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도래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아직 재림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완전한 천국이 이 땅에 임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그 가운데에서 교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천국 백성으로서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그물, 교회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 13:47)
예수님께서 천국을 그물이라고 비유하셨습니다. 이 그물은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입니다. 여기서 '각종'이라고 기록된 단어는 헬라어 '파스'(πᾶς)입니다. '파스'는 '모든'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을 천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는 사람들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 잡는 모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다양한 고기 잡는 방식이 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은 배 두 척이 양쪽 끝에서 그물을 걸고 바다 밑까지 늘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가 함께 끌어 다니며 움직입니다. 오늘날의 저인망 어선처럼, 물속에 있는 모든 물고기를 그물에 담아 끌어올리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하면 물속의 모든 물고기가 그물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천국을 그물로 비유하신 것은, 천국은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임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천국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 됩니다. 지금껏 우리는 천국이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라고 알고 있고 배워 왔습니다. 검증된 사람, 이 땅에서 수고하고 땀 흘리며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곳, 우리는 그곳을 천국이라고 배웠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 21:26-27)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 이 땅에서 믿음의 절개와 정절을 굳건히 지킨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축복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이 말씀에서 천국의 개념을 확장하고 계십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곳, 물고기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물고기는 바로 우리, 성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이 땅의 열린 공간이 어디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물은 바로 교회를 지칭합니다.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값 없이 돈 없이 와서 누구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땅의 천국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오순절 이후에 첫 번째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한 번 설교하면 삼천 명, 또 한 번 설교하면 오천 명이 모였습니다. 이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는 바울과 바나바, 바울과 실라를 파송했습니다. 그리하여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에 복음은 전 세계로 확대되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유효기간은 과연 언제까지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다면, 교회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교회는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고,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예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데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목사의 설교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성경 공부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 이후에는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유효기간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만 존재합니다.
그 기간 동안 교회에는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사명이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교회는 모든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이라고 말씀하시는 데에 답이 있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영혼 구원의 사명입니다. 모든 물고기를 모아 들여야 합니다. 교회는 그 일을 위해 부름받았고, 교회는 그 일을 위해 지금도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교회는 전도의 사명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그물을 온전히 지키는 교회
전도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과거의 전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행해지지만, 어깨부터 허리까지 띠를 두르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문구를 붙여 선포식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예수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전도의 방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길거리에서,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전도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바뀌고 시대가 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관계 전도를 합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가족, 일가친지, 직장 동료, 이웃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교회마다 새생명 잔치도 합니다. 부활주일에 한 영혼을 가슴에 품고 6개월, 7개월 동안 그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도 전달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그분을 교회로 초대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분에게 맞는 설교와 메시지를 전하고, 그분을 교회의 일원으로 반갑게 영접합니다. 이것이 관계 전도입니다.
선포식 전도도 하고 관계 전도도 하는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정말 중요한 전도는 바로 이미지 전도입니다. 이미지 전도란, 오늘날 불신자들이 교회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에, 믿음 생활을 항상 교회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이곳이 전부인 줄 압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 시대 불신자들은 교회를 긍정적인 눈으로 볼까요, 부정적인 눈으로 볼까요? 120년 전 이 땅에 교회가 처음 들어왔을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를 신뢰했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 왔을 때 병원과 학교를 함께 세웠습니다. 병원을 통해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살려 주었습니다. 학교를 통해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했습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영혼을 구원하는 참된 구원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학교와 병원과 함께 들어와 사회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120년이 지난 오늘날, 이 시대 시민들에게 교회는 어떤 이미지입니까? 범위를 좁혀서 우리 교회는 양산 시민들에게 어떤 교회입니까? 사람들이 생각할 때 "저 교회는 참 좋은 교회다, 나도 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라는 이미지를 주는 교회입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우리는 교회의 대표선수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교회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어떤 느낌과 이미지를 갖게 됩니까? 살다 보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을 때가 있고, 깊은 골짜기를 헤맬 때도 있습니다. 그때 "나도 교회에 가서 위로받고 싶고 은혜받고 싶다"라는 느낌을 주려면, 우리는 믿음 생활을 잘하여 좋은 소문을 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려면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보다 교회가 더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면, 세상보다 교회가 더 비상식적이라면, 교회에 왔는데 특권이 남용되고 불투명한 것이 교회 안에서 계속 횡행하고 있다면, 어떻게 세상에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재정 운영이 투명해야 합니다. 교인들이 헌금하는 것, 사용하는 것이 투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교회가 되고 좋은 이미지를 주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반칙이 통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공정한 교회가 되어야 좋은 교회가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을 향한 나눔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나누는데, 교회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누지 않고 움켜쥐고 긁어모으기만 한다면 어떻게 세상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나눔이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때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형 교회가 사고를 치고, 지역의 중추적인 교회가 분열되고 싸우며 좋지 않은 소문이 들린다면, 그것은 그물을 찢는 행위입니다. 그물이 찢기고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물고기가 들어왔다가 다 빠져나갈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할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것은 영혼 구원을 위해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마음을 모아야 할 일입니다. 선포식 전도도 하고 관계 전도도 하지만,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도록,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성도가 되어서, 교회의 대표선수로서 이 시대와 민족에게 좋은 이미지를 제공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그물 안에 많은 물고기가 들어올 것입니다.
좋은 물고기로 변화되는 훈련
그런데 그물에 들어온 많은 물고기가 모두 좋은 물고기, 구원받는 백성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마 13:48-50)
좋은 물고기도 있고 못된 물고기도 있습니다.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못된 물고기는 내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착각 가운데 하나가, 교회에 오면 교회 안에는 무조건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이 입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물고기, 모든 물고기가 그물 안에 들어왔는데, 그 그물에는 좋은 물고기도 있고 못된 물고기도 있습니다. 종말의 때가 되면 좋은 물고기는 모아서 그릇에 담고, 못된 물고기는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교회가 또 하나 가져야 할 중요한 사명이 드러납니다. 교회는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가운데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아직 예수님이 재림하지 않으셔서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는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전도한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좋은 물고기로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좋은 물고기가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훌륭한 믿음의 인격과 신앙의 인격을 갖추도록 자신을 복종시키고 훈련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결단코 좋은 물고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은 물고기를 훈련시키는 공간입니다. 교회가 훈련하는 목표와 방향은 무엇입니까? 주인 바꾸기, 그 한 가지뿐입니다. 처음에 교회에 들어올 때 수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과 방법을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저마다 주인이 다릅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일 수도 있고, 물질이 주인일 수도 있으며, 세상의 권력과 가치가 자신의 주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 생활을 하면서, 훈련받으면서 주인을 바꿉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시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십니다.
베드로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 그는 방자한 인물이었습니다. 자기가 주인이었습니다.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주님 밑에서 훈련을 받은 후에 그가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 당신은 왕이시고 제사장이시며 선지자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베드로는 그 왕의 신하가 되고 백성이 됩니다. 왕이 다스리시는 대로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따르겠다는 결단입니다. 주인을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이것이 훈련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교육을 통해서, 선교와 친교와 봉사를 통해서 성도는 훈련받아 좋은 물고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훈련받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직분입니다. 사람들은 직분 뒤에 숨어서 훈련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분을 받아 온 과정을 한번 떠올려 봅니다. 교회에 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왔습니다. 6개월이 지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3년쯤 지나니 집사가 되었습니다. 교회 곳곳에서 성실하게 섬기고 봉사하다 보니 성도들이 인정해 주어 중직자가 됩니다.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었습니다. 기쁨으로 또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다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장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직분을 받으면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직분을 받은 것과 좋은 물고기가 된 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직분을 받아 장로가 되고 중직자가 되고 안수받아 목사가 되었지만, 과연 내 영혼은, 내 마음 깊숙한 곳의 나의 본질은 여전히 나쁜 물고기가 아닙니까? 훈련받고 변화받아 주인을 바꾸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며,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주님의 가치를 붙들고 따라 살겠다고 결단하고 지금도 걸어가고 계십니까? 교회 안에 100퍼센트 구원이 있다고 누가 보장합니까?
중직자가 되면, 사람들은 직분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물고기이겠거니, 종말이 되면 당연히 좋은 그릇에 담겨 천국 백성이 되겠거니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직분을 받은 자신도 직분이 주는 착시 현상에 빠져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실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훈련받지 않아서, 말씀 공부도 하지 않고, 성경 한 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좋은 물고기라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왜 훈련받지 않습니까? 왜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 공부를 하지 않으며, 섬기는 자리에 서지 않습니까? 직분이 주는 착시 현상에 가려져 있고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7)
바울은 이곳저곳 다니며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자기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내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복음을 들은 이들은 천국 백성이 되는데, 나는 이미 다 되었다고 생각하며 훈련받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혹시 버림받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나를 쳐서 복종시키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고, 말씀으로 나를 쳐서 말씀 앞에 복종하게 하며, 이미 사도가 되었지만 아직 완전한 사도가 되지 않았다는 결단으로 살겠다고, 이 말씀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고 결단한 것입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비슷한 결단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2)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나는 여전히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세상 역사상 존재한 어떤 사람보다도 교회를 많이 개척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그는 사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도였지만 아직 완전한 사도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여전히 나는 달려가야 하는 존재임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세상에서 내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여전히 달리고 또 달려가야 하는 존재임을 그는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미 사도가 되었지만 아직 사도가 되지 않았다는 이 긴장감 가운데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고백이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영적 긴장감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이미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목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같이 말씀을 연구하고 읽으며,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고, 성도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며, 목사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참된 목사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아 중직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중직자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연구하고 공부하며, 훈련하고 열심히 봉사하며, 초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그날까지 경주하고 또 경주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좋은 물고기로 변화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가 한번 되면 영원한 교회학교 교사입니까?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아이들 앞에 서서 말씀을 가르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매일같이 자신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한번 찬양대에 임명받으면 죽을 때까지 찬양대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찬양대원으로서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자신의 영적인 영성과 인성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좋은 물고기가 되도록 매일같이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노출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머물러 있지 말라, 좋은 물고기가 되라, 직분 뒤에 숨지 말라, 끊임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노출시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 13:52)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비유하시면서 다섯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겨자씨와 같고, 천국은 누룩과 같으며,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고, 천국은 진주 장사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오늘 본문에서 천국은 그물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을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은 성경을 베끼고 필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인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손으로 베껴서 전해 주는 역할을 서기관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서기관들은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많이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려면 새것과 옛것을 자기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서기관이 아닌 사람들은 옛것에만 집착합니다. 수천 년 전 하나님의 율법, 그 말씀을 박제해 놓고 오늘 자신의 삶에는 적용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를 새것으로 오늘 자신에게 적용하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마치, 다섯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 하나하나를 오늘의 삶에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천국에 최적화된 서기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나라 말씀의 곳간을 소유한 집주인이 됩니다. 서기관만이 집주인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나에게 적용시키고, 우리 교회에 적용시키고, 내 인생에 적용시켜서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집주인, 참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천국은 그물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천국, 하나님의 교회에 영혼 구원의 사명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여, 우리 교회가 선포식 전도도, 관계 전도도 하지만, 이미지 전도를 하고 있는 교회인지 돌아봅니다. 양산 시민들이 우리 교회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끊임없이 성찰하게 하옵시고, 우리가 상식이 통하고 합리적인 교회,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교회가 되며, 베풀고 나누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인생의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 교회가 기억나게 하시고, 이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든 물고기가 교회로 모이는 역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제 모은 물고기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시키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훈련받는 좋은 물고기가 되게 하옵소서. 직분 뒤에 숨지 않도록 도우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고 말씀 앞에 자신을 복종시켜 가며,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가운데 살게 하옵시고,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날에 우리 모두가 좋은 물고기가 되어 천국 백성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